제2회 나라꽃 무궁화 사랑축제 무궁화동산에서 열려
수원청소년문화센터 뒤 문화공원 ‘한가족 화합의 날‘
무궁화는 겨레의 꽃이다. 무궁화는 영원히 피고 또 피어 지지않는 꽃이다. 영어명으로는 ‘신의 축복을 받은 땅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무궁(無窮)’이란 순 우리말로 목근(木槿)이라는 한자음이 변한 것으로 문헌에 나타난 무궁화 명칭은 100여 가지나 된다. 한자명 ‘無窮花(무궁화)’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최초로 나타난다.
무궁화란 중국 문헌에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명칭으로 ‘무궁화’란 한글표기는 한글 창제 이후 조선조 중종 12년 최세진이 지은 <사성통해>에 처음으로 나온다. 무궁화는 생명력이 강해 1년에 한 그루에서 2~3천 송이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무궁화는 보통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7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찬바람이 부는 10월까지 끊임없이 꽃을 피운다.
수원은 무궁화의 도시이다. 수원은 매년 꽃이 피기 시작하는 7월 날을 택해 전국적인 무궁화축제를 대규모 행사로 열고 있다. 그만큼 수원은 무궁화를 사랑하는 도시이다. 그런 수원답게 ‘나라꽃 무궁화 사랑축제 - 한 가족 화합의 날’ 행사가 26일 오후 수원청소년문화센터 후편 문화공원 무궁화동산에서 열렸다.
“원래 이 축제는 지난 8월 15일 열기로 했던 행사입니다. 그날 비가 많이 내려 연기가 되었던 것을 오늘 열게 된 것이죠. 무궁화는 우리 겨레의 꽃이기 때문에 8,15광복절 기념으로 열기로 했었지만 연기해 오늘 행사가 열럈습니다”
시민노래 자랑 등 다양한 행사 열려
무궁화 사랑축제 행사 담당자는 원래 이 축제가 8.15 광복절기념으로 열기로 한 행사였다고 설명한다. 무대에는 가수 정은의 사회로 시민노래자랑이 진행되고 있다. 주변에는 2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있고 양편으로 늘어선 가로수 그늘아래서 시원하게 행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에선 무궁화를 이용한 부채만들기 체험도 열리고 있다.
원래 무궁화 사랑축제는 다양한 행사를 펼치기로 준비되었지만 시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은 대개 노령층이며 봉사를 하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한편에선 8월 2일에 제막한 기념식수 비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느라 북적인다.
“행사를 하기로 한 8,15일 광복절에 열렸으면 많은 사람들이 동참을 했을 텐데 그날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연기를 한 것이 축제의 의미를 조금 퇴색시켰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뒤늦게라도 축제를 열게 되어 다행입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시민 강아무개(남, 78세)씨는 무궁화를 기리는 행사인데 제 날짜에 행사를 열지 못한 것이 못낸 섭섭하다고 한다. 그래도 이렇게 뒤늦게라도 행사를 열 수 있어 겨레꽃 무궁화를 기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것이다.
수원시의회 김미경 의원 축제장 방문
무대 위에서 한창 시민가요제가 열리고 있을 때 수원시의회 김미경 의원이 축제장을 방문했다. 김미경 의원은 “오늘 여러 곳에서 행사가 열리는 바람에 제 시간에 찾아오지 못했다”면서 “오늘 이 무궁화축제가 나라꽃 무궁화를 기리는 뜻 깊은 행사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막바지 무더위를 잘 이겨내고 건강하시기 바란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날 행사는 사단법인 K무궁화나라사랑연합회가 주최하고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과 마을르네상스센터 등이 후원한 행사였다. 나라꽃 무궁화를 기리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민족은 무궁화를 신시시대부터 환국(桓國)의 나라꽃 환화로 부르며 제천의식을 거행할 때 신단 주변에 무궁화를 심어 신성시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겨레꽃 무궁화를 기리는 나라꽃 무궁화 사랑축제. 제 일정에 열지 못해 의미가 조금 퇴색되긴 했지만 무궁화는 우리가 가꾸고 보존해야 할 꽃이다. 무궁화 사랑축제가 비록 많은 시민이 참여하진 못했지만 소중한 축제란 생각이다.
정세학의 권선구청 갤러리 작품전에 빠지다
작품에 보이는 당집에서 묘한 기운 감돌아
지난해 2월 교동 해움갤러리에서 정세학 작가를 처음 만났다. ‘2년의 유배’라는 제목으로 작품전을 열었을 때 정 작가의 작품을 보고 한 마디로 놀라움이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2년의 유배’는 작가 정세학이 2년 동안 영국에서의 활동을 유배로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해 내기 위해 해외로 떠났지만 그 시간이 아마 그리움으로 인한 인고의 세월이었나 보다.
당시는 작가가 왜 공부를 하러 간 것을 굳이 유배라고 표현했는가에 대해 선뜻 감이 오질 않았다. 작가는 그 2년이라는 세월동안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늘 주변에서 함께 떠들고 즐기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이달 말까지 권선구청 2층 복도에서 전시회를 갖는 정세학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내 생각은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16일 오후 권선구청을 찾았다. 정세학 작가의 작품전을 서둘러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막상 권선구청을 찾아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늘 시간에 쫓겨 살아가야 하는 나로서는 마음 편하게 관람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남들처럼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끊임없이 추구하는 작가의 민족성
작가 정세학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로 만 57세이다.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공미술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1998년에는 ‘와우 프로젝트 - 달리는 도시철도’로 문화예술관(지하철 7호선 설치) 작업에 참여했다. 2006년에는 Art in City 대전 홈리스 프로젝트 예술 감독을 맡았으며 실학축전 2006년 미술감독, 서울 Hi Festival - 남대문 성곽 잇기 설치, 동해시 매화1 벽화 미술감독 등을 맡아 추진했다.
현재 수원시 팔달구 동말로 25번길 13-1(화서동)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정세학 작가는 199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열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기획단체전에도 참여했다. 2003~2004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화과, 1996~2006 경원전문대 응용회화과 강사를 역임한 작가는 2009년 수원 화성행궁 레지던시 작가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민족미술인협회 지부장과 씨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선구청 2층으로 올라가 정세학 작가의 그림을 대하는 순간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림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영국 북동부의 도시 뉴캐슬에 2년간 머물면서 접한 서양의 모습을 동양적 감성을 바탕으로 풀어낸 작품들과 과거 역사의 현장, 삶의 터전과 무위의 강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모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작업 속에는 풀지 못한 한이 서려있다
하지만 그 그림 속에서 나를 반긴 것은 ‘당(堂)’집이었다. 과거 민속을 연구하기 위해 전국의 당집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장마철, 비를 피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곳이 어느 마을 산 중턱에 덩그마니 놓인 당집이었다. 당집 안에는 기괴한 모습을 한 무신도 몇 점이 걸려있었고 어울리지 않는 불상 한구가 가운데 좌정하고 있었다.
그 당시 느낌은 섬뜩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모를 쾌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흡사 산 중에서 오래전에 잊었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그런 느낌을 다시는 갖지 못할 것 같았는데 권선구청 복도에 걸린 정세학 작가의 작품에서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세학 작가의 작품속에는 열망이 있다. 민족의 주체의식을 찾으려는 열망이 보인다. 내가 작품해석을 잘못하고 있다고 해도 난 나의 느낌을 그대로 관철시키려한다. 아름다움에 빠진 나약한 그림이 아니라 순간 뭉클한 감동을 주는 정 작가의 작품들. 올해 여름휴가로 남은 이틀 동안 강원도 여행을 마치고 오면 정 작가를 만나 곡차라도 한 잔해야겠다.
김한울의 ‘일구어진 땅’전에서 고개를 숙이다
인간이 파헤친 땅을 다시 일구는 동물들의 모습
지구를 보존하고 자연을 지켜야 할 인간들은 무자비하게 자연을 훼손했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자연을 마구 파헤친 것이다. 그런 인간의 독선적인 자연훼손으로 인해 자구는 병들어버렸고 자연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 대자연을 훼손한 대가가 인간에게 그대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헤쳐진 강은 인간들이 얻을 수 있는 자연적인 생명의 먹거리를 죽이고 있고, 산과 들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가고 있다. 산사태가 일어 순식간에 많은 집들을 흙속에 묻어버리는가 하면 나무를 베어버린 산은 물을 흡수하지 못해 거대한 물줄기가 마을을 덮쳐 많은 피해를 내기도 한다.
그런 인간의 독선적인 아집으로 망가트려 놓은 자연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대안공간 눈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김한울의 ‘일구어진 땅’ 전은 인간이 파헤친 지연을 동물들이 다시 일군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8월 24일까지 계속되는 김한울의 전시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피해를 입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연스런 회생으로 변화하는 땅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기존에 있던 건물을 부수고 난 후 평평하게 일구어 놓은 땅을 시간을 두고 지켜본 일이 있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과 함께 폐허로 변해버린 땅은 시간이 지나자 그 위에 풀이 하나, 둘 돋기 시작하더니 이내 이름 모를 꽃과 풀로 뒤덮였다. 그곳에는 새가 날아들고 예나 지금이나 그곳을 지키는 고양이와 떠돌이 개가 돌아다닌다. 이 땅 위에 인간이 개입해 새로운 것을 짓는 대신 그대로 놓아둔다면 어떤 풍경으로 변하게 될지 상상해 본다>
작가 김한울은 작가노트에서 인간이 쓰레기 등 각종 오물을 버려 훼손시켜 놓은 땅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면서, 그런 자연적으로 회복되어지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다고 스스로 치유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작가 김한울은 천위에 흙을 얹고 식물을 한 포기씩 그리며 땅을 재현했다고 한다. 현실의 풍경을 다시 돌아보고 그 위에 상상으로 본래 그 풍경에 존재했을 법한 동물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진행되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사물들과 함께 식물이 어지럽게 뒤엉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냈다면서 스스로의 작업은 하나의 과정으로 보면 자라나는 이야기와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그 터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
작가 김한울은 사람이 떠난 터 안에 남아있는 동물들에게 역할을 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동물들의 손으로 일구어진 땅의 모습을 생각하고 작품을 그려나갔다는 것이다. 김한울의 작품 언에서 동물들은 가면이나 모자를 쓰며 작은 신의 모습으로 탈바꿈 하고 땅을 지키고 가꾸는 역할을 한다.
김한울의 작품 한 점 한 점을 살피다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점이 낯 뜨겁다. 어찌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고 있는데 인간은 그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침부터 비가 뿌려대는 15일 오후 찾아간 대안공간. 그 안에서 인간의 독선을 만난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작가 김한울은 2012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전공 졸업한 후 2017년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 재학 중이다. 수많은 단체전을 거친 작가 김한울은 2017년 세 번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6년 한성백제미술대상전, 우수상을 수상하고 2017년 뉴드로잉프로젝트, 입상을 한 장래가 기대되는 작가이다.
‘평양검무’ 수원지부 창단 기념공연 열려
21일 수원남문 로데오아트홀 무대에서
검무의 유래를 보면 신라(서기 667년경)때 황창랑(黃昌郎)이 지은 것이라고 <동경잡기> ‘풍속조(風俗條)’와 <문헌비고> 등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어린 화랑 황창랑이 8세의 소년으로 백제왕을 척살하고 백제인들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검무를 빙자해 백제왕의 어전에 나아가 춤을 추다가 백제왕을 시해하고 죽임을 그 죽음을, 신라인들이 슬퍼하여 '소년의 얼굴을 닮은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춘 것'이 검무가 추어지게 된 유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설에는 이 황창랑의 전설은 백제와의 전쟁 때 백제의 계백 장군에게 피살된 신라 품일 장군(品日將軍)의 아들 관창랑의 역사적 사실을 춤으로 승화시켰다는 설도 전해진다. 이첨은 동서 <관창조(官昌條)>에 보이는 황창은 관창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 했고, 또 이유원(李裕元)의 시에도 관창이 잘못 전해져 황창으로 되었다고 했다.
이런 검무는 ‘검기무((劍器舞)’라고도 하는데 관창이 죽은 후 신라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어간 관창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관창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추었다고 했다. 검무는 진주, 통영, 해주, 광주, 평양 등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춤으로 21일 오후 수원남문 로데오아트홀 무대에서 평안남도 무형문화제 제1호인 ‘평양검무보존회’ 수원지부 창단기념공연이 열렸다.
천삼백 년의 역사를 지닌 검무
검무는 민속연희 등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칼춤이다. 관창랑에서 유래했다고 보이는 검무는 이미 천삼백 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며 이러한 검무가 각 지방의 문화와 풍토 등에 맞게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풍속의 특징을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이라고 한다. 즉 백리만 떨어져도 풍속과 습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각기 그 춤사위나 형태가 다른 검무는 진주검무 등은 국가지정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이 되고 있다. 검무는 전립과 전복 · 전대의 복식을 한 4명의 무녀들이 칼을 들고 대무하여 추는 춤으로, 조선 순조 때 궁중정재로 채택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각 지방 교방청에서 전승되어 오던 검무는 그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화되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검무는 조선조에 들어와 4인이 추었다. <정재홀기>에는 4검무로 되어 있으며, 조선 영조 때 ‘첨수무(尖袖舞)’와 ‘공막무(公莫舞)’라는 이름이 생겼다. 첨수무는 외연에서 주로 추어졌고 공막무는 여자들이 모인 잔치에서 추는 것으로 용도가 변화한 것이다. 외연용인 첨수무는 무동이, 내연용인 공막무는 기녀인 무녀들이 추었던 것이다. 신윤복의 풍속화첩 ‘쌍검대무’에 보면 2명의 기녀가 검무를 추고 있어 4명이던 것이 2명으로 감축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춤 섭렵한 이영자 수원지부장
21일 남문로데오 청소년공연장 맞은편에 자리한 보존회 사무실 입구에서 평양검무 수원지부 현판식을 거행한 일행은, 자리를 남문로데오아트홀로 옮겨 평양검무 창단 기념공연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평양검무 2대보유자 정순임과 3대보유자 임영순도 참석하여 수원지부의 창단을 축하해 주었으며, 송봉수 로데오상인회장과 강희수 상인회 수석부회장, 김한중 전 상인회장 등도 함께 했다.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평양검무보존회 이영자 수원지부장은 장정희에게 춤을 사사하기 시작하여 강선영류 태평무, 김숙자류 도살풀이, 최종실 소고춤 등을 두루 섭렵했다. 2015년 평양검무를 사사하기 시작해 2016년 이수 했으며 2017넌 수원지부를 창단하기에 이른다.
이영자 지부장은 2006년부터 남문로데오 거리에 소재한 춤사랑이라는 공간에서 한국무용을 교습을 해왔다. 이날 창단공연이 열린 로데오아트홀에는 평소 이영자지부장의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단공연을 축하해 주었다.
여름방학엔 화성박물관으로 ‘전통놀이’ 배우러 오세요
방학 중인 8월 12일부터 26일까지 ‘전통놀이 배우기 한마당’ 열어
세상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전래놀이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우리 전래놀이를 박물관이나 가서 보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전통놀이는 오랜 세월동안 전해지면서 그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전통놀이가 소중한 문화유산인 것은 그 안에 내재된 내적사고 때문이다.
우리 전통놀이는 그것을 연희하는 동안 잠재적으로 그 안에 내재된 ‘충(忠), 효(孝), 예(禮)’를 스스로 깨우치기도 하고, 잠재적인 기억 속에 남아있어 사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있어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 우리의 전통이란 그런 점에서 어렸을 때부터 익히고 깨치면서 그 안에 내재된 사고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전통놀이를 여름방학 동안 배울 수 있는 놀이 한마당이 마련되었다. 수원화성박물관(관장 한동민)이 마련한 ‘온 가족이 함께하는 방학특집 - 우리전통놀이 배우기 한마당’이 열리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여름방학 기간 동안인 8월 12일부터 26일까지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배울 수 있는 전통놀이 한마당은 주말과 휴일 오후 2시부터 4시 반까지 열린다.
“문(文)과 무(武)는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정조대왕은 ‘문무양익(文武兩翼)’이라고 했다. 문과 무가 새의 양 날개와 같다는 뜻이다. 무예를 익힘에 있어 기억해야 할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일담(一膽)으로 담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이력(二力)으로 힘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심정(三精)으로 정확해야 하고, 넷째는 사쾌(四快)로 빨라야 한다고 무예도보통지에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예도보통지의 네 가지는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데도 필요한 것으로 여름방학동안 화성박물관에서 행하는 전통놀이 배우기 한마당에서 무에24기와 활쏘기 체험을 통해 스스로 익힐 수 있다. 어린아이 때부터 무예24기 등을 익히면서 1026개의 다양한 동작과 무기를 갖추고 있는 무예보통지의 무예 한 가지를 익히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 외에도 집안에서 컴퓨터와 TV등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각종 놀이도 마련되어 있다. 팽이치기, 윷놀이, 제기차기, 강강술래, 고누놀이, 투호던지기 등. 우리놀이를 하면서 함께 참여한 친구들과 공동체정신을 함양할 수 있고, 무더위로 인해 나태해지기 쉬운 신체를 단련하여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놀이의 특성은 공동체와 충효예 정신함양에 있다
우리 전통놀이는 그 놀이를 즐기면서 스스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정신을 익히게 된다. 이는 정조대왕의 위민정신에도 부합되는 것으로 우리민속의 모든 놀이문화 속에는 그 안에 공동체 함양과 이웃과의 교류, 스스로 깨우치고 실행으로 이행해 나가는 삶의 기본 틀을 갖고 있다. 하기에 어려서부터 한 가족이 함께 놀이를 즐기면서 가족 간의 화합과 이웃과의 소통도 익힐 수 있다.
이번 여름방학을 맞이해 수원화성박물관이 마련한 ‘우리전통놀이 배우기 한마당’은 스스로 혼자 놀이를 즐기면서 사고를 일깨울 수 있고 가족 간에 함께 놀이를 즐기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은 “온 가족이 함께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함으로써 공동체의 소중함과 가족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우리전통놀이 배우기 한마당’에 시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전통놀이 배우기 한마당 신청은 수원화성박물관 홈페이지(http://hsmuseum.suwon.ne.kr)와 전화 031-228-4212로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신청기간은 7월 17일부터 8월 7일까지이다. 선착순 접수로 조기에 마감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신청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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