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학의 권선구청 갤러리 작품전에 빠지다
작품에 보이는 당집에서 묘한 기운 감돌아
지난해 2월 교동 해움갤러리에서 정세학 작가를 처음 만났다. ‘2년의 유배’라는 제목으로 작품전을 열었을 때 정 작가의 작품을 보고 한 마디로 놀라움이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2년의 유배’는 작가 정세학이 2년 동안 영국에서의 활동을 유배로 규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해 내기 위해 해외로 떠났지만 그 시간이 아마 그리움으로 인한 인고의 세월이었나 보다.
당시는 작가가 왜 공부를 하러 간 것을 굳이 유배라고 표현했는가에 대해 선뜻 감이 오질 않았다. 작가는 그 2년이라는 세월동안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늘 주변에서 함께 떠들고 즐기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이달 말까지 권선구청 2층 복도에서 전시회를 갖는 정세학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내 생각은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16일 오후 권선구청을 찾았다. 정세학 작가의 작품전을 서둘러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막상 권선구청을 찾아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늘 시간에 쫓겨 살아가야 하는 나로서는 마음 편하게 관람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남들처럼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끊임없이 추구하는 작가의 민족성
작가 정세학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로 만 57세이다.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공미술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1998년에는 ‘와우 프로젝트 - 달리는 도시철도’로 문화예술관(지하철 7호선 설치) 작업에 참여했다. 2006년에는 Art in City 대전 홈리스 프로젝트 예술 감독을 맡았으며 실학축전 2006년 미술감독, 서울 Hi Festival - 남대문 성곽 잇기 설치, 동해시 매화1 벽화 미술감독 등을 맡아 추진했다.
현재 수원시 팔달구 동말로 25번길 13-1(화서동)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정세학 작가는 199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열일곱 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기획단체전에도 참여했다. 2003~2004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화과, 1996~2006 경원전문대 응용회화과 강사를 역임한 작가는 2009년 수원 화성행궁 레지던시 작가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민족미술인협회 지부장과 씨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선구청 2층으로 올라가 정세학 작가의 그림을 대하는 순간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림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영국 북동부의 도시 뉴캐슬에 2년간 머물면서 접한 서양의 모습을 동양적 감성을 바탕으로 풀어낸 작품들과 과거 역사의 현장, 삶의 터전과 무위의 강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모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작업 속에는 풀지 못한 한이 서려있다
하지만 그 그림 속에서 나를 반긴 것은 ‘당(堂)’집이었다. 과거 민속을 연구하기 위해 전국의 당집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장마철, 비를 피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곳이 어느 마을 산 중턱에 덩그마니 놓인 당집이었다. 당집 안에는 기괴한 모습을 한 무신도 몇 점이 걸려있었고 어울리지 않는 불상 한구가 가운데 좌정하고 있었다.
그 당시 느낌은 섬뜩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모를 쾌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흡사 산 중에서 오래전에 잊었던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그런 느낌을 다시는 갖지 못할 것 같았는데 권선구청 복도에 걸린 정세학 작가의 작품에서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세학 작가의 작품속에는 열망이 있다. 민족의 주체의식을 찾으려는 열망이 보인다. 내가 작품해석을 잘못하고 있다고 해도 난 나의 느낌을 그대로 관철시키려한다. 아름다움에 빠진 나약한 그림이 아니라 순간 뭉클한 감동을 주는 정 작가의 작품들. 올해 여름휴가로 남은 이틀 동안 강원도 여행을 마치고 오면 정 작가를 만나 곡차라도 한 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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