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 정월 행궁나라 갤러리서 28일까지

 

정월 행궁나라갤러리는 팔달구 행궁동(동장 이장호) 주민센터 민원실 벽면과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 등을 말한다. 이곳은 정월 나혜석 생가터가 있는 행궁동 주민센터에 주민들의 정서함양과 지역에 대한 애정,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행궁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창작활동의 활성화를 위하고 정월 나혜석을 기리는 전시공간이다.

 

21일 오후 행궁동을 찾았다. 지나던 길에 잠시 들려 이장호 동장, 이강여 총괄팀장 등과 인사를 나눈 후, 주민자치위원회 사무실로 들어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정월 행궁나라 갤러리를 돌아보았다.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 온 것은 일반적인 그림이 아니리 마치 불화(佛畵)와 같은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정월 나혜석(1896~1948)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이며,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였다. 현재 행궁동에는 나혜석 생가터가 보존되어 있으며, 나혜석을 기리는 지역주민의 축제인 나혜석생가터 문화예술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더욱 행궁나라 갤러리에서는 나혜석의 정신을 기리고자 다양한 지역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들리고는 한다.

 

 

불화를 닮은 그림들

 

그동안 수많은 미술전을 관람했다. 때로는 사찰의 회랑에서 열리는 스님들의 작품 감상도 곧잘 했던 나로서는 불화 등을 보아도 새삼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도 박은신 작가의 작품은 눈을 크게 뜨게 만들었다. 아주 편안한 색을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힘이 솟는 무엇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은신 작가는 1993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석사)를 전공했다. 개인전은 2016년 제1시공간을 소요하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다. 그동안 수차례의 기획전 등에 참여한 작가는 이번 행궁나라 갤러리 초대전으로 인시(寅時), 꽃이 지다전을 마련한 것이다. 지난 4일부터 시작한 초대전은 28일 막을 내린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 꽃이 떨어진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사라져간다. 한 순간 꽃처럼 반짝였지만, 정지되고 잊혀져 가는 초라한 꿈들(이하 하략)>

 

작가는 인시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표현했다. 인시(寅時)란 십이시(十二時)의 셋째 시로, 오전 3시에서 5시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모든 삼라만상이 모두 깊은 잠에 들어있을 때이다. 이런 시간에 작가는 떨어지는 꽃잎을 생각했다. 그 시간은 절간의 스님들이라야 새벽예불을 드리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이다.

 

단순한 색감의 그림 속에서 만난 편안함

 

박은신 작가는 그림의 색을 편안하게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인시에 맞는 색을 선택했는가도 모른다. 어슴푸레 동녘의 여명이 밝아오기 전의 색감과도 같은 채색을 이용했다. 그 또한 인시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 고목 한 그루가 서있고, 새 한 마리가 그 앞에 졸듯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분채를 시용한 이 작품은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꿈꾸는 꿈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작품 속 새 한 마리는 마치 꿈이라도 꾸는 양, 그렇게 조그맣게 몸을 사리고 있다. 또 한 그림을 본다. 마치 불상의 수인을 그려낸 듯하다. 그렇게 작품 속 사물들은 소리가 없다. 그저 묵언을 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작품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문득 저 작품은 한 점에 얼마나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 그림이 풍겨내는 묘한 기운 때문에 갑자기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그런 작품을 소장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런 욕심을 잠시나나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송구하다. 박은신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는가보다.

 

43년째 맞이굿을 열고 있는 고성주씨

 

아쟁, 대금, 피리, 장고가 흥겹개 장단을 풀어나간다. 제금과 징까지 곁들여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43일은 음력 37일이다. 매년 음력 3월 초7일이 되면 팔달구 지동 271-124 고성주씨네 집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이 집을 찾아오는 것일까?

 

올해로 43년째이다. 매년 음력 37일이 되면 이 집에서는 경기안택굿을 보존하기 위한 맞이굿이 열린다. 맞이굿은 신을 모시고 있는 무격이 자신이 섬기는 신령들을 위하고 자신의 수양부리(신도)들을 위하여 굿을 여는 것이다. ‘맞이굿은 선계에 있는 신을 맞아들이고 수양부리들의 복을 맞이하기 위해 펼치는 굿판이다.

 

학계에서는 굿을 열린축제라고 한다. 누구나 모두 들어와 볼 수 있으며 한 상 가득차린 음식을 먹으면서 즐기면 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가리지 않는다. 굿판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동격의 위치에서 대우를 받게된다. 그리고 가득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거리마다 진행되는 다양한 굿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굿판은 종합예술이다. 굿판은 춤이 있고 소리가 있다. 거기다가 다양한 문서며 많은 덕담이 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신탁인 공수가 있고. 사람들은 그 신탁을 듣기위해 귀를 기울인다. 장내가 떠나갈 듯 소란하지만 무격이 하는 말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바로 굿판이다.

 

 

44년째 무업의 길을 걷는 남자

 

고성주씨는 남자무당이다. 흔히 세상에서는 박수라 부른다. 고성주씨는 자신이 신을 받아들이면서 별상의 아내가 되었다. 맞이굿을 하는 날이 되면 일주일 전부터 굿판을 준비한다. 전안에 가득 차려지는 상이며 각종 과일과 떡, 전 등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는 데는 꼭 일주일이 걸린다.

 

그렇게 준비한 굿상을 앞에 놓고 굿을 시작한다. 아침 이른 시간인 6시경에 제당맞이로 시작된 굿은 항상 밤 10시가 넘어야 끝이 난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봄과 가을에 벌어온 맞이굿판이다. 하기에 고성주씨의 맞이굿은 소문이 나 있다. 알만 한 사람들은 이 날이 되면 모두 고성주씨의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장엄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손님들이 찾아오면 상을 내온다. 흔히 상다리가 휘어진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차린 상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 많은 음식이 모두 고성주씨의 손안에서 만들어진다.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고 굿을 하면서 들리는 신탁에도 귀를 기울여야한다. 그런 굿판을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굿판을 만나기 때문이다.

 

 

베풀어야 사는 남자

 

고성주씨는 늘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며 산다. 지역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선뜻 먹을 것을 내준다. 마을에서는 그런 고성주씨가 있어 좋다고 한다. 이웃에게 늘 베풀기를 좋아하는 고성주씨는 마을에서 곡 필요한 사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고성주씨가 베푸는 것은 자신을 믿고 따라는 수양부리 때문이다. 자신이 많이 나누고 덕을 베풀어야 수양부리들이 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고성주씨의 단골들은 모두 대물린 신도들이다. 어머니가 다니던 곳을 딸이나 며느리가 이어 다닌다. 하기에 이 집 신도들은 모두 가족들이 찾아온다.

 

그렇게 벌써 44년이 지났다. 8시 경에 마당에서 베풀어지는 터대감굿은 안택굿의 정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당으로 나와 흥겹게 춤을 춘다. 몸주대신을 놀린다고 하는데 터대감굿에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저 흥이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즐기면 되는 것이다.

 

10시가 넘어 끝난 고성주씨의 봄 맞이굿. 사람들은 상에 진설되어있던 과일이면 떡 등을 한보따리씩 싸갖고 돌아간다. 성 위에 차려진 제물을 모두가 나누어야 함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고성주씨의 맞이굿이 열린축제라는 것은 이렇게 나누는 즐거움에서 알 수 있다.

 

작품 속에 봄 향기가 물씬 피어오르다

 

지난 21일부터 수원시 수채화협회가 주관하는 ‘수원수채화 협회전’이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26일 오후 찾아간 미술전시관. 봄을 맞이하여 전시실에는 사람들이 직품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아마도 이곳에서 미리 찾아 온 봄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듯하다. 벽에는 수원수채화협회 회원들의 작품이 빼곡하니 들어차 있다.

 

올해 수원수채화협회 회원전은 인천수채화협회 초청전을 함께 열고 있다. 수원 작가들만 아니라 인천의 작가들까지 함께 참여한 것이다. 그만큼 많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간 것이다. 아마도 그 많은 수채화 안에서 봄을 미리 만나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수채화’란 물에 녹여 쓰는 그림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수채화란 투명한 그림물감을 사용해 그린 그림을 말하지만, 보통 반투명 또는 불투명 그림물감을 써서 그린 그림이나 연필 담채, 펜 담채, 동양화의 수묵화나 담채화까지 모두 포함하여 말하기도 한다. 수채화는 15세기에 독일의 뒤러에 의해서 비롯되어 18세기 이후 영국에서 독립된 회화 분야로 이뤄졌다.

 

 

예술과 문화는 미래산업의 중요한 자원

 

전시실에서 만난 수원수채화협회 천원기 회장은 “예술과 문화는 미래산업의 중요한 자원”이라면서 “각박한 일상에서 간접 체험을 통해 감동을 채워주는 삶의 질적 향상을 이끌어가는 필수조건”이라고 한다. 천 회장은 ‘한폭의 수채화 같은’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채색을 물에 풀어 그린 그림인 수채화는 생명의 울림과도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 제11회 째를 맞고 있는 수원수채화협회 회원 전에는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수원수채화협회 회원 35명을 비롯하여, 인천 수채화협회 회원 31명 등 모두 66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것이다. 수원미술전시관 1층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작가들의 작품에서 봄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그동안 수원수채회협회는 2008년 3월 11일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창립전을 연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전시회를 열었다. 그 동안 전시공간으로도 수원미술관을 비롯하여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전시실, 경기도 교육복지 종합센터, 인천 학교교육회관 등과 중국 제남시 군중예술관까지, 수원을 벗어나 다양한 전시를 함으로써 수원수채화협회 회원들의 실력을 국내외에 자랑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전시실 가득한 봄꽃 향기에 취하다

 

봄이 되었다고 하나 아직 진정한 봄을 느끼기에는 이르다. 남녘에는 꽃이 만개해 벌써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휴일 오후 날씨인데도 바람이 옷깃 안으로 파고든다. 봄을 미리 느끼기에 좋은 장소를 찾다가 선택한 것이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수채화협회 회원전이다.

 

전시실 벽면 가득 걸려있는 많은 작품 중에는 꽃 그림이 유난히 많다. 그 작품 안에 많은 꽃들로 인해 미리 찾아온 봄을 느낀다. 그 아름다운 꽃들만으로도 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는 계절에 만난 꽃들이기에 작품 안에서 봄 향기가 나는 듯 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슴을 열고 겨우내 다니지 못했던 길을 따라 걷고 싶다. 그 안에서 봄의 소식을 듣고 봄의 향기를 마음껏 맡고 싶다. 살아가면서 가장 좋은 계절이 봄이라고 누차 강조하는 나로서는 수원수채화협회 회원들의 작품전에서 봄의 기운을 받는다.

 

“캔버스는 나의 몸이며 나의 작품과 동일하다”

 

전시실에 걸린 그림들이 상상을 초월한다. 난이하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도대체 작가의 작품성향이 감이 오질 않는다. 24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소재한 대안공간 눈을 들렸다. 그 쪽에 일이 있어 발길을 옮기다가 우연히 찾아간 전시실에는 작가가 작품을 벽에 게시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저 웃기만 한다. 그동안 여기저기 수원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면서 꽤 많은 작품을 보았다. 나름대로 그림을 보는 눈도 조금 생겼다. 그런데 대안공간 눈 제2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이 작품은 그저 경악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말을 잘 할 줄 몰라서요”

 

 

작품의 제목을 한 번 들여다본다. 잘 먹었습니다, 불면증, 부유하는 덩어리, 구토, 허물, 시원한 피 등 제목부터가 무엇인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나마 작가를 만날 수 있어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눈 것이 큰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마음먹은 것처럼 녹녹치가 않다. 웃기만 하는 작가는 상당히 앳돼 보이지만 올 2월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부 회화전공을 수료했다.

 

개인전은 이번 박햇님의 <;(hole&horror)>이 처음이다. 하지만 20142월 단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그동안 수차례의 단체전을 거쳤다. 박햇님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동양화라면 어떻게라도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겠지만, 서양화는 더 어려운 듯하다. 물론 식견이 짧기 때문이다.

 

 

캔버스는 나의 몸이라는 박햇님 작가

 

캔버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나의 내부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과정들로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으나 개인적이지만은 않다. 그들은 나의 자화상이자 인간의 표상이다작가노트에서 박햇님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캔버스가 스스로의 몸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어찌보면 역설적일 수도 있다.

 

박햇님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제가 살면서 받아온 억압과 사람들의 편견, 이중적 잣대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을 느꼈고 저는 언젠가부터 잔혹한 것들에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찢겨지고 부서진 육체는 마치 저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력을 강하게 느끼면서 매혹적으로 다가와 이러한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캔버스를 몸이라고 생각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와 작품이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또다시 파괴와 재생이 반복이 반복되는 것이니까요”

 

작가는 이런 작품과정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반복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재생에서 파괴하고, 파괴에서 재생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한 마디로 으스스하다라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그럴 정도로 작품이 파격적이다. 그 작품 안에 작가가 알리고자 하는 사고가 있을 텐데 감을 잡을 수가 없다.

 

 

46일까지 대안공간 눈 제2전시실서 만날 수 있어

 

46일까지 대안공간 눈 제2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박햇님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은, 25일 오후 전시실에서 작가와의 만남시간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 시간에 찾아가면 작가의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시준비로 바쁜 작가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돌아왔기 때문에, 박햇님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면 다시 한 번 발길을 옮겨야 할 듯하다.

 

작가가 캔버스에 구멍을 뚫은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의 몸과 같이 숨구멍이 될 수도 있고, 배설이 될 수도 있으며, 혹은 공허함을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차가운 피라는 작업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이들을 생각하고 스케치를 했었는데 작년에 마무리를 했던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 또한 알게 모르게 받는 억압에 대한 분노를 옮겼던 것 같다는 설명이다.

 

박햇님 작가의 작업 소재와 이미지들에 대해서는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공포의 권력>에서 이야기하는 '아브젝시옹'을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할 수도 있다고 작가는 말해준다. 미처 자세히 물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 갖고 돌아선 전시공간. 도대체 어떻게 이 작품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궁금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임 아트 갤러리 상설전시장으로 변신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131-2에 소재한 작은 갤러리가 있다. ‘임 아트 갤러리’는 10평 남짓한 소규모 갤러리이다. 가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들어가 차 한 잔 마시고는 하는데, 지난 주 휴일에 지나던 길에 보니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동안 보아왔던 갤러리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갤러리 안에는 벽면을 그림과 도자기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갤러리라고 하기보다는 마음 편하게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 좋을 듯한 분위기이다. 벽면에는 임 아트갤러리 임하영 관장의 부군이 빚은 도자기들과, 수원에 거주하는 유명 작가들의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이렇게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해, 임 관장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보았다.

 

“왜, 이렇게 전시공간이 바뀌었어요?”

“상설전시를 하려고요”

“초대전을 하다가 상설전시로 바꾼 이유가 있어요?”

“요즈음 갤러리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상설전시를 하면서 작품 판매도 해보려구요”

 

힘든 갤러리 운영, 대안은 없는 것일까?

 

많은 갤러리들이 운영란에 부딪치고 있다고 한다. 작품을 전시해도 예전처럼 판매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근 시장 거리 내에 자리한 노천 갤러리도 작품판매전을 열었지만 지난번의 절반도 판매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획전으로 마련했지만 판매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갤러리 운영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임 아트 갤러리 안에 전시한 도자 작품들은 모두 가격표를 붙이고 있다. 반대편 벽에 걸린 유명화가들이 작품도 가격을 물으니 그동안 판매를 하던 가격보다 저렴하다. 작가들은 작품을 판매해야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서울의 유명 갤러리와는 다르게 수원의 소규모 갤러리들은 갤러리 대관료와 작품판매로 운영을 하고 있다.

 

그런 갤러리들이 요즈음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전문 큐레이터를 해고해야 하는 사태까지 왔다고 한다. 갤러리 운영만 갖고 큐레이터를 두고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즈음 우리 경제가 바닥을 쳐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갤러리 역시 다를 바가 없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최선을 방법이다.

 

“먹고 살기가 빠듯한데 누가 작품을 사겠어요?“

그림을 그리는 작가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살기 위해서는 작품활동만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장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장사를 하기 때문에 작품을 이어갈 수 있다면서, 앞으로 사설 갤러리들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구책 마련해

 

“주말이 되면 도자수업 등도 운영해 보려구요”

“작품은 판매가 되겠어요?”

“상설전시를 하는 것이 알려지면 구매자들이 찾아올 것 같아요”

 

소규모 갤러리는 운영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작품구경을 해도 매입을 하지 않는다고 갤러리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한다. 거기다가 미술학원 등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후배 작가 한 사람은 지난해 학원 운영이 어려워 제주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임 아트 갤러리 임하영 관장은 존경하는 지인의 딸이다. 몇 번 남편과 함께 술자리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지인의 딸이라고 하기보다는 조카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작업도 할 겸 작은 갤러리를 열었지만, 운영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를 생각하지만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게 방법이 있겠는가?

 

그저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고 작은 작품이라도 판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작가가 작품에 전념하지 못하고 운영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 이보다 슬픈 일이 있겠는가? 부디 자구책을 강구해 밝은 얼굴로 만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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