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동쪽 해안에 있는 간절곶. 곶이란 내륙이 바다 쪽으로 돌출된 부분을 말한다. 간절곶이 유명한 것은 새천년을 맞는 200011일 동북아 대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해가 뜬 시간은 오전 73117초였다.

 

부산 광안리를 떠나 해운대를 거쳐 기장을 지나고, 31번 국도를 이용해 도착한 간절곶. 시간은 이미 점심을 지나고 있었다. 정자를 찾아 떠난 길에 정자는 찾지 못하고 대신 간절곶의 등대가 반기는 듯하다. 간절곶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바로 등대다. 등대야 어느 곳이나 있겠지만 그래도 저 등대 자리에서 새천년의 해를 제일 먼저 보았다니,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소망우체통에 편지를 쓰다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두기를 좋아하는 우리네로서는 아마 그만한 의미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등대 앞 길 건너 바다 쪽에는 커다란 우체통이 하나 서 있다. 간절곶 소망우체통이란다. 높이가 5m에 무게가 7톤이나 되는 거대한 것이다.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에 엽서가 준비되어 있어, 그 자리에서 엽서를 써서 우체통 안에 넣으면 매일 오후 1시에 걷어간단다.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 휴일에는 거두지를 않지만. 우체통 안을 들여다보니 한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고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다. 참 좋을 때다. 부럽다. 우리는 자랄 때 저렇게 해보지를 못했으니 더욱 부럽다.

 

바닷가 쪽으로는 소망을 담은 돌무지가 몇 개 서 있고, 옆으로는 조각상들이 보인다. 바다를 향해 팔을 힘차게 내뻗은 남정네며, 새천년의 비상이라고 음각한 비도 보인다. 그 옆 한편에는 남녀가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느라 부산하다. 그런데 그 앞에 두 딸을 데리고 서 있는 어머니의 상이 있다.

 

 

설명을 보니 박제상의 처란다. 예전 글을 쓸 때 자주 이름을 올리던 박제상의 처라니. 그럼 여기서 치술령이 얼마나 떨어져 있다는 말인가. 신라의 재상인 박제상은 충신이었다. 신라 눌지왕(재위 417~458)의 두 동생은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갔는데 박제상이 먼저 고구려에 가서 눌지왕의 동생인 복호를 구해냈다.

 

그 뒤 왜국으로 간 박제상은 미사흔도 구출해 내어 신라로 보냈지만, 정작 자신은 탈출을 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안 왜국의 왕은 박제상에게 신하가 될 것을 강요했지만 박제상은 끝내 거절을 하여 불에 태워 죽임을 당했다. 왜국으로 떠난 후 박제상의 처는 두 딸을 데리고 날마다 치술령 위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되고 말았단다. 그 뒤 박제상의 처는 치술령의 신모(神母)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치술령의 산신이 되었다는 설화다.

 

 

호랑이 꼬리 호미곶에 도착하다

 

간절곶을 돌아보는 사이에 날이 심상치가 않다.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것만 같은데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어찌하랴 만행을 떠난 길이니 여정을 재촉하는 수밖에. 절집은 이미 세 곳을 다녔으니, 정자 하나라도 찾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포항으로 올라와 처음 만난 곳이 바로 호랑이 꼬리라는 호미곶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호미곶은 호랑이의 꼬리라 하여, 한반도의 정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선생은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이며, 호미곶(虎尾串)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의 명당이라 하였다. 영일만의 끝부분(포항에서 38)인 호미곶 앞바다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해역으로 각종 물고기의 회유지이다.

 

간절곶을 떠나면서 빗방울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호미곶에 도착하니 제법 빗방울이 거세졌다. 바람까지 불어 사진을 촬영하기도 힘들다. 포항시 대보면 대보리 호미곶도 2004년에 가장 먼저 해가 뜬 곳으로 기록이 되고 있다. 호미곶 광장에는 기념조형물(상생의 손), 성화대, 영원의 불씨함, 채화기 (천년의 눈동자), 캐릭터상품특판장, 공연장, 주차장, 관리소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편에는 200411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 것을 기념하기 위해 2만 명분의 떡국을 끓이려고 준비한 거대한 가마솥이 있다.

 

 

이왕 왔으니 사진 몇 장이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만행에 동행을 한 스님은 비가 오니 아예 차에서 내릴 생각도 안한다. 혼자 우산 하나를 받쳐 들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대지만,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사진을 찍기가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겨우 사진 몇 장을 담아낸다. 호랑이 꼬리라는 호미곶. 참으로 오랜만에 들려본 곳이다. 그동안 많이도 변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고 서로 내세우는 간절곶과 호미곶. 오늘 여정은 아무래도 이곳에서 접어야만 할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정해진 일정을 취소할 때마다 늘 마음만 바쁘다. 정작 바닷가에 정자는 아직 한 곳도 찾아보지를 못했는데.

 

우범지역이 가족들이 찾아와 즐기는 곳으로 탈바꿈

 

쪽지길’, 참 정감어린 길이다. 남문로데오거리에 쪽지길이 있다는 소식에 2일 아침 찾아갔다. 쪽지길이란 명칭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문로데오거리를 그렇게 돌아다녔지만 쪽지길이란 길을 못 본 듯했다. 수원화성 팔달문에서 작은 골목길을 지나 팔달구 행궁로 63에 소재한 수원교동우체국으로 나가는 좁고 짧은 골목길이 바로 쪽지길아다,

 

이 골목이 원래 쪽지길은 아니었어요. 전에는 이곳이 어둡고 좁아 골목주변에 젊은 청소년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함부로 노상방뇨를 하는 등 우범지역이었다고 해요. 그런 골목을 수원시에서 남문로데오거리 정비사업을 하면서 이곳을 바꾼 것이죠. 골목 끝에 교동우체국이 있어 이곳에서 쪽지(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해서 쪽지길이라고 명칭을 정했데요

 

 

남문로데오상인회 강희수 수석부회장이 골목을 설명한다. 쪽지길 양편으로 들어서 있는 영업집이라야 교동우체국을 비롯해 건너편에 전복카페,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곳인 쪽지길 보드카페, 데일리 의상실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쪽지길 갤러리, 그리고 우계라는 전집 정도이다.

 

골목은 다시 작은 골목으로 갈라져 있으며 골목에는 남문로데오상인회 회원들이 운영하던 꽃마차 매대가 놓여있다. 이 꽃마차 매대는 원래 주말에 남문로데오거리에 세워놓고 장사를 하던 것이었지만 누군가 민원을 제기해 로데오거리에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 골목에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고 전시적으로 운영한 탓이다.

 

 

정감어린 길 쪽지길

 

쪽지길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우체통이 보인다.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쪽지길 우체통은 일 년 후에 실제로 편지통에 넣은 엽서가 집으로 배달된다고 칠판에 적혀있다. 사랑의 자물통과 쪽지는 바로 옆에 자리한 보드카페를 이용하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것 하나만으로도 정감어린 골목이다.

 

3층으로 조성한 보드카페는 건물 1층은 가족과 함께 보드놀이를 할 수 있는 카페, 2층은 청소년들이 마음껏 영화를 보고 즐길 수 있는 스마일 멀티방, 그 위는 어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1층 안으로 들어서니 어린아이부터 학생, 어른들까지 테이블에 마련된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면 차도 마시고 게임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각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골라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연인끼리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게임장소이다. 보드게임을 차를 마시면 즐길 수 있는 곳, 이 보드카페가 문을 열고 난 뒤 이 쪽지길을 찾아오는 가족들이 많아져 골목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카페 주인이 설명한다.

 

 

앞으로 계속 변화할 로데오거리 쪽지길

 

쪽지길 입구에 서 있는 교동우체국도 색다르다. 1층은 우체국 엽무를 보는 곳이지만 3층은 청소년자유공간인 청개구리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이 쪽지길은 아직도 변화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골목을 더 밝히는 조명작업을 하고나면 이 좁고 짧은 골목이 남문로데오거리의 새로운 명물이 될 듯하다.

 

아마 올해 안에 쪽지길 조명작업을 마칠 거예요. 그러면 쪽지길이 더 많이 달라지고 더 많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찾아올 듯합니다. 이제 쪽지길은 곧 우리 남문로데오거리의 자랑이 될 듯하네요. 그리고 건너편 지하에 50평의 빈 공실이 있는데 수원시에서 그곳을 청년들이 모여 소리도 배우고 우리음악도 연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올해가 가기 전 이 골목이 완전 탈바꿈 할 것 같아요

 

 

마침 점심을 먹어야할 시간이라 시원한 냉면을 한 그릇 먹겠다고 전집인 우계를 찾아갔다; 넓지 않은 실내에 음식을 시켜놓고 젊은 여성 두 명이 마주하고 있다. 한 낮의 시간인데도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남문로데오거리 쪽지길은 예전 남문로데오거리에 젊음이 넘쳐날 때를 그리듯 다시 젊은이들과 가족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쪽지길이란 생각이다.

 

25, 영남길 5구간 옛 수여선이 지나던 길 따라 도보탐방

 

경기도가 오는 825일 열릴 예정인 경기옛길 영남길 같이걷기 참가 신청자 15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경기옛길 같이 걷기는 삼남, 의주, 영남 3길의 특징에 따라 전통문화와 인문예술 체험이 결합된 문화행사다. 영남길은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조선시대 최단 간선도로로 일본과 조선의 사절단이 다녔던 길이며, 유라시아를 잇는 동아시아 무역로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길이다.

 

도는 올해 4과천무동답교놀이공연과 함께 삼남길 같이 걷기를 진행했었고, 6월에는 대중국 교역로였던 고양, 파주의 역사문화자원을 답사하는 의주길 같이 걷기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행사는 영남길의 숨은 그림 찾기를 주제로, 기흥역에서 용인시 처인구 남곡리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봉두산 용인 중앙시장까지 약 10km의 코스를 함께 걷기로 진행한다.

 

봉두산은 해발 200m의 낮은 산이지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많아 용인의 대표적인 산악자전거 코스다. 봉두산을 나와 용인중앙시장으로 가는 길은 1970년대 폐선된 수여선이 지났던 길이다.

도심 개발로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옛 추억을 생각하며 걸어볼 수 있는 기회이다. 행사 당일은 용인중앙시장 장날이어서 수도권 대표 5일장의 활기찬 분위기도 느껴볼 수 있다.

 

협궤철도(狹軌鐵道)’의 협궤란 선로 폭이 표준궤보다 좁은 선로를 말하는 것이다. 이 협궤철도 위를 달리는 좁은 기차가 바로 유명한 협궤열차이다. 협궤열차의 정확한 수치는 1067mm이다. 우리나라에서 쓰인 협궤는 762mm이며 표준궤는 1435mm, 광궤는 1524mm1674mm이다.

협궤선로는 수인선과 수여선에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선이 되었다. 해방 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증기 기관차가 객차 6량과 홤루차 7량을 달고 수원을 출발해 수인선 15개역을 하루 평균 7차례나 운행했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버스 등으로 대처가 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979년부터 구간씩 운행을 중단했다. 수인선은 19951231일 마지막으로 운행을 하고 60여년의 세월동안 서민들의 발로서의 기능을 마쳤다.

 

기차 객실의 폭이 고작 2m 남짓으로 좁다보니 열차가 심하게 움직여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서로 맞닿은 채로 앉아있던 사람들이, 서로 무릎을 부딪치며 멋쩍어 하다가 금방 말문을 트이고는 했다는 협궤열차. 승객을 가득 싣고 안산의 원곡고개와 같은 높은 지역을 오를 때면 열차가 제 힘으로 고개를 넘을 수가 없어, 승객들이 내려서 밀어야 했다고 전하는 이야기는 협궤열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현선 경기도 문화유산과장은 삼남길, 의주길 같이걷기 때와 달리, 이번 행사는 도보 구간이 가장 길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8월의 마지막 주말, 여름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옛길 같이걷기는 공식 홈페이지(http://ggoldroad.ggcf.or.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도보에 관심 있는 도민들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참가비는 무료이다.

한편 도와 문화재단은 조선시대 실학자 신경준 선생이 저술한 도로고6대로를 바탕으로 삼남·의주·영남길을 조성해 여러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2018년 한 해 동안 총 20개의 탐방이 진행될 예정이며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권선구 오목천교 일대 벚꽃 길 환상 그 자체

 

수원에서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난 망설임 없이 권선구 오목천교에서 황구지천을 따라 걷는 길이라고 대답한다. 이 길 외에도 많은 벚꽃 길들이 있지만 이 길은 딴 곳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꽃길의 길이가 상당하다. 황구지천을 따라 이어지는 벚꽃의 잔치는 끝이 나질 않는다.

 

오목천교서 시작하는 이 길은 벚꽃 숲을 이르고 있다. 오목천교 위에 올라서 바라보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양편으로 늘어선 벚꽃도 아름답지만 황구지천 둑까지 늘어선 벚꽃가지들이 이곳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벚꽃의 굵기도 남다르다. 경기도청 뒤편과 이곳의 벚꽃을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목천교 벚꽃은 벚나무 안으로 들어가면 꽃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늘어진 가지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것이 일품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 이 계절이면 잊지 않고 찾아와 사진을 남긴다. 굳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이곳의 벚꽃길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벚꽃 길을 걷다

 

천천히 벚꽃이 숲을 이룬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세상 시름을 다 잊을 듯하다. 이 계절에 꽃구경을 한다고 어디로 갈 것인가? 난 이 오목천교서부터 시작하는 이 길 하나로 족하다. 그만큼 봄의 꽃 잔치를 제대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을 찾아오면 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사진 한두 장을 건질 수 있다.

 

이길 좀 촬영하려고 하는데 차 잠깐만 빼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나 걸리는데요?”

서너 장만 찍으면 됩니다

 

젊은 남녀가 찾아와 벚꽃길이 시작되는 앞에 차를 세운다. 차 세울만한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도 곱다고 했던가? 바로 차를 빼준다. 덕분에 수월하게 사진 몇 장 찍었다. 남녀가 함께 벚꽃 길을 걸어간다. 바로 이런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이 길에서는 언제나 이런 광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너편 노랑개나리와 환상적인 분위기 연출해

 

내가 오목천교서부터 시작하는 이 벚꽃 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황구지천 건너편에 노랗게 핀 개나리 때문이다. 벚꽃이 만개할 때 개나리도 동시에 만개한다. 흰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몇 사람이 개나리꽃길을 지나면서 건너편 벚꽃을 보고 손짓한다. 곧 오목천교를 건너 이편으로 올 것이다.

 

예전에는 이 벚꽃 길 중간에 수인선이 지났다. 수인선 철교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 철교위에 올라가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했다. 전철공사로 철교를 없앨 때 그렇게 서운했다. 멎진 배경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도 벚꽃은 예전의 그 자태를 그대로 간작하고 있다.

 

이번 주말쯤이면 이곳에 꽃비가 내릴 듯하다. 주말, 여기저기 많은 공연이 있지만 그보다 이곳을 찾아와 꽃비를 맞아야겠다. 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9일 정오에 찾아간 오목천교 벚꽃 길. 난 그곳에서 떠날 줄 모르고 봄을 마음껏 느끼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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