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홍문 옆 한옥게스트하우스 매홀을 찾아가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명당에 집을 지으면 자손이 번창하고 가세가 늘어난다고 하여 꼼꼼하게 명당을 찾아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아무리 세월이 변했다고 하지만 명당을 선호하는 우리 습속은 변하지 않는다. 명당의 기본 조건은 바로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한다. 즉 뒤로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앞으로는 물이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에도 과연 그런 명당자리가 있을까? 수원에서 그런 명당의 조건을 갖고 있는 곳이 바로 수원화성 성 안쪽이다. 현재 행궁동 일대가 그런 명당자리에 속한다. 뒤로는 팔달산을 두르고 앞으로는 수원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명당자리에 수원시 지정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고 하여 24일 오후 찾아가보았다.

 

밖에서 얼핏 보기에도 명당자리에 들어섰다. 그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수많은 고택을 보아온 나로서는 집 근처에만 가도 느낌이 다르다. 바로 명당인가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 기운은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 자리한 한옥게스트하우스 예홀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한옥 객실과 한옥 카페까지 갖춘 게스트하우스

 

매홀은 삼국시대 고구려가 수원을 관할했던 475, 고구려 20대 장수왕(394-491) 시절부터 통일신라 35대 경덕왕(742-765) 16년에 이르기까지 수원의 옛 지명이었다. ‘물골이라는 의미인 매홀(買忽)’이라고 불렀으며, 이후 매홀의 지명을 한문 식으로 바꾼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었다.

 

한옥게스트하우스 매홀은 객실 6실에 1층과 2층 모두 거실과 한편에 2층으로 된 한옥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객실 한 옆으로는 숙박을 하는 손님들이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매홀재)이 마련되어 있다. 그동안 수원시에 소재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돌아보았지만 매홀처럼 숙박을 하면서 쓰임새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집을 자랑하고 싶다.

 

객실은 모두 화장실과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방안에 마련되어 있으며, 긴 복도와 계단을 통해 1층과 2층 객실이 연결되어 있어 일행이 많을 경우 매홀 전체를 전세를 낸다고 해도 사용이 편리하다. 모든 객실은 와이파이가 작동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업무를 보기에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화성팔경 중 삼경을 만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수원은 아름다운 곳을 정해 수원팔경이라 이름 붙였다. 그 하나는 북지상련(北池賞蓮)이요, 다음은 용지대월(龍池待月)이다. 그리고 팔달청람(八達晴嵐)과 화산두견(花山杜鵑), 광교적설(光敎積雪), 서호낙조(西湖落照)를 꼽았으며, 화홍관창(華虹觀漲)과 남제장류(南堤長柳)를 더해 수원팔경이라 했다.

 

한옥게스트하우스 매홀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수원팔경 중 삼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방화수류정 앞 용연에서 떠오르는 달을 맞이할 수 있는 용지대월(龍池待月), 화홍문 7개의 수문에서 물이 흐르며 낙차를 만들어 물보라가 이는 화홍관창(華虹觀漲), 그리고 남제장류(南堤長柳)를 만날 수 있다. 남제(南提)는 화홍문에서 화산능까지 이르는 수원천의 긴 제방양편에 늘어서 있는 수양버들을 일러 長柳(장류)라고 불렀다.

 

한옥게스트하우스 매홀이 더 장관인 것은 2층 객실에 올라 창을 열면 바로 눈앞에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의 멋 또한 장관이다. 어느 게스트하우스가 이 멋진 광경을 따라갈 것인가? 행궁동 일대에 마땅한 객실이 없어 늘 수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엉뚱한 곳에서 잠을 재우곤 했는데 이젠 그런 걱정 하나는 덜게 생겼다.

 

 

최고의 산책 코스를 갖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매홀

 

수원시 지정 한옥 게스트하우스 매홀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바로 최고의 신책코스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매홀을 나와 수원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을 돌아본 후 방화수류정과 각건대를 둘러보고, 동암문과 장용영 군사들이 훈련을 하던 연무대(동장대)에 들리면 뒤편 아름다운 담장과 개인화가인 불랑기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동북공심돈과 창룡문을 지나 포를 쏘던 포루와 돌출된 방어기지인 치, 그리고 적의 침입을 미리 알아볼 수 있는 포루와 동남각루, 남수문을 만날 수 있다. 남수문 앞에는 정조대왕이 조성한 성밖시장인 220여년이 지난 글로벌명품 수원남문시장이 자리하고 있어 이 시장을 돌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가족이나 단체가 왔다고 하면 수원남문시장은 가히 최고의 산책로이다. 지동 순대타운을 비롯해 팔달문시장 통닭거리, 그리고 남문고객센터 2층에서 금박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남문시장에서 즐겼다면 오후 4시가 지나면 문을 여는 청년상인들이 운영하는 푸드트레일러와 영동시장 2층에 자리한 청년몰 또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매홀로 돌아가는 길은 수원천 산책로를 따라 돌아갈 수 있다. 매홀의 이용료는 평일에는 8만원, 주말에는 10만원 정도이며, 숙박을 한 손님들이 요구할 때는 한옥카페에서 조식을 호텔식 브런치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최고의 명당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수원시 지정 한옥 게스트하우스 매홀. 수원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가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계절에 떠난 무작정 여행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16, 무작정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갈 곳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는 여행, 얼마 만에 맛보는 자유로움인가? 1시간여를 달려 찾아간 곳은 여주시였다. 여주시 여주읍 명성로 71(능현리)에 소재한 명성황후 생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옆에는 서울서 옮겨온 감고당이 있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비인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서 8세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의 장인인 민유중(閔維重)의 묘막으로 숙종 13년인 1687년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복원돼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인 1851년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인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복원이 되었다고 하지만 집안을 돌아보면 여염집치고는 잘 정돈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양편으로 행랑채가 늘어서 있다. 여흥민씨는 우리나라 역사 상 8명의 왕비를 낸 유서 깊은 문중이다. 그런 여흥민씨의 집터는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전형적인 중부지방 민가로 지어진 집

 

행랑체보다 높게 터를 잡고 있는 중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사랑채가 자리하고 안으로 안채가 자리한다. 사랑채는 남자들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높게 앉은 사랑채 밖으로는 집 앞에 널려진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지는 부분에 작은 협문을 내어 별당채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별당채는 일자형 초가로 방과 대청이 있는데 이 별당채가 바로 명성황후가 8세까지 자랐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파란만장한 한국근대의 격동기 속에서 갑오동학혁명 이후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다가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의 사주를 받은 일본 낭인에 의해 경복궁에서 시해되었다. 현재는 명성황후 생가 앞에 기념관을 짓고 일본에서 생가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명상황후 생가 옆에는 민가마을을 조성해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마련했다. 음식이나 기념품, 전통혼래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는 이곳은 늘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명성황후 생가 정비를 하면서 서울에 있던 감고당을 옮겨오고 민가마을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주변에는 연못과 공터를 마련하고 앞으로는 넓은 주차공간을 마련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두 명의 황후가 살았던 집 감고당

 

현재 여주 명성황후 생가 곁에 있는 감고당은 이 자리에 있던 가옥이 아니다. 원래 감고당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 서편에 있었다. 그 후 1966년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졌다가, 쌍문고등학교 신축계획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마침 여주군은 명성황후 생가의 성역화 작업 당시였기에 2006년 현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수차례 이전을 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변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감고당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건축구조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가옥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 감고당의 편액은 1761년 영조대왕이 효성이 지극한 인현황후를 기려 친필로 써서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감고당은 조선조에 두 명의 황후가 기거하던 집으로 유명하다. 숙종임금의 계비인 인현황후(1667~1701)가 장희빈과의 갈등으로 물러나면서, 복위가 될 때까지 5년간을 이곳 감고당에서 기거하였다. 또한 명성황후가 8세에 서울로 올라간 뒤 왕비로 책봉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이렇듯 감고당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가옥으로 유명하다.

 

 

감고당 옆에 서 있는 소원바위

 

감고당과 옆 민가마을 뒤편에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사람들은 소원바위라고 부른다.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은 스승인 오희상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오씨와 사별한 후 재혼을 한 부인이 바로 나중에 한창부부인이 된 한산 이씨다. 이들 부부사이에선 12녀를 두었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걱정하던 부부는 집 인근에 소재한 바위를 찾아가 정성으로 자녀를 점지해 주기를 빌었다.

 

정성이 효험을 보았는지 민치록이 53세 되던 해에 딸을 얻었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명성황후가 되었다. 명성황후가 태어나던 날인 18511117일 새벽, 붉은 빛이 비치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했다고 전하는데 어린 여자아이가 나중에 큰일을 할 것을 예견하는 전조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소원바위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명성황후 생가와 소원바위, 김고당을 돌아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운하다. 한국민속촌을 찾아가면 99칸의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있다. 바로 수원 팔달산 밑 남창동에 자리하고 있던 집이다. ‘99칸 집이라고 부르는 이 가옥은 철종 12년인 1867년에 유학자인 이병진 선생이 건축했다고 한다. 수원 화성 내 팔달산 아래 지은 이집은 (현 수원시 남창동 95번지 일대) 1973년에 원형 그대로 민속촌으로 옮겨 복원시켜 놓은 것이다.

 

그동안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전국에 산재한 고택 200여 채를 돌아보았다. 그 많은 집을 보면서 늘 마음 한 편에 아쉬움이 바로 이 거대한 고택이 옛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돌아보기 위해 수원화성 안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가을에 떠난 여행, 여주시 명성황후 생가를 돌아보면서 다시 생각나게 만든 것이 바로 남창동 99칸의 양반가이다.

 

현재 충청남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된 명당

 

명당이란 풍수지리설에서 이상적 환경으로서의 길지(吉地)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명당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집터가 명당이기 때문에 그 집안의 자손들이 출세를 했다거나 조상의 묘를 명당에 써 후손들이 고거에 급제하고 입신양명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집안에 재물이 많이 쌓였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고로 살아서는 좋은 환경을 갖춘 집에서 살기를 원하고, 죽어서는 땅의 기운을 얻어 영원히 살기를 원했다. 이런 사람들의 사고가 논리화된 것이 바로 풍수지리설이다. 풍수는 그만큼 자신은 물론 후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명당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런 명당에 대한 집착은 비단 나라의 큰 인물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명당을 선호하고 자신의 집을 명당에 세우기를 원했다.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한다리길 39(유계리)에 소재한 충청남도 기념물 제68호인 정순왕후 생가는 조선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17451805)가 출생한 곳으로 왕비가 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정순왕후는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가 죽자 영조 35(1759) 왕비에 책봉되었다. 집은 조선 효종 때 승지와 예조참의 등을 지낸 학주 김홍욱이 효종과 친분이 있었는데, 그가 노부를 모시고 있음을 알고 아버지인 김적에게 왕이 내린 집으로 효종 시절인 16491659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건물은 자형 평면을 갖춘 집으로, 앞면 5·옆면 2칸 규모 건물 좌우에 각각 3칸씩 덧달아 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남쪽에는 앞면 5·옆면 1칸의 별채를 배치하였는데 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가옥의 후원과 안채를 둘러싼 담장은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정순왕후 생가를 찾아갔던 때는 시간이 괘 흘렀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초였으니 말이다.

 

 

서산시 김기흥 전 민선시장 소유

 

정순왕후가 태어났다는 서산 정순왕후 생가. 잡 앞에는 수령 400여년이 지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정순왕후가 어린 시절 꿈을 키워주던 나무라도 한다. 현재 보호스로 지정되어 있는 느티나무를 마주하고 솟을 대문이 서 있다. 마침 앞마당에는 정순왕후의 16대손인 민선 1, 2기 서산시장을 지냈던 김기흥 전 시장이 마당에 늘어놓은 화분을 손질하고 있다.

 

이 앞쪽이 다 이집 땅이었어요. 지금은 다 딴 용도로 사용하고 이 터만 남았지만요

꽃을 손질하고 있던 김기흥 전 시장은 자신이 이 집에서 16대를 살아온 후손이라고 말하면서 집은을 돌아보아도 좋다고 승낙을 한다. 솟을 대문을 마주하고 사랑채가 서 있고 측면에 난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안채를 만날 수 있다.

 

 

자 집으로 꾸며진 안채와 사랑채가 잇대어 잇어 전체적은 규모는 자 형의 가옥이다. 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다락방이 있고 그 밑에 아궁이가 있다. 부엌을 지나 안방이 자리하고 있고 세 컨 대청이 중앙에 있다. 집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상당히 아늑하고 운치가 있는 집이다. 이곳이 명당터라는 것은 후손들이 입신양명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고 이곳을 아는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정순왕후의 본관은 경주이다. 정순왕후 조선 영조 21년인 1745 11월 여주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오흥부원군 김한구이고, 어머니는 원주 원씨 원명직의 딸 원풍부부인이다. 김한구의 가문은 효종시대 관찰사를 지낸 김홍욱의 후손으로 충청도 서산에 세거하였다.

 

정순왕후는 정성왕후의 사망 뒤인 영조35년인 1735에 영조의 계비로 간택되었다. 서산에 세거하면서 산림 가문답게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있었던 정순왕후의 친족들은 국혼 후 정순왕후의 오빠인 김귀주를 필두로 정계로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 정치적으로는 노론 벽파였으며 정순왕후의 오빠 김귀주는 남당을 이루어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의 북당과 대립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서진, 한지민 등이 출연한 MBC 77부작 대하드라마 이산을 보면 정순왕후는 이상 정조와 많은 갈등을 빚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성하고 강한 왕권과 백성의 편안함을 생각하면서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두를 포용했던 현군이다. 그런 이산에서 보이듯 정순왕후는 그저 영조의 계비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정조의 승하후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가 된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할 정도로 여장부다운 기질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정순왕후가 궁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살았다는 서산 정순왕후 생가. 마당 한 가운데 자라고 있는 향나무 한 그루가 그 때이 역사를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듯하다.

 

한국민속촌, 홍보전단지 한 장이 준 감동

 

용인에 소재한 한국민속촌을 찾아가는 것은 그 안에 볼 것이 많기도 하지만 수원 팔달산 밑에 소재했던 남창동의 99칸의 고택 중부지방 양반가 때문이다. 이곳을 찾아갈 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들리는 양반가는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만일 이 고택이 아직도 제자리에 있다고 하면 훌륭한 민속문화재가 될 테고 이 집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 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는 곳이다.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드는 것은 볼 것도 많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즐길거리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민속촌 안에 들어설 때마다 늘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줄타기며 풍물놀이, 널뛰기 등도 볼 수 있지만 정월 대보름 때가 되면 달집테우기와 서원지 쓰기 등 사람들이 이곳에 들려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민속촌에 들어가 입구에서좌측 상가마을과 우측 놀이마을을 지나 좌측 산길로 들어서면 금련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곳 또한 내가 꼭 들리는 곳 중 한 곳이다. 가을이 되면 만추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금련사는 <무봉산 금련사>라고 현판을 단 일주문이 서있다. 금련사는 대전 유성에 있던 절집을 옮겨다 놓은 사찰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한국민속촌은 전국 팔도의 가옥은 물론 장터와 다양한 즐길거리들이 있기 때문에 계절마다 한 번은 꼭 들리는 곳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대보름이기에 한국민속촌을 찾아가야지라는 마음을 먹고 있는데 19일 오후 남문시장 홍보관을 들렸다가 우연히 한국민속촌을 소개하는 홍보전단을 보게 되었다.

 

 

작은 홍보지 하나에 담긴 수많은 내용

 

홍보관 홍보물 거치대에 있는 수많은 홍보전단 중 유별나게 눈에 띠는 작은 전단지. 4개 국어로 제작된 이 작은 전단지가 왜 그렇게 눈길을 끌었을까? 제목만 보고 수원을 소개하는 전단지인 줄 알았다. “우리와 함께 조선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겠소?”라는 문구가 수원시의 행궁이나 수원의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전단지인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국민속촌 홍보전단지를 많이 가져가요. 그만큼 알차게 꾸며진 전단지기 때문인 듯해요. 저희도 많은 전단지 중 한국민속촌 전단지가 가장 눈에 띤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 생각은 모두 같은가 봐요

 

굳이 홍보관 근무자의 설명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홍보물 가운데 눈에 두드러지게 띤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전단지를 펼쳐보니 안에 소개하고 있는 것들만 갖고도 한극민속촌을 힘들이지 않고 돌아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홍보물은 누가 쉽게 접하고 그것을 보는 순간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홍보물, 우리도 더 연구해야

 

물론, 사람마다 홍보물을 대하는 관점이 다르다. 이 홍보물을 보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크지 않은 이 전단 한 장이 주는 효과는 엄청나단 생각이다. 주변 사람들도 눈에 띤다고 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한국민속촌의 롱보전단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수원은 문화관광의 도시이다. 일 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제 곧 천만 명 관광시대를 열 것이다. 그런 수원은 많은 홍보물을 제작하고 있다. 그 홍보물 중에서는 수원을 한 눈에 알리는 전단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장의 전단지가 더 눈길을 끌었나 보다.

 

남문시장 홍보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민속촌의 안내전단지 한 장. 그것을 보면서 한국민속촌을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이 전단지는 성공을 한 셈이다. 크지 않은 전단지 한 장이 홍보물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만든다.

옛날 조상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아궁이에서 불을 때어 따뜻한 불기운이 방바닥 전체의 온도를 높여 주고 굴뚝으로 연기가 빠지게 만들어 놓은 구들이라는 독특한 난방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여기 명품 한옥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남원예촌과 함파우소리체험관에서 아늑하고 따스한 아랫목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남원예촌]
남원예촌은 자연 친화적 소재인 목재, 황토 흙벽, 전통 구들장, 옻칠 등 오롯이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옛 선조들의 지혜를 담아 순수 고건축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명품 한옥입니다. 
 

                   


남원예촌은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한 최고의 문화재 명인들이 옛 선조의 지혜와 가치를 살리고 공정마다 혼을 담아 품격을 더하기 위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시멘트와 스티로폼 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황토, 대나무. 해초 등 오롯이 자연에서 얻은 귀한 재료들로 순수 고건축 방식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구들장(온돌) 은 물론이고, 마무리 작업은 옻칠의 본고장 남원의 세계최고 옻칠 기법을 적용하는 등 기품 넘치는 전통의 멋을 간직한 명품 한옥입니다.

 

 

또한 숙박객들이 아궁이에 직접 장작(땔감) 을 때며 가마솥에 옥수수, 고구마 등을 삶아 먹는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남원예촌에서 특별한 하룻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홈페이지
www.namwonyechon.com / 063-626-8001


 


함파우 소리체험관]
함파우 소리체험관은 남원시 노암동 함파우 유원지에 위치해 있으며 , 좌도 농악의 중심지인 우리 남원에서 전수와 공연 , 자료 보존과 많은 사람에게 우수성을 알리기위해 건립되었고 함파우는 고유의 지명으로 물결이 머무는 고요한 곳
이란 뜻이 있습니다.

또 남원에서 손꼽히는 정남향 명당으로 땅의 기운이 왕성한 곳입니다. 숙박동은 전통구들방식으로 참나무 장작만을 사용하고, 체험관 앞 저수지도 기존의 저수지를 살려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통 한옥에서 참나무 장작난방 숙박이 이루어지며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습니다. 전통 한옥 숙박체험은 사전 신청을 통해 참여 가능합니다.
[남원시 통합예약시스템 바로가기] / 063-620-5748~9(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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