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를 해 놓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보면 소개를 빠트리는 것이 가끔 생긴다. 그 문화재가 딴 것에 비해 뒤떨어져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보면 시기를 놓치는 수가 있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소재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7호인 거창 무릉리 정씨고가가 바로 그런 경유이다.

 

무릉리 정씨고가를 찾아간 것은 오래 전 62일이었으니, 벌써 한참이나 지났다. 정씨 고가를 찾던 날은 초여름 비가 참 후줄근하게 내리던 날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답사를 하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거기다가 바람까지 불어 우산을 가누기도 힘든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빗속에서 만난 무릉리 고가, 사랑채에 반하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한편은 광으로 사용하고, 한편은 방을 드려 예전에는 이곳에 하인들이 사용한 듯하다. 그리고 대문과 같은 높이에 사랑채를 지었는데, 대문 쪽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은기둥을 놓았다. 안채 쪽은 축대를 높이고 그 위에 정자를 올렸는데, 현재는 담벼락을 쌓은 이곳도 예전에는 축대 위에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무릉리 정씨고가의 사랑채의 형태가 남다르다. 이곳 사랑채는 정형초의 호를 따서 산수정이라고 부른다.

 

무릉리 정씨 고가는 조선조 숙종12년인 1686년에 장사랑을 지낸 산수정 정형초가 건립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4년에 중수한 것으로, 건물구성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안사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헐리고, 일부는 변경된 구조로 남아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경사지에 기단을 높게 축조하여, 대지의 안쪽 높은 곳에 안채, 바깥쪽 낮은 곳에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자 형으로 꾸몄는데, 대문 쪽은 두 칸 개방마루를 높게 놓고, 안채 쪽으로는 한 칸의 방과 한 칸의 정자마루로 꾸몄다. 사랑채를 높게 하기 위해서 높은 기둥으로 받쳤으며, 앞에는 돌로 계단을 쌓아올렸다.

사랑채의 대청은 측면과 후면을 판자로 닫아 판문을 내고, 앞쪽으로는 난간을 들렀다. 덤벙주초에 자연스런 나무로 기둥을 마련하였으며, 한쪽은 팔작으로 꾸미고 한편은 맞배로 꾸민 특이한 형태이다.

 

 

남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안채의 꾸밈

 

안채는 축대를 쌓고 그 위를 평지로 돋아 집을 지었다. 계단을 올라 중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비켜 서 안채가 자리를 한다. 무릉리 정씨고가의 안채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는 보기드문 자형 평면의 3량 구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정면 4, 측면 2칸의 자형 평면에 양끝에 협칸을 앞으로 돌출시켜, 자형 평면외부에 마루를 두르고 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안채는 상당히 변형이 온 듯한 상태이다. 우선 대청마루에 문을 달아낸 것도 그렇지만, 문을 모두 현대식으로 고쳐놓았다. 고가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찾아도 기척이 없다. 안채는 그냥 중문채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돌아선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는데, 아직도 찾아야 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경남 거창군 북상면 중산마을에는 지은 지가 150년 정도 되어 보이는 고택 한 채가 있다. 주인인 임종호는 2~3년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현재는 구 가옥 곁에 새로 거처를 마련하고 모친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변 제각 앞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은, 그 집에 살고 계신 분이 자신의 질부라고 하시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신다.

 

이 집은 치목구조나 여러 가지 형태 등으로 보아 조선조 말경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어르신은 120~130년 정도 되었다고 하신다. 솟을대문 안으로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 우측에 광채가 있다. 그리고 사랑채와 나란히 뒤쪽으로 안채가 자리하고 있으며, 돌담으로 집 전체를 둘러놓았다. 집의 형태로 보면 이곳에서 꽤나 잘 살았던 집안이란 생각이다.

 

 

다섯 칸으로 지은 사랑채의 풍취

 

사랑채는 모두 다섯 칸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자연석 주초를 그대로 쓴 집은 기둥을 모두 사각으로 치목을 하였다. 이런 치목의 방법이나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목재들을 보아도, 지방의 목수들이 다듬은 손길이 아니다. 사랑은 바라다보면서 좌측에 아궁이를 두고, 두 칸 마루방을 드렸다. 그리고 안채로 드나들 수 있는 누마루 한 칸과, 온돌방 한 칸을 계속 두고 있다.

 

우측 온돌방 앞으로는 누마루에 난간을 둘러 정자방으로 꾸며 놓았다. 사랑채 뒤편으로 길게 늘어선 광채는 중문채를 겸하고 있는 듯 보인다. 광채 옆으로는 담을 터 바깥으로 출입을 하게 하였는데, 그 문을 통해 제각으로 드나든 듯하다. 광채는 우측 한 칸은 방을 드리고, 가운데는 광채를 그리고 좌측으로는 뒤주를 삼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다시 한 칸의 방을 드린. 네 칸으로 구성이 되어졌다. 아마도 사랑채 쪽의 방은 남자가, 안채 쪽의 방은 여자가 사용한 듯하다. 사랑채 방향의 방이 앞으로 돌출이 되어있어, 남은 공간에는 활주를 대고 지붕을 내어 달았다.

 

안채에도 굴뚝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채와 나란히 뒤편에 조성한 안채 역시 다섯 칸이다. 좌측으로부터 한 칸의 부엌과 안방, 윗방 그리고 대청마루 뒤편에 문을 달아 신주방으로 꾸민 듯하다. 맨 오른쪽의 건넌방은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난간을 두르고 높임마루를 달아냈다. 임종호 가옥의 특징은 대청마루 뒤편에 마련한 신주방이다.

 

 

부엌의 뒤편에도 작은 부엌방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런 구성은 딴 곳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사랑채와 광채, 그리고 안채의 동선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조성한 임종호 가옥. 전체를 이으면 자 모형으로 구성이 되어있는 앞으로는, 안마당을 시원하게 만드는 정원이 있다. 그 정원 한 가운데 흙담으로 꾸민 굴뚝이 서 있다.

 

어르신 저 집의 마당 가운데 굴뚝은 사용하는 것인가요?”

얼마 전까지도 사용을 했지. 지금은 살림을 하지 않으니 쓰지 않지만

그런데 왜 마당 가운데에 굴뚝을 마련했나요?”

낸들 아나 여기저기 연기가 나면 안 좋으니까 그랬나보지.”그럼 안채와 사랑채에도 굴뚝이 모두 저 가운데로 빠지나요?”

처음엔 그렇게 만들었지. 지금은 잘 모르겠구먼.”

 

 

왜 모든 연도를 마당 한 가운데로 모아 굴뚝을 낸 것일까? 주인 잃은 집은 휑하기만 하다. 언제가 다시 시간을 내어 후손들이 모인다는 명절 때 찾아보아야겠다. 궁금증을 풀 수 있으려는 가는 모르겠지만.

  1. 라이너스™ 2013.01.21 09:16 신고

    이유를 알아내시면 알려주세요
    저도궁금하네요^^

  2. meryamun 2013.01.21 09:25

    예전 시골집도 마당에 굴뚝이 있었죠..
    조금 다른 형태이고 개량한옥이라 다른 의미가 있었는지도 몰라요.

  3. Hansik's Drink 2013.01.21 10:01 신고

    신기하네요 ~ ㅎㅎ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4. 출가녀 2013.01.21 11:42 신고

    우리나라 온돌이 정말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고 하던데
    굴뚝이 마당까지 따뜻하게 해줄것 같네여~ㅎㅎㅎ
    즐거운 월요일 보내셔요~*^^*

  5. 가을사나이 2013.01.21 11:48 신고

    지혜로움이 넘쳐나네요.
    잘보고갑니다

  6. 신선함! 2013.01.21 12:23 신고

    참 지혜로운것 같아요 ㅎㅎ
    잘 보구 갑니닷 !!

  7. 에스델 ♥ 2013.01.21 13:53 신고

    마당에 굴뚝이 있는 이유 저도 참 궁금해집니다...
    행복한 한주간 보내세요!

  8. 코리즌 2013.01.21 13:57 신고

    저도 아주 궁금하군요.
    마당 한 가운데에 굴뚝을 만들때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텐데요.

  9. pennpenn 2013.01.21 14:46 신고

    고택이 다소 쓸쓸해 보여요
    월요일 오후를 편안하게 보내세요~

  10. +요롱이+ 2013.01.21 17:22 신고

    지혜가 넘쳐나느 곳입니다.
    덕분에 너무 잘 보고 갑니다^^

  11. 버섯공주 2013.01.21 19:49 신고

    저도 정말 궁금하네요. ^^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우리 전통가옥들이 아직도 잘 보존이 되어 있다. 대개는 중요민속문화재나 지방문화재 자료 등으로 지정이 되어 있는 집들이다. 요즈음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생활에 불편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보존을 해야 할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이 집들은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지만, 일반적인 모습 외에 그 나름대로의 멋을 지니고 있다. 그 멋은 무엇일까? 집의 소개는 안내판을 읽어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이미 잘 나와 있다. 그래서 지나쳐 버리기 쉬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쉽게 넘겨서는 안 될, 그 숨겨진 멋을 찾아본다는 겻은 고택답사의 또 다른 재미이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온기가 서린 집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 ~ 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지은 사랑채다. 조선조 중종 27년인 1532년에 세운 집이니 벌써 50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집이다. 독락당은 중요민속문화재가 아닌 보물 제413호로 지정이 되어 있어, 남다른 집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독락당은 사랑채인 독락당 건물과, 선조 33년인 1601년 이언적의 손자인 순과 준 두 형제가 화의문을 작성하고 지은 경청재 등으로 조성이 되어 있다. 경청재는 1900년대 이후에는 머슴들이 기거하기도 했다. 경청재를 지을 때, 순과 준 두 후손은 이언적에게 후손들이 누를 끼칠 것을 우려해 화의문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정과 독락당은 우리 선조고(先祖考) 문원공(文元公) 회재선생의 별서이고 이외 유택에는 우리 부모(휘 전인, 호 잠계)의 혈성이 가득하다. 당우와 담장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 형제가 약간의 토지를 출현하였다. 후손들 가운데 혹 궁벽하여 토지에 대해 다투는 일이 있으면 불효로써 논단할 것이다.

 

흙 담이 자연과 순응하고

 

독락당을 돌면서 가장 편하게 보이는 것은 흙담과 흙길이다. 기와와 돌을 이용해 문양을 넣고 쌓아올린 흙담은 투박하다. 그러나 그 흙담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 독락당이 더 편한 집이란 생각이다. 거기다가 담과 담 사이에 난 흙길 또한 백미다. 독락당은 전체적인 집의 구조물을 감싼 담장 안에 또 다른 담장들이 건물을 가르고 있다. 어찌 보면 한 채 한 채가 다 별개의 집으로 조형이 된 듯하다. 집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가장 편안하게 배려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독락당을 지은 이언적은 건축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게 된다. 한 마디로 자연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것을 적절히 이용해 집을 지었다. 독락당을 돌아보면 집의 우측에 계곡이 있다. 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쪽으로 난 담장에, 흙 담이 아닌 나무로 만든 창이 있다.

 

말은 창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창살도 나무로 만든 이 담 벽에 붙은 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시원한 계곡의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독락당의 건축미학이 이런 곳에 있다. 계곡의 바람도 들어오고, 이 담 벽의 창으로 계곡의 경치까지 볼 수 있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길이 아닐는지.

 

 

담 벽에 붙여 지은 건물의 용도는?

 

계곡을 돌다가 보면 또 하나 볼거리가 있다. 담의 한쪽에 대를 만들고, 그 위에 반은 밖으로 반은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의 용도는 무엇일까? 곁으로 지나가다가 보니 이 건물의 용도가 궁금하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뒷간의 용도가 아닌가 한다. 담의 밖으로 돌출을 시켜 안의 공간을 확보하도록 한 이런 여유가 독락당의 또 하나의 묘미다.

 

 

 

넌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곳에 있느냐?

 

흙으로 올린 담장 사이로 난 길을 걸어 계곡 쪽으로 가다가 보면, 담장 끝에 난 조그마한 문 하나가 있다. 이 작은 문을 왜 이곳에 두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이 문의 용도는 계곡으로 드나드는 문이란 생각이다. 즉 이 작은 문을 나서면 바로 계곡이다. 여름철 더위를 씻어내고 싶을 때, 이 담벼락에 붙은 쪽문을 나서 계곡에서 목욕이라도 했던 것일까?

 

 

이 문이 아니면 담장을 돌아 나와야 한다. 이 작은 문 하나가 계곡을 가기 위한 것이라면, 이 집주인의 작은 배려 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독락당은 자연이다. 어느 것 하나 자연을 거슬리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자연이 되어버렸다. 독락당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이다.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곳, 그 안에 또 다른 독락당이 있었다.

  1. 귀여운걸 2012.07.07 06:56 신고

    중요민속문화재가 아닌 보물로 지정된 집이군요ㅎㅎ
    온누리님 덕분에 독락당의 매력 잘 보고 갑니다^^

  2. 참교육 2012.07.07 07:04 신고

    조상들의 자혜와 애환이 담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는 것이 후손들이 해야할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3. *저녁노을* 2012.07.07 08:05 신고

    중요한 문화재 잘 보존해 나가야겠지요.

    잘 보고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4. landbank 2012.07.07 10:20 신고

    아 정말 중요한 우리문화재 너무 잘보고 갑니다

  5. 꽃보다미선 2012.07.07 10:47 신고

    날씨좋은 주말 한번 가족끼리 끌고 가야겠네요 ㅎㅎ
    언제나 좋은 글 잘보고있어요

  6. 예또보 2012.07.07 10:59 신고

    고즈늑하니 너무 좋아보입니다
    덕분에 잘알고 갑니다

  7. pennpenn 2012.07.07 10:59 신고

    흙담장이 매우 아름다운 고택이로군요
    비가 그친 토요일을 편안하게 보내세요~

  8. 루비™ 2012.07.07 11:05 신고

    독락당을 자주 가지만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 것도 모르고
    셔터질만 해대었어요.
    다음번에 가면 더 천천히 생각하며 돌아볼 것 같습니다.

  9. Hansik's Drink 2012.07.07 11:15 신고

    잘보고 간답니다~ ㅎㅎ
    즐거운 토요일과 일요일 보내세요~
    오늘도 즐겁게 다녀갈께요~!

  10. 신선함! 2012.07.07 11:20 신고

    즐거운 주말이 찾아왔네요 ^^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11. 대한모 황효순 2012.07.07 11:25 신고

    온누리님 덕분에
    귀한곳 구경하고 갑니다.ㅎㅎ
    너무 예쁜집이네요.^^

  12. 출가녀 2012.07.10 15:30 신고

    우와 흙담과 흙길 정말 보물이 될만한 곳이군요~*
    감사히 읽고 갑니다~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그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고택을 찾아다닌 것이, 벌써 100번 째 집을 소개하게 되었다. 찾아다닌 곳은 그 이상이지만 그 중에는 소개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싶은 집들도 있었으니, 아마도 150채 정도는 찾아보지 않았나 생각한다. 100번째의 글을 쓰면서 조금은 남다른 집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만난 집은,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573-1에 소재한 경남 유형문화재 제326호인 윤경남 생가이다.

윤경남(1556~1614)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활동을 하신 분이다. 이 고택은 선생이 태어난 집으로, 450년 전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전체적으로 집의 형태는 깨끗하게 보존이 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 중문채와 대문채가 있다. 아마도 처음에 건립을 했을 때는 이보다 더 많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군기를 비축했던 집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 의병모집을 했던 선생은, 원래 과거 등에는 나아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열중했다고 한다. 경사에 열중한 선생은 문외, 정온 등의 학자와 친분이 두터웠다. 그러나 나라가 위급해지자 이 집을 군기를 비축하는데 사용을 했고, 의병을 모집해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당시 벌인 의병 활동의 공을 인정받아, 장수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사후에는 대사헌의 벼슬이 더해졌다. 도로가에 위치한 윤경남 생가는 한 마디로 자연을 넘어서지 않은 집이란 생각이 든다. 안채는 5칸으로 부엌위에 다락방이 위치하고 있으며, 사랑채는 누마루대청 양식을 갖추고 있다.



비탈진 곳을 이용해 건물을 지은 사랑채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ㄱ 자형의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는 전체를 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누정 형태로 집을 지었다. 비탈진 그대로를 이용하기 위해 뒤쪽으로는 축대를 쌓았으며, 앞으로는 누마루 밑에 기둥을 놓아 누각과 같은 형태로 구성을 하였다. 전체를 난간으로 둘러놓아 운치를 더했다.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높이 올라앉은 사랑채는, 계단을 놓아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크지 않은 사랑채의 구성이지만, 그 치목 등을 볼 때 자연을 벗해 살아가려고 했던 집주인의 마음이 엿보인다. 계단 위에 마련된 온돌방은 뒤편에서 불을 땔 수 있도록 한데 아궁이를 두고 있다.





자연석 기단위에 앉은 안채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은 안채는 사랑채보다 높게 자리를 잡고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중앙을 조금 비켜 서 좌측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안채는 모두 5칸으로 꾸며졌다. ㄱ 자 형으로 꾸며진 안채는 산을 등지고 안방과 두 칸의 대청, 그리고 건넌방이 있다. 그 밑으로 단을 낮춘 두 칸의 부엌과 한 칸의 아랫방이 자리한다. 아랫방의 끝에는 작은 마루를 놓았다.

이 안채 역시 비탈진 곳을 그대로 이용했다. 층이 진 건물은 안채로부터 사랑채에 이르기까지 비탈진 곳을 그대로 이용해, 자연석 기단을 쌓아 건물을 배치했다. 사대부가의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윤경남 생가. 마침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안주인 인 듯한 분이 집안 정리를 하고 계신다.



집과 주인의 심성은 닮는다고 했던가?

집을 좀 둘러보겠다고 허락을 받고 여기저기를 돌아보는데,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권유를 하신다. 바깥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난 후 서울로 올라가셨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정도 내려와 집을 정리하신단다. 마음 같아서는 오랜 시간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바쁜 답사 일정으로 감사하는 마음만 전하고 돌아서야 했다.

나오는 길에 중문채를 들여다보니 한 편에 디딜방아가 놓여있다. 대개 방아는 대문채에 두는 것이 일상적인데, 중문채에 디딜방아가 놓여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아마도 집안 정리를 하다가 이곳에 놓아 둔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서 나오는 객을 대문 앞까지 따라나서 인사를 하시는 안주인. 집과 주인의 심성을 닮는다고 했단다. 100번째의 집은 그렇게 기분 좋게 사람을 떠나보낸다.

  1. 빈배 2011.06.28 08:27

    사랑채가 들어앉은 모습이 특이하고도 보기 좋습니다.
    저도 답사 꽤나 다녔다고 자부하는데, 온누리님에게는 한참을 못미치는군요.쩝.

  2. 그린레이크 2011.06.28 08:41

    계단이 있는 사랑채는 첨 본느듯해요~~
    자연을 훼손하지않고 그대로 이용할줄 아는 지혜로움~~
    지금의 우리가 배워야 할 덕복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전 이런 고택들이 넘 좋아요~~~

  3. 모피우스 2011.06.28 08:53 신고

    집도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아직도 느낄 수 있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4. 칼스버그 2011.06.28 09:27

    사랑채도 특이하지만..안채 역시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네요..
    임란때 무기를 보관하던 곳이라니.....
    더욱 멋지게 보여지는 고택인 듯 합니다....
    나라를 생각하는 집과 집 주인.....
    그 심성이 고맙게 느껴지네요..

  5. pennpenn 2011.06.28 10:01 신고

    한옥이 매우 반듯하고 아름답습니다
    화요일을 화사하게 보내세요~

  6. 굴뚝 토끼 2011.06.28 10:02 신고

    민속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디딜방아.
    요즘은 억지로 쓸래야 쓸 곳이 없는 물건이 되버렸죠...

  7. 광제 2011.06.28 10:27 신고

    정말 보기좋은 가옥이네요...
    이런 집에 사시는분은 정말 심성도 고울겁니다..
    솔직히 저도 살고 싶네요..ㅋ
    즐건 하루 되시구요^^

  8. 북경A4 2011.06.28 10:27 신고

    블로그도 글쓰인의 심성을 닮는 것 같아요.,^^
    항상 아름다운 포스팅을 하시는 온누리님..~~~ㅎ

  9. †마법루시퍼† 2011.06.28 10:33 신고

    고택 답사 100번째 포스팅을 축하합니다. 의병 장군의 기상이 넘치는 집입니다. 단아한 분위기도 좋습니다.

  10. 아하라한 2011.06.28 10:37 신고

    정말 고택을 관리하는것도 쉬운일이 아닐텐데...
    정말 잘 관리가 되어 있는듯 합니다.
    최근 장마라 답사하시는데 안전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11. ♣에버그린♣ 2011.06.28 10:54 신고

    직접 느껴보고싶은 곳입니다.

  12. 비바리 2011.06.28 11:00 신고

    대사헌까지 지내셨던 분이로군요
    제가 살던 영천에도 고택들이 많았는데
    가보면 대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어
    아쉬운 발걸음 접어야 했던적 많아요
    너무 안타깝더군요
    관리 차원에서 그리들 하는 것이겠지요?

  13. 모르세 2011.06.28 13:48 신고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시간이 되세요

  14. 쿤다다다 2011.06.28 21:35 신고

    집 너무 좋네요. 게다가 안주인의 따뜻한 배려와 마음까지...잘 보고 갑니다.

  15. 신기한별 2011.06.28 22:01 신고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하루 보내시길~

  16. 파리아줌마 2011.06.28 22:10

    100번째 집이군요,
    오래된 가옥을 잘 보전하여서 좋습니다.
    아무래도 집과 주인의 심성은 닮을테지요^^

  17. 하늘엔별 2011.06.28 22:33 신고

    100번을 채우셨군요.
    정말 가옥도 주인을 닮아가나 봅니다. ^^

  18. 아빠소 2011.06.29 01:02 신고

    집이 주인과 닮는다~ 참 명언입니다. 거기다 그런 집과 집주인을 알아보는 온누리님 또한 ^^

서원과 서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서원은 앞에는 학동들이 배움의 장소로 이용하고, 뒤로는 선현을 모신 제각이 있다. 그에 비해 서당은 배움의 장소만 있는 곳을 말한다.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518번지에는 ‘대각서당’이 있다. 하지만 현재 지정이 되어있는 명칭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344호인 ‘대각서원’이다.

이 서원의 건물에는 조금 작은 현판인 ‘대각서원’과 그보다 큰 ‘대각서당’이라는 현판이 동시에 걸려있다. 선현을 모신 제각이 없어 서원으로서의 규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곡서원이란 명칭을 쓴 것은, 전에 이 서당이 서원이었기 때문이다. 6월 10일 진주와 거창을 답사하면서 들린 사곡서당. 답사를 하면서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을 당했다.


정교한 치목을 보이는 강당과 부속건물

이 서당은 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 그리고 앞으로는 문간채가 있다. 강당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후 툇집 형식이며, 정면의 기둥은 배흘림을 둔 두리기동이다.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으로 꾸민 강당은 단면의 크기도 크고 훤칠하다. 이 서당은 원래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입구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소실이 되었던 것을, 후손들이 후에 다시 자리를 옮겨 다시 지었다고 한다. 대각서원은 처음에는 각재 하항을 모시기 위한 ‘대각사’를 지었다가 그 뒤에 무송 손천우, 백암 김대명, 영무성 하응도, 모촌 이정, 조계 유종지, 송정 하수일 등 6분의 유학선현을 추가로 배향하여 일곱 분을 모시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대각서당

전국의 문화재를 답사하다가 가장 답사가 어려운 곳이 바로 향교와 서원이다. 거의가 닫혀있기 때문에 뒤 돌아서기가 일쑤다. 대각서당을 찾아 간 날도 대문이 닫혀있다. 그런데 안에서 인기척이 나고, 사람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이곳에는 서당 안 건물에 몇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강당과 동재, 서재에 모두 사람이 살고 있다.

강당에 사시는 분이 차 대접을 한다. 서원을 돌아보다가 이렇게 대접을 받아보기도 난생 처음이다. 알고 보니 이곳에는 동재와 서재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분들이 대각서당과 연관이 있는 분들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강당과 동재와 서재 모두가 사람의 온기가 배어있어 따듯한 느낌이다.



건물의 주초만 보고도 반하다

대각서당은 서원으로서 전체적인 배치가 무난하다. 또한 부재의 사용이나 적절한 비례의 적용, 그리고 동재의 여러 가지 기술적인 수법 등 조선후기 건축의 여러 기법들을 동시에 볼 수가 있다. 강당을 바라보면 좌측에 두 칸의 방을 두고, 두 칸의 대청과 또 한 칸의 방을 두고 있다. 잘 다듬은 네모난 돌로 쌓은 기단 위에 세운 강당은 주초만 보고도 반해버렸다. 팔각으로 조성을 한 주초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집 뒤로 돌아가니 뒤편은 사각의 마름보로 조성한 주초를 사용하고 있다. 전면과 후면의 주초를 다르게 논 것이다.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동재는 지금까지 보아오던 서원의 부속건물과는 다른 파격적인 형태로 지어졌다. 두 칸의 방을 두고 한 칸은 누마루를 깐 정자의 형태이다. 비탈진 터를 그대로 이용해 장초석을 놓고 그 위에 한 칸의 난간을 두른 정자방을 꾸민 것이다. 이 정자방의 주초는 장초석인데 역시 팔각이다. 밑에는 둥근 돌을 놓고, 그 위에 팔각의 장초석을 놓아 기둥을 올렸다. 이 서당을 조성한 치목이나 기타 부재보다 팔각과 사각으로 된 주춧돌만 보고도 감탄할 만하다.

 




세상에 변소인 줄 알았다가

대각서당은 원래 서원이었던 것을 자리를 옮기면서 제실이 사라졌다고 한다. 각재 하항의 후손들이 제실을 뒤편에 짓기로 해, 서원의 본 모습을 갖추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볼일이 급하다. 문간채를 나와 보니 문간채에 허름한 건물이 한 칸 붙어있다. 당연히 화장실 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난다.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사람이 나올 것 같지가 않다. 볼일이 급하다.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여기 화장실 아닌데요”
“그럼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저 밭에 있는 건물예요”


서당 대문 앞에 붙은 건물. 화장실인지 알았다(위) 화장실은 밭 저편에 있었다.

알고 보니 이 대문간에 붙은 임시건물은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화장실인지 알고 사람이 목욕을 하는데 문을 두드려댄 것이다. 안에 있는 여자 분이 얼마나 놀랐을까? 얼굴이 화끈거린다.

모처럼 차 대접까지 받고 서원이 서당이 된 사연까지 들을 수 있었던 진주 수곡면의 대각서당. 자연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모처럼 피곤한 자리를 쉴 수가 있었다. 밭 한편에 마련된 화장실 안에서 혼자 키득거린다. 조금 전의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이다. 그러고 보니 이 화장실도 참 자연을 닮았다는 생각이다.

  1. 노지 2011.06.16 07:40 신고

    자연과 조합되어있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2. 굴뚝 토끼 2011.06.16 07:51 신고

    역시 집은 사람이 살아야 제모양으로 오래 가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 집에서 밤에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엄청난 모험일 듯 합니다.^^

  3. pennpenn 2011.06.16 08:47 신고

    대각서원 현판의 글씨가 힘차네요
    목요일을 즐겁게 보내세요

  4. 하늘엔별 2011.06.16 08:52 신고

    국민학교 여름방학 때 어머니가 안동에 있는 서당에 보내서 한 달 보낸 기억이 납니다.
    처음엔 낯설고 무서웠는데, 그때 배운 한자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

  5. 모피우스 2011.06.16 09:32 신고

    역사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주옥같은 지식과 경험이 저절로 습득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6. Shain 2011.06.16 09:53 신고

    그래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서원은 관리가 좀 낫더라구요
    아직 복구가 안된 저희 동네 서원이 떠오르는군요...
    샤워실을 그리 만든 것도 좀 신기하지만
    놀라셨겠습니다 ^^

  7. 북경A4 2011.06.16 10:04 신고

    목욕하시는 분은... 꽤 익숙한 것 같네요 ^^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8. 또웃음 2011.06.16 11:02 신고

    화장실로 착각하기 쉬운 목욕탕인데요. ^^;;;

  9. 선민아빠 2011.06.16 11:21 신고

    역시 우리의 자연과 함께하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너무 좋은것 같습니다~

  10. ★안다★ 2011.06.16 13:00 신고

    정말 자연의 한조각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과 서당의 풍모로군요~!
    아..멋집니다~!

  11. ♣에버그린♣ 2011.06.16 14:44 신고

    저두 화장실인줄 알았어요~^^;;

  12. 칼리오페+ 2011.06.16 18:08

    오..ㅎ
    완전히 산속에 있네요!
    자연과 함께하는 서당^^

  13. 파리아줌마 2011.06.16 18:15

    ㅎㅎ 화장실이 아니라 목욕탕이었군요,
    정말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분들이군요,
    잠시 머물면 좋을곳 같습니다.^^

  14. 새라새 2011.06.16 18:50 신고

    답답한 도시보다 저런 곳에 사는것도 괜찮을것 같아요^^
    먹고 사는세상 조금은 여유로운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ㅎㅎ

  15. carol 2011.06.17 01:21

    이제야 들렀습니다
    뭐가 이리도 바쁜지..
    이틀을 정신 없이 보냇네요

    좋은 밤 되세요

  16. 달머한복 2011.10.15 22:55

    답답한세상보다 서당이좋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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