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중 초대전> - ‘존재의 기록’ 展
수
원시 팔달구청을 찾아가는 재미는 무엇일까? 남들이 다 쉬는 일요일 팔달구청을 찾았다. 남들이 생각하면 ‘일요일에 집에서 쉬지 무엇 때문에 문을 열지도 않는 구청을 찾아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일요일에 팔달구청을 찾아가는 것은 혼자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팔달구청사 2층과 3층 복도 벽면에 전시된 작품을 보기 위함이다.
“전시작품 보러 왔습니다”
17일 오후 당직을 서는 관계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김중 작가의 초대전인 <존재의 기록>展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중 작가는 1983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 그동안 13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런 작가의 초대전이 10월 30일까지 팔달구청 청사 2층과 3층 복도에 전시가 되어있다.
2층 계단을 올라 처음 만나는 그림부터 혼란스럽다. 가뜩이나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만난 그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온통 울긋불긋 채색을 한 그림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동양화 같으면 경치라도 보면서 조금은 아는 체라도 하겠지만 서양화는 그야말로 무지몽매한 나이기 때문이다.
고통과 불안을 동반한 내면의 표현
<김중의 <기억-기록> 연작은 잠재의식의 형이상적인 불안과 고뇌에 대한 <기억-기록>의 연작에는 강한 개성에서 오는 고통과 불안을 동반하고 있다. 즉흥적으로 자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풍경은 우리에게 우울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그가 사용하는 도상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종의 상형이나 기호 또는 약호로 제시된다. 상형이나 기호들은 즉흥적 감흥에 의하여 공시적 기억 속에 공존한다>
평론 글을 쓴 최병기의 평이다.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는 작품들은 한 마디로 내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꽃과 ‘광교산에서’와 같은 제목을 붙인 눈에 익은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림 앞에 서서 괜히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아는 체를 해본다.
한 마디로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무엇을 안다고 선뜻 찾아온 것일까. 원색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이것이 작가의 내면세계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각종 기호와 상형과 같은 수많은 것들이 그려진 앞에 서서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작가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때는 은근히 화도 난다. 내 무지를 탓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은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하지만 난 그 내면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무지를 탓하곤 한다.
구청직원들과 방문객을 위한 전시 공간
김종 작가는 2000~2001년 경기미협 사무국장, 2001~2006년 경기미협, 수원미협 서양화 분화 위원장, 2004~2006년 한국미협 본부이사, 2007~2012년 수원미협 부회장, 2010~2012년 경기미협 부이사장, 2007~2010년 수원시 미술장식 심의위원, 2001~2013년 나혜석 미술대전, 경기 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회룡 미술대전, 행주 미술대전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단한 작가를 만났으면서도 그 실체를 이해하지 못함이 죄스러울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작품을 보면서 스스로 느낌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팔달구청 복도에 설치된 작가들의 작품전시는 작품을 통해 지친 업무에 반복되는 삶속에 힐링하는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직원들의 업무 향상을 기대하고 지역의 열정적인 작가를 알리고 작가들의 창작활성화를 유도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더불어 팔달구청을 찾는 구민들에게 딱딱한 관청의 이미지가 아니고 미술관을 방문하는 듯한 느낌이 전달되어 삶속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으니 그런 기회를 만난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팔달구청을 찾아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혼자만이 마음껏 느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도 가질 수 있다는 즐거움을 누가 알 것인가?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더 많은 공부를 해 제대로 작품을 이해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제19회 운학 이동안 선생의 춤 세계’ 열려
‘박경현의 전통 춤’ 만석공원서 성황리에 진행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수원시 제2 야외음악당 무대 앞에 500여명의 관중들이 모였다. 오후 7시부터 무대에 오른 전통춤을 관람하는 시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그 수가 불어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 없이 마지막 출연자들 모두가 나와 기념촬영을 할 때까지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무대에 오른 출연진들을 격려했다.
‘박경현의 전통 춤’은 '제19회 故 운학 이동안 선생의 춤 세계'로 열렸다. 이동안 선생의 춤을 전수받은 故 정경파 선생의 수제자로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인 승무 제1호 이수자이기도 한 박경현 선생은 벌써 수원에서 학원을 차려 문하생들을 배출한 지 48년이 지났다. 그동안 박경현 선생에게서 춤을 배워 나간 문하생들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박경현 선생은 스승의 춤을 지키기 위해 1999년 고 운학 이동안전통무용보존회를 조직하고 첫 번째 춤판을 열었다. 그리고 19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선생의 춤을 기억하기 위한 무대를 열었다. 무대에는 항상 5살 어린 아이부터 60이 넘은 문하생들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스승을 기리는 춤을 추어왔다.
어려운 가운데서 마련한 전통 춤
운학 이동안전통무용보존회를 조직해 회장을 맡고 있는 박경현 회장의 노력은 박수를 받을만 하다. 9일 오후 7시부터 무대를 열기 위해 보존회원들은 아침 10시부터 만석공원으로 모였다. 그리고 연이어 무대연습에 열중했다. 일 년에 한번 씩 사람들을 모아놓고 기량을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멋진 무대를 꾸미기 위해 노력하는 출연자들은 박경현 회장과 신나리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무대에 오른다. 한번으로 끝날 무대연습이 아니다. 무대에 올라 제대로 된 공연이 만들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연습이 계속된다. 그런 연습이 공연 얼마 전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공연종목은 모두 10가지로 승전무, 진쇠춤, 한량무, 교방수건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부채춤, 진도북츰, 검무, 팔박수건춤, 하늘소리 등이다. 무대에 출연자들이 바뀔 때마다 객석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누구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이어진 공연은 준비한 의지가 부족해 양 옆까지 관중들이 늘어섰다.
관중과 함께 한 최고의 무대
e수원뉴스 하주성 기자의 해설 및 사회로 진행된 박경현의 전통춤 공연은 지루함을 모른 공연이었다. ‘최고의 관중과 최고의 무대가 어우러진 공연’이라고 사회자는 관객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런 설명에 관중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무대에 순서에 의한 출연자들이 오를 때마다 환호를 지르며 박수로 맞이했다.
이동안의 춤은 재인청춤이다. 재인청춤은 화랭이들의 기예능을 간직한 무대예술로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민속춤을 교방계열의 춤과 재인계열의 춤이 있다. 교방계열의 춤이 여성위주의 춤이라고 한다면, 재인계열의 춤은 재인청 화랭이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춤으로 남성위주의 춤이다.
관객들은 시종일관 박수를 보내면서 초가을 밤의 전통춤 무대를 즐겼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주최측에서 마련한 의자를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준비한 자리보다 두 배 가까운 인원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전통춤을 관람하는 시민들도 무대에 오른 출연자들도 절로 흥이나는 무대였다.
내년에는 운학 이동안선생 춤 세계가 20번째 공연을 하게 된다. 그동안 박경현 회장의 문하에서 춤을 배워나간 많은 제자들이 힌 무대에 올라 스무번째 발표회를 열어달라고 주문하는 사회자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박수로 환호한다. 내년 가을 무대는 그동안 익혀 온 운학 이동안선생 춤세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안택굿’, 수원시 향토유적이라도 지정해야 한다
지역에서 200년 이상 전승된 민속문화, 고사위기에 처해
우리 민속문화의 특징을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이라고 한다. 이 말은 백리만 떨어져 있어도 삶의 방식과 생활하는 풍속 등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민속을 구분할 때 지역적 특성을 먼저 따져본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민속문화는 지역마다 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수원을 비롯한 경기권을 수도권이라고 구분한다. 수도권이란 서울, 인천, 경기 지역을 말하자면 엄밀히 따지면 서울과 경기도의 민속문화는 엄연히 다르다. 서울의 문화가 사대부가에 치중된 문화라고 하면 경기지역, 특히 한수이남의 문화는 사대부가와 민초들의 풍습이 습합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안택굿은 음력 정월과 10월 상달에 각 가정마다 집안의 안과태평을 위해 하던 굿거리 제차이다. 안택굿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달리해 나타나지만 경기도, 특히 수원의 안택굿은 가장 뛰어난 기능과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 안택굿은 수원을 비롯한 인근에서 200년 이상을 전해지면서 나름 이 지역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과거 고려조 때에 이르러 불교가 국교가 되고 조선조에 들어서 유교를 숭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전통 의식인 굿은 점차 숨어들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의 굿은 ‘제천의식’에서 전해진 것으로 모든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3일 밤낮을 쉬지않고 소리하고 먹고, 마시며, 춤을 추던 그런 대동의 문화였다.
이런 우리 고유한 전통문화가 일제의 ‘문화말살정책’과 개신교의 ‘우상숭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인해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굿은 ‘열린축제’이다. 누구나 다 참여해 함께 즐길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대동의 화합을 일궈나가던 놀이마당이다. 그런 곳이 외세에 의해 잠식당하면서 점차 산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안택굿은 이 지역의 독창적인 예술세계
혹자는 경기안택굿이 한양굿과 흡사해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힌양굿이 언제 적부터 한양 성내에서 연희기 되었나?’하는 점을 말이다. 조선조에서는 한양 성내에서 굿을 하다가 수차례 도성 밖으로 내몰린 기록이 있다. 500년 동안 50차례 이상 도성 밖으로 축출되어 노량진 건너와 뚝섬 건너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무당(巫堂)’이란 미신을 퍼트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집제자요 모든 이들을 위해 구제중생을 우선하던 특별한 사람들이다. 일제의 ‘미신(迷信)’이라는 허구에 찬 이야기는 우리민적의 공동체를 와해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또한 개신교가 주장하는 우상숭배라는 말도 알고보면 이 또한 터무니없는 말이다. 우리민족은 과거 신국 때부터 하늘에 감사하는 제천의식을 행하던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굿은 우리의 전통의식이다. 굿을 영위하는 무당은 단지 남을 미혹시키는 인물이 아니다. 과거 삼국시대 초기 때까지만 해도 제정일치사회에서는 무당은 집제자로 단의 주인이었다. 역사의 기록에서 증명하고 있듯 이런 굿의 주관자인 무당이 세상이 바뀌면서 잠차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 귀착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주체성과 민족성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 진 ‘귀신들린 사람’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안택굿 우선 수원시 향토유적이라도 지정해야
안택굿은 한수 이남의 경기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지던 굿거리이다. 수원인근의 큰무당들은 안택굿을 진행하면서 소리와 춤, 재담 등을 최고의 기량으로 끌어올렸다. 안택굿은 성주거리, 뒷전 등 그 제차 하나만으로도 문화재로 지정해도 될 만큼 뛰어난 연희상과 예술성을 갖고 있다.
6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고성주씨의 집에서는 안택굿이 벌어졌다. 고성주씨는 집안으로 4대째 안택굿을 전승 헤왔다. 햇수로도 100년이 지났다. 고성주씨의 안택굿을 보면 전국 어느 지역의 굿보다 뛰어난 기능성과 예술성을 갖고 있다. 굿 제차에서 불리는 사설(문서) 또한 그 어느 지역의 굿거리보다 많은 양을 표현한다. 문학적인 면으로 보아도 그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한 세기가 넘게 전승되어 온 안택굿이 자칫 소멸위기에 처해있다.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지 않은 무형의 문화유산은 전승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굿거리 제차인 안택굿이 단절된다면 수원만이 아니라 경기도의 소중한 무형의 문회유산 한 종목이 사라지는 것이다. 전통 안택굿을 구가할 수 있는 사람도 이제는 고성주씨를 비롯해 2~3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수원시의 향토유적이라도 지정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안택굿을 보존, 전승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기에 안택굿을 향토유적이라도 지정해 보존하지 않는다면 가장 뛰어난 굿거리 제차가 단절될 수도 있다. 이는 지역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이 시대에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안택굿을 수원시 량토유적으로 지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에 거는 기대
6명의 작가들이 펼치는 새로운 공간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린 공간을 만난다면 순간 당황할 수가 있다. 그것도 늘 다니면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잠시나마 쉬었던 공간인데 얼마 만에 찾아갔더니 전혀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혹 내가 잘못 들어온 것인 아닌가 해서 몇 번이고 둘러보기도 하고 다시 확인을 하는 작은 소동도 벌였다.
팔달구 행궁동에 소재한 대안공간 눈에는 제1, 2전시실과 나만의 방 등이 있다. 그리고 그 옆 전시공간인 예술공간 봄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 공간이 갑자기 전시실로 변한 것이다.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 공간은 이곳을 찾을 때마다 늘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취재의 정리를 하던 곳이었다.
‘예술공간 봄 제3전시실 개관기념전’이라는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이 전시는 6명의 작가인 노경화, 라오미, 라켈 셈브리, 손채수, 송태화, 이윤숙 등 6인의 작가들의 작품이 9월 17일까지 열리는 전시이다, 찻집이었던 벽면에 있던 많은 흔적들이 사라진 곳에는 커다란 작품들이 걸려 있어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가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순식간에 환경이 변할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6명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만나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변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이 전시실을 오랜 만애 찾아오기는 했나보다.
많은 변화를 거친 예술공간
예술공간 봄의 건물은 그동안 세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곳이다. 방앗간, 전자오락실, 구둣방, 건설사무소를 거쳐 2014년 예술공간 봄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작가들과 이곳을 찾아오는 관객들이 쉴 수 있는 카페로 활용되었으며 아메리카 4개국 작가를 초대하여 건물 외벽에 창조신화 이야기를 담아냈다.
많은 흔적과 이야기를 남긴 예술공간 봄의 카페 공간이 예술공간 봄의 제3전시실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전시관으로 탈바끔 한 것이다. 그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할 개관 전시는 예술공간 봄 외벽의 신화 이야기와 조응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직·간접적으로 ‘신화’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6인의 작가로 구성된 전시로 다시 한 번 그 끝없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전을 전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은 많은 이야기가 녹아있는 도시다. 정조가 왕권 강화의 상징 도시로 삼으려했던 수원은 도시 중심을 따라 성벽이 줄을 지어 행궁동을 껴안고 있다. 1997년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이후 문화재보호정책으로 복원된 성벽은 전세계 모든 이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나날이 이전의 웅장한 모습을 찾아가는 수원 화성과 달리 화성 안 마을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빛을 잃은 채 방치되었다. 떠나는 이가 많아졌고, 도시는 점점 슬럼화 되었다’
지역예술을 오롯이 담아내는 곳으로 남아 있길
전시서문에서 기획자는 예술공간 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공간이 예술공간으로 새롭게 변화하면서 행궁동 증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공간 봄은 지역의 젊은작가들이 마음껏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지역예술의 산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수원에는 전시공간이 적지 않다. 화성 행궁 인근부터 종로를 거쳐 도청 앞 입구까지에는 크고 작은 전시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거리를 찾아가면 늘 한두 가지의 전시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거리이다. 바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들이기 때문이다. 그 종에서도 대안공간 눈과 예술공간 봄은 일 년 내내 전시를 열고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있는 곳이다.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이곳을 자주 찾는 것은 한 곳에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분야이긴 해도 계속해서 보고 또 찾아보다보면 언젠가는 혜안이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모처럼 새롭게 문을 열고 개관전시를 갖고 있는 예술공간 봄의 제3전시실. 이곳이 지역예술을 키워나가는 장소로 오래도록 오롯이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세상은 막대사탕처럼 돌고 또 도는 것이다”
작가 명윤아는 2006년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2012년 홍익미술대학원 조각과를 수료항 작가는 입체(Sculpture, Installation)와 평면(Photography, Mixed Media Drawing)을 전공했다. 명윤아는 그동안 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2년 1회 개인전 <BECOMING> (인사아트센터)을 연후, 2017년 <Sweet Thinking>展 (사이아트스페이스)에서 5회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 명윤아가 이번에는 정월행궁나라 갤러리(행궁동 주민센터)에서 초대전을 갖게 되었다. 행궁나라 갤러리는 행궁동 주민센터 민원실 벽면과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 등을 말한다. 이곳은 정월 나혜석 생가터가 있는 행궁동 주민센터에 주민들의 정서함양과 지역에 대한 애정,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고 행궁동을 사랑하는 작가들의 창작활동 활성화를 위하며 정월 나혜석을 기리는 전시공간으로 마련했다.
8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작가 명윤아의 초대전은 ‘sweet things’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달콤한 것‘이라는 이 전시는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달짝지근한 맛이 감돈다, 한 마디로 명윤아의 작품은 작가의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 “난 세상의 모든 것(Everything)들을 롤리팝(lollypop) 사탕처럼 돌려버린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지러운 세상, 달콤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했기 때문이다.
명윤아의 작품은 막대사탕이다
29일 오후 행궁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것은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바쁘다보면 무엇하나 제대로 느긋하게 감상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몇 번이고 명윤아 작가의 작품을 보러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정작 전시가 끝나갈 무렵 찾아가게 된 것이다.
‘나의 작업은 미 완결 상태로서 무언가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작업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알록달록한 달콤한 사탕(Lollipop)이 연상되는 표현들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섞이고 있는 색채들의 흐름들은 무언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이고, 우리가 늘 겪어왔던 평범한 일상들과 관념적 이미지를 벗어나려한다’
작가노트에서 명윤아 작가는 세상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사탕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쉬지 않고 변해가고 있는 세상이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롤 돌리듯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는가도 모른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쉴 새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런 세상을 롤리팝 사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막대사탕은 문양이 특이하다. 마치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한 곳을 중심으로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며 돌아가고 있는 막대사탕인 롤리팝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늘이고 돌리고 섞어서 기존의 모습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변형시켜버린다. 작가는 그런 막대사탕을 소재로 작품을 구상하면서 작가 나름의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고 고민하고 노력했다.
작가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익숙한 겉모습의 경계를 고의적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고정적이지 않고 변화하는 과정의 본질과 숨겨진 가치들을 모색하려한다’고 했다. 즉 세상은 막대사탕 안의 원처럼 돌고 또 돌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 안에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존재하면서 말이다.
현란한 색감 속에 숨어있는 작가의 고민
정월 행궁나라 갤러리에 걸려있는 작가의 작품은 10여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작품 속에서 작가의 수많은 고민을 만난다. 작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작품을 생성했다. 그 롤리팝의 돌아가는 모습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함께 돌아가면서 말이다.
작가 명윤아는 작가노트 말미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Sweet 시리즈는 아이디어 구상 때부터 보는 상대가 이해하기 쉽고 편안한 일러스트처럼 비춰질 것을 의도하고 창작하였다. 그 이유는 대중들에게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아한 척 고상한 척하는 전통적 예술 관념에 반대하는 입장으로써 누구에게는 가볍고 유치하지만 누구에게는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운, 때로는 발칙하지만 때로는 순수한 일러스트나 장난감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이다.
행궁동 주민센터 민원실 벽면에서 만날 수 있는 명윤아 작가의 작품을 돌아보면서 그 안에 내재된 많은 세상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설령 그것이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나만의 이야기라고 해도 작품을 보는 관전자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장남감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 때문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