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초파일 준비로 바쁜 청계사를 찾아가다

 

요즈음 전국의 절들을 가면 아름다운 연등으로 절 경내가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있다. 525일이 부처님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인의 권유로 잠시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에 자리한 청계산 청계사를 찾았다. 청계사 입구에 맛있는 밥집이 있다고 한다. 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청계사는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다.

 

현재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계사는 고려 충렬왕 10년인 1284년 조인규 거사에 의해 중창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사세가 확장되었으며, 1880년에는 음곡스님에 의해 중건이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는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선사가 출가, 득도한 곳이며, 만공선사가 주석하여 선종의 지평을 넓혔다.

 

 

 

 

오랜만에 찾아간 청계사, 주변경관까지 아름다워

 

청계사에는 보물 제11-7호인 청계사 동종이 있다. 승려 사인비구가 60세 이후에 명간, 계일, 여석, 수강, 귀성, 임선 등과 함께 제작한 종이다. 사인비구의 범종은 전국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모두가 보물로 지정이 될 정도로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 청계사 범종은 조선 숙종 27년인 1701년에 주조된 종으로 밝혀져 역사적인 사료 가치 또한 높이 평가받고 있다.

 

14일 이른 점심을 마치고 찾아간 청계사. 많은 사람들이 초파일 맞이로 여기저기 장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경내 한편에 커다랗게 조형한 와불 앞에서 잠시 머리를 숙인 후 종각, 극락보전, 삼성각 등을 차례로 돌아본다. 대웅전 축대 아래에는 자리를 펴고 그 위에 형형색색의 등을 달았다.

 

그곳에서 잠시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본다. 5월의 푸른색이 가득한 산들이 첩첩히 시야에 들어온다. 이 풍광만 바라보고 있어도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진다. 예전 스님들은 어찌 이리 절경에 절을 중창한 것일까? 좋은 집을 자랑삼아 높다랗게 짓고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하는 행동이 갑자기 낯 뜨거워 진다.

 

 

 

 

 

연등 위를 아름답게 치장한 청계사

 

극락보존 앞에 서서 아래쪽에 화려하게 걸린 연등을 담으려고 보니 연등 위에 무엇인가가 드문드문 보인다. 연꽃이 가득한 꽃무더기이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연등을 달고 그 위에 연꽃으로 치장을 했다. 세상에 수많은 절을 다니면서 연등을 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치장을 한 것은 본 적이 없다.

 

참 아름답죠. 어떻게 등을 달고 그 위에 저렇게 치장을 할 것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네요. 매년 청계사에 들려 초파일을 보내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치장을 한 것을 보면 무엇인가 달라 보여요. 어느 분은 청계사에서 서원을 하면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다고도 해요.”

 

한참이나 등 위에 꾸며놓은 연꽃더미에 넋을 빼앗기고 있는데, 절을 찾은 신도 한 분이 설명을 해준다. 꼭 그 설명이 아니라도 해도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본 적이 없어 더욱 신기하다. 갖가지 색으로 꾸며놓은 등 위에 연꽃들. 이곳이 정녕 부처의 연화세계가 아닐까? 뒤에 펼쳐진 초록색의 산과 함께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그렇게 보고 계시다가 집에 못 가십니다. 아직 완성할 것도 아닌데 벌써 푹 빠지셨네요.”

주변정리를 하던 한 처사가 웃으면서 말을 한다,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다. 초파일 많은 사람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 분들에게 방해가 될 것만 같아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 등 위에 연꽃더미가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린다. 다시 극락보전 앞으로 올라가 연꽃더미를 몇 장 담아낸다. 떠나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처사가 무거운 짐을 들고 한 마디 하고 지나간다.

 

초파일에 오세요. 그날 오시면 공양도 하시고 많은 것을 볼 수 있으실 거예요. 청계사는 2000년도에 관세음보살님 얼굴에 삼천년마다 한 번씩 핀다는 우담바라가 핀 절이잖아요. 아마도 올해 오시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36-54(우만동)에 자리하고 있는 천년고찰 봉녕사. 비구니 사찰인 봉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 광교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인 120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여 성창사라 하였고, 조선시대 1469년 혜각국사가 중수하고 봉녕사라 사명을 개칭하였다.

 

수원에서 가장 큰 비구니 사찰인 봉녕사에서 9일 오전 10시부터 1행복한 세상 만들기그리기 및 글짓기 대회를 개최했다. 봉녕사 우화궁 앞에서 개회식을 가진 후 각급학교 학생들은 함께 동반한 부모님들과 자리를 잡고 모든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주최 측에서는 대회를 시작하기 전 공지를 발표했다.

 

오늘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주최 측에서 정한 적정한 인원이 나오지 않거나 기대이상의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최우수상은 시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홍보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여

 

올해가 처음이라 그런지 글짓기 및 그리기 대회에는 많은 인원이 참가하지 않았다. 이날 글짓기의 주제는 헹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5, 아버지, 거울을 제목으로 정했다. 그리기는 주제를 행복한 세상’, ‘아름다운 자연으로 정하고, 주제에 맞추어 제목은 각자 정하여 그리기를 했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생각보다 너무 적은 인원이 참가한 것 같아요. 수원에는 초등학교가 98개교에 69,980명의 학생이 있고, 중학교도 56개교에 43,401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43개교에 51,102명의 학생이 있는데, 홍보가 되지 않았는지 너무 적은 학생이 참여를 했네요.”

 

초등학생인 딸과 함께 왔다는 한 어머니는 처음이라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회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날 봉녕사 한편에서는 학생들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탁본체험, 책갈피 만들기, 소원등 만들기, 버튼 만들기, 염주알을 꿰어라 등 다양한 행사도 곁들였다.

 

 

 

 

 

 

점심은 스님짜장으로 대신해

 

한편 이날 참가자들과 봉녕사의 사부대중에게는 점심공양으로 남원 선원사 주지인 운천스님의 스님짜장이 배식이 되었다. 이른 시간부터 준비 한 운천스님 일행은 1130분부터 사부대중과 참가자들에게 스님짜장을 배식했다. 스님짜장은 일체 고기를 넣지 않으며 양파 등 불교에서 금하는 식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문으로만 듣던 스님짜장을 먹어보네요. 오늘 점심공양이 스님짜장이라고 하기에 일부러 찾아왔어요. 그런데 듣던 대로 담백하니 맛이 있네요. 우리가 흔히 먹는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오히려 저는 맛이 있다고 생각해요. 스님짜장은 요즈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웰빙식품이라고 보아야죠.”

 

 

 

봉녕사 신도라고 밝힌 한 사람은 스님짜장이 흔히 먹던 음식점의 짜장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남들은 감칠맛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자신이 먹어보니 오히려 담백한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날 글짓기 및 그리기 대회는 오후 3시에 우화궁 앞에서 수상자 발표 및 시상으로 모두 마쳤다.

 

 

경남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에 소재한 다솔사.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인 503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영악사라고 불렀으며, 선덕여왕 5년인 636년에 부속건물 2동을 건립하고 다솔사로 개칭하였다. 그 후 자장율사, 의상대사 등 고승들이 머물면서 건물을 더 짓고 영봉사로 사명을 바꾸었다.

 

신라 말에는 도선국사가 부속건물 4동을 더 짓고 다시 다솔사라 개칭하였다. 다솔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전란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를 하였다. 197828일에 그 당시 대웅전의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 속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어 법당 뒤편에 미륵사지의 석탑을 본뜬 성보법당을 탑 안에 설치하여 적멸보궁 사리탑을 건립하였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이 전하는 다솔사

 

다솔사로 오르는 길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는 다솔사 대양루가 자리하고 있다. 다솔사 대양루는 영조 24년인 1748년에 지은 다솔사의 건물이다. 다솔사의 중심건물인 적멸보궁과 마주하고 있는 이 건물은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거나 불구를 보관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양루는 정면 5,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다솔사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대양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적멸보궁이 자리하고 있다. 팔작지붕으로 지은 적멸보궁은 법당안 뒤편으로 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그 앞에는 와불이 모셔져 있다. 다솔사에는 이 외에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8호인 다솔사 극락전과 문화재자료 제149호로 지정된 다솔사 응진전 등이 있다.

 

다솔사 보안암은 사천시 서포면 무고리에 소재한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석굴이 있는데, 석실의 규모는 동서 2.9m, 남북 3.5m, 높이 2.45m 정도이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석굴은 고려시대 말기부터 조선조 초기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미륵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황토 담장이 운치있는 다솔사

 

봉명산 다솔사는 선다(禪茶)축제를 열고 있는 곳이다. 다솔사 경내로 들어가면 대양루를 지나 적멸보궁으로 오를 수가 있다. 적멸보궁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는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원을 했을까? 간절히 염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다고 하는 적멸보궁이 아니던가? 그저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다솔사는 부처님의 진리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그저 넓지 않은 절 안에는 사방을 돌아보아도 정이 절로 간다. 붉은 황토에 기와로 문양을 넣어 쌓은 담장들이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피곤을 풀어주고는 한다. 사람들이 왜 다솔사를 찾아오는 것인지 이해가 간다.

 

 

 

 

 

다솔사에 와서 간구를 하면 이루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은 이곳 다솔사를 꼭 찾아오고는 합니다. 아이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그리고 이곳에 오면 정말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다솔사에서 만난 신도 한 사람이 연신 다솔사를 자랑한다. 가을이 되면주변 경관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천 다솔사. 올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드는 철에 다솔사를 찾아가 봉명산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다.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어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에 자장율사가 세웠는데 처음은 한계사라 불렸으나 그 후, 대청봉에서 절까지 물이 고이는 소()가 백 개소가 있다고 하여 백담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백담사는 십여 차례 소실되었다가 6. 25동란 이후인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는 등 역사적 곡절이 많은 절이다.

 

문화재로는 자장율사의 유물소동일좌와 인조 때 설정대사에게 하양한 칠층소형옥탑 등이 있으며, 암자로는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그 밖에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18791944)이 머리를 깎고 수도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만해의 대표작인 님의 침묵이 백담사에서 썼기에 더욱 유명하다.

 

 

 

첫눈이 내린 다음

 

백담사를 찾은 날은 유난히 쌀쌀한 날씨 덕분에 잔뜩 옷깃을 여미고 길을 나섰다. 날씨치고는 바람도 불고 첫눈도 내린 뒤라서 인가 괜스레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고 생각이 든다. 일요일이라서 인가 백담사를 오르는 용대리 백담사를 오르는 주차장엔 벌써 만차를 이루었다고 한다.

 

입구에는 백담사를 오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첫 눈이 내린 산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과 백담사에서 시간을 보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거처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섞여있는 듯하다.

 

백담사를 오르겠다고 하니 동행을 하신 스님덕분에 <사찰업무차량>이라는 스티커를 앞에 놓고 백담사로 향했다. 산길을 구불거리며 오르는 동안 몇 번인가 버스를 피해 곡예 아닌 곡예를 하면서 길 아래쪽을 보니 맑은 물이 흐르고 백 개의 웅덩이가 있다고 하더니 물이 한번 돌때마다 소가 만들어진 것이 보인다.

 

 

 

늘 보아도 늘 다른 절

 

백담사, 넓지 않은 절집 터에 여기저기 많은 전각들이 들어차 있다. 새로 불사를 한 많은 전각들 때문에 오히려 조금은 답답해 보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니면서 구경을 하느라 소란하다. 천년을 훌쩍 넘긴 고찰이라고 하기에는 예스러운 고풍이 부족한 듯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찬찬히 훑어보면 백담사만의 정취를 찾을 수가 있다.

 

백담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도 아니고 만해도 아니다. 백담사에는 무문관이라는 선원이 있다. 백담사 무문관은 큰절에서 계곡을 왼편에 끼고 위쪽으로 150여 미터를 올라가면 옛날 원통전이 있던 자리에 있다. 1998년 개설된 무문관은 3채의 목조건물이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무문관은 동안거나 하안거 때 수행을 하기 위한 스님들이 안거에 들면 밖에서 문을 잠가버린다.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는 안거 동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신다. 물론 이 동안에는 묵언(黙言)을 하신다고 하니 그 고행이야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 사시에 30cm 남짓한 공양구를 통해 밥과 국, 나물 등이 들어온다. 이것이 100일 동안 유일하게 바깥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다.

 

 

 

수행 중 몸에 이상이 생기면 쪽지로 상태를 적어 내보내면 거기에 맞게 약을 지어 들이거나 생식 등으로 처방을 한다고 한다. 무문관은 법랍 20년 이상 20안거 이상의 구참 수좌들을 대상으로 입방 자격이 주어진다. 그것도 미리 신청을 하지 않으면 방을 얻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무문관에는 노장스님들이 매 안거 때마다 참여를 하신다.

 

절집을 한 바퀴 돌아 극락보전 앞으로 가니 기와에다가 자신들의 염원을 적어 여기저기 가득 쌓아 놓았다. 절집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원이 적힌 기와를 보면서 참으로 사람이란 살아가는 자체가 고행(苦行)이요, 세상이 고해(苦海)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첫눈 내린 뒤 초겨울의 백담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어 있었다.

 

 

제천에서 청풍방면으로 가다가 보면 우측으로 KBS 드라마 촬영장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면 좌측의 도로변에 금성면 성내리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에서 동쪽으로 난 계곡을 따라 오르면 경관이 수려하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산1번지에 소재한 무암사를 오르는 길에는 신기전의 촬영장이 있고, 청풍호반 길에서부터 2.9km를 들어가면 무암사가 나타난다.

 

무암사를 오르는 길은 절경이다. 오르는 길 여기저기 볼만한 것들이 많아 지루한 줄 모르고 오를 수가 있는 절이다. 그저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서 오르다가 보면, 저 멀리 무암사 전각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쯤 도착하면 숨이 턱에 닿는다. 큰 길에서 거의 2km 정도 산길을 걸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무암사

 

무암사의 건축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의상대사가 건축하였다고 한다. 그 후 조선 영조 16년인 1740년에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암사의 입구에는 두기의 부도가 있는데, 그 중 한 개가 소의 부도로 죽은 소에서 나온 사리를 보관하고 있어 유명하다.

 

처음 절을 지을 때는 무림사라고 하였는데, 의상대사가 무림사를 세우려고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다듬어 힘겹게 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운반하여 준 덕에 절의 중창을 마무리하였다고 한다, 얼마 후에 소가 죽어 화장을 하였더니, 여러 개의 사리가 나와 소의 불심에 감동한 대사는 사리탑을 세우고 사람들은 무림사를 우암사(牛岩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1,200년 묵은 싸리나무로 만든 기둥

 

또한 대웅전 전면의 기둥은 수령 1,200년을 넘는 싸리나무의 기둥이라 하여 보존 가치가 높다. 극락보전 안에는 충북 유형문화재 제214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이 아미타여래좌상은 절을 중창한 해인 영조 16년에 함께 모셔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무암사는 크지 않은 절이다. 절 입구는 요사채의 한쪽으로 문을 삼았으며 안은 자로 가람을 배치하였다. 절 뒤편에는 칠성각과 산신각이 조금 떨어져 한 칸씩 지어져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본 무암사는 금수산 한편 기슭에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다. 주변의 경관이 빼어난 무암사는 봄서부터 사람들이 찾아든다고 하는데, 너무 나 이른 계절이라서 인가 찾아오는 발길이 끊어진 듯하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절문 앞으로 나오니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아선다. 그 밑에는 사람이 서서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고, 그 안에 암반에서 나오는 샘물이 있다. 그리고 옆에는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어 놓았다. 많은 절집을 다녀보지만 이렇게 바위가 있으면, 그것을 이용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곳이 바로 절인 듯하다. 금수산 기슭에 한가롭게 펼쳐진 무암사. 오늘 또 한 곳의 천년고찰을 만났다.

 

 

 

 

사람들은 절을 찾는다. 꼭 불자가 아니라고 해도 절을 찾는 이유는 가지가지이다. 아마도 절이라고 하는 특성상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암사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은 절집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전각 때문이다. 성인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 엎드릴 만한 공간이 있다.

 

비좁은 산신각과 칠성각을 돌아 나오니 다리가 뻐근하다. 좁은 전각 안에서 다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고 절을 한 덕분은 아닌지. 무암사에서 다시 한 번 겸손을 배운다. 절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겸손을 배우면서 스스로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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