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사, 법흥사, 정암사 등 삼사를 하루에 돌아

 

정유년에는 모든 사람들이 많이 힘들 거예요. 닭띠 해에 수많은 닭들이 살처분되는 것을 보아도 좋은 일은 아니죠. 그래서 올해는 고찰을 많이 찾아다니면서 많은 덕을 쌓아야 해요. 정유년 한 해를 잘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살아가기 아주 힘든 한해 일겁니다

 

8일 아침 이른 시간에 버스 안에서 고성주씨가 한 말이다. 경기안택굿보존회 회장이기도 한 고성주씨는 자신의 단골판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만신이다. 그 단골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행사로 매년 몇 차례씩 삼사순례를 돌아온다. 그렇게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단골들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는 것이다.

 

오전 730분 버스에 오른 순례자 일행은 원주 치악산 구룡사를 먼저 들린 후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까지 세 곳의 절을 하루에 돌아오는 여정이다. 차로 이동을 한다고 하지만 해가 짧은 음력 섣달에 하루에 세 곳이란 만만한 여정이 아니다. 원래 세 곳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돌기로 했지만 짧은 겨울 해 때문에 처음에 예정한 상원사 대신 구룡사를 먼저 들린 후 법흥사와 정암사를 돌기로 한 것이다.

 

의상대사와 아홉 마리의 용이 도술시합을 했다는 구룡사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에 소재한 구룡사는 매표소에서 걸어 들어가는 900m의 금송길이 일품이다. 이 길은 차가 다니는 길과 절을 찾아드는 보행자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따로 내놓았다. 치악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 한편으로 길을 낸 보행자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절로 가슴이 트이는 듯하다.

 

구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치악산 국립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8년인 66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구룡사는 라말려초 도선국사의 비보사찰 중 한곳이었으며 풍수지리적으로는 천년이 지난 신령한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아홉 마리의 용이 구름을 풀어놓은 천하의 명당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룡사는 거북 구()와 용 용()자를 사명에 사용하고 있다.

 

 

구룡사로 향하는 길이 금강소나무길이라는 것은 매표소를 지나 바로 좌측에 놓인 문화재 안내판을 보고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강원도 기념물 제30호인 황장금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장금표(黃腸禁標)란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벌채를 금지하는 표시고 작은 바위에 왕장금표라고 선각을 해놓았다.

 

치악산에는 목재로 사용할 수 있는 질 좋은 황장목들이 자라고 있어 이런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바위에 금표라는 글자를 새겨 벌채를 막은 것이다. 이 황장금표는 조선시대에 세운 것으로 건축자재로 사용하기 적당한 목재의 확보를 위해 황장목을 채벌하지 못하도록 전국의 황장목 생육지에는 많은 금표석이 서 있다.

 

 

대웅전 뜰에서 내려다본 풍광 압권

 

금강송 길을 걷다보면 구룡사의 넓은 뜰이 나온다. 주차장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중층전각으로 세운 사천왕문을 통과해 대웅전으로 오르게 되어있다. 시천왕문을 들어서면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그 위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인 보광루가 자리하고 있다. 이 보광루 아래를 지나야 대웅전 앞뜰에 설 수 있다.

 

보광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집이다, 맞배지붕으로 조성한 이 보광루는 배흘림기둥으로 누각을 올린 누각층은 대웅전을 향해 개방을 시켰다. 천장은 우물반자로 누마루는 우물마루로 꾸민 이 보광루 마루에는 한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멍석에 깔려 있었다고 전한다. 그 외에 구룡사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인 대웅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매표소에서 사천왕문까지 걷는 1km 정도의 구룡사 진입로는 가히 절경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즐거워진다. 대웅전 앞에서 바라다보는 치악산의 경치 또한 이름답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조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능선의 굴곡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한 구룡사는 그런 멋들어진 경관을 품고 있는 절이다.

 

올 봄 만물이 소생하고 나뭇잎들이 연두색 잎을 달기 시작하면 꼭 한 번 다시 찾아와야겠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금강송. 그 기운을 받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계곡 위로 낸 목책길을 걸어보고 싶다.

 

일출은 만나지 못했어도 마음의 문을 열어

 

나에게는 버릇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고난도 겪어보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나를 일으킨 것은 바로 여행이다. 항상 내 생활에 변화가 있을 때는 그저 간단한 차림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그렇게 여행에서 새로운 마음다짐을 하고 새 힘을 얻어 돌아오곤 했다.

 

그렇다고 장황하게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조용한 곳에 가서 2~3일 쉬면서 새로운 일을 맡아하게 될 사안을 정리하고 혼돈한 머리를 좀 쉬고자 할 뿐이다. 하기에 난 내 신변에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만나기 위함이다.

 

 

4일 오전 수원을 떠나 고성으로 향했다.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정수암 주지인 진관스님과 연락한 후 그곳에서 2~3일 묵으면서 2017년 내가 새롭게 해야 할 일에 대해 정리를 하고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찾아보고 그 잘못을 반성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늘 반성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던가? 완전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다만 그런 실수를 재차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마음의 다짐을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나에게 여행이란 중요할 수밖에 없다. 4시간을 더 달려 찾아간 정수암. 수원과는 달리 그곳은 눈이 쌓여 차조차 마음대로 오를 수 없었다.

 

 

지난해에 조성한 마애불과 조우하다.

 

정수암은 일 년에 두세 차례 찾아가는 곳이다. 그저 그곳에 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다.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나면 이곳저곳을 돌며 좋은 공기를 쏘이면서 스님과 이야기도 하고 인근 도시를 돌며 좋은 음식을 먹곤 하는 것이 고작이다. 해가지면 스님은 요사로 난 법당 한편에 묵을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히 생각을 한다.

 

일 년이란 시간을 재직했던 곳을 그만두었다.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2017년 한 달 동안 맡은 일을 처리하고 나면 2월부터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내가 맡은 일이라는 것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일이다. 늘 그런 일을 해왔지만 올해 맡은 일은 그동안과는 일과는 사뭇 다르다.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법당을 나와 지난해 조성한 마애불을 찾아보았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원하는 바가 있어 힘들여 조성한 마애불인데 아직 완성을 하지 못했다. 마애불 조성을 맡아하던 아우가 채 완성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여 조성한 마애불이지만 아직 완성을 하지 못한 것을 바라보면 영 마음이 편치가 않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일은 새로운 마음으로 대응해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중에는 남을 이용하고 난 후 더 이상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절을 한 바퀴 돌아본다. 눈이 쌓인 절의 경관이 지난해 여름보다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풍광에 적응해야 한다. 산신각이며 절 입구에 세운 일광월광보살 불이문 등. 전통을 지키지 않은 절이지만 금강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어느 것보다 정신수양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 고성 현내면 산학리를 찾는 까닭은 바로 이런 변화 때문이다.

 

자리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적응을 빨리해야 한다. 적응시간이 길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12일로 찾아간 고성 정수암. 그곳에서 새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기운을 얻는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떠나는 여행. 올해 첫 여행이지만 이곳에서 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기운을 얻어 돌아온다.

 

금강산 정수암 아미타여래마애불이 조성되던 날

 

지난 831일 하루 종일 강원도의 날씨가 흐렸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밀려드는 파도가 연신 해안도로로 넘친다. 91일은 음력 8월 초하룻날이다. 이날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에 소재한 금강산 정수암(주지 진관스님)에서는 뜻 있는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바로 새롭게 경내에 조성한 아미타여래마애불과 불이문으로 조성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의 점안식이 거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831일 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나뭇가지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하고 절 경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다음날 마애불과 불이문을 조성하고 점안식을 거행한다고 하는데 이런 일기라면 도저히 점안식을 행할 수 없을 것만 같다. 20여일 동안 준비해 온 점안식이 차후로 미워질 것 같은 불길한 마음까지 든다.

 

 

점안식 동안 날씨 쾌청, 소슬바람까지 불어

 

음력 8월 초하루인 91.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일기가 궁금해서이다. 문을 열고 보니 마애불을 조성하는 바위에 벌써 한 사람이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오전 1030분에 열릴 점안식을 준비하느라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김원주 작가는 벌써 20일 째 정수암에서 기거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제 시간에 점안식을 행할 수 있겠소?”

, 서두르면 가능할 듯합니다. 날씨까지 이렇게 좋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죠.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 정말 쾌청한 날이네요

오늘 점안식을 한다는 것을 아시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는 듯하네요

 

서둘러 마애불의 주변을 정리한다. 아침을 먹고 김원주 작가는 또 다시 마애불에 달라붙는다. 조금이라도 더 마애불을 다듬기 위해서이다. 주지인 진관스님도 걱정스럽게 마애불을 바라보다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만족하다는 뜻이다.

 

불사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으로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불사를 이룬 것은 우리 절이 최초일겁니다. 정말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죠. 아마 비용으로 따져도 수천만 원은 족히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잡아야 할 불사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가 합쳐지고 기일 안에 완성하겠다는 열심까지 더해져 이렇게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지 진관스님은 처음에는 도저히 제 날짜에 완성하지 못한 것 같았다고 한다. 며칠을 뜨겁게 달아오르는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기도 하고 비가 퍼붓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비옷을 입고 쉬지도 못하고 작업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20여일 만에 완성한 아미타여래마애불이다.

 

다리가 아파서 석공을 한 사람 불렀더니 이렇게 깊게 파놓아 얼굴만 부조로 조성하고 남은 부분은 선각으로 하기로 했는데 전체를 부조로 조성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습니다. 불사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저절로 이렇게 조성이 되었네요. 할 때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다 해놓고 나니 정말 기쁘네요

 

김원주 작가는 마음만 갖고 짧은 시간에 마애불과 불이문으로 사용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조성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조성하면서 불사란 마음만 먹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가졌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불사는 부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인 듯하다고 한다.

 

 

점안식 마치자 다시 비 쏟아져

 

마애불 정안식을 마친 후 불이문으로 조성한 정수암 입구에 세운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점안식을 마쳤다. 법당 안에서는 춤꾼 박은하의 살풀이춤이 이어졌다. 박은하는 어려서부터 리틀엔젤스 무용단원으로 활동을 하기도 한 기본기가 짜여진 춤꾼이다. 법당에 모셔진 약사여래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춤을 추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한다.

 

춤태가 다르네요.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우리 주지스님이 오시고 나서 우리 절은 행사를 할 때마다 정말 좋은 분들이 와서 공연을 해주시네요. 지금까지는 이런 문화행사는 꿈도 꾸지 못했어요

 

점안식에 참석한 신도들은 하나같이 절이 달라졌다면서 행복하다고 한다. 아침부터 그렇게 좋던 날씨가 가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산신각 조성을 위해 마련한 바위에 김원주 작가와 장순복 작가 부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그림에 비가 들이치지 않게 하려고 천막을 치고 작업을 계속한다.

 

소원 풀었어요. 저 바위가 원래 이 절에서 산신으로 모시던 바위예요. 언젠가 한 여인이 찾아왔는데 자신이 꿈에서 선몽을 한 절을 찾아 강원도로 와서 건봉사와 극락암을 돌아보았지만 자신이 본 절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발길 닿는 곳으로 왔다가 이곳 정수암이 자신이 선몽을 한 절이라는 것을 알고 이곳에 산신탱와와 불기 등을 마련해 주었다고 해요

 

그 여인이 꿈에 선몽을 한 바위가 새롭게 조각으로 산신조성을 하기로 했던 바위라고 하면서 모든 신도들이 그 바위로 산신각을 조성하려고 했는데 원을 풀었다고 한다. 그 역시 우연이 아니라고 하면서 정수암은 금강산 노인봉 아래 자리하고 있는 절로 이 절에 와서 공을 들이면 병이 낫고 아들을 점지한다고 전해진다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절로 조성 될 정수암

 

우리 절은 전통사찰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이문을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조성을 한 것이죠. 법당에 본존불로 모신 약사여래의 좌우협시불이 바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입니다. 약사여래는 동쪽을 담당하는 부처님이고 아마타여래는 서쪽을 관장하는 부처님입니다. 이번 불사로 인해 우리절이 모든 부처님을 모시게 된 것이죠. 앞으로 우리 정수암은 누구나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려고 합니다. 치유와 안정을 위해 누구나 찾아와서 편히 쉬면서 차도 마실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로 꾸밀 생각입니다:

 

정수암 진관 주지스님은 금강산 노인봉 아래 자리하고 있는 정수암은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라고 법문을 편 후 산신각까지 바위에 조성하고 나면 병든 사람들이 찾아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금강산 정수암. 마음을 빌어 불사를 이룬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진관 스님은 오늘 금강산 정수암 마애불 조성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아미타여래마애부처님의 이름으로 삼도의 괴로움을 여의고 아미타여래마애부처님의 형상을 보는 이는 다 해탈을 얻게 하소서라며 발원문을 낭독했다.

황매선원 법당에서 통일신라의 아미타삼존불을 만나다

 

지난 주말 찾아갔던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가곡리에 소재한 황매선원. 이곳에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아미타삼존불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발길을 재촉했다. 마침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김원주 도공이 이 절에 희견보살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을 한 것이다.

 

작업을 마친 희견보살을 전해주려고 찾아간 곳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가곡리 1114번지에 소재한 황매선원이라는 작은 암자이다. 이 암자는 현재 주변이 모두 신도시가 들어온다고 해서 들썩거리고 있는 곳이다. 가곡리 도로변에서도 한참이나 좁은 소로를 따라 들어가야 황매선원이 나온다.

 

황매선원에 도착하니 주지스님이 출타중이신지 아무도 없다. 집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스님 한분이 들어오신다. 황매선원 주지인 효산스님이다. 법당 한편에 붙어있는 희견당을 여니 안에는 모셔놓은 희견보살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180기 정도의 희견보살들은 그 앞에 보살을 모신 신도들의 이름을 써서 붙였다.

 

친견만 해도 몸과 마음이 병고에서 벗어난다는 희견보살

 

희견보살은 약왕보살(藥王菩薩)’의 전신이다. 72천년 세월을 공양을 드리고 나서 마침내 약왕보살이 되어 모든 중생들의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희견보살상을 볼 수 있는 곳은 법주사와 월정사, 그리고 강릉의 신복사지에서 만날 수 있다. 법주사 희견보살상은 머리에 큰 향로를 이고 있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 가면 국보인 팔각구층탑 앞에 우슬착지하고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희견보살상이 있다. 한편 팔은 돌기둥에 받치고 맞잡은 두 손에는 연꽃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릉시 내곡동에 소재하고 있는 신복사지에서도 희견보살을 만날 수 있다. 이 희견보살은 바로 법화경 약왕보살 본사품에 나오는 희견보살이다.

 

강릉 신복사지에 가서 희견보살상을 친견하였을 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아침에 해가 뜨는데 희견보살상 위로 해가 떠오르는 겁니다. 몇 번을 찾아가 여러 각도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지만 그 때마다 희견보살상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놀랐죠. 아마도 해가 그렇게 희견보살상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몸과 마음의 모든 병이 치유되는 듯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놀라운 작품을 조성하신 것 같습니다

 

 

효산스님은 자신의 몸이 불편해 스스로 몸을 태워 향을 만들어 공양을 함으로써 중생의 병을 고쳤다는 희견보살을 만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고 한다. 하기에 절에서는 보기 힘든 희견당을 마련하고 스스로 여러 곳에서 만난 희견보살을 그림으로 그리고 조각으로 조형했다. 그런 효산스님의 노력을 김원주 도공이 도자기로 희견보살을 소성한 것이다.

 

희견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효산스님은 홍천이 고향으로 15년 전 쯤 황매선원이 있는 마을에서 기도 중이었다고 한다. 당시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 가곡리 일대에서 많은 유물들이 나와 도벌꾼들이 주민들에게 막걸리 등을 사주고 유물 등을 밀반출했다고 한다. 큰 지석묘 안에서는 청동검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는 이야길 들었다는 것이다.

 

 

법당에 모셔놓은 석조아미타삼존마애불

 

워낙 더운 날이라 얼음에 탄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에 법당에 오래 묵은 석불이 있다고 한다. 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기꺼이 승낙을 하신다. 원래 밖에 모셔놓았는데 사람들이 하도 손을 타 법당 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반쪽이 난 마애삼존불 한 기가 한편에 놓여있다. 두 쪽으로 갈라졌던 것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원래 제가 이곳에 와서 기도를 시작한 것도 이 삼존불 때문이었어요. 15년 전에 이곳으로 들어와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 삼존불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죠. 원래 두 쪽이 나 있던 것을 붙인 것인데 마을주민들이 전하는 이야길 들으면 완전한 것을 누군가 이렇게 파손을 시켰다고 하네요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아미타삼존마애불은 크지 않은 석판에 조형한 것으로 좌측의 협시보살은 완전하고 중앙 본존 아미타불은 반파가 되었으며 우측 협시보살은 연화대만 남아있다. 이 아미타삼존마애불은 특이하게 좌우 협시보살의 연화대가 중앙 본존불의 연화대 아래서 가지가 뻗어 나온 형태로 조각을 하였다.

 

 

예전에는 완전한 삼존불상이었는데 누군가 이렇게 깨트렸데요. 아랫부분 두 쪽을 찾아서 붙여 놓았는데 아마 남은 부분도 이곳 어디엔가 묻혀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절을 다 뒤집을 수가 없어서 찾지 못하고 있는데 원주시에 이 조각이라도 문화재로 지정을 해달라고 요구를 해도 소식이 없습니다

 

황매선원의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비록 반만 남았다고 하지만 그 조형방법이 지금까지 보던 석조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런 소중한 문화재를 제대로 조사도 해보지 않고 있는 관계당국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원주시 해당 부서에서는 하루 빨리 이 석조아미타삼존불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마치고 문화재 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소중한 문화재를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문화재의 훼파와 다름없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한 것이 어떻게 표현을 할 수가 없네요. 점심공양으로 국수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먹을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3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에 소재한 정수암(주지 진관스님)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수암 법당 내에 주불로 모신 약사여래불의 개금을 마치고 점안식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날 점안식을 마친 후 식후 행사로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인 경기도살풀이와 김원주(, 54)의 행위예술이 펼쳐졌는데, 두 손을 모은 채 행위예술을 관람하고 있던 한 신도(, 김화연)의 이야기이다.

 

정수암은 옛 절터에 세워진 인법당이다. 인법당이란 작은 토굴로 부처님을 모셔놓은 법당과 스님이 묵는 요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암자를 말한다. 산학리에서도 맨 위쪽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정수암 뒤편으로는 금강산 노인봉이 자리하고 있으며, 절 앞으로 몇 발만 걸어나가도 금강산 봉우리가 보이는 곳으로 강원도 중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인연따라 조상한 약사여래불 개금불사

 

개금장인 불모 원공스님을 모시고 약사여래불 보수를 하려고 했더니 보수를 하기에는 너무 칠이 많이 벗겨져 보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시면서 개금을 해주시겠다는 거예요. 이 정도 크기의 약사여래불을 개금하려면 그 비용이 일천만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스님께서 개금으로 보시를 하시겠다고 하는 겁니다

 

정수암 진관주지스님은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처음에 이 정수암을 짓고 나서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첫 개금불사를 하신 불모가 바로 원공스님이었다고 한다. 20년 만에 자신이 첫 개금을 한 약사여래불을 만난 원공스님이 불심이 일어 비용을 받지 않고 개금불사를 맡아주었다는 것이다.

 

개금불사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우선 동판으로 조성한 약사여래불의 칠을 모두 벗겨내고 그 위에 옻칠을 한 다음, 그 옻이 다 마르기전에 금판을 한 장씩 붙여나가는 작업을 계속한다. 숙달된 개금공의 경우에는 적은 금판을 이용하지만 그 비용도 수백만원이 더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공스님과 약사여래불의 상호를 그린 불모 여윤구 화공의 일주일이 넘는 작업 끝에 약사여래불의 개금불사가 끝이났다. 불사를 마친 뒤에는 상호를 소지로 가려놓고 오색실을 느려 잡스런 것의 출입을 막는다. 83(7월 초하루)을 맞이하여 10시가 넘은 시간에 속초 보광사의 회주인 석문큰스님을 모시고 점안식을 거행하게 된 것이다.

 

  

 

피서철에는 텅텅비는 절에 사람들 그득

 

고성군 현내면은 지리적 특성상 피서철이 되면 초하루에는 몇 사람 모이지 않는다. 모두가 피서철이 되면 바닷가인 고성군에는 가장 많은 손님들이 찾아들기 때문에 생업에 먼저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내면은 인근에 화진포 등 몇 곳의 해수욕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신도들이 운영하는 업소가 피서객들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시예불시간인 10시가 가까워졌는데도 사람들이 모일 기색이 안보인다. 멀리 경기도 여주, 평택, 남양주 등에서 찾아 온 진관스님의 지인들과 속초시에서 달려 온 신도들이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예불시간보다 뒤늦게 땀을 흘리며 찾아온 신도들로 금방 법당 안이 꽉 찼다. 적은 암자인 인법당은 꽉 찼다고 표현해도 20~30명 남짓한 신자들이 자리를 했을 뿐이다.

 

속초 보광사 회주 석문큰스님의 집전으로 점안식이 거행되었다. 1시간에 걸친 점안식을 마친 후 신도들은 법당에 느려놓았던 오색실을 자르기 시작한다. 이 오색실을 몸에 지니면 각종 사악한 기운이 달라붙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춤 공양으로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인 경기도살풀이 이수자인 김규미의 살풀이춤 공연으로 이어졌다.

 

 

부처님의 출생과 마음을 몸으로 표현

 

약사여래는 불교에서 중생의 모든 병을 고쳐준다는 부처(여래)를 말한다.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를 말하는 것으로 아미타불의 48 서원과 함께 약사여래의 12대 서원이 유명하다. 약사여래의 12대 서원은 1.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비치게 하려는 원, 2.위덕이 높아져 중생을 깨우치도록 하려는 원, 3.중생이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 결핍하지 않게 하려는 원, 4.중생으로 하여금 대승의 가르침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원, 5.중생으로 하여금 좋은 일만을 하여 삼취정계를 다 갖추게 하려는 원, 6.불구자의 모든 근이 완전해지게 하려는 원 등 12가지 원을 말한다.

 

살풀이춤 춤 공양에 이어 정수암 법당 입구에 걸린 오색천 중앙에 검은 천이 한 장 깔렸다. 그 위에 웅크리고 엎드린 김원주 행위예술가는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온은 33도를 웃돌고 있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하는데 그 땡볕 아래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오죽할까?

 

 

 

 

천을 눌러놓은 돌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법당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걷는 일곱 발은 바로 부처님이 탄생할 때 일곱 발을 옮기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선언을 한 것을 뜻한다. 이는 온 세상이 모두 괴로움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는 뜻이다. 그런 부처님의 마음과 정수암 주불로 모신 역사여래불이 모든 이들을 모두 강건하게 만들기 위한 염원을 담고 있는 몸짓이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개금불사 점안식을 마쳤다. 한편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노보살들의 마음을 누가 움직였을까? 그토록 먹먹해질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금강산 정수암의 약사여래불 점안식. 보기 힘든 점안식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한 예술가의 몸짓이 이렇게 마음 깊이 각인되는 현장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올 여름 더위는 저만큼 물러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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