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1번지 천성산에 소재한 홍룡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원효스님께서 창건했다는 절이다. 당시에는 ‘낙수사(落水寺)’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송고승전』에 의하면 원효스님께서 천문을 보니 중국 태화사 승려들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미리 알고 구했다고 한다.

원효스님은 곁에 있던 판자를 하늘로 던졌는데, 그것이 당의 태화사까지 날아갔다는 것이다. 태화사 스님들은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져 놀라 뛰쳐나왔는데, 그 순간 산이 무너지면서 절이 매몰이 되었다는 것이다. 놀란 태화사 승려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판자를 집어보니 ‘해동원효 척판구중’이란 글씨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즉 원효스님이 널판자 하나를 던져 많은 무리를 구했다는 이야기다.

홍룡폭포와 관음전

천명의 승려가 원효의 제자가 되다

이 일로 인해 천명의 중국인 승려가 신라로 와 원효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원효스님께서는 천성산에 89개의 암자를 짓고, 이 승려들을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이 곳 홍룡사에서 바로 판자 한 조각을 던졌다고 하는데, 홍룡사는 원효스님과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하는 곳이다.

홍룡사에는 홍룡폭포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이 폭포는 천룡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홍룡폭포를 찾아 홍룡사를 찾아들어갔다. 산신각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홍롱폭포가 보인다. 80척에 달한다는 폭포는 물이 많이 즐었다. 폭포 좌측으로는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고, 우축으로는 좌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천자형으로 흘러내리는 홍룡폭포

세 갈래로 나뉘어져 떨어지는 홍룡폭포,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흐르는 물은 가히 절경이다. 물이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물이 없다고 그 아름다움이 어디로 가겠는가? 떨어진 물이 고인 소에는 낙엽이 떨어져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어찌 인간세상에 이런 절경이 있을 것인가?

이리저리 각도를 재보지만, 그 아름다움을 다 담아낼 수가 없을 것만 같다. 무엇을 탓할 수 있으랴? 지금도 날이 좋은 날에는 물방울이 튀면서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잔뜩 흐린 날 찾아간 홍룡폭포는 그렇게 소리 없이 암벽을 타고 내리기만 한다.



원효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관음전에 들려 예를 올리고, 돌아내려오는 길에 몇 번이고 폭포를 돌아본다. 그저 저 맑은 물속에서 한 마리 천룡이 금방이라도 물길을 헤치고 하늘로 오를 것만 같다. 아마 이 아름다움은 또 몇 날 동안 나를 답사의 길로 내몰 것만 같은 느낌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연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그 중 연리목이나 연리지를 보면, 꼭 무엇인가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연리목이란 나무와 나무가 결합이 되는 것이고, 연리지란 가지와 가지가 결합이 되어 한 나무처럼 자라나는 것을 말한다. 남원 선원사에 가면 어미나무와 아들나무에 대한 가슴 저린 나무가 있다.

아들나무를 위해 속을 다 빼준 어미나무. 아마 우리 세상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까? 이 나무를 보고 어머니를 그리며,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던 것도 정말 사무치는 그리움과 부끄러움 때문이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애틋한 어머니의 사연. 과연 사람들은 그 나무에게서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까?


자식나무를 살리려고

과학적으로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전하는 이야기대로라면 그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무의 수령을 보아도 상당히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선원사는 신라 때 창건된 절이다. 언제 부터인지 현재 일주문 옆에는 큰 고목 한 그루와 작은 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은 나무는 늘 큰 나무에 가려 햇볕을 제대로 받고 자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세상이 흘러 튼 나무는 점점 더 실하게 자라는데 비해, 그 옆에 자라는 작은 나무는 늘 잎이 실하지 못하고 주변 나무들보다 생육이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두 나무를 어미나무와 자식나무라고 불렀다.


담장 안에 있는 나무는 속이 텅 비어버렸다. 담밖의 가지에 걸쳐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어미나무의 가지 하나가 자식나무의 가지 사이에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태풍이 친 것도 아닌데, 어상하게 어미나무라는 큰 나무가 자식나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어미나무는 점점 자식나무 쪽으로 기울어졌고, 자식나무에게 연결된 가지는 자식나무의 한 줄기처럼 단단히 붙어버렸다. 그런데 그 뒤로 이상하게 어미나무의 밑 둥이 비어가는 것을 보았다. 자식나무에게 자신의 속을 다 내주고 있는 어미나무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미나무의 속은 완전히 비어졌다. 그 어미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자식나무는 잘 성장을 하여 커다란 느티나무로 변했다. 그 가지에는 여전히 어미나무의 가지를 붙든 체. 지금은 기운이 없는 어미나무가 자식나무에게 기대고 있는 형상이다. 늙고 병든 어머니를 부축하고 있는 자식의 모습과 같은 향상으로.


속이 텅 빈채로 살아가는 어미나무

연리목에게서 배우는 어머니의 헌신

“사람들도 저렇게 자식을 키우죠.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은 다 똑 같아요. 자식을 위해 속을 저렇게 썩이는 겁니다. 저런 부모님의 마음을 자식들이 알고 있다면, 다시는 속을 썩이는 일이 없을 겁니다.”

선원사 운천 주지스님의 이야기다. 늘 저 나무를 보면서 어미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 나무가 그렇게 속이 비어버린 까닭은 바로 자식을 위해서다. 속이 다 비어버린 고목. 껍질만 남은 나무는 벌어진 껍질 사이로 담이 보일 정도이다. 그렇게 자식을 위해 속을 비어버린 어미나무다.


속이 빈 어미나무. 껍질만 남아 갈라진 곳으로 담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참담한 마음이다. 우리 어머니도 저런 희생의 마음으로 날 키웠을 텐데. 이제 후회를 해보아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어머니의 마음. 내일은 꽃 한 다발 사들고 찾아뵈어야겠다. 괜한 눈물이 흐른다. 낙엽이 쌓인 모습때문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남원 도통동에 자리한 천년고찰 선원사. 선원사는 신라 헌강왕 1년인 875년에 도선국사가 처음으로 창건을 했다고 전해진다. 도선국사는 남원의 지형이 주산인 백공산이 객산인 교룡산에 비해 지세한 허약한 것을 알고, 백공산의 지세를 높이고자 만복사와 대복사, 그리고 선원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신원사 경내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이 모과나무는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에 자라고 있으며, 어떤이는 수령이 600년이 지났다고도 하고, 어림잡아도 수백년은 지났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나무의 생긴 모습으로 보아서는 족히 수백년은 넘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 모과나무는 가슴뫂이의 둘레가 2.5m 정도에 높이는 윗가지를 잘라냈다고 하는데도, 15m는 족히 되보인다. 이 모과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형상들이 보인다.


수령 600년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남원 선원사 모과나무

옹이가 박힌 모과나무

모과나무의 표피에는 크고 작은 혹과 같은 돌기가 돌출이 되어있다. 그런데 그 모과나무에 돌출된 부분을 한참 쳐다보고 있노라면, 희안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안에는 사람들도 있고, 부처님도 계시다. 나한도 있고, 동물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떻게 이런 모습이 보이는 것일까?

물론 정말 그런 모습이 모과나무에 있을리가 없다. 허나 아주 오랜시간 이렇게 자라난 모과나무의 표핍에 돌출이 된 돌기들이 야읏한 형상을 만들고 있다. 그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한참이나 신기해 한다. 오랜 새월을 지나면서 변해버린 모과나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를 받았을 테니,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 천년 넘는 세월을 오래도록 염불소리를 들었을 테니, 부처의 심성을 닮기도 했을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만든 기이함

사람들은 이 모과나무의 표면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 누구는 저건 나한상을 닮았다고도 하고, 누구는 저런 좌불이라고도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바라보면 비슷한 것도 같다. 오랜 세월 스스로 그렇게 치유를 하기 위해 생긴 흔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 기이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과나무를 보고 발길을 멈추고는 한다.

나도 그 틈에서 바라본았다. 나름대로 구분도 해보는 재미가 있다. '저건 나한상, 이것 좌벙한 부처, 저건 토끼와 같다. 그리도 저건 영낙없는 두꺼비다'라고. 그런 재미를 붙이다 보니 선원사를 찾을 때마다 이 모과나무를 먼저 훑어보게 된다. 오늘은 또 무슨 형상을 하나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선원사 모과나무. 그렇게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었다면, 그 또한 덕을 쌓은 것이 아닐까?

모과나무는 어디나 있다. 모과는 장미과에 속하는 교목으로 중국이 원산지이다. 모과나무는 높이가 10m 정도까지 자라나며, 가을에 노랗게 익는 열매가 달린다. 이 모과나무는 차를 끓여먹기도 하고, 향기가 좋아 방안에 놓아두면 상쾌한 기분이 돌게한다.

모과나무를 수도 없이 보아오고, 에전 집안에는 모과나무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수확철이 되면 이상하게 벌레가 먹고, 그나마 몇개 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난생 처음으로 정말 실한 모과나무를 만났다. 한 그루에 300여개는 괼만한 모과가 달린 나무이다. 단 한 그루 뿐인 모과나무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모과가 달렸을까? 정말로 불가사의하다. 그 모과나무를 열심히 찍어왔다. 혼자 본다는 것이 아까와서.






향나무가 마을의 길흉을 점친다. 향나무의 생육이 좋으면 마을에 경사가 겹치고, 생육이 안좋으면 마을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한다. 수령 400년이 훨씬 지난 이 향나무는 연기군 조치원읍 봉산리 128의 1에 자리한다. 천연기념물 제321호인 이 향나무는 입구에 철책으로 문을 달아 보호를 하고 있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한다. 원산지는 한국과 중국 등이며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이 나무는 강화 최씨인 중용이 심었다고 전하는데, 후손들이 잘 가꾸어 놓았다. 향나무를 많이 보았지만 봉산동 향나무를 보는 순간,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런 나무가 도대체 어떻게 자라난 것일까?


천연기념물 제321호 연기 봉산동 향나무 전경(위)과 가지를 받쳐놓은 버팀목(아래)

봉산동 향나무, 용이 따로 없네.

수령이 400년이 지난 이 향나무는 위로 자라지를 못했다. 나무는 3.2m 정도에서 옆으로 가지를 뻗었는데, 그 가지를 수많은 통나무로 버팀목을 만들어 괴어놓았다. 버팀목은 사방으로 늘어놓고, 그 위를 다시 옆으로 늘어놓아 흡사 가지가 버팀목을 싸안고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밑동은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있으며, 위로 오르면서 가지가 뒤틀어져, 마치 용이 엉켜있는 듯한 모습이다. 잔가지 역시 그렇게 엉켜서 자라났다. 수 십 마리의 용들이 사로 엉켜있는 듯한 봉산동 향나무. 그 앞에서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 오랜 세월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밑동에서 올라가는 가지들은 용이 뒤틀고 있는 형상이다. 많은 모습들이 그 안에 있다.

밑동의 둘레가 2.5m 정도나 되는 이 나무는 극진한 효자인 최중용이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효성을 자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심었다고 전한다. 그래서서인가 자손들은 이 나무를 끔찍이 위하고 있다. 향나무의 주변에는 탑 등으로 정리를 하고, 향나무 둘레는 축대를 쌓아 보존을 하고 있다.



위로 오른 가지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다

요즈음 분재라고 하여서 나무를 철사 등으로 고정을 시켜 멋진 모습으로 키워낸다. 가끔 이런 나무들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이 향나무 앞에 서는 순간 그런 생각이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적으로 자라난 나무가 예술적으로 자랄 수가 있었을까?

한 마리 용이 몸을 뒤틀고 있는 모습도, 아름다운 무희가 살포시 버선코를 내딛고 한발자국 뛰어 오르는 모습도, 나무에 달린 커다란 눈이 사람들을 향해 안녕을 바라는 듯한 모습도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에도 이렇게 자연의 조화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자연의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자연의 조화를 느끼게 하는 이 향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지났다.

석송령이나 반룡송처럼 소나무가 옆으로 가지를 뻗은 것은 보았지만, 이렇게 향나무가 옆으로 자라난 것은 보기가 힘든 것 같다. 그런데 이 봉산동의 향나무는 그대로 자연을 느끼게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 하나를 본 것이다. 이것보다 아름다운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석양에 향나무 곁을 떠나지 못하는 발길을 억지로 재촉해본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