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이란 국가가 징수한 곡물을 모아 보관하고, 이를 다시 개성에 있는 경창으로 운송하기 위해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했던 창고를 말한다. 조창이 처음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 부터였다. 고려시대인 10세기 말에 지방제도를 확립하면서, 이를 토대로 바닷가 또는 강변에 조창을 설치하고 세곡을 수납했다. 해안에 설치되어 해로를 이용해 세곡을 운송하던 조창은 해운창(海運倉)이라 했으며, 강변에 설치되어 수로를 이용하던 조창은 수운창(水運倉) 또는 강창(江倉)이라고 불렀다.

 

해운창은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 있었고, 수운창은 한강 유역에 설치되었다. 한강 유역의 수운창 중에는 원주 부근에 흥원창이, 충주 부근에 덕흥창이 있었다. 수운창에는 세곡 200석을 실을 수 있는 작은 선박을 두었으며, 이를 평저선이라고 했다. 한강 유역의 평저선은 흥원창에 20척, 덕흥창에 21척이 있었다.

 

  
▲ 남한강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흥운창이 있었다. 앞으로 보이는 물길이 여주로 흘러가는 남한강이다.
ⓒ 하주성
남한강

  
▲ 그림 1796년에 그려진 정수영의 『한·암강 명승도감』
ⓒ 하주성
명승도감

 

흥원창을 돌아보다

 

이중 흥원창은 고려시대 13개 조창 중의 하나로 원주 은섬포에 있었다. 은섬포는 현 원주시 부론면 흥호 2리 창말지역으로 추정한다. 1796년에 그려진 정수영의 '한·암강 명승도감'에 보면 뒤로는 산이 솟아있고, 강가에 집들이 들어차 있는 그림이다. 우측에는 흥원창(興元倉)이라고 쓰여 있다. 그림 우측에 보이는 기와집이 창고였을 것이고, 남은 초가는 흥원창을 지키는 군사들이 머물던 군막 정도로 여겨진다.

 

흥원창은 원주를 비롯해 평창, 영월, 정선, 횡성,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지역의 세곡을 보관하였으며, 한강의 수로를 이용하여 개경의 경창으로 세곡을 운송했다. 이 흥원창이 있던 흥호리는 바로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한다. 이 물이 횡성읍으로 오면서 금계천과 합류하면서 섬강이 된다. 그리고 원주로 들어오면서 국민광광지가 있는 간현리를 지나 건동, 문막을 거쳐 흥호리에서 남한강과 합류를 한다. 이 합류지점에 흥원창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 흥원창의 돌비가 있는 곳 앞으로는 세 갈래로 갈라진 물줄기가 보인다. 석비 앞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면 좌우로 물길이 있고, 그 물길이 합해져 맞은편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석비 맞은편에는 기암절벽이 서 있고, 여주를 향해 흐르는 물길이 잔잔하다. 이곳은 '남한강 따라가는 역사문화 체험길' 여강 길의 시작점과 끝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시작한 강길 걷기는 제3코스로 '바위늪구비길'이라고 하여, 전체 여강 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을 꼽는다.

 

  
▲ 갈길 표시 이곳에서 남한강의 강길 제2코스인 바위늪구비 길이 시작이 된다.
ⓒ 하주성
남한강

  
▲ 공사현장 흥원창 일대에도 이미 중방비들이 들어와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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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원창

 

이곳도 어김없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남한강의 가장 아름답다는 바위늪구비 부터 시작해 흥원창까지 가는 길. 이미 바위늪구비는 파헤쳐지고 있는 지가 오래 되었다. 바위늪구비는 멸종 2종 보호식물인 '단양쑥부쟁이' 집단 군락지로 알려져 잡음이 일었던 곳이다. 그곳도 한창 중장비가 굉음을 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흥원창을 찾아드니, 이곳이라고 다름이 없다. 흥원창 돌비석 건너편 왼편 위쪽에 이미 중장비들이 들어 와 있다. 여주로 흐르는 남한강의 물길에는 오탁방지막이 쳐져 있다.

 

여기까지가 남한강의 정비지역일까? 아니면 이 위로 계속해서 올라 충주지역까지 닿으려는 것일까? 단순히 4대강 정비라는 이야기가 믿음이 가질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얼마 전인 3월 13일 여주'여강선원'의 개원식에 참석을 하고 난 후,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와 시인 신경림 선생 등이 바위늪구비가 건너다보이는, 여주군 점동면 도리 강가에서 강을 지키지 못한 죄스런 마음을 '고수레'를 하면서 달랬다.

 

  
▲ 고수레 지난 3월 13일 여강선원의 개원식을 마치고 도리를 찾은 신경림 시인을 비롯한 사람들이 강에 사죄를 하며 고수레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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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레

  
▲ 중장비 바위늪구비 일대에 들어와 있는 중장비들. 맞은 편 도리에서 바라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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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늪구비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바위늪구비 일대는 골재채취 차량들과 강바닥을 파대는 포클레인 등으로 법석을 피워대는데, 무심한 바람결에 마른갈대만 휘날리고. 이제 흥원창 앞에까지 들어온 중장비로 인해, 남한강 전체는 파헤쳐지고 부서지고 있다. 흥원창 앞 남한강에 그 많던 새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마리도 찾아 볼 수 없고 답답한 마음을 3월의 바람이 헤집고 지나간다. 



어제(2월 8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도 하루 종일 계속된다. 며칠 전인가 강천보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강천보 현장을 돌아보았다. 주민의 이야기는 남한강의 암반층을 폭파하고 밤새도록 그곳을 긁어내는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한강은 4대강 중에서도 강 길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강천보 상류인 바위늪구비는, 보호종인 동식물이 서식을 하고 있는 생태보존 지역이기도 하다. 그동안 방송 등에서 여러 번 지적을 하여, 공사 중단이 된 곳이기도 하다.

 

강바닥 돌을 다 깨어내

 

  
▲ 산산조각 쪼개진 바위 강천보 바닥을 쪼아낸 돌이 쌓여있다. 밤새 불을 켜고 공사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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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보
  
▲ 간판 '생명이 깨어나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한강'이란다. 과연 그럴까?
ⓒ 하주성
광고

남한강에 많은 생명이 사는 것은 적당한 늪지와 바위, 그리고 여울과 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울도 늪지도, 그리고 물길을 조절하는 바위도 다 사라지고 만다면, 과연 남한강은 제몫을 다할지 궁금하다. 한편에 커다랗게 눈에 띄는 글이,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든다. '생명이 깨어나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한강'이라니. 이미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은, 다 헤집고 있는데 저런 문구를 써서 붙이다니.

 

여주는 남한강과 더불어 살아 온 고장이다. 이곳 물줄기를 따라 수많은 배들이 왕래를 하고, 수많은 생명들이 이 강에서 연명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 많은 사람들도 이 물을 생명의 원천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 아름답던 남한강이 모두 뒤집히고 있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흐르던 물길도, 군데군데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던 바위도 사라지고 있다. 자정 능력을 갖고 있던 자갈과 모래는 파서 산을 만들고 있다.

 

이미 공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 24시간 공사를 계속하고 있어 잠을 편안히 잘 수 없다는 인근 주민들의 말처럼, 공사는 그렇게 급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렇게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 강물을 맑게 하고 생명이 살게 만든다고 하면, 저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터인데 말이다.

 

마음이 갈라지는 지역주민들

 

  
▲ 현수막 지역민들의 단합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음들이 갈라지고 있다.
ⓒ 하주성
현수막

  
▲ 바위늪구비 공사중단 명령이 내려진 강천리 일대의 바위늪구비. 저 안에 중장비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 하주성
바위늪구비

 

이호대교를 건너면서보니, 다리 옆으로 쌓아놓은 흙더미가 만만치가 않다. 그 흙더미 앞으로 연신 덤프트럭들이 줄을 이어 달린다. 덤프트럭의 짐칸에는 강에서 쪼개 낸 돌들이 실려 있다. 남한강의 암벽이나 바닥의 돌들은 전국에서도 최고라고 한다. 그만큼 바위나 암벽이 아름답다. 그 뿐인가? 그 바위에는 많은 생물이 붙어 자라고, 그것을 먹기 위한 물고기들이 유영을 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철새들도 남한강을 찾아온다. 생명은 생명을 불러 오는 순환을 거듭하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 자연을 지켜왔다.

 

바위늪구비의 강 길 끄트머리인 강천리로 들어갔다. 강가에 붙어있는 현수막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단양 쑥부쟁이보다 지역 주민이 우선이다'

'남한강 살리기 방해하지 마라'

 

언제부터인가? 서로 단합하던 주민들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4대강 살리기는 서로의 사고를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패를 이루게 만들었다. 전국의 모든 국민을 하나로 뭉쳐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사람들이, 작은 지역 주민들조차 서로 목소리를 높이게 만든 것이다.  

 

아름다운 남한강, 이제 어떻게 할래?

 

  
▲ 푯말 굴암리 강가에 세운 바위늪구비 푯말. 이곳도 다 파헤쳐질 것인가?
ⓒ 하주성
굴암리

  
▲ 아름다운 남한강 굴암리에서 강천리 쪽을 바라보다. 비안개가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남한강이다.
ⓒ 하주성
남한강

 

씁쓸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강천리를 떠나면서 보니, 저 안쪽에서는 아직도 중장비가 공사를 한다. 무슨 공사를 하는 것일까? 공사 중단 명령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그것과는 관계가 없는 공사인가 보다. 강천리를 떠나 굴암리로 들어섰다. 이곳도 바위늪구비의 한 곳이다.   

   

'바위늪구비는 남한강의 물이 늘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늪이다. 강물이 늘면 남한강이 되고, 강물이 줄어들면 늪이 된다. 단양쑥부쟁이가 서식하는 척박한 땅에, 고라니와 꿩이 나오는 갈대숲이 이어져 있다.'

 

강가에 세운 푯말의 글이다. 강가로 들어가 강천리 쪽을 바라본다. 비가 내려 물안개가 자욱한데, 철새 한 마리가 소리를 내고 날아간다. 이런 모습을 보고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남한강을 글로 표현했다. 굴암리 강 쪽에도 작은 중장비 한 대가 작업을 하고 있다. 남한강의 모든 지역이 이렇게 중장비로 파헤쳐지고 있는 중이다.

 

  
▲ 깃발 굴암리 강가에서 벗어난 둑에 꽂힌 깃발. 저곳까지 공사를 하려나?
ⓒ 하주성
깃발

 

비가 계속 추적거리는데 마음이 아프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팔대장림, 은모래금모래, 마암, 그리고 그 많은 나루터, 이름 모를 암벽들. 그리고 물이 줄면 숱하게 얼굴을 드러내는 작은 바위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우리 눈앞에서 망가져 간다. 이 다음에 우리는 후손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까? 대단한 조상들이라고 후손들이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후손들의 자연재산을 마음대로 훼손한 몹쓸 조상들이라고 할까? 역사가 두려워진다. 후대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지.


남한강 유역은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들이 자리한 곳이다. 흔암리 선사유적지를 비롯하여, 신륵사, 영릉은 물론 남한강을 중심으로 해로를 이용한 상업이 활발할 때, 17개의 나루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남한강 유역에 대한 정확한 생태조사 등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공사를 강행한 당국은 어떤 이유로도 비난을 면키가 어렵게 되었다.

 

  
▲ 부라우나루터 이 부라우나루터 밑이 강천보 건설현장이다.
ⓒ 하주성
부라우나루터

  
▲ 암벽 강천보 건설로 인해 훼손이 될 위기에 있는 암벽, 남한강의 절경 중 한 곳이다.
ⓒ 하주성
암벽

 

아름다운 여강 길 모두 사라져


환경을 살리고 수질을 높인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시작을 한 4대강 정비사업. 그러나 정작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인한 환경피해는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방송 등에서 계속 문제를 삼은 여주의 4대강사업은, 심각한 자연환경위협을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여주의 많은 사람들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희귀보호 식물이나, 자연생태 습지 등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걱정이다.

 

멸종위기 식물 2급 단양쑥부쟁이 집단 서식지

 

국화과 식물인 단양쑥부쟁이는 1937년 충주 수안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우리의 토종식물이다. 쑥부쟁이는 하천변 모래밭이나 자갈밭 등에서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멸종위기 2급에 속하는 소중한 식물자원이다. 이 쑥부쟁이는 강천보 공사 현장인 부라우나루터 위로부터 강천면의 바위늪구비 자연생태 보존지역까지 남한강 유역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이 단양쑥부쟁이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강천보 인근의 마구잡이식 공사로 인해, 그나마 개체수가 많지 않은 단양쑥부쟁이가 심각한 위협에 빠져 있다.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다. 바위늪구비 일대에 남한강 물이 여울지는 늪지 일대는 자연생태 보전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수많은 동식물들이 자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이곳 바위늪구비 일대는 단양쑥부쟁이 뿐만이 아니라, 멸종위기 2급 파충류인 표범장지뱀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태자연 동식물이 살아가는 남한강 주변이, 정확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리한 공사 강행으로 인해 환경보전에 심각한 위협을 준다는 것이다.

 

  
▲ 쑥부쟁이 강천보 공사현장 인근에 핀 단양쑥부쟁이
ⓒ 하주성
단양쑥부쟁이

  
▲ 습지안내 바위늪구비가 소중한 생태자원 보전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
ⓒ 하주성
바위늪구비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역사의 흔적도 위험하다

 

강천보 현장을 비롯하여 남한강 일대에는, 아름다운 암벽지대가 산재해 있다. 이러한 암벽이나 강물 위로 솟아난 아름다운 암반들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강천보 현장의 부라우나루터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자연 암벽이 자리하고 있어, 남한가의 절경 중, 한 곳으로 뽑는 곳이다. 이러한 암벽이 훼손될까 걱정을 한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남한강 유역은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들이 자리한 곳이다. 흔암리 선사유적지를 비롯하여, 신륵사, 영릉은 물론 남한강을 중심으로 해로를 이용한 상업이 활발할 때, 17개의 나루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남한강 유역에 대한 정확한 생태조사 등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공사를 강행한 당국은 어떤 이유로도 비난을 면키가 어렵게 되었다.

 

  
▲ 부라우나루터 이 부라우나루터 밑이 강천보 건설현장이다.
ⓒ 하주성
부라우나루터

  
▲ 암벽 강천보 건설로 인해 훼손이 될 위기에 있는 암벽, 남한강의 절경 중 한 곳이다.
ⓒ 하주성
암벽

 

아름다운 여강 길 모두 사라져

 

남한강의 강 길은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아홉사리 과거 길은 지난 날 충주 이남의 충청도와 경상도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다니는 길목이었다. 아홉사리란 길이 구불구불한 것을 말하는데, 마치 국수의 사리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아홉 번을 감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강 길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모두 망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보호와 수질개선이란 말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이러한 논리에 아연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남한강의 강 길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7곳 중 한 곳으로 지정되었다. 이 여강 길이라고 부르는 남한강의 강 길은 옛 나루터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역사문화체험이다. 이 강 길에는 은모래금모래, 부라우나루터, 바위늪구비, 아홉사리 과거길 등, 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강 길이다. 이러한 여주의 여강 길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 습지 바위늪구비 습지. 이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없어, 멸종위기 보호 2급 파충류인 표범장지뱀 등이 서식하고 있다.
ⓒ 하주성
표범장지뱀

  
▲ 강길 안내 강길 탐방로로 지정된 여강 길. 그러나 이 아름다운 길이 4대강 정비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 하주성
여강 길

 

결국 환경보호와 수질개선을 위해 실행을 한다는 4대강 정비가, 은모래금모래의 골재채취로 인한 훼손, 단양쑥부쟁이 서식지의 표본조사도 없는 마구잡이 뒤집기,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심각한 훼손, 거기에 자연생태습지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4대강 개발이 과연 정부가 밝히는 수질개선과 자연환경보전을 위한 것인지.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른 공사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환경청에서는 원상복구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여주의 사라지는 명소 금모래 은모래

 

2월 2일 오후,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여주 신륵사는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흘러오는 강길 중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다. 더욱 이곳은 강이 휘감아 돌면서 한편에 자연스럽게 쌓여 퇴적이 된 모래톱이 아름다워 '금모래 은모래'하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여주 남한강변의 명소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인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찬 날씨에 찾아간 신륵사 강월헌.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절경이다. 강월헌의 주변으로는 기암괴석이 남한강의 물줄기를 맞이하고, 건너편에는 그 유명한 금모래 은모래 밭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천연의 숲이다. 이곳은 남한강 유원지라고 하여, 일 년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월헌 가까운 곳까지 오탁방지막이 처져있다. 그 이유는 바로 신륵사 건너편의 금모래 은모래 밭의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서, 그곳에 중장비들이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일이여, 이제 무엇을 보고 살아. 저렇게 다 퍼가면…."

 

여주에서 태어나 여주에서 살아 온 분들이 한마다씩 한다. 어려서부터 늘 가서 뛰어놀던 곳이, 바로 금모래 은모래밭이었다는 것이다. 한참을 놀다가 땀이 나 그 뒤편에 있는 숲에 들어가면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단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한 명소인데, 그곳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다. 

 

새들도 넘지 않는 오탁방지막

 

  
▲ 오탁방지막 금모래 은모래의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 쳐놓은 오탁방지막
ⓒ 하주성
오탁방지막

  
▲ 유원지 숲 금모래 은모래 모래밭 뒤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다. 이 숲도 절반이나 잘려 나간다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 하주성

 

넓은 모래밭을 파 올려 여기저기 모래더미를 쌓고 있는 현장. 그런데 그 앞으로 처져있는 오탁방지막을 보면서 희한한 모습을 보았다. 오탁방지막 밑으로는 중대백로며, 오리 떼들이 모여 있는데, 오탁방지막 위쪽으로는 단 한마리의 새도 보이지 않는다.

 

"저 새들이 침묵시위를 하는 것 같아요"

"침묵시위라뇨?"

"저기 좀 보세요. 원래 중대백로라는 새들이 저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 바위에 보세요. 저렇게 모여서 움직임이 없는 것이 흡사 침묵시위라도 하는 듯 하잖아요. 새들도 강을 저렇게 파헤치니 화가 난 것 같아요."

 

중대백로가 무리지어 사는 새인 줄만 알고 있던 나이다. 그런데 바위 위에 여기저기 20여 마리의 새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강에는 오리 떼들이 무리지어 날았다가, 다시 내려앉고는 한다.   

 

젊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월헌에 찾아들었다. 그리고 굴착기로 파서 쌓아올린 모래더미를 연신 찍어댄다. 저마다 오탁방지막이며 모래더미를 찍는 사람들.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저 건너편에 호텔도 들어 온데요. 여주가 발전을 하는 것은 좋지만, 저렇게 마구 파헤치면 어쩌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흡사 모래 파먹기 대회를 하는 듯한 현장

 

  
▲ 중대백로 오탁방지막 밑 바위에 무리지어 앉아있는 중대백로들. 마치 강을 파헤치는 것에 대해 침묵시위를 하는 듯하다.
ⓒ 하주성
오탁방지막

  
▲ 오리떼 남한강은 수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러나 올에는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 하주성
오리

강천보의 금모래 은모래 모래밭의 모래와 자갈 채취를 시작으로, 여주보의 산이 되어가고 있는 모래와 자갈 채취현장, 그리고 이포보의 마치 포격에 맞은 듯한 웅덩이가 된 현장. 여주의 현장들은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 흡사 다투어 모래자갈을 파먹기 위한 시합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그 아름다운 모래밭이 망가져가는 현장을 보는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이렇게 자연을 마구 파헤쳐도 되는 것인지. 이미 환경이나 자연보호라는 말은 거리가 멀다. 강월헌 건너편에 줄을 지어 꽂아 놓은 빨강색 깃발들. 저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 숲도 반이나 잘려 나간대요."

"건너편 저 숲 말인가요?"

"예, 이제 여주의 가장 아름다운 강 길이 송두리째 사라지네요."

 

  
▲ 현장을 떠나는 중대백로 모래밭 모래와 자갈채취가 보기 싫은 듯, 바위를 떠나 남한강 위로 나는 중대백로
ⓒ 하주성
중대백로

 

중대백로 한 마리가 파헤쳐지는 모래밭이 보기 싫다는 듯, 남한강 위로 날아간다. 그 뒤로 또 한 마리. 그렇게 바위 위에 침묵으로 앉아있던 새들이 떠났다. 그리고 저 멀리 작업현장만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1월 23일. 토요일이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남한강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 날씨인지라 꽤 쌀쌀하다. 남한강 주변의 길을 걷고 있노라면,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강 길을 걷는 즐거움은,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앞 강길을 걷다보면, 멀리 보이는 산들과 조화를 이루는 남한강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쌓아올린 모래더미가 산이 되어가고

 

그런데 앞을 보니 남한강 세 곳의 보 중 한곳인 여주보가, 바로 왕대리 앞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쪽 옆으로는 모래와 자갈을 파다가 쌓아올린 퇴적물이 점차 산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저렇게 많은 모래와 자갈을 퍼다 쌓아올리면, 강바닥은 자정능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도 수질이 좋아진다는 말에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여주보를 바라보고 있는데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시는 분이 계시다. 여주보를 만드는 것을 보는데 답답하다고 대답을 했더니, 마음 아프게 그런 것은 무엇 때문에 보느냐고 하신다. 왕터에 사시는 이 어르신은 몇 년째 이 강 길을 갈으셨다고 하신다.

 

"마음이 아프세요?"

"그럼 저렇게 강바닥을 파헤치면 어떻게 해. 물고기가 씨가 마르는데."

"물고기가 씨가 마르다뇨?"

"저렇게 모래자갈을 바닥을 파서 퍼 가면, 그 모래자갈만 파 올리겠어. 치어나 물고기 알은 다 괜찮겠느냐 이거지. 아마 씨도 안 남을 거야. 그리고 이곳은 여울목인데, 여울목을 저렇게 파헤치면 물고기들이 어떻게 살아."    

 

  
▲ 모래더미 강바닥을 파 채취한 모래와 자갈이 산을 이루고 있다
ⓒ 하주성
여주보

 

나는 환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저렇게 강바닥의 모래자갈을 다 파내면, 수질이 나빠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르신의 말씀은 기분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남한강가에는 소문난 매운탕집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집들이 이제 다 문을 닫을 지경이란다.

 

철새도래지에 철새는 없고

 

남한강은 겨울철이 되면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드는 곳이다. 그만큼 철새들이 이곳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쉬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왕대리에서 이포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능서면 내양리가 있다. 앞으로는 양화천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남한강이 흐른다. 그래서 이곳은 겨울이 되면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내양리에는 지금도 민물고기 매운탕을 파는 집들이 있다. 하기야 고기를 잡을 수 없으니, 이제 이 집들도 양식 민물고기를 딴 곳에서 사다가 장사를 해야 할 판이다. 내양리 남한강가에는 철새도래지임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다. 하지만 철새 한 마리 찾아볼 수가 없다. 돌아 나오는 길에 백석리 마을회관 앞에 계신 마을 분들에게 물어보니, 공사를 시작하고 철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고, 보는 것마다 답답함 뿐이다.

 

  
▲ 모래더미 모래더미 위로 쉴새없이 덤프트럭들이 모래 자갈을 파다가 쌓는다
ⓒ 하주성
여주보

  
▲ 모래더미 모래더미 위로 쉴새없이 덤프트럭들이 모래 자갈을 파다가 쌓는다
ⓒ 하주성
여주보 현장

강 속 깊이 박히는 철재구조물들

 

여주보 현장을 바라보는데 한숨만 나온다. 보를 막는다고 철재 구조물을 강바닥에 엄청나게 박아놓았다. 저 구조물로 인한 피해는 또 없을 것인가? 날이 추운데도 굉음을 내면서 공사를 하는 모습들. 아마 약속한 공기 내에 마치겠다고 저 난리들을 피우는 것인지. 저렇게 급하게 하는 공사가 과연 제대로는 될지 모르겠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한다'고 했거늘. 그저 저 철제구조물로 또 강물은 얼마나 오염이 될 것인지.

 

  
▲ 철재구조물 강바닥에 깊이 박히는 철재구조물과 수위표시
ⓒ 하주성
여주보

공사를 하고 있는 강변 모래밭에 박힌 수위표가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밑에 보이는 '관리수위'는 평상시의 물의 높이일 테고, 위에 보이는 '계획 홍수위'는 보의 높이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 계획홍수위가 현재의 둑보다 낮지가 않다. 만일 국지성 호우라도 상류 쪽에 쏟아진다면, 그리고 상류의 댐을 열어젖힌다면, 저 물은 다 어디로 갈까?  

 

공사가 한창인 여주보 인근 모래밭가에 배 몇 척이 보인다. 저 배들은 무엇을 하는 배였을까? 저렇게 쓸쓸하게 보이는 몇 척의 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아름다운 강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의 모습도 이젠 더 이상을 볼 수 없는 것인지.

 

  
▲ 배 남한강가에 모여있는 배들. 무엇에 사용하던 배일까?
ⓒ 하주성
여주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남한강. 그리고 억새와 갈대가 하늘거리던 강 길.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물 위에 솟구치던 물고기들. 이런 모든 것이 꿈속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공룡과 같은 모습으로 굉음을 내며 강바닥을 파헤치는 중장비와, 연신 모래와 자갈을 날라다가 모래산을 쌓고 있는 덤프트럭들의 소리만 요란하다. 그 소리에 묻힌 깊은 한숨 소리가 저들에게는 들릴 리 없으니,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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