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나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질이 많다고 해서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남을 돕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지리산에서 만난 한 노스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대로라면 오늘 모인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일 것이란 생각이다.

 

사단법인 출범에 따른 ‘사단법인 수원시 행복 · 캄 개소식’이 7월 8일(월) 오후 5시 30분, 수원시 인계동 944-4번지에 소재한 태산빌딩 3층 행복 · 캄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홍순목 행복 · 캄 회장을 비롯하여, 염태영 수원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김영규 수원시 기획조정실장, 민한기 수원시의회 부의장, 윤건모 팔달구청장, 라수홍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수원시 의회 김명욱, 박정란 의원 등 많은 축하객들이 참석을 했다.

 

 

순수민간봉사단체인 행복 · 캄

 

이번에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을 하는 ‘행복 · 캄’은 순수 민간봉사단체이다. 이들은 캄보디아에 있는 수원마을 지원사업을 계속하여 펼치고 있으며, 인도적 지원을 넘어서 사회, 경제, 환경, 문화, 교육 등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모든 것을 회원들이 공동으로 해결하고 있다.

 

행복 · 캄은 순수봉사단체 중 가장 값진 국제봉사를 하는 단체이다. 순수 민간단체 회원들인 행복 · 캄은 민간인이 주를 이루어 봉사를 하고 있으며, 수원시에서는 행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과거 우리가 도움을 받던 나라를 도와준다는 자긍심을 갖고 봉사를 하고 있다는 (사)수원시 행복 · 캄의 개소식이 더욱 뜻 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마을의 정자나무와 같은 행복 · 캄이 되기를

 

홍순목 헹복 · 캄 회장은

“과거 우리가 도움을 받던 나라를 이제는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성장을 했다. 벌써 몇 년째 캄보디아를 돕고는 있지만, 정작 우리들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실조차 변변히 갖질 못했다. 오늘 이렇게 행복 · 캄 사무실의 개소식을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그리고 이렇게 사무실을 낼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회원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는 마음껏 남을 돕는 행복을 수원시민 모두가 함께 누렸으면 한다.”고.

 

염태영 수원시장을 대신해 참석을 한 수원시 김영규 기획조정실장은

“예전에 어릴 적에 시골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습니다. 흔히 정자나무라고 부르는 오래된 나무죠. 이 나무들이 도시에 와서 살다가 시골을 찾아가면, 그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다 떠나도 그 나무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는 했습니다. 바로 행복 · 캄의 여러분들이 이런 정자나무의 역할을 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어도 언제나 끊임없이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할 수 있는 그런 행복 · 캄이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8년 째 봉사를 하고 있는 민간봉사단체 행복 · 캄

 

사단법인 수원시 행복 · 캄은 2007년부터 8년 째 캄보디아에 가서 봉사를 하고 있다. 2007 년 우물 42공을 개발하여 우물 1공을 판 것을 비롯하여, 2008년에는 마을회관을 신축 완공했다. 화장실 7개실도 신축했으며, 수원마을 초. 중학교 교실을 10개실 신축 완공했다. 2009 년에는 수원마을 도로 833.8m의 도로포장 공사를 완공했으며, 교량 및 농사 물막이 수문 공사도 했다.

 

그런가 하면 각종 물품지원사업도 병행했다. 캄보디아 시엠립주 프놈끄라옴 수원마을에 쌀 30.000kg과 1가구당 20종씩 그릇 세트 630 가구분을 지원했으며, 수원마을 주민들에게 갈비탕 2.500인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타월 2.000장과 학용품 및 슬리퍼 3.000켤레, 교복 950 벌, 상의 티셔츠 200벌을 봉사 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2010 년에는 수해가정에 쌀 10.000kg을 25kg씩 400가구에 전달을 했으며, 2011년까지 각종 종합 현황게시판 시공 · 제작과, 송아지 40마리와 어미소 3마리를 전달하고, 자전거 6백대를 기증하기도 했다. 또한 그릇세트 500가구분과 생활용품과 세제 등을 전달하는 등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그 외에도 의료지원사업 6회에 4,580명 진료와, 이미용 봉사 2회에 1,250명에게 따듯한 마음을 전하기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개년에 걸쳐 위의 지원 외에도 상당한 노력을 했다. 민간단체가 찾아가서 지원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지만, 과거 우리가 도움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한다. 김미선 행복 · 캄 사무국장은

 

 

“2007년 이전부터 수원시와 시민들이 환경이 열악한 캄보디아 시엠립주 프놈끄라옴 마을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해왔습니다. 프놈끄라옴 마을은 410가구에 인구 2,800명 정도입니다. 2004년에는 수원시와 시엠립주정부와 자매결연을 체결했으며, 2007년에는 수원마을 후보지답사와 MOU를 체결했습니다. 2007년 6월 25일에 프놈끄라옴을 수원마을로 정하고, 2007년 12월 25일에 수원마을선포식을 개최했습니다.”라며

 

“그동안 저희들은 한 일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민간봉사단체가 이 정도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회장님을 비롯한 전 회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수원시의 적극적인 행정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희 행복 · 캄은 더 오래, 더 많은 봉사를 프놈끄라옴 주민들에게 베풀어, 수원이라는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개막식이 끝난 후 비가 오는 가운데도 일층 현관 입구에서 가진 행복 · 캄의 현판제막식. ‘국제교류 캄보디아 수원마을 행복 · 캄’답게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한 수원마을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칠보산 무학사 태고종 대종사 혜성 큰스님을 뵙다

“저희 큰스님께서는 출가를 하신 후에 평생 남을 위해서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시죠. 지금까지도 4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남을 위해서 살아 오셨습니다.”

칠보산 아래 금곡동 무학사 주지이신 혜성 큰스님. 스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뜸 ‘아! 그분’하고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1969년 태고종에 입문을 하신 후, 1969년 12월 칠보산 중턱에 무학사라는 절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남을 위한 삶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혜성 큰 스님의 이러한 남을 위한 삶은 아직도 계속 중이다.

“큰스님 어째 그렇게 남을 위해서 사시나요?”

참으로 큰스님께 드려서는 안 될 우문(愚問)을 드린 셈이다.

 

어려서부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두고 볼 수가 없어

 

“아마도 어려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것이 이유인 듯합니다. 조국의 분단의 비극과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저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보였어요. 그래서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하게 되었죠.”

 

사실 알고 보면 이렇게 남을 위해 봉사를 하고, 가진 것을 선뜻 내어주는 것은 집안의 내력이다. 혜성 큰스님의 조부는 8,15 광복 후에 현 화성시 매송면(당시 수원군)의 초대 면장을 지내셨다. 1958년 당시 자비를 들여 어천수리조합이라는 것을 조성해, 수리조합장을 역임하면서 농민들에게 물을 대어주었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신이 갖고 있는 수만 평에 달하는 농토를 농민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송면, 남양면, 비봉면 일대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분들은, 조부의 공을 기억하고 있다고. 조부의 뒤를 이어 부친도 3대 면장이었다고 한다. 부친 역시 남을 돕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사셨다는 것. 어려서부터 그런 선조들의 삶을 보고 자라난 혜성 큰스님께서도, 자연이 남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 손에 무엇을 쥐고 나오나요? 아니죠. 빈손으로 나옵니다. 본디 세상에 내 것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마치 내 것 인양 알고 있기 때문에 분란이 오고 화가 미치는 법이죠.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죠.”

 

100억대에 달하는 땅도 쾌척하신 혜성 큰스님

 

“큰스님,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그렇게 기부를 하셨습니까?”

질문마다 참 우문을 한다는 생각이다. 이미 혜성 큰스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을 뛰어넘어 피안에 살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 그럼에도 속된 질문을 하고 말았다. 혜성 큰스님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시면서

“본디 내 것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리고 그런 재산을 갖고 있으면, 이다음에 우리 문도들이 환란을 당하게 됩니다. 팔요 하신 분께 드려야 그 분들이 또 좋은 일을 하시는 것이죠.”

혜성 큰스님은 2012년에 1차로 시가 약 15억 원에 달하는 땅 3천 평을 사회에 헌납하셨다. 그리고 이어 남들이 금싸라기 땅이라고 하는, 시가 100억 원에 달하는 땅마저 노인복지발전을 위해 기부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 때는 그렇게 큰 돈 인줄 몰랐어요. 기부를 하고보니 시세로 따져 그렇게 큰 금액이라는 겁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신 혜성큰스님은, 세상에 태어나 꼭 해야 할 일이 바로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강조를 하신다.

 

 

세 번이나 총무원장의 소임을 맡아

 

“우리 큰스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총무원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셨고, 입적하신 큰 스님들도 받지 못하는 대종사 칭호를 살아생전에 받으신 분이십니다. 이런 일은 모두 그동안 큰스님께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오셨는가를 알 수 있는 일이죠.”

한 자리에 앉아 대화를 하시던 처사님 한 분이 말씀을 하신다. 그런 말씀을 듣는 혜성 큰스님은 손 사례를 치신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할 몫을 다했을 뿐이죠. 제가 너무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기가 송구해, 몇 번을 고사를 하기도 했죠. 지금도 부끄러울 뿐입니다.”

 

혜성 큰스님은 1989년 대한불교 법상종 총무원장. 1989년 한일불교 문화교류 한국대표. 1991년 남북불교도 한국대표. 1995년 한국불교 미륵선종 총무원장. 1997년 한국불교 법왕종 총무원장. 2011년 대만국제불교 재승대회 한국대표 등을 역임하셨다, 2013년에는 한국불교 태고종에서 큰스님들이 타계 후에야 받는다는 ‘대종사’ 칭호를 생존에 받으셨다.

 

 

30년 넘는 세월을 이어온 장학사업과 노인복지사업

 

혜성 큰스님께서는 남을 위하는 것이 몸에 배셨다. 198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학 사업을 하고 계시다. 언제나 소문 없이 하시기 때문에 아직도 큰스님의 소문이 나지 않고 있단다. 큰 스님의 장학 사업은 칠보초등학교를 비롯해 서호, 매송, 송라, 호매실, 탑동, 금호, 능실초등학교 등 졸업식 때만 되면 어김없이 이어지셨다. 미래에 이 나라를 짊어질 동량이 될 어린이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부으신 것.

 

그런가하면 노인복지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계시다. 1980년부터 어르신들을 위한 경노사업도 이어오고 계신 것. 매년 칠보초등학교 강당에 500~600명의 어르신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시고 계시기도. 또한 (사)대한노인회 금호동 협의회 23개 회장단에게 월례회마다 점심식사대접을 하셨다. 그 외에도 45개 통장님들에게도 많은 위로와 함께 지원을 하기도.

 

현재 혜성 큰스님께서는 사단법인 사회복지발전협의회 이사장님으로, 하루 24사간을 쪼개, 봉사 일에 전념을 하고 계시단다.

 

“큰스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법문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없는 시간을 쪼개어 만나주신 스님께 법문을 부탁드렸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남에게 의지해서 살면 안 됩니다. 자신이 노력을 해서 얻은 수익 중, 단돈 1,000원이라도 남을 위해 쓸 수만 있다면, 굳이 복지라는 것을 정부에서 할 필요가 없죠. 그저 사람은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습니다. 하기에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니 내려놓아야죠. 그 마음만 갖고 있다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대담을 마치고 포행을 나가시는 혜성 큰스님의 뒤로 바람 한 점이 따라간다. 아마 저 바람도 큰스님 마음이 닮고 싶었나보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을 간다고 한다. 저승을 가면 염라대왕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바로 ‘공덕을 했느냐?’라는 것이다. 공덕이란 덕(德)을 쌓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한다.

 

“배고픈 이 밥을 주어 급식공덕 하였느냐?

목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 하였느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의복공덕 하였느냐?

깊은 강에 다릴 놓아 월천공덕 하였느냐?“

 

고 묻는단다. 그 중 하나라도 쌓은 공덕이 없으면 죄를 묻는 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속설에 나타난 공덕 중에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베푸는 급식공덕이 최고라고 했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배가 고픈 설음은 설음 중에도 가장 큰 설음’이라고 하니 말이다.

 

 

적십자 봉사활동 급식공덕 펼쳐

 

14일(금) 오전 11시 50분부터 팔달문 앞 영동시장 입구 건너편에는 긴 줄이 하나 생겼다. 연세가 드신 분들이 줄을 서서 계시고, 앞에는 차량이 한 대 서 있다. 현수막에는 ‘적십자가 여러분께 함께 합니다. 적십자 이동급식 봉사활동’이라고 적혀있다. 차량 앞에는 적십자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열심히 분담을 해 급식을 하고 있고, 어르신들은 식판에 음식을 담아 테이블 등에서 식사를 하신다.

 

“한 달에 이곳에서 몇 번이나 봉사를 하시나요?”

“한 달에 두 번 합니다. 둘째 주와 넷째 주 금요일에 이곳에서 무료급식을 하죠.”

“한 번에 몇 분이나 식사를 하세요?”

“올 때마다 250명에서 300명쯤이 식사를 하시죠. 오늘은 날이 더워서인가 많이들 오시지 않은 듯하네요.”

 

 

KB 금융그룹 국민은행에서 마련한 밥차를 이용한 무료급식은 이렇게 한 달에 두 번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열린다. 날이 뜨거운데 야외에서 식사를 하시는 것이 힘이 들었는지, 몇몇 분은 그늘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12시가 넘었는데도 꼬리는 줄지가 않는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많다는 소리이다.

 

"맛있죠. 그리고 고맙죠."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지동교 위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왜 이곳에서 혼자 드세요? 그늘도 없어 뜨거운데”

“제게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요”

“여기 오시는 분들이 모두 노숙자 분들은 아니시죠?”

“아닙니다. 대개는 이곳 가까운 곳에 사시는 어르신들인데, 한 달에 두 번 적십자 밥차가 오면 이곳에 와서 식사를 드세요”

 

 

살펴보니 입성들이 깨끗한 분들이 많이 계시다. 꼭 이곳에서 밥을 먹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즐겁다고 하시는 어르신 한 분은

 

“우리 수원에는 이렇게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 모두 합해 20여 곳 정도가 됩니다. 집안에서 무료하게 보내느니, 가끔 이렇게 나와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 즐거움도 있고요. 이곳은 주변에 우리같은 나이 먹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때가 되면 이렇게 밥을 주니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겠네요.”라고 하신다.

 

여기저기 모여 식사를 마치신 분들은 돌아가면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으신다. 밥 한 그릇의 정성. 아마도 그래서 공덕 중에 가장 큰 공덕을 급식공덕이라고 한 것은 아닌지. 밥 한 그릇의 나눔이 행복한 시간이다.

수원은 지금 쓰레기와의 한 판 전쟁과 사랑을 겪고 있다. 길가마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마구 섞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아, 여기저기 쓰레기더미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일부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런 시의 방침을 비난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할 홍역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분별한 쓰레기의 무단투기를 방치하란 말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그런 몰지각한 양심으로 인해, 시민들의 혈세를 탕진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쓰레기와의 한 판 승부를 하고 있는 요즈음, 쓰레기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로 영동시장 2층에 있는 아트포라 회원들의 쓰레기 재활용 소식이다.

 

 

아파트, 주택가에서 들고 온 쓰레기들

 

아트포라 공간 한편 바닥에 비닐천을 깔고, 그 위에 물감 칠을 한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여행용 가방도 있고, 버려진 흔들의자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부수어진 새장들과 마네킹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이다. 그런데 이 쓰레기를 주어다가 칠을 하고, 여러 가지 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무엇이 그립습니까?’

이 쓰레기들의 제목이다. 쓰레기더미에서 주어 온 물건들이 새롭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다. 가방은 옛 여행이 그리운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네킹은 칠이 되어 머리위에 나비를 부쳤다. 어릴 적 동심을 그리워하는 것이란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 마네킹은 바로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된 것이다.

 

흔들의자 위에는 곰 인형 한 마리가 놓여있고, 흔들의자 다리 밑에는 스키가 붙어있다. 스키를 타러 다닐 때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아기침대는 다시 조형이 되었다. 어린 아기 때, 혹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렇게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새 생명을 얻었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은 철칙

 

이 작품들은 아트포라의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이라고 한다. 혹은 시장 안과 지동교 인근에 조형물로도 설치가 된다고 한다. 행궁 앞에서 벌어지는 수원화성국제연극제 한 편에 쉼터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아트포라 회원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기가 막힌 발상이다.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모으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점점 아름답게 변해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길거리에 버리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쓰레기와의 전쟁은 결국은 바보 같이 버려진 양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젊음의 손길에서 생명을 얻어

 

이렇게 주어 온 쓰레기들을 빈 공간과 쉼터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데 열심인 젊음들이 있다. 비로 수원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다. 수원에 주소지를 둔 학생들이거나, 수원에 소재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이다.

 

현재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은 수원의 네 곳에 나뉘어 봉사를 하고 있다. 지동교 위에서 열리는 일요체험장과 영동시장과 아트포라, 수원역전시장, 그리고 생태교통수원2013’의 현장이다. 영동시장에는 모두 15명의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 봉사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시장과 예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시장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저희들은 그동안 아트포라와 영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시장에 오셔서 길을 묻거나 점포를 물어보시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들이 토의를 거쳐 시장점포 지도와, 길 입구 표지 등을 제작할 것을 시장 측에 건의도 했습니다.”

 

 

영동시장 아카데미의 김주연(중앙대) 단장의 설명이다. 이날 쓰레기재활용 예술작품을 만들기에는 이금희(아주대), 신혜미(경기대), 인덕근(아주대), 김성빈(한신대), 임수영(동방여대) 등이 작업에 참여를 했다. 젊음의 손길에 의해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새롭게 변화를 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들 작업에 참여를 한 젊음들은 이야기를 한다.

봉사를 하다가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매사에 당당해졌다

절친한 사람들과의 만남만 있었는데, 폭 넓은 사교력이 생겼다

낯가림이 심했는데 매사에 자신감을 얻었다

기획 등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잊고 있었던 미술적 재능감을 되찾았다

 

봉사도 하고 자신이 사회에 나아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생겼다는 젊음들. 이들의 손길에서 변화한 볼품없던 쓰레기들의 새생명 얻기.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행궁 광장과 시장통에서 만나볼 생명들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벽화골목의 백미는 무엇이라고 해도, 수원제일교회 종탑에 있는 노을빛 전망대이다. 그 노을빛 전망대를 주민들을 위해 개방을 한 수원제일교회(담임목사 이규왕), 510일 또 다시 지역주민들을 위한 커다란 잔치를 열었다. ‘교회설립 60주년 기념 지동주민초청마을잔치가 바로 그것이다.

 

수원제일교회는 문이 열려있는 교회이다. 오전 1030분부터 지동의 어르신들 300여명을 초청하여 벌린 마을잔치에는, 염태영수원시장을 비롯하여 국회의원인 남경필의원, 경기도의회 이승펄 의원, 수원시의회 김상욱의원과 박찬복 지동장을 비롯하여 지동자치위원회 표영섭 위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제일교회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

 

염태영 수원시장은 축사를 통해 제일교회는 이 시대에 교회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제일교회는 종탐을 노을빛 전망대로 꾸며 지동주민에게 개방하였다. 이러한 제일교회가 있는 지동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오늘 60주년을 맞은 제일교회의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했다.

 

제일교회 이규왕 담임목사는 우리 제일교회는 60년 전 판자집에서 시작을 하였다. 남들은 교회가 자기들끼리만 서로 아낀다고 하는데, 우리 제일교회는 언제나 열려있다. 주민 여러분들이 아무 때나 찾아와도 늘 반길 것이다. 제일교회는 바로 지동 주민과 수원시민의 교회이기 때문이다.”라고 인사말을 하기도.

 

 

어른들을 위한 공연도 마련

 

제일교회 2층 본당에서 마련한 마을잔치의 2부는 음악회로 마련이 되었다. 신혜숙의 사회로 진행된 음악회는 다양한 공연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준비를 했다. 지동어린이집의 원생들이 나와서 하는 율동인 더위 먹은 갈매기쿵따리샤바라를 비롯하여, 서울예술대학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한 서하나의 가야금 독주(캐논 변주곡, 25현을 위한 아리랑변주곡) 등이 선보였다.

 

이정순 외 4명이 추는 북춤도 무대에 올렸으며, 마을잔치를 위해 외부에서 초청을 한 경기민요(김명옥, 김숙현)와 부채춤, 그리고 7080메들리를 수원레이디합창단이 들려주었다. 공연을 관람한 한 어르신은 제일교회가 이렇게 교인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전체를 위해 마을잔치를 열 수 있다는 것에 우선 감사를 한다. 이 수원제일교회는 이 시대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가를 직접 알려주고 있는 교회라는 생각이 든다.”라고도.

 

 

선물과 함께 식사대접도

 

오늘 저희들이 잔치에 초대를 한 어르신들은 모두 600명입니다. 그런대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300명 정도 밖에 참석을 하지 못했네요. 음식도 많이 준비하고 선물도 분비했는데 그런 점이 좀 아쉽습니다.”

 

제일교회의 사무를 맡고 있는 박종각 장로는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고 이야기를 한다. 제일교회에서는 이날 마을잔치에 참석을 한 어르신들께 밤길을 다니실 때 유용하게 사용하라고 할로겐 손전등과 기념 타월 등을 일일이 선물을 했다. 또한 지하 1층에 마련한 식당에서는 많은 음식을 준비해, 주민잔치에 참석을 한 어르신들께 칭찬을 받기도.

 

교회가 열려있다는 것은 마을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항상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을 한다는 수원제일교회. 제일교회야 말로 교회가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교회설립 60주년 기념으로 열린 마을잔치에서, 지동 주민들은 또 하나의 행복을 느꼈다고.

 

(사진설명 / 위로부터)

1. 제일교회 설립 60주년 기념으로 준비한 마을잔치. 제일교회 2층 본당에 모인 마을주민들

2. 축사를 하는 염태영 수원시장

3. 주민들을 위해 준비한 음악회(시계방향으로 북춤, 가야금독주, 경기민요, 수원레이디합창단)

4. 7080 메들리를 부르는 레이디합창단원의 모습

5. 제일교회가 준비한 식사를 하는 주민들

6. 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하느라 바쁜 제일교회 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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