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tation 수원 지동점 윤선희 대표를 만나다

 

“지동으로 이사를 온지 만 2년이 지났어요. 처음에 지동주민센터에 전입을 하러갔는데, 어르신들이 동사무소에서 나누어주는 쌀을 받아 가시는 거예요.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생소했다고 느꼈어요. 아직도 저렇게 사시는 분들이 있나 해서요. 저에게는 그런 풍경이 낯도 설었지만 가슴이 많이 아팠거든요”

 

그래서 사업을 열심히 해서 이익이 생기면, 구제와 선교에 사용을 하겠다고 한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478 - 5에 소재한 T-station의 윤선희(여, 46세) 대표의 말이다. 2010년에 수원이란 곳을 처음으로 찾았고, 지금까지 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이웃들의 아픔을 보아왔다고 한다.

 

 

얼떨결에 시작한 사업

 

T-Station은 최고의 장비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이어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이다. 이곳에서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하셨던 무선 휠 얼라이언먼트와, 진동 밸런스 서비스를 비롯한 차량 기본점검 등의 토탈 경정비 서비스를 받을 수가 있다. 이런 자동차 정비 등을 하는 사업체에서, 여성이 대표를 맡아본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결국 이 사업으로 꼭 성공을 하고 싶다는 것이 윤선희 대표의 마음가짐이다.

 

“남들은 이런 정비업체에 사무실에 여자가 있으니까 경리인 줄로만 알아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이니 이 사업으로 꼭 성공을 하고 싶어요. 여자라서 안 된다는 관념을 깨고 싶은 것이죠.”

 

전주에서 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윤대표는, 경희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가정을 꾸리고 딸 둘과 아들을 두었다. 남편(오문경, 50세. 의왕에서 정비업체를 운영하고 있단다)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그저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큰 애가 대학생이고 둘째가 고등학생, 그리고 막내가 초등학생에요. 이제는 다 자랐죠. 그런데 아이들을 키워놓고 보니,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하데요. 그래서 나도 무엇인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던 중에, 아이들 아빠가 이 사업체를 차리고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뛰어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차량을 정비하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다가 보니, 조금은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는 것. 자신이 직접 했으면 더 많은 것을 고객들에게 돌려줄 수가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조금은 불만이라고 한다. 고객중심의 영업을 하고 싶다는 것.

 

지동은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

 

“지동으로 옮긴 뒤 화성과 지동 여기저기를 다녀보았어요. 그런데 이 지동이 정말로 정감이 가요. 아마도 어릴 적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곳 지동이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인 듯해요. 화성도 너무 아름답고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영업장 3층에 살림집을 마련하고 있어서, 출퇴근에 신경을 쓰지 않아 좋다고 하는 윤 대표. 아이들을 키울 때는 ‘이것을 해라’라는 말 보다는, 두 부부가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고 자라난 아이들이기 때문에, 항상 우애 있게 잘 자라고 있어 고맙다고 한다.

 

“저희 시부모님께서 없는 사람들을 늘 도와주고는 하셨어요. 아마 어린 시절 부터 그것을 보고 자라서인지, 저희 남편도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워하죠. 아이들이 그런 좋은 행동을 보고 자라났기 때문에 착한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저 아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죠. 최선을 다하라고요”

 

 

늘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꼭 여성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하는 윤선희 대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아직은 사업이 어렵지만 이익이 창출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남을 위해 베풀고 싶다는 것이다.

 

“이곳 분들은 정말 아파트하고는 달라요. 이웃과 소통이 잘 되고, 담이 없는 듯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래서 지동이 더 정감이 가는 듯해요.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오래도록 살면서 사업도 성공하고, 어려운 이웃도 돕고 싶은 것이 제 각오입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2년.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여자들이 하기 힘들다는 이 사업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올곧은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윤선희 대표에게,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귀찮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집안으로 복잡하게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사람을 성가시게 만드는 일도 그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남들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즐겨라 하는 분이 계시다. 팔달구 지동 295 - 7번지에 사시는 권영복(남, 69세)과 김연자(여, 66세) 두 내외분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5년 동안 마을만들기 사업에 롤 모델이 되고 있는 곳이다. 온통 골목마다 벽화로 가득한 이곳에서, 두 분은 벌써 40년 세월을 지동에서만 살았다. 이제는 지동이 고향이나 진배없다. 두 분은 지동 벽화골목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시다. 그만큼 지동 2년 차 벽화길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재미, 문을 열면 느낄 수 있어

 

아침 일찍 두 분이 사시는 곳을 찾았다. 골목길에는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인 담벼락 평상이 설치되었고, 무슨 작업을 하는지 쇠를 잘라내는 등 분주하다. 좁은 골목길이 왁자하니 생기가 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동 벽화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물감 등이 가득 쌓여있다. 이렇게 물건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불편하면 할 수가 없죠.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요. 조금 시끄럽고 왁자한 것이 사는 것 같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많은 분들이 저희 집안으로 드나드는 것이 더 좋습니다.”

 

 

 

불편하시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영복 어르신은 오히려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어 더 좋다고 하신다.

 

“사람이 흙을 밟고 살아야죠. 그렇게 살면서 이웃과 함께 소통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서로 정을 나누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아파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사는 것이죠. 꽁꽁 닫아걸고 안에만 있으면, 그게 무슨 사람 사는 재미입니까?”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더운 날에는 얼린 물을 주고, 날이 쌀쌀해지면 커피를 타다가 주기도 한다. 수돗물을 마음대로 쓰도록 하는 것도 고마운데, 물감이며 앞치마, 붓 등, 모든 것이 대문 안 마당에 놓여있다. 그것을 일일이 정리를 하시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하신다.

 

 

 

지동 생활 40년,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

 

“처음에는 여울아파트 맞은편에 살았어요. 그런데 길이 나는 바람에 집이 헐려 1995년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죠. 이 골목은 딴 곳과는 달라요. 한 마디로 정이 넘치는 골목이죠. 날이 좋을 때는 골목에 모여 삽겹살도 구워먹고, 빈대떡도 부쳐서 서로 나누고는 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재미죠.”

 

골목에서 ‘꽃집할머니’로 통하는 김연자 할머니(하긴 요즈음은 66세에 할머니라고 하면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는 이곳에 새록새록 정이 붙는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벽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 이곳에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너무 조용한 곳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림을 그리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즐겁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집을 자기들 집처럼 드나들면서 왁자지껄하면 사람 사는 맛이 나기도 하고요”

 

천성이 착하신 분들 같다. 그렇기에 그렇게 몇 달이나 계속되는 벽화길의 모든 것이, 이 집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두 분이 사시는 집이, 지동 제2차 벽화길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산실 같은 곳이란 생각이다.

 

외손자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내외분

 

지동 벽화길에는 유명한 꼬마화가가 있다. 바로 7세짜리 김형주이다. 형주는 두 분의 외손자가 된다. 아들이 없는 두 분에게는 외손자들만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형주는 늘 이곳에 와서 그림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형주를 지도하고 있다는 작가분도 형주의 칭찬에는 인색하지가 않다.

 

그림을 그려왔는데, 7세 꼬마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는 것. 직접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역시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급기야 형주가 그려 온 그림을 벽화에 인용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두 내외분과 외손자인 형주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 아마도 두 분이 벽화를 좋아하고, 벽화 길 조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벽화길 조성을 마칠 때까지 두 분의 노고가 클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그림그리기를 묵묵히 도와주고 계시는 두 분. 이 분들이야말로 마을만들기 사업의 롤 모델이 아니겠는가?

 

이런 분들이 마을에 계시지 않았다면, 일일이 그 많은 물감 통이며 각종 도구들을 옮겨와야 하니 말이다. 이 골목의 벽화가 끝나는 날, 두 분을 위한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조촐한 잔치라도 벌어야 할 것만 같다.

참 바쁘게도 사는 분이다. 언제나 수원시 팔달구 지동 벽화골목을 조성 중인 길에 들어서면, 그림을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커피를 내오는 분이 있다.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많게는 세 번씩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든다. 그럴 때마다 물을 끓여 따듯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돈으로 따진다면야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성이 부족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늘 그렇게 말없이 준비를 해놓고, 또 벽에 달라붙어 열심히 칠을 해댄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10통장을 맡아보는 남궁미선(여, 45세) 통장이다. 그런데 이 통장님 이렇게 혹사를 하다가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동 벽화길에 서 있는 남궁미선 10통장


 

봉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는 분인가?

 

11월 9일, 오전 10시 30분에 화성 동장대(연무대) 앞에는, 수원중부 어머니폴리스 단원 50여명이 모였다. 기념촬영을 간단히 한 후 주의사항을 듣고, 화성 안길을 따라 길을 걷기 시작한다. 손에는 비닐봉투와 집게를 들었다. 길을 가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환경봉사를 한다고.

 

‘어머니폴리스단’은 수원 중부경찰서 관내 각 학교마다 폴리스단이 있고, 그 폴리스단이 연합해 ‘어머니폴리스연합단’이 되었다. 그 인원이 자그마치 1,200명이나 된다. 어머니폴리스단원이 하는 일은 많다. 학교 순찰에, 등, 하교 길 교통안내, 청소년 상담, 관내 순시, 그리고 일일찻집 운영과 거리 캠페인 등 몸을 둘로 쪼개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수원 중부어머니폴리스 연합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남궁미선 통장이 봉사를 하고 있다(위 좌측) 단원들이 들고가는 비닐봉투에 무게감이 느껴진다(아래)


 

한 달이면 거의 보름 정도를 봉사를 한다고 하는 어머니폴리스연합단의 환경봉사를 하는 현장을 취재하는데, 낯이 익은 분이 보인다. ‘어! 10통 통장님이시네’. 인사를 하고 알아보니, 지동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있단다. 남궁미선 통장은 지동초등학교 어머니폴리스단의 단장이면서, 연합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는 것.

 

그래도 봉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니 통장님 그렇게 여기저기 봉사를 하시다가 보면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아이가 셋에다가 가정 일 해야죠. 거기다가 통장을 맡았으니 그 일도 게을리 할 수 없죠. 지동 관내 통장들 모임에 나가 봉사 해야죠. 그리고 아이가 다니는 지동초등학교에 가서 순찰 돌아야죠. 연합단 일도 일주일에 몇 번씩 나가 보아야죠”

“그렇게 하시다가 큰일 납니다.”

“아직은 버틸 만 해요. 그래도 요즈음은 우리 지동의 침침하던 골목이 깨끗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이제는 골목 안 어르신들도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 주시고요.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도 날마다 늘어가고 있고요”

 

 

 

참 못 말리는 통장님이시다. 하기야 봉사를 한다는데 막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골목길 어르신들도 걱정을 하신다. ‘우리 통장님 저러다가 병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원’이라고 혀를 차신다. 말려서 될 일은 아니다. 마을 일을 보는 사람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느냐며 더 열심을 내야 한단다.

 

“그래도요 요즈음은 힘이 넘쳐요. 우리 10통 골목 보세요. 얼마나 환해졌어요. 어르신들도 저렇게 나와서 칠을 하시고 함께 걱정들을 해주시는데, 젊은 제가 조금 더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죠. 그리고 저희 10통은 정이 넘치는 곳이잖아요. 어르신들이 모두 오래도록 이곳에서 사신 분들이라 표정만 보아도 그 속을 알 수 있어요”

 

오늘도 환경봉사를 마치고나면, 지동으로 돌아가 다시 벽에 칠을 해야 한단다. 그렇게 봉사를 하는 것이 즐거워 오히려 건강에도 좋다고. 아마도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은 지동 10통 남궁미선 통장. 지동 벽화가 인터넷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말이면 카메라를 둘러멘 관광객들이 지동으로 찾아든다.

 

“이곳 골목에서 커피장사를 하면 잘 팔릴까요? 커피 팔아서 번 돈으로 마을을 위해 사용 하려고요. 아직도 우리 마을엔 할 일이 많거든요”

 

 

말을 들어보니 아직은 견딜 만한 듯하다. 이 골목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그분들을 늘 걱정을 하고 산다는 남궁미선 통장.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고함을 친다.

 

“기자양반, 우리 통장님 기사 좀 잘 써주세요. 정말이지 우리 통장님 같으신 분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달 26일 구미공단에서 발생한 불산누출 사고로 인해,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와 임천리 일대가 황폐화가 되었다. 아직도 300여명의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피소로 옮겨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농작물의 면적은 212헥타르, 인명 피해는 사망 5명에 23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정부에서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했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한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봉산리 주민들은 농토가 불산으로 오염이 되었는데, 내년 농사는 어떻게 지을 것이냐고 볼멘소리를 낸다. 더욱 23일 환경부는 피해지역에서 불산에 노출된 3,997마리의 동물을 ‘일괄폐기처분’한다고 발표해,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황폐화 된 마을, 보기만 해도 처참해

 

구미시 임천리와 봉산리로 들어가는 주변의 농작물은 다 말라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논이며 포도와 같은 과실도 말라비틀어져 있고, 잘 익어가던 고추는 그대로 붉게 말라죽어버렸다. 논이며 밭 등 여기저기에는 붉은 현수막에 ‘불산누출사고 피해지역. 절대식용불가’라고 쓴 글씨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구지방환경청의 대기오염측정차량의 모습이, 이곳이 아직도 안전하지가 않은 듯하여 걱정스럽다. 임천리에서 만난 주민이라는 어르신 한 분은 분을 삭이지 못하겠다며

 

“도대체 이렇게 땅이 다 오염이 되고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도, 내년에 여기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온전한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옮겨갈 수가 없습니다. 말이 괜찮다고 하지만, 그 누가 그런 말을 믿겠습니까?” 라고 한다.

 

 

 

짜장스님 불산피해 지역에서 봉사

 

얼마 전에 선원사 주지인 운천스님이 전화를 거셨다. 부산에 들렸다가 올라오시면서 구미 불산피해 지역을 들려오셨단다. 마을회관 등에서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분들에게 따듯한 짜장면이라도 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꺼려한다면서, 당신이라도 그분들에게 따듯한 음식을 대접해야겠다는 것이다.

 

10월 28일(일), 아침 일찍 선원사를 떠난 봉사단 일행은 4시간여를 달려 구미시 산동면 임천리 청소년수련원에 도착을 했다. 가는 길에 차장으로 보이는 마을은 그야말로 사람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다 타버린 논이며 밭은 푸른색이 보이지 않는다. 논이며 밭, 과실나무들도 모두 벌겋게 타서 죽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일까? 임천리 청소년수련원에 모이신 분들은 200여명 정도. 그분들에게 ‘스님짜장’을 봉사하기 위해, 봉사단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하지만 봉산리는 조리를 할 수 있게 준비가 되지 않아, 수련원에서 짜장을 볶아 밥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봉산리에서 짜장밥을 드신 주민들은 100명 정도의 인원이다.

 

두 마을을 돌면서 짜장면과 밥의 봉사를 마친 운천스님은 잠시 휴식을 하면서

 

“무책임한 실수가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불러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한 끼라도 이분들에게 따듯한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은 것을 해드리고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짜장면과 밥뿐이라 안타깝습니다. 얼른 이분들이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가실 수 있기를 매일 간구하겠습니다.”라고 한다.

 

 

 

황폐가 된 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정작 피해를 입은 분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온다. 아마도 몇 날은 그 타버린 농작물이며 붉은 현수막이 아른거릴 듯하다. 언제나 이분들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으려는지.

‘사랑실은 스님짜장’의 주인공인 운천스님, 참 억세게도 전국을 돌아다니신다. 가는 곳마다 인기 만점인 이 스님, 혹 나중에 대권 도전을 하실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시는데, 혹 누가 알리요. 아마도 지금 대권에 참가를 하셔도 꼴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이젠 유명한 스님이 되셨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은 천년 고찰인 남원 선원사의 주지스님이시다. 하지만 사람들은 ‘운천스님’이라고 알기보다는, ‘짜장스님‘으로 더 잘 통한다. 늘 짜장면 봉사를 다니시기 때문이다. 더운 날은 짜장면이 상하기 쉬워, 잠시 주춤하셨다.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다시 봉사가 시작되었다.

 

 

 

짜장봉사 쉽지는 않은데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스님이 남들을 위해 베푼 짜장면의 그릇 수가 3만 그릇이 넘는다. 한 그릇에 4,000원이라고 계산을 해보아도, 1억 2천만 원 어치를 봉사를 한 셈이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다. 봉사를 할 때마다 따라간 봉사단원들의 인건비를 계산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이렇게 시간과 정성, 그리고 많은 땀을 흘리며 봉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먹는 것일 테죠. 생각해 보세요 배가 고픈 사람들이 가장 부러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저희가 다니는 곳 중에는 군부대도 있고, 먹고사는데 있어서 굶주리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죠. 그 분들에게 찾아가 짜장면 한 그릇을 드실 수 있도록 한다면, 작은 행복을 맛보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쉽지 않은 봉사인데도 불구하고, 일 년에 50회 정도의 봉사를 한다. 많은 달은 한 달에 10회 이상을 봉사를 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죠. 저야 그렇다고 쳐도 봉사단들은 정말 힘듭니다. 그렇다고 돈을 드리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봉사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늘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죠.”

 

이제 짜장봉사는 일상이라는 스님

 

9월 22일, 전라남도 순천시 북정 2길 20에 소재한 순천북초등학교 강당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순천시 라이온즈 클럽 등이 주관하는 경로잔치에 많은 어르신들이 모이셨다. 이 자리에서 짜장봉사를 하시기 위해 일찍 순천으로 향한 짜장스님과 봉사단. 커다란 가마솥을 차에서 내려 짜장을 볶느라 부산하다.

 

 

 

강당 무대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각종 공연도 마련되었다. 모처럼 이런 행사에 참석을 하신 어르신들은 마냥 즐겁다고 하신다. 들통에 짜장을 담아 어르신들께 배식을 하는 짜장스님은 땀을 흘리시면서 열심히 나누어드린다.

 

“고기도 안들어 갔는데 정말 맛있구먼.”

 

어르신들의 그 한 마디에 쌓인 피로가 가신다고 한다. 500명 쯤 모이신 어르신들은 그렇게 강당 바닥에 발을 펴고 앉아 짜장밥을 드셨다.

 

“스님이 절에서 불경을 외고,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급식을 하는 것도 좋은 공양구죠. 이제 짜장봉사는 저의 일상입니다. 그리고 다 많은 분들께 해 드릴 수 있도록 해야죠. 가을이 되었으니 이제 돼지감자도 열심히 캐야 합니다.”

 

 

 

짜장스님이 지리산에서 야생하는 돼지감자를 캐는 것은, 그것으로 차를 만들어 파시기 위해서이다. 그 돼지감자를 판돈으로 짜장봉사를 다니신다.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늘 부족하다.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스님은 밥차가 한 대 있었으면 더 많은 분들께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안타까워하신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께 짜장봉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함께 나누는 것보다 좋은 공덕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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