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강의

 

한 마디로 속은 시원합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처럼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그동안 우리 아이들과 대화를 제대로 해 보았나 궁금하네요. 오늘부터 아이들과 마음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3월이 끝나는 날. 31일 오후 430분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수원시청 별관 2층 대강당을 가득 메운 수원시민들과 수원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수원포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있었다. 강단에 자리한 500여명의 사람들은 영상과 함께 진행된 오연호 대표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간혹 웃음과 박수소리 외에는 모두가 경청을 하는 모습이다.

 

 

 

덴마크를 예를 들어 한 시간 반 열강 

 

오연호 대표의 수원포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리인 덴마크를 비유해 우리도 그 나라와 같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꿈틀리라고 하는 마을을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의 주제는 한 마디로 신선한 충격이다. 우리는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는 지식식민사관에 얽매여 살고 있는데 비해, 덴마크라는 나라는 아이들이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사랑해괜찮아라는 것입니다. 덴마크라는 나라는 정말 이 괜찮아라는 말이 소통되는 곳입니다. 덴마크에는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오연호 대표의 강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90% 이상이 수원시 공무원들이 경청한 이날 강의를 마친 후, 공무원 한 사람은 자신도 오늘부터 스스로에게 '나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주문을 걸어야겠다고 한다.

 

오히려 덴마크보다 모든 자연적인 조건이 좋은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스스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네요. 저 스스로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만 하라고 했지, 정작 아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우리 교육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꿈틀리에 거는 기대, 우리도 행복해 질 수 있다

 

학교 선생님이라고 밝힌 이아무개(, 37)씨는 한 마디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원시청 홈페이지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강사로 나오는 수원포럼이라고 해서 참석을 했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이 얼마나 잘 못 되었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기에 수원에 꿈틀리가 생긴다면 자신도 모든 것을 접고서라도 그 일원이 되겠다고 한다.

 

왜 행복하냐고 질문을 했더니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행복이라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어 당연히 누릴 것을 누리는 것이죠. 우리처럼 아이들이 공부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일 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행복학교를 들어갑니다. 어떤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어떤 아이들은 음악을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또 6개월 동안 행복학교를 갑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사회에 나가 생활을 하면서도 3개월 동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라는 답을 얻습니다.”

 

 

 

행복을 찾으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느냐?”, 그리고 당신의 가슴이 뛰고 있느냐?” 는 질문을 끝으로 한 시간 30분의 수원포럼은 끝이 났다. 오연호 대표의 저서에 사인을 받아들고 나온 수원시청의 한 부서 팀장은 오늘부터 스스로의 가슴을 뛰게 만들겠다. 행복은 나부터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겠다.”오늘 이 책을 가족 모두가 한 번씩 일어보고 독후감을 쓸 것이라고 한다.

 

 

송죽동 난타 팀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3월 초이다. 수원시 장안구 송원로 41번 길 16-21(송죽동)에 소재한 송죽동 주민센터 지하연습실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회원들을 만났다. 정원 15명이 들어가 연습을 하기에도 빠듯한 것만 같은 연습실에서, 서로 북채와 팔을 부딪치며 연습을 하는 난타 수강생들을 보면서 좀 더 넓은 장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난타 수강을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연습을 하다 보니 절로 정이 들었다는 것이다. 송죽동 난타모임의 유일한 남성인 박경빈(64) 회장은 단원들의 노력에 비해 악기가 미치지 못한다고 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들은 다시 만난 것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딴 사람들인 줄 알았다. 단체로 같은 옷을 입고, 소리가 먹어 제대로 나지도 않는 북을 치는 모습이 전에 보았던 수강생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일 년이면 10여 회에 가까운 공연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당시 이들의 솜씨는 그렇게 대단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이들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은 29일 오후 4,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에 위치한 호텔 리젠시 2층에서 열린코리안드림 실현을 위한 평화통일 경기도 전진대회장이었다. 이곳에서 난타 북을 옮기는 운반비도 받지 않고 무료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송죽동 난타 팀. 봉사를 하기 위해 타글타글 난타동아리라는 동아리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식전 행사로 나온 난타 팀은 전에 보았을 때와는 영 딴판이다. 처음에 무대에 오른 5명의 회원들은 가요 황진이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북을 친다. 가운데 세 명은 황진이 복장을 하고 양편에 두 명은 단원복장을 했다. 그런데 이들이 북을 치면서 연희를 하는 것을 보니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연습시간도 많이 갖지 못했을 텐데, 프로는 아니라고 해도 준 프로실력에 가깝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어깨 짓을 하면서 즐긴다. 12명이 행사에 참가를 했다고 하는데 모두 세 파트로 나누어 공연을 가졌다.

 

 

 

이 분들 정말 무대체질인가 봐요.

 

사회자가 안내를 하면서 연습한지 8개월 정도 되었다고 한다. 난타를 시작한지는 그보다 오래되었지만 신입으로 가입을 한 회원들의 연습기간이 그 정도 되었는가 보다. 하지만 이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공연은, 정말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 정도로 북을 치면서 하는 동작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알만하다.

 

아니 8개월 밖에 안 되었다는 분들이 저렇게 잘하나요. 아무리 보아도 저분들 무대체질인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신바람 나게 공연을 할 수가 있어요. 더구나 음악도 없이 박자를 저렇게 잘 맞추고 있는데 말이죠.”

 

타글타글 난타동아리들의 끝 공연은 음악도 없이 무반주로 8명이 무대에 올라 빠른 장단으로 북을 두드리는 공연이었다. 모두 세 파트로 연희가 된 공연 중에 단연 으뜸이다. 음악이 없이 장단만을 친다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휘모리라는 제목으로 8명이 일사분란하게 북을 두드리는 장단에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저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가슴이 뛰어요. 전날부터 걱정이 되어서 잠도 설치고요. 그래도 북채를 잡고 북을 치기 시작하면 어디서 힘이 나나 모르겠어요. 신명이 있다고 하더니 이런 것인가 봐요.”

 

난타 공연을 마치고 나온 한 회원이 하는 소리이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기념촬영을 부탁하는 타글타글 난타동아리 회원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이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류2동 문화강좌 고전무용반을 만나다

 

저는 올해 나이가 72세예요. 춤이 추고 싶어 배우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을 잘 따라가지 못하겠네요. 그래서 속이 많이 상해요. 어릴 적 춤을 배웠었는데 살다가 척추수술을 했어요. 그러다가 너무 고통스럽기도 해서, 아픔을 잊어보려고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몸이 이렇게 건강해졌어요. 아마 그토록 하고 싶었던 춤을 다시 추어서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아요.”

 

17일 오후 430분 경 찾아간 권선구 세류2(동장 오세환) 주민센터. 약속을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을 한 덕에, 이경운 총괄팀장과 커피 한 잔을 마신 후에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연습복을 입은 수강생들을 보니 나이들이 지긋하다. 수원시 주민센터 문화강좌 수강생들을 만난 중에, 이곳 고전무용반이 나이들이 가장 많은 듯하다.

 

저희 고전무용반은 16명인데 오늘은 몇 명이 나오지 않았네요. 열심히들 하는 것으로 따지면 아마 최고인 듯한데, 오늘따라 서너 명이 불참을 했어요.” 맨손으로 민요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수강생들 앞에서 지도를 하던 김기연 강사의 말이다.

 

 

 

이제 고작 2년 된 고전무용반, 그러나 열정은 최고

 

수원시 각 주민센터 문화강좌 수강은 각 종목마다 일반적으로 10년씩 된 곳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세류2동의 고전무용반은 이제 고작 2년이 채 안되었다고 한다. 20134월에 처음으로 시작을 했다고 한다. 수강생들의 나이도 그동안 찾아본 곳 중 가장 연장인 듯하다. 하지만 춤을 배우려는 열정들만큼은 어느 곳도 따르지 못할 만큼 대단하다.

 

세류2동 고전무용반을 지도하고 있는 김기연 강사는 어릴 때부터 춤을 추어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중간을 결혼 등으로 춤을 추지 못하다가, 나이가 먹어 다시 시작해 무용강사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런 아픔이 있어 나이가 먹은 수강생들에게 더 열심을 내어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곳에 가입을 했어요. 우리 전통이 너무 좋아 수강을 시작했는데 너무 즐겁고 재미도 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한복이나 옛 것 등을 좋아했어요. 소리도 우리 소리를 좋아했고요. 그러다가 이제 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딸이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너무 추고 싶었어요.”

 

고전무용반 김동연 회장(, 55)은 이제라도 춤을 추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뒤늦게 나이를 먹으면서 문화강좌를 수강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사연이 있다. 그런 사연을 들으면서 그들에게서 세상을 살아가는 열정을 배우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처럼 열심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 딸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고등학교까지 우리 춤을 추웠어요. 딸이 그렇게 춤을 추는 것을 보면서 나도 춤이 너무나 추고 싶었고요. 그런데 정작 딸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딴 길로 가고 제가 대신 춤을 추고 있어요. 늦게라도 이렇게 늘 추고 싶었던 춤을 추게 된 것이죠.”

 

김재덕(, 64)씨는 이름이 남자 같아서 가끔 놀림도 받는다고 하면서 춤을 추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목포가 고향이라는 최성임씨는 춤이 추고 싶었지만 남편이 심하게 반대를 해 추지 못하고 있다가, 수원으로 올라와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 남편을 졸라 춤을 배우라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15년이나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봉양하다가 우울증까지

 

모든 수강생들이 하나같이 이야기들이 있다. 그만큼 춤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춤을 못 추면 죽을 것 같았던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노현실(, 51) 총무를 가르친다. 수강생 중에 막내라고 하는 노현실 총무는 막내며느리이면서도 15년이나 시어머니를 봉양했다고 한다.

 

사람이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도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저는 오직 시어머니 수발만 들어야했어요. 시어머님이 치매가 있어서 꼼짝을 할 수 없었죠. 나중에는 그런 것이 심한 압박감으로 갱년기와 우울증이 겹쳐 정말 힘들었어요. 마침 이렇게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몸괴 마음, 정신까지도 건강을 되찾게 되었죠. 지금은 너무 행복하고 건강해요.”

 

 

 

이제 문화강좌를 시작한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많은 공연을 했다고 하는 세류2동 고전무용반, 얼마 후에 또 공연이 있다면서 연습에 열중한다. 나이가 들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들 모두가 늘 이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한다.(출처/오마이뉴스)

 

 

우리 춤이 저를 살렸어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거의 죽은 상태였다고 보아야죠. 당시 지독한 우울증과 신경쇠약 등으로 병원에 가도 가망이 없다고 할 정도였어요. 아는 스님께서 절에 와 있으라고 해서 절에도 들어가 있었고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매사에 의욕이 떨어져 몸 하나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지인의 권유로 수원시 장안구 정자3동 주민센터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제 햇수로 춤을 춘지 4년 정도 되었단다. 김영희(, 65)씨는 그렇게 심한 우울증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며칠 못가서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4년 가까이 춤을 추면서 이제는 그런 증상이 다 사라졌다고 한다.

 

병원 문턱이 닳게 다녔어요. 하지만 어느 곳도 내 아픈 것을 고치지 못했죠,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차츰 몸이 좋아지더니 이제는 과거에 그런 증상이 사라졌어요. 사람들도 저를 보고 좋아졌다고 하고요, 그 지겹게 드나들던 병원을 가지 않는 것이 제일 좋아요. 우리 춤이 저를 살려낸 것이죠.”

 

 

 

사람들마다 춤을 추는 이유가 다 달라

 

김영희씨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에 함께 춤을 추던 사람들이 맞다고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 장안3동 한국무용실을 찾았을 때는 단 3일도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는 것이다. 5일 오후 장안구 대평로 85(장안동)에 소재한 정자3(동장 황연주) 주민센터 2층 한국무용 문화강좌에서 만난 15명 정도의 여인들의 이야기는 춤을 춘 동기가 하나같이 달랐다.

 

흰 수건을 들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수건을 허리에 감고 소북을 들고 일어났다. ‘교방소고춤이라고 하는 이 춤은 일본에서 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재일교포 춤꾼인 정민류의 춤이다. 과거 일본으로 건너간 교방청의 무기(舞妓)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하는 이 춤은 민속무용 중에서도 특이한 춤사위를 갖고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정자3동 주민센터 2층 연습실에서 춤을 추고 있는 15명의 한국무용반 회원들. 정자3동의 한국무용반은 이제 강습을 시작한지 5년째라고 하는데, 실력들은 10년을 했다는 곳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 지도강사 양청자(, 69) 강사에게 제대로 춤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봉사와 공연으로 다져진 실력

 

저희는 봉사도 많이 하고 공연도 많이 하는 편예요. 거리공연도 하고 행궁 앞 공연도 했고요. 우리 한국무용반 회원들은 기본이 제대로 되어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죠.”

그래서 춤을 가르치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이제 춤을 춘지 5년이 지났다는 안태옥(, 62)씨는 춤을 추고 나면 집안일을 하면서 뭉쳤던 근육도 풀어지고, 늘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한국무용은 심하게 뛰거나 무거운 것을 들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을 위해서 좋다는 것이다.

 

저는 원래 경기민요를 한지 15년 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서 소리를 하려면 발림(소리를 하면서 움직이는 동작)을 해야 하는데 그냥 뻣뻣이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몸의 유연성도 있어야하고 소리에 맞춰 동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5년 전부터 춤을 배웠어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추고 있는데 몸이 많이 율동을 타는 것 같아요,”

 

연습실 맨 앞에서 작은 체구로 열심히 춤을 추고 있던 양혜은(, 58)씨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려 보인다. 그런가하면 지금은 우리 춤을 추고 있지만, 5세부터 춤이 좋아서 모든 춤을 섭렵했다고 하는 김영희(, 58)씨도 있다.

 

 

 

저는 5세부터 춤이 좋아 춤을 추었어요. 중간에도 그만두지 않고 춤을 추는 바람에 재즈댄스, 라인댄스 등 안 추어본 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한 가지를 한 3년 이상씩은 추었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역시 우리 춤이 최고인 것 같아요. 우리 춤은 선이 부드럽고 버선코처럼 아름답게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요

 

춤은 누구나 다 출 수 있다. 하지만 그 춤을 추는 사람들의 사연은 다 다르다. 그 많은 춤 중에서도 우리 춤을 추는 사람들은 성격이 모나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 춤의 춤사위가 직선을 그리지 않고 둥근 선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땀을 흘리며 두 시간씩 연이어 춤을 추는 여인들의 표정이 그렇게 편안한 것이 아닐까?(출처 / 오마이뉴스)

 

 

지하 연습실을 꽉 메운 사람들이 몸을 추적이며 북을 두드린다. 곁에서 보고 있는 사람도 괜히 어깨 짓이 나는 신나는 장단이다. 북을 두드리다가 제 흥에 겨워 소리를 치기도 한다. 난타는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모두 흥이 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3일 오후 송죽동 주민센터 지하연습실인 문화사랑방.

 

좁은 연습실 안은 열기로 가득하다. 이런 정도의 인원이 들어가기에는 비좁은 듯한 넓이이다. 그곳에서 15명 정도의 인원이 서로 북을 칠 때마다 북채가 닿아서 운신의 폭이 마땅치도 않다. 하지만 북을 두드리는 회원들은 무엇이 그리도 신바람이 나는지 열심이다. 난타가 주는 특별한 매력이 바로 이런 점인가보다.

 

 

 

이제 3년이 채 안된 난타 팀, 봉사는 일등

 

우리나라 사람들은 춤추고, 소리하고, 두드리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 언제 어디서나 북을 치던지 노랫소리가 들리면 몸이 절로 움직인다. 그만큼 악가무희(樂歌舞戱)는 우리 민족과는 땔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등이 모두 악가무희의 종합적인 판놀음이었다.

 

난타를 즐기는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몸으로 표현을 한다.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장단을 치고 몸을 움직여 흥을 더한다. 그것을 합치면 그야말로 하나의 퍼포먼스 동작이 된다. 하기에 난타는 악가무희의 종합적인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신바람 나게 북을 두드리다 보면 스트레스는 저만큼 날아가 버린다.

 

저는 젊을 때부터 난타가 하고 싶었어요. 퇴직을 하고 난 후 바로 난타를 시작했죠. 다행히 송죽동에 난타 강습회가 있다고 해서 바로 시작을 했어요. 이렇게 직접 난타를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않았죠.”

 

송죽동 난타 강습의 유일한 남자인 박경빈(, 64)씨는 난타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전에는 부부가 함께 난타 연습을 했는데, 부인은 딴 것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이 많은 분들이 역할을 해 주잖아요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분위기에 푹 젖어있는 모습이다.

 

 

 

모든 회원들 친목으로 우의 다져

 

저희 난타 회원들은 정말 우의들이 좋아요. 제가 몇 곳을 다니면서 가르치고 있지만 송죽동처럼 가족 같은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이곳 회원들은 한 명도 빠져나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장소가 비좁아 15명으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데, 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만두는 분들이 없어서 들어오지를 못해요

 

난타 지도강사인 김연주씨는 송죽동 난타 회원들은 들쑥날쑥 거리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 말을 받아 정인숙 회원은 저도 지난 1월에 몸이 아파 그만둘까 생각을 했는데, 그만두면 다시 들어올 수도 없고 난타를 하지 못하면 더 큰 병이 될 것 같아 계속하고 있어요. 그래서인가 몸도 많이 좋아졌고요라고 한다.

 

송죽동 난타 회원들은 일 년에 10회 정도의 봉사를 한단다. 보훈원과 모후원 등에 봉사를 다니고, 지난해는 108SK아트리움에서 열린 사람중심 더 큰 수원비전 선포식에 식전행사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기도 했다.

 

 

 

많은 행사에 따르지 못하고 있는 악기상태

 

지난 해 비전선포식 때는 근처에 숙박업소를 잡아 밤새 혼자 연습을 헸어요. 행사를 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일로 연습을 하지 못했거든요. 틀리면 망신을 당할까봐 혼자 연습을 한 것이죠.”

 

밤새 숙소를 잡아 연습을 했다는 박경빈 회장의 말대로, 이들은 문화강좌 수강생이라기보다는 준 프로에 가까운 마음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고 공연을 한다는 난타 북을 들여다보니 그만 어이가 없다. 북을 치는 가죽은 제 가죽이 아니고, 거의 소리를 먹어버린 낡은 상태다. 이런 북을 갖고 공연을 했다고 하니,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다.

 

저는 난타를 하고나서 정말 달라졌어요. 몸도 건강해지고 생활을 할 때는 신이나요. 그 전에는 이렇게 신이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딴 곳 북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이명화(, 50)씨는 어떻게 남들처럼 좋은 북이나 모듬북이 있으면 더 열심히 봉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열심히 북을 쳐도 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연세가 71이 넘었다고 하는 오선자씨. 이제 배운지 1년이 지났지만, 난타를 시작하고 나서 지난해보다 젊어졌다고 한다. 믿기 어렵다고 하자, 회원들이 모두 산 증인이라며 웃는다. 남을 위하고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 즐겁다는 송죽동 난타회원들. 이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신바람 나게 봉사를 할 수 있는 소리 좋은 북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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