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란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길을 나선다. 우리나라에는 단품의 명소가 많다. 설악의 붉은 단풍, 내장산의 아름다운 가을, 구룡령의 은은한 멋을 풍기는 가을, 그리고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 길 등, 곳곳에 단풍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수원 화성의 단풍을 보았는가? 이번 주말이 절경이라고 하는 화성의 단풍은 요란하지 않다. 그리고 먼 길을 힘들여 가지 않아도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곳이다.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는 화성을 축성할 것을 명했다. 강한 국력을 상징하는 화성은 장용외영의 무예24기와 함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화성 한 바퀴, 곳곳에서 즐기는 즐거움이 달라

 

화성은 평산성이다. 평산성이란 산과 평지를 연결해 쌓은 성을 말한다. 높지 않은 수원의 팔달산과 그 아래 너른 평지를 연결해 성을 쌓았다. 상 안으로는 광교산에서 발원하는 수원천이 흐르고 있어, 성 안 백성들이 가뭄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방화수류정과 용연을 마련해, 성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축조물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그 화성에 가을이 깊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팔달산은 온통 물감을 뿌린 듯하다. 울긋불긋한 단풍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란 은행나무도 제 빛을 자랑한다.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는 억새 또한 화성의 성벽과 더불어 묘한 감흥을 이끌어낸다. 무엇하러 고생하며 먼 길을 나설 것인가? 그저 눈앞에 펼쳐진 화성만으로도 가을은 이미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천천히 성벽을 따라 걷는다. 까치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그 소리도 정겨운 곳이 소나무가 우거진 길이다. 소나무 가지들은 성벽을 넘나든다. 그 안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심호흡을 한 번 해본다. 눈에 보이는 색색들이 사람의 발길을 재촉한다. 어쩌면 느슨하게 마음을 먹었다가 절경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인가 보다.

 

펼쳐진 억새밭으로 연인들이 숨어들어

 

수원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을 가을철에 걷기 좋은 곳으로 지정을 했다. 팔달산 회주도로, 연무대 성 밖 길 등이다. 그저 걷기만 해도 좋은 걸이다. 소나무 향에 취해 서장대 외곽을 지나 화서문으로 향한다. 그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는 어르신은, 땀을 흘리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나에게 넌지시 한 마디 건넨다.

 

 

어딜 그리 바삐 가오. 가을은 그저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라는데. 아까운 이 경치를 그렇게 걷다보면 어떻게 감상을 하려고

 

걸음을 늦춘다. 어르신의 말씀이 맞는 듯해서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니 화성을 돌아보는 화성열차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억새밭이 펼쳐진다. 그 안으로 젊은 연인들이 숨어든다. 사진을 찍는다고 들어간 억새밭에는 길이 나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억새밭으로 숨어들은 것일까?

 

 

천년 그리움이

달빛으로

피어오른다

 

화홍문 흐르는

수원천

푸른 물소리

가슴을 적시면

 

세월도

쉬어가는

방화수류정

 

그리운 사람아,

용지 호심에 떠오른 팔각정이

오늘 더욱 유정하다

 

 

경기시인협회 이사장인 임병호 시인이 노래한 방화수류정이다. 한 시간 넘게 땀을 흘리며 걸어 온 화성의 가을을 잠시 쉬어본다. 봄철이면 용암에 가득 핀 철쭉에 마음을 뺐기고, 한 여름철이면 시원한 바람에 마음을 빼앗기는 곳이다. 이 가을에는 용연 주변에 잎을 떠군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깊었음을 느낀다.

 

정조대왕도 이런 풍광 때문에 이곳에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을 지은 것은 아니었을까?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어머니 한 사람, 아이를 달랠 생각도 하지 않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일까? 그곳에 가을이 깊게 내려앉은 화성이 자리하고 있다.

 

정조대왕은 도시계획자이면서 동시에 개혁자이기도 했습니다. 수원 팔달산에 걸쳐 화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은 팔도의 상단을 수원으로 불러 모아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상권을 강화했습니다. 더불어 둔전과 많은 물을 저수할 수 있는 저수지 등을 만들어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30일 오후 3시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에 자리하고 있는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 앞에서 열린 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기획전에 참석한 이재준 수원시 제2부시장은 정조는 바로 도시계획자라고 했다. 이어서 당시에는 농업은 첨단산업이었다고.

 

 

우리나라는 60~70년대만 해도 농업이 첨단산업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조대왕의 업적이 있어 그동안 수원에는 지금은 이주해 간 농청진흥청이 들어왔고, 서울대 농과대학이 자리한 전국 최고의 농업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제 농촌진흥청이 이주해 간 자리에는 2,200억을 들여 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30일부터 201521일까지 전시가 되는 농업개혁의 산실특별기획전은 농업도시 수원의 전통을 재조명하고 수원시와 농림축산식품부가 함께 준비 중인 농어업역사문화전시체험관건립에 내실을 기하고자, ‘수원화성 착공 220주년 기념으로 <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 특별기획전시를 마련한 것이다.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돋보이는 윤음

 

이날 특별기획전의 기념식은 먼저 가야금 독주와 판소리 등 식전행사로 시작했다. 이어서 자리에는 이재준 제2부시장과 수원시의회 김진우 의장, 이낙천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사장, 김충영 수원시 청소년 육성재단 이사장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기념촬영과 테이프 커팅을 마친 일행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자료들을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는 화성유수 서유구의 자손들이 기증한 자료들도 함께 전시가 되어있으며, 정조의 농업정책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는 화성 성역을 중지시키는 윤음 등도 국문으로 번역해 전시를 하였다. 정조 18년인 1794년 화성 축조가 한창일 때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정조는 그 해 1019일 신하들과 화성성역의 진행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성역을 중단할 것을 명하였다. 대신 화성 북쪽의 평평하고 비어있는 땅을 개간하고, 관개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면 옥토가 되어 생산량이 높아질 것이므로 이 비용을 이용하면 화성 축성 공사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을 예견하였다. 이 윤음을 따라 내하전 12,666냥으로 둔전을 개발하고, 5,690냥으로 만석거라는 수리시설을 축조한 것이다. 윤음의 내용을 보면

 

<화성성역이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정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원침을 봉안하면서부터 유수부로 승격시켜 체모를 높이고 행궁을 설치하여 우러러보며 의지하는 마음을 붙였다. 성지(城池)를 설치함은 기호의 요충지 때문이기도 아니었고 5천 병마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이에 경사들과 모의하지도 않고 재정의 출입을 묻지도 않고서 경영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성을 쌓고 참호를 팠는데, 남북의 망루가 장차 완공을 고하게 되었다. 만일 흉년이 들지 않아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았다면 이 역사는 계속해 나아감만 있고, 미루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양한 자료 구비한 농업정책 기획전 돋보여

 

기획전에는 조선후기 이앙법의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수리관개와 관련된 농기구와 함께 <홍재전서><응지농서>, 5.6m에 달하는 <윤음><천일록>, <화성성역의궤> 등의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농학자로, 1836년 화성유수로 부임하여 농업개혁가로서 변모를 실현한 사유구의 관련유물 등이 전시되고 있다.

 

우리 수원이 농업의 도시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렇게 정조대왕의 농업정책에 관한 많은 자료를 보고나니 새삼 내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농어업역사문화전시체험관이 완공되고 나면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농업에 관한 자료를 갖고 있는 수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관식에 참가한 한 시민은 이런 좋은 자료를 전국의 농생명과학고나 농업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 담당자들이 한 번씩 둘러보았으면 좋겠다고. 더불어 농기구 등도 함께 전시가 되고 있어 배움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한다.

 

사적 제115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화령전 안에 있는 운한각은, 1801년에 건립된 조선 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조선조 순조 1년인 1801년에 축조된 화령전은, 순조가 아버지인 조선조 제22대 임금이었던 정조(재위 17761800)의 어진을 모셔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던 건물이다. 23대 임금인 순조는 이곳에서 노인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으며, 직접 정조가 태어난 탄신일과 돌아가신 납향일에 제향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 화령전 운한각에서 2512시부터 262주기 정조대왕 탄신제향이 거행되었다. 운한각 안에는 순조의 하교에 의해 현릉원 재실에 모셨던 정조의 어진을 1801년에 옮겨 봉안하였다. 순조는 이 화령전을 축조한 후 매년 장중한 탄신제향을 이곳에서 거행하였는데, 조선의 임금 가운데 어진을 모신 전각에서 탄신일에 제향을 지낸 것은 정조대왕이 유일하다.

 

 

원래는 새벽 1시에 맞추어 제향을 올려

 

화령전에서 정조대왕의 탄신제향을 올리던 시간은 새벽 1시였다. 하지만 정조대왕의 탄신기념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기를 바라고, 연례행사로 진행하기 위해 양력을 기준으로 삼아, 10월 네 번째 토요일에 올리기로 의견이 모아져 3년 전 복원한 탄신제향을 기본으로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지내게 되었다.

 

12시가 가까워지자 장용외영의 깃발을 든 장용영 무사들이 많은 유림의 인원을 대동하고 화령전 문안으로 들어섰다. 이날 제향은 행사안내를 시작으로 제관입장 - 망전례 - 초헌례 - 삼상향 - 독축 - 아헌례 - 종헌례 - 망료례 - 국궁사배례 - 예필례 - 음복례의 순으로 거행이 되었다.

 

 

이날 초헌관은 정조대왕 기념사업회 회장이 맡았으며, 아헌관은 염상덕 수원문화원장이, 종헌관은 김정수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맡았다. 창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종묘제례 이수자인 이상훈이 맡아 집례를 했다. 또한 여민락과 수제천 등의 의식음악은 수원국악예술단이 연주했다.

 

장중한 의식 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날이다

 

탄신제향을 찾은 한 시민은 올해 마음먹고 제향에 참석을 했다면서

말로만 듣던 궁중 제향을 이렇게 수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제향이라고 하면 성균관에서 열리던 문묘제향이나 종묘에서 역대 임금님들이 제를 지내는 종묘제례만 만날 수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화령전에서 정조대왕의 탄신제향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정말 수원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중국에서 수원 화성 관광을 왔다가 이곳에서 정조대왕 탄신제향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한 관광객은

중국에도 많은 의식이 있지만 이렇게 국왕의 제향을 지내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번에 한국에 나와 의미 있는 행사를 보게 되어 정말 기쁘다.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중국으로 돌아가면 지인들에게 자랑을 해야겠다,”며 웃는다.

 

제향이 시작되기 전에 화령전을 찾은 한 시민은 삼문 앞에 서 있는 문화재 안내판을 보다가

안내판에 정조대왕의 어진초상화리고 기록해 놓았다. 초상화는 일반인들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다. 대왕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어찌 어진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초상화라고 적고 있는가?”라고 뼈 있는 소리를 하기도.

 

어진이란 역대 왕들의 모습을 그린 한 폭의 그림을 말한다. 어진제작은 모두 세 종류로 도사(圖寫)와 추사(追寫) 그리고 모사(模寫)가 있다. 도사란 군왕이 생존해 있을 때 그 수용을 바라보면서 그린 것을 말한다. 추사란 왕의 생존 시에 그리지 못하고, 승하한 뒤에 그 수용을 그리는 경우이다. 모사란 이미 그린 어진이 훼손됐거나, 새로운 진전에 봉안하게 될 때 원본을 범본(範本)으로 해 신본을 그린 것을 말한다.

 

 

왕의 모습을 지칭하는 어진은 진용(眞容), (), 진영(眞影), 수용(晬容), 성용(聖容), 영자(影子), 영정(影幀), 어용(御容), 왕상(王像), 어영(御影) 등 다양하게 불렸다. 모두 왕을 높이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숙종 39년인 1713년 숙종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것을 이이명(李頤命)의 건의로 어진이라 했는데, 이후 이 명칭을 따라 어진이라고 주로 일컫는다.

 

한편 이날 독축에서 올린 정조대왕 탄신제 축문은 다음과 같다.

이제 단기 4347년 서기 2014년 갑오년 1025. 감히 조선국 제22대 국왕 정조 경천 명도 흥덕 영모 문성 무열 성인 장효 선황제께 고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장엄하고 근본 된 사당의 의절이 있으므로 화령전 운한각에서 제향을 올립니다. 얼굴색을 바로잡고 보시는 것과 같이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정갈하게 베풀어 밝게 올리니 삼가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날씨가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두 시간이 넘게 천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우 강희선의 사회로 진행된 제12대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를 선발하는 화성 행궁 앞에는, 7시가 넘어서면서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메우고 앉았다. 그리고 두 시간 반이 지난 9시가 조금 넘어서 심사표가 사회자에게로 넘어왔다.

 

먼저 혜경궁 홍씨 당선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참가번호 12번 유정임씨

순간 장내는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이어서 정조대왕에 참가번호 6번인 김웅기씨가 당선이 되었다고 하자 다시 한 번 환호성이 울린다. 정조대왕 역에 뽑힌 김웅기씨는 팔달구 매산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일증권회사를 거쳐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혜경궁 홍씨 역에 선발된 유정임씨는 권선구 평동 주민으로, 풍미식품 대표이사이며 한국농수산대학교 위촉교수이다. 또한 한국농식품 여성 CEO연합회 회장이다. 그 외에도 경기도 사랑의 열매 운영위원, 수원시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여성을 대표할만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조대왕 11, 혜경궁 홍씨 13명 경합 벌여

 

12대 정조대왕 후보에는 모두 11명이 참가를 했다. 1번 장석웅씨는 수원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고 군 생활과 직장도 수원에서 다닌 수원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2번 김민권씨는 권선구 세류3동에, 3번 김성태씨는 권선구 평동에 거주하는 시민이다. 4번 정민호씨는 영통구 광교동 주민이며, 5번 박형구씨는 장안구 파장동에 거주한다.

 

 

7번으로 참가를 한 윤진석씨는 장안구 정자3동에 거주하는 시민으로, 정자3동 새마을협의회 회장이다. 8번 유한영씨는 권선구 권선1동에 거주하며, 9번 정상대씨는 권선구 곡선동에, 10번 여경구씨는 권선구 세류1동에 거주한다. 끝으로 나온 11번 김선배씨는 팔달구 인계동에 거주한다.

 

올해 제12대 정조대왕 역으로 나온 모든 후보들은 하나같이 정조대왕으로 손색이 없었다고 한 심사위원은 귀띔을 해준다. 그만큼 심사를 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혜경궁 홍씨에는 모두 13명의 후보들이 경연을 벌였다. 1차는 당의심사로 2차는 한복심사로 진행이 되었다.

 

팔달구 매산동에 김영춘씨, 장안구 조원동에 최해연씨, 장안구 정자3동 김순애씨, 정자2동에 전경숙씨, 권선구 곡선동 황지원씨, 시인이자 수필가인 장안구 정자3동 김태실씨도 후보로 나왔다.

 

 

권선구 세류2동에 이주영씨는 수원중부의경 어머니 회장을 맡고 있으며, 세류1동 권명옥씨는 속리산 개발주식회사 심사과에 근무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권선구 세류3동에 임운자씨, 영통구 영통1동에 정혜경씨, 영통구 매탄1동에 김부순씨, 팔달구 화서1동에 서현숙씨 등도 혜경궁 홍씨 후보로 나와 자태를 뽐냈다.

 

국악반주로 듣는 가곡 신선해

 

선발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무대에 무에24기 시범단이 올랐다. 이들은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는 장용영 군사들이 익히던 무예를 활기 있게 펼쳐 많은 박수를 받았다. 1차 심사를 마친 후에는 수원국악예술단의 반주로 민은경의 화성아리랑과 배 띄어라 등을 들려주었다.

 

국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소프라노 이영숙과 테너 이동명이 들려주는 희망의 나라로, 나 가거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은 신선하였다는 평이다. 이어서 24명의 후보자가 나란히 무대에 선 가운데 만 4년 동안 정조대왕 역을 담당했던 윤성찬씨와 혜경궁 홍씨 역을 담당했던 수원시의회 한명숙 의원의 고별 퍼레이드가 있었다.

 

 

중간에 무대에 김진우 수원시의회 의장과 함께 오른 염태영 시장은

“24명의 후보자들이 모두 연세가 드셔서 쑥스러울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자리를 만들어 주신 것에 큰 감사를 드린다. 오늘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 마마에 뽑힌 분들은 앞으로 수원시의 각종 행사에, 수원을 대표하는 홍보사절로 활동을 하게 된다.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24명 모두에게 큰 박수로 응원을 해주자고 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한 시민은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하면서

날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후보자 모두가 끝까지 아름다운 경연을 벌인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누가 되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저 분들 모두가 정말 아름다운 수원시민이다. 오늘 선정이 되신 분들이나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긴 시간 정말 수고 많았다.”고 한다.

 

아쉽다. 보름달은 아니라고 해도 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행궁을 돌아본다. 그룹을 이룬 사람들이 신풍루 안으로 들어간다. 수원화재단의 기획 프로그램인 달빛동행에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수원시 SNS 서포터즈 들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달빛동행’, 가을이 깊어가는 날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행궁, 정조대왕이 노후를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 특별히 축조한 곳이 아니던가. 봉수당을 거처 낙남헌, 그리고 미로한정으로 오른다. 미로한정에 오르니 운치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경기도립국악단의 단원들이 달빛동행에 참가한 관객들을 위한 특별공연이다. 대금 반주에 맞추어 시조 한 수를 읊는다. 예전 정조대왕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로한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절로 흥에 젖는다.

 

그동안 달빛동행에 서너 번 함께 길을 걸었다. 계절이 달라서인지 그때마다 다른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길을 걸으면서 아쉽다라는 표현을 한다. 아쉽기만 할까? 이 좋은 프로그램을 왜 여기서 끝내야할까? 날이 찬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한 겨울에는 설경 나름의 운치가 있기 때문이다.

 

 

화성의 야경, 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몰라

 

미로한정 뒤편 담장에 낸 작은 문을 통해 뒤편 팔달산으로 오른다. 그곳에 화성열차가 대기 하고 있다. 화성열차에 올라 화성 성 밖으로 열차가 간다. 화성의 야경은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성을 축조한 것일까?

 

화성은 안과 밖으로 100번을 돌아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러기 전에는 화성을 논하지 마라

예전 선배 한 분이 들려준 말이다. 새삼 그 말이 이 밤에 떠오른다. 밤에 보는 화성의 야경은 또 다른 거대한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사람들은 이래서 달빛동행을 좋아하는가보다. 장안문에서 화성열차를 내려 성벽을 따라 걷는다. 저만큼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운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위에 작은 달 하나가 떠 있다.

 

방화수류정의 운치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오죽하면 이곳에 정자를 짓고 그 아래 연못을 팠을까? 용연에서 한 밤에 바라다보는 방화수류정.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찾기가 힘들 것만 같다.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어디선가 끊길 듯 말 듯 단소(短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가전천(訪花柳過前川))’ 송대의 시인인 정명도의 시에서 따와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방화수류정. 처음에는 용연 밖에 반달모양으로 조성해 둘레 210, 깊이 6척이었다고 한다. 정조 19년인 1795214일에 정조대왕은 신하들과 이곳에 올랐다. 이곳에서 달을 바라다보면 네 달은 몇 개인고?“를 물었다는 방화수류정, 그 아름다움은 그렇게 그곳에 자리를 틀고 있었다.

 

유여택의 공연 못내 아쉬워

 

수원천을 걸어 다시 행궁으로 돌아온 일행은 수원문화재단에서 제공하는 차와 한과를 받아들고 유여택에 자리를 잡았다. 달빛동행의 마지막 프로그램이다. 경기도립무용단과 국악단의 단원들이 펼치는 우리 전통을 만나는 시간이다. 가야금연주, 그리고 무고(舞鼓), 해금연주와 진도북춤, 그것만으로도 절로 흥겹다.

 

 

날이 차다. 하지만 달빛동행을 함께 한 사람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공연이 끝나고 자리를 일어서면 한 관객이 아쉽다면서 말을 한다.

겨울의 설경은 이보다 더 아름다울 텐데 정말 아쉽네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려고 하는데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설경에서 만나는 달빛동행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달빛동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화성과 행궁. 설경에서 만난다면 또 다른 운치가 있지는 않을까? 유여택을 떠나면서 너울너울 춤을 추던 무희들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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