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은 쉬지 않고 있다. 꽃샘추위가 몰려와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는 날에도 남수문에서 팔달구청 방향으로 가는 화성 안쪽을 정비하기 위한 공사는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새로 공사를 하는 곳은 남수교에서 동남각루 아래를 지나 소망세광교회 뒤편과 용주사 수원 포교당인 수원사 뒤를 지나 팔달구청 앞쪽인 창룡대로로 연결이 되는 곳이다.

 

10일 오후 동남각루 해체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곳을 돌아보려고 남수문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보니, 아래편에서 중장비의 굉음소리가 들린다. 동남각루 성 안쪽으로 정비공사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중장비에 올라 탄 기사들도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작업에 열중이다.

 

 

 

해체보수공사를 하는 동남각루

 

각루란 성곽의 비교적 높은 곳에 설치한다. 주변을 잘 살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성에는 네 곳의 각루가 있다. 이 각루는 정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옛 선인들은 정자와 같은 건물을 지을 때 ()’()’로 구분을 했다. 보편적으로 정자는 땅의 지면에 붙여지은 건물을 말하고, 루는 아래로 사람들이 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중층으로 된 건물을 말한다.

 

남수문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동남각루가 있다. 이 동남각루는 남수문을 지켜내기 위한 구조물이다. 동남각루는 남공심돈(지금은 유실되어 버린 화성의 구조물 중 하나)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동남각루는 작지만 아래는 온돌방을 들여 한 겨울에도 병사들이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조성한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런 동남각루가 지난해 봄 해동이 되면서 약간 성벽 쪽으로 기울어졌다. 땅이 녹으면서 지반이 무게를 버티지 못한 것일까? 우선 성벽에 버팀목을 바쳐 지탱을 해 놓은 것이 영 보기가 안 좋았는데, 어느 날 동남각루 해체보수 공사를 하기 위해 가름막을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49일까지 해체보수 공사 마칠 것

 

지난 해 129일부터 올 49일까지로 공사기간을 정한 동남각루 해체보수 공사는 공사비 일억 천사백 육십 육만원을 들여, 문화재청과 경기도, 수원시가 발주를 하고 태원종합건설주식회사가 시공을 맡았다. 문화재보수공사는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석공과 한식목공, 번와와공 등 자격증을 갖고 있는 장인들이 담당을 하게 된다.

 

봄이 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화성을 찾아온다. 4월이면 화성 주변에 아름답게 피는 꽃들을 보가 위해 관람객은 물론 사진작가들도 수없이 찾아온다. 그들이 몰려오기 전에 공사를 마치기 위한 배려인지 49일까지는 해체보수공사를 마치겠다는 것이다. 가름막 안을 들여다보니 공사를 하다가 잠시 중단이 된 것만 같다.

 

 

 

문화재 보수 공사는 상당히 신경을 써야한다. 날이 추울 때 공사를 하면 또 다시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공사를 하다가 중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또 다시 이상이 생길 것을 염려한 것일까? 남수문을 지나 창룡문 방향으로 걸어본다. 꽃샘추위를 몰고 온 바람이 세차게 불어 화성에 늘어놓은 영기(令旗)들이 찢어질 듯 나부끼고 있다.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지만 봉화대화장실 옆 게이트볼 장에는 어르신들이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고함을 치면서 볼을 치고 있다. 화성은 늘 많은 사람들을 보듬고 있다.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깃들었기 때문인가? 추운 날에도 화성은 쉬지 않는다.

 

 

난 인생 헛살지 않았다고 속으로 다짐해

 

그래도 계속하셔야죠. 저는 선생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오늘 우연히 현장 취재를 하다가 들은 말이다. 겨울이라서 인가 길이 유난히 미끄러운 곳이 많다. 항상 나는 도대체 그 역마살이라는 것이 나를 가만히 놓아두지를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하지만 주말에 약속을 하고 시간이 남아 겨울철 공사를 준비하고 있는 서남각루를 찾아가다가 그만 발을 헛딛고 말았다.

 

남수문 뒤편은 얼음이 얼어 길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남수문을 바라보고 걷고 있다가 그만 얼음판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넘어져서 어디가 조금 멍들고 깨지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문제는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이다. 20년 넘는 세월 문화재 답사를 하고 다니면서 깨 먹은 카메라만 해도 열 대가 넘는다.

 

 

 

"괜찮으십니까? 큰일 날 뻔 하셨네요."

 

망신살이 뻗친 취재 길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이. 올 해 대학교 3학년이라고 하는 젊은이는, 이제 나이가 25살이란다. 아마 중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한 것 같다. 얼음판에 엉덩방아를 찧었으니 그 아픔이라는 것이 대단하다. 그런데 더 아픈 것은 주말이라 사람들이 남수문 근처에 상당히 많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카메라를 안고 넘어졌으니 그대로 얼음방아를 찧을 수밖에. 항상 취재나 답사 길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몇 배 더 고통이 뒤따른다. 오늘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래시간 답사를 하면서 카메라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차라리 내가 다칠망정 카메라는 지켜내야 한다. 카메라가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취재나 답사가 모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엉덩이 아픈 것도 모르고 카메라부터 살펴

 

그렇게 엉덩방아를 찧는데 달려와 안 다치셨느냐?‘ 고 물어보는 젊은이가 있다. 젊은이는 카메라를 꼭 붙들고 있는 나에게 카메라가 그리 중요한 것이냐고 묻는다. 그저 웃고 말았지만 새로 장만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터에, 넘어지는 바람에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이런 낭패가 더 있을까?

 

이 얼음판에 카메라를 들고 어디를 가시는 길이세요?”

, 저 위에 서남각루 공사 현장을 좀 찍으려고요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한두 번도 아닌걸요.”

답사를 얼마나 하셨기에 많이 사고를 당하셨나 봐요?”

, 20년 한 것 같네요

 

화성관람을 하러 왔다는 젊은이는 여자 친구인 듯한 사람과 동행이었다. 요즈음은 남들의 아픔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나던 길에서 쳐다보고 쫒아와 걱정을 해주는 젊은이가 여간 고맙지 않다. 엉덩이에 몰려드는 통증으로 다리를 좀 절었나보다. 젊은이가 근처 커피숍이라도 들어가 잠시 쉬는 것이 낫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어느 틈에 약방으로 달려가 소염제를 사갖고 왔다.

 

고마운 김에 명함 한 장을 주었더니 명함을 보고 있다가 반색을 한다.

티스토리 블로그 운영하시네요?”

,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온누리 선생님이세요?”

그런데요. 어떻게 절 아세요?”

선생님 블로그에 매일 들어가서 보는데요.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정말 반갑습니다.”

 

 

이제는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할 때

 

세상에 취재 현장에서 이렇게 반가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세상이 참 좁다고 느낀다. “선생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블로그를 보면서 저도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우선 제가 사는 지역부터 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화성을 12일로 관람하러 왔어요.”

그래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우리 문화재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세상 참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런 일도 있구나 싶다. 그리고 그 젊은이가 한 없이 고맙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문화재. 요즈음 들어 블로그 운영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나에게 이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더 없이 고마울 뿐이다.

 

선생님 힘내세요. 그래도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있어, 저희 같은 사람도 이렇게 문화를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그 한 사람이 나에게는 큰 힘이다. 그 말 한 마디가 정말 대가없는 일을 계속하게 만든다. 문화재 답사를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는 말에 그래도 계속하셔야죠. 저는 선생님의 열렬한 팬입니다.”라는 젊은이. 하기야 그렇다.

 

언제는 내가 대가를 바라고 시작을 했던가? 그저 우리 것이 소중하단 생각에 몇 십 년을 돌아다니는 나그네가 되지 않았던가? 오늘 취재 길에서 만난 젊은이로 인해, 난 또 끝없는 답사 길을 올해도 가야만 할 것 같다. 참 역마살 한번 오지게 질기다. 별별 인연으로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보니.

 

 

의궤란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가 끝난 후에 제작하는 일종의 행사 보고서이다. 왕의 혼인을 비롯하여 세자의 책봉, 왕실의 잔치, 왕실의 장례, 궁궐의 건축 등과 같이,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하는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모든 기록을 모아두었다가 행사에 끝난 뒤에 임시 기구를 만들어 의궤를 편찬했다.

 

의궤의 제작은 총책임자에 해당하는 도제조 1인과 제조 34, 그리고 실무 관리자들인 도청 23, 낭청 48명 및 감조관 6명이 있다. 그 아래에 문서작성, 문서수발, 회계, 창고정리 등의 행정 지원을 맡은 산원과 녹사, 서리, 서사, 고지기, 사령 등도 임명한다. 외에 화원, 장인 등 실제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부서별로 배치하였고, 의궤가 만들어질 때 이들의 실명을 기록하여 책임감을 부여하였다.

 

 

 

조선조를 통 털어 의궤 중 가장 정확하게 기재를 한 것은 역시 <원행을묘정리의궤>였다.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를 하기 위해 도성을 떠나 화성 행궁에 머물면서,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비롯하여, 원행길, 묘소참배, 주조(낮에 하는 군사훈련), 야조(밤에 하는 군사훈련) 등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하였다.

 

3D 다큐영화로 만났던 의궤, 8일간의 축제

 

지난 해 615, 수원역사 내 CGV 수원 7관에서 열린 KBS에서 제작한 3D 역사 다큐멘터리인 의궤, 8일간의 축제8일간의 왕의 행차를 3D영화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최필곤 PD가 제작을 한 의궤, 8일간의 축제<원행을묘정리의궤> 8책에 수록된 내용을 3D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것이다.

 

8일간의 축제는 극장에서 상영을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그런 의궤, 8일간의 축제를 집안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3일 새벽에 집안 정리를 하고난 후 TV를 켰는데, KBS-1TV에서 극장 상영작 다큐멘터리를 연속으로 세편을 방영한 한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방송을 한 것은 히말라야의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눈과 얼음물 등을 지나며 악전고투를 하는 10일간의 여정을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 낸 학교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의궤 8일간의 축제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피곤하기도 했지만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집중해서 볼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영상을 담아내면서 열심히 시청을 했다.

 

감동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수원과 관련된 의궤로는 화성의 축성 과정을 그대로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외에도, 1795년 화성에서 치른 정조대왕의 모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의 기록을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 1800년에 승하한 정조대왕의 국장을 기록한 <정조국장도감의궤>, 사도세자의 봉분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내용이 기록된 <현륭원 원소도감의궤>와 정조대왕의 능침인 건릉을 조성한 내용을 기록한 <정조 건릉 산릉도감의궤>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원행을묘정리의궤><화성성역의궤>와 함께 의궤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기록물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여러 형식의 그림들이 본문에 앞서 별도의 권수에 실려 있는데, 의궤 안에 그려진 그림들은 종류의 다양함과 정확성,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로 원근법과, 회화적 우수함 등이 이 책의 자랑이다.

 

1시간이 넘게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를 시청하면서 다시 한 번 정조의 강한 국가의 만들기 위한 의지와,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감동을 한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로 인해 좀 더 화성과 수원, 그리고 정조의 마음과 화성의 축성 등에 대해 마음 깊이 깨닫는다.

 

새벽시간에 비록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잊힌 역사의 한 면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가? 꼭 한 번 다시 보았으면 생각했던 의궤, 8일간의 축제연초에 생각지 않게 방송에서 만날 수 있었던 즐거움이다.

 

수도 없이 화성을 걸었다. 10년 넘게 화성을 촬영하면서 아픔도 보았다. 바로 서장대가 화재로 인해 소실이 된 사건이다. 지금은 번듯하게 제 모습을 하고 있는 서장대를 바라보면 늘 고마움을 느낀다. 서장대는 팔달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정조대왕은 8일간의 화성 행차 때 이곳에서 밤에 군사훈련을 주도했다. ‘야조가 그것이다.

 

26e수원뉴스 김우영 주간과 함께 서장대에 올랐다. 화성을 돌아보는 사람들 누구나 이곳을 오른다. 하지만 서장대만 바라보았지, 그 뒤편 서장대의 성벽을 살펴보는 것을 차근차근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벽이 이중으로 쌓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총안이 있다. 그냥 성벽을 걷는 길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중의 성벽이라니.

 

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가보았다. 무심히 지나쳤던 화성 서장대의 밖의 성벽. 참 어지간히 바보라는 생각이 든다. 성벽 위 여장에 난 총안이 아니라 성벽에 총안이 있다. 총안마다 네모나게 단단히 총안 주변을 돌을 쌓았다. 그리고 이곳의 여장에는 틈이 없다. 여장을 붙여 설치를 했다. 중요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적이 왔다면 지례 기겁을 할 판

 

서장대 밖의 성벽을 보다가 또 다른 화성을 만났다. 만약에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면, 가파른 팔달산을 힘들여 올라온 적들이 숨조차 돌리기 전에 미리 기겁을 하고 죽을 판이다. 여장에서만 화살과 총알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성벽에서도 끓는 물과 화살과 총알이 날아온다고 생각을 해보라. 그 자리에서 지례 겁을 먹고 숨이 멎을 판이다.

 

정말 대단한 화성인데 한 번도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은 것이 아깝네.”

아마 적들이 힘들게 여기까지 기어올라 왔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이라니

 

서장대 바깥의 성벽을 보면서 놀라움이 이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성을 쌓을 생각을 한 것일까? 주요시설마다 여장의 틈을 주지 않은 것도 놀라운데, 이중으로 된 성벽에 난 총안이라니. 새삼 화성의 견고함에 놀랄 수밖에.

 

 

쐐기흔적을 찾아내다.

 

서장대 바깥은 돌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바위를 절개한 흔적으로 보니, 이곳에서도 화성을 쌓을 때 돌을 뜬 곳이다. 수십 번을 이곳을 지나치면서도 돌을 떴다는 생각만 했지, 화성을 쌓을 때 돌을 떠내기 위해 쐐기를 박았던 흔적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중으로 쌓은 화성을 보고난 뒤, 이곳에도 쐐기를 박았던 흔적이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이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 있어요.”

김우영 주간이 작은 바위 하나를 가르친다. 작은 돌 하나에 쐐기를 박기 위해 파 놓은 자욱이 그렇게 남아있다. 서장대 바깥의 성벽은 멀리가지 않고 바로 밑 바위를 쪼개 쌓았다는 것이다. 하긴 이 꼭대기까지 어떻게 큰 돌을 날라다가 성벽을 쌓았을까? 그 흔적 하나가 화성의 또 다른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화성은 100바퀴를 돌아야 전부를 알 수 있다

언젠가 화성을 답사하다가 만난 어르신의 말씀이다. 그 때는 속으로 ‘100바퀴씩이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화성은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알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띠기 시작한다. 이제야 그 어르신이 정말 화성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날의 오후, 새삼스럽게 화성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전부를 알 수 없는 화성, 정말 100바퀴를 돌아보아야 할 것만 같다. 돌아보면 또 다른 무엇이 놀라게 하는 화성. 오늘 또 화성의 숨어있던 한 곳을 찾아낸다. 답사의 즐거움이다.

 

가을은 쓸쓸하다고 한다. 곧 바람 불고 추운 겨울이 오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가을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가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뭉개지고 나서야

비로소 길이 된다

낮게낮게 겹쳐져

절룩이며 이은 길

바람의

느낌표 밟은

경북 영덕 그 어디쯤

 

언뜻 언뜻 내비치는

바다를 만지다가

스스로 어둠 택해

작은 빛이 되는 길

덧칠한

묵은 상처도

길 위에서 길이 된다.

 

우은숙 시인의 ‘7번국도라는 시이다. 7번국도, 이 가을에 달려가고 싶은 곳이다. 동해의 푸른 물살이 밀려드는 곳. 참 어지간히 그 길을 따라 걸었다. 특히 가을에 걷는 7번국도는 남다르다. 무엇인가 표현을 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 그 길에 있었다. 천학정, 청간정, 영랑정, 의상대, 하조대, 경포대, 약천정, 만경대, 임해정, 죽서루, 해운정, 월송정. 그 많은 정자를 찾아 이 가을에 다시 7번국도를 걷고 싶다.

 

 

난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아련하게 밀려오는 곳. 7번국도의 정자들은 그렇게 나를 오라 손짓한다. 하지만 벌써 몇 해째 그 길을 걷지 못했다. 가을은 모든 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든다고 했던가? 그런 아름다운 길을 난 내 옆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길은 7번국도를 대신하는 길이 아니다. 이 가을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길이다.

 

왜 이 길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표현을 하는 것일까? 화성의 화서문에서 서장대를 향해 밖으로 오르는 길. 그곳에 억새밭이 있었다. 그저 바라다만 보아도 좋다. 은색의 억새들이 가을을 노래한다. 사람들은 왜 이곳을 그냥 지나치는 것일까? 그 억새밭 사이로 몇 개의 길이 나있다. 사진께나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안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울컥 울화가 치민다. 자신의 작품을 하나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억새밭에 길을 만들어 놓다니, 이 억새밭은 작가들을 위한 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곳인데 말이다. 아이들이 그 억새를 배경을 사진을 찍는다. 차라리 그 아이들이 아름답다. 어려서부터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아이들. 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몰지각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가을, 그대로 보내야 하나?

 

아름답다. 차라리 시 몇 줄 이라도 쓸 줄 안다면 이 가을을 그냥 보내지는 안았을 것을. 이 가을을 그냥 보낸다는 것이 왠지 가슴이 시리다.

그러니까, 시 공부를 좀 하셨어야죠. 괜히 미음만 아파하면 저 억새들이 함께 아플 거예요. 내년에는 이곳을 찾아와 시 한편 짓고 가세요.”

 

 

파워블러거 모임에 참석한 한 지인이 하는 말이다. 나 때문에 억새가 마음아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난 이 아름다운 가을을 글 한 줄 표현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억새들이 마음 아픈 것일까? 그저 사진 한 장 담아내는 것으로 이 가을을 보내야만 하는 것일까? 차라리 손을 들어 브이(V)자를 만드는 저 아린아이들이 부럽다. 저 아이들이야말로 이 가을을 제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만추(晩秋)는 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든다고 했던가? 화성의 포루와 치성, 그 성벽과 아우러진 가을이 내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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