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서원리에 가면 이름조차 낯선 갤러리가 있다. <물맘 갤러리>라는 작은 이정표 하나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서 있다. 이 안내판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 만나는 집이 바로 물맘갤러리이다. 갤러리의 주인 서종훈씨(남, 50세)는 현재 민족예술인총연합의 경기도지회장이다.

이 갤러리 안에는 못쓰게 망가진 보습, 쟁기, 삽, 쇠스랑, 호미. 그리고 옛날 숯을 넣어 곱게 한복 선을 주름잡던 다리미 등이 새로운 모습으로 생명을 얻어 전시가 되고 있다. 두 번에 걸쳐 사람들과 공동작업을 통해 전시회를 갖기도 한, 이 폐농기구의 새 생명전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폐농기구가 주는 의미

폐농기구는 단순히 고철이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 선조들의 피땀이 배어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이 그 안에 녹아있다. 쇠스랑, 쟁기, 호미 등, 이런 것들을 이용해 힘들게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 농기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먹고 사는데 이용한, 생명의 원천이었다. 그 안에는 가족의 생명이 함께 한다. 그래서 창고에 넣어두고 녹이 슬었지만, 버리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런 폐농기구가 창고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새 옷을 입었다. 아버지의 모습으로, 꽃으로, 그리고 또 아름다운 산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의미는 무엇일까? 전문적인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것도 있지만, 집에서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들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 그림 하나마다 뜻을 둔다. 그것은 곧 어제와 오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생명을 불어 넣은 사람들은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기에 이 농기구들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망가지고 부수어진 농기구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면서, 스스로의 생명줄을 이어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강에 꽂힌 괭이가 주는 아픔

여주는 남한강이 가로지른다. 은모래금모래의 추억은 여주사람들 누구나 다 갖고 있다. 어릴 적 그곳에서 수영도 하고, 모래밭에서 두꺼비 집도 지었다. 그래서 강변을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런데 그 맑은 물에 커다란 괭이 하나가 떡하니 박혔다. 무슨 의미일까? 보는 이마다 제각각 의미부여를 한다. 어떤 이는 이것을 배라고 한다.

강심에 배를 띠운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한다. 그도 맞다. 어떤 이는 이것이 무분별하게 파헤쳐지는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 말도 맞다. 폐농기구가 주는 의미는 그래서 무한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어울리지 않는 괭이 한 자루. 그것은 곧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아버지의 땅엔 무슨 일이

아버지의 땅. 삽 한 자루에 깊게 골이진 얼굴. 옆머리는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아버지는 이 땅에서 무엇을 헸을까? 그 위에 이빨이 다 나가버린 삽 한 자루가 덜렁 놓여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한 마디로 이렇게 피눈물 나게 농사를 지었다. 삽날이 다 닳아빠지게 고생을 하면서 농사를 지었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부채 뿐은 아닐는지.

그렇게 힘든 세상을 살다가 보니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손가락 마디는 굳은살이 박여 제대로 굽어지지도 않는다. 그런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굳게 닫힌 입이, 그리고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이 마음 아프다. 날이 빠진 삽이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직도 땅을 떠나지 못하신다.

엉겅퀴야! 엉겅퀴야!

엉겅퀴의 어린순은 나물을 해서 먹는다. 그리고 엉겅퀴의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하는 등 볼품없는 풀이지만 많은 곳에 사용을 한다. 엉겅퀴는 지혈을 하는데 특효가 있으며, 각종 출혈에 좋다. 특히 폐결핵에 뛰어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요법에서는 엉겅퀴로 술을 담으면 신경통과 요통의 특효약이라고 한다.

이런 엉겅퀴가 날이 나간 쇠스랑과, 자루가 빠진 낫과 함께 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작가는 이 엉겅퀴가 많은 약효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란다. 농사를 짓다가 뼈가 갈라지고,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긴 상처. 몸도 마음도 찢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엉겅퀴를 그렸다. 그리고 답답한 나머지 논두렁에 앉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다가, 망가져버린 폐와 간을 위해 엉겅퀴를 그렸다. 그래서 망가진 농기구는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되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병든 우리네들

옛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말이 있다. 적은 일을 괜히 크게 벌려 낭패를 본다는 뜻일 게다. 요즈음 우리 사회기 그렇다. 그저 순탄히 넘어갈만한 일을 괜히 크게 벌려놓고 감당을 하지 못한다. 작은 호미 하나로 할 일이 있고, 가래로 할 일이 따로 있다. 그런데 호미를 써야 할 일을 괜히 가래를 들고 나오기도 한다. 정말 정신이 없다.

녹이 쓸어 쓸 수 없게 된 낡은 호미에 오방색을 칠했다. 오방색은 우리의 방위를 상징한다. 그리고 온누리를 상징한다. 자연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화가 되어간다. 물은 흐르는 대로 흘러간다. 그 물은 자연이다. 호미 안에는 그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리미와 쇠스랑

쇠스랑은 세발 쇠스랑과 네발 쇠스랑이 있다. 같은 쇠스랑이다. 흙을 일구고 덩어리진 흙을 잘게 만들어 밭을 편편하게 만들 때는, 따비, 쟁기, 가래 등을 사용한다. 쇠스랑도 이때 사용하는 농기구다. 논둑을 뒤엎고 흙을 긁어모을 때도 사용한다. 쇠스랑은 우리 농기구 가운데 많은 일을 감당한다. 이 자루도 없는 녹 쓴 쇠스랑이 꽃줄기가 되었다. 이제는 쇠스랑을 쓸 일이 많지가 않다. 모든 것을 기계가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쇠스랑이 대신 꽃을 피웠다.


다리미가 있다. 안에다 벌겋게 단 숯을 집어넣고 다림질을 한다. 다리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듯한 물은 생명의 물이다. 거기서 많은 물고기들이 산다.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다리미는 뜨겁다. 온기가 있다. 그래서 다리미를 이용했다. 지금은 저런 다리미를 사용하는 가정은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다리미다. 그 다리미가 생명을 살린다.

이렇게 생명을 얻은 폐 농기구둘이 전시가 되어있다. 여기에는 우리사회의 병든 모습이, 그리고 망가진 우리네의 농촌이, 멍들어버린 농사꾼의 마음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치유하기 위한 작업을 한 것이다. 그 폐 농기구들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어찌보면 그 망가지고 녹쓴 모습이 우리 민초들은 아니었을까? 다시 눈 여겨 본다.

여주 신륵사. 봉미산 신륵사라고 이름을 붙인 이 고찰은 신륵사라는 이름보다 ‘벽절’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남한강 변에 자리 잡은 신륵사 일주문에는 '봉미산 신륵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는 이 고찰이 자리한 절이 봉의 꼬리라는 것이다. 그 봉의 머리는 바로 강원도 오대산이다.

신륵사 조사전 뒤에 보면 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신륵사 서북쪽으로 난 이 계단을 오르면 보물인 보제존자의 석종과 석등, 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뛰어난 조각기법을 선보이는 고려시대의 석등

철책으로 조성된 보호대 안에 자리한, 보물 제231호인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이란 명칭을 갖고 있는 석등은, 조각기법이 뛰어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석등은 대개 절의 전각 앞이나 부도탑 등의 앞에 세운다. 아마 두 곳 모두 불을 밝힌다는 뜻을 갖고 있나보다. 더욱 보제존자의 사리를 모신 석종 앞에 있는 이 석등은,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부처의 세계로 가는 길을 밝힌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보물 제231호로 지정이 된 8각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간주석이 없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었다.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구분이 되며, 받침돌에는 표면 전체에 꽃무늬를 가득 새겨 장식하였다. 화사석은 각 면에 무지개 모양의 창을 낸 후, 나머지 공간에 비천상과 이무기를 조각했다.



630여년이나 지난 소중한 문화재

이 석등은 고려 우왕 5년인 1379년에, 보제존자 석종 및 석비와 함께 세워진 작품이다. 조성시기를 알 수 있는 630년이나 지난 세월을 지켜 온 귀중한 유물이다. 이 석등은 고려 후기의 대표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석등을 촬영하다가 화사석을 본다. 그리고 절로 탄성을 지른다. 어찌 이 단단한 돌에 이렇게 섬세한 조각을 할 수가 있었을까? 비록 안면은 다 깨어진 것인지 사라졌지만, 그 하나하나가 정말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당장이라도 석등을 박차고 날아오를 것만 같은 부드러움. 천의는 하늘거리며 석등을 벗어나 나부낄 듯하다.




기둥을 타고 오르는 이무기는 또 어떠한가? 금방이라도 비를 만나면 용이되어 하늘로 승천을 할 것만 같다. 8면에 새겨진 비천상 그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특징이 있게 표현이 되었다. 아마 이 석등이 언제인가 그저 하늘로 날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우둔한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찾았다. 그리고 석등 앞에서 일일이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한다. 우리들은 그저 무심코 지나쳐버리고 마는 그러한 문화재를, 저들은 이렇게 꼼꼼히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부끄럽다. 남들도 저렇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훼손이나 시키고 있다는 것이. 비천상들의 안면이 다 사라진 것을 보면서, 그 부끄러움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여주군 북내면 중암리와 강천면 도전리에는 ‘라파엘의 집’이 있다.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운영하는 단체(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회, 원장 정지훈)가 같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우들이 묵고 있는 이 두 곳은, 중암리에는 20세 미만이 도전리에는 20세 이상의 장애우들이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들린 이유는 ‘스님 짜장’ 봉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곳을 둘러보고 난 후, 참으로 부끄러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도전리에 있는 라파엘의 집을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난 후, 이들의 생활에 오히려 내가 위안을 받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 라파엘의 집에는 170명 정도의 장애우들이 묵고 있다. ‘시각중복 장애인의 재활과 교육의 메카’라는 슬로건을 걸고 생활하는 라파엘의 집을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에 떠난 길

아침 6시 30분. 채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남원을 출발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라파엘의 집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도전리에 있는 라파엘의 집을 찾아가, 김정식 시설부장의 안내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말끔히 정리가 된 경내는 여기저기 장애우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한 곳을 들어가니 스태플 작업을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들과 장애우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 눈이 보이지가 않는다고 하는데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들에게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우문을 해본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가 시각중복장애우 들입니다. 모든 분들은 각자 통장을 갖고 있어 이렇게 일을 하고 받은 수당은, 모두 당신들의 통장으로 바로 입금이 됩니다. 사회인들과 똑 같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는 것이죠.”




다음 칸으로 가니 구슬 꿰기, 머그컵 만들기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 판매를 하기도 한다. 함께 동행을 한 도자 작가들도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을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들, 내가 정말 부끄럽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살이를 하면서 불평을 한다. 살기가 어렵다. 누가 보기 싫다 등. 이런 말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라파엘의 집 사람들은 오직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같은 시각장애우면서 지도선생이라는 분이 찬찬히 안내를 시작한다.



“우리는 등록상표가 천사 라파엘입니다. 이곳은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고, 저쪽은 컴퓨터실입니다. 컴퓨터를 켜면 화면을 읽어주는 시스템이 개발되어 편리합니다. 노래도 듣고, 책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 중 음악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 조직한 밴드도 있다는 것이다. 라파엘의 집 경내에는 각종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시설까지 마련이 되어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들과 자원봉사 학생들의 손을 잡고, 식당에 모인 라파엘의 집 가족들. 그들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 우리가 다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외롭고 소외된 곳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사람들. 지원이 부족해 늘 안타깝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단다. 말로만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직접 찾아와 그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에도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당신들. 당신들이 정말 부럽다. 그리고 힘껏 박수를 치고 싶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는 여주에서도 외진 곳이다. 바로 옆에는 고달사지가 있어 주변 관광지로는 최고이긴 하지만, 이곳은 그런 호사를 누리고 살지를 못한다. 그 상교라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지우재' 이곳의 주인은 이제 중반에 들어선 부부화가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도자기에 더 심취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참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든다. 모습도 그렇거니와 그 사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 세상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조금은 물질적으로 부족하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늘 부끄럽기도 하다.


비에젖은 꽃들이 아름다운 집
 
이 집의 전시실 앞에 홍매화 한 그루가 서 있다. 비를 맞아 잎이 떨어질까 염려를 했는데, 오히려 더 깨끗해진 모습으로 아침에 사람을 반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이 집에는 화단이 좋다. 금낭화며 보라색 꽃을 피우는 무스카리 등, 그리고 한 철 내내 야생화가 피어있기 때문이다.

 

비에 젖은 홍매화 한 그루가 유난히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이 집 주변을 돌아보면 먹을 것 천지다. 그냥 먹을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채취를 할 수 있는 먹거리이다. 도자기 그릇에 담긴 자연에서 채위한 먹거리. 이보다 더한 호사가 있을까 싶다. 그런 자연의 먹거리를 채취해 상을 차릴 줄 아는 안주인의 마음도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전시실 앞에 아름답게 보라색 꽃은 이 집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꽃들 중 하나이다.

고택에 마련한 전시실. 땀이 배어있어

꽃 구경에 넋을 잃다가 잔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바깥주인이 만든 각종 도자기와 안주인이 그린 그림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 집에 들릴 때마다 들어가보는 전시실이다. '지우재'란 이름은 바로 이 전시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전시실에서는 땀 냄새가 난다. 그래서 더욱 좋다.

 

 

 

 

전시실인 지우재를 채우고 있는 각종 도자기들과 벽에 걸린 그림.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지우재의 주인들이다. 조금은 힘이 들 수도, 조금은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을 자연 속에 묻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곳을 들릴 때면 일부러 하루를 묵고 가기도 한다.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곳엔 늘 우리가 미쳐 바라보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는 듯하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의 닮은 마음이려니 생각이 든다. 그 자연을 닮은 부부의 모습에서 그들이 바로 자연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의 행사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를 하는 대동의 놀이이다. 그 중에서 가장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놀이는 줄다리기이다. 줄다리기는 우리나라의 전역에서 고르게 나타나던 대보름의 세시민속놀이이다. 이러한 줄다리기는 줄을 당기고 난후 마을마다 줄을 이용하는 방법이 틀리다.

어느 곳에서는 줄을 당기고 난후 당산나무나 선돌 등에 감아두는가 하면, 어느 마을에서는 보를 막기도 한다. 또한 줄을 잘라 지붕 위에 던지면 액을 막는다고 하여, 줄을 잘라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줄다리기를 한 줄은 마을마다 그 처리방법 등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적인 면에 있어서는 풍농, 가내의 안과태평, 마을의 평안 등으로 귀착이 된다.


액송을 하는 여주 흔암리 마을

여주군 흔암리 마을에서는 예부터 정월 보름날 줄을 당기고 나서, 그 줄을 얼어붙은 청미천 위에 갖다 놓았다. 줄에는 작은 액송기를 꽂아, 날이 풀리면 액송기를 꽂은 줄이 남한강을 따라 떠내려간다. 그렇게 줄이 떠내려가면, 모든 액이 다 사라진다는 속설을 갖고 있다. 남한강 둔치에서 벌어지던 여주의 대보름 액송의식을 사진으로 들여다본다.

줄을 당기고 난 후 풍물패들이 인도를 해, 액송기를 꽂은 암줄과 숫줄을 강으로 들고 간다


줄을 당긴 후에 줄을 강가로 옮기고 있다(위) 줄에 꽂은 액송기. 자신의 서원을 적은 기를 줄에 꽂는다.


줄과 함께 떠내려 보낼 액송집 앞에 촛불을 켜고 있다(위) 액송기를 꽂은 줄(아래)


액송의식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살풀이를 추고 있다. 살풀이는 남한강 물속에서도 이루어진다. 남한강에서 생명을 잃은 모든 것들의 원을 풀어버리는 의식이다.



액송집과 함께 액송기를 꽂은 줄을 강물에 띄워 보내고 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액이 사라진다고 한다.


떠내려가는 액송기를 꽂은 줄과 액송집. 그리고 또 하나의 줄을 보내고 있다(아래)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쌍룡(암줄과 숫줄). 이렇게 아름다운 대보름의 액송의식이 4대강 개발로 인해 남한강 둔치가 사라지면서 함께 중단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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