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에 작은 체구, 얼핏 보아서는 그림을 그려도 순정만화를 그릴 것만 같은 그런 생김새다. 그런데 정작 전시실에서 만난 그림은 영 딴판이다. 무엇인가 사회를 향해 두 손을 불끈 쥐고 고함이라도 칠 것만 같다.

 

그런 작은 체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31살이라고 한다. 수원시 권선구 구운동에 거주하고 있는 박정신 작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를 졸업했단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박정신 작가는, 수원 동우여고를 다니면서 무엇인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기 위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무엇인가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을 그리면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다른 것은 다 이런저런 주변의 환경에 걸리겠지만 그림은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판화 속에 담겨진 작가의 분노 느껴져

 

생각지도 않은 대답에 조금은 당황스럽다. 많은 작가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지만 이렇게 의외의 대답은 처음이다. 28일 팔달구 행궁마을 커뮤니티 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민예총 미술위원회의 전시인 세월호의 아픔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세월아 세월아전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판화.

 

40×40cm의 크지 않은 목판화는 파도처럼 일어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파도와 촛불이 세상을 향한 분노의 주먹을 움켜쥔 듯하다. 그 작은 판화 속에서 작가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느끼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그런 왜소하고 앳된 표정 속에 어떻게 이런 울분이 숨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한 번도 힘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에 다닐 때도 그랬고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다고 생각하질 않았죠. 그런 생각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오히려 제가 힘들다고 느낀 것은 그런 생활 속이 아니고 제가 하는 작업 때문이죠.”

 

 

작가의 긍정적인 사고가 앞으로의 기대를 걸게 해

 

참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박정신 작가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언제나 자신이 작업을 하는 작품에 대해서만 고민을 했다고 한다. 책 작업에 디자인을 하고 삽화 등을 그리면서 본인이 생활을 할 만큼은 늘 마음에 여유로움을 가졌단다.

 

사람들은 물질로 인한 어려움을 가장 큰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 여유라는 것이 저는 이해가 가질 않아요. 여유의 한계가 분명치 않잖아요. 저는 그저 알음알음으로 인해 작업을 하면서도 제가 필요한 만큼은 수중에 들어왔어요. 그것으로 생활을 하는데 충분했고요. 결국 어려움이란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 같아요.”

 

 

수원 팔달산 아랫동네 이야기를 다루는 계간지인 골목잡지 사이다에서 디자인과 그림을 담당하기도 했던 박정신 작가는 훌쩍 제주도 성산으로 떠나버렸단다. 사이다와의 계약기간이 끝나 처음에는 그저 며칠 친구한테 가서 놀고 오리라고 생각했으나, 그곳에 가니 그림 소재가 너무 많아 당분간 그림을 그려야 하겠다는 것.

 

저는 그저 제가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인 여유를 항상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글쓰는 작가, 연극하는 사람, 음악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죠. 세상에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벽을 두고 사물을 보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은 그림을 그리니까, 저 사람은 글을 쓰니까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벽을 허물면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주변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소홀치 않다는 것이다. 전시회에 참석을 하기 위해 수원 집으로 올라왔다는 박정신 작가. 내일이면 다시 재주도 성산으로 가서 작업을 해야 한다고. 잠시 나눈 대화 속에서 앞으로 많은 기대를 걸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세상을 보는 편견 없는 시각 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수원지부(지부장 이주영)가 주최하는 19회 수원 민족에술제<세월의 명()>이라는 재목으로 지난 23일부터 시작을 하여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수원민족예술제는 미술위원회의 세월아 세월아 가슴 아픈 세월아 전22일부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에 소재한 행궁레지던시 1층 행궁마을커뮤니티아트센터에서 31일까지 열린다

 

이전에 미술위원회와 음악위원회, 풍물위원회, 영화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23일 오후 640분부터 화령전 앞 생태교통 홍보관 큰마당에서 열렸다. 이날 음악위원회는 현실의 고단함과 미래의 꿈과 희망 등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아름다운 노래들을 보급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풍물위원회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풍물을 올바르게 지역사회에 계승발전 시키고자 풍물굿과 대동놀이와 같은 흥겨운 한마당 판굿으로 신명나는 세상, 살맛나는 우리 풍물을 만들아 가는데 앞장섰다.

 

 

화성박물관 AV실에서는 영화제 열려

 

영화위원회가 마련한 세월이 간다영화제는 수원박물관 AV실에서 24일 오후 430분부터 개회식에 이어 섹션2호 회원들이 제작한 5, 3, 18분 다큐멘터리인 세월아리랑(감독 노수옥), 여기 어디(감독 이정훈), 팽목항 가는 길(감독 오점균) 등의 다큐 영화 상영이 있었으며, 뒤를 이어 감독과의 대화로 이어졌다.

 

630분부터 시작한 섹션1 ‘기억과 치유 초청작 - 달이 기울면에서는 김유신 감독의 향, 정지윤 감독의 흔적, 김다정 감독의 향기, 김성철 감독의 괜찮아, 김상력 감독의 나의 마음이 너에게 가 딯길, 정소영 간독의 달이 기울면 등이 상영되었다.

 

세월호를 주제로 한 미술전 눈길 끌어

 

2014416일 진도 팽목항 앞에서 벌어진 참사인 세월호의 침몰. 우리 모두가 아파하고 분노한 이 인재는 아직도 채 끝나지 않았다. 행궁마을 커뮤니티 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위원회의 전시는 세월호의 아픔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27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미술전은 돌아보는 내내 아픔이었다.

 

전시실에서 만난 손채수의 작품 넋굿은 가변설치 그림과 혼합재료로 조형을 한 작품이다. 바닥의 흰 천에는 한지로 접은 고깔에 꽃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도 역시 흰 종이로 점은 꽃이 있다. 벽에는 넋전을 오려 붙인 그림이 걸려있다. 그저 바라다반 모아도 세월호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온다.

 

전시실 입구 허공에는 오은주의 작품인 피리부는 사나이가 걸려있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의 느낌은 젊은 생명들이 그대로 승천을 하는 형상을 담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주영의 미안해는 어린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모습에서 그대로 나타나 보인다.

 

정말 세월호의 아픔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 아이들과 힘께 왔는데 아이들도 이 전시를 보면서 언니오빠들이 다시 생각난다고 하네요. 이제는 이 아이들을 놓아주어야 하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나오지 못한 어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요. 얼른 이 아픔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전시실에서 만난 시민 한 사람은 울먹이면서 말을 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 수원민예총 작가들인 수원민미협 작가들과 경기지역 작가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준비한 이 전시로 인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화가 왔다. 팽목항에 가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위령굿읗 하고 왔단다, 보내온 사진을 보니 배 위에서 넋을 건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뱃전에 노랑색 리본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팽목항까지 가서 위령굿인 영혼제를 올리고 왔다는 승경숙(, 60.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당굿 이수자)씨를 만나 보았다.

 

지난 63일이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참사를 당한지 49일째 되는 날예요. 2일 날 진도를 가는데 비바람이 얼마나 몰아치는지, 수원에서 문하생들과 함께 8명이 물건을 가득 싣고 15인승 차로 가는데 차가 뒤집힐 것만 같았어요.”

 

 

가는 길서부터 험난했다고 한다. 그렇게 진도에 도착해서 하루를 묵고난 후, 3일 날 아침 일찍 팽목항으로 이동을 했단다. 정작 팽목항에서 배가 바다로 나갈 수가 없어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인근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나갔다고 한다.

 

어선 두 척을 이용해 30분 정도 나갔는데 비가 얼마나 쏟아지는지 눈을 뜰 수조차 없었어요. 거기다가 바람이 불고 파도가 너무 높아 다시 항구로 돌아와 가까운 곳에서 굿을 시작했죠. 배 두 척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만신 등 30명 정도가 배위에 오르고, 한 배에는 굿을 할 사람들이 탔죠.”

 

 

대명원 김현정 원장이 주관한 영혼제

 

사람들은 세월로 침몰 49일째인 지난 63일을 전후 해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사고가 난 지점에 가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위한 굿을 하겠다고 한 사람들은 없었다.

 

이번 영혼굿은 서울 약수동에서 대명원을 운영하시는 김현정(, 69) 원장님이 주관을 했어요. 서울에서도 많은 신 제자들이 함께 참여를 했는데, 배 위에 올라 바다로 나가 막상 넋을 건지는 굿을 하려고보니 얼마나 눈물이 흐르는지 참을 수가 없었죠.”

 

준비를 해간 음식만 해도 150인 분은 족히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아이들 생각이 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와 통닭, 빵까지 준비를 했다는 것. 그 많은 음식들을 선장들이 바다에 넣어 아이들이 배가 고프지 않게 해달라고 해서 모두 바다에 뿌려 주었단다.

 

 

왜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해갖고 갔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아이들이 그런 것들이 먹고 싶었나 봐요. 정말 많은 음식을 해갖고 갔는데도 정작 저희들이 먹은 것은 없어요. 아침 10시에 바다로 나갔다가 항구로 돌아온 것이 오후 330분 정도였나 봐요.”

 

8월에 100일 위령굿 열 터

 

그렇게 팽목항으로 달려가 위령굿을 하고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하는 승경숙씨. 10일 오후 자신의 신당이 있는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세지로 160 제석천궁이라는 신당에서 일일이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한다.

 

 

“82일이 세월호 사고가 난지 10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그때 다시 팽목항으로 갈 수는 없지만, 수원에서라도 장소를 잡아 제가 위령굿을 해주려고 합니다. 이번에 배위에서 굿을 할 때도 기에 일일이 글씨를 써서 했는데, 그때도 노란천에 글씨를 써서 늘이고 굿을 하려고요.”

 

아이들이 어른들의 부주의로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까워, 100일째 되는 날 자비를 들여 위령굿을 꼭 열어 주겠다고 하는 승격숙씨. 그때의 생각이 다시 나는 듯 눈시울을 붉힌다.

 

용인시 처인구 중심에 위치한 석성산(471.5m)은 기암괴석이 빚어낸 아름다운 산세와 고즈넉한 사찰이 어우러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산이다 석성(石城)’산은 한문 그대로 돌로 쌓은 산성이란 뜻이다 원래 보개산으로 불렸으나 1910년 이후 부터는 석성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석성산의 동쪽에 통화사가 있고 북동쪽에 용인시 처인구 포곡면 마성리 77-23에 소재한 백령사가 있다. 7일 오후 큰 길에서 소로로 접어들어 고불고불한 길을 1.9km를 들어가 백령사를 찾았다. 오르는 길도 차가 마주치면 한 대가 비켜주어야 한다. 우거진 숲과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찾아간 백령사.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염불소리가 마음을 정결하게 해준다,

 

 

주변이 모두 바위덩어리

 

 

주차장에 차를 대로 내리니 종무실에 계신 분이 묻는다.


등산 오셨어요?”

아닙니다. 절에 왔습니다.”

아마도 좁은 주차장에 등산객들이 차를 대고 산행을 하면 장소가 좁아 애를 먹는 모양이다. 주차장 한 편 텃밭에는 보살님 한 분이 상추를 솎아내고 있다. 저녁 찬거리라도 장만하는 모양이다.

 

경내로 들어서니 주변이 모두 바위덩어리들이다. 그 틈새에도 화단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다. 마침 갈증이 나는 목을 물 한잔으로 가시고, 적멸보궁을 향한다. 백령사는 적멸보궁 안에 목탑을 모시고 있다. 부처님의 사리를 그 곳에 모신 것일까? 오전에 산행을 한 관계로 땀을 흘려 몰골은 초라하지만 삼배를 한다.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백령사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본다. 바위를 기단으로 삼은 석탑이 서 있다.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곁을 보니 커다란 바위에 새긴 부조가 보인다. 받침을 거북이로 하고 위에는 네모란 돌에 조각을 했다. 주변은 온통 용이 둘러있는데 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산신을 조각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산신각이 보이지 않는다.

 

 

경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밖으로 나오다가 보니 동기와가 보인다. 자신의 소원을 적어놓으면 불사를 할 때 지붕에 올라가는 기와다 보인다. 한 장을 적는데 만원이란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극락왕생 발원이라고 적은 후 불전함에 만원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이 하루 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옛 백령사의 흔적에서 깨딜음을 얻다.

 

백령사는 오래 전에 들린 적이 있다. 그때는 바위 위에 작은 전각이 하나 서 있고, 주변의 바위에 온통 동전을 붙여놓아 한 참을 웃은 적이 있다. 오늘의 백령사는 그 곳에서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내려오는 길에 옛 백령사를 찾아보았다. 계단을 올라 작은 계곡에 걸린 다리를 건넌다.

 

 

기와로 쌓은 낮은 담장 안에 전각이 보인다. 예전에 찾아보았던 백령사다. 전각 앞에는 현판도 걸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에 걸린 탱화를 보니 삼성각으로 이용을 하고 있는 듯하다. 주변 바위에는 예전에 동전을 붙였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마도 바위에 붙였던 동전들을 다 떼어낸 것일까?

 

그런 자리들을 보면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남겨 놓은 자리도 이렇게 흔적이 오래 남아있겠거니 생각을 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세상을 바로 살라고 한 것일까? 새삼 세월호의 아픔이 얼마나 오래 남아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세월호 희생자들 넋을 달래는 따듯한 길

 

신칼대신무는 막대에 한지를 오려 만든 신칼을 양 손에 들고 추는 춤이다. 신칼대신무는 고 이동안 선생이 재인청의 춤으로 알리면서 그 제자들에게 전승이 되어왔다. 그 유래는 예전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추웠다고 한다(일설에는 여인이 공주였다고도 한다) 양 손에 잡은 신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이 춤은 엇중모리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고 해서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로 불린다.

 

수원의 행사에서 망자를 그리는 추모공연을 할 때는 빠지지 않고 추어지는 춤이기도 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하는 날도, 고 이동안 선생의 무릎제자인 고성주가 이 춤을 추었다. 6일 수원 화성 행궁 앞에서 오후 2시부터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연인 따듯한 길에서 김복련에 의해 이 춤이 추어졌다,

 

 

소리꾼 김보미의 소리에 눈시울 붉혀 

 

오후 2시부터 신풍루 앞 가설무대는 큰 북을 놓고 마치 영혼을 깨우는 듯한 타고(打鼓)로 시작이 되었다. 공연은 경기도무형문화재 제8호 승무살풀이 보유자인 김복련을 비롯해 광개토 사물놀이 예술단, 전통예술단 호연, 소리꾼 김보미 등이 무대에 올랐다.

 

날이 무더운 탓인지 관람석보다는 그늘로 찾아 든 구경꾼들은 1시간 정도의 공연을 땀을 흘리며 구경을 했다. 수원문화재단(이사장 라수홍)이 주관한 이날 공연에서는 사물놀이와 관현합주를 광개토 사물놀이 예술단의 전통타악합주와 국악관현악단, 그리고 소리꾼 김보미 가 국악가요 꽃분네야인연등을 불렀다.

 

 

곱게 흰 한복을 차려입은 김보미가 소리를 하자 눈시울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이 땅에서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한 관람객은

이렇게라도 해서 젊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는 정말 너무 심한 인재였다고 본다. 날이 덥긴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끝까지 보고 가야겠다.”고 하기도.

 

아직도 풀지 못한 한(), 하루 빨리 치유되길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 그리고 오후 2.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인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더 힘이 들것만 같다,.

시간을 오전에 하던지 오후 늦게 했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더운 시간에 공연을 하느라 공연자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힘이 드네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 공연자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

 

 

행궁동에 살고 있다는 이아무개씨는

이렇게라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연을 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을 잊지는 말아야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힘이 빠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아이들도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고요라고 한다.

 

토요일이라 유난히 많은 외국인들도 구경꾼들 속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연신 통역을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물어보았다,

저 외국분이 독일에서 왔는데 사람이 죽어서 슬픈데 왜 춤을 추느냐고 물어보아서요. 살풀이나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사람이 죽어서 한이 맺히면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추는 춤이라고 설명을 해드렸어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연인 따듯한 길’. 이 공연으로 인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유가족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추슬러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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