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림굿, 일본 땅에 무녀가 탄생하다
곱게 신복(神服)을 차려입은 여인이 주변의 눈길도 의식하지 않은 채 대성통곡을 한다. 왜 내림굿을 할 때는 모두가 저렇게 울어야 할까? 하긴 울만도 하다. 사회에서 남들이 흔히 말하는 ‘무당(巫堂)’이 되는 날이다. 예전처럼 집제자로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그저 사람들과는 달리 ‘접신이 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10일 오전부터 시작 된 내림굿. 이 날 내림을 받은 사람은 현해탄을 건너 온 재일교포 2세이다. 일본 요코하마에 거주하고 있는 송미영(47세)이 주인공이었다. 이날의 굿은 엄밀히 따지자면 내림이 아닌 ‘가리굿’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리굿이란 이미 자연통신 등으로 신당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시 제대로 내림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
왜 접신이 되면 다들 울지
부정을 친다. 굿판에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부정굿이란 굿판의 모인 모든 사람들과 굿판을 정화시키는 굿거리이다. 모든 부정을 다 가셔 내림굿이 온전히 신령들이 흠향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차이다. 그러고 나서 굿이 시작되었다. 시작한지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송미영이 신복을 입고 굿판에 들어섰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송미영은 한국말을 다 알아듣기는 하지만 표현을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했다. 거기다가 굿판에서 그 많은 신령들을 일일이 호명하기도 쉽지가 않다.
“일본의 신당은 우리하고는 많이 달라요. 우리는 큰 절을 하는데 일본의 무당들은 허리만 굽혀 인사를 해요. 우린 굿판에서 타살굿같은 데서만 피를 보는 굿거리가 있는데, 일본은 꼭 굿을 하면 닭 같은 것들을 잡아 피를 뿌려요.”
이날 내림굿의 주제자인 고성주(남, 60세. 수원시 지동)의 말이다.
송미영은 굿판에 들어서자마자 도약을 하기 시작했다. 도약이란 접신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행위이다. 그러고 나서 목을 놓아 엉엉 울기 시작한다. 왜 내림굿을 받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목 놓아 우는 것일까?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삼국시대까지처럼 단의 주인이요. 집제자가 아니다.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당’이라고 해서 제대로 대우를 해주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굿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날 굿판에 함께 들어 선 사람들이 연신 곁에서 말을 한다.
“참지 말고 다 풀어버리세요”
“울고 싶으면 마음대로 우세요. 그러고 나서 다시는 울지 마세요.”
“오늘까지는 마음껏 울고 내일부터는 울지 마라. 이제는 신령님들이 너를 보호하실 테니 앞으로는 울 일도 없다”
목을 놓아 울던 송미영의 표정이 달라진다.
신복을 갈아입으면서 춤을 추던 송미영은 언제 그렇게 목을 놓아 울었냐는 듯, 피리와 장단에 맞추어 날아갈 듯 춤을 춘다. 거리를 마친 송미영에게 절을 받고 난 고성주가 쪽을 찐 머리에 비녀를 질러준다. 이로써 신아버지와 신딸의 관계가 형성이 된 것이다. 고성주는 직접 내림굿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요즈음은 내림을 받은 지 3년이 안된 무당들도 내림을 한다.
“저는 정말 내림굿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제 평생 직접 내림굿을 해준 신딸들은 몇 명 없어요. 얼마나 아픈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 아픔을 전해줄 수가 없어서요.”
고성주의 말처럼 이날 굿판에 함께 참여한 이정숙(여, 58세. 부천거주) 등 두 세 명밖에 신딸이 없다. 절을 받은 고성주에 이어 이정숙 등이 송미영과 맞절을 한다. 신의 형제로 맺어진 것이다.
일본 땅에 또 한 명의 무당이 태어나다.
일본에도 무당들이 상당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신도들을 갖고 있는 무당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들은 우리나라의 무당들과는 달리 신당인 전안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날 굿판에서도 연신 ‘한국과 일본의 신들이 잘 합수 받아 불려라’고 덕담을 해준다. 산거리를 할 때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신령들을 호명하고 난 뒤, 일본 후지산의 산신령까지 거명을 한다.
신의 존재는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했던가? 가지 못할 곳이 없고, 어디나 다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일본 땅이라고 신이 없을 것인가? 굿판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이다.
“올 해는 독일여자와 우크라이나여자도 내림을 해 달라고 해요.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말귀는 다 알아들어요. 이러다가 앞으로는 전 세계에 신딸을 두게 생겼어요. 느지막이 세계일주를 하게 생겼죠.”
10시간에 걸친 내림굿이 지노귀굿을 끝으로 모두 끝났다. 11일 오후 비행기로 요코하마로 돌아간다는 송미영. 이것저것 자상하게 챙겨주는 고성주를 보면서, 신으로 맺어진 부녀사이지만 오히려 친 부녀보다 더욱 애틋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많은 신령들을 모시고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야 할 딸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음식을 다 드실 겁니까?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린다. 전날 과음을 한 관계로 늦게 일어나고 싶은 날이다. 가끔은 좋아하는 지인들과 만나 술도 한 잔씩 거나하게 마시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다음 날 아침이 정말 행복하다. 늦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우가 계속 전화에 문자를 보내고 있다. 일어나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올 판이다.
“왜?”
“형님 식사하러 오세요. 어제는 얼마나 마신 것이요?”
“쪼금 밖에 안 마셨어”
“그럴 리가 없지. 형님 주량을 내가 아는데”
이 정도면 할 말이 없다. 하긴 전날 수원시 e수원뉴스의 기자 몇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김우영 주간을 비롯해 공보관실 e홍보팀의 이소희팀장을 비롯해 선병옥주무관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마침 선병옥주무관의 생일이라 분위기는 사뭇 고조되었다. 그 바람에 주량을 조금 넘는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300인 분의 음식을 준비한다고
팔달구 지동 창룡문로 56번길 18에 거주하고 있는 고성주(남, 60세)씨. 좋아하는 아우이다. 아침부터 문자를 계속 보내온다. 답장을 하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온다. 할 수 없이 대충 집안 정리를 하고 씻고 나갔다.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비릿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내일(6일) 쓸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넓은 마당에서는 낙지 손질이 한창이다. 몇 마리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150마리 정도라고 한다. 누가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을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신을 모시고 있는 아우는 일 년에 두 차례, 음력 3월 7일과 9월 7일 단골들을 위한 정성을 드린다. 이 날은 팔도 각처에서 단골들이 다 찾아온다. 심지어는 일본 등 외국에서까지 찾아온다.
아우의 정성은 그 정도로 소문이 나 있다. 하긴 일 년이면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 하물며 자신을 믿고 따르는 단골 네들에게 먹일 음식이니 얼마나 정성을 쏟을 것인가?
정성들여 만든 많은 음식, 하나도 남지 않아
보기에도 음식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버섯과 야채를 넣고 만든다는 전 준비를 하는데 재료가 커다란 플라스틱 그릇으로 한 가득이다. 거기다가 여기저기 음식 재료들을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 양이 장난이 아니다. 300명이 먹을 음식이라고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아우는 늘 이렇게 음식을 준비하면서 행복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란 생각이다.
“형님, 난 음식을 준비할 때가 정말 기뻐요”
“힘들지는 않냐?”
“힘 안 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행복해요”
하긴 그렇다. 초복이면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 200마리가 넘는 삼계탕을 끓여대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정도 음식에도 힘들어하질 않는다. 6일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먹게 준비를 하는 아우. 늘 건강하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만 전하고 일을 보러 간다.
새로운 마음으로 친절한 봉사행정 펼칠 터
31일 수원시 팔달구청 신청사 업무시작
여기 살리
여기 살리
여기, 팔달에 살리
팔달산 밑, 팔달문 밖
사방팔방 다 오가는
여기 두고 어디런가
새벽 같이
대낮 같이
2백년의 꿈 여기 살리
수원 팔달 여기 살리
2014년 봄 고은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3(매향동)에 새로 자리를 잡은 팔달구청(구청장 김찬영)의 입구에 서 있는 시비에 적힌 고은 시인의 시 ‘팔달에 살리’이다. 팔달구청은 시청사에서 31일부터 신청사에서 일제히 업무를 시작했다. 아직 주변 경관은 마무리 되지가 않았지만 구민들의 편의를 위해 행정업무는 개청식을 하기 전에 시작을 한 것이다. 이 신청사는 화성박물관과 나란히 자리를 하고 있다.
팔달구의 신청사는 수원의 중심이자 세계문화유산이요 사적 제3호인 수원 화성 성곽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화성행궁과 연무대, 창룡문과 방화수류정, 봉돈 등과, 화홍문에서 유입되어 남수문으로 흐르는 수원천을 끼고 있기 때문에, 수변, 문화, 역사, 행정이 하나로 융합되는 상징적인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녹색환경 건물
팔달구 신청사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연면적 1만2천628.11㎡로 단순한 관공서의 차원을 넘어섰다는 평이다. 주변에는 충분한 녹지공간을 확보하고 전시공간과 북카페, 소통의 공간과 저탄소 녹색환경의 수도 수원에 걸 맞는 태양광 발전, 옥상녹화, 자연환기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다.
신청사 1층에는 종합민원과, 세무과, 기업은행, 당직실, 어린이집이 자리를 잡고 있고, 2층에는 구청장실을 비롯해 행정지원과, 안전주민자치과, 건설과, 건축과, 정보화교육장 및 의원실이 자리하고 있다. 3층에는 대회의실을 비롯해 사회복지과 경제교통과 환경위생과 교통상황실과 휴게실, 매점, 식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구민들에게 최상의 서비스 제공할 것
김찬영 팔달구청장은 “팔달구민의 오랜 숙원이 비로소 해결되어 구청이 구민들 곁으로 가게되었다. 이번 신청사는 구민들에게 최고의 행정서비스와 더불어 문화와 휴게공간, 녹색공간을 제공하여 구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종합민원실에 일을 보러왔다고 하는 한 구민은 “그동안 수원의 딴 구들이 모두 단독 청사를 갖고 있는데 우리 팔달구만 월드컵경기장에 세를 들어있어 많이 불편했다. 오늘 이렇게 신청사에 와보니 우리 팔달구 청사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 기쁘다”고 한다. 한편 팔달구청의 개청식은 4월 5일 오전 11시에 열릴 예정이다.
“게이트볼장 좀 다시 조성해주세요”
율천동은 수원시 장안구의 율전동과 천천동을 합한 지역이다. 인구 4만 5천여 명의 율천동은 수원시의 주민센터 중에서도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동에 속한다. 율전은 밤밭이다. 율전은 조선 시대애는 수원부 형석면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율전리라 하여 일형면에 소속되었다.
1931년 4월 1일 수원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1936년 10월 1일 일형면과 의왕면이 통합되어 일왕면이 되었는데, 이때 일왕면에 소속되었다. 해방 후인 1949 년 8월 15일 수원읍 지역이 수원시로 승격되자 이 지역은 화성 군 일왕면 율전리로 개편되었다. 이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5호에 의하 여, 화성군 일왕면에서 수원시로 편입되었다. 이 때 파장리, 이목리, 천천리, 정자리 등과 함께 행정동인 파정동 관할이 되었다.
1983년 10월 1일자 시 조례 제1139호 에 의하여, 파정동이 파장동과 정자동으로 분리될 때 이목동, 파장동, 천천동 등과 함께 파장동 관할이 되었다. 1990년 1월 1일자 수원시 조례 제1607호에 의하여, 파장동이 율천동과 파장동으로 분동되었다. 이때 율전동은 천천동과 함께 파장동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어, 율천동 관할 하에 들어갔다. ‘율전’이라는 동 이름은 ‘밤밭’을 한자화 한 것인데, 이 지역에 밤나무 밭 이 많았던 데서 나 온 것이다.
1990년 천천동은 율전동과 함께 파장동에서 떨어져, 율천동 관할 하에 들어가게 된다. ‘천천(泉川)’이라는 동 이름은, 이 지역에 큰 샘이 있어서 샘물이 내를 이루어 서호천으로 흘러들어갔으므로, ‘샘내’ 또는 이의 한자어인 ‘천천’이라 불리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동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좋은시장 열린대화’ 열기 뜨겁다
20일 오후 3시 율천동 밤밭문화센터 3층 대강당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주성 경기도의원을 비롯하여 강장봉, 염상훈, 유철수 수원시의회 의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열린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밤밭문화센터의 동아리인 밤밭예술단의 연극과 벨리댄스도 식전행사로 무대에 올라 많은 박수를 받기도.
수원시장이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항이 있느냐고 질문을 하자, 여기저기서 주민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지역의 한 주민은 게이트볼장이 비가 오면 온통 물이 차 진흙 밭으로 변한다고 새롭게 조성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한사람은 성균관대 역 앞에 지하차도가 음습해 등하교를 하는 어린이나 주민들이 불편해 한다고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요구사항에 관해 수원시장은 홍성관 장안구청장과 관련 과장들에게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시달하기도. 좋은시장 열린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한 주민은
“우리 율천동은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동입니다. 마을에 숙원사업도 상당히 많은 편이고요. 요즈음은 우리 수원이 자랑스럽고, 제가 율천동에 거주한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곳에 복지관과 도서관, 그리고 성균관대 역사가 새로 조성이 되면 정말 좋은 마을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행복해 하기도.
처음부터 두 시간 가까이 걸린 열린대화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 어르신은
“우리 수원이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인 것 같다. 오늘은 우리 수원이 여섯 번째로 목민대상을 받았다. 목민대상이 무엇이겠느냐.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 가장 걸 맞는 행정을 폈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 우리 수원은 모두 60여 차례의 상을 받은 도시이다. 그만큼 많은 일을 했다는 소리가 아니겠느냐? 그리고 율천동에는 노인복지관이 새로 건립중이다. 율천동은 경로당이 18개나 있다. 그만큼 많은 노인들이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노인복지 면에서도 우리 수원이 당연 최고라고 생각한다.”면서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율천동이 아니겠느냐고 은근한 자랑을 하기도.
이목동 ‘바다의 별’의 아름다운 동행
국민은행 화서지점 직원들 짜장봉사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한다. 봉사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 바로 봉사를 하는 일이다. 누구나 다 몸이 편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봉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심적으로 부담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시간도 그만큼 필요한 것이 바로 봉사이다.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야외로 나간다. 그렇게 야외로 나가기에도 딱 좋은 날씨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까지 적당하게 불어 준다. 아랫녘에서는 벌써 꽃 소식이 봄바람을 타고 날린다. 이런 날 도로는 심하게 막힌다. 모두 나들이를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남들이 나들이를 할 때 땀을 흘리며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은행 화서동지점 직원들의 봄나들이
KB국민은행 수원 화서동지점 직원들이 김광립 지점장과 9명이 봄나들이에 나섰다. 그냥 나들이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봉사를 나선 것이다.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458길 142(이목동)에 자리하고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인 ‘바다의 별’. 바다의 별은 지적장애인들의 생활시설이다. 마리아들 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바다의 별에는 지적장애인들과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그동안 남원 선원사 주지인 운천스님(짜장스님)이 수원에 올라올 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들린 곳이 바로 바다의 별이다. 운천스님이 이곳에 들리는 것은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죠. 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만, 사회에서 이들을 보는 시각은 남다르죠. 사실 지적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이들이 남들이 누리는 것을 마음대로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수원에 올 때마다 이곳에 와서 따듯한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먹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오늘 더구나 이렇게 국민은행 화서동지점 가족들이 함께 봉사에 참여해 주어 정말 행복한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한다.
앞으로도 이웃 찾아 봉사할 것
이날 봉사에 함께 참여를 한 전 국민은행 화서동 지점장이었다가, KB국민은행 본부로 영전을 한 박정운 전 화서동지점장은 지난 해 선뜻 짜장스님에게 2000만원이라는 큰돈을 스님짜장에 사용하라면서 쾌척을 한 장본인이다. 이번 화서동지점 직원들이 봉사를 하게 된 것도 박정운 전 지점장의 주선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서 봉사를 하니 정말 좋습니다. 무엇인가 색다른 봉사를 한다는 것이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네요. 저는 오늘 직원들을 데리고 집사람과 함께 봉사를 하러 왔습니다. 앞으로 지역 시회에 이런 봉사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봉사를 마친 김광립 지점장의 말이다. 부모님을 따라 함께 봉사를 하러 왔다는 최지윤(안양 벌말초등학교 5년)양은 ‘힘들어요’라고 표현을 한다. 그래도 어머니 뒤를 따라 다니면서 상을 정리하고 빈 그릇을 주방까지 날라다가 놓는 등 할 일은 다한다. 봉사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마음에 먼저 앞서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급식을 마치고 바다의 별 입구에서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바다의 별 가족들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아침 9시부터 4시간여의 봉사지만 면을 삶고 배식을 하고, 그릇들을 갖다가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나면 힘이 든다. 그래도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바로 봉사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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