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화성 야경에 ‘옥의 티’가 있네”
화성 봉돈 주변 불 써진 채로 방치되어
“화성 봉돈 양 옆으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요. 밤에 바라보면 그곳만 시커멓게 불이 꺼져 있어 보기도 안 좋고요. 화성사업소는 야간에는 화성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듯해요”
지동 주민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화성의 야경은 주간보다 더 아름답다. 화성 전역은 안과 밖으로 모든 구간이 조명시설이 되어 있어 밤에 만나는 화성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난 개인적으로 화성의 모든 것을 좋아하지만 특히 야경으로 만나는 화성을 자랑한다. 수원을 찾는 지인들에게도 화성 야경은 꼭 보라고 권유한다.
화성 야경의 백미는 방화수류정 인근과 화서문에서 장안문을 걷는 길이 아름답다. 하지만 화성 전역 어디를 걸어도 아름다움은 그에 못지않다. 야경으로 만나는 화성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늘 해가 진 화성의 밖을 걷는 것을 즐겨한다. 화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 그 누구라도 화성 야경의 멋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화성이 야간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에 화성을 바라보았다. 바로 집 앞에서 보이는 화성 일부분이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시커멓게 보인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화성 야경에 ‘옥의 티’가 생긴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이렇게 화성을 밝히는 조명이 들어오지 않은 것일까? 시커멓게 보이는 화성을 찾아갔다.
화성 봉돈 주변에 불 꺼져 있어
그러고 보니 그동안 참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바라보는 화성이고 야경이지만 시커멓게 불이 꺼진 채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을 나서면 바라다 보이는 곳인데도 신경을 쓰질 못했다. 살다보니 바빴기 때문이라는 말로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늘 화성을 바라보고 자랑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봉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기 때문에 그 옆에 성벽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봉돈은 늘 불이 환하게 커져있다. 봉돈 가까지 올라가보니 봉돈에서 동편으로 동이치 부분이 불이 꺼져있다. 시커멓게 불 꺼진 부분이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언제부터 이렇게 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일까? 한 밤에 만난 화성의 불 꺼진 부분이 흉하게 보인다. 인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화성을 관리하는 담당부서에서는 알고는 있었던 것일까? 만일 이 부분에 야간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가 된다.
수원화성 방문의 해에 더 신경 썼어야
올해는 정조대왕이 회성을 축성한 후 220년이 되는 해이다. 수원시에서는 ‘수원화성 방문의 해’로 지정을 하고 외국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실제로 화성을 관람하다 보면 예전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주간만이 아니라 야간에도 화성을 관람하고 있다. 햇볕이 강하게 쪼여 무더운 낮보다 오히려 야간에 화성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봉돈 인근에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오히려 화성 방문의 해이기 때문에 더 각별한 관심을 갖고 화성을 점검했어야 했다. “불이 꺼진 채로 있는 지가 꽤 오래 되었다”는 인근 주민들의 말대로라면 사람들을 화성으로 초대를 해놓고 방관을 했다는 것이다.
담당부서에서는 주간만 아니라 야간에도 화성을 점검해야 한다. 아름다운 화성의 야경에 ‘옥의 티’가 된 암전부분을 빠른 시일 안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흡사 그 부분만 시커멓게 보이는 것이 볼썽사납다. 외국인들을 초청해 놓고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선기대(善騎隊) 화성을 달리다’ 무예24기 시범 선보여
창룡문 앞에 모인 수천 명 인파 환호성 그치지 않아
4일 오후 3시부터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동문인 창룡문 안쪽 잔디밭에서 열린 수원시립예술단의 ‘선기대(善騎隊) 화성을 달리다’ 시범이 성황리에 열렸다. 선기대란 말을 잘 타는 군대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선기대는 마상무예를 잘 하는 기병들을 말한다.
무예 24기는 정조대왕이 실전에 맞게 집대성한 것으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되어 있는 무예를 말한다. ‘무예24기’는 조선시대 군사무예교범인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24가지의 무예로 ‘무예이십사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무예도보통지 속에는 <무예이십사기>로 기록되어있다.
무예도보통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각종 외침을 겪었던 조선이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무예 중 정수만을 집대성한 실전무예지이다. 더욱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나라의 무기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하던 무기들까지도 그 동작 등을 실어 실전의 교범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 가히 당대 최고의 무예지라고 볼 수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전하는 무예 24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본국검 2. 예도 3. 제독검 4. 쌍수도 5. 쌍검 6. 마상쌍검 7. 등패 8. 왜검 9. 왜검교전 10. 월도 11. 마상월도 12. 협도 13. 장창 14. 기창(騎槍) 15. 죽장창 16. 기창(旗槍) 17. 당파 18. 낭선 19. 권법 20. 곤봉 21. 편곤 22. 마상편곤 23. 격구 24. 마상재 등이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무예를 극대화 시킨 것
명의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에 기록된 무예 6종은 후일 조선에도 전해져 <무예제보>에 실렸다. 이 무예제보의 내용은 이후 <무예도보통지> 까지 이어지면서 조선 무예를 극대화시킨다. 기효신서에는 6가지 무기의 장, 단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장창은 길어 원거리에서 적을 처리하기 좋으며, 낭선은 길이와 더불어 가지의 철붙이로도 공격하니 장창은 낭선을 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낭선은 그 기법이 등패를 뚫지 못하고
등패는 낭선을 이기지만 곤방의 음양수에 당해내지 못한다.
곤방은 장도를 당해내지 못하며
장도는 당파를 당해내지 못한다.
당파는 길이에 있어서 장창을 당해내지 못한다.
원앙진까지 선보인 각종 시범에 관중들 환호성
이렇게 장창과 낭선, 등패, 곤방, 장도, 당파의 무기들의 장, 단점을 서로 보완하면서, 하나로 모아 진으로 구성하여 약점을 보완하고 병력을 극대화 시킨 것이 바로 ‘원앙진(鴛鴦陣)’이다. 원앙진은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고안한 진법이다. 원앙진이라 함은 진형을 이룬 형세가 마치 원앙의 모습과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원앙은 암수 한 쌍 중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가 따라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하기에 원앙진을 이룬 병사 한 명이라도 죽으면 남은 진중의 모든 병사를 참수했다고 한다.
원앙진은 12명이 1대를 이룬다. 우선 등패와 요도를 든 등패수 2명이 앞에 서고, 그 뒤로 10명의 갖가지 무기를 든 병사가 2열종대로 진을 갖춘다. 이 원앙진은 명나라 중기 절강성을 비롯한 동중국해 연안일대에 출몰하는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만든 진법이다. 하지만 명군이 원앙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양상은 달라졌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병학지남연의>라는 병서에는 원앙진의 위력을 이렇게 적고 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으로 진입한 다음 먼저 화포를 발사하고 이어서 화전을 발사하니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 듯했다. 화포와 화전의 공격에 왜적들은 기가 꺾였다. 적이 먼저 돌진해오면 낭선부대를 집중시켜 대기하고,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등패수들이 먼저 공격해 들어간다. 왜적이 패하여 도망가니 가히 천하무적이다’
마상무예의 진수 선보인 마상재, 그러나 문제점도 노출
‘선기대 화성을 달리다’는 마상무예이다. 무예 24기 중에는 마상쌍검, 마상월도,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등 모두 5종의 마상무예가 전한다. 말을 타고 시범을 보이는 무예24기 시범단의 모습은 늠름했다. 말 위에 올라타고 열을 맞춰 대열을 정리하는 모습부터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시범단의 모습을 보는 관중들은 연신 박수로 그들을 맞이했다.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마상활쏘기 시범과 마상월도, 마상편곤, 마상쌍검 등이 선을 보였다. 말을 타고 달리던 도중 중간에 마련한 짚이며 대나무, 판지 등을 내리쳐 박살을 낼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했다. 보는 이들의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마상무예는 가히 무예24기 시범의 압권이었다. 끝으로 달리는 말 위에서 재주를 피우는 마상재가 시작되자 환호성은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마상무예를 선보이던 중 두 명의 시범단이 달리는 말 위에서 떨어져 관중들을 안타깝게 했다. 마상무예를 선보이던 중 말에서 떨어지면 순간적으로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달리는 말이기 때문에 그 충격이 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을 타는 시범단들은 무엇보다 말과 교감을 이뤄야 한다.
이번 ‘선기대 화성을 달리다’ 시범을 보이기 위해 시립예술단원 중 말을 타고 시범을 보이는 단원들은 20일 정도 말을 타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말을 잘 타고 능숙하게 시범을 보이는 단원들이지만 말과의 교감이나 말의 성능 등에 따라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습을 할 때부터 한두 마리의 말들이 제 속력을 내지 못하는 등 무엇인가 불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관중석에서는 “말이 늙은 것 같다”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일 년이면 수 차례에 걸쳐 마상무예 시범을 보이는 시립예술단의 무예24기 시범. 하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마상무예에서 사용하는 말은 단원들이 늘 타고 훈련을 할 수 있는 전용마가 아니라고 한다. 시범을 보이기 위해 임대를 해서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무에24기 시범을 보이는 수원시립예술단원들은 많은 횟수의 무예시범과 마상무예시범을 보이고 있다. 무예24기 시범의 정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단원들과 말들이 서로 충분한 교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수원시립단원들의 전용마가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조선 최고의 무예시범인 무예24기 시범을 보이는 예술단이 보이는 수준 높은 공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용마가 필요하다. 마상무예를 선보이다 낙마를 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궁동 왕의 골목’에서 수원의 과거와 만나다
신풍초등학교 담에 마련한 ‘담벼락 갤러리’
지난주에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 눈에 띤다. 행궁동 신풍초등학교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많은 사진들. ‘행궁동 왕의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수원 화성의 어제와 오늘은 한 마디로 과거 황폐화되었던 화성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언제부터 이 전시를 시작했습니까?”
“어제까지 설치를 마치고 오늘부터 전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시 기간은요?”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저희 행궁동 레시던시 작가들이 필요하면 이곳을 갤러리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고요”
행궁동 주민센터 김정균 주무관은 신풍초등학교 벽면에 설치한 ‘담벼락 갤러리’는 행궁동 레지던시 작가들이 사용을 신청할 때까지 수원화성 사진전을 전시하겠다고 한다. “수원 화성의 왕의 골목이라는 이곳 화성의 과거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했다”는 사진전은 과거 폐허가 된 화성과 현재의 말끔하게 정리된 화성의 부분모습을 대비해 누구나 사진만 보아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화성의 과거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자료
전시된 사진을 보면 위편에는 동북공심돈이 다 부서진 모습을 담고 있다. 그 아래편에는 현재의 복원된 아름다운 동북공심돈의 모습이 보인다. 복원을 할 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사진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의 모습은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 사진과 현재 화령전의 모습을 담았다.
“우리 화성이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을 복원하였네요. 아마 이렇게 폐허가 되었던 화성을 복원할 때 화성성역의궤가 없었다고 하면 지금과 같은 복원은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이 사진전을 보면서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사진전을 보고 있던 김아무개(남, 25세) 학생은 경기대를 다닌다고 말하면서 대학생답게 기록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새삼 화성성역의궤를 제작한 당시의 기록문화가 당대 최고였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담벼락 갤러리 곁을 지나는 사람들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한 마디씩 하고 간다.
“정말 전쟁이라는 인간의 다툼이 얼마나 세상을 황폐화시키는가를 알 듯 합니다. 만일 이렇게 복원이 안된 화성을 우리가 만난다고 하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새삼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보존 해야죠”
과거의 모습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화성
사진에는 화성의 두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깨지고 부서진 몰골을 한 화성의 옛 모습과 현재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모습이다. 화성의 안쪽과 시설물만이 아니라 성밖 지동의 모습도 담아냈다. 지동성곽마을이라는 제목을 붙인 사진에는 과거 성밖 허름한 집들이 있는 모습과 말끔하게 정비가 된 현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나마 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모습이다. 그리고 축대 위가 다 사라져버린 창룡문과 현재 복원된 창룡문의 모습도 보인다. 보물인 팔달문 사진에는 무슨 행사를 하는지 열을 지어 서 있는 군인들과 학생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왕이 만든 화성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담벼락 갤러리 - 수원 화성의 어제와 오늘’전은 수원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아야 할 소중한 자료들이다.
신풍초등학교 담벼락을 이용한 담벼락 갤러리. 그 첫 전시로 행궁동주민센터가 마련한 화성의 옛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사진전. 지나는 사람마다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고 가는 사진전은 오후의 따가운 햇살에도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사진전이다. 신풍초등학교 담벼락에 마련한 사진전을 꼭 돌아보기를 권유한다.
화서문 근처에 ‘화성축성공원’을 아세요?
지게를 진 일꾼의 지게는 고증 거쳐야 해
점심을 먹고 나면 화성을 잠시 동안이나마 걷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한 낮 더위로 인해 땀이 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화성 성벽을 따라 걸으면 새로운 기운이 솟는 듯하다. 화서문에서 장안문 방향으로 걷거나, 아니면 화서문에서 성 안 길을 다라 걷기도 한다. 거의 날마다 걷는 길이긴 해도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주변 경관으로 인해 지루하지가 않다.
화성을 따라 자주 걷고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화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걸었지만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만나는 느낌이 다 달라지는 곳이 바로 화성이다.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것이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성곽이다.
모처럼 그동안 걷던 장안문 방향이 아닌 화서문에서 서장대를 오르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늘 보던 모습이 아닌 좀 더 색다른 화성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화서문에서 출발해 서장대로 오르는 길을 걷고 있는데 좌측에 무엇인가 조형물이 보인다. 몇 사람인가가 그 조형물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화성 축성모습을 재현한 공원
그곳에는 커다란 나무 밑에 그늘이 지고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쉬고 있다. 그런데 그 앞쪽에 화성 축성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들이 있다. 돌을 쌓고 있는 석공, 지경다지기를 하고 있는 일꾼들. 지게와 수레로 돌을 나르는 사람들. 그리고 거중기 등의 모습도 보인다. 한 마디로 화성을 쌓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언제 이런 조형물이 생겼지?”
“얼마 전에도 볼 수 없었는데 며칠 전 보니 이렇게 꾸며진 조형물이 있어서 친구와 함께 돌아보았어요”
“아이들 교육용으로 상당히 좋은 곳이네”
“친구도 아이들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했어요”
직장에 함께 일을 하는 동료도 얼마 전에야 이곳을 보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곳을 오면 화성 축성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가 있다. 아이들에게 이 조형물을 보여준다고 하면 쉽게 화성 축성에 대해 이해가 갈 것이란 생각이다. 시원한 나무 그들에서 이런 조형물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새삼 옛 축성 당시 인부들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좀 더 정확한 고증 필요해
축성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니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다. 지경을 닺는 인부들은 지경돌과 동일한 모형을 이용해 조성하였다. 돌 허리에 끈을 묶어 여러 명이 당기면 돌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내려오면서 땅을 단단하게 다지게 된다. 거중기 등도 모형이긴 해도 기록에 보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 저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잘 못 표현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지게에 돌을 지고 나르는 모습을 보니 무엇인가 조금 이상하다. 돌을 지게에 져 나를 때는 돌이 크기 때문에 소쿠리를 지게 위에 얹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지게를 진 일꾼들의 지게가 동일하게 소쿠리를 얹은 위에 돌을 놓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소쿠리를 이용해 지게에 돌을 나를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혹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돌을 나를 정도의 지게라면 상당히 견고해야 한다. 그리고 소쿠리를 놓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화성을 돌면서 만나게 되는 축성의 모형이다.
어떤 것 하나라도 모형이라고 해서 원형과 동떨어진 형태로 조성을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이곳에는 아이들이 많이 찾아올 텐데, 고증을 벗어나는 조형물이라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화성 축성의; 형태를 알려주기 위한 곳이라면 더욱 더 원형에 가까운 조형물로 조성을 해야 옳다고 생각한다.
1년여 만에 모습 드러낸 동남각루 참 좋소!
기다리던 동남각루가 옛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라다만 보아도 시원하다. 가슴에 답답하게 무엇인가 짓누르고 있던 것이 다 가신 듯하다. 아직 완전히 펜스를 걷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중충하게 덮고 있던 지붕이면 주변 가름막을 벗어버리고 자태를 드러낸 화성 동남각루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지동교를 지날 때마다 눈에 거슬리던 동남각루의 모습이 말끔히 새 단장을 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유야 어떻든 핑계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2014년 12월 9일부터 2015년 4월 7일까지 땅의 지면 침하 등으로 인해 약간 기울어진 동남각루의 해체보수 공사를 하겠다고 펜스로 모두 가려놓았다. 그리고 얼마간인가 안에서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고 들여다보면 무엇인가 보수 공사를 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그런 동남각루의 보수공사가 공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2015년 4월 7일까지 공사를 끝내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공사기일을 적어 놓은 공사안내판 위에 종이로 공기날짜를 가려버렸다.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하면 기다린 것이 1년이다. 그동안 숱한 사람들이 동남각루를 지나거나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했다.
문화재 보수공기는 시민과의 약속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죠. 벌써 지난 해 완공되어 화성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동남각루가 한 해를 훌쩍 지난 다음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죠. 매일 이곳에서 펜스로 가려진 동남각루를 바라보면서 참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어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 한 마디씩 하고요.”
지동시장 순대타운에서 날마다 동남각루를 바라다보면서 장사를 하고 있는 조아무개씨는 시장을 나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바로 동남각루였다고 하면서 펜스를 걷어낸 동남각루의 모습이 무엇보다도 반갑다고 한다. 지동시장의 상인들은 그동안 꽁꽁 감추어 놓은 동남각루를 볼 때마다 화가 났다는 것이다. 약속된 공기를 1년여나 지나 공사를 마친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한다.
“동남각루는 계절마다 아름다워요. 이곳 지동시장에서 바라다보는 동남각루는 계절마다 그 느낌이 달라지죠. 봄과 여름철 꽃이 필 때는 물론이고 가을에 억새가 하늘거리면 많은 사람들이 동남각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합니다. 이제라도 제 모습을 드러냈으니 정말 다행이죠. 올해는 화성 방문의 해라 사람들도 더 많이 찾아오고 있는데 말이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동남각루
각루란 성곽의 비교적 높은 곳에 설치한다. 주변을 잘 살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성에는 네 곳의 각루가 있다. 이 각루는 정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옛 선인들은 정자와 같은 건물을 지을 때 ‘정(亭)’과 ‘루(樓)’로 구분을 했다. 보편적으로 정자는 땅의 지면에 붙여지은 건물을 말하고, 루는 아래로 사람들이 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중층으로 된 건물을 말한다.
화성의 남쪽 수문인 남수문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동남각루가 있다. 이 동남각루는 남수문을 지켜내기 위한 구조물이다. 동남각루는 남공심돈(지금은 유실되어 버린 화성의 구조물 중 하나)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동남각루는 작지만 아래는 온돌방을 들여 한 겨울에도 병사들이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조성한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러한 동남각루가 2014년 갑자기 한편으로 기울어졌다. 여름철에 내린 비로인해 지반침하가 일어났는지 목재로 버텨놓았다가 보수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동남각루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공기를 제때 맞추지 못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문화재 보수는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공기를 반드시 지켜야한다. 아직 펜스를 완전히 걷어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 동남각루를 올려다보면서 다행이란 생각이다. 더 늦기 전에 화성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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