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음 뷰로 다시 돌아온 지가. 어제보니 그 동안 1,000개의 글을 다음 뷰에 송고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 1,000개의 글은 딴 분들의 글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여행블로거들이나 문화에 대한 글을 쓰시는 분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조금은 할 테지만 말이다.

 

다음 뉴스였을 때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옮겨 앉았다가, 2007년도에 2,000개가 넘는 글을 하루아침에 삭제를 해버리고 다음을 떠났다. 그리고는 한 3년 정도를 블로그를 떠나있었다. 그동안에 내가 느낀 것은 솔직히 ‘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무엇인가 조금 허전하다’라는 생각이었다.

 

 

다시 돌아온 다음 뷰, 아쉽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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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년도에 다음을 떠날 때도 그랬다. 뉴스가 뷰로 바뀌더니 문화, 연예가 한데 묶이고 나서부터, 문화는 아예 찬밥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다음뉴스 시절에는 문화기사도 가끔은 메인 창에 버젓이 자릴 잡았고, 그런 기사에 30만 명 이상이라는 사람들이 들어와 글을 읽고는 했다.

 

그런데 뷰로 옮겨가더니 이것은 온통 문화는 사라지고, 연예기사가 도배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연예기사를 올려야 하는 다음의 곤란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 허전하게도 문화는 그야말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점은 문화재 글을 주로 송고를 하는 문화전문 블로거로써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작 글 1,000개, 하지만 나에겐 장난이 아니야

 

말이 그렇지 2009년 11월에 티스토리 초대장 한 장을 이웃블로거에게서 받아 개설을 해놓고도, 사실은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올리기에는 지난 울화가 채 가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송고하기 시작한 것이 2010년 8월 경 부터이다.

 

이런 계산이라면 22개월 동안 1,000개의 글을 뷰에 송고를 했으니, 날마다 1~3개의 글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글이 모두 문화재에 대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횡성수설 지껄이기도 했고, 어쭙잖은 연애이야기도 쓰기도 했다. 그 중 750개 정도의 글이 문화, 문화재에 대한 글이다. 결국은 문화나 문화재에 대한 글을 매일 한 개 이상의 글을 송고를 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문화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야만 했을까? 한 번에 답사를 나가면 보통 1박 2일로 돌아온다. 요즈음은 숙박비와 차량을 움직이는 비용이 만만찮다. 1박 2일에 기본적으로 30만원 정도의 경비를 써야한다. 지금은 뜸한 편이지만 일주에 1~2회 답사를 나간다.

 

어떤 날은 7월 복중에 50리를 걷기도 했다. 다리는 붓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그렇게 돌아다닌 세월이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뀐 세월이다. 


 

일주에 경비를 50만원 정도 썼다고 하면, 한 달이면 200만원 정도를 답사 경비로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들어갈 때가 많다. 왜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결국 일 년에 2,400만원, 그동안 5,000만원 정도를 답사비로 날렸다. 그 금액으로 답사를 한 글을 다음 뷰에만 보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에서 2년 동안 들어온 돈은 얼마일까?

 

다음 뉴스 시절, 그 시절이 참 그립기도 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상금과 애드박스 등에서 들어온 돈은 고작 2년을 다 합해야 300만원이 되질 않는다. ‘그런데 왜 이 짓을?’ 하고 묻는 분이 계시다면 할말이 없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짓을 할 것인가? 결국 그 미친 짓이 지난해 년 말에 문화연예 부분의 뷰 블로거 대상을 받기도 했다. 결국 나에게 그 대상은 5,000만원 짜리라는 셈이다.

 

 

나에게는 이 사진 한 장마다 다 사연이 깊다. 그래서 사진이야 어떻든 소중한 자료가 된다. 위는 보물인 함안 방어산 마애불, 아래는 천연기념물인 전남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난 나의 길을 간다고 마음을 다진다. 앞으로 얼마동안이나 더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1,000개의 글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알고 보면 참 마음 아픈 글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가 하직하고 나면, ‘유택(幽宅)’이라고 하는 묘에 들어가 영면을 한다. 물론 요즈음은 묘를 쓰지 않고 화장을 해서 뿌리거나, 그런 것이 서운하면 수목장(樹木葬)이나 혹은 납골당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묘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봉분을 고집하는 분들이 꽤나 된다.

 

그런데 이 묘를 보면, 참으로 그 사람이 살아생전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묘들이 많다. 앞에는 석물이 있고, 봉분은 남산만하다. 거기다가 큼직한 돌에는 별 이상한 글도 적혀있기도 하다. 자손을 잘 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대단한 인물인지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돈으로 도배를 한 묘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능하다. 그러나 그 묘에 가서 아무도 머리를 조아리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다. 그 자손들이야 찾겠지만.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에 소재한 태종 무열왕릉

 

묘역을 갖고 사람을 판단할 수 없어

 

그런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묘가 아니다. 사람이 평생을 나라를 위해 살다가 죽은 이도 있겠고, 그저 고생만 하다가 죽은 이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런데 나라님이라고 하는 분들은 죽은 후에 그 묘를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얼마나 백성들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는가를 알 수 있다. 물론 묘 하나만 갖고 그 임금님의 일생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경주 서악동에 있는 태종무열왕의 묘를 보면 그 크기가 대단하다. 무열왕의 묘도 대단한데 그 앞에 있는 둘째아들인 김인문의 묘 또한 만만치가 않다. 무열왕릉의 뒤편에는 왕릉이 3기가 있다. 추사 김정희는 『신라 진흥왕릉고』에서 무열왕릉 위에 있는 서악동 고분 4기를 진흥, 진지, 문성, 헌안왕 능으로 추정한 바 있다. 보물 제65호인 서악동 삼층석탑을 비껴서 안으로 들어가면 왕릉 2기가 있다.

 

국보 제25호 태종무열왕릉 비

 

사적에 묻힌 나라님들

 

사적 제178호로 지정이 된 신라 46대 문성왕릉(839~857 김경응)은 진흥, 헌안왕 능과 함께 선도산 남쪽 구릉 말단에 있다. 능의 지름은 20,6m에 높이는 5.5m이다. 문성왕은 신문왕의 아들로 신라의 쇠퇴기에 왕위에 올라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난을 평정하고, 혈구진을 설치하였으며 임해전(안압지)을 크게 보수하였다.

 

사적 제179호인 신라 제47대 헌안왕릉(재위 857~861/김의정)은 문성왕릉의 바로 곁에 있다. 지름은 15.3m에 높이는 4.3m이다. 이 능은 밑 둘레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무덤을 보호하고 봉토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였으나, 지금은 몇 개만 들어나 있다. 헌안왕은 신무왕의 동생으로 조카인 문성왕의 뒤를 이었다. 헌안왕은 저수지를 수리하여 흉년에 대비하는 등, 농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하지만 이 두 임금의 묘는 무열왕의 묘에 비길 바는 아니다. 신라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들의 유택을 보면, 그 나름대로 나라님들이 백성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견훤왕릉을 보면 제대로 된 이정표 하나 없이 덩그러니 봉분만 남아 있다. 후백제를 세우고 한 때는 후삼국 중 가장 큰 세력을 갖기도 하였으나,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아들 신검과의 내분으로 고려에 의해 멸망을 하고 말았다.

 

명장을 만드는 것은 휘하의 장졸이다

 

이런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라님의 유택만이 아니다. 삼국통일의 업적을 이룩한 경주 김유신의 묘나, 23전 23승이라는 놀라운 전승의 해전 기록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의 유택 역시, 수많은 시간이 지났으면서도 후대들에게 교훈을 남기고 있다. 그들의 삶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역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모든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세계 4대 해전이라는 대단한 해전인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것은 이순신이라는 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장만 있어서 그 험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가 않다. 그 밑에는 장군을 믿고 의심 없이 따르는 수많은 장수들과, 이름 없는 병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만큼 명장 밑에는 백성들을 생각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수하의 인물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라님 주변 사람들이 과연 명장 밑에 있는 명 장수들일까? 그들이 과연 국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다가 보면 참담하다는 생각만 든다.

 

 

바로 이런 차이다. 훌륭한 명장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를 믿고 따르고 나라와 국민들을 생각하는 장졸들이 있어야만 한다. 요즈음 들어 많은 지자체장들을 보아도, 그 주변에 명장을 만들 수 있는 장졸들이 그리 흔하지가 않다는 생각이다. 후일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있는가는 중요한 일이다. 곁에 명 장수가 없고, 자신의 버팀목이 될 수 없는 장졸이라면, 당당히 버릴 사람은 버리고 인재를 등용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말없이 숱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역사는 준엄하게 그 사람을 심판하기 때문이다.

중소유통업체 회원들 계란 1,000여개 등 대상창고에 투척

 

6월 5일(수) 오후 2시부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509-12번지 도로변에 소재한 (주)대상 베스트코 입점지에서는 200여명의 중소유통업체 회원들이 모여 ‘수원지역 (주)대상 베스트코 식자재 도, 소매업 진출 규탄 및 사업조정 일시정지 권고 촉구 상인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중소상인들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초토화시키려는 대기업의 탐욕이 이제는 도매납품업에 까지 손을 뻗치고 있으며, 전국 곳곳에서 중소상인들과의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미원‘으로 유명한 조미료 제조업체인 (주)대상이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에 대상베스트코가 입점하여 주변 도매납품업자들을 고사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등이 도소매 유통업에 까지 손을 대

 

최근 CJ와 (주)대상, 이마트, 롯데 등 재벌기업들이 영세 상인들의 생계 터전인 식자재 유통시장까지 침투하고 있으며, 대규모 급식시장까지 이미 진출하고 있는 CJ와 (주)대상, 대형마트와 SSM 사업에만 주력하던 이마트와 롯데 등 재벌유통기업들이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을 동원해서, 식자재 관련 도소매 유통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와중에 미원과 고추장 등으로 유명한 (주)대상이 수원 우만동에 베스트코 창고 입점을 하여, 주변 도매납품업자들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것. 이 베스트코의 입점지는 농수산물시장과 불과 2~3km 안에 인접해 있어, 영세 도매납품업자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주)대상이 그동안 고추장, 간장을 대신해 팔아준 은공도 모른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수원에서 유통산업에 뛰어 들어, 도소매업자들을 고사시키려 든다. 지금은 당장 자신들이 우리를 도와주려 한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가 대상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거리로 내몰릴 것이다.”며 대상의 즉각적인 식자재 유통산업 철수를 주장하며 집회를 했다.

 

동반성장을 꾀할 것이라는 대상베스트코(주)

 

그러나 이와 관련해 대상베스트코(주)의 본사 관계자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동안 대상베스트코는 하남에서 베트남쌀국수 프렌차이즈 업체인 포호아, 포메인, 포베이 등 동남아퓨전음식점 프렌차이즈 가맹점에 식자재를 납품해 왔다. 이번에 수원에 지점을 개설한 것은 수원, 안양, 의왕, 평택, 오산 등 경기남부지역의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오픈한 것이다”라고.

 

 

 

또한 이 관계자는 “우리 수원지점은 농산물시장과 3Km 이상 떨어져 있다. 규모 역시 290평 정도의 소규모 물류창고형 영업을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가파르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일부 지역의 중소식자재 유통업체로부터 사업조정 신청 등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강원도 원주, 경남 진주 등에서 지역 상인들과 상생합의를 이끌어 내는 등, 지역 상인들과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이런 대상베스트코(주) 관계자의 주장에 대해 수원유통연합회 관계자는 “한 마디로 사탕발림이다. (주)대상이 오는 6월 30일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해 미리 사업장을 오픈하였다. 이는 아마도 그때가 되면 중소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법안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허가를 받아놓으면 그 규제에 묶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 마디로 대상베스트코의 꼼수라고 본다. 이들은 대형프랜차이즈 업체에 납품도 하고 우리에게 물건도 저렴하게 공급한다고 하지만, 결국 모든 업체들을 그들의 손아귀에 휘어잡고자 하는 것이다”며 반발했다.

 

 

 

한편, 이날 수원지역 중소유통업체들이 집회를 하면서 대상베스트코 창고에 계란, 고추장 등을 투척한 것에 대해 (주)대상의 관계자는 “오늘 이들이 집회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계란 등을 투척한다는 등의 퍼포먼스를 한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수원유통업체 회원들이 너무하는 것 같다”고 한다. 앞으로 수원유통업체회원들과 (주)대상의 마찰은 대화를 통해 풀기란 시간이 필요할 듯 하며, 이들의 불편한 사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요즈음 방송 등을 보면 '효(孝)'라는 단어는 아예 어디로 종적을 감춘 지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날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방송 등에서는 효를 알려주는 내용은 거의 없고, 그저 부모에게 달려들고 떼를 쓰거나, 아니면 패륜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등 그야말로 막가는 내용들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세상이 하도 험난한데, 무슨 케케묵은 그런 효를 강조하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효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행위다. 효라는 것이 사라진 세상이, 어찌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고충절 길재의 후손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가면 효자비각이 하나 있다. 그 안에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효자비와 목판 정문이 있다. 목판 정문에는 <孝子 學生 吉壽翼之閭>라고 적혀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효자인 길수익을 기리는 문이라는 소리다. 비석에는 <길야은선생칠대손효자수익지비(吉冶隱先生七代孫孝子壽翼之碑)>라고 쓰여 있다. 즉 효자 길수익은 야은 길재의 7대손이라는 것이다. 길재는 태상박사를 조정에서 제수했으나 '신하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벼슬을 사양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정종 2년인 1400년 길재의 나이 48세에 조정이 천도를 한 후, 송도를 둘러본 길재가 지은 시이다. 길재는 '만고의 충절'이란 칭호를 들었다. 조정에서는 그의 충절을 높이 사 100결의 밭을 식읍으로 내렸으나. 길재는 그 밭에 대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충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충절을 지킨 길재의 7대손인 길수익

 

만고 충절을 지킨 충신 길재의 7대손인 길수익. 길수익은 영릉의 수호군으로 이곳 왕대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왕대리는 바로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있는 곳의 산 뒤 마을이다. 이곳에 길수익의 효자정문이 내린 것이 1670년이고, 효종대왕의 능은 1673년도에 이곳으로 옮겨졌으니, 길수익은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의 수호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륜가(五倫歌)'에 보면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가 적혀있다. 7대조인 길재는 <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에도 오른 인물이었으니, 그 자손인 길수익이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풀속에 저 까마귀 반포한줄 알았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부모은혜 잊을소냐

새벽에 일찍깨서 문안부터 먼저하고

즐기시는 음식으로 정성들여 차려드려

부모한번 잡수시면 자식된맘 기뻤어라

이즉하면 시장할까 날이차면 추워질까

부모님이 하고자 하는일 앞서가며 먼저하고

부모앞에 항상 있어 편안케도 하자꾸나

 

오륜가 중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효자 길수익은 이러한 오륜가를 익혔을 것이다. 왕대리 앞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고기를 낚다가 물에 빠져 헤매자, 아버지를 구하려고 물에 뛰어든 길수익. 그러나 끝내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고, 함께 물에 빠져 고혼이 되었다.

 

조정에서는 길수익의 효를 높이 기리고자, 현종 9년인 1670년에 효자정문이 내려졌다. 지금도 왕대리의 마을 안에 있는 정려각과 비. 후대에 자손들의 귀감을 삼고자 조성된 이 비각 옆에는, 커다란 향나무 한그루가 있다. 그런데 이 향나무 가지들이 모두 밑으로 처져있다. 아마 길효자의 효스런 마음에 감읍하는가 보다.

 

모두에게 살아가는 지표가 되어야 할 소리

 

부모취침 하실적에 자리깔고 물러날 때

온한도를 살펴보세 춥지말고 덥지말게

정성을 하루같이 우리부모 살펴보세

글읽고 행실닦아 군자소리 들어보세

입신양명 하는날에 부모님도 현달한다

가난함을 근심말고 농사하여 봉양하세

물논에는 벼를심고 물밭에는 조를심어

벼는베어 부모봉양 조는베어 우리먹세

뒷산에 뽕따오고 앞밭에 목화심어

명주짜서 부모의복 무명일랑 우리입세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륜가의 부모님에게 자식들이 해야 할 도리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지금의 우리들은 이런 소리조차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 아마 효자 길수익의 효심을 조금이라도 따를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 세상이 이렇게 황폐화는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모두에게 귀감이 되어야 할 행동

 

 

효자 길수익의 행동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행동이다. 말만 번드르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륜가는 인간이 살아갈 행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오륜가를 꼭 듣고 따라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물론 인간 모두가 따라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지도층의 인사라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다가 보면,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삼간다. 그런데 이 지도층의 사람들이란 분들의 꼬락서니를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하니 말이다. 물론 그 중에는 아직도 본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오륜가의 다음 한 대목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스스로가 지도층이라고 하는 분들에게.

 

위태한데 가지마라 부모근심 하시리라

주색잡기 멀리하자 부모에게 욕되리라

처자동기 화목하면 부모님이 기뻐하신다

문중자랑 더욱하면 부모감동 하시리라

 

 

왕대리에 서 있는 효자비와 비각. 오늘도 그 앞에는 어린 아이들이 와서 돌아보고는 한다. 교육의 지표가 되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길효자를 따라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오늘도 숱한 인생의 오류를 범하고만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비각 하나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아침에 신문사에 출근을 해서 한창 기사를 쓰고 있는데, 멀리 계신 지인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아침 일찍 전화를 하지 않는 분인지라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전화를 받았더니,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시래.

 

“티스토리에 추천박스가 안보이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침에 고물상연합회장 기사 읽고 추천을 하려고 했더니 추천박스가 없어”

“그럴리가요”

 

 얼라 내 추천박스가 보이질 않네


 

얼른 티스토리 블로그를 열어보았다. 얼라 정말 없네. 다음 뷰에 송고를 했으니 그곳으로 가서찾아보았다. ‘일상다반사’에는 있다. 그런데 왜 사라졌을까? 그리고 보니 두 개나 있다. 일단 추천이 적은 하나를 지워버렸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와서 들러보았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다. 예약송고를 한 것인데 무엇이 잘못 되었나?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수정을 눌러보았다. 틀림없이 일상다반사에는 있는 글이 발행은 되었는데 분류선택을 하란다. 다시 한 번 분류선택에 사는이야기를 눌렀다. 그랬더니 또 발행한 글이 두 개가 되었다.

 

틀림없이 다음뷰 '일상다반사'에는 있다


 틀림없이 송고를 했는데, 또 다시 발행분류선택을 하라니. 나 쫌 그만 미워하시면 안될라요?


거 참 이렇게 저렇게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하긴 글은 써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니 고민만 하는 수밖에. 설령 뮨화로 송고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다음 뷰 관계자님 내 손가락 돌려주세요. 그거 나이살 께나 먹은 인간인지라 질기고 맛이 별로 없어요.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빼앗겠으니 이것도 보상해주셔.(추신 / 이렇게라도 웃고살자구요. 세상 참 웃을 일이 없어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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