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여자분 남자가 몇이지?
취재를 하거나 답사를 할 때 이동수단이 버스나 열차인 나로서는, 그 시간에 할 일이 많다. 우선은 출발지에서 신문을 하나사서(주로 시사주간지이지만) 꼼꼼히 읽어본다. 그 안에 기삿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블로그에 접속을 해서 글을 읽거나 추천을 한다. 그런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한다.
물론 트윗과 페이스북 역시 이동 중에 하는 일이 잦다. 하기에 주변의 이야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더 더욱 바깥으로 지나는 경치는 아예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 가는 길이라면 예외이기도 하지만.
뒤에서 거는 전화 자꾸만 신경이 쓰여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라야 고작 10여 몀이다. 자리가 많아 일부러 신문을 보느라고 뒤편으로 가 앉았다. 그런데 그 많은 자릴 두고 한 분이 내 뒤에 앉는다. 문제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전화를 건다. 친구들 모임에라도 나가는 것인지, 약속시간과 장소를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연인에게라도 하듯 소곤거린다. 뒤에서 계속 소곤거리는 전화소리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여보, 나 차 탔어 갔다 올게. 일찍 올꺼야.”
갑자기 톤이 달라졌다. 아마도 남편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전화를 하는 것인가 보다. 참 이런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럽다. 언제 적에 이런 전화를 걸어 보았는지, 혹은 이런 전화가 걸려왔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런데 정작 조금 후에 이 분의 전화가 이상해졌다.
“응 자기야 나야, 모임에 한 30분 정도만 있다가 나갈 테니까 그 앞으로 와 알았지”
“.....”
“아냐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해. 먼저도 늦어서 눈치 보여 혼났어.”
이 여자분 남자가 도대체 몇이여?
중간 기착지에서 황급히 차를 내리는 여자분. 그 뒷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을, 그 남편이란 분이 불쌍해진다. 물론 남의 사생활에 대해 내가 ‘감 나와라 배 나와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도 남자인데 이런 사람을 보면서, 요즘 남자들이 바보일까? 아니면 저 여자 분이 너무 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보면 이런 경우를 참 많이도 보았다. 가끔은 정말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대화 내용으로 본다면 이 분 이렇게 밖으로 돌아다닌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듯하다. 남편을 속이면서까지 꼭 그랬어야만 했을까? 하긴 남녀사이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속이야 내 알 수가 없다. 하긴 요즘 하는 말을 들으면 잘 나가시는 분들은 남자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정말로 연애의 고수 시대가 도래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노라면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있다.
“형님 괜히 부러우니까 시비 거는 것 맞죠?”
그런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혼자 오래 있었나? 그냥 넘겨버릴 일도 두 귀를 곧추세워 들었으니 말이다. 아우 녀석 이야기대로라면 난 역시 속물일 수밖에 없다. 세상일을 그냥 보아 넘기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블로그를 너무 오래 한 것일까?
‘경기재인청’의 부활을 기대한다
재인청에 대해서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한다. 자칫 재인청이라는 곳이 어떤 특정한 전통예술을 하던 것처럼 포장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던지 재인청에 속한 수많은 기예인들이 있었고, 한 때는 모든 전통예술분야를 총괄하던 곳이 재인청이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재인청은 무부들의 집단이었나?
물론 재인청은 ‘무부(巫夫=화랭이)’들이 자신들의 공동 이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재인청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도 고려조부터 전해진 교방청(敎坊廳)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재인청은 무부들의 조직이면서도 그 안에 화랭이, 광대, 단골, 재인 등 수 많은 예인들이 속해 있었으며 아주 엄한 규제가 있었다.
재인청은 경기도를 비롯해 충청과 전라도에도 있었으며, 각 군마다 군 재인청이 있었다. 각 도 재인청의 수장을 대방이라고 하고, 군 재인청의 수장은 장령이라고 불렀다. 재인청에서는 선생 밑에 제자들을 두어 학습을 하게 하였으며, 전국에 산재한 많은 예인들이 이 재인청에서 학습을 하거나 재인청에 적을 두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재인청의 수장은 대방이라고 하였으며 3도(경기, 충청, 전라)의 재인청을 당시 화성재인청에서 총괄을 했던 관계로, 화성재인청의 대방을 ‘도대방’이라고 하였다. 대방과 도대방의 선출은 3명을 추천을 하고, 그 이름 밑에 권점이라는 점을 찍어 다수표를 얻은 사람이 맡아보는 직선제 선출을 하였다.
까다로운 규제 속에 생활을 한 재인청
재인청은 그 규제가 까다로워 스스로의 천시 받는 형태를 벗어나기 위해 당시에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스승에게 예를 갖추지 않거나 주정을 하면 태장을 칠 정도로 엄한 규제 속에서 조직을 이끌어 갔다. 1920년대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서 재인청이 폐청이 될 당시, 재인청에 속한 인원이 3만 여명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보아도 당시 재인청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지금도 경기도 내의 여러 곳에 보면 광대마을, 혹은 재인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지난 날 군 재인청이 있던 곳으로 보인다. 재인청이라는 곳이 춤을 추거나, 단지 소리를 하거나 하는 예인의 집단이 아니다. 재인청이란 한 마디로 3도에 있던 모든 예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거대 기, 예능조직이었다.
‘경기재인청’의 부활을 기대한다.
경기도의 모든 전통예술을 총 망라할 수 있는 경기재인청의 부활. 이제는 경기도 내의 재인청에 대해서 새롭게 조명이 되어야 할 때이다. ‘화성재인청’을 ‘경기재인청’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사유가 있다. 그것은 당시 화성에 재인들을 관리하던 수장인 도대방이나 무부들이 다수의 인원이 있었고, 아마도 재인청의 소재지가 화성 내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경기도 전체를 아우르는 그러한 대단위 재인청이 필요할 때이다.
그것은 재인청이 어느 특정 종목이 아닌, 전통예술 전 종목에 걸쳐 수많은 기예인들이 있었던 곳임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인청의 부활은 이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안이다. 그 길만이 경기도 내의 8만 전통예술인들이 하나의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물리적인 힘에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날 경기도의 전통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우던 재인청. 그 재인청을 재조명 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재인청은 굿을 하던 무부들이 자신들의 공동 이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조직한 기구였던 것이, 120여 년 동안 전국의 많은 예인들이 몰려들면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 그 재인청의 몰락은 전통예술의 혼란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연예인에 대한 대안없는 공격, 룰이 아니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한다고 한다. 사실 말이라는 것을 할 때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이 장난으로 던지는 돌 팔질에 개구리는 목숨을 잃는다’고. 하고나면 사라지는 말도 그런데, 하불며 영구적인 인터넷 상에 글이야 오죽할까? 글을 쓴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글 하나를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을 하는 것이니까.
언제나 그렇지만 수없이 올라오는 블로그의 글을 일일이 읽을 수는 없다. 그저 제목과 한 두 군데 정도 부분을 볼 뿐이다. 그 중에 꼭 필요한 글이란 생각이 들면 찬찬히 읽어보기도 한다. 모든 분들의 글이 하나같이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꼭 보아야 할 글이라면 시간을 내어 다시 한 번 정독을 하는 것이 내가 블로그에서 글을 보는 방법이다.
아무리 든든한 성이라고 해도 빈틈은 있다. 뛰어난 연기자라고 해도 어느 곳이 되었던지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연기가 아닌 외적인 것으로 공격한다면, 그것은 공격 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수위 넘은 맹공, 다시 한 번 생각을
요즈음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가끔은 섬뜩할 때가 있다. 그것이 다름이 아니라 일부 연예인에 대한 수위가 넘은 듯한 맹공이다. 물론 그런 평을 받으면서 당사자들이 스스로 연기를 고치고, 노래를 더 열심히만 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꼭 그럴까 하는 점이다. 우선은 본인이 그런 글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먼저 마음에 상처부터 받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에 깊은 상처가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되고, 노래를 하는데 자신감을 잃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좀 더 발전을 하라고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을 것으로 믿지만 말이다.
이 단단한 성도 무너질 수가 있다. 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맹공은 자칫 성이 무너지듯 무너질 수도 있다. 무너진 성을 다시 쌓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듯, 상처를 받은 연예인이 치유를 하기 위해서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그 연예인은 좌절을 해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신체적인 공격, 방어 무기가 있을까?
대개는 연예인의 장, 단점을 들추어내어 글을 쓴다. 또한 그것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발전적인 면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간혹 글을 읽다가 보면 ‘이건 심하다’라고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신체적인 부분이나, 혹은 신체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면에 대한 질책이다. 그런 글을 볼 때는 무엇인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요즈음은 성형이 대세이다. 연예인들이 성형을 한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도 한다. 물론 성형이란 것이 시청자들에게 더 잘 보이고,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한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왜 너도 나도 그렇게 성형을 해야만 할까? 그것은 바로 시청자들이 그렇게 몰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철저하게 위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앞길이 창창한 연예인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은 아닌지.
‘일인미디어의 꽃’이라는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많은 연예인에 대한 글, 드라마나 음악에 대한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무래도 그런 글이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그런 것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들에게 소득을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있는 블로거님들께 늘 부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적인 것을 들추어 비판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그 연예인에게 정말 치명적인 아픔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너는 왜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으로 그렇게 생긴 것이,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본인도 그런 신체적인 부족함을 이겨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또한 그런 자신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아마도 자신을 탓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을 것이다.
대안도 제시할 수 있는 글이라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수성을 하려고 해도 공성무기가 상상 밖이라고 한다면 어찌 막아낼 수가 있을까? 연기자의 수성은 연기이다. 그런데 연기가 아닌 신체의 부적합을 갖고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일종의 룰을 벗어난 공격이다. 연기에 대한 지적이 아닌 신체적인 지적을 한다는 것은, 공성에 대한 예를 벗어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부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블로거들의 글은 그보다 몇 배 더 힘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블로그들이 신체적인 결함이나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사생활 등을 갖고 글을 올린다면, 아마도 그런 점에서 평정을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만일 그런 글 말미에 신체적인 결함을 이겨낼 수 있는 대안을 알려주었다면, 지적을 받은 당사자 스스로도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안 없는 무조건적인 공격, 그것은 한 사람의 연예인을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높은 벽을 허물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연기력 때문이다. 우리가 명품 연기를 한다고 하는 배우들이 모두 다 완벽하게 생긴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신체적인 어떤 것도 연기로 소화를 해낸다. 그렇기에 연예인들이 연기로 승부를 할 수 있도록 연기에 대한 조언으로 도와줄 수 있는 블로거가 정말 '일인 미디어의 꽃'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을 보다가 문뜩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는 연예인을 폄하하는 블로그이기 보다는, 합당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블로그가 될 만한 시점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연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한 사람의 주제넘은 글이 되었지만, 연예인 모두가 ‘개콘의 네 가지’는 아니지 않은가?
한 사람의 ‘블로거’는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오늘 일정이 가뭄으로 인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모처럼 집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밀려있던 CD 정리 작업부터, 여기저기 쌓였던 먼지도 털어내고. 참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참 할 일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답사를 다니고 신문에 올릴 기사를 정리하다가 보니 늘어나는 것은 짐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런 자료들이 나중에 다 우리의 문화 한 쪽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작은 도움이나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열심히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리만 하라고 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듯싶습니다.
모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였습니다. 방안에는 많은 것들 두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꼭 필요한 것만정리합니다. CD와 책 뿐입니다. 3,000여장의 CD와 700권 정도의 책이 벽을 차지합니다. 책은 3,000권 정도가 되지만 삶터가 비좁은 관계로 나머지는 아우의 서재에 남아있습니다
블로거의 역할과 존재가치
세상에서 블로거라는 존재들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그 힘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블로거 한 사람은, 이 시대에 매우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각 지자체마다 블로거들을 초청해 지역의 사안을 홍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블로거들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론사 혹은 대학 강단에도 블로거들이 당당하게 올라서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블로거들의 존재가치는 돈으로 환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3,000장 정도의 CD입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전국을 다니면서 찍어 온 자료들이죠. 이 CD들이 가끔은 잘못 된 세상을 바로 잡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 블로거의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이웃 블로거들 중에서는 벌써부터 독자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역할을 하는 분들이 상당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분들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분야 또한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블로거의 존재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한 것일 테고요.
세상이 블로거를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한 것이 한 7년 정도 되었나봅니다. 중간에 블로그를 접지 않고 계속했다면, 아마 현재 활동을 하는 블로거 중에서는 가장 고참이 될 것입니다. 2005년 다음에 플래닛이 없어지고 블로그가 처음으로 시작할 때부터, 한 사람의 블로거로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사실은 3,000개 이상의 들을 썼습니다. 중간에 막무가내로 블로그를 접을 때, 다음 블로그와 티스토리에 이미 2,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1,000개가 넘는 글이 남아있으니, 그 자료만 해도 참 엄청난 자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책들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 갖고 왔습니다. 좌측 밑에 통나무 찻상 보이시나요? 150년 정도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진 것을 3년간 비 바람 눈에 젖고 마르고 했던 것을 찻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기억을 떠 올려봅니다. 당시는 다음 메인창에 시사, 문화, 정치 등이 곧잘 올라있었습니다. 지금은 연예, 요리 등등이 주가 되었지만. 문화재에 대한 문재점을 이야기를 하면, 며칠 안에 말끔히 정리가 될 정도였습니다. 신호체계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면 바로 신호체계를 바로 잡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횡단보도가 이상하다고 하면 이틀이 안가 횡당보도가 올바르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하다
한 사람의 블로거가 갖는 힘은 무한합니다. 다만 그 블로거들이 그것을 어떻게 표현을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가끔은 곤욕을 치렀다고 이야기를 하는 블로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블로거들의 글 하나하나를 세상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업공간입니다. 남은 한 면은 창이죠. 오래된 TV(그래도 나올 것은 다 나옵니다)와 오래 된 컴퓨터. 방 하나에 있는 모든 물건의 전체입니다. 물론 딴 방이 하나 더 있고 주방겸 거실도 있습니다.이 안에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글을 씁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블러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로 인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지만,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행여 내 글로 인해 상처를 받을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글이 아니라, 대안까지 치밀하게 설명을 할 수 있는 블로거.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블로거이기 때문입니다.
‘마늘이 임신을 해’, 포복절도 한 사건
여주에 있는 아우는 늘 바쁘다. 사람들이 찾아가면 그 바쁜 시간에도 반갑게 맞이하고, 그저 막걸리 한 잔이라도 나누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요즈음은 지난 해 심어 놓은 농작물을 수확하느라 땀을 빼고는 한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언제나 찾아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기에, 이 집을 가끔 블로그에 소개를 하고는 한다. 6월에 찾아가는 이 집은 정말 좋다. 말로만 좋은 것이 아니고, 주변의 모습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넓은 평수에 초호화 주택을 좋다고 하겠지만, 그런 곳은 사람 사는 맛이 없다는 생각이다. 누구는 없는 자의 자기합리화라고도 하겠지만.
위는 황토로 된 아우의 전시실 '지우재'이다. 이 안에 방이 있어, 늘 그곳에서 쉬고는 한다. 아래는 전시실 앞에 만들어 놓은 작은 연못이다. 그곳에는 어리연이 사람을 맞는다.
청개구리가 살고 어리연이 피는 집
지난주에 찾아갔을 때, 전시관 앞에 만들어 놓은 작은 연못에는 어리연이 아침햇살에 활짝 피어있었다. 그런데 어리연 잎에 무엇인가가 움직인다. 가만히 보니 요즈음 보기 힘든 토종 개구리 몇 마리가 한가롭게 쉬고 있다. 이 녀석들 사람이 가까이가도 도망갈 생각을 안 한다. 아마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품성을 다 읽을 듯하다.
작은 연못 주변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있다. 이 집에는 딴 곳에서 보기 힘든 꽃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작은 꽃들이 모여 있는 ‘한라산수국’은 보는 이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물론 그것을 보고 평안하다고 느끼는 것도,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블루베리가 익어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작은연못에는 개구리들이 어리연 꽃 잎에 숨어 살고 있다. 아래는 한라산수국이다.
몇 개 따먹어 본다. 새콤한 맛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게 만든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따먹다가 보니, 익은 것을 다 따먹은 듯하다. 미안한 김에 곁에 있는 꽃을 손으로 슬쩍 건드려본다. 향내가 코를 간질인다. 백리향이다. 향이 짙어 백리까지 향기를 보낼 수 있다는.
블루베리와 클레아티스(가운데), 백리향도 볼 수 있어서 좋은 집이다.
“마늘이 임신을 했나? 날씨 탓인가?”
아우부부가 마늘밭으로 올라간단다. 지난해에 심어 놓은 마늘을 수확하야 하는데, 날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미쳐 수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헌 장갑 하나를 주워들고 작업실 뒤편, 마늘밭으로 갔다.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심해, 먼지만 풀풀 날리는 마늘밭. 마늘이라고 제대로 자랄 리가 없다.
호미로 먼지가 나는 땅을 파 하나씩 마늘을 캐본다. 잘 자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마늘은 여느 마늘과는 다르다. 한 마디로 완전 무공해 마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늘대를 자르다가 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마늘대에 또 마늘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마늘대 위에 또 마늘이 자라고 있다. 이런 것을 두고 무엇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임신을 했다'라는 말에 죽는 줄 알았다
“마늘이 임신을 했냐? 왜 마늘대에 또 마늘이 달렸냐?”
“마늘이 무슨 임신을 해요.”
“이것 봐 마늘대에 또 마늘이 달렸잖아, 여기 와서 누가 오줌 싼 거 아녀?”
“정말 이상하네. 왜 그러지. 그러고 보니 임신한 마늘이 꽤 있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다. 나야 마늘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이런 경우를 알 턱이 없다. 그저 마늘이 임신을 했다는 말 밖에는. 그 말에 모두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좋은 사람들과 만남이란 매사가 즐겁다. 그래서 생활에 활력소를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늘의 임신사건. 그 하나만으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여주를 자주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는 잠시나마 세상 모든 시름을 내려 놓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름을 함께 풀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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