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반가운 사람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은 나이가 먹어 세상을 하직할 때가 되면 고향을 그린다고 한다. 고향을 그리는 것은 그곳이 바로 자신이 태어나고 조상 대대로 살던 뿌리가 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26일 오후 6.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 160에 소재한 쉐라톤 서울팔레스 강남호텔 1층 로얄볼륨을 찾아갔다. 때 아닌 고문으로 추대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무슨 고문이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35년 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반가운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이날 이곳에서는 사단법인 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이사장 한혜경) 자축연 및 출범식이 열렸다. 그 십이체장고춤보존회 출범식에 고문으로 추대가 되었으니 꼭 참석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월요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날이다. 망설이다가 서울로 향했다. 비가 오는 길을 나선다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약속을 했으니 어찌할 것인가?

 

행사장에는 원탁테이블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식이 시작한지가 30여분이 지났기 때문에 한창 축사가 이어지고 있다. 십이체장고춤보존회 한혜경 이사장을 만난 것은 꽤 시간이 흘렀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2017322일자로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공식적인 시단법인 인가를 받았다고 한다.

 

 

장고춤의 원류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 전국을 헤매

 

장고춤보존회가 처음으로 발족을 하고 연수회를 시작할 때부터 인연이 되었다. 그 후 한헤경 이사장의 장고춤의 원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데 함께 거들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참으로 길고도 지루한 여행이었다. 오랜 시간을 전국을 답사하면서 그 원류를 찾아나섰기 때문이다.

 

장고춤을 우리는 농악에서 파생한 춤이나 신무용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장고춤은 불교 각종 미술작품에 나타나고 있어 이미 신라 때부터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농악에서 파생한 춤으로 보기보다 불교의식 무용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교미술에서 장고를 이용한 춤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석탑이나 부도탑 등의 비천인이 연주를 하는 모습에서, 장고를 치는 비천인상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비천인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이다. 연기조사가 신라 진흥왕 5년인 544년에 창건하였다고 하는 화엄사 각황전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국보 제35호 사사자 삼층석탑의 기단부에 조각된 비천인상 중에, 장고를 치는 비천인상이 있다. 아마 이 때는 장고가 춤이 아닌 단순한 악기였을지도 모른다. 그 뒤에 나타난 보물 제85호 강릉 굴산사지 승탑에도 연화대 위에 앉아 장고를 치는 비천인의 모습이 보인다.

 

이 굴산사지 승탑은 고려 시대에 조성한 것이다. 중간받침돌에는 8개의 기둥을 세워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비천인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기고 있다. 조각되어 있는 상은 8구 모두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악기는 장고를 비롯해 훈, 동발, 비파, , 생황, 공후, 적 등 당시에 사용하던 악기의 모습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런 비천인상이나 고분벽화 등에서 나타나는 장고춤의 형태를 보면 이미 고려조부터 장고춤은 완전한 춤의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장고춤을 실질적으로 묘사한 사찰의 벽화가 전라북도 완주군 송광사에 그려져 있다.

 

송광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7년인 867년에 도의가 처음으로 세운 절이다. 송광사의 대웅전은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14년인 1636년에 벽암국사가 다시 짓고, 철종 8년인 1857년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 대웅전 상단 내벽에 보면 비천인상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비천인상에는 무당춤을 비롯해, 장고춤, 북춤, 승무, 바라춤 등의 그림이 보인다. 이 모든 춤들은 당시에 추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벽화에 나타나는 그림들은 단순히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세속화된 풍물을 그린다는 점으로 볼 때, 고려 고분벽화에서 나타난 장고춤은 조선조에 들어서 상당히 격화되고 빠른 동작을 필요로 하는 경쾌한 춤으로 변화가 되었다고 추정한다. 벽화에 나타나는 그림을 보면 작은 소장고를 이용해 춤을 추면서 군관모자와 같은 관을 썼다. 화려한 장식에 힘이 있는 모습의 장고춤을 역동적으로 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고춤의 역사를 찾기 위해 많은 날들을 전국을 누볐다. 그 뿌리를 찾기 위함이다.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한 것이 바로 한혜경 이사장이다. 그런 연유로 인연이 되 보존회의 고문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5세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한 한 이사장은 구한말 대정권번의 명무 김취홍으로부터 전승된 한혜경류십이체장고춤 보존 전승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결실을 맺는 자리가 바로 시단법인 출범식 및 자축연인 셈이다.

 

반가운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국립국악원 경연대회, 동아음악콩클, 국립무용단 정기공연, 대한민국 무용제, 인천시립무용단 창단공연 등 작곡과 무용음악을 창작하면서 관계를 맺은 부문들이다. 그리고 1982년 인천시립무용단의 창단공연작인 굴레야·굴레야라는 작품의 곡을 쓰고 무용음악작곡과 관계되는 모든 일을 접었다.

 

그렇게 35년이란 세월을 작곡이나 음악과는 담을 쌓고 산 것이다. 그러던 것이 우연히 지난 5월 팔달문시장 다문화가요제의 심사를 맡아본 후, 다시 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의 고문으로 추대가 되었다. 이 나이가 먹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여우가 자신의 굴을 항해 고개를 향하듯 그렇게 음악과 다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일까? 당분간은 혼란스럽겠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35년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수구초심이란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결과여부도 모르면서 무조건 싸잡아 욕

 

요즈음 사람들은 다혈질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성격들이 때로는 커다란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세상은 상대적이다. 나에게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거나 해를 가하면 누구나 먼저 이유를 따지기보다 욕지거리가 먼저 나온다. 요즈음 사람들의 습성이다.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행동, 그것이 문제다.

 

지난 주말 남문시장 팔달문 홍보관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문을 요란하게 두드린다. 점심시간이라 근무자가 없어 잠시 문을 닫고 쉬고 있었기 때문에 “근무자가 없어요”라고 했지만 문을 열라고 한다. 급한 일인 듯해 문을 열어주니 다짜고짜 화장실로 가잔다. 난 근무자가 아니라서 못간다고 했더니 “근무자도 아닌 사람이 왜 여기 있느냐?”는 것이다.

 

은근히 부화가 치밀었지만 연세가 드신 분이라 말을 못하고 따라나섰다. 홍보관에 딸린 공용화장실에 갔더니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여성 한분이 30분이나 문을 못 열어 용변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화장실 근무자가 있기 때문에 주변을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전화를 받지 않는 듯하다.

 

무조건 욕부터 하면 상수인가?

 

세상 사람들이 일이 일어나면 결과도 알아보지 않고 바로 욕부터 한다. 몇 번인가 장애인전용화장실 앞에 달린 개문장치 버튼을 눌러도 열리지 않는다. 근무자가 없으니 그 이유를 나라고 알 수 없다. 그런데 들으라는 듯 바로 욕을 한다. “근무자가 자릴 비우고 돌아다녀. 이런 놈들을 왜 세금으로 월급을 주나 모르겠네”란다.

 

계속 안좋은 소리를 한다. 난 먼저 분명히 이곳 화장실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들으라는 듯 욕이다. “왜 욕을 하세요? 여기 홍보관 근무자는 화장실과 관계가 없다는 데” 그래도 화가 가시지 않는지 계속한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카메라로 여성장애인을 찍어댄다. “찍지 마세요”라고 여성이 이여기를 해도 막무가내로 찍는다.

 

이 정도면 어이가 없다. 혼자만 애국자요 정의로운 줄로 아는가보다. 나이를 먹었으면 좀 더 산중하게 가려서 말을 해야 한다. 관계가 없다고 설명도 했고 문을 열기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싸잡아서 욕을 하는지 모르겠다. 안 졸은 말로 나이가 무슨 벼슬인 듯하다.

 

작동방법 설명문이라도 붙여 놓았더라면

“돈만 받아쳐먹고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이런 놈들에게 왜 세금으로 월급을 주어야하느냐”며 곁에서 이유를 묻던 또 한 사람도 욕을 한다.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안 열리는 것이라고 아는 체까지 한다. “불이 꺼져있는데 무슨 사람이 있느냐?” 고 했더니 바로 욕부터 한다.

 

여성 분은 변이 어지간히 급한지 “바지에 싸도 되느냐?”고 묻는다. 참으로 난감하다. 왜 그런 질문을 내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게 하려고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타고 왔느냐?”고 질문을 하면서 개문스위치를 길게 눌렀더니 문이 열린다. 장애인 전용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사용할까봐 길게 눌러야 문이 열린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다급해하는 장애인에게 문이 열렸으니 얼른 들어가 용변을 보라고 문을 닫아주었다. 그렇게 일러놓고 나니 울화가 치민다.

 

장애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건물에 있는 사무실에 와서 부탁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욕부터 해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왜 관계가 없다고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욕부터 하는 것일까? 나이를 먹었으면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로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요즈음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이유없이 욕부터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점점 강퍅해져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상을 오래 살았으면 그만큼 모든 것을 정확히 분간하고 아랫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언행을 해야 한다. 결과도 모르고 무조건 관계없는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는 이런 폐단을 사라져야 한다.

 

사회는 신뢰로 쌓아가야 좋은 세상이 된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회란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조직화된 집단이나 세계를 말한다. 이는 서로가 신뢰로 쌓아가는 사람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답지 못하다라는 표현을 한다. 인간이 감사할 줄 모르거나 인간다운 행동을 하지 못할 때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 때 사회는 와해되고 만다.

 

사람이 남에게 선의를 베풀 때, 그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도움이 아니다. 선의란 대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은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알아야 한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저 고마움의 뜻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고맙다라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남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그렇게 도움을 받았다면 당연히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그저 상대방이 서운하지 않게 말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도와 준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 허다하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인될 일을 한 것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나 역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살았다. 그것이 꼭 경제적인 면이 아니라고 해도 사회를 살아가면서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움을 받았다면 당연히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저 고맙습니다라거나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일전에 아는 지인이 한 사람 어려움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으로 의지할 곳이 없다고 하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는가? 그런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다. 천성이 남의 어려움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그 시간으로 인해 내 생활에 어려움이 닥치기도 했지만 도움을 준 것이다.

 

경제적으로야 큰 도움이 아니라고 해도 먼 길을 몇 번이고 다니다가 보면 이것저것 소소한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도움을 주었을 때는 일이 해결되고 나면 반드시 고마움을 표하겠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도와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질적인 보상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이 해결되고 나자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변소를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그런 사람이란 생각이다. 도움을 준 것이야 내가 좋아 한 것이지만, 그렇게 인사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고맙다라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세상엔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그 뒤로 몇 번을 마주했는데도 단 한 마디도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행동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정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남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당연히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신은 도움을 받은 것이 없다고 큰소리를 치는 인간들도 있다.

 

한 마디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인간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는 병들어간다.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누가 곁에서 어려운 일도 당하거나 세상을 살면서 힘들어해도 도움을 주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상처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고도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이런 인간들이 너무 많다. 오히려 물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면 내 보따리 내 놓아라라고 할 사람들이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받았다면 고마움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이길 바란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넘쳐나는 세상 말이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들이 TV 토론을 거치면서 방송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불안하다. 한 마디로 믿을만한 후보자가 없다는 평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민을 대신해 국정 전반에 걸쳐 국민들의 안전과 수준 높은 삶을 책임지라고 맡기는 자리이다. 하지만 토론에 나와 헐뜯고 험담이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에게 과연 나라를 맡겨도 좋을 만한 지 걱정이 앞선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잡아 헐뜯고 변명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TV정책토론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책토론이란 그야말로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한 잘, 잘못을 따져보는 자리이다.

 

그런 정책토론에 나온 후보자들이 남의 약점을 구실을 잡아 재탕, 삼탕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과연 내세운 정책은 잘 이행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정말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는 대통령으로서 자질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간다. 이건 정책토론장이 아니고 흡사 싸움터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거기다가 후보들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며 직속기구 설치를 약속하고 있다. 후보자들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자신이 지향하는 정부형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도 걱정스럽다. 후보자들은 자신이 내세운 중점 공약에 따라 적게는 몇 개부처에서 많게는 7개 부처의 직속기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혹 그 많은 기구들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차원의 자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무려 7개의 대통령직속기구 설치를 예고하고 나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역시 국방개혁추진단과 재외국민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국가성평등 위원회 등 4개의 대통령직속기구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3개의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기존의 기구를 통합 관리하겠다는 뜻도 밝혔기 때문에 더 많은 기구가 늘어날 것인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하지만 그 많은 기구들이 과연 국민의 삶을 질을 높이는데 필요한 것인가 묻고 싶다. 과거 정부에서도 대통령 직속기구를 신설했지만 그러한 직속기구들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해 냈는가는 의문이다.

 

이제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 앞으로 정책토론은 남을 헐뜯고 오래된 험담을 들고나와 트집을 잡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대통령의 자질과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펼치기 바란다. 그 정책토론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조금이라도 의식을 하고 있다면 말이다.

 

휴일 맞이하여 찾아온 사람들 발 구르며 돌아서

 

오목호수공원 한편에 공용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오목호수공원은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339에 소재한다. 대단위 아파트단지 앞에 자리하고 있는 호수공원은 생태공원으로 조성이 되었다. 호수를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가 있기 때문에 인근에 살고있는 시민들이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

 

16일 오후 오목호수공원은 찾았다. 답답한 도심을 떠나 이렇게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마련한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팍팍한 생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을 때 가끔 이곳을 찾아간다. 숲과 물이 어우러져 있는 호수공원을 바라다만 보고 있어도 기분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에 꽃이 아름답게 피었네요. 이 근처에 사는데 집 가까운 곳이 이렇게 산책할 곳이 생겨 여간 반갑지 않아요

산책길에 만난 한 시민은 흐드러지게 핀 꽃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말을 건넨다. 아마도 꽃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웃사촌 정도로 생각이 들었는가 보다. “, 그렇죠라는 대답을 하고 공원 주차장 곁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화장실 쪽에서 걸어 나오던 한 사람이 불쾌한 듯 이야기를 한다.

화장실을 매일 잠가놓으려면 무엇하러 비싼 돈 들이 지어놓았나 모르겠네. 화장실은 급한 사람들이 사용하라고 지은 것이지 폼으로 만들어 놓았나?‘

무슨 말인가 싶어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잠겨 있다. 앞쪽으로 돌아가서 열어보았지만 요지부동이다. 건너편 카페에서 보았을 때는 분명 사람들이 드나들고 청소를 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는데 무슨 일일까?

 

 

잠가놓을 화장실, 왜 필요한가?

 

카페 2층에 올라가면 화장실이 있어요. 그곳을 이용하세요

화장실을 찾아갔다가 문이 닫힌 것을 보고 돌아서 길을 건너니 맞은 편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손님 한 사람이 카페 2층에 화장실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런 것을 안내할 정도라면 이 호수공원 화장실이 잠겨 있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닌 모양이다. 지난 1월인가 이곳을 찾았을 때도 호수공원 화장실은 굳게 잠겨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같은 휴일에 사람들이 이렇게 공원을 이용하는데 갑자기 용변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화장실 문을 잠가놓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네요. 공용화장실이고 더구나 공원에 소재한 화장실을 멋대로 잠가놓으면 사람들은 어디를 이용하라는 것인지 원. 급한 일이 있어 일시적으로 잠갔으면 안내문구라도 한 장 붙여야죠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돌아서면서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호수공원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주차가 되어있는 것을 보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 보이는 날이다. 그런데 정작 사용해야할 화장실은 왜 잠가놓은 것일까? 화장실과 같은 건물 옆에 있는 수원시 도시 숲 생태교육장에도 사람이 없으니 알아볼 곳도 없다.

 

 

수원시는 화장실 문화가 가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세계 유일한 화장실 문화공원인 해우재가 있고, 각처마다 아름다운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화장실이 부족한 것도 어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호수공원 화장실처럼 잠가놓는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도대체 호수공원 화장실이 왜 자주 잠겨있는 것인지 담당부서에서는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에 청소만 하고나서 문을 닫아버린 화장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가 수원시의 화장실 관리에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 문을 닫아버린 호수공원 화장실. 앞으로는 급한 사람들이 발을 구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화장실 관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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