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윤리적 예약문화 '노-쇼(No-Show)'의 대국(大國) 대한민국
‘지동 순대학교’에서 나타난 예약문화 노-쇼는 50%에 육박해
‘노-쇼((No-Show)’란 사전 예약을 해놓고 정작 시간이 되면 나타나지 않는 비윤리적 행동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노-쇼가 세계 1위 수준이라는 불명예스런 국가로 나타났다. 예약부도인 노-쇼는 유럽의 부도율이 4~5%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5대 서비스업종이라는 음식점, 병원, 미용실, 공연장, 고속버스의 경우에는 그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약부도로 인해 연간 손실액이 2016년 당시 4조 5천억원이라는 매출 손실이 일었다고 밝혀진 바 있다.
이런 노-쇼의 비윤리적 행동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점점 심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디로 사전예약을 한 사람들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한 마디 변명도 없고, 심지어는 연락조차 없이 나타나지 않아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런 노-쇼는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1일 오전 수원지동시장 순대타운 지하에 글로벌명품 수원남문시장 글로벌사업단이 마련한 순대학교 체험장을 찾았다. 지동시장 순대타운은 수원의 유명한 먹을거리 중 하나인 순대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순대타운을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과 수원시민들이 직접 순대를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과정을 익히는 체험으로 처음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전통시장 체험 중 한 종목이다.
순대학교 신청해놓고 연락도 없이 나타나는 않은 예약자들
글로벌 사업단은 지동시장 순대학교와 고객센터 2층에서 인기리에 체험을 이어가고 있는 금박체험, 그리도 구천동공구시장의 대장간체험을 묶어 남문시장 3대 체험으로 정했다. 그 중 구천동공구시장 대장간 체험은 불을 다루는 체험으로 연일 계속되고 있는 폭염으로 인해 당분간 중지된 상태이다.
지동시장 순대학교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주 2회에 걸쳐 총 22회를 체험할 수 있으며 예약을 받아 회당 20여명의 인원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1일 세 번째 맞는 순대학교 체험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순대학교 체험장에 모인 체험자들이 3가족 10명의 인원밖에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해서 물었더니 바로 비윤리적 약속문화 미실행인 노-쇼가 일어난 것이다.
마침 체험장에는 남문시장 글로벌사업단 김춘홍 전문위원과 오소라 체험당당 주무관이 자리를 하고 있다가 “왜 이렇게 체험을 하는 인원이 없느냐?”고 물으니 “체험 예약신청을 한 사람들이 연락도 없이 나나타지 않았다”는 대답이다. 순대학교는 한 번에 20명 정도, 6~8가족 정도가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세 가족 10명의 인원밖에 참여하지 않아 50%의 결원이 생긴 것이다.
무책임한 노-쇼 예약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
“저희들이 순대학교를 운영하면서 많은 분들이 예약신청을 해, 신청자가 밀려있어 지금은 당분간 예약신청을 받지 않고 있어요. 그중에는 외국인들도 신청을 했는데 우선은 8월말까지만 예약을 받아놓은 상태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예약을 해놓고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하지 않으면 예약인원이 차 예약을 받지 못한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죠. 예약을 지키지 못하면 사전에 연락이라고 해줘야 딴 분이라도 참가를 하게 할 텐데 말이죠. 정말 무책임한 사람들로 인해 많은 분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요”
순대학교 운영자 한 사람은 예약을 해놓고 연락을 해도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예약을 해놓은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사전에 연락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연락을 해주면 체험을 하고 싶다는 딴 사람이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연락도 없고 심지어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무책임한 노-쇼 예약문화.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딴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약속이란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를 말한다. 그런 약속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모처럼 사람들이 즐거워하면서 찾아오는 지동시장 순대학교 운영에 찬물을 끼얹는 이런 올바르지 못한 행동은 삼가야 할 것이다.
“남문시장 고객센터 모기떼 좀 퇴치해주세요”
고객센터 찾은 관광객 모기 등쌀에 발걸음 돌려
“저것 좀 보세요. 저 많은 것이 모두 지하실에서 날아오른 겁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죽을 맛입니다. 팔달구 보건소에 모기가 많아 방역 좀 해달라고 당부해도 알아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이래서야 어디 살겠어요. 관광객들에게 미안해 못 살겠습니다”
11일 오전, 남문시장 고객센터를 찾았더니 쑥을 태운 냄새가 난다. 무슨 쑥을 태웠느냐고 물었더니 문을 열고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좀 보라는 것이다. 남문고객센터 화장실 담당자가 비로 무엇인가를 쓸어내고 있는데, 들여다보니 그 많은 것들이 모두 모기들이다. 수백 마리가 넘는 모기들이 모깃불에 죽은 것이다.
“보건소에 이야기를 해도 건물 바깥만 약을 쳐주고 돌아갑니다. 지하실에 약을 뿌려달라고 했더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네요. 세상에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네요.”
남문고객센터 박영일 센터장은 모기가 생긴 이유를 말한다. 얼마 전 건물 화장실에 누수가 생겨 지하실에 물이 찼다고 한다. 그 물을 양수기로 퍼냈는데 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실에서 모기가 날아오른다는 것이다. 얼마나 모기가 많은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난 문을 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모기가 몰려든다는 것이다.
고객센터 찾은 고객들 모기 때문에 돌아가기도
문제는 남문시장 고객센터 1층에는 수유실과 안내데스크. 그리고 고객센터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수시로 들리는 곳이다. 2층에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금박체험장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고객센터 안에 수유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모기들이 돌아다녀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들이 그냥 돌아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2층 금박체험장을 찾아왔던 관광객들도 모기 때문에 발걸음을 돌린다고 한다.
잠시 앉아있는데도 모기가 날아다닌다. 그동안 고객센터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린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한다. 고객센터 지하실에 물이 찬 것을 빼냈으나, 한편에 물이 고여 있기 때문에 거기서 모기들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고객센터 근무자들도 모기 때문에 근무를 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한번만 소독을 해주면 될 텐데 그것이 그리 어려운 것인가 보네요. 고객들이 모기에 물렸다고 항의를 하기도 해요. 저희더러 해결하라고 하는데 지하실에 얼마나 많은 모기약을 살포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하루빨리 모기 퇴치를 해주어야지. 찾아오시는 관광객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잖아요”
모깃불 피워놓고 모기 잡느라 난리법석
얼마 전부터 모기가 너무 많아 2층으로 통하는 문을 열지 못하겠다고 고객센터 근무자들이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모기를 잡는 채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유난을 떤다’고 속으로 생각한 것이 죄스럽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바닥에 떨어진 모기떼를 보고 그동안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알 것만 같다,
“손님들이 찾아오는 고객센터에 이렇게 모기가 많아서야 되겠어요. 더구나 요즈음 폭염으로 인해 모기가 예전보다 대폭 늘었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이렇게 모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아요”
남문시장은 글로벌명품시장이다. 시장이 소문나면서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남문시장을 방문한다. 그들이 가장 먼저 들리는 곳이 바로 남문고객센터이다. 그런데 모기로 인해 자칫 관광도시 수원의 명성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관계당국에서는 남문시장 고객센터 지하실에 창궐하고 있는 모기를 하루 빨리 퇴치해 주기 바란다.
화서시장 구완회 상인회장의 꿈을 만나다
지난날 흥청이던 화서시장의 정취 못 잊어
사람들은 두 종류의 기억을 한다. 과거를 생각하며 아쉬워하는 사람과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많은 굴곡진 역사가 있어 기억하는 것 자체가 아픔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기억이나 즐거웠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저희 화서시장은 명절 때가 되면 시장통이 좁다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한 마디로 수원에서도 가장 흥청이던 시장이었죠. 그런 화서시장 바로 옆에 LH공사에서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면서부터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이주해 지금은 쇠퇴한 재래시장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7년 째 공사는 하지 않고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끌고만 가고 있습니다. 이젠 상인들도 지쳐가고 있어요. 어제나 오늘이나 하고 기다린 세월이 벌써 7년이나 지났으니까요”
화서시장 구완회 상인회장은 화서시장이 과거의 영화를 찾을 길은 시장의 환경개선과 인근 LH공사가 주관하는 아파트 건립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이주를 한 주민들이 2~3년은 자손들을 데리고 옛 정취와 인정을 찾아 시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책 없이 길어지고만 있는 공사로 인해 이젠 지역에 거주하다 이주한 주민들의 발길마저 끊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노력해야죠. 기회는 있으니까요”
8일 오후 화서시장을 찾아 구완회 상인회장을 만났다. 날이 더워서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시장을 살피고 다닌다. 상인회장이라는 직함이 에어컨 틀어놓고 자리나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폭염 중에도 일일이 시장을 돌며 안내한다. 조금이라도 상인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인회원들이 점포를 열고 있는 건물은 팔달구 화서동 97-1에 소재한 가동과 나동, 그리고 화서시장을 가로지르는 100m의 현시장과 잇대어 점포들이 즐 지어 선 150m의 시장 등 모두 220여개의 점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상가건물인 가동과 나동은 상가건물과 중간지역에 노점들이 자리하고, 신규로 상인회에 가입한 150m의 점포들은 노점으로 구성되어졌다. 모두가 1차상품을 판매하는 점포들이다.
올 초 화서시장 상인회를 찾았을 때 가동 1층의 보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1층 한편에는 400평이나 되는 할인마트가 자리하고 있고, 그 옆에 빈 공간은 점포 23개가 자리하던 곳이라고 한다. 구완회 회장은 그곳에 시장과 상생할 수 있는 점포를 유치하겠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청년몰을 입주시키자고 제안도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이 빈 공간이 23개의 점포주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예요. 선을 그은 사각형이 한 점포거든요. 이 자리에 청년몰을 유치하자고 하는데 점포주들은 임대료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저희 화서시장괴 상생할 수 있는 판매장을 확보하려고요. 예전의 명성을 되찾으려면 시장도 변하고 상인들도 변해야죠”
상인교육장 넓은 장소 마련하고 새로운 발돋음
젊은 상인회장답게 구왼회 회장은 상인들의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상인화사무실을 옮겨 넓은 교육장을 마련했다. 어둡고 침침하던 상가 내 좁은 통로에 점포들은 간판을 정비하고 전면을 유리로 교체해 밝게 만들었다. 건물 외곽면도 산뜻하게 정비하였다. 시장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알려주어야 고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수원시에서 현재 상가 건너편에 150면 주차가능한 주차장을 마련하려고 해요. 저희들은 200면을 마련해 화서1동 주민들과 함께 시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필요하다고 건의를 하고요. 건너편에 주차장이 마련되면 도로를 건너는 연육교로 주차장과 시장을 연결하려고 합니다. 그럼 많은 분들이 찾아오겠죠”
이런 바람은 구완회 회장만이 바라는 점이 아니다. 상인들 역시 “주차장이 없어 불편을 겪는다”면서 “LH공사가 아파트를 마련하면 주차공간이 확보될 줄 알았는데 7년 째 저렇게 공사시작도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한다. 화서시장은 햇볕이 뜨겁거나 비가 내리면 고객들이 많은 불편을 겪는 곳이다. 통로가 질퍽거려 고객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다면서 비가림 아케이드 공사신청을 했다.
“문제는 저희 상가건물 사이 통로가 도로부지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분들이 다 불법이라는 겁니다. 수원시에서는 불법점포기 때문에 철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30~40년을 이곳에서 청춘을 보낸 분들입니다. 이분들을 나 몰라라 하면 안 되죠. 이번에 아케이드 공사를 할 때 이분들이 생전에 운영할 수 있는 점포를 조성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화서시장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수원시, 그리고 자부담 10%를 더해 모두 15억6000만원의 아케이드 공사비를 확보했다. 아케이드 공사를 하면서 주변 경관까지 함께 정비한다면 쾌적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구완회 회장의 설명이다. 35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시장 곳곳을 누비며 설명하는 구 회장. 그의 소망대로 화서시장이 아름답게 치장하고 올해가 가기 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희망한다.
여주5일장, 돌아보면 재미가 쏠쏠해
여주는 쌀과 자기, 땅콩과 고구마로 유명한 고장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조선조에 여주 출신의 황후가 많기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이 지역이 명소가 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조선시대에 여주의 시장분포 사항을 살펴보면 여주장, 천령장(천양장이라 부름)과 억억장(후에 흥천장)이 제일 먼저 생기고 가장 번성하였다. 그 다음으로 안평장(후에 청안리로 옮김), 곡수장, 궁리장(금사면 궁리)등이 생겼고 그 후에 다시 태평리장이 생겼다.
해방 후에는 대신장, 북내장, 주암장, 상품장 등이 생겼으나 해방 후에 생긴 시장은 몇 년 후에 폐장되었다. 이곳에서 외지로 수출되는 수출품은 도자기 이외에 가내공업품으로 한지, 자리, 약초 등이었다. 1965년도에는 시장수가 11개였고 70년대 이르러 여러 종류의 잡화를 다루는 도매업, 소매업 등의 상점이 늘어나 시장수가 줄어 현재의 가남장과 대신장, 여주장만 서고 있으나 여주장은 그 규모가 다른 장에 비할 데 없다.
여주장에 대하여 옛 문헌에 기록된 것은 없으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시장이 없는 곳에 장이 생기기 시작하여 생활필수품을 거래하게 되었고 쌀, 금, 은 등이 화폐의 대행을 이루는 물물교환이 성행하여 정책적으로 교환율을 정하기도 했고 폭리에 대해서는 사법제도를 만들어 범법자를 처벌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 여주의 생산처로서 지금의 대신면 지역에 등신장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정확한 위치나 생산품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수 없다.
그 외에 방곡 근처(점동면 처리), 신지리(능서면 신지리), 신근리(흥천면 신근리)등이 있었다. 조선 초 농본정책이 중시되고 상업이 억제되었으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사행상이 두드러지게 되고 지방의 시장도 그 수효가 증가하여 점차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한강의 이용수단이 생기게 되었고 그에 따라 관선, 병선, 사선이 생기게 되었다 세종 년간에 들어오면서 여주 양화군에는 정조250석 적재적량의 조선이 15척, 그 이하 사선포함 20여척이 있어 이때 이미 상공업이나 교통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 같다. 한강을 이용한 상선들은 주로 농산물, 수산물, 임산물 등을 수송했으며, 올 때는 해산물(생선, 새우젖, 소금)을 외지에서 수입해왔다. 이것이 여주 최초의 시장인 양화장이다.
여주읍 하리 일대에 서는 여주장은 매 5일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 서게 된다. 주요품목으로는 쌀, 고추, 마늘, 참깨, 채소류, 의류, 어류, 그릇, 신발, 잡곡, 잡화류 일체 등이며 계절에 따라 특산물인 고구마와 땅콩, 고추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여주 5일장은 청정 농산물이 생산되는 지역으로서 인근 이천, 양평에 비하여 그 규모가 타 시장보다 커서 산지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시장 진입에 있어 현재 여주 상권 살리기 일한으로 추진하는 중앙통 차 없는 거리로 실시로 현재 차량 진출입이 없어 중앙통내 의류 및 먹거리 쇼핑에 일번지로 대두되고 있으며 중앙통 거리를 지나 여주 5일장 구경을 하면 어느 관광지에 비하여 더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여주를 찾았다. 평소와는 달리 폭염으로 인해 장이 영 활기를 잃은 것 같아 조금은 썰렁한 느낌마저 든다. 1시가 넘어서인가 사람들도 북적거리지 않고 장사꾼들의 고함소리만 시끄럽다. 왜 이리 한가하냐고 물었더니 벌써 파장분위기라고 설명을 한다. 농촌지역인 여주장은 딴 곳과는 달리 아침 일찍 북적거리다가 점심시간이 지나면 거의 파장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조금은 허탈한 감도 있으나 이 날은 꼭 장만을 구경하자고 간 것은 아니기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 장 구경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려고 길을 잡았다.
여주장 길 건너편 강 쪽으로는 대로사(大老祠)가 있다. 여주군 여주읍 하리 200-1에 소재한 대로사는 온통 꽃으로 장식을 하고 있다.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20호인 대로사는 우암(尤菴) 송시열(宋詩烈)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정조 9년에 김량행(金亮行)등 유림에 명하여 건립하고 동년에 사액(賜額)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본전 24평, 강당 57평, 비각 8평, 내·외 삼문 12평추향제 39평등이 있다.
1785년에 왕명으로 창건되어 대로사라 사액되었는데 1873년 (고종10)에 강한사로 개명되었다. 경내에는 사당과 내 ·외삼문이 일렬로 배치하고 있으며 강당은 주축에 직교되게 위치하고 있다. 비각은 외삼문 밖에 있는데 담장이 둘러져 별도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간(退間)이 있고 측면과 후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감실이 있다.
부재형태와 가구수법은 18세기 익공형식의 기준이 될 만큼 완벽하다. 이 사당은 다른 사당과는 달리 서쪽을 향하여 효종의 영릉을 바라보고 있다. 송시열은 효종이 북벌을 꾀하였을 당시 선생에게 북벌을 논의하던 가장 신임하는 신하이며 왕의 대군시절 스승이었다. 김자점의 무리가 청나라에 효종이 새 사람을 등용하여 장차 항거하려 한다고 무고(誣告)하니 청은 병력을 국경에 집결하고 사신을 보내어 추궁하였다.
이에 선생은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갔다가 효종 9년(1658년)에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다음해 효종이 승하하였다. 그 뒤 효종의 장례 때 대왕대비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윤구(尹口)의 3년설(設)에 맞서 기년설(1년)로 시비가 분분하다가 현종이 승하하고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덕원, 태천, 거제, 청풍 등지로 귀양살이를 하였다. 숙종 15년(1689년)에 왕세자 책봉문제로 상소하였는데, 숙종의 비위를 거슬러 노여움을 사서 제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그 후 5년 만에 복관(復官)되었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지동시장 순대 학교 정말 재미있어요.”
어린이, 학부형 24명 모여 순대 만들기 체험
수원지동시장은 순대타운으로 유명한 곳이다. 순대는 전국적으로 많은 유명한 집들이 있지만 수원시 팔달구 지동과 같이 이렇게 많은 집들이 한 곳에 모여 타운을 이루고 있기는 어렵다.
지동에 순대타운이 있어 좋은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요즈음처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곤란을 겪기도 한다. 준비가 안 된 탓도 있지만 장에 나가 무엇을 좀 먹을라치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지동시장 순대타운은 진가를 발휘한다.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으로 들어서면,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기 때문이다.
남들은 순대타운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지동시장 안에 자리한 순대타운은 그야말로 수원의 명물이다. 한 건물 안이 모두가 순대집이니 말이다. 이곳에서 하는 요리들은 다양하다. 돼지머리고기를 시작으로 순대국밥, 순대와 곱창을 함께 철판에 볶는 철판볶음이나, 순대와 오징어를 함께 볶는 철판볶음도 있다. 거기다가 소머리국밥, 소곱창볶음, 닭갈비 등 갖가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원사람들만이 아니라 외지인들, 심지어는 외국인들까지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을 찾아든다. 수원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꼭 들려가는 곳이 바로 순대타운이다. 이렇게 순대타운이 명성을 얻고 대물림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동시장이 유명세를 탄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상인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꾸준히 대물림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동시장 순대학교? 무엇하는 곳이래?
지동시장이 4일 오전 지동시장 순대학교를 개설했다. 순대로 유명한 지동시장이 순대학교를 개설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순대학교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다. 4일 오전 10시 지동시장 지하 한편에 ㅡ자리한 순대학교에는 어린이와 부모님들까지 24명이 첫날 순대학교에 참석했다.
지동시장 순대학교는 지동순대를 더 널리 알리고 푸드음식과 퓨전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어린이들에게 우리 고유의 음식인 순대를 알리고자 수원남문시장 글로벌 사업단이 마련한 기획 상품이다. 총 22회에 걸쳐 체험강습을 하게 되는 순대학교는 회당 20명 정원으로 어린이와 부모, 선생님들이 함께 참여한다.
순대의 기원은 동물의 피와 내장을 이용한 음식에서 찾을 볼수 있다. 순대가 문헌상의 기록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제민요술 齊民要術>에 양의 피와 양고기 등을 다른 재료와 함께 양의 창자에 소를 채워 넣어 삶아 먹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 순대는 일찍부터 전해진 음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옛 조리서에 나타나는 기록을 보면 <규합총서>에 쇠창자찜, <시의전서 是議全書>에 어교순대와 돼지순대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쇠창자찜은 쇠창자에 소를 넣어 창자 양끝을 실로 매어 쪄서 익힌 것이다. 어교순대는 민어 부레에 소를 넣어 삶아 익히는 것을 말한다. 함경도지방에서는 명태가 많이 잡히므로 명태로 순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순대 정말 좋아해요. 맛있어요!”
순대는 지역에 따라 그 조리방법이나 맛이 다르다. 지동시장 순대집을 한 바퀴 돌아보면 집집마다 조리하는 방법이 다름을 일 수 있다. ‘순대는 어느 집이 맛있다’라는 개념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는 이야기 일뿐이다. 4일 첫 수업에 참가한 어린이 12명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리했다. 순대전문가가 시범을 보이고 나서 아이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재료를 그릇에 담는다.
그 재료를 잘게 썬 후 곱게 갈아서 돼지고기와 함께 치대 소를 만들었다. 그 소를 긴 자루에 담아 순대형태를 만들면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처음해보는 순대만들기에 푹 빠졌다. 자신이 직접 만든 순대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한몫 한듯하다.
“순대 정말 맛있어요. 저 순대 좋아해요. 아무것도 안 들어간 순대가 제일 좋아요”
연무동에서 어머니와 함께 온 연무초등학교 3년 황시후 어린이는 순대가 맛있다면서 열심히 순대를 만든다. 수요일과 토요일에 열리는 지동시장 순대학교는 다음 주에는 유치원 선생님들과 어린이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날 찾아가 어린이들이 만든 순대의 맛을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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