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벽화는 이제 예전의 벽화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많은 벽화들이 퇴색되어 벽화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가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히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수원은 마을 만들기 직업의 일환으로 많은 골목에 그림을 그렸다. 한 때는 골목마다 넘쳐나는 벽화들로 거리를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수원의 벽화들은 대개 일회성으로 그린 벽화들이 많다보니 그 벽화의 수명이 고작 3~4년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오래 유지하고 있다는 팔달구 지동과 행궁동의 벽화까지 이제 별 의미 없는 골목그림이 되어가고 있다. 점차 색은 바라고 벽화를 조성한 벽은 더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벽화는 관심을 갖고 늘 보완을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벽화라도 관심을 두지 않고 2~3년이 지나면 흉물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수원에 많은 벽화그림들이 벌써 흉물로 전락했거나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문로데오 거리에 그려진 그림들

 

남문로데오거리는 젊은이들이 북적이던 곳이다. 이곳은 극장만 6곳이 있었으면 수원의 모든 청춘들이 몰려와 밤늦은 시간까지 즐기던 거리이다. 이런 남문로데오거리가 점차 젊은이들의 발길이 멀어지고 거리가 비워지고 있는 현상이 일어나자 지역의 작가들이 앞장서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남문로데오거리의 벽화는 일반적인 골목벽화와는 다르다. 이곳은 골목그림처럼 아기자기한 그림들도 있지만 벽면 전체에 대형그림들이 눈에 띤다. 그런 그림들은 좁은 골목에 그려진 벽화그림이라기보다는 대형 벽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림들은 남문로데오거리 청소년 공연장 부근부터 시작해 팔달산으로 오르는 수원향교 인근까지 이어져 있다.

 

그 중간 중간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그린 지 오래된 벽화들도 보인다. 이 골목의 벽화들은 그동안 벽면이 사라지면서 그림이 함께 사라지기도 했고 비바람에 색이 바란 곳도 있다. 벽화의 가장 문제는 바로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이 점차 흐릿해지거나 그림을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남문로데오거리에 소재한 팔달사 건물 한편 벽면에는 커다란 대형 벽화가 보인다. 이곳 로데오거리 벽화들은 벽면 전체에 그린 그림들이 상당수 보인다. 이런 대형 그림은 아무래도 전문가들의 그림들이다. 일반적인 아마추어들은 이렇게 높이까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남문로데오거리 벽화그림들은 일반적인 수원의 벽화골목의 그림들과는 다르죠. 이곳은 좁은 골목도 있지만 차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그림들은 어울리지 않아요. 그래서 그림들이 상당히 대형그림들이 많아요. 로데오거리 벽화그림들은 벽면에만 그린 것이 아니고 건물의 외곽 펜스에 그린 그림들도 있죠

 

로데오거리에서 영업을 하는 로데오 상인회 점주 한 사람은 로데오거리 벽화는 영업을 하기 위한 벽화들이 있기 때문에 딴 곳의 그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전문성이 있는 그림들이 있고 그림을 그린 작가들 역시 화가들이 작품을 그렸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로데오거리의 벽화는 다르다는 것이다.

 

 

작업 공간 펜스에 그린 대형그림

 

남문로데오거리의 옛 활기 넘치던 때를 그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로데오거리의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기대가 상인들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로데오거리에 방치되어 있는 석산호텔의 영업중단은 거리전체를 상당히 침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석산호텔 공사장 구분 펜스에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골목벽화와는 다르다. 로데오거리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로데오거리 상인들이 침체된 거리의 분위기를 살려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벽화를 그린 작가들도 그림을 그리는 전문적인 사람들이다. 하기에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로데오거리는 상당히 밝은 기분을 갖게 만든다.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남문로데오거리의 벽화그림들. 대형 그림들이 곳곳에 그려져 그것 하나만으로도 작품이 된다. 그럼 그림들은 로데오거리를 걷는 젊은이들의 포토 존이 되기도 한다. 양 날개 사이에 두 팔을 벌리고 사진촬영을 하는 젊은이들도 이곳에서는 가끔 만날 수 있다.

 

로데오거리가 살아나려면 더 다양한 행사가 필요해요. 그림만 갖고서는 이제는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기 쉽지 않아요. 그것보다 더 눈길을 끌만한 것을 생각해 내야죠. 우리 남문로데오거리를 옛날처럼 젊은이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거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찾아내야 해요

 

남문로데오거리의 영화를 꿈꾼다

 

남문로데오거리는 많은 노력을 했다. 대형 그림도 그 노력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수 없이 많은 벽화만 갖고는 승부를 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젊은이들의 취향을 알아내야 하고 그들이 즐길만한 것을 만들어 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벽화 하나만 갖고는 승부를 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이나 관광객들에게 이미 벽화는 큰 의미가 없어요. 이제는 전국적으로 산재한 벽화를 봐도 지금까지의 콘셉트와는 달라요.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지 않거나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아요. 수원의 대표적인 벽화골목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도 알고 보면 그런 맥락이죠

 

벽화골목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이제는 벽화의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그리고 관리가 되지 않은 벽화는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딴 곳에서 이미 한 번의 재미를 본 벽화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것이다. 남문로데오거리를 걸으며 만난 대형 벽화들. 이제 젊은이들의 호감을 살만한 무엇인가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KTG ‘상상Uriv경기자원봉사자들은 수원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지저분한 골목에 그림을 그렸다. 젊은이들로 구성된 KTG ‘상상Uriv경기봉사자들은 80~120명의 많은 인원이 지역의 골목에서 작업을 한다. 그동안 팔달구 지동을 비롯해 매교동 등의 골목에도 이들이 작업한 골목그림들이 있다.

 

KTG ‘상상Uriv경기봉사자들이 그린 벽화그림은 상상을 입히다라는 주제로 골목길 개선작업을 위한 벽화를 그린다. 상상발로투어경기 120여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벽화 중에는 영신여자 중·고등학교 뒤편 골목의 벽화도 있다. 며칠을 밑그림을 준비한 후 12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참여하여 하루 만에 그렸다고 한다.

 

수원시 권선구 삼천병마로 1566번길 30(오목천동)에 소재한 영신여자고등학교(학교장 오병희)는 국가의 장래는 교육에 있다는 교육입국의 신념으로 세계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슬기로운 한국여성을 길러내는 것을 설립정신으로 삼아 197411299학급의 인가를 받아 개교했다.

 

 

영신여자고등학교 뒤편에는 학교 축대를 끼고 청구아파트로 나가는 길이 있다. 이곳 축대에 지난해 KTG ‘상상Uriv경기상상발로투어경기 대학생들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삭막하던 축대에 그린 그림은 주민들에게도 대단한 인기였다고 함께 이곳을 돌아 본 권선구 이상균 평동장이 전한다.

 

사람들이 이곳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상상발로투어경기 자원봉사자 대학생들이 와서 작업을 할 때 많은 주민들이 환영을 했어요. 지금은 겨울철이라 보기에 산뜻해 보이지가 않지만 이제 봄이 되면 주민들이 저 축대 위 텃밭에 많은 것들을 심어요. 그러면 벽화와 함께 아름답게 변화하죠

 

벽화 위 영신여자고등학교 철책 사이에는 길에 공간이 있는 자투리땅이 있다. 이곳을 이용한 지역에 거주민들이 텃밭을 일군다는 것이다. 긴 골목에 조성된 이 텃밭은 꽤 많은 사람들이 텃밭농사를 지을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작은 공간을 활용해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손길이 올해는 무엇을 이것에 심을지 기대기 된다.

 

 

축대를 변화시킨 그림들

 

지난해 지동의 가파른 계단에 그림을 그릴 때 상상발로투어경기 대학생 봉사단원 한 사람은 골목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면서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벽화를 그리러 들어가면 주민들이 상당히 반기면서 차도 끓여다주고는 해요. 저희들은 저희 나름대로 무엇을 그릴 까 고민도 하고 그 벽에 맞는 그림을 그리죠. 상상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영신여자고등학교 뒷골목의 이 축대가 있는 곳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만일 이곳에 그림을 그려지지 않았다면 삭막한 축대 그대로 일 테고 그런 축대를 바라보고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도 마음이 삭막했을 것이다. 그런 축대에 그림을 그려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면서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대학생들이 와서 이 축대에 그림을 그릴 때 주민들이 반겼죠. 삭막하던 골목이 그림으로 인해 변했으니까요. 벽화 하나가 주민들의 삶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고 생각해요. 그림 축대 위 텃밭에 농작물을 심으면 그림과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내는데 봄에 텃밭을 가꿀 때 다시 한 번 나와보세요

 

이상균 평동장은 길지 않은 거리지만 벽화가 그려지고 난 뒤 주민들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벽화골목을 돌다보면 많은 골목의 주민들이 벽화작업을 할 때 함께 동참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벽화작업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신여자고등학교 뒷골목의 축대 벽화도 그래서 주민들에게 환영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벽화를 좋아하는 것은 삭막하던 골목이 벽화로 인해 아름답게 변화하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의 마음 때문이다. 자신들과 관계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상상발로투어경기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수원의 곳곳이 젊은이들의 마음으로 변화가 되고 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축대에 그려진 각종 그림을 돌아보다.

 

상상을 입히다라는 주제로 그려낸 축대에 그려진 그림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한 글림들이다. 각종 동물들의 얼굴도 그려져 있는가 하면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다 12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단 하루 만에 그렸다고 하는 이 오목천동 영신여자고등학교 뒤편 길 축대의 벽화그림은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한다.

 

벽화란 보는 이들이 즐거워야죠. 우리나라 벽화골목들을 돌아보면 때로는 예술작품을 늘어놓은 듯한 곳들도 많이 보여요. 요즈음에는 벽화골목에 많은 작품들을 치장하는 곳도 있고 더구나 벽화가 있는 골목마다 사람들이 쉴만한 공간이나 먹거리 등을 판매하는 곳, 심지어는 게스트하우스까지 마련한 곳이 있어 벽화골목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편하게 관람하고 쉴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잖아요

 

벽화 길에서 만난 한 시민은 요즈음 벽화골목은 이제는 너무 많은 곳들이 벽화골목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함이 없으면 관람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렇게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없는 벽화 길이라도 주민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영신여자고등학교의 축대 그림골목은 그런 점에서는 주민편의를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다.

 

길고 똑바른 축대에 그려진 그림들은 그저 바라보기에 편한 그림들이다. 일부러 멋을 내려고도 하지 않았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것도 어니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지나면서 인사라도 하고 갈만한 그림들이다. 커다란 낙지가 한 마리 긴 다리를 펴고 사람들에게 악수라도 하자고 할 듯한 것들도 있는가하면 장난스럽게 얼굴을 아래로 내리트린 유인원도 보인다.

 

KTG ‘상상Uriv경기상상발로투어경기 자원봉사자 120명의 대학생들이 그려냈다는 오목천동 영신여자고등학교 뒤편 길 담장 축대에 그려진 그림들. 지난해 학생들임 몰려와 그리고 갔다는 이 길은 특별하게 마을을 소문낼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반기고 있는 그림이고 축대 위 텃밭과 어우러지는 벽화골목이다. 올 여름 텃밭의 작물이 자라났을 때 다시 이곳을 찾아보아야겠다.

 

충남 예산 수덕사 앞에 소재한 수덕여관은 정월 나혜석 선생이 말년에 스님이 되고 싶어 수덕사를 찾아갔다가 그곳 수덕여관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곳입니다. 수덕여관은 원래 수덕사 비구니 스님들의 숙소였다고 하는데, 나중에 이응로 화백께서 편히 쉴 곳을 찾다가 그곳을 매입해 수덕여관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산41에 소재한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인 이응로선생사적지’. 이 집은 한 때 여관으로 사용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수덕여관은 동양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드높인 화가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수덕여관은 이응로 화백이 1944년 구입하여 한국전쟁 때 피난처로도 사용하였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으로 옮긴 곳이다. 또한 이응로 화백이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고택이다.

 

 

이응로 화백과 정월 나혜석

 

이응로 화백은 1923년 당시 경성부에서 유명한 서예가이자 서화가였던, 김규진의 문하생이 되어 서예, 사군자, 묵화 등을 배웠다. 이듬해인 1924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 묵죽(墨竹)’을 출품하여 입선하였으며,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1938년 제17회 선전에서는 이왕직상을 수상하였고, 1946년 단구미술원을 조직하여 일본 잔재의 청산과 민족적인 한국화를 주창하기도 했다.

 

이 수덕여관은 수원출신인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나혜석이 수덕사에서 3년간 머물렀다고 하지만, 수덕사 경내가 아닌 이 수덕여관에서 묵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 수덕여관이야말로 우리 미술사에 남녀 거장이 묵었던 곳으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곳이다

 

정월 나혜석, 우리는 그녀를 흔히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여인이라고 표현한다. 나혜석의 생전 당시 그 어느 누구도 나혜석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혜석은 여류화가요, 시인이다. 또한 여성의 권리신장을 주창한 신여성이기도 하다. 나혜석은 1896428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19481210일 당시 나이 52세로 세상을 떠난 나혜석을 기리는 골목축제가 팔달구 행궁동에서 그녀의 태어난 날인 428일과 29일 열린다. 지난 해 행궁동에 소재한 전통찻집 다전에서는 행궁동 주동장을 비롯해 행궁동 주민 30여명과 행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나혜석 생가터 골목전이 열었다.

 

여성의 선구자라고 하는 정월 나혜석. 나혜석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혜석은 이 시대에 올바른 평가를 받지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혜석의 출생 122년을 맞이하여 나혜석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독립운동을 한 나혜석을 기리는 작업 이어가야

 

우리 조선여자를 위하여 일심전력하는 나혜석 여사는 금번 당지 팔번통 태성의원 내에 여자 야학을 설립하고 매주 3일간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열성으로 지도하여 입학지원자가 날로 많다더라’ 19223월경 신문에 난 기사의 일부이다.

 

1922년 남편 김우영이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전보되자 나혜석은 그를 따라갔다. 안동현으로 남편 김우영을 따라간 나혜석은 19223월부터 안동현 태성의원(泰誠醫院) 내에 안동현 여자야학을 설립해 교육사업에 나서는 한편, 부영사 부인의 직위를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또한 의열단의 김원봉 등에게 거사 자금을 비밀리에 송금하기도 했다.

 

나혜석은 약 6년간 안동에 정착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한인사회를 보듬으면서 화가로서의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나혜석은 안동의 생활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사회상으로 사업을 해본데도 여기요. 개인적으로 남을 도와본대도 여기요. 인심에 대한 짠맛 단맛을 본대도 여기요.”라고. 나혜석은 6년여 동안 안동에 거주하면서 여성의 몸으로 신교육사업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일을 감당했다.

 

사람들은 나혜석을 불륜녀, 혹은 이혼녀등으로 치부한다. 나혜석이 한 말 중 "정조는 취미다""자식은 악마다." 혹은 "결혼은 지옥이다" 라는 등의 발언은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다. 그러한 사회적 금기를 깨는 말로 인해 나혜석은 사회로 부터 완전히 소외된다. 그렇게 신여성으로 살아가던 나혜석은 말년에 들어 인간들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골목을 누비며 나혜석을 찾아보다

 

어린 시절 나혜석은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을 바라보며 꿈을 키운 것은 아니었을까?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날이지만 행궁동 나혜석의 생가지를 찾아나섰다. 행궁동은 20139월 한 달 동안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할 당시 골목마다 벽화를 조성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행궁동 벽화골목으로 기억하고 있다.

 

행궁동주민센터 앞으로는 이 마을이 니혜석이 출생한 곳을 알리고 있고 주민센터 옆으로 난 골목입구에는 나혜석 그림골목이라는 푯말이 걸려있다. 딴 곳처럼 전형적인 그림골목이기보다는 곳곳에 나혜석을 기리기 위한 그림들을 그려놓았다. 하지만 그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나혜석과 관련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벽에는 곳곳에 나혜석이 생전에 그린 작품들을 모사해 놓은 그림벽이 보인다. 그렇게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그림골목이 남다르다.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독립운동가로 화가로,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로 살다간 정월 나혜석. 이 행궁동 일대는 온통 나혜석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나혜석 거리 이 곳으로 정해야

 

골목을 돌아보면서 만나는 나혜석이 색다르다. 한 여름 이곳에서 축제가 벌어질 때 만났던 나혜석이었지만 날씨가 쓸쓸해서인가? 아니면 골목에 부는 찬바람 때문인가? 나혜석의 표정도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그래도 이곳의 그림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나혜석의 모습이 있어 조금은 쓸쓸함을 가셔준다.

 

정월 나혜석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을 텐데 왜 나혜석 거리는 엉뚱한 곳에 가서 있는 것일까? 그것도 술집이 즐비한 곳에 나혜석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일까? 아마 나혜석이 그 거리를 보고 있었다면 과연 즐거워는 했을 것인가? 그 거리로 인해 정월 나혜석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저해를 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혜석이 태어난 행궁동 나혜석 그림골목. 1월의 뿌연 저녁에 찾아간 그 거리에서 나혜석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길 하고 있을까? 아마다 자신이 태어난 이곳이 온통 꽃으로 아름답게 그런 아름다운 거리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나혜석 그림골목으로 걸으며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운다.

수원복지신문 특별취재팀

 

은행나무길 노란단풍 낙엽으로 일품

 

어린이들이 은행나무 잎을 한가득 들고 공중에 뿌린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며 날리는 은행잎이 아름답다. 붉은 단풍나무 길을 걸으며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짓는 연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서호 주변을 걷는 모습 또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9일 오후, 서호 주변에 소재한 웨딩팰리스에 일을 보러갔다가 들린 서호. 조금은 이르게 찾아온 철새들이 까맣게 호수위에 내리 앉았다. 그 중 몇 마리는 물장구를 치며 비상을 한다. 한 옆 어도에도 새끼철새들이 한가롭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어도 앞에는 철새를 만지거나 가까이 가지말라AI방역 주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서호는 낙조가 유명하다. 하지만 한 낮에 만나는 서호 역시 또 다른 멋이 있는 풍광을 만들어 낸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즈음 서호 주변 산책로에는 한 낮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걷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기 위함인가보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 바로 서호가 아니던가?

 

 

다양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서호

 

가을은 사람들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든다. 가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매년 여행을 하면서 보아오던 나로서는 가을만 되면 역마살이 도지는 듯하다. 그런 여행을 떠나지 못해도 참을 수 있는 것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수원엔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가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호공원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가을을 즐기고 있다. 서호 주변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걸어본다. 서호 주변으로 붉은 단풍과 건너편에 꽃을 피우고 있는 붉은 장미가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한 낮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조금 빨리 걸으면 이마에 땀이 맺히기 때문이다.

 

단풍이 물든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 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를 들고 계시는 것을 보니 작가신가 보내요?” 곁을 걷던 한 사람이 말을 건넨다. “작가는요. 그냥 가을이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으려고요물음에 대답을 하면서도 어딜가나 카메라로 인해 받는 질문이라 늘 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 내가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차를 타도 같은 질문을 늘 받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내가 기사를 쓰는 기자이기보다는 사진을 찍는 작가로 보였는가 보다.

 

 

서호에 얽힌 옛 이야기 발가벗고 삼십리

 

서호를 한 바퀴 돌아볼까 하다가 멀리서 건너편 아파트 방향의 단풍을 담아내고 발길을 돌렸다. 이왕 이곳을 온 김에 몇 번이고 찾아갔어도 가을 경치를 보지 못한 여기산선사유적지를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산선사유적지를 보기 위해 길을 되돌아 나오다가 보니 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발가벗고 삼십리라는 이곳 서호에 얽힌 전설이 적힌 안내판이다.

 

수원사람 발가벗고 삼십리 뛴다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 바로 서호공원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수원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이 이야기는 한 효자가 떡전거리라고 하는 병점에 살았는데 조상의 묘 관리도 잘하고 부모님께도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의 권유로 기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원부중 축만제가의 행화촌(=술집)에서 기생과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는데 그날이 선친의 제삿날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서호에서 병점까지 뛰어 겨우 부친의 제사를 모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호에서 병점까지의 거리가 삼십리이기 때문에 선비가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뛴 이 효자를 보고 후일 수원사람 벌거벗고 삼십리 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술을 마신 후 조금 깨어났다고 해서 삼십리를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효의 도시 수원에 사는 사람이기에 가능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라새삼 효를 다하지 못하고 산 스스로가 부끄럽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서호주변을 걷다보니 이런 이야기 한 자락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 가을 날 깊은 단풍을 만나러 서호로 간다.

 

1. 神勒暮鍾 (신륵모종) 신륵사에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

2. 馬巖漁燈 (마암어등) 마암앞 강가에 고기잡이배의 등불 밝히는 풍경

3. 鶴洞暮煙 (학동모연) 강건너 학동에 저녁밥 짓는 연기

4. 燕灘歸帆 (연탄귀범) 강 여울에 돛단배 귀가하는 모습

5. 洋島落雁 (양도낙안) 양섬에 기러기떼 내리는 모습

6. 八藪長林 (팔수장림) 오학리 강변의 무성한 숲이 강에 비치는 전경

7. 二陵杜鵑 (이릉두견) 영릉과 녕릉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

8. 婆娑過雨 (파사과우) 파사성에 여름철 소나기 스치는 광경

여주 팔경이다. 여주시는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의 쌀농사가 시작된 곳이며 세종대왕과 북벌의 웅지를 품으셨던 효종대왕, 조선조 학자 목은 이색, 우암 송시열,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의 얼이 깃든 곳이다.

 

또한 500년 조선왕조의 국모 여덟명을 배출한 곳이며 의병항쟁시 가장 치열하게 대일 항쟁을 벌여 큰 공적을 세웠던 격전지로서 외세배척의 중추적인 역할을 선도한 곳이기도 하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는 8도의병장 이인영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여주에는 선사시대 유물은 물론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국보 및 천연기념물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지역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 남한강으로 인하여 많은 구릉지와 하천부지가 형성됨으로써 농업이 발달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품종인 자채미인 여주쌀 생산지이기도 하다.

 

 

단풍이 아름다운 황학산 수목원

 

수원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여주시는 볼 것이 많은 고장이다. 이번 주 장애가족 추천여행지는 여주시 황학산수목원길 73에 소재함 수목원을 찾아갔다. 가을 단풍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황학산수목원은 수목원 전체를 휠체어를 타고 돌아볼 수 있으며 수목원 경내에 소재한 여주 산림박물관은 산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영상과 학습자료를 이용하여 설명하고 다양한 산림문화작품을 전시한 체험관으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이 가능하다.

 

황학산 수목원 입구에는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안내소에서 휠체어를 빌려타고 수목원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수목원은 여러 가지의 테마공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가는 곳마다 붉게 물든 단풍이 일품이다. 그저 편안하게 가족들과 함꼐 돌아보기 좋은 곳을 찾는다면 거리상으로도 멀지 않은 황학산수목원을 추천하고 싶다.

 

 

수목원을 이곳저곳 돌아보아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고 하면 전망대에 올라 밑으로 펼쳐진 수목원을 내려다보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전망대는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오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곳 전망대를 오를 수 있도록 휠체어 리프트 한 대만 설치가 되어있다면 가장 경치가 좋은 수목원을 돌아볼 수 있을 텐데 그 점이 못내 아쉽다.

 

황학산수목원은 무료입장이다. 수목원 입구에는 버스 등 대형 8대 소형 승용차 증 127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평일에 찾아갔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황학산수목원을 찾아와 가을을 즐기고 있다. 넓은 공지에서는 인근에서 찾아온 어린이들인 듯 꼬마아이들이 놀고 있다가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은 곳

 

물 맑고 산이 좋은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다. 처음 만난 어른인데도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답례를 한 후 전망대 오르는 길로 접어들었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테마정원이 아름답다. 그저 어느 길을 택해서 걸음을 옮기던지 수목원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경치를 자랑한다.

 

황학산수목원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과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황학산수목원은 습지원, 석정원, 산열매원, 미니가든, 항아리정원 등 식물의 생태와 기능에 따라 특색화한 14개의 테마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멸종위기에 처한 단양쑥부쟁이, 층층둥굴레 군락복원 등 식물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황학산수목원에는 유아숲체험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수목원을 방문 했을 때도 많은 아이들과 휠체어를 타고 수목원을 돌아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났다. 그저 편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이곳을 들린다면 제대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수원복지신문 한 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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