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강길 가운데서도 남한강의 주변 강 길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하기에 가장 마음이 아픈 곳 역시 남한강의 주변 길이다. 2010년 3월 28일(일), 민족미술인협회 서울, 경기, 여주의 회원들이 수경스님이 계신 여주 남한강가 여강선원을 찾았다. 매주 토요일 스님이 강을 보존하기 위하여 열고 계시는 수륙제에 함께 동참을 하기 위해서다.

 

수경스님과 1시간여를 간담을 한 민미협 회원들은,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의 안내로, 멸종위기 2급보호식물인 단양쑥부쟁이 집단서식지가 있는 강천마을회관서부터 닷둔리까지 강길을 걸었다. 이른 봄에 걷는 남한강 길. 그 중에서도 닷둔리까지 걷는 '해돋이 산길'은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한 곳이다.    

 

아름다운 해돋이 산길

 

  
▲ 봄꽃 강 길 주변에는 벌써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있다. 며칠 전에도 눈이 내렸는데...
ⓒ 하주성
강 길

 

해돋이 산길은 강천리부터 닷둔리까지다. 닷둔리는 교동에서 풀무골로 넘어오는 고개를 말한다. '둔(屯)'이란 평평한 산기슭을 이르는 말이다. 해돋이 산길은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남향으로 남한강의 흐름과 햇빛을 볼 수 있는 아늑한 길이다. 하기에 이 길은 아직도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항진 위원장이 설명하는 단양쑥부쟁이 서식지 주변은, 한창 덤프트럭들이 줄을 지어 드나들고 있었다. 그나마 쑥부쟁이 서식지는 보존이 되어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곳에서 길을 걷기 시작해, 해돋이 산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논둑과 밭둑을 지나 우측에 남한강을 두고, 좁은 소로를 따라 들어가니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작은 풀들 사이에 꽃들이 피어있다.

 

생태계가 살아있는 여강 길

 

강을 우측으로 두고 걷는 해돋이 산길, 좁은 도로를 따라 가다가 보면 발밑으로 경사가 급한 곳을 만난다.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의 물이 참 '파랗다'라는 생각을 한다. 저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꽃을 보고 있다. 생강나무 꽃이다. 노란 생강나무 꽃이 길을 따라 여기저기 피어있다. 생강나무 꽃은 4월 초에 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날이 따듯해 일찍 꽃을 피운 듯하다. 마른 풀숲에는 원추리가 여기저기 싹을 드러내고 있다.

 

  
▲ 생강나무 꽃 생강나무 꽃이 강길을 걷는 길 가 여기저기 피어있다.
ⓒ 하주성
생강나무 꽃

  
▲ 원추리 원추리도 싹이 돋아 자라고 있다.
ⓒ 하주성
원추리

  
▲ 돌단풍 바위 틈에 난 돌단픙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 하주성
돌단풍

 

생강나무 꽃을 따다가 그늘에 건조를 시켜 차를 달여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한다. 생강나무 차를 몇 년째 마시는 나는, 그 향을 알기 때문에 꽃만 보아도 반갑다. 강 길을 따라 여기저기 피어있는 생강나무 꽃들. 그리고 절벽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돌단풍도 보인다. 며칠 전만해도 여주에는 눈이 쏟아졌는데, 그 눈속에서도 이미 꽃을 피울 준비를 했는가 보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자연의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그 자연을 마음대로 파헤치고 있는 인간들의 오만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앞서가던 일행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 서서 위를 보고 무엇인가를 불러댄다. 쫓아 가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벼랑 중간에 매달려 있다. 이놈,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이 두려운 것인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죽은 듯 매달려 있다. 근처에 파인 돌 틈에 어린 새끼라도 있는 것일까?

 

  
▲ 청설모 벼랑에 매달린 청설모
ⓒ 하주성
청설모

  
▲ 청설모 움직이지 않고 벼랑에 매달려있는 청설모
ⓒ 하주성
청설모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몇 번인가 길을 오르내리면서 걷기를 40여 분. 해돋이 산길이 끝날 무렵 동행을 한 환경연합 회원들이 놀랍다는 듯 쫓아온다.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가창오리를 보았다는 것이다. 아마 건너편 물가에 가득 앉아있던 많은 철새 떼 틈바구니에 있었나 보다. 바람에 뽑힌 것인지, 쓰러진 나무가 옆에 선 나무에 기대면서 아취를 만들고 있다. 그 밑으로 지나가면서 즐거운 것도 자연 스스로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살아있는 생태계. 이런 곳을 마구 파헤치고 있는 사람들. 과연 이 다음에 우리 후손들은 우리들을 얼마나 못난 조상이라고 비웃을 것인가?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빌려온 것이라'고 말로는 그럴 듯하게 떠들고 있는 인간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지 못한 우리들도, 결국엔 똑같은 취급을 받을 것은 자명한 일. 이 아름다운 강 길에서, 헤집어진 강바닥과 같이 마음도 갈래갈래 찢어지고 있다.

 

  
▲ 남한강 해돋이 산길을 걷다가 내려다 본 남한강.
ⓒ 하주성
남한강

  
▲ 나무 아취 자연이 만든 나무 아취. 해돋이 산길은 아름다운 강길이었다
ⓒ 하주성
아취

  
▲ 강길을 걷는 <그림책 화가들> 어린이들의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일행이 여강 길 탐사에 나섰다.
ⓒ 하주성
화가

 

12월 14일, 반가운 손님들이 여주로 모여들었다. 어린이들의 책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모임인 '그림책 화가들' 13명이 여강(여주를 흐르는 남한강) 길을 걸어보기 위해 찾아 온 것이다. 일행은 제일 먼저 강천보 현장을 찾았다. 수도권 2500만 명의 식수원이 되는 맑은 강물 뒤로는 평풍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자리를 하고 있는데, 그 앞을 공룡과 같은 중장비들이 모래를 파서 길을 만들고 있다.

 

  
▲ 강천보 현장 중장비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여강의 바위절벽을 뒤로하고 모래를 파 올리고 있다
ⓒ 하주성
강천보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여강 길 55km, 남한강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지는 역사문화 체험길은 모두 55km에 이른다. 그 길 중 강천보 공사를 시작한 <부라우나루터>부터 시작한 체험길. 모두 60리를 걸으며 남한강을 아름다운 모습을 스케치를 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각자 스케치북과 카메라를 들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우만리'였다. 이곳에서 시작해 중부고속도로인 길이 540m의 남한강교를 건넌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남한강. 남한에서는 가장 큰 강인 한강의 본류이다.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에서 발원해 강원도와 충청도를 지나, 여주 삼합리에서 섬강과 청미천이 합류한다. 삼합리는 경기, 충청, 강원도가 만나는 곳이다.

 

  
▲ 여강길 안내판 남한강을 따라가는 역사문화 체험길을 알리는 안내판
ⓒ 하주성
남한강

  
▲ 시멘트 기둥 남한강교의 교각.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는 기술로 축조된 교각. 모래채취로 인해 밑이 다 들어나 있다
ⓒ 하주성
남한강교

 

한 때는 이포나루와 조포나루를 비롯해 총 17개의 나루가 있었던 여주. 그만큼 활달한 뱃길을 이용한 운송수단의 요지이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 강가로 내려간다. 본격적인 여강 강 길을 걷기 위해서다. 12월의 찬바람이 불어 갈대와 억새들이 춤을 춘다.

 

그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는 곳에, 괴물 같은 콘크리트 기둥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세계최고의 건설기술을 자랑한다는 한국. 가장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원통형 구조물의 밑동이 드러나 있다. 70~80년대 골재채취로 인해, 바닥이 허공에 뜬 상태라고 한다. 위험해진 다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남한강을 병들게 한다.

 

생명이 있는 자갈길, 모래밭 길을 걸어

 

남한강은 생명이 살아있는 강이다. 장마로 인해 수없이 많은 쓰레기들이 상류에서 떠내려 와도, 비가 그치면 빠르게 빠져나간다. 여울이 많고 유속이 빨라, 그만큼 수질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강길 안내를 한 김용희(여주 환경연합)의 안내를 받으며,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면서 역사 길을 따라간다.

 

자갈길로 이어지는 강길. 이렇게 자갈길이 생긴 것도 무작정 파간 모래채취 때문이란다. 그 모래 길가에 작은 꽃이 피어있다. 멸종위기 2급식물인 단양쑥부쟁이가 철 늦은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런 자연의 길을 걸어가는 일행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다. 이런 아름다운 강 길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갈갈이 끝나는 곳에서 이어지는 모래밭길. 지금까지 걷던 딱딱함에서 벗어나 발을 간질이는 모래 길의 느낌이 새롭다. 한참이나 걷던 일행 중에 누군가 소리친다. 무슨 일인가 해서 쫒아갔더니 동물의 발자국이 모래밭에 선명하게 찍혀있다.

 

고라니의 발자국이다. 모래길을 따라 가다가 숲으로 들어갔다. 이래서 여강길은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가 보다. 자갈길과 모래길, 그리고 흙길이 이어지는 여강길. 주변의 절벽들이 아름답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여강길은, 그저 걷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 자갈길 억새와 갈대가 날리는 사이로 난 자갈길
ⓒ 하주성
여강 길

  
▲ 철새 한 무리의 철새가 날아온다. 저마다 스케치를 하느라 바쁘다
ⓒ 하주성
스케치

물수제비도 떠보고

 

어릴 적 강이나 넓은 개천에 나가 둥그런 돌을 찾아 수면 위로 던지는 놀이를 했다. '물수제비 뜨기'라고 하는 이 놀이는 수면을 치며 날아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팔이 뻐근하도록 즐겼던 놀이다. 넓은 자갈밭이 나타나자 너, 나할 것 없이 돌을 하나씩 주워 물을 향해 던지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소리 내어 웃는 웃음소리가, 여강의 아름다운 바위에 부딪쳐 되돌아온다. 걷기 시작한 지 3시간, 아름다운 여강의 여울에 오후의 햇살이 비친다. 저만치 모여 있는 오리떼들이 시끄럽다. 아마 물고기라도 한 마리 잡은 것인지.

 

  
▲ 물수제비 뜨기 너 나 할 것없이 강가로 달려가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 하주성
강가

 

우리나라는 동해가 높고 서해가 낮아 물의 유속이 빠르다. 그래서 여울이 많고 그만큼 소가 발달되어 있다. 이런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이기에 오염이 되지 않았다. 평평한 곳을 흐르는 독일의 강들이 상대적으로 오염이 심한 것은, 유속이 느리고 여울과 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여울과 소가 충분한 산소공급을 하게 되고, 많은 생물이 살 수 있게 만든다. 이런 강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보를 막는다는 이야기에는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 아름다운 여강 길 갈대들이 바람에 날린다. 햇빛에 비친 갈대가 한 폭의 그림만 같다
ⓒ 하주성
갈대

  
▲ 고라니 발자국 모래밭에 선명하게 찍힌 고라니의 발자국
ⓒ 하주성
생명

 

아름다운 습지 <바위늪구비>에서 눈물을 흘리다

 

아름다운 습지 '바위늪구비'. 강원도를 흐르는 섬강과 안성에서 시작해 흘러 온 청미천, 그리고 충주에서 흘러 온 남한강이 합수되는 곳에 바위늪구비 습지가 있다. 바위늪구비는 남한강의 중하류지역으로 본류와 주변의 지류를 따라 공급된 토사들이 퇴적된 곳이다.

 

바위늪구비 습지는 하도내습지, 범람형배후습지, 하중도습지, 합류형습지, 사력퇴초본형습지, 사락퇴차단형습지의 여러 형태의 습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생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수많은 조류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3시간을 걸어 도착한 바위늪구비 모래밭에 물 수위를 나타내는 표시가 서 있다. 밑에는 <관리수위>라는 표지판이, 위에는 <계획홍수위>라는 글씨가 쓰인 표시판이 부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저 관리수위는 보를 막고 난 후 늘 저만큼의 물이 차 있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저 위에 계획홍수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저것이 혹 보의 높이는 아닐까?

 

올 여름 갑자기 세워졌다는 이 표시가 두려워지는 것도, 저것이 혹 이 아름다운 여강의 물 높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만일 저 높이라면 이 아름다운 강주변의 바위들도, 그리고 이런 중요한 생태계가 살아있는 바위늪구비도, 모두 물에 잠기게 된다. 순간 눈물이 흐른다.

 

  
▲ 수위 표시 수위를 나타내는 표지판. 이 곳을 보는 순간 눈물이 흐른다. 저 높이로 강물이 차오르면 이길은 어찌 되려는지.
ⓒ 하주성
여강

아름다운 여강 길 60리. 역사와 자연이 살아있는 이 길을, 우리 아이들은 시멘트로 발라진 길을 걷게 되지는 않을까? 바위늪구비 한편에 자라고 있는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소리칠 줄 모르는 아름다운 저 많은 생명들이 이제 닥칠 엄청난 변화를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

 

"여강은 많은 나루와 팔대장림 등 아름다운 경치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오늘 세 시간동안 걸어 본 여강은 생태계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단양쑥부쟁이와 고라니 등의 흔적도 보았고, 아름다운 철새들의 비상도 보았습니다. 이제 보의 설치로 인해 이 모든 것이 물에 잠기게 된다고 행각하니, 가슴이 아프네요. 제발 무분별한 삽질은 그만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강 길을 걸어 온 김병하(41, 남)의 말이다. 바위늪구비를 지나 마을로 올라선 일행은 차를 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저녁노을이 물드는 여강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여강 길 60리를 걸어 온 화가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