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힐링 방법은 산행입니다
사람마다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면 힐링을 한다고 한다. 힐링(Healing)이란 ‘몸과 마음을 치유하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살면서 이런저런 일로 많은 상처를 받게 되거나, 아니면 편히 쉬지 못하고 많은 일을 하다가 보면 몸이 피곤하게 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스로 치유하는 힐링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마다 힐링을 하는 방법은 다르다. 누구는 공기 좋고 물 맑고 산세가 좋은 곳을 찾아가, 편안하게 하루를 쉰다고 한다. 또 누구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고도 한다. 힐링의 방법은 누구나 자신이 좋은 데로 하는 것이다. 하기에 힐링 뮤직, 혹은 힐링 댄스 같은 것도 생겨났는가 보다.
나의 힐링은 산행과 답사
개인적으로 나의 힐링 방법은 문화재답사와 산행이다. 봄서부터 가을까지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주말에 산행을 한다. 남들처럼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산행을 하면서 더덕이나 버섯, 산삼 이런 것들을 채취한다. 그렇게 채취한 것을 남들과 나누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주로 문화재 답사를 다닌다.
산은 늘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준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인간에게는 최고의 것이란 생각이다. 언제, 어느 계절에 산행을 해도 빈손으로는 내려오지 않는다. 다만 하나라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서부터 가을까지는 여주에 있는 아우네 집으로 찾아간다. 거기서 좋은 사람들과 술도 한 잔 나누면서 산행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힐링이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산에 올라 땀을 흘리는 것이 무슨 힐링이 되는냐고 한다. 하지만 힐링이란 내 몸과 마음의 치유라면 한다면, 산을 타면서 많은 땀을 흘려 몸 안에 독소를 내보내고, 거기다가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평안까지 얻는다고 하면, 그보다 좋은 힐링이 어디 있겠는가?
즐기면서 휴일에 오른 산행
3일은 개천절이라 휴일이다. 생태교통이 끝나고 나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차에, 산을 가자고 누군가 이야기를 한다. 3일 아침 수원시청에서 지인 3명과 함께 여주로 행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 차가 밀리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으러 가는 길이니 조급할 것이 없다. 한 시간 반이 걸려 여주에 도착을 했다.
도착을 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내를 건너 오른 산. 그 산길에 산밤이 떨어져 지천에 깔려있다. 그것을 줍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한 것이다. 네 사람이 여기저기 떨어진 밤을 주워 비닐봉지에 담은 것만도, 족히 몇 되는 되어 보인다. 그리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차 한 잔
사실은 이맘때쯤 나온다는 송이버섯을 채취하러 갔지만, 저마다 송이버섯은 구경도 못하고 영지버섯을 몇 개씩 채취했다. 그것도 얼마나 즐거움인가?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산을 타면서 흘리는 땀과 좋은 공기, 그리고 숲에서 받을 수 있는 기운. 이런 것들을 함께 다 얻어올 수 있으니,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듯하다.
오전 산행을 마치고 아우가 끓여준 라면을 한 그릇씩 먹은 후,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올 여름 내린 비로 인해 길도 사라지고 온 산이 엉망이 되었다. 그런 곳을 다니다가 보면 힘이 두 배로 든다. 그래도 산이 좋아 올라왔으니 두 시간 이상을 돌아다녔나 보다. 딴 때 비해 소득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산이 주는 좋은 것을 들고 왔으니 이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으랴.
나만의 힐링 방법인 산행. 그곳에서 얻어진 것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 그런 것들이 있어 세상살이가 즐겁다. 산행을 마치고 산수유가 빨갛게 익어가는 나무 밑에 앉아 마시는 따듯한 차 한 잔. 그 안에 좋은 사람들의 마음이 있어 더 즐겁다.
한가위에 이런 놀이가 있었지.
“뚫어라 뚫어라 물구멍을 뚫어라. 물줍쇼 물줍쇼 사해용왕 물줍쇼”
거북이를 몰고 나온 질라래비가 우물 앞에서 하는 덕담이다. 놀이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따라한다. “물주쇼 물주쇼, 사해용왕 물주쇼” 거북놀이는 우리나라 한수 이남의 놀이로, 추석에 연희되던 놀이이다. 수수잎과 짚 등을 이용해 만든 거북놀이의 거북이는 두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연희를 한다.
거북놀이는 거북이를 몰고 다니는 질라래비가 거북을 몰고 다니면서 간절하게 기원을 한다. 한가위에 이집저집을 돌아다니면서 축원을 해주는 것이다. 거북놀이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인 ‘이천 거북놀이’로 지정이 되어있다.
정월 대보름과 추속에 즐기던 놀이
본인이 이천 거북놀이를 직접 이천시(당시 이천군) 전역과 근동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발굴을 해, ‘이천의 민속 거북놀이’라는 책을 펴낸 지가 벌써 30년이 지났다. 아마 이 조사보고서 형식으로 꾸며진 소책자가, 그동안 써온 20여권의 책을 엮게 된 기폭제가 되었는가 보다. 그러한 거북놀이를 이천이 아닌 수원시 영통구에서 만났으니 참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거북놀이는 기원성민속이다. 가내의 안과태평과 풍농 등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거북놀이는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날에, 마을의 청소년들이 짚과 수수깡으로 거북이 모양을 만들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즐기던 놀이이다. 이천지방에서는 대월면에서 이 놀이가 전승이 되어왔다. 거북이는 장수동물이요 부귀를 상징하기 때문에, 놀이의 주체가 되었을 것이다.
거북놀이는 대개 정월 대보름 밤이나 추석날 밤에 하는 놀이로, 수숫대와 짚 등을 이용해 거북이 모양을 만든다. 거북이의 앞에는 2~4명 정도가 안에 `들어가는데, 앞 사람이 주기능자가 된다. 거북이를 몰고 다니는 질라래비도 옥수수 잎과 짚 등으로 머리에 쓰는 모자와 허리에 두르는 치마를 만든다.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놀이
거북놀이는 마을의 집집마다 다니면서 연희를 하는데, 집 대문 앞에서는 문굿을 먼저 치고, 마당에 들어서면 우물굿(용왕굿)과 마당굿을 한다. 마당에서 굿을 하는 도중 거북이가 쓰러지면 사람들은 거북이 곁으로 몰려들게 된다. 이때 질라래비는 ‘이 거북이가 동해를 건너(지역에 따라서는 서해를 건넌다고도 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배가고파 쓸어졌으니, 먹을 것을 좀 주십쇼’ 하고 소리를 치면 주인이 먹을 것을 내준다.
그렇게 밤새도록 집집마다 다니면서 축원을 해준다. 대개 정월에 하는 거북놀이가 갖고 있는 내적사고가 풍농과 가내의 안과태평을 기원한다고 하면, 추석에 하는 거북놀이는 풍농에 대한 감사로 행해진다.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초지리에서 전승이 되는 거북놀이는 한 때 중단이 되었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재현을 하여 전승이 되고 있다.
이천거북놀이 조남걸(남, 59세)보존회장은
“우리 거북놀이는 한수 이남과 금강 이북의 마을에서 주로 연희가 되어왔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거북놀이는 풍농과 안과태평을 위한 놀이였지만, 결국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대동의 놀이였습니다. 거북이를 놀이의 주체로 삼은 것도 알고 보면, 농사에 가장 필요한 물 때문은 아닌가 생각이듭니다. 거북이는 용왕의 심부름꾼으로 늘 등장을 하기 때문이죠. 오늘 이 거북놀이가 연희가 된 다음 비라도 뿌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농촌이 다 망가질 것 같습니다” 라며 간절한 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연희를 한다고 한다.
풍농과 가내의 안과태평을 위해 축원을 하는 기원성민속인 ‘거북놀이’. 오늘 한가위를 맞이하여 우리의 전통놀이인 거북놀이를 소개하는 것도,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만 가고 있는데 이렇게 마음이 풍요로운 거북놀이 하나가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마음에 새를 담아 날려 보내고 싶다.
집안에 늘 혼자 있는 것이 무료하다고 하였더니, 누군가 새를 키우면 정서에도 좋고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고 하면서 새집을 하나 선물한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새집을 받고나니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디. 그냥 새집이 아니고 작품으로 만든 새집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새집 이름이 ‘자경당의 새소리’ 라고 한다.
혜경궁은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말한다. 젊은 나이에 비명에 횡사한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들인 이산을 보면서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아마 정조대왕이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곳 화성 행궁에서 베푼 것도, 어찌 보면 한양 성 내에 있는 궁궐에서 한다는 것이 부친으로 인한 아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혜경궁홍씨를 기리는 자경당의 새소리
‘자경당’이란 이름은 정조대왕이 즉위하면서 그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커다랗게 집을 짓고 ‘자경당’이라 이름을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 자경이란 자친, 곧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웃어른이 되는 여성에게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종 4년에 자경전이란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비로소 경복궁에 자경전이 자리를 잡았다. 고종 때 자경전이 완공될 무렵에는, 이곳에서 고종이 정무를 보는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고종 10년 12월에 큰 불이 나서, 그 일대 건물들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화재 직후 곧 다시 지었으나, 1년 반쯤 뒤인 고종 13년 11월에 또 불이 나서 타버렸다. 이렇게 자경전이 잦은 화재로 소실이 되자, 고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간 뒤에 자경전을 다시 지었다.
자경전은 44칸 규모로 서북쪽에는 필요할 때만 불을 때서 난방을 할 수 있는 침방인 복안당이 있다. 그리고 낮 시간에 거처하는 중앙의 자경전과,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동남쪽의 다락집인 청연루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에는 행각 수십 칸과 일각문들이 있다. 자경전 후원에는 십장생 무늬를 새긴 굴뚝이 있는 담과, 서쪽의 꽃담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담이다.
보물 제810호 십장생 굴뚝을 담아 내
자경전에 있는 보물 제81호인 십장생 굴뚝은 담의 한 면을 한 단 앞으로 나오게 하여 전돌로 조성하였다. 굴뚝 벽면 중앙에는 십장생 무늬를 조형전으로 만들어 배치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면을 구성했다. 무늬의 주제는 해, 산, 물,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불로초, 포도, 대나무, 국화, 새, 연꽃 등이다.
둘레에는 학, 나티 불가사리, 박쥐 당초무늬 등의 무늬를 조성하였다. 해, 바위, 거북 등 십장생은 장수, 포도는 자손의 번성, 박쥐는 부귀, 나티 불가사리 등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굴뚝 윗부분 역시 모양을 낸 벽돌로 목조 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꼭대기에는 점토를 빚어서 만든 집 모양의 장식인 연가를 10개 올려놓아 연기가 잘 빠지도록 하였다.
수를 놓아 만든 새집인 ‘자경당의 새소리’
사실 이 새집은 새를 키우도록 만든 것이 아니고,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영동시장 2층에 자리한 아트포라 입주작가인 김춘홍 작가가 직접 천에 10장생 수를 놓고, 그것을 새집에 배접을 한 후 칠을 했다. 새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화려해, 이곳에 새를 키우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런 새집을 선물로 받아놓고도 고민이다. 이 새집에 새를 사다가 키워야 하나? 무료하다고 해서 새를 키운다면 그 또한 번잡할 것만 같다. 요즈음은 혼자 조용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답사를 떠나고, 그런 것들이 더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행궁동 일대를 돌면서 땀을 흘리고, 저녁이 되면 사진정리에 기사를 쓰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그런 것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작가의 마음이 담긴 새집 ‘자경전의 새소리’. 이젠 저 아름다운 새집에다가 마음의 새를 한 마리 키워보아야겠다.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장대비 속에서 산행, 필요한 산삼 두 뿌리가.
갑자기내린 폭우로 인해 바위 등이 번들거린다. 이런날 계곡을 따라 다녀야 하는 산행은 정말 위험하다
몇 년 전인가 산사에서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주변의 복잡함이 싫어 세상을 회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산사의 생활이란 것이 우리기 흔히 생각하듯 그렇게 꿈같은 것은 아니다, 나름 규범이 있는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네 같은 천방지축은 가끔은 속이 터질 것만 같기도 하다.
그런 산사에서의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참 많은 공부를 한 것만은 사실이다. 우선은 ‘참는다.’는 것을 배웠고, 사람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갈 곳과, 가지 말 곳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덕분에 산행(등산이 아니라)을 하는 법까지 배웠으니, 산사생활이 나에게는 정말 많은 것을 가르친 것만 같다.
“산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지”
아마도 그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한 어르신을 만나지 않았다고 하면, 지금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본다. 산사의 틀에 박힌 무료한 시간을 달래느라, 산행을 하다가 만난 어르신.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신다. 봄이라 산더덕을 캐러 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얼마나 캤는지 좀 보자는 것이다.
“그만큼 캤으면 됐네. 이제 그만 내려가게”
“일행이 아직 산에 있어서요.”
“알아서들 내려오겠지. 산에 올라서는 절대 욕심을 부리면 안 되지. 딱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라니”
더 할 말이 없어, 일단 산 밑으로 내려왔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산은 사람을 실망 시키는 법이 없지. 다음부터 산에 오를 때는 미리 무엇을 얼마큼 가져 갈 것인지 생각을 하고 올라가게, 딱 그만큼은 가져 갈 수 있으니”
구실을 만들기 위한 마음이 미안해
10일(토), 일기예보에서는 중부지방에 70mm가 넘는 비가 쏟아진다고, 산이나 계곡으로 피서를 가는 사람들은 조심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산행을 하기도 작정을 했으니, 비가 많이만 오지 않는다면 강행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주변에서는 요즈음은 국지성 소나기가 많이 내리는데, 어떻게 산행을 하느냐고 만류를 한다.
아침이 되었는데 날이 잔뜩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산행을 한다고 하니, 누군가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서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다급한 사람이 부탁을 하는 것을 듣고,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안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동행을 하기로 한 아우도 한 시간만 출발 시간을 연장을 하잔다.
솔직한 심정이 이럴 때는 아우가 한없이 고맙다. 만일 출발하기 전에 비가 오면 기지 않아도 될 구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시간을 연장을 했는데도, 비가 오지 않으니 출발을 할 수 밖에. 피서객들도 인해 고속도로는 아침부터 정체라고 한다. 국도로 목적지까지 가서 산행을 시작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채취를 해
산을 오르고 있는데 멀리서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급기야는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빗방울이 후드득거리고 떨어진다. 곧 그치겠지 하면서 여기저기 찬찬히 살펴본다. 하지만 곧 그치겠지 하고 생각한 비는 점점 세차게 퍼붓는다. 이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센 빗줄기에 천둥과 벼락까지 친다.
전화벨이 울린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누구일까? 전화와 지갑 등이 비에 젖을까봐, 비닐봉지로 꽁꽁 싸매 두었는데. 큰 나무 밑으로 가서 전화를 받는다.
“형님 비가 많이 와요. 천둥도 치고 벼락도 때리고. 산에서는 큰 나무 밑은 위험하다고 하니, 작은 나무 밑으로 가서 비 좀 피하세요.”
꼭 필요한 것이 있다고 당부를 한 아우의 전화다. 막상 산으로 간 형이 쏟아지는 비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봐 전화를 한 것이다.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킨 후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저만큼 영지버섯이 보인다. 산을 올라왔으니 이것도 산에서 주는 선물이 아닐까? 잘 캐서 봉지에 집어넣는다. 이번에는 장수버섯이 나무에 가득 달렸다.
그리고 딱 필요한 산삼 두 뿌리를 캤다. 더 이상은 이 비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라는 어르신의 말씀 때문이다. 사실 그 이후로 산행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채취했지만, 아직 한 번도 나를 위해서 먹거나 사용을 한 적이 없었다. 모두를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니.
크진 않지만 필요한 산삼 두 뿌리에 영지버섯과 장수버섯. 이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그래도 이만한 수확을 했으니 얼마니 기쁜 일인가? 장수버섯과 영지버섯을 함께 동행 한 아우와 나누었다. 세상에 내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욕심을 버리면 구하는 만큼 준다는 어르신의 말씀. 하산을 하면서 아우에게 그 말을 전해준다. 아우도 욕심을 내지 말고, 산에서 채취를 한 것은 나누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수원시 ‘무장애(無障碍) 도시’에 도전한다.
교통약자들을 위한 '무장애 도시 수원 만들기'를 설명하고 있는 수원시 복지여성국 장애인복지과 오광록 과장(좌)과 이동숙 장애인시설지원팀장(우)
‘무장애 도시’. 장애인들이 생활을 하는데 있어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도록 도시의 모든 장애요인들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수원시는 올 2월 15일 장애인복지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던 팀(계)을 과로 올렸다. ‘장애인복지과’가 새로 신설이 되어 복지여성국(국장 이해왕) 아래에 장애인복지과(과장 오광록)를 두고, 그 밑에 장애인정책팀(팀장 최중열), 장애인복지팀(팀장 송영진), 장애인시설지원팀(팀장 이동숙)을 두었다.
이렇게 팀을 과로 승격시킨 것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더 좋은 행정서비스로 장애인들의 편의를 돕기 위함이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무장애 도시 수원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한다는 것. 7월 31일 시청 별관 1층에 자리한 장애인복지과를 찾아 오광록 과장과 이동숙 장애인시설팀장을 만나보았다.
현장에 나가 조사를 하고 있는 모습. 휠체어의 이동을 막는 턱과 끊어진 점자블록(아래)
교통약자들을 위한 이동편의 제공
“비장애인들은 사실 장애인들의 고충을 잘 모릅니다. 저희들도 편이시설 실태조사를 하기 전에는 그들의 불편함과, 생활 속에서 오는 고통을 잘 몰랐으니까요. 이번에 저희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장애인들과 실생활 속에서 함께 조사를 하다가 보니, 장애인이나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노약자 등 교통약자들의 불편이 생각보다 심각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오광록 장애인복지과장은 직접 체험을 해보고 나서, 그들 교통약자들의 불편함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시정 방침에 따라 ‘무장애 도시 수원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 2012년 현재 수원시에는 장애인이 39,554명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 숫치는 등록 장애인을 말한다. 실제로 등록을 하지 않은 장애인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고 한다.
“저희 수원시에 2012년에 파악된 장애인들은 지체장애인이 21,150명(53,47%), 시각장애인이 4,211명(10.65%), 청각, 언어장애인이 3,810명(9,63%), 지적, 자폐장애인이 3,646명(9.22%), 기타장애인이 6,737명(17.03%)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장애인 중에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합하면 64.12%나 됩니다. 이 많은 장애인들이 생활에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무장애 도시 수원 만들기’를 시작한 것이죠.”
이동숙 장애인시설팀장의 이야기로는 이들이 길을 가거나 휠체어를 이용할 때, 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인도에 세워 둔 볼라드 등에 걸려 넘어지거나 다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체장애인들의 경우 휠체어를 사용할 때, 도로나 인도의 턱이 높아 휠체어가 오를 수가 없어 많은 불편을 호소한다는 것.
5개년 계획으로 ‘무장애 도시’ 만든다.
그동안 장애인에 대한 관련법이 보완, 지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새로 짓는 건물의 경우 장애인의 시설이용에 불편함이 많이 해소가 되었단다. 하지만 아직도 노후 된 건물이나, 도로의 경우에는 많은 불편요인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보행 등에 대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수원시지회(회장 최종현)와 한국장애인부모회 수원지부(회장 옥선비)의 회원들과 함께 현장에 나가 실태조사를 했다고 한다.
“저희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조사를 해보니, 장애인들의 불편요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 수원시 전 지역을 대상으로 연중 지속적으로 추진을 할 계획입니다. 또한 장애인들의 불편신고가 접수될 경우에는, 불편신고가 접수가 된 관리부서에 통보를 하여 바로 개선요청을 하려고 합니다.”
오광록 과장은 이번 장애인들과 직접 거리를 돌아보면서, 장애인들의 불편신고가 왜 일어나지를 알았다고 한다. 시각장애인들을 유도하는 유도 점자블록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점자블록 앞에 전신주가 서 있는 경우, 주차를 하는 운전자들이 점자블록 위에 차를 세워 장애인들이 도로 통행을 할 수 없는 경우 등 많은 사례를 접했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배려 필요해
수원시 여성복지국 장애인복지과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을 위한 보행환경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2009년 1월 8일자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조례에 관한 조례 제정 등 3차의 개정이 있었으나, 사업 시행 시 교통약자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이동편의 시설 세부기준치 미적합 시설 및 미설치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장애인, 노인, 여성 및 어린이 등 교통약자들 누구든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통행을 할 수 있도록,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보행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실측조사를 하며, 조사를 마친 다음에는 교통약자들의 통행에 지장이 있는 시설은 각 구청 시설과 도로정비 팀 등과 상호 협조하여 보도 턱을 휠체어 등이 운행을 할 수 있도록 턱을 낮추고, 볼라드를 개선하며, 상점 등 도로의 통행에 지장을 주는 입간판 등 지상물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금은 장애인이 아니지만 언제 장애인이 될지 이무도 앞날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비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죠. 하기에 우리는 일반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배려하는 마음이 없이는 ‘무장애 도시 수원’을 만든다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이동숙 장애인시설팀장은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무장애 도시 수원’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 함께 고민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시민들이 힘을 보태주기를 당부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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