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단다. 사업의 실패로 수원시 권선구에서 화성시 봉담읍 유리 기산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는 집안에만 있으니 심한 우울증에 걸렸단다. 그래서 시작한 봉사였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을 봉사를 하면서, 점차 우울증이 나았다고 한다. 문혜영(여, 49세)씨는 그렇게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봉사에 발을 디뎠다는 것.

 

“남편과 함께 수원에 살면서 봉사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2년 전에 사업의 실패로 인해, 집까지 이사를 하게 되었죠. 화성시 봉담으로 이사를 한 후, 사업 실패의 후유증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이 왔어요. 그런데 그렇게 보낼 수가 없어 봉사를 다시 시작했죠. 봉사를 하는 시간은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으니까요. 봉사를 시작한 후 우울증도 사라지고, 이제는 옛날처럼 제 스스로를 되찾았다고 보아야죠,”

 

 

자신을 치료하기 위한 택한 봉사

 

봉사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말로만 하는 봉사야 누구든지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문혜영씨의 봉사는 그야말로 ‘살신성인’이라는 말이 적합하단 생각이다. 하루에 4시간, 봉담 인근의 18개 요양원을 한 달에 두 번씩 다닌다고 하니, 줄잡아도 하루에 한 곳 이상을 다니면서 봉사를 하는 셈이다.

 

그렇게 봉사를 하면서 차츰 우울증도 가시게 되었다니, 문혜영씨의 봉사는 자신과 남을 함께 살린 폭이 되었다. 요양원에 찾아가면 어떤 일이나 가리지 않고 했다. 청소부터 어르신들 목욕시키기, 심지어는 화장실 청소까지 맡아서 했다. 어르신들을 안마를 해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르신들께 다가서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제는 어르신들을 내 부모님처럼 대하다가 보니, 정말로 좋아들 하시죠. 안마도 해드리고 발 마사지도 해드리고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발 마사지를 해드리다가 아마 간지러우셨나 봐요. 할머니께서 대뜸 욕을 하시는 거예요. 간지럽다고요.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정말 고맙다고 하시데요.”

 

딸자식 보다 낫다는 봉사자들

 

화성 나눔에 봉사단의 회원은 모두 30~40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16명이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봉담의 요양원을 다니면서 하루에 4시간씩을 봉사도 하고, 노래교실도 운영한다고. 봉사를 하러 다니면서 어르신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들어주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저희가 봉사를 가면 오히려 아들, 딸보다 낫다고 하세요. 자신들이 낳은 자식들도 찾아오질 않는데, 한 달에 두 번씩 찾아와서 청소도 하고 목욕도 시켜드린다고요. 그래서 가끔은 자식 대하듯 스스럼없이 대하시기도 하시고요”

 

그렇게 봉사를 하면서도 김장봉사도 하고. 농촌봉사를 나가 2만 여 평에 양배추를 돕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봉담 나눔에 봉사단’은 인원을 많지 않지만, 그래도 많은 일을 감당해 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봉사를 하면 경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조달하느냐고 물었다.

 

“저희들은 원칙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저희가 해결을 하고 있어요. 2만 원씩 회비를 걷어서 그것으로 점심도 먹고, 만원은 남겨 두었다가 년 말에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요”

 

천성이 봉사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드는 문혜영씨.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전혀 힘들지 않다고 대답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하요. 저도 나중에 나이가 먹으면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내가 올 곳이기에 더 열심히 봉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지금 이곳에 계신 어르신들이 결국 나중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인에 관한 자격증은 모두 다 땄다고 한다. 요양사 자격증을 비롯하여, 자살방지, 노인상담 등 8가지가 되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것. 이렇게 자격증을 딴 것도 노인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올바른 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계세요. 그래서 이 분들이 저에게는 더 많이 소중하게 느껴지죠. 앞으로도 요양원 봉사는 꼭 하려고요. 시간을 내서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기도 하고요”

 

 

봉사를 하겠다는 욕심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을 듯하다. 이야기를 하다가 말고, 봉사를 하러 가야한다고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문혜영씨. 오랜 장맛비로 꿉꿉하던 마음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햇볕에 모두 가시는 듯하다.

 

머리에 베로 꼰 띠를 두르고, 무복(巫服)의 자락을 휘감아 한 편에 질끈 동인 저승사자가 지노귀굿의 상 중앙에 놓인 망자의 넋을 상징하는 종이로 만든 ‘넋전’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사제삼성은 서울과 경기 지역의 집가심굿과 지노귀굿에 나오는 세 명의 저승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7월 21일(일) 밤이 이슥하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굿이 이미 밤 10시를 넘겼다. 오산 원동 마등산 자락에 소재한 한 굿당에서는 망자의 혼을 천도시킨다는 지노귀굿이 펼쳐졌다. 이 굿판에는 무격(巫覡. 남자무당과 여자무당을 함께 이르는 말) 5명과 악사 2명이 자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제가집(굿을 의뢰한 망자의 가족)에선 가족들과 지인들 30여 명이 참석을 했다.

 

 

망자를 위로하고 달래는 지노귀굿

 

지노귀굿이란 죽은 망자를 천도시키는 굿을 말한다. 지노귀란 ‘진혼(鎭魂)’의 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그 굿을 하는 시기나 형태에 따라 명칭이나 굿의 제차 등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3년 동안 상청(喪廳)을 마련하였기 때문에, 3년 안에 하는 지노귀굿은 모두 ‘진지노귀굿’이라 하였다.

 

3년이 지난 다음에 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굿은 ‘묵은 지노귀굿’이라 하고, 3년 만에 상청을 치우면서 하는 굿을 ‘탈상굿’이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사람이 살아있을 대 미리 지노귀굿을 하면 ‘산지노귀굿’이라 하고, 죽을 수에 있는 사람의 명을 연장하기 위한 ‘헛장굿’ 등도 모두 지노귀굿에 포함을 시킨다.

 

 

큰머리 얹고 바리공주 무가를 구송해

 

저녁 무렵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망자의 지인들로 인해 주변 주차장은 차가 가득하다. 굿당 안에 잘 차려진 굿상이며, 상 뒤편으로는 저승십대왕을 의미하는 글을 적은 번이 걸려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이 굿이 무슨 굿인가를 알 수 있는 분위기이다. 망자의 가족들이야 당연히 참석을 하겠지만, 선, 후배들을 포함해 3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으니 굿당 안이 시끌벅적해 질 수 밖에.

 

굿은 굿판에 모여든 모든 사람들과 굿청의 부정을 가시는 의식으로 시작이 되었다. 주무(主巫)인 승경숙 만신과 보조를 하는 어린 무녀(巫女)들도 부산하게 움직인다. 굿이 한창 무르익을 때쯤 바리공주 무가를 구송하는 ‘말미’의식으로 들어갔다. 작은 상위에 쌀을 붓고 한지로 덮어 놓는다. 그리고 바리공주 무가를 장구를 치면서 구송하기 시작한다.

 

머리위에는 바리공주를 상징하는 큰머리를 올리고, 근 한 시간 가까이 진행이 되는 무의식 제차에 사람들이 지쳐갈 만도 하련만, 이런 진지노귀굿을 처음으로 접한다는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른다. 아마도 이런 굿판에 와서 망자와의 평소에 친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슬픈 굿에서의 반전, 해학이 가득한 사자놀음

 

지노귀굿은 망자의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망자를 떠나보내는 의식이기 때문에 울음바다가 된다. 가족뿐만 아니라 굿청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굿이다. 하지만 지노귀굿에서도 반전이 있다. 슬픔만 간직하고 돌아간다면 오히려 마음에 더 큰 아픔을 안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반전이 이루어지는 굿 제차가 바로 ‘사제삼성’이다. 이 거리에는 저승사자로 굿을 진행하는 무당이 변한다. 머리에는 베를 꼬아 띠를 만들아 두르고, 심지어는 얼굴에 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굿청 앞에 놓인 사자상에 가서 차린 것이 없다고 푸념을 하면서 아무것이나 주어먹는다.

 

 

이때 제가집이나 지인들은 굿상 앞에 일렬로 도열을 한다. 바로 사자가 굿상 위에 놓인 망자를 상징하는, 종이로 만든 ‘넋전’을 들고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넋전을 빼앗기면 망자의 혼령을 빼앗긴다고 하여, 사자가 굿상 앞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몸으로 사자를 막아야 한다. 이 대목이 바로 반전이다.

 

입에는 큰 떡을 물어 마치 혓바닥처럼 늘이고, 눈을 이상하게 만들어 굿상으로 덤벼드는 사자를 보고 제가집의 가족들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굿상 앞을 막아선 15명 정도의 망자의 지인들은, 사자가 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느라 정신이 없다. 이곳저곳을 찔러보고 밀어보고. 심지어는 입에 문 떡까지 줄 테니 비키라고 한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우리 굿만이 갖고 있는 해학이다.

 

 

망자의 가족들까지도 웃길 수 있는 굿판. 울리고 웃기고, 그래서 우리 굿은 좋은 것이다. 말미에 이어 망자의 상을 도는 ‘도령’과 베를 갈라 망자의 저승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길 가르기’, 그리고 저승길에 가시밭길을 무사히 넘기는 ‘가시문 넘기기’까지로 굿은 끝났다. 22일 새벽 1시. 길고 긴 지노귀굿이 끝나고 가족들과 지인들은 다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무격들뿐이다. 굿청에 모인다는 뭇 잡귀들을 다 풀어먹여 보낸다는 뒷전까지 마친 시간이 새벽 1시 30분. 이때쯤이면 누구나 다 지치게 된다. 하물며 몇 시간을 뛴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그래도 모두가 ‘속 시원하다’며 돌아갔으니, 아마도 이 망자 좋은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다음 생에는 절대 이런 슬픈 자리에서 만나지 말고, 이승에 맺힌 한 훌훌 털고 돌아가시게”

 

마을의 입구나 혹은 사찰 입구에 보면, 부릅뜬 눈에 왕방을 코, 그리고 삐져나온 날카로운 이빨. 어째 썩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있다. 흔히 장승이라 부르는 이 신표는 지역에 따라 그 이름도 다르다. 장승, 장성, 장신, 벅수, 벅시, 돌하루방. 수살이, 수살목, 수살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장승은 나무나 돌을 조형 해 만들어 세운다. 나무를 깎아 세우면 ‘목장승’이라 하고, 돌을 다듬어 세우면 ‘석장승’이라 한다. 장승만 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솟대, 돌무더기, 서낭당, 신목, 선돌등과 함께 동제의 복합적인 형태로 표현이 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처음으로 기록에 보인 장승

 

장승의 기원에 대한 정설은 아직 정확하지가 않다. 대개는 고대의 ‘남근숭배설(男根崇拜說)’과, 사찰이나 토지의 ‘경계표지’ 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일설에는 솟대나 선돌, 서낭당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도 전해진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보물 제157호인 장흥 보림사의 ‘보조선사탑비’에, 장승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이 탑비의 내용에는 759년에 ‘장생표주(長生標柱)’가 처음으로 세워졌다고 했다. 그 외에 <용재총화>나 <해동가요> 등에도 장승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이로 보아 통일신라나 고려 때는 이미 장승이 사찰의 입구에 세워,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경계표시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장승은 성문, 병영, 해창(海倉), 관로 등에 세운 공공장승이나, 마을입구에 세운 수호장승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하면서 민속신앙의 대상물로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현재까지도 마을에서는 장승을 신표의 대상물로 삼고 있는 곳이 상당수가 있으며, 옛 지명 중에 ‘장승백이’나 ‘수살목’ 등은 모두 장승이 서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기능을 갖는 장승

 

장승은 설화나 속담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럴 정도로 우리와는 친숙하다는 것이다. 장승을 잡아다가 치죄를 하여 도둑을 잡았다거나. 판소리 변강쇠타령 등에 보이는 장승에 대한 이야기는, 장승이 민초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척 장승같다’거나 ‘벅수같이 서 있다’ 등은 모두 장승의 형태를 빗대어 하는 속담 등이다.

 

 

장승의 기능은 경계표시장승, 로표장승과 비보장승 등으로 구분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장승의 기능은 대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경계표시 장승은 사찰 등의 입구에 세워, 잡귀들의 출입을 막고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로표장승은 길목에 세워, 길의 안내를 하는 기능을 갖는 장승을 말한다. 비보장승은 마을의 입구에 서서 마을로 드는 재액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장승나라 청양, '장승무덤'도 있네.

 

청양군 대치면 장곡사 입구에는 장승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장승공원은 칠갑산 주변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10여 개 마을에서 지내오는 장승제로 인해, 1999년 칠갑산 장승문화축제를 개최하면서 조성한 전국 최대의 장승공원이다. 칠갑산 주변에는 대치리 한터마을을 비롯하여, 이화리, 대치리, 농소리, 정산면 용두리, 송학리, 천장리, 해남리, 대박리, 운곡면 위라리, 신대리 등에서 장승제가 전해지고 있다.

 

 

장승공원 안에는 장승체험관을 비롯하여 전국 최대의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 청양 마을의 장승과 각 지역별 장승, 시대별 장승, 창작 장승, 외국의 장승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약 300기가 넘는 장승공원에 서 잇는 장승들은, 그 수명을 다해 쓰러지면 ‘장승무덤’에 갖다가 놓는다.

 

이 많은 장승들, 비오는 날 더 괴이하네.

 

7월 14일 비가 쏟아지는 장마에 장곡사를 둘러보고 난 후, 장승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들고 작은 카메라를 지참하고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비가 심하게 내리니 장승공원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게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서 있는 장승들을 만나본다.

 

 

왕방울 눈에 매부리 코, 듬성듬성한 이빨을 보이며 희죽이 웃고 있는 장승. 그런가하면 새치름한 표정으로 비가 싫다는 듯 눈썹이 치켜 올라간 장승도 보인다. 허리가 휘어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장승이 있는가 하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웃음보를 터트릴 것만 같은 장승도 보인다.

 

장승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참으로 별별 장승이 다 있다. 그 많은 장승들이 하나같이 모습들이 다 다르다. 장승은 깎는 사람의 모습과 마음을 닮는다고 했던가? 아마도 이 장승을 조성한 작가들의 심성이란 생각이다. 우중에 돌아 본 청양의 장승공원. 속으로 되놰 본다.

“이 많은 장승들이 서 있는데 청양에 무슨 일이 있겠어?”

 

“남을 돕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나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질이 많다고 해서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남을 돕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지리산에서 만난 한 노스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대로라면 오늘 모인 사람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일 것이란 생각이다.

 

사단법인 출범에 따른 ‘사단법인 수원시 행복 · 캄 개소식’이 7월 8일(월) 오후 5시 30분, 수원시 인계동 944-4번지에 소재한 태산빌딩 3층 행복 · 캄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홍순목 행복 · 캄 회장을 비롯하여, 염태영 수원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김영규 수원시 기획조정실장, 민한기 수원시의회 부의장, 윤건모 팔달구청장, 라수홍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수원시 의회 김명욱, 박정란 의원 등 많은 축하객들이 참석을 했다.

 

 

순수민간봉사단체인 행복 · 캄

 

이번에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범을 하는 ‘행복 · 캄’은 순수 민간봉사단체이다. 이들은 캄보디아에 있는 수원마을 지원사업을 계속하여 펼치고 있으며, 인도적 지원을 넘어서 사회, 경제, 환경, 문화, 교육 등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모든 것을 회원들이 공동으로 해결하고 있다.

 

행복 · 캄은 순수봉사단체 중 가장 값진 국제봉사를 하는 단체이다. 순수 민간단체 회원들인 행복 · 캄은 민간인이 주를 이루어 봉사를 하고 있으며, 수원시에서는 행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과거 우리가 도움을 받던 나라를 도와준다는 자긍심을 갖고 봉사를 하고 있다는 (사)수원시 행복 · 캄의 개소식이 더욱 뜻 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마을의 정자나무와 같은 행복 · 캄이 되기를

 

홍순목 헹복 · 캄 회장은

“과거 우리가 도움을 받던 나라를 이제는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성장을 했다. 벌써 몇 년째 캄보디아를 돕고는 있지만, 정작 우리들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실조차 변변히 갖질 못했다. 오늘 이렇게 행복 · 캄 사무실의 개소식을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그리고 이렇게 사무실을 낼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회원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는 마음껏 남을 돕는 행복을 수원시민 모두가 함께 누렸으면 한다.”고.

 

염태영 수원시장을 대신해 참석을 한 수원시 김영규 기획조정실장은

“예전에 어릴 적에 시골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습니다. 흔히 정자나무라고 부르는 오래된 나무죠. 이 나무들이 도시에 와서 살다가 시골을 찾아가면, 그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다 떠나도 그 나무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는 했습니다. 바로 행복 · 캄의 여러분들이 이런 정자나무의 역할을 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어도 언제나 끊임없이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할 수 있는 그런 행복 · 캄이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8년 째 봉사를 하고 있는 민간봉사단체 행복 · 캄

 

사단법인 수원시 행복 · 캄은 2007년부터 8년 째 캄보디아에 가서 봉사를 하고 있다. 2007 년 우물 42공을 개발하여 우물 1공을 판 것을 비롯하여, 2008년에는 마을회관을 신축 완공했다. 화장실 7개실도 신축했으며, 수원마을 초. 중학교 교실을 10개실 신축 완공했다. 2009 년에는 수원마을 도로 833.8m의 도로포장 공사를 완공했으며, 교량 및 농사 물막이 수문 공사도 했다.

 

그런가 하면 각종 물품지원사업도 병행했다. 캄보디아 시엠립주 프놈끄라옴 수원마을에 쌀 30.000kg과 1가구당 20종씩 그릇 세트 630 가구분을 지원했으며, 수원마을 주민들에게 갈비탕 2.500인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타월 2.000장과 학용품 및 슬리퍼 3.000켤레, 교복 950 벌, 상의 티셔츠 200벌을 봉사 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2010 년에는 수해가정에 쌀 10.000kg을 25kg씩 400가구에 전달을 했으며, 2011년까지 각종 종합 현황게시판 시공 · 제작과, 송아지 40마리와 어미소 3마리를 전달하고, 자전거 6백대를 기증하기도 했다. 또한 그릇세트 500가구분과 생활용품과 세제 등을 전달하는 등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그 외에도 의료지원사업 6회에 4,580명 진료와, 이미용 봉사 2회에 1,250명에게 따듯한 마음을 전하기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개년에 걸쳐 위의 지원 외에도 상당한 노력을 했다. 민간단체가 찾아가서 지원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지만, 과거 우리가 도움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한다. 김미선 행복 · 캄 사무국장은

 

 

“2007년 이전부터 수원시와 시민들이 환경이 열악한 캄보디아 시엠립주 프놈끄라옴 마을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해왔습니다. 프놈끄라옴 마을은 410가구에 인구 2,800명 정도입니다. 2004년에는 수원시와 시엠립주정부와 자매결연을 체결했으며, 2007년에는 수원마을 후보지답사와 MOU를 체결했습니다. 2007년 6월 25일에 프놈끄라옴을 수원마을로 정하고, 2007년 12월 25일에 수원마을선포식을 개최했습니다.”라며

 

“그동안 저희들은 한 일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민간봉사단체가 이 정도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성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회장님을 비롯한 전 회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수원시의 적극적인 행정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희 행복 · 캄은 더 오래, 더 많은 봉사를 프놈끄라옴 주민들에게 베풀어, 수원이라는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개막식이 끝난 후 비가 오는 가운데도 일층 현관 입구에서 가진 행복 · 캄의 현판제막식. ‘국제교류 캄보디아 수원마을 행복 · 캄’답게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한 수원마을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수원야구장 공사현장 돌아본 염태영 시장

 

“시간이 없어요. 다음 일정이 또 있어서. 딱 1분만 시간을 드릴게요.”

염태영 수원시장이 3일(수) 수원시 연고 신생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에 따른, 스포츠 메카로서의 인프라 구축을 위하여 추진 중인 수원야구장 증축 리모델링 공사 현장을 점검하면서 관계자들에게 한 말이다.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써도 부족하다고 한다. 수원시 장안구민회관 열린 여성주간 기념식에 참가 한 후, 오후 4시에는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500인 원탁회의’에 참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중간에 잠시 짬을 내어 수원야구장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동부건설 관계자들에게 야구장에 관한 브리핑을 듣기 위해서 야구장을 찾았다.

 

 

‘공기 내 완공에 최선을 다해달라.’

 

KT가 제 10구단으로 확정이 되면서 기존의 2만석 규모의 야구장을 25000석으로 늘리는 이모델링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년 8월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원야구장은 총 사업비 290억을 들여 새롭게 단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사를 맡은 동부건설 관계자에게 브리핑을 받고 난 후 염태영 수원시장은

“수원이라는 명품도시에 걸 맞는 명품 야구장을 만들어 달라. 우리나라에서는 기존의 야구장을 개보수를 하여 친화형 야구장을 만든 이런 선례가 없다. 그러니 동부건설의 명예를 걸고 대한민국 최초로 이렇게 아름다운 야구장을 만들었다는 자긍심을 갖고 공사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공사안전 및 공사유찰로 공사기간이 다소 지연됐는데, 이에 대한 철저한 만회 대책으로 수원KT 10구단 창단과 경기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공사추진에 만전을 기해 달라. 공기 내에 제대로 된공사를 하려면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하는 이런 작업이니만큼 수업료를 낸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대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도.

 

 

자리에 함께 한 관계 공무원들에게도 "행정적으로 적극 협조해 공사 진행에 한 점의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면서 “만일 공사를 하는 동안 행정적인 어려움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주기 바란다.”며 기일 안에 완공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수원야구장 이렇게 바뀐다.

 

수원야구장은 관람석을 5천석을 늘리는 것 외에도 경기 관람시설이 VIP실, 스카이박스, 가족석, 테이블석, 익사이팅석, 바베큐석 등 관람객 편의 위주로 설치하게 된다. 야구장 전면에는 화합의 장,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꾸며지며, 미래를 향해 날아갈 수 있도록 덮개를 날개 형상의 조형물이 조성된다.

 

리모델링 공사는 100% 내야증축을 통한 최고의 경기 조망권을 가질 수 있도록 공사를 하게 된다. 동부건설의 관계자는 “수원야구장은 다양한 관람석을 위한 스카이박스, 전자석 50cm이상 접이식 좌석 적용, 필드와 밀착한 익사이팅석 계획, 경기운영시설 중앙 집중 배치, 선명한 화질의 풀 칼라 동영상 전광판으로 경기장을 꾸밀 것입니다.”라고 한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보고를 받고 다음 행사장으로 발길을 옮기면서도

“공기 안에 최선을 다해 가장 명품인 야구장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 KT관계자들이 요구하는 점도 가급적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며 동부건설 관계자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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