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스로 우울증도 고치고, 활력도 되찾았죠.”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지동 주민센터 2층에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가 되면, 신바람 나는 음악에 맞추어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동 주민센터 문화강좌 중에 목요일 11시부터 벨리댄스 초급반이 먼저 지도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고 나면, 12시 부터는 벨리댄스 동아리인 ‘아이리스’가 흥겨운 춤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초급반 벨리댄스의 지도를 맡은 김민주 지도강사가 앞에서 이끄는 대로, 10여 명의 수강생들이 열심히 춤을 따라 춘다. ‘벨리댄스(BellyDance)’는 흔히 배꼽춤이라고 부르는데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 제 18왕조의 무덤 속에, 현재의 벨리댄스와 똑같은 형태로 춤을 추는 무용수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신의 다산성을 의미하는 춤으로 해석

 

벨리댄스는 통상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에서 종교적으로 행해지던 제의의 춤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벨리댄스는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게 붙여졌다. 프랑스에서는 ‘danse du ventre’ 또는 ‘위(stomach)의 춤’이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에서는 터키의 전통 리듬이기도 한 ‘cifte tell’i로 불렀다. 중동에서는 ‘동양의 춤(dense orientale)’으로, 터키에서는 ‘Rakkase’로, 이집트에서는‘Raks Sharki’로 불렀다.

 

벨리댄스는 여신이 가지고 있는 다산성의 근원인, 복부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특별한 춤이다. 벨리댄스의 기원은 명확하게 고대의 다산의식에서 시작됐으며, 전통적으로 어머니 땅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맨발로 춤을 춘다. 또한 여성의 신체에 맞춰 안무되었는데 복부 근육과 힙과 가슴의 움직임 등을 강조한다. 이 춤은 매끄러우면서 흐르는 듯 하고 복잡하면서 허리를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우울증이 말끔히 나았어요!”

 

오전 11시 벨리댄스 초급반이 연습을 마친 후, 수강생인 이금애(여, 48세)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허리 통증이 유난히 심해 벨리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저는 허리에 통증이 와서 그것을 고쳐보려고 벨리댄스를 시작했어요. 벨리댄스는 온 몸을 다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을 필요로 하죠. 그러나 자세만 정확하게 잡으면 아픈 곳이 없어져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어요.”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사라지고, 모든 일에 활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12시부터 초급반의 연습에 이어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는 동아리 모임인 ‘아이리스’는, 이미 수원에서는 잘 알려진 벨리댄스 동아리이다. 일 년이면 거의 10회가 넘는 봉사를 하기도 하는 아이리스는, 현재 9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1998년에 아이리스라는 벨리댄스 동아리를 조직해 수원에서는 가장 먼저 벨리댄스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고.

 

 

수원에서 가장 먼저 무대에 춤을 올린 ‘아이리스’

 

“그 이전부터 문화강좌로 벨리댄스를 추어왔어요. 그러다가 1998년에 정식으로 아이리스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죠. 그렇게 아이리스가 동아리로 조직이 된 후, 거의 한 달에 한 번 씩은 요양원 등을 돌면서 봉사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현재 벨리댄스 동아리 아이리스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미옥(여, 40세)씨의 말이다. 김미옥씨도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시작을 했다고.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춤을 춘 것은 아니란다.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기에.

 

“처음 춤을 춘다고 했을 때는 아이들이 먼저 반대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후원자가 되었죠.”

 

화려한 의상부터가 아이리스가 남다른 것을 알려줘

 

벨리댄스 동아리인 아이리스의 연습은 의상부터가 다르다. 그동안 6년 동안이나 무대에 올라 많은 공연을 해서인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초급반이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노출된 부분을 가리기에 정신이 없는데 비해, 아이리스는 전혀 무관한 표정이다. 아니 자신들의 춤에 흠뻑 빠져들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취미생활로 시작한 지가 이제 4년이 지났어요. 벨리댄스는 여성들에게는 정말 최고로 좋은 운동인 듯해요. 벨리댄스를 추면 몸의 전체적인 균형이 알맞게 변하거든요. 거기다가 신나게 춤을 추면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또 건강도 지켜갈 수 있고요.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함께 갖게 되죠.”

 

화려한 의상으로 몸을 감싼 채 열심히 춤을 추던 양수지(여, 39세)씨의 이야기이다. 굳이 그렇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춤을 추는데 몰입해 있는 모습에서, 얼마나 벨리댄스를 좋아하는가를 알 수가 있다. 한 때는 많은 노출을 꺼려 춤을 춘다는 것이 힘들었다는 한 회원은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생활이 지루하거나 활력이 생기지 않으면, 벨리댄스를 추러 오라고 하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지동 고성주씨 초복마다 삼계탕으로 어른 공경

 

지동이란 마을은 참 흥미롭다. 그렇게 잘 사는 동네도 아니건만, 인정 하나는 샘 솟듯 하는 마을이다. 매년 초복 날이 되면(올해는 7월 13일), 지동에 사는 노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호인 ‘경기전통굿연구원’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고성주씨(남, 57)의 집으로 모여든다. 이곳에서 매년 초복 때 잔치를 열기 때문이다.

 

이른 시각인 새벽 5시부터 집안을 정리한 후, 곧바로 삼계탕에 들어갈 육수를 끓인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닭 100마리를 삶아낸다. 오늘은 지동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 100분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11시가 조금 지나자 어르신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주변 주민들 중에는 이럴 대마다 찾아와 봉사를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매년 경로잔치 등도 열어

 

고성주씨는 신(神)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춤과 소리를 문화재급 선생님들한테 학습을 받았지만, 그 길을 걷지 못하고 17세에 신이 내렸다. 그 뒤 매년 남을 위하는 잔치 등 공연도 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친 춤 제자들과 함께, 경로당 등을 순회하면서 노인위문공연을 하고 있기도.

 

그것뿐이 아니다. 매년 한 차례 집에서 경로잔치를 연다. 이렇게 잔치를 열 때는 춤도 추고, 소리도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제자들과 동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이 집에는 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는다. 자신이 신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고성주씨. 이제는 나눔이라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른 시간부터 바쁘게 움직인 덕분에 마을의 어르신들은 맛있는 삼계탕 하 그릇씩을 드실 수가 있게 되었다.

“고선생은 참 본 받을 만한 사람이죠. 매년 이렇게 동네잔치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은데, 언제나 어르신들을 살갑게 대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야 한 그릇 와서 잘 먹고 간다고 하지만, 이렇게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 더위에 말이죠.”

 

지동에 사시는 한 어르신이 하는 말씀이다. 늘 이곳에 와서 복다림을 하고 가신다는 이 어르신은, 그래서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고 호탕하게 웃으신다.

 

 

따듯한 마음이 넘치는 곳, 지동.

 

“아버님 술 한 잔 드실래요?”

“아니, 그냥 이 삼계탕 한 그릇 먹으면 배가 너무 부를 것 같아요.”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누구에게나 정감이 가는 말투이다. 그렇게 바깥, 거실, 지하연습실 등에 마련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진 삼계탕 한 그릇씩을 드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시는 어르신들이다.

 

“지금 우리는 어른 공경을 제대로 할 줄 몰라요. 그분들이 젊으실 때 그 수많은 고생을 하시지 않으셨다고 하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히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은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하고, 저희들은 그런 우리 부모님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드릴 것을 찾아보아야죠. 어른 공경이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요.”

 

 

여기저기 음식을 나르랴, 어르신들께 필요한 것을 갖다 주랴 옷이 땀으로 다 젖었다. 그래도 맛있게 드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단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매년 이렇게 나이를 먹은 저희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시는 고성주 선생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드셨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시는 어르신들. 매년 이렇게 이어가고 있는 따듯한 마음이 있는 곳, 지동마을. 이렇게 따듯한 마음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지동이라는 곳은 참 살만한 마을이다.

 

지난 6월 21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제일교회 1층 세미나실에서는 지동 주민들과 이재준 수원시 제1부시장과의 간담회가 열렸었다. 이 자리에서 지동 마을계획단의 유지현 14통장은

“우리 지동에는 530년 정도가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런데 이 느티나무가 지금 고사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 나무들은 수원에서도 가장 오래 된 느티나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느티나무 주변을 쌈지공원으로 조성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재준 제2부시장은

“좋은 지적이다. 그런 오래된 나무들을 이용해 공원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마을르네상스 사업이 된다. 먼저 주민들이 선도적으로 무엇인가 시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을만들기 추진단에 수시공모로 신청을 해서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오래 된 보호수가 있다면 당연히 살려내야만 한다.”라면서 주민들이 먼저 시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바 있다.

 

 

마을계획단 느티나무 살리기 위해 노력

 

팔달구 지동 465 도에 소재한 수령 530년의 할아버지 나무와, 지동 230에 소재한 수령 480년의 두 그루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로 부른다. 이 나무들은 화성 축성 이전인 조선 초부터 이곳에서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살아 온 노거수들이다.

 

할아버지나무는 높이가 12m에 나무의 둘레는 4.7m에 이른다. 할머니나무 역시 높이 13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이 나무들은 화성 축성의 역사를 보았고, 한국전쟁 때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때 마을에서 위하기도 했던 이 나무들이, 현재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동마을계획단에서는 모임을 통해 이 나무들을 살려낼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 수원시에서는 가장 오래 된 느티나무로 알려진 지동의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를 자칫 고사라도 시킨다면, 수원의 관광자원 하나가 사라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쓰레기적치장, 전선줄로 몸살을 앓아

 

장맛비가 아침부터 내린다. 중부지방에는 호후경보가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세찬 빗줄기가 아니기에 못골 느티나무를 보기 위해 13일(토) 10시 경에 찾아가 보았다. 그동안 몇 번이고 이 나무들을 지켜보았지만, 이 나무가 과연 보호수가 맞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수령 530년이 되었다는 할아버지나무는 외과수술을 한 흔적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위로 뻗은 큰 줄기 하나는 고사해서 잎도 달지 못한 체 그렇게 서 있다. 주변에는 담배꽁초와 빈 담배갑 등이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고, 한편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전국 어디를 가보아도 보호수 옆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은 이곳밖에는 없는 듯하다. 어떻게 보호수 곁에 쓰레기 적치장을 마련했을까? 몇 번이고 찾아가 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곁에는 차들까지 주차를 해놓아 이 할아버지나무의 환경이 최악임을 알려준다. 수령이 오래 된 노거수의 경우 매연에 약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실하게 잎을 달고 있는 할머니나무는, 할아버지나무보다는 상태가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이 할머니나무 역시 곤욕을 치루기는 마찬가지. 가지 사이로 숱한 전선들이 지나고 있다. 도대체 이 전깃줄을 가지사이로 보낸 사람들은, 보호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대로는 두 그루 다 성장 제대로 못해

 

주변의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를 이렇게 방치를 해도 좋은 것인지. 관계당국에서는 보호수 지정 이후 이곳을 들려는 보았는지, 그리고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 두 그루의 보호수인 느티나무들은 제대로 생육하기가 힘들다. 오죽하면 마을계획단의 회의에서 이 나무들을 살려야한다고 하소연일까?

 

 

보호수란 ‘보존 및 증식(增殖)의 가치가 있어 보호하는 나무.’를 말한다. 보호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이 되거나, 훼손이 될 수 있는 나쁜 환경 속에 놓아두면 안 된다. 하지만 지동의 두 그루 느티나무는 이러한 보호수로써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보호수를 관리해야 하는 담당부서에서는, 이 두 그루 보호수의 현장을 조속히 답사한 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줄 것은 당부한다.

 

500년 역사의 이야기를 간직한 지동의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 이 두 나무는 과거 득남을 기원하고, 가내의 안과태평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나무였다. 하기에 보호를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보호수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점, 선, 면의 미술이론을 넘어서는 느낌이요, 그 느낌의 소통이다.(중략)

우리의 환경은 현대화 되고 첨단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수원 화성으로 인해 문화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온 지동마을. 그러나 이번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수원시와 함께 추진한 커뮤니티 아트 사이트 조성 계획 중, 지동 프로젝트 ‘생태 골목에 심다’ 벽화 프로젝트는 수원화성이 애물단지가 아닌 자랑거리가 되고, 세계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되찾게 해주었다.

주관단체와 작가, 마을 주민들의 진정한 커뮤니티 아트가 아닐까 생각한다(하략)‘

 

김수현 창룡마을 창작촌 고문(조각가. 현 충북대 명예교수)이 ‘커뮤니티 아트 사이트의 본 고장이 될 착한 지동을 기대하며’라는 글에 적은 내용이다.

 

지동 벽화작업 일일이 기록

 

올 6월에 발간한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7월 지난주에 책이 배달됐고, 11일(목) 오전에 본 기자의 손에 책이 들려졌다. 그저 평범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받아든 순간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 까지 숱한 땀 냄새가 그 안에 배어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진 위. 좌측은 벽화길 조성 전 더럽고 습한 골목. 우는 벽화길 조성 후 달라진 모습

사진  아래. 좌측은 벽화작업 전 정비를 하는 벽. 우측은 현재 벽화 조성 후


 

‘생태 골목에 심다’라는 100P 남짓한 이 책은 그동안 지동골목에서 1년 6개월을 지내오면서 벽을 뜯어내고, 다시 바르고, 칠하고, 또 밑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코팅을 한 내용이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처럼 엮어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동안 지동을 찾아와 숱하게 땀을 흘리며 봉사를 한 면면이 들추어져 있다.

 

지동마을 사람들을 변화시킨 벽화

 

이 책에는 지동의 모든 벽화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나비를 그리고,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린 꼬마들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담겨져 있다.

 

 벽화골목에 많은 꼬마들이 모여들었다(위). 벽화를 그리기 위해 지동 골목에 온 자원봉사자들(아래)


 

‘지동골목에는 아이들이 없는 줄 알았다. 몇날 며칠을 골목을 다녀도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동네에 아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은 아닌 것같다.

벽화는 유한하다. 그러나 벽화가 하는 일은 무한하다. ‘생태 골목에 심다’라는 주제로, 지동 골목에 녹색 비람을 일으키며 마을 주민들과 청소년, 꼬맹이들을 골목으로 쏟아져 나오게 하는데 성공...‘

 

지동 프로젝트 총괄작가 유순혜의 편집후기에 적힌 글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주민들의 말을 달아냈다.

 

“엄마, 고양이가 날 쫒아와”

“오빠! 자전거 타고 경주할까? 난 빨간 자전거, 오빤 파란 자전거”

“나는 포도 따다가 팔아야겠네..호호호”

“우리 집 꽃게는 해물탕 끓여서 동네잔치 해야지...하하하”

정말 그랬다. 지동마을에 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로 골목에 자리를 깔았다. 그 자리에 앉아 삼겹살을 구우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들이 보인다. 삭막하고 음습한 지동골목이 변화한 것이다. 꽃길이 조성되고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지면서, 그렇게 지동 사람들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계절별로 정리한 프로젝트는 압권

 

지동 프로젝트 - ‘생태 골목에 심다’는 계절별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 계절에 따른 벽화와 함께 계절별로 찾아 온 아마추어 화가들의 얼굴이 그득하다. 골목에 질펀하니 눌러 앉아 손을 흔들고, 벽에 착 달라붙어 열심히 그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았다. 서울여자대학 미술학과 학생들이 MT를 마다하고 지동으로 달려왔을 때, 지동 사람들은 맛있는 비빔밥으로 그들을 대접하였다.

 

지동은 이제 정이 넘치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부분 부분에 신문에 났던 기사를 실었다. e수원뉴스 하주성 기자의 글이 중간 중간에서 그림의 설명을 도와주고 있다. ‘벽화골목의 꼬마화가들’, ‘지동벽화골목의 자원 봉사자들’, ‘MT대신 벽화봉사를 하기도’, 수원 지동 벽화길, 퉁영 동피랑을 넘을 수 있을까?‘, ’벽화그림 하나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등이다.

 

지동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보습. 골목길에 주민들이 자리를 깔고 삼겹살을 구우며 담소를 하고 있다


 

책은 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했다. 땅 속 깊숙이 굴을 파고 들어간 짐승들이 잠을 잔다. 그리고 또 다시 봄을 맞이했다. 그 계절의 모든 작업들이 하나하나 소개되어 진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태 골목에 심다’는 앞으로 영원히 지동 사람들과 함께, 또 다른 새 계절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찾아가기 위한 관광 상품 교육현장

 

팔달구 지동에 269-23에 소재한 ‘되살림 발전소’. 낡고 비워져 있던 집을 주인에게 무상으로 장기 임대를 해, 리모댈링 작업을 한 후 말끔히 단장을 하였다. 이 되살림 발전소는 그야말로 지동 지역의 살림을 되살리겠다는 취지로 마련이 되었다. 현재는 지동 벽화골목 프로젝트를 맡아 총감독을 하고 있는 유순혜 작가가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7월 11일(목), 지동주민센터 3층에서는 색다른 강의가 열리고 있었다. 주민 40여명이 열심히 신문을 손으로 오리며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손재주를 만들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한다. ‘특색 있는 마을자립형 관광 상품 개발 · 판매’가 이 사업의 목적이라고 한다. 그 사업을 실행하기 위한 첫 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자신감부터 찾아야 해”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계신 분들은 지동에 거주하시는 분들 중에서 몸이 조금 불편하시거나, 연세로 인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십니다. 이런 분들에게 마을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은 이런 분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것을 치유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것. 처음에는 서먹해 하던 분들이 이제는 함께 점심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할 정도로 마음이 열렸다는 것이다.

 

 

“2개월 정도 주 2~3회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교육을 마치고 나면 이분들에게 한지공예나 피혁공예 등 전문적인 공예기술을 가르쳐 드릴 것입니다. 강사진도 이미 확보가 되었고요. 그리고 이분들이 만들어 내는 공예품은 되살림 발전소와 지동 제일교회 노을빛 전망대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판매를 해서 수익금을 이분들에게 돌려드릴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교육을 마치고 나면 이분들 스스로 공예품을 생산해 판매를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죠.”

 

기초드로잉부터 공작까지 철저히 준비해야

 

어느 주민센터에서도 생각해 내지 못한 일들을 지동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인적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주민들과의 상호교류를 통해, 살기 좋은 지동을 만들겠다는 것.

 

 

“저희가 이런 교육에 눈을 돌린 것은 바로 이분들이 스스로 자아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분들도 한때는 건강한 몸으로 자신의 일을 하던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과거의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죠.”

 

강습을 받는 분들에게 일일이 지도를 하고 있던 유순혜 작가는

“이 사업은 지역공동체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죠. 이분들이 기초부터 꼼꼼히 교육을 마치고 나면, 가죽공예나 합지골격 등을 활용한 공예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능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생산된 제품에 창작 작가들의 작품을 결합하여, 수원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을 생산해 자립형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죠,”라고 한다.

 

 

2012년 마을르네상스 사업으로 조성한 지동마을 ‘되살림 발전소’를 거점으로, 문화와 예술을 접목시킨 다양한 주민 커뮤니티 활동을 통하여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겠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드로잉부터 공작(오리기, 접기, 접합, 탈색 등) 등 교육부터 시켜야 한다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 할 일이 없으니 짜증만 부리고는 했는데, 이렇게 나와서 무엇인가 골똘히 만들다가 보니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교육을 잘 마치고 내 손으로 훌륭한 관광 상품을 개발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밝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 마음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이분들이 남은 생을 그렇게 되살려 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되살림 발전소’가 마을의 옛 영화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쳐가는 영혼까지도 되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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