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지동엔 요즘 사람들이 골목마다 북적인다. 바로 벽화를 그리기 때문이다. 지동의 골목 벽은 6세 어린아이부터 80세 노인들까지, 모두 화가로 만드는 마력을 지닌 벽들이다. 마을주민은 물론, 수원의 많은 시민들과 단체에서 참가를 한다. 지동의 벽은 날마다 그림들이 늘어만 간다.

 

9월 26일 오전 7시가 조금 넘었는데 문자가 하나 들어온다. ‘지동 어린이집 원생 15명이 10시부터 지동 벽화를 그리러 갑니다.’ 라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가봐야지. 딴 행보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일정을 바꾸어버렸다.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욱 이 날은 삼성전자 봉사단 70명이 벽화를 그리러 온다고 했다니.

 

 

 

어린 꼬마들의 마음속에 날리고 싶은 것은?

 

10시 지동 벽화골목으로 행했다. 큰길에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이 녀석들 죽 벽에 붙어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그런데 손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도 같이 그린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크레파스가 없다고 하는 녀석에, 안 주겠다고 도망을 가는 녀석. 시립지동 어린이집(원장 석숙현) 꼬마들 15명이, 이유리 교사의 인솔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편 벽은 나비만 그리고, 반대편 벽에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게 한다. 그런데 한 녀석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검은 크레파스로 ×자를 그려 놓았다. 아마 피카소가 벽화를 그려도, 이렇게 당당하게 잘 못 되었다는 것을 표시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나비, 조개나비...들어는 보았소?

 

아이들이 벽에 그린 나비들이 온통 날갯짓을 한다. 수백 마리의 나비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를 듯한 기세이다. 그런데 그 나비들을 보다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대형 나비부터 시작해, 달팽이나비, 사람나비, 굼벵이나비, 조개나비 등등. 세상에 어린이들은 무엇이나 다 날려 보내고 싶은 것일까?

 

한 녀석이 커다랗게 나비를 그린다. 그 나비를 보다가 물어보았다. 그렇게 큰 나비가 날아갈 수 있는가를. 이 녀석 당당하게 대답을 한다. 자기가 날려 보낼 수 있다고.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일까? 아이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은 없다. 하기에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벽화를 그리는 아이들에게서 선지식 하나를 얻어간다.

 

 

‘네 나비는 아까 날아갔다’

 

오후에는 삼성전자의 경영혁신팀과 센서개발팀 70여명이 골목을 찾았다. 인원이 많고 어른들이다 보니, 벽에는 짧은 시간에 많은 그림으로 채워져 나간다. 달라지고 있는 벽들을 보면서, 참 사람이 노력을 하면 이렇게 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골목벽화를 담당하는 사람도 삼성전자 벽화봉사팀이 들어오면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 틈에는 색다른 인물들이 있다. 바로 벽화를 지우고 다니는 팀이다. 벽화를 그렸는데 잘 못 되었다고 생각이 들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지우고 다닌다. 그래서인가 여기저기 덧칠을 하고 새로 그린 부분이 있다. 그렇게 골목 벽화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골목 안으로 꼬마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선다.

 

 

 

아침에 나비를 그리던 어린이집 꼬마가 제 그림 자랑을 하려고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한다. 이 꼬마 자신의 나비를 찾는데, 그 나비가 사라져 버렸다. 그림을 지우는 분들이 나비를 몇 마리 지운 중에, 꼬마가 그린 나비도 있었는가 보다. 여기저기 찾더니, 그래도 엄마에게 딴 아이와 함께 그린 반대편 그림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꼬마가 대견하기도 하고, 갑자기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할 말이라고는 고작 이말 밖에 없다.

 

“꼬마야 아까 나비가 몇 마리 날아갔는데, 네 나비도 날아갔나 보다.”

 

 

이 꼬마,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괜히 이야기를 해놓고도 멋쩍다. 속으로 저 어린이가 그랬을 것이다. ‘저 아저씨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그렇게 지동의 벽화는 날마다 풍성해지고 있다. 내가 지동 뒷골목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아직도 성벽 밖으로 난 아랫동네는 답답하다. 이곳은 골목이 워낙 좁아 장비조차 투입할 수가 없어, 개선사업조차도 못하고 있다. 지동 9통 민원실이 있는 이 골목은 벽이 무너지고, 지붕은 모두 샌다. 천으로 대충 막아놓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불가항력이라는 것이다. 이 골목 사람들은 오늘도 깊은 한숨으로 날을 보낸다.

 

이렇게 좁은 골목길은 으슥해, 밤이 되면 사람들이 다니기가 두렵다고 한다. 이 골목에서 사는 주민들은 이래저래 화가 난다는 것이다. 이 골목 주민들의 불만은 그치지를 않고 이어진다. 골목을 돌아보니 지동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올해 연세가 80이신 유병남 할머니께서는 벌써 몇 년째 마을의 환경개선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쓰레기 적치장에 쌓아놓은 것을 분리수거를 하신다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골목 주민들의 불만

 

“벌써 언제 적부터 이곳이 모두 헐리고 개발이 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딴 곳은 다 개발을 했으면서도 이 골목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난 번 시장 때 도시가스를 놓아준다고 하더니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없는 서민들이 비싼 기름을 때야 하는데, 좁은 골목이라 기름차가 못 들어온다. 큰 길에서 기름차가 집을 통해 호스를 넘겨 기름을 넣어야 하는데, 길가 앞집에서 싫어한다. 비싼 기름 값이 아까워 추운 겨울에도 보일러도 못 때고 산다.”

 

“비가 오면 물이 넘쳐 전신주 밑으로 물이 빨려 들어간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지붕에는 여기저기 비가 새지 않도록 임시로 방편을 해놓았다. 길이 워낙 좁다보니 차가 들어올 수 없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곳이 이렇게 골목길은 좁은 이유는 지금 집을 짓고 사는 곳이 개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개울 위를 막아 집을 지었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밑에서 올라오는 한기로 몇 배나 더 춥다는 것.

 

 

지동 뒷골목 중에는 비좁아 장비조차 들어갈 수가 없다. 이곳은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주민들이 많은 고초를 겪고 있다 


 

골목길에서 만난 유병남 할머니

 

한참 뒷골목을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할머니 한 분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신다. 신문사에서 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나 이 동네 들어온 지 50년이나 되었어.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 19,000원 주고 이집을 샀지”

“그 때도 이렇게 골목이 좁았나요?”

“아냐. 이 집들이 앉은 곳이 넓은 개울이었어. 물이 많이 흐르는 곳이었지. 그 옆에 밭도 매고 그랬는데. 그런데 그 개울을 덮고 그 위에 집을 지으면서 이렇게 골목이 좁아졌지. 이나저나 여긴 언제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꿔준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봐”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데요?”

“나 이제 80여”

“아이고, 아직도 청춘이시네요”

 

그 말씀에 기분이 조금 좋아지셨나 보다. 이런 저런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예전에 개울물이 흐르던 위에 집을 짓는 바람에 겨울이면 한기가 더 심하다고 하는 뒷골목 


 

알고 보니 이 할머니 시민봉사상 드려야겠네.

 

“내가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데, 제발 음식물 쓰레기하고 병이나 캔하고 같이 버리지 말라고 그래”

“할머니 재활용품 주우러 다니세요?”

“그게 아니고 분리수거를 안 하면 가져가지를 않잖아. 그래서 하루에 몇 번씩 나가서 분리수거를 해 놓는 거지. 그럼 다 가져가잖아. 그러면 깨끗한 것이 냄새도 나지 않고 얼마나 보기 좋아.”

 

사실 유병남 할머니 댁은 쓰레기를 모아두는 큰 길에서 안쪽 골목길이라, 냄새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밤이고 낮이고 하루에 몇 번씩 쓰레기를 뒤져 분리수거를 해 놓으신단다.

 

“할머니께서 워낙 부지런하세요.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뒤져 분리를 하신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 일인데, 날마다 하루도 안 거르세요.”

 

주민들의 말이다. 한 때는 몇 곳을 하셨는데, 이제는 지동 목욕탕 앞에 모인 것만 하신다고. 사실은 딴 곳에서 쓰레기를 분리하시는데, 누군가 끈끈이에 붙은 살아있는 쥐를 그냥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손을 넣었다가 살아있는 쥐에게 물려 피를 많이 흘리기도 하셨단다.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은 하늘도 돕는 법

 

할머니는 현재 지동 294-25번지에 혼자 살고 계신다. 자녀들은 다 딴 곳에서 생활을 한다고, 얼마 전에 딴 곳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가서 한 달 생활비 20만원을 받아갖고 오시다가, 그만 지갑을 택시에 두고 내리셨다고 한다.

 

“택시에서 내렸는데, 지갑을 두고 내린 거야 앞이 캄캄하데”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긴 택시는 이미 가버렸는데.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돈지갑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택시기사분이 경찰에게 이야기를 해서 집으로 가져 왔데. 참 사람이 좋게 세상을 살면 하늘도 다 돕는가봐. 그 택시기사 참 착한 분이라 그 사람도 복 받을 거야”

 

지동 골목길에 봉사왕 유병남 할머니. 아무쪼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이런 분이 지동에 계셔, 지동은 그래도 점점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보다. 나도 이참에 꼭 한마디 하고 싶다.

 

“시장님, 이 유병남 할머님 꼭 상 하나주세요.”

9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경에 갑자기 지동의 골목길에 왁자하다. 무슨 일인가해서 들여다보았더니, 사람들이 벽에 붙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다. 사단법인 수원시종합자원봉사자센터 이경묵 팀장의 인솔로, 지동 골목 벽화를 그리기 위해 찾아 온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여기저기 나뉘어 벽을 칠하고 그림을 그린다.

 

지동의 골목길 벽화는 청년작가들과 함께 삼성전자, 삼성생명, 회사 사원들과 일반 자원봉사자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지난해 280m의 골목길 벽화작업에 이어, 올해는 680m의 벽화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골목 벽화작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을 벽화에 표현하는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지동 골목길을 찾아든 것이다.

 

 

 

가족봉사자들도 참여 해

 

30여명의 자원봉사자 중에는 가족이 함께 참여한 사람들도 있다. 친구끼리 참가를 하기도 하고, 아버지와 딸, 엄마와 두 딸의 가족도 있다.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 거주한다는 김현주(엄마, 41세)는 큰딸 이혜림(중 1)과 작은딸 이유림(초 4)을 데리고 벽화작업에 자원봉사를 지원했다고 한다.

 

“오늘로 세 번째 참가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하고 싶다고 해서 벽화작업에 참가를 했는데, 날이 덥고 해서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네요. 또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나서 나중에 이곳을 지날 때는, 저 그림이 내가 그린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고요”

 

 

 

열심히 담벼락에 담쟁이넝쿨의 잎 작업을 하면서 하는 말이다. 친구들이 함께 참여를 하기도 했다. 열심히 봄에 해당하는 벽에 개나리꽃을 그리고 있는 김민기(계원여고 1년), 박은주(장안고 1년), 장원경(장안고 1년) 등은 벽에 붙어서서 열심이다. 그림을 전공한다는 이 학생들은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이런 벽화그림을 지원했느냐고 물으니

 

“저희는 미술을 전공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해요. 토요일에 이렇게 한 번씩 봉사를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공부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나중에 벽화가 다 완성이 되면, 이루었다는 뿌듯함도 가질 수 있고요”

 

이렇게 벽화작업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지동의 칙칙하던 골목이 달라지고 있다. 아직은 한낮의 기온이 높기도 하다. 따가운 햇살로 인해 봉사자들이 쉽게 지친다. 그런 봉사자들을 위해 주민들은 얼음물을 내다주며 격려를 하기도. 사람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아간다는 지동 사람들은, 요즈음 골목 벽화작업으로 인해 사는 재미를 붙여간다는 것.

 

 

7살 꼬마 형주는 골목길에서 이름난 화가

 

골목을 들어서면 벽 한 면이 온통 나비들로 가득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꼬마들이 그린 나비들이 벽에서 날아다닌다. 그렇게 벽에 붙어서 나비를 그렸을 꼬마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건너편 벽에 작은 꼬마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름이 무엇예요?”

“김형주입니다.”

“몇 살예요?”

“일곱살요.”

“여기 몇 번째 왔어요?”

“..... 세 번요(한참이나 생각을 한다)”

“그림 그리는 거 재미있어요?”

“예, 재미있어요.”

 

너무나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꼬마화가에게 방해를 하는 것 같아, 더 많은 질문을 할 수가 없다. 그 옆에는 누나들이 벽에 붙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동골목에서 꼬마화가 형주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날마다 변해가고 있는 지동골목.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칙칙하던 골목길이 환하게 변화고 있다. 5개년 계획으로 그려지고 있는 지동벽화길. 아마도 3.6Km에 달한다는 14개의 골목길 벽화가 다 그려지는 날에는, 이곳이 또 다른 명소가 될 것이란 생각이다. 지금도 간간히 사람들이 찾아들어 골목에서 눌러대는 셔터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9월 18일 오후 6시 30분경. 땅거미가 질 무렵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81번지. 지동 13통장 댁의 옥상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노을빛, 옥상음악회’가 열린단다. 요즈음 지동에는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생겨난다. 무대의 뒤 배경은 화성이다. 뒤편에 길게 자리를 하고 있는 화성에 조명이 들어온다.

 

옥상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앉아 있다. 10세 어린 꼬마부터, 80세의 할머니들까지 신바람나게 박수를 쳐 댄다. 세상에 어찌 이런 동네가 다 있을까? 그리고 가정 집 옥상에서 어떻게 음악회를 할 생각을 한 것일까? 거기다가 통장님은 집안 화장실까지 모두 주민들을 위해 개방을 했단다.

 

 

 

시장님도 노래 한 곡은 피해갈 수 없는 곳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염태영수원시장이 함께 자리를 했다. 일정을 바꾸어 이곳이 궁금해 달려왔다는 것이다.

 

“화성을 배경으로 하늘이 맞닿은 곳, 옥상에서 음악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입니다. 지동 주민들은 우리 수원에서 가장 행복한 분들이십니다. 올 해 안 좋은 기억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지나가는 일일 뿐입니다. 이제 그런 것을 다 잊어버리시고.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손수 준비해온 과일까지 내주는 염태영시장도, 이 옥상음악회의 노래 한 곡은 피해갈 수 없었다.

 

  옥상음악회에서 노래를 하는 염태영 수원시장(우측에서 두 번째)

 

이날 옥상음악회는 송정희 외 7명이 들려준 오카리나 연주를 시작으로, 트롯가수 정은의 가요무대. 레인 하모닉스 밴드의 노래, 그리고 최수정과 학생들이 들려 준 플루트 앙상블에 이어 김관수의 성악독창으로 이어졌다.

 

선생님도 춤을 추게 만드는 옥상음악회

 

잠시 화성의 야경에 취해 있을 때, 갑자기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무슨 일인가 해서 무대로 눈길을 돌렸더니, 얌전한 플루트 선생님께서 남학생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얌전한 성생님도 춤을 추게 만드는 옥상음악회, 그래서 옥상음악회는 누구나 춤을 추고 노래를 하게 만드는 곳이라고 하는가 보다.

 

플루트를 지도하는 선생님도 학생과 함께 멋진 춤을. 뒷배경인 화성의 조명이 아름답다

 

음악회가 진행이 되는 중간중간 푸짐한 경품추천 또한 옥상음악회의 재미를 더했다. 자전거를 비롯해, 참기름, 김치 등 지역의 상인들과 주민들이 내 준 경품을 받아든 사람들은 지동에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고 자랑이다.

 

“저는 지동이 이렇게 좋은 동네인지 몰랐어요. 안 좋은 기억만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친구 집에 왔다가 옥상음악회라고 해서 궁금해서 왔어요. 정말 부러운 동네네요. 이제 지동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은 모두 지워야 할 것 같아요.”

 

 가수 정은이 ‘불타는 사랑’을 부르고 있다

 

지동에서 한 참 떨어진 고색동에서 왔다는 ‘김아무개(여, 47세)의 말이다. 그만큼 지동이 요즈음 달라지고 있다. 성을 끼고 조성된 마을 지동.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으로 인해 건물조차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어 수원에서도 낙후된 마을이지만, 지동사람들은 이제는 그 화성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날마다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기에, 지동사람들은 딴 곳으로 이사를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변해가는 지동을 마음에 품은 채.

 

9월 17일, 태풍으로 인해 온 나라가 물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가뭄이 들면 가물어서 걱정, 비가 오면 물난리도 걱정인 나라.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치산치수를 잘해야 명군이라도 했는데, 본인들이야 잘했다고 자화자찬을 어지간히도 해대지만, 과연 민초들이 그렇게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저녁 무렵에 수원천 옆 팔달주차타워 옥상에서는 이색 모임이 하나 예정되어 있었다. ‘수원시민이 만든 단편영화제’가 상영예정이었다. 그런데 비로 인해 취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천시에는 수원제일교회 1층에서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무한으로 주는 행복

 

생각해보면 참 이런 동네가 다 있나 싶다. 그저 마을에 무엇이라도 하나 더 주려고 안달이다. 그 안달이 문화향수까지 충족시킨다. 못골(지동의 순 우리말)은 그래서 요즘 부쩍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었다. ‘수원시민이 만든 단편영화지만, 그래도 영화는 영화인데 7편이나 상영을 한다잖아 글쎄’. 어느 마을 주민의 말마따나 이런 횡재도 있다.

 

물론 전국을 강타한 태풍으로 인해, 50여 몀의 관람객만이 이곳을 찾아왔다. 6시 30분부터 시작하기로 한 영화상영이다. 하지만 영화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30분 동안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무대에 올라 클래식기타 연주와, 노래도 들려준다. ‘못골문화사랑’이란 지동시장에서 운영하는 문화모임의 친구들이다.

 

 

 

실수도 아름답게 보이는 아마추어들

 

이날의 단편영화제는 못골문화사랑과 수원시민감독 모임인 ‘카사노바’가 주관을 하고, 수원시와 지동주민센터, 마을르네상수센터가 후원을 하였다. 영화는 모두 7편으로 단풍잎 속으로(21분 멜로. 오점균), 접촉과 접촉사이(7분 40초 다큐, 김애숙), The Bar(24분 멜로, 강제욱), 반창꼬(7분 드라마, 이정희), 오디세이 2030(17분 SF, 이정훈), 예쁜 봄날(4분 30초 드라마, 강성민), Big Maich(4분 45초 블랙코미디, 윤수란) 등 7편이 상영이 되었다.

 

그런데 첫 번째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노트북에 다운을 받아 실행을 한 영화가 잠시 후에 화면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낭패가 있나? 엔지니어도 영화를 만든 감독들도 진땀을 흘린다. 주관을 한 사람들의 속이야 까맣게 타버렸을 것이고.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다시 상영이 되었다.

 

 

 

“부러우면 지동으로 이사 와”

 

그런데 이렇게 영화가 끊어졌는데도, 관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영화가 중단되었는데도 그냥 계세요?”

“기다려 주어야죠. 시민들이 자신이 비용대고 촬영하고, 편집을 했다는데요. 그리고 첫 작품이라는데 우리가 보아 주어야죠”

 

참 대단한 분들이다. 이래서 이곳이 요즈음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주변 골목마다 재미가 넘쳐흐른다. 그 재미에 빠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른다. 내일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보면 모이신 관객들의 얼굴들이 낯이 익다.

 

“오늘도 오셨네요.”

“아! 왔어요. 영화보러 오셨나보네요”

“예, 이 동네 참 여러 가지 볼 것이 많아요.”

“부러우시면 지동으로 이사 오세요.”

 

환하게 웃으며 이사를 오라고 하시는 할머니. 이젠 지동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영화는 다시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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