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이 갑자기 시끄럽다. 박수소리가 들리고, 노랫소리도 들린다. 지나는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쳐준다. 골목 안을 기웃거려 본다. 어르신들이 길가 의자에 앉아 박수를 치고 계시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보니 가면을 쓴 남자가 작은 마차를 끌고 있다. 그 위에 ‘황금마차’라고 적혀 있다.

 

도대체 황금마차가 무엇이지? 궁금하다. 내용을 알아보아야 하는데 다들 바쁘다. 노래하기에 바쁘고, 음식 나르기에 바쁘고, 박수치기에 바쁘다. 그리고 보니 한가한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 이럴 때는 그저 그 안에 나도 섞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어본다.

 

 

어르신들을 위한 찾아가는 황금마차

 

황금마차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예술서비스를 하는 마차이다. 9월 15일 오후 6시, 수원시 팔달구 지동 292-3 앞에는, 어르신들이 한두 분씩 모여든다. 그리고 가면을 쓴 남자가 몰고 들어오는 황금마차가 입장을 하였다. 이어서 3인조 노래동아리인 ‘주말 앤 브루스’가 신나게 노래를 불러댄다.

 

황금마차는 문화바우처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천원진, 장성진, 장영환 등의 작가가 참여하였고, 송주희와 임주현이 기획을 하였다. 수원시 팔달구에서 상대적으로 어르신들이 많은 지동과 행궁동 일대를 돌며, 모두 12회의 공연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황금마차에서 하는 일은 재미있다. 우선은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영화 상영을 한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곡한 노래로 공연을 한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삶과 마을의 이야기가, 그대로 노래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만도 재미있다. 그런데 맛있는 국수를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께 대접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것 봐, 지동으로 이사 와”

 

황금마차 프로젝트는 마차가 이동한 길, 맛있는 음식,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황금마차 회갑연의궤’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9월 15일에 그 첫 잔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 황금마차의 운영은 9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매월 4회씩 총 12회가 준비되어 있다.

 

 

차가 다니는 골목길이다. 그 한편에는 황금차가 서 있고, 노래동아리들이 자리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구경을 나온 어르신들이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나무의자에 앉아 구경을 하신다. 차들이 지나간다. 그런데 비키라고 누구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그저 서로 비켜가면서 조용히 차를 몰고 갈 뿐이다.

 

“할머니, 재미있으세요?”

“그럼 재미있지. 우리 지동은 이런 행사가 많아”

“또 무슨 행사에 가보셨어요?”

“골목에서 하는 행사가 많아. 옥상에서도 하고”

“좋으시겠어요?”

“그럼 좋다마다. 지동으로 이사 와, 좋아 우리 마을”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으로 지동이 살맛나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은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마을 분들 모두가 지동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송주희(여, 32세)는

 

“지동은 딴 곳보다 어르신들께서 많이 시십니다.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한 고민을 하다가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죠. 황금마차는 직접 찾아가는 마차입니다. 어르신들이 부르면 바로 달려가야죠. 이젠 그동안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신 분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드릴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한다.

 

 

지동마을 골목길. 언제나 정이 넘쳐나는 곳이다. 화성과 함께 어우러진 지동에는 화성의 성돌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넘쳐흐른다. 그래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황금마차에서 즐거움을 만끽한 어르신들은,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되신다고 한다.

‘살인의 추억’이란 불명예인 영화제목으로 유명한 수원시 팔달구 지동. 오원춘 살인사건으로 인해 지동은 사람들이 회피하는 마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지동이 알고 보면, 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날마다 변하고 있는 지동. 그 지동이 이제 새로운 마을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지동’이란 명칭은 정조가 화성을 축성할 때, 이 마을에 커다란 연못을 조성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지동이란 명칭보다, ‘못골’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더 정감이 간다고 한다. 이 이름 안에는 지동이 훈훈한 정이 살아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일려주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문을 열어 준 '지동제일교회' 13층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수원과 화성의 야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열린교회’가 주민들에게 준 선물

 

이 지동은 수원의 화성 밖에서 유일하게 성곽을 끼고 길게 늘어선 마을이다. 지동사람들은 날마다 이 화성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지동사람들은 화성이 단순한 성곽이 아닌, 사람의 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건물들은 낡고 우중충하다. 거기다가 살인사건 이후 사람들이 입주를 회피하다 보니, 마을 안에는 빈 점포들까지 생겨났다.

 

이런 지동의 변화에 가장 먼저 적극적인 호응을 한 것은, 지동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교회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지동제일교회’는 지동의 가장 높은 길인 ‘용마루길’의 입구에 서 있다. 용마루길이란 지동시장을 벗어나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가는 옛 길이다. 이 길은 남수문을 벗어나 위로 오르다가 보면, 지동제일교회에서 시작해 창룡문까지, 길게 외성과 같은 형태로 조성이 된 길이다.

 

 

화성에서 바라본 제일교회. 그 중앙에 솟은 높은 곳이 종루이다. 이곳을 주민들에게 개방해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하였다.(위) 9월 15일 밤 9시에 찾아간 제일교회(아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이 교회의 종탑은 어디서 보아도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높이 솟아있기 때문이다. 지표에서 종탑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47m나 된다. 사람들은 그런 지동제일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교회가 가장 먼저 지동의 변화에 문을 열어 젖혔다.

 

사용하지 않고 있던 교회 종루를 개방한 것이다. 그것도 그냥 개방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돌려주었다. 감히 우리가 알고 있던 교회들에게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노을 길 전망대’, 그 마음이 하늘에 가깝다.

 

전망대의 이름은 ‘노을 빛 전망대’라고 했다. 그리고 8층부터 10층까지는 갤러리로 변했다. 층마다 배색을 맞추어 칠을 하고, 그림도 걸고 사진도 걸었다. 그리고 13층까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층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경관이 달라진다. 7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천천히 꼭대기를 오르면서 즐기는 재미. 맨 위층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아찔하다.

 

밤 9시에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해발 99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화성. 한 눈에 화성이 들어온다. “저기는 동문, 저곳은 서장대, 저곳은 행궁". 종루 꼭대기에서 약간은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돌아본 수원시와 화성의 야경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하늘이 가깝다. 잠시 주춤한다. 순간적으로 등을 쓸어본다. ‘혹 날개라도 하나 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8층에 마련한 위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 입구.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안내를 해준 기노헌 총괄팀장이다.(위) 그리고 9층에 마련된 갤러리(아래)


수원제일교회는 종탑의 7층부터 이 13층까지의 공간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화성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가 이곳에 와서 화성 인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은 임시로 개관을 했지만, 내년 4월이면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완전 개방을 한단다. 거기다가 전망대와 갤러리를 운영하는 인적자원의 지원까지 약속을 했다. 유지 및 보수관리도 교회에서 전담을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이다. 주민들은 물론 ‘노을 빛 전망대’를 올라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열린교회’에 감사를 한다. 더구나 닫혀있는 문을 연 제일교회는 예배를 보는 신성한 공간까지, 음악회를 할 수 있도록 운영을 하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지역을 위해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이런 마을이 바로 지동이다.

 

 

끝없는 변화로의 추구, 지동은 날마다 깨어난다.

 

날마다 변해가고 있는 지동. 이 마을은 그저 골목만 들어서도 재미있다. 골목길마다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다가 보면, 그 안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린꼬마들의 함성도 들린다. 꽃들의 속삭임도 있고, 나무인줄로만 알고 기어오르다, 이마에 혹을 붙인 벌레의 불평도 들을 수가 있다.

 

이런 지동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고자 한다. 지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요즈음 전보다 더 똘똘 뭉쳤다. 그 안에 훈훈한 정이 있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내 가족이 된다. 그리고 무엇이나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 수원 화성의 성벽을 바라보고 사는 지동사람들은, 모두가 한 가족이었다. 그 안에 수원제일교회도 있었다.

세 사람의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물과 바람, 공기, 빛 등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들이 다양한 색채와 오브제, 그리고 움직임이 수원천을 따라 흐른다. 행위예술가인 김석환, 김백기, 신용구 등이 무대를 꾸민 퍼포먼스 ‘흐름에 대한 상징과 이미지 조각들’이 수원천 남수문 앞 지동교 위에서 거리공연으로, 8월 31일 오후 7시에 무대를 열었다.

 

좁은 공간에서 수원천을 배경으로 하는 이들 3인의 행위예술가들은 수많은 공연에서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예술인들이다. 2012 수원화성국제연국제에 <4인 4색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공연은 김석환으로 부터 시작이 되었다.

 

아무리 막고 숨어도 오염될 수밖에 없어

 

김석환은 물이 담긴 비닐봉지를 삼각형으로 꾸민 나무에 매달아 놓고, 우산의 헝겊부분을 들어내 자신의 몸을 감싼다. 살만 남은 우산과 물이 가득한 비닐주머니에 주사기를 이용해 묽은 물감을 탄다. 비닐주머니의 물은 점점 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그 맡에 쭈그리고 앉은 배우는 바늘구멍에서 흐르는 붉은 물을 뒤집어쓴다.

 

 

“한 마디로 오염입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공해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죠. 별별 방법을 다 써 봅니다. 제가 우산의 헝겊부분으로 몸을 감싼 것도, 다 공행에서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만 남은 우산에서 보이듯, 우리는 언제나 공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죠. 이곳 수원천에서 이렇게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됩니다. 물은 소중한 생명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그 물이 오염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저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보지만, 어쩔 수 없이 공해에 젖어버린다는 것이다.

 

 

물을 상징하는 세 사람의 배우

 

종이옷으로 전신을 감싸고, 얼굴을 희게 칠한 배우가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등장을 한다. 신용구는 영혼이 갈구하는 극락을 향한 염원을 동작으로 상징을 한다. 무대를 돌면서 극락으로의 염원을 그려낸다. 결국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피언의 세계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형상화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황토색 천으로 전신을 감싼 또 한 사람의 배우 김백기가 수원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간 배우는 커다란 노를 저어 또 다른 세상을 찾아간다. 세 사람의 아티스트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동작을 이어간다. 서로가 부딪치지도 않고 서로가 관여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해진 공간을 따라 흐를 뿐이다.

 

 

 

전체적으로 이 무대는 물길이다. 그 물이 자유스럽게 흐르듯 배우들도 각자의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이 된다. 결국 그 주제는 수원천의 물길이란다. 물과 빛, 그리고 바람의 흐름들이 수원천을 따라 흐르는 것이다.

 

“사실은 오늘 공연에서 방생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명을 살리는 방생이 오히려 이곳에 풀었을 때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길은 어떻게든지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퍼포먼스란 배우가 관중들에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이나 내용을, 신체 그 자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예술 행위를 말한다. 세 사람의 행위예술가들은 각자의 행위예술을 한 무대에 올렸지만, 전체적으로는 물길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다.

 

음악에 맞추어 각자가 표현하는 행동. 그리고 서로가 하나의 맥으로 이어지는 무대. 이미지 조각들은 다 다르지만, 그들은 한 무대에서 결국 하나로 만나게 되었다. 대사 없이 동작으로만 이루어지는 행위예술.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그들의 다음 공연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8일간 수원은 시끌벅적하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 박수를 치기도 하고, 환호를 지르기도 한다. ‘2012 수원화성 국제연극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진주’, 다국적 연극단의 ‘나비의 꿈’, 호주의 아크로바트 공연인 ‘낙하프로젝트’와 일본의 ‘서커스 퍼포먼스’, 중국의 ‘인어공주’와 러시아의 ‘러시아 카바레’ 등 해외 참가작과 우리나라의 극단들이 참여를 해서 화성행궁광장, 수원천 길거리 공연장, 장안공원 등 여러 곳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국내공연작 중 예술무대 ‘산’의 길거리 인형극인 선녀와 나무꾼의 뒷 이야기인 ‘선녀의 날개를 찾아서’가, 29일 수원천 거리공연으로 오후 7시부터 화성 남수문 앞 지동교에서 펼쳐졌다.

 

 

 

아름답지만 슬픈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

 

초등학교에서 배운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나무꾼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선녀는 그저 인간세계로 내려와 날개옷을 빼앗기고, 아이를 셋이나 낳은 후에 날개옷을 입고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상황을 조종하는 것이 바로 나무꾼으로 인해 목숨을 건진 사슴의 배후조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조현산 구성 연출로 극으로 꾸며진 ‘선녀의 날개를 찾아서’에서는 5m의 대형 인형으로 관람객들을 만나게 되는 나무꾼과, 선녀의 슬픔을 확장된 커다란 얼굴을 가진 선녀, 자신의 의사대로 선녀와 나무꾼의 일생을 좌지우지하는 사슴 무리들이 출연을 한다.

 

 

20년 동안 인형극에 푹 빠져 있었다는 연출자 조현산은 연출의 변을 이렇게 말한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미쳐 모르고 지나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선녀와 나무꾼은 선녀의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사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한 나무꾼의 이야기가 주가 됩니다. 하지만 과연 날개옷을 빼앗기고 아이를 낳고 살았다고 해서 선녀가 행복했을까요? 아이를 셋이나 낳은 선녀가 날개옷을 찾아 입고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것은, 선녀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날개옷은 선녀의 자유의지입니다. 그 옷을 빼앗긴 순간 선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그런 점들을 인형극으로 구성을 해, 수원천에서 사람들과 조우를 하는 것이죠.”

 

사슴들의 조종을 받는 나무꾼의 머리는 창살에 갇혀

 

5m 높이의 큰 머리를 가진 나무꾼은 인형으로 대신했다. 그 인형의 뒤에는 조종석이 있다. 사슴들이 그 곳으로 올라가 나무꾼을 조종한다. 나무꾼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슴들이 번갈아 조종하는 대로 움직인다. 나무꾼의 머릿속에는 선녀의 날개가 있다. 그리고 나무꾼의 머리는 창살로 옭매어있다. 늘 갇혀있는 사고로 인해 자신이 아닌 사슴의 머리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사고는 창살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슬픈 얼굴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큰 머리의 선녀가 등장한다. 선녀는 나무꾼에게 날개를 빼앗기고 슬픈 표정으로 나무꾼과 만난다. 그 뒤로는 사슴들이 쫒아 다니면서 선녀와 나무꾼에게 강요를 한다. 자유롭게 날기를 원하는 선녀는 객석 밖으로 나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를 갈망한다.

 

큰 도끼를 손에 쥔 나무꾼은 이미 자아(自我)가 없다. 뒤에서 조종하는 사슴들의 의지대로 움직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상징적으로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자유를 찾아 공연장을 떠났던 선녀가 다시 돌아왔다. 사슴들은 갖은 회유를 하다가 선녀에게 날개를 갖다 준다. 그러나 선녀는 이곳에서는 하늘로 올라가질 않는다. 날개옷 그 자체가 바로 자유로의 갈망이기 때문이다.

 

 

 

 

500여명의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0분 동안 펼쳐진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선녀는 얼굴에 흐르던 눈물을 닦고, 나무꾼에게도 돌아갔다. 공연 내내 슬프던 선녀의 얼굴에 모처럼 환한 미소가 보인다. 자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진정한 자유는 환경 등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선녀 역 김양희(여, 36세) 대담

 

- 연극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바로 연극무대에 올랐으니 한 13~4년 정도 된 듯하네요.

 

- 이 극에서 선녀 역을 맡아하셨는데, 선녀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를 하셨는지?

우리가 극중에서 만나게 되는 선녀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무꾼과 살아야했고, 아이를 낳기도 했으니까요. 날개를 다시 찾고는 바로 하늘로 올랐다는 것은, 나무꾼과의 생활이 행복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뜻하죠. 아마도 이 극중에서 선녀는 쉴 새 없이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 날개를 찾고도 하늘로 올라가질 않았는데?

예, 아마도 극중에서 선녀가 느끼는 감정은 다양한 것 같아요. 슬픔과 기쁨, 그런가하면 어두움과 밝음, 그런 것들이 교차를 하니까요. 이 극에서 저희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목소리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이라는 것이죠. 하늘에 올라가지 않아도 날개를 찾았다는 것은 갈망하던 자유를 찾았기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 공연은 어느 정도나 하시나요?

저희 극단은 해외공연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 달이면 한 일주일 정도만 쉬고 20일 이상을 공연을 합니다.

 

 

- 앞으로 꼭 맡아서 하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이상하게 저는 독한 역을 한 번도 해보질 못했어요.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독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극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예, 고맙습니다.

어느 고장이나 지역 나름의 독특한 먹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바닷가에 가면 당연히 해산물류의 음식이 많을 것이고, 산 속 깊은 곳에서는 산채나물 등이 지역 먹거리로 자리를 잡는다. 도심인 수원 역시 군데군데 지역의 독특한 먹거리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수원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들라고 하면 ‘수원갈비’를 꼽는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역시 매향교 아래편으로 줄을 지어 성업 중인 ‘통닭거리’를 들 것이다. 그러나 이곳 말고도 수원에는 권선시장의 ‘족발집’과 수원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이 유명하다. 순대타운은 팔달문 앞의 상권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자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

 

순대와 곱창, 그리고 야채가 수북하니 먹음직스러운 순대곱창볶음이 1인분에 8,000원이다

 

팔달문 시장을 중심으로 늘어난 상권

 

현재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는 각기 독특한 몇 개의 시장이 모여서, 남문 앞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팔달문시장은 화성 축성 이전부터 이주를 한 백성들과 노역자를 상대로 장시가 개설되었을 것으로 본다.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화성은 축성을 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축성이 시작되자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필품은 물론, 물자조달을 위한 장거리가 형성이 되었다. 팔달문 앞에 있는 상권은 이미 정조 이산이 화성을 축성하기 이전부터, 이곳을 기점으로 난전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조 이산이 직접 6만 냥이라는 밑천을 대주어 이룩한 시장. 남문인 팔달문 앞에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러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정조는 이 시장으로 인해 경제를 살리고 더욱 강한 왕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 것이다.

 

이산 정조의 ‘팔달문’에 실린 큰 뜻

 

유상, 일반적인 장사치들이 아니다. 유상이란 수원 팔달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선비들이었다. 물론 이 유상이란 말은 버드나무를 심은 수원을 ‘유경’이라 부른데서 비롯한 용어이다. 이들을 새롭게 조명해서 부르는 용어가 바로 유상이며, 전국 각처에서 모인 선비들로 이루어진 장사치들을 뜻한다. 그래서 이 유상들은 정조의 효심과 장조의 강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뜻에 동참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유상들 중에는 윤선도 가문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참여를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주었다.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원 팔달문 시장의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팔달문이란 말의 뜻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사통팔달’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보다 더 깊은 정조의 뜻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정조는 화성의 북문을 ‘장안문’이라고 했다. 장안문은 바로 도성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정조는 이 팔달문 앞에 세계적인 유통망을 갖춘 상권을 조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왕이 직접 투자해 만든 팔달문 앞의 상권, 그것이 바로 이곳에 각기 다른 특색을 갖춘 많은 시장들이 몰려들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장 110여년의 지동시장과 순대타운

 

수원천 물길이 흐르는 수원화성의 남수문에서 동편을 바라보면, 장거리 입구에 화성을 닮은 구조물이 서 있다. 이곳이 바로 개장한지 110여년 정도가 된 ‘지동시장’이다. 이 지동시장은 요즈음 ‘순대타운’으로 인해 유명세를 티고 있다. 상가 1층 전체가 순대집으로 들어선 이곳 말고도 순대집은 20여 곳을 넘는다.

 

 

인심좋은 '남문곱창'의 사장님이 서비스를 해준 순대국과 양념장

 

모처럼 해갈을 시켜주는 비가 뿌리는 날 저녁에는, 술 한 잔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가 않다, 이런 날 찾아갈만한 곳이 바로 순대타운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저마다의 간판을 내건 순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저 이웃하고 있는 순대집들이 정겨운 곳이다. 요즈음에는 외지에서 온 손님들도 이곳을 한 번은 거쳐 가고는 한다.

 

어느 집을 들어가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안에 모여 있는 순대집들의 가격은 모두 동일하다. 다만 업주들이 손님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는가는, 자주 가는 사람들이라야 알 수가 있다. 물론 어느 집을 골라 자리를 잡던지, 손님들에게 정성껏 대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그만큼 이 순대타운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저녁시간이 되면 좀처럼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

 

 

“순대국물 달라면 한 그릇 그냥 드릴께요.”

 

8월 12일, 하루 종일 비가 뿌린다. 일과를 마치고 순대타운을 찾았다. 특별히 어느 집을 정해서 다닐 필요가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문 앞에 빈자리에 그저 속 편하게 앉기만 하면 되는 곳이 바로 이 순대타운이다. 순대곱창볶음 2인분을 주문하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순대와 곱창은 미리 익혀놓은 것이니, 그 위에 야채 등을 푸짐하게 놓아주기만 하면 된다.

 

네모난 철판 위에 가득한 음식. 불 위에서 끓고 있는 음식만 보아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푸짐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이곳을 찾아와 주문만 하면 된다. 술을 몇 잔 먹다가 보니 팍팍하다. 순대국을 한 그릇 달라고 하니 “한 그릇 그냥 드릴께요.” 란다. 이런 인심이 바로 이곳 지동시장 순대타운의 인심이다.

 

 

그저 편안하게 지인들과 모여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 순대곱창볶음 1인 분에 8,000원, 순대국밥은 5,000원이다. 소주 두병을 마시고도 계산은 22,000원이란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혹 화성을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빠트리지 말고 지동시장을 찾아보길 권한다. 사람이 사는 정이 묻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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