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귀찮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집안으로 복잡하게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사람을 성가시게 만드는 일도 그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남들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즐겨라 하는 분이 계시다. 팔달구 지동 295 - 7번지에 사시는 권영복(남, 69세)과 김연자(여, 66세) 두 내외분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5년 동안 마을만들기 사업에 롤 모델이 되고 있는 곳이다. 온통 골목마다 벽화로 가득한 이곳에서, 두 분은 벌써 40년 세월을 지동에서만 살았다. 이제는 지동이 고향이나 진배없다. 두 분은 지동 벽화골목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시다. 그만큼 지동 2년 차 벽화길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재미, 문을 열면 느낄 수 있어

 

아침 일찍 두 분이 사시는 곳을 찾았다. 골목길에는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인 담벼락 평상이 설치되었고, 무슨 작업을 하는지 쇠를 잘라내는 등 분주하다. 좁은 골목길이 왁자하니 생기가 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동 벽화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물감 등이 가득 쌓여있다. 이렇게 물건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불편하면 할 수가 없죠.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요. 조금 시끄럽고 왁자한 것이 사는 것 같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많은 분들이 저희 집안으로 드나드는 것이 더 좋습니다.”

 

 

 

불편하시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영복 어르신은 오히려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어 더 좋다고 하신다.

 

“사람이 흙을 밟고 살아야죠. 그렇게 살면서 이웃과 함께 소통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서로 정을 나누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아파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사는 것이죠. 꽁꽁 닫아걸고 안에만 있으면, 그게 무슨 사람 사는 재미입니까?”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더운 날에는 얼린 물을 주고, 날이 쌀쌀해지면 커피를 타다가 주기도 한다. 수돗물을 마음대로 쓰도록 하는 것도 고마운데, 물감이며 앞치마, 붓 등, 모든 것이 대문 안 마당에 놓여있다. 그것을 일일이 정리를 하시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하신다.

 

 

 

지동 생활 40년,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

 

“처음에는 여울아파트 맞은편에 살았어요. 그런데 길이 나는 바람에 집이 헐려 1995년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죠. 이 골목은 딴 곳과는 달라요. 한 마디로 정이 넘치는 골목이죠. 날이 좋을 때는 골목에 모여 삽겹살도 구워먹고, 빈대떡도 부쳐서 서로 나누고는 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재미죠.”

 

골목에서 ‘꽃집할머니’로 통하는 김연자 할머니(하긴 요즈음은 66세에 할머니라고 하면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는 이곳에 새록새록 정이 붙는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벽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 이곳에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너무 조용한 곳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림을 그리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즐겁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집을 자기들 집처럼 드나들면서 왁자지껄하면 사람 사는 맛이 나기도 하고요”

 

천성이 착하신 분들 같다. 그렇기에 그렇게 몇 달이나 계속되는 벽화길의 모든 것이, 이 집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두 분이 사시는 집이, 지동 제2차 벽화길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산실 같은 곳이란 생각이다.

 

외손자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내외분

 

지동 벽화길에는 유명한 꼬마화가가 있다. 바로 7세짜리 김형주이다. 형주는 두 분의 외손자가 된다. 아들이 없는 두 분에게는 외손자들만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형주는 늘 이곳에 와서 그림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형주를 지도하고 있다는 작가분도 형주의 칭찬에는 인색하지가 않다.

 

그림을 그려왔는데, 7세 꼬마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는 것. 직접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역시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급기야 형주가 그려 온 그림을 벽화에 인용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두 내외분과 외손자인 형주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 아마도 두 분이 벽화를 좋아하고, 벽화 길 조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벽화길 조성을 마칠 때까지 두 분의 노고가 클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그림그리기를 묵묵히 도와주고 계시는 두 분. 이 분들이야말로 마을만들기 사업의 롤 모델이 아니겠는가?

 

이런 분들이 마을에 계시지 않았다면, 일일이 그 많은 물감 통이며 각종 도구들을 옮겨와야 하니 말이다. 이 골목의 벽화가 끝나는 날, 두 분을 위한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조촐한 잔치라도 벌어야 할 것만 같다.

참 바쁘게도 사는 분이다. 언제나 수원시 팔달구 지동 벽화골목을 조성 중인 길에 들어서면, 그림을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커피를 내오는 분이 있다.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많게는 세 번씩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든다. 그럴 때마다 물을 끓여 따듯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돈으로 따진다면야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성이 부족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늘 그렇게 말없이 준비를 해놓고, 또 벽에 달라붙어 열심히 칠을 해댄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10통장을 맡아보는 남궁미선(여, 45세) 통장이다. 그런데 이 통장님 이렇게 혹사를 하다가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동 벽화길에 서 있는 남궁미선 10통장


 

봉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는 분인가?

 

11월 9일, 오전 10시 30분에 화성 동장대(연무대) 앞에는, 수원중부 어머니폴리스 단원 50여명이 모였다. 기념촬영을 간단히 한 후 주의사항을 듣고, 화성 안길을 따라 길을 걷기 시작한다. 손에는 비닐봉투와 집게를 들었다. 길을 가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환경봉사를 한다고.

 

‘어머니폴리스단’은 수원 중부경찰서 관내 각 학교마다 폴리스단이 있고, 그 폴리스단이 연합해 ‘어머니폴리스연합단’이 되었다. 그 인원이 자그마치 1,200명이나 된다. 어머니폴리스단원이 하는 일은 많다. 학교 순찰에, 등, 하교 길 교통안내, 청소년 상담, 관내 순시, 그리고 일일찻집 운영과 거리 캠페인 등 몸을 둘로 쪼개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수원 중부어머니폴리스 연합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남궁미선 통장이 봉사를 하고 있다(위 좌측) 단원들이 들고가는 비닐봉투에 무게감이 느껴진다(아래)


 

한 달이면 거의 보름 정도를 봉사를 한다고 하는 어머니폴리스연합단의 환경봉사를 하는 현장을 취재하는데, 낯이 익은 분이 보인다. ‘어! 10통 통장님이시네’. 인사를 하고 알아보니, 지동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있단다. 남궁미선 통장은 지동초등학교 어머니폴리스단의 단장이면서, 연합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는 것.

 

그래도 봉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니 통장님 그렇게 여기저기 봉사를 하시다가 보면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아이가 셋에다가 가정 일 해야죠. 거기다가 통장을 맡았으니 그 일도 게을리 할 수 없죠. 지동 관내 통장들 모임에 나가 봉사 해야죠. 그리고 아이가 다니는 지동초등학교에 가서 순찰 돌아야죠. 연합단 일도 일주일에 몇 번씩 나가 보아야죠”

“그렇게 하시다가 큰일 납니다.”

“아직은 버틸 만 해요. 그래도 요즈음은 우리 지동의 침침하던 골목이 깨끗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이제는 골목 안 어르신들도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 주시고요.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도 날마다 늘어가고 있고요”

 

 

 

참 못 말리는 통장님이시다. 하기야 봉사를 한다는데 막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골목길 어르신들도 걱정을 하신다. ‘우리 통장님 저러다가 병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원’이라고 혀를 차신다. 말려서 될 일은 아니다. 마을 일을 보는 사람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느냐며 더 열심을 내야 한단다.

 

“그래도요 요즈음은 힘이 넘쳐요. 우리 10통 골목 보세요. 얼마나 환해졌어요. 어르신들도 저렇게 나와서 칠을 하시고 함께 걱정들을 해주시는데, 젊은 제가 조금 더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죠. 그리고 저희 10통은 정이 넘치는 곳이잖아요. 어르신들이 모두 오래도록 이곳에서 사신 분들이라 표정만 보아도 그 속을 알 수 있어요”

 

오늘도 환경봉사를 마치고나면, 지동으로 돌아가 다시 벽에 칠을 해야 한단다. 그렇게 봉사를 하는 것이 즐거워 오히려 건강에도 좋다고. 아마도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은 지동 10통 남궁미선 통장. 지동 벽화가 인터넷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말이면 카메라를 둘러멘 관광객들이 지동으로 찾아든다.

 

“이곳 골목에서 커피장사를 하면 잘 팔릴까요? 커피 팔아서 번 돈으로 마을을 위해 사용 하려고요. 아직도 우리 마을엔 할 일이 많거든요”

 

 

말을 들어보니 아직은 견딜 만한 듯하다. 이 골목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그분들을 늘 걱정을 하고 산다는 남궁미선 통장.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고함을 친다.

 

“기자양반, 우리 통장님 기사 좀 잘 써주세요. 정말이지 우리 통장님 같으신 분 없어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마련한 벽화골목 중, 지난해에 조성한 길이 있다. 이곳은 체계적인 기획에 의한 벽화길 조성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몇 개 팀이 나누어 그림을 그렸다. 물론 모두 전문가들이 그린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팀에서도 그렸고, 고등학생도 그렸다. 그래서인가 올해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골목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올 초만 해도 이 길은 실패를 한 골목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조금은 부자연스런 골목이 달라지고 있다. 골목에는 담벼락에 그린 그림과 어울리는 나무벤치가 놓이고, 여기저기 목재로 만든 화단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그런가하면 집집마다 개성이 있는 문패가 사람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이 길의 압권은 역시 담벼락 평상

 

골목은 동문에서 성벽과 나란히 형성된 지동 게이트볼 장을 지나, 조형물이 서 있는 골목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첫째 집 대문 양편에는 마치 절간의 주련과 같이 대문 양편 벽을 이용해 글을 썼고, 양철지붕과 어울리는 시골의 풍경도 그려 넣었다. 이 골목을 벗어나면 지동시장에서 창룡문으로 향하는 차도가 나온다.

 

이 차도에는 아직도 몇 집이 굳게 셔터가 내려져 있는 집들이 보인다. 지동이 재개발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인들이 매수를 한 집들이 대부분이다. 재개발이 문화재보호지역으로 인해 무산이 되자, 그대로 방치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 길이 달라지고 있다. 핑퐁다방이 생기고, 담벼락 평상이 아름답게 자리를 잡고 있다.

 

 


되살림 발전소? 무슨 발전을 시키나.

 

골목은 구불거리고 이어지는데, 그 중간쯤에 한창 리모댈링 공사를 하는 집이 있다. 몇 년 째 비어놓아 흉물로 변해가던 집을, 주인의 허락을 받아 새롭게 꾸미고 있는 것이다. 지동자치센터 기노현 총괄팀장은 이 집이 사연이 많다고 한다.

 

“이 집을 주인에서 허락을 받아 3년간 저희가 사용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집 수리비가 더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이 집은 ‘되살림 발전소’로, 지동 골목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되살림 발전소는, 말 그대로 지역의 행복을 되살릴 수 있는 발전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은 물론, 작가들의 작업 공간으로도 사용을 한다. 그런가하면 이곳에서 지동을 소개할 수 있는 해설사를 양성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을 하게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아직은 공사 중이긴 하지만, 이 되살림 발전소는 지동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나아가 이곳에서 지동의 모든 마을만들기의 주체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곳을 중심으로 뻗쳐나가는 골목벽화는 5개년 계획이 마무리가 되면, 총 연장이 3km가 넘는다. 전국 최장의 벽화길이다.

 

되살림 발전소의 기대

 

되살림 발전소는 담을 헐어버렸다. 이유는 지동 주민들의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곳을 들려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집 앞으로는 공간이 있어, 이곳을 공연장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이곳은 지동의 발전을 위해 몇 개의 모임이 함께 사용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 안에서 지동의 발전을 위한 모든 토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되살림 발전소는 소통의 공간이자, 열린 대화창구입니다. 꼭 지동주민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들려갈 수 있는 곳이죠. 이곳에서 지동의 모든 마을살리기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토의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장으로 마련할 것입니다”

 

기노현 팀장은 되살림 발전소의 열린 운영은, 지동주민들이 주체가 된다고 설명한다. 행정편의적 사고가 아닌,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지동. 그곳에 또 하나의 명소가 생겨난다. 이 되살림 발전소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닫힌 공간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다가보면 난관이란 늘 있게 마련이다. 어려서 가난을 지고 살아서인가? 웬만한 고생은 고생으로 알지를 않았다. 하지만 정말 지금 생각하면 그 고생이 참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고,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식자재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주)유진상사 한원찬(남, 49세) 대표의 이야기이다.

 

1964년 경남 포항에서 청송으로 가는 길목인 시골마을에서 자라나면서부터, 어려움이 시작이 되었다. 그 당시야 학교를 걸어서 다녔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지를 못했다. 집에 돌아오면 늘 소먹이인 꼴을 한 망태씩 해다 놓아야, 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고생

 

“5남매인 저희들은 그 당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저 먹고 살기도 버거울 때니까요. 중학교 때는 거의 두 시간을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죠. 제 깐에는 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를 공고를 가려고 했지만, 선생님의 만류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에 합격을 했지만, 바로 군에 입대를 해버렸다. 그리고 울산에 있는 세원산업이라는 꽤 괜찮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런데 월급만 갖고는 이미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 세울 수가 없어, 1986년에 수원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길고 힘든 남의 집 살이가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 남의 집에 배달원으로 취직을 했는데, 일요일도 없이 일을 했어요. 월급을 135,000원을 책정을 했는데, 하도 부지런히 일을 하니 150,000원을 주시데요. 그것만 해도 저에게는 고마운 일이죠. 몇 년간 참 부지런히 일을 했어요. 지동 재래시장에서 생선가게에 취직을 했는데,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배어 어쩔 수가 없었죠.”

 

당시는 6촌 형님 댁에서 기거를 했는데, 단 칸 방이었다는 것이다. 미안하기는 해도 어쩔 수가 없이, 형님 내외와 조카들과 한 방을 사용했다고. 그런데 말이 없던 형수가 ‘삼촌에게서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고 하더라는 것. 그 뒤 형님 댁을 1년 만에 나와 여기저기 2년 동안 남의 집 살이를 해오다가, 그래도 당시는 부자 동네라는 우만동의 아파트촌에 슈퍼 종업원으로 취직을 했다.

 

 

쓰레기도 치워주어야 했던 시절

 

11월 7일, 오후 7시가 넘어서 수원시 팔달구 지동 475-20에 소재한 (주)유진상사 사무실에서 만난 한원찬 대표. 옛날 목욕탕을 그대로 개조를 해 만든 창고였다. 지하부터 3층까지 가득 쌓여있는 물건의 종류는 5천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잠시 옛날 생각을 하는 듯 말을 멈춘다.

 

“그 당시 현대아파트라면 꽤 잘사는 곳이었어요. 수원시 부시장님의 관사도 그 아파트에 있었고요. 배달을 시켜서 물건을 갖다 주면, ‘총각 저 쓰레기 좀 갖다 치워져’라고 이야기들을 하죠. 수도 없이 그렇게 심부름을 해주었죠. 그렇다고 단골인데 싫다고 할 수도 없었고요”

 

그렇게 어렵게 생활을 하다가 50만원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것도 결혼을 할 때 전셋돈으로 받은 돈을 갖고. 처음에는 차도 없어 남의 차를 빌려서 물건을 떼고, 그것을 팔고나서 차를 갖다 주기도 했단다. 그렇게 노력을 하다가보니 차츰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입북리 골짜기에 방을 하나 얻어 살았는데, 큰 길을 나오려면 한참이나 걸어야 합니다. 한 번은 아내가 아이를 업고 나왔는데 보니, 아이 얼굴에 파리가 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거예요. 큰 아이에게는 지금도 마음에 빚이 있습니다. 어려서 너무 많은 고생을 시켜서요.”

 

 

인생을 망쳐버린 IMF, 하지만 다시 일어나

 

“구멍가게를 하다가 한 번 망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열심히 한 덕에 단골도 생기고 좀 살만하다 싶으니까 98년 IMF가 닥쳤죠. 당시 거래처 사장에게 가게수표를 빌려 준 것이 있는데, 이 사람이 은행에 돈을 넣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또 가진 것을 다 날리고 말았죠.”

 

앞이 캄캄했다. 지갑이며 신원을 알만한 것을 다 꺼내놓고, 영동고속도로를 밤새 걸었다. 그저 죽고만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오자 정신이 들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살자’고 다짐을 했다. 창피하기도 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를 않아 허기가 졌지만,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집사람이 저에게 하는 말이 ‘당신은 할 수 있어요.’라는 겁니다. 그 말에 정신이 들었죠. 그렇게 식자재 유통에 뛰어든 것이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살면서 저는 믿음과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마음을 열고 인정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저 사업의 정신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6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식자재의 모든 것을 도매한다. 아침 5시면 일어나 10시가 넘도록 일을 한다. 처음 거래를 시작한 거래처가 벌써 20년 가까이 된 지기가 되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수원대학교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택했다.

 

“이제는 조금은 사회에 환원을 시켜주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너무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만 했지, 남을 위해서 쓰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지금 4학년인데, 이제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사회복지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기업에 더 많은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11월 2일에는 바르게살기 수원시협회장의 자격으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전 회원을 대표해 받았을 뿐, 자신의 공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소문도 내지 않았노라고.

 

“그동안 힘이 든 데도 불구하고 묵묵히 함께 걸어 온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한 달이라도 아내와 둘이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마음 편하게 다녀보지를 못했거든요. 둘만이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죠.”

 

환하게 웃는 한원찬 대표에게서 우리는 그의 소탈함을 느낀다. 역전의 명수도 좋지만, 이제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역전이 없었으면 한단다. 대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제법 차다. 벌써 계절이 이리 바뀌었나? 그리고 보면 참 세월이란 놈은 누구를 기다려주지를 않는가 보다.

요즈음처럼 날씨가 쌀쌀해지면, 따끈한 음식에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가끔 찾아가는 집이 있다. 수원의 ‘지동 순대타운’이야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음식 맛도 괜찮지만 시끄러운 곳을 워낙 싫어하는 성미인지라, 조금은 공간이 좁더라도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집이 좋다.

 

순대타운 길 건너편에 보면 ‘매일 직접 순대를 만드는 집’이란 문구를 건 집이 있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402-28에 소재한 <옛 장터 밀알 전복 순대국>의 지동 본점(사장 김봉석)이다. 이 집 역시 순대와 곱창으로만 메뉴가 짜여 있다. 그런데 이 집이 남다른 것은 매일 순대를 만든다는 것만이 아니다.

 

 

순대 한 줄에 전복 한 개가 들었다고?

 

2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이 집은 날마다 직접 순대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를 이어 장사를 하기 때문에, 음식 하나 섣불리 할 수가 없다는 것.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지인들과 마주 앉았다. 우선 이 집의 자랑인 토종순대 한 접시를 시켰다. 가격은 7,000원이다. 그런데 이 집의 순대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순대 안에 전복을 넣는 것이다.

 

순대 한 줄에 전복 한 개. 이 밀알순대만의 보양식이라는 순대입니다. 순대국을 시키면 가마솥에 내부압력을 이용하여 열이 골고루 퍼지게 하여, 콜라겐을 함유한 진국을 만들어 낸다는 것. 그것만도 충분한데 거기다가 전복까지. 전복이야 성인병인 당뇨를 예방하고 고혈압을 치료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을 터.

 

 

 

전복내장은 정력제로도 탁월한 효과가 있지만, 뜨거운 음식인 전복과 찬 음식인 돼지가 만나 소화가 잘되는 보양식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순대 맛을 보니 입안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맛만으로도 좋기 때문이다.

 

묵은지와 어우러진 막창, 그런데 이 깻잎은 왜?

 

막창구이(1인분 9,000원)를 시켰다. 처음에 불판에 묵은지와 버섯, 양파를 올려준다. 조금 후에 익힌 곱창을 올리더니, 이내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놓는다. 그런데 이 집에는 밑반찬 중에 잘라놓은 깻잎이 있다. 손으로 잡았더니 식초 냄새가 난다. 궁금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법.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깻잎은 식초에 담가 놓은 것인데, 일반 식초가 아니라 저희 집에서 특별히 조제를 한 소스를 이용하는 겁니다. 순대와 곱창의 냄새를 없애는 것이죠. 한 번 싸서 드셔보세요”

 

잘 구워져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곱창을 깻잎에 싸서 입안에 넣어본다. 조금은 쉰 듯한 맛이지만, 냄새가 나질 않는다. 입안으로 느껴지는 맛이 상쾌하다. 막걸리 한 잔이 기분 좋게 목을 넘어간다.

 

 

“사장님 불곱창 하나 추가요”

 

이왕 시작을 한 것이 아닌가. 몇 명이 먹기에는 이 안주만 갖고는 부족할 듯하다. 불곱창 하나를 추가시킨다(1인분 8,000원) 잠시 후에 내온 불곱창. 하나를 들어 먹어본다. 입안에 매운맛이 돈다. 그래서 술 한 잔에 더 들어가는 것인지. 그런데 이 불곱창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에서 당긴다.

 

서비스로 내주는 가마솥에서 울어낸 사골국물의 맛도 일품이지만, 그보다는 이 집 젊은 2대째 사장의 마음 씀씀이가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항상 웃는 낯으로 손님들을 대하면서, 늘 즐거운 표정으로 일을 한다. 이 집에서 느끼는 행복은 그것만이 아니다. 가끔은 손수 만든 맛있는 맛보기 순대 한 접시도 내어주는 풍성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 된 단골들이라야 하지만. 날이 쌀쌀해진 요즈음, 딱 찾아가기 좋은 집이다.

 

 

상호 / 옛장터 밀알전복순대국

주소 / 수원시 팔달구 지동 402-28

문의 / 031 242 0042

사장 /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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