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터 매년 거르지 않고 미술대전 열어

 

9회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이 이번에 제9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은 수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연령(10~90)이 참여해 사생대회와 공모전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데 특히 올해는 그날의 함성이라고 해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3·1정신을 함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전시를 꾸몄습니다.”

 

9일 오전, 아침부터 폭염으로 인해 길을 걷기도 버겁다.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이 열리고 있는 수원미술전시관을 찾아갔다. 날이 워낙 덥고 오전이라 전시실을 찾아온 관람객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에는 공모전에 입선을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반대편에는 크레파스로 그린 사생대회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은 어르신들의 문화잔치이다. 청춘미술대전은 어르신들이 추억과 인생의 발자취를 담아 미술대전을 펼친 것이다. 작품 옆에 소개하고 있는 작가들의 연령대를 보니 8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과거 우리네 생활상을 그린 작품들도 보인다.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

 

9회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 신현옥 대회장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쌀밥과 보리밥을 먹던 어르신들이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그린 작품들입니다라고 설명하면서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은 효원의 도시 수원에서 순수하고 소중한 추억을 토대로 미래를 향하는 꿈을 꾸며, 그 꿈을 실행에 옮기는 청춘의 한마당이라고 한다.

 

신현옥 대회장은 이번 제9회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은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개막식과 시상식에 참여했다.”라면서 9회를 맞이하다보니 이제는 전국적으로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이 그만큼 소문이 난 듯하다는 것이다. 신현옥 대회장은 올해는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내려 80세 이상드신 수상자들은 참여를 하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축사를 통해 어르신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따듯한 삶의 향기가 묻어난다면서 고향에 대한 아련한 기억, 청춘의 꿈, 소녀의 심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등, 순수한 마음과 그리움, 삶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표현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서 청춘에는 정년이 없다고 말했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그림 속에 숨은 마음 애틋해

 

이 그림은 그림을 그리신 어르신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 본인이 어릴 때 기억하는 부모님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얼핏 보면 낙서를 한 것 같지만 유심히 보면 어머니의 얼굴이 그림 안에 있죠.” 신형옥 대회장은 전시가 되어있는 작품을 돌아보면서 그림에 얽힌 내용들을 일일이 설명한다.

 

그저 크레파스로 막 그려댄 것 같은 작품 속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지 누가 알았을까? 설명을 들으면서 늦게나마 그림 안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려내려고 노력한 어르신들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작품마다 그려진 사연을 이야기하는 신현옥 대회장. 수원미술전시관에서 11일까지 이어지는 9회 대한민국청춘미술대전을 찾아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두화공모전 등에서 입상작 등 다양한 작품 선보여

 

730일 오후 3,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창룡마을 창작센터에서 지동, 불꽃 인두화를 품다개막식이 열렸다. 이 전시는 그동안 한국종합예술협회장이자 수원화성인두화공방 대표인 일연 우송연 작가와 인두화 작가 20명이 전국인두화경진대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 등에서 입상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자연친화적인 목재를 이용해 작품을 창출하는 인두화는 예전에는 불에 달군 인두를 사용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뜨겁게 달궈진 인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화상을 입는 일도 잦았다는 것이다. 인두화(우드버닝)는 화로에서 달궈진 무쇠인두로 문양과 자연풍경 등을 그림으로 새기는 것을 말한다. 나무의 재질에 따라서 대나무에 그리는 것은 낙죽(烙竹), 나무에 하는 것은 낙목(烙木) 또는 낙화(烙畵)라고 한다.

 

항상 불에 달군 인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화상의 위험을 안고 있던 인두화가 최근에는 납땜용 인두나, 숯에 달구어 사용하던 인두 대신 전기로 펜을 달구는 인두기인 버닝펜이 개발됨에 따라 간편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버닝펜의 개발에 따라 인두화 작가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제는 각종 협회나 동호회 등 다양한 인두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어

 

작가 우송연은 인두화(버닝) 작가이면서 캘리그라피 작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 인두화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전국인두화작품 공모전에서도 대상인 산림청장상을 수상했다. 현재 우송연 작가는 수원화성 인두화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종합예술협회 대표이기도 하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화를 그렸어요. 캘리그라피 강사 자격증도 땄고요. 제가 그림이 그리고 싶었는데 결국 대학에서는 그림전공을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나 봐요. 선생님께 인두화를 배우면서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면서 제 원을 풀어버린 것이죠.”

 

우송연 작가는 기업강의와 문화센터 등에서도 인두화에 대해서 소개를 하거나 직접 인두화 작품 강의를 했단다. 대기업 등에서 인두화를 강의하면 상당히 좋아하면서 인두화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며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우송연 작가는 호매실동에 소재한 수원시장애인복지연합회에서도 지체장애인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손이 떨려 인두화 버닝펜도 못 잡던 장애인들이 작품을 그려내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100일 동안 작품에 정진한 일월호봉도감탄이 절로

 

불꽃을 다루는 여인, 불꽃같은 여인, 그녀를 지칭하는 말은 불꽃이다. 작품을 창작하면서 늘 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두화는 불에 달군 인두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요즘도 달구어진 버닝펜을 이용해 작업을 하다보면 조심을 한다고 해도 뜨거운 인두에 데기 일쑤다. 그래서 그녀와 불은 땔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다.

 

저는 인두화를 시작한 지 6년 정도 되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버닝협회 회장인 김현수 전통명장으로부터 인두화를 사사받고 그동안 작품 활동에 정진해왔죠.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인두화에 대해 색다른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이제는 인두화가 제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죠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 2층 전시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대담에 응한 우송연 작가는 이제는 자신이 가르치는 문하생들이 훌륭히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는 것도 큰 낙이라면서 인두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에 안두를 대면 나무마다 다른 타는 냄새가 너무 좋다고 한다. 그 각기 다른 나무의 타는 냄새가 흡사 서로 다른 세상 사람들 이야기 같다는 것이다.

 

처음 인두화를 시작하고 나서 2~3년은 기술습득을 위해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하는 우송연 작가는 저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인두화 제작기술을 알려주고 싶어요. 세상은 사로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가장 큰 바람이라면 인두화를 하는 작가들이 활성화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죠.”라고 한다.

 

 

출연자 전원이 프로의식이 넘치는 열정무대 만들아 즐거움 배가

 

출연자 전원이 말 그대로 프로였다. 프로란 전문가들을 일컫는다. 어떤 분야가 되었던지 프로는 아름다운 법이다. 27일 오후, 수원남문로데오거리에 소재한 남문로데오아트홀 무대에 올려진 20회 재인의 향연무대. 춤과 소리, 굿 등 총체예술무대로 마련된 이 공연의 출연자는 고작 14명이었다.

 

14명의 출연자가 10종목의 굿과 춤, 소리를 감당해 낸 것이다. 한 사람이 많게는 5프로 이상을 소화해내며 꾸민 무대였다. 27일 오전 10시부터 무대를 준비한 출연자들은 오후에 한 차례 무대연습, 또 한 차례의 리허설, 그리고 오후 7시 공연까지 세 번의 공연을 감당해 낸 셈이다. 제인청의 프로그램이 일반적은 무대공연예술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출연자 일인당 두 시간 이상의 공연을 한 셈이다.

 

e수원뉴스 하주성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며칠 동안 퍼붓다시피 한 장맛비로 인해 극장 안은 냄새가 나고 여건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은 끝까지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함께 즐기는 모습이었다. 재인청 기본무로 시작한 이날 공연은 두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으나 아쉽다라는 말로 이날의 공연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재인들의 무대는 진행부터 모든 것이 다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분들은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는 공동체문화라는 점입니다. 일제가 1920년대 우리문화말살장책을 펼친 것도 우리문화가 바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만드는 공동체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분들은 재인의 향연 공연을 관람하시면서 바로 우리민족의 끈끈한 공동체를 배워 가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회자는 재인의 향연무대는 공부하는 공연이라면서 팸플릿 안에 모든 설명을 다 되어있으니 집에 가져가서 공부하라고 했다. 진행을 보는 순간에도 사회자는 프로그램의 설명보다 공연자들의 특징과 자랑, 그리고 우리문화의 자랑스러운 점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무대를 진행했다.

 

또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공연관람 시 지켜야할 예절과 어떻게 공연을 관람해아 바로 본 것인가? 등에 대해서 알려주는 시간을 가져 기존의 무대공연에서 보던 진행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진행했다. 그런 색다른 진행을 일일이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관람객들까지 보여 재인의 향연 무대는 말 그대로 공부하는 공연임을 알 수 있는 무대였다.

 

 

최선을 다한 공연자들, 신명나는 무대 만들어

 

이날 무대에 오른 공연은 굿과 춤, 소리 등으로 구분됐다. 굿은 경기 안택굿 명인 고성주의 제석굿과 경기도무형문화재 제58호 안산잿머리성황제 이수자인 김진섭의 신장·대감굿이 순서에 선보였으며 반주에는 피리에 곽승헌, 바라는 전형길이 담당했고, 굿을 진행하는데 도움은 이은애와 전승훈이 도맡았다. 굿을 하는데 있어 장단은 전문적인 굿을 하는 무격이 맡아하게 되므로 고성주 명인과 김진섭 이수자가 번갈아 맡아했다.

 

가장 많은 종목이 무대에 오른 재인청 춤은 재인청기본무, 교방무, 엇중모리신칼대신무, 노들강변, 살풀이춤, 한량무 등이 무대에 선보였다. 재인청 기본무는 어려서부터 고 운학 이동안 선생에게 재인청 춤을 사사 받은 고성주 명인 외에 문하생인 김현희, 김미경, 박미애 등이 추었다. 이들 무대에 오른 공연자들은 모두 20년 내외의 춤을 춘 춤꾼들로 말 그대로 춤생춤사한다는 사람들이다. 이미 전국무용경연대회 등에서도 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외에 살풀이춤과 한량무는 고성주 명인이, 교방무와 엇중모리신칼대신무, 노들강변은 김현희, 김미경, 박미애 등이 담당했다. 소리는 남도소리로 조진숙의 심청가 중 심봉사가 잔치에 가는 대목을 불렀으며,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춘향가와 적벽가 이수자인 강승의와 문하생인 양용자, 조진숙, 이정은이 성주풀이 등 남도민요를 관객에게 들려주었다.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명나는 장단을 친 진민구 고수는 전국고법대화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한 판소리 전공을 한 실력자이다.

 

최고의 프로들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무대인 20회 재인(才人)의 향연. 2시간 20분이라는 긴 시간을 관람석 맨 앞자리에 앉아 끝까지 지켜 본 한창석 수원시 주민자치협의회장은 공연이 빨리 끝나버려 아쉽다고 했다. 이날 공연에는 남문로데오상인회 천영숙 회장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공연이 끝나고 출연자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할 때까지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는 멋진 공연이었다. 공연 마친 후 고성주 명인은 최선을 다했가 때문에 모든 것이 완벽한 무대였다고 했다.

 

석 달 동안 작품에 정진한 일월호봉도감탄이 절로

 

불꽃을 다루는 여인, 불꽃같은 여인, 그녀를 지칭하는 말은 불꽃이다. 작품을 창작하면서 늘 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두화는 불에 달군 인두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요즘도 달구어진 버닝펜을 이용해 작업을 하다보면 조심을 한다고 해도 뜨거운 인두에 데기 일쑤다. 그래서 그녀와 불은 땔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다.

 

지동 불꽃 인두화를 품다전은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 2층 갤러리에서 73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한 달간 전시된다. 작품을 벽에 걸고 있는 인두화 일연 우송연 작가를 만났다. 전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른다. 중부지방에도 많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계속내리는 비로인해 취재를 나가기에도 마땅치가 않다. 25, 비가 내리는 오후에 찾아간 창룡마을 창작센터. 그곳에서 우송연 작가를 만났다.

 

저는 인두화를 시작한 지 6년 정도 되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버닝협회 회장인 김현수 전통명장으로부터 인두화를 사사받고 그동안 작품 활동에 정진해왔죠.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인두화에 대해 색다른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이제는 인두화가 제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죠

 

 

많은 곳에서 재능기부도 열정적으로

 

인두화를 시작하고 나서 우송연 작가는 살아가는 방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작가가 작품에 심취하면 성격이 바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송연 작가도 자신이 인두화를 접한 후, 기술을 익혀 많은 사람들에게 인두화 제작을 가르치면서 긍정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다고 한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유화를 그렸어요. 캘리그라피 강사 자격증도 땄고요. 제가 그림이 그리고 싶었는데 결국 대학에서는 그림전공을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나 봐요. 선생님께 인두화를 배우면서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면서 제 원을 풀어버린 것이죠.”

 

우송연 작가는 기업강의와 문화센터 등에서도 인두화에 대해서 소개를 하거나 직접 인두화 작품 강의를 했단다. 대기업 등에서 인두화를 강의하면 상당히 좋아하면서 인두화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며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우송연 작가는 호매실동에 소재한 수원시장애인복지연합회에서도 지체장애인들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손이 떨려 인두화 버닝펜도 못 잡던 장애인들이 작품을 그려내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무료강습회를 열고 싶기도 하고요. 또 어려운 분들을 위한 작업도 하고 싶어요. 제가 인두화를 만나면서 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에게도 그런 행복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 살고 싶어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 2층 전시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대담에 응한 우송연 작가는 이제는 자신이 가르치는 문하생들이 훌륭히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는 것도 큰 낙이라면서 인두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에 안두를 대면 나무마다 다른 타는 냄새가 너무 좋다고 한다. 그 각기 다른 나무의 타는 냄새가 흡사 서로 다른 세상 사람들 이야기 같다는 것이다.

 

처음 인두화를 시작하고 나서 2~3년은 기술습득을 위해 많은 애를 먹었다고 하는 우송연 작가는 저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인두화 제작기술을 알려주고 싶어요. 세상은 사로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가장 큰 바람이라면 인두화를 하는 작가들이 활성화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죠.”라고 한다.

 

730일 오후 3, 창룡마을 창작센터에서 지동, 불꽃 인두화를 품다개막을 며칠 앞두고 작품전시를 위해 창작센터를 찾은 우송연 작가. 자신의 작품이 걸린 벽면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일월오봉도는 세 달이나 걸려서 완성한 작품이라고 설명하는 우송연 작가. 앞으로 그녀가 바라는 대로 더 많은 인두화 작가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인두화로 인해 사로가 소통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양검무보존회 수원지부 제3회 정기공연으로 막 올려

 

기록에 보면 검무의 유래에 대하여 신라(서기 667년경)때 황창랑(黃昌郎)이 지은 것이라고 <동경잡기> ‘풍속조(風俗條)’<문헌비고> 등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어린 화랑 황창랑이 7세 소년으로 백제왕을 척살하고 백제인들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황창랑은 검무를 빙자해 백제왕의 어전에 나아가 춤을 추다가 백제왕을 시해하고 죽임을 당해 신라인들이 슬퍼하여 '소년의 얼굴을 닮은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춘 것'이 검무가 시작된 유래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경잡기에는 7세의 소년 화랑 황창(黃倡)이 검무를 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삼국사기15세의 소년인 화랑 관창(官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으로 정확한 기원을 알기 어렵다. 다만 감무가 남성적이고 투쟁적인 춤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검기무((劍器舞)’라고도 하는 검무는 신라 화랑 관창이 죽은 후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어간 관창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관창의 가면을 만들어 쓰고 추었다는 데서 기인했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검무는 진주, 통영, 해주, 광주, 평양 등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춤으로 21일 오후 수원남문 로데오아트홀 무대에 올려졌다. 평안남도 무형문화제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검무는 평양검무보존회 수원지부(지부장 이영자)의 제3회 정기공연으로 열렸다. 평양검무는 정작 평양지방에는 전승의 맥이 끊겼으며 남쪽에만 전승되고 있는 춤이다.

 

1705(숙종 31)에 편찬한 최고(最古)본인악학궤범중 당악정재·향악정재를 발췌하여 만든 <악학궤범홀기>에 보면 검무는 조선조에 들어와 4인이 추었다. <정재홀기>에는 4인이 춘 검무로 되어 있으며, 조선 영조 때 첨수무(尖袖舞)’공막무(公莫舞)’라는 이름이 생겼다. 첨수무는 외연에서 주로 추어졌고, 공막무는 여자들이 모인 잔치에서 추는 것으로 용도가 변화한 것이다. 외연용인 첨수무는 무동이, 내연용인 공막무는 기녀인 무녀들이 추었던 것이다. 신윤복의 풍속화첩 쌍검대무에 보면 2명의 기녀가 검무를 추고 있어 4명이던 것이 2명으로 감축된 것으로 보인다.

 

 

2001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평양검무

 

평양검무는 2001년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평양검무보존회 수원지부는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남문로데오청소년공연장 앞 2층에 보존회사무실을 두고 있다. 올해로 제3회 정기공연을 남문로데오아트홀에서 평양검무 수원지부 주최로 무대에 올렸다.

 

평양검무는 삼국시대 북방 기마민족의 고구려 벽화를 보면 전쟁이나 무술훈련을 통해 검무가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민족의 상무정신이 깃들어 있는 춤인 평양검무는 고구려의 강건한 기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평양검무의 춤사위를 보면 상당히 박력 있으며 회전이 빠른 것이 일반적인 검무와 다르다. 특히 칼로 땅을 치는 동작은 평양검무만의 독특한 동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날 제3; 평양검무 정기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공연종목은 평양검무 단축본, 입춤, 민요, 한량무, 화관무, 가요, 세월이 유수, 평양살풀이춤, 부채산조, 서도민요, 퍼포먼스, 14분이 소요되는 완판 평양검무의 순으로 이어졌다.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된 평양검무 제3회 정기공연은 비가 오는 장마철 휴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객석을 꽉 채우지는 못했다.

 

 

공연 전 공연 책임 맡은 스태프들 점검 제대로 못해

 

공연을 하는 단체가 정기공연이라는 제목을 이용해 공연을 하는 데는 주의할 점이 있다. 바로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개의 공연단체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사전에 리허설을 거친다. 리허설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점검해보는 시험이다.

 

특히 무용공연일 경우, 순서대로 무용반주음악은 제대로 작동이 되는지, 그리고 음향이나 조명 등은 제대로 공연에 맞게 세팅이 되어있는지 등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수준 높은 공연을 무대에 올려 관객들에게 더 좋은 공연을 보여 주고자함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모든 것을 점검한 후에 공연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무대에 오른 평양검무 제3회 공연은 시작을 하자마자 공연사고가 터졌다. 음향은 계속 음향에 문제가 생겨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으며 조명은 무용공연 조명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이 한 곳만 조명이 들어와 무대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또한 공연을 하는 것인지 쇼를 하는 것인지 진행을 매끄럽게 이어가지 못해 계속 불쾌감을 갖게 만들었다.

 

 

무대공연, 특히 무용공연은 음악과 조명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무용공연에서 음향과 조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이유로던지 변명을 할 수 없다. 극장을 대관해 준 로데오시장상인회장은 음향과 조명 스태프를 자신들이 맡아하겠다고 했다면서 앞으로는 정해진 스태프를 거절하면 대관을 해주지 않겠다고 한다.

 

힘들여 1년이라는 시간을 준비한 정기공연.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음향과 조명, 진행 등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공연이 되었다고 하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앞으로 적어도 춤이나 전통음악 같은 전통공연을 무대에 올릴 때는 제대로 된 진행에 음향이나 조명 등에 더 많은 주의를 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1년 동안의 준비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