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동 크로키에서 6월 말일까지 전시

 

작가 이주영. 중앙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이주영 작가는 2003년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연 후 2009년과 2011년 동 장소에서 2회와 3회 개인전을 열었다. 딴 작가들보다는 개인전을 연 횟수가 그리 많지 않다. 2013년 해움미술관에서 제4회 개인전을 연 후 2016년 수원미술관에서 제5회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주영 작가와 형·아우로 부르는 사이이다 보니 굳이 작품전이라서 찾아갔다고 하기보다는 소식이 궁금해 찾아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벌써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이다. 이주영 작가의 그림 속에는 민초들의 모습이 있다. 4회 개인전을 찾아갔을 때는 지동과 행궁동의 골목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늘 그런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이주영 작가의 그림이다.

 

3,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1-13에 소재한 크로키에서 51일부터 전시를 시작한 이주영 작가의 엉겅퀴 소풍전을 보기위해 크로키를 찾았다. 크로키는 지역 화가들이 즐겨 전시하는 공간이다. 오후 늦은 시간 키로키에 몇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로키는 저녁에만 문을 여는 전시공간 겸 음식점이다.

 

 

제주도로 내려가서 고생 좀 했어요. 그곳에서 몸도 많이 상했고요. 무엇보다 생활을 하면서 막노동 등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정말 힘든 나날을 보냈죠. 그래도 작업을 할 수 있어 버틴 것이죠. 이번에 엉겅퀴 소풍전에 걸린 작품들도 제주도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것이고요

 

이주영 작가는 현재 공방을 열고 있는 곳이 제자가 준비해 놓은 장소라고 한다. 그곳이 넓기 때문에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이주영 작가에게 언제인가? “왜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그려야 하니까요. 저에게 그림은 운명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죠. 좋아하는 것들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표현 중에 가장 잘 맞는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작가는 제주도로 내려가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놓지 않았던 그림을 이번에 전시를 열게 된 것이다. ‘엉겅퀴 소풍전은 어찌 생각하면 작가 스스로가 제주도의 생활에서 어려운 시간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세월의 아픔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엉겅퀴가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이주영 작가는 자신의 행복이 바로 그림에 있다고 했다. 이주영 작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그림들이 돈으로 따지면 엄청날 것 이라고 하며 웃은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웃는 그의 미소를 보면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작가가 제주도의 생활을 마치고 수원으로 올라와 첫 번째 전시를 크로키에서 연 것이다

 

엉겅퀴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열매는 수과로 식용 및 약용으로 쓰인다. 그런 엉겅퀴를 소재로 작품전을 연 이주영 작가는 제주도에서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바람에 날리면서도 잘 자라고 있는 엉겅퀴를 작품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작품활동이 힘든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견딜 수 있도록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이주영. 그는 1980년대부터 1990년 초까지 격동의 세월에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민초들이 한이 깃들어 있다. 그의 작품소재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우리가 늘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풍경인 것도 이주영 작가의 작품을 담아내는 특징이다. 행궁동 크로키에서 전시중인 이주영 작가의 엉겅퀴 소풍전’. 시간을 내어 전시공간을 찾아가 작가의 그림세계에 대한 이야길 나누어보길 권한다.

 

58일이 음력 4월 초파일, 사전에 축제분위기

 

부처님 오신 날58일이다. 음력 4월 초파일이 부처님 오신 날인데 그 전에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난타의 공양을 일깨우기 위함일 것이란 생각이다. 부처님이 영취산에 계실 때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등을 받쳤는데 지극한 정성과 발원으로 바친 난타의 등불만이 다른 모든 등불들이 꺼진 후에도 홀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난타의 지극한 정성을 알고 "이 여인은 등불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며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연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연등은 불교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동진의 승려인 법현이 인도를 다니면서 쓴 구법기행기(339-414)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연등에 관한 기록이 보인 것은 신라 경문왕 6(866)과 진성여왕 4(890) 정월 15일에 황룡사로 행사하여 연등을 켜고 꺼지지 않도록 간등(看燈)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진흥왕 때는 팔관회와 함께 연등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등의 습속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등회의 유풍인 연등행렬

 

연등회는 고려 태조 때 <훈요십조>에 의해 거국적인 행사로 행해졌다. 이후 성종 때 유학자들의 강한 반대로 일시 폐지했다가 현종1년인 1010년 윤3월에 다시 행했다. 그로부터 매년 2월 보름에 연등회를 베풀었다. 초파일 연등은 석가 탄생을 축하하는 연등으로 현재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불교의 가장 신성하고 장엄한 행사이다.

 

4월 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서 볼 수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의종 때 백선연이 48일에 점등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에는 초파일 연등을 열면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연등회는 조선 태종 15년인 1415년 이후로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의 음력 4월 초파일에 행하고 있는 연등회는 신라 때부터 전해진 팔관회와 연등회, 그리고 1414년부터 기록에 보이고 있는 수륙제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인 음력 4월 초파일이 되면 사람들은 등을 밝히고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등공양으로 연등회를 열고 있다.

 

 

행궁 광장 낮부터 시끌벅적

 

연등행렬이 이루어진다는 27일 오후 행궁광장으로 나갔다. 오전부터 부스를 치고 각종 체험과 놀이 등으로 행궁광장이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하루 종일 북적대던 연등축제는 오후에 점등식을 갖고, 이어 모든 수원의 불자들이 행궁광장을 출발해 팔달문을 거쳐 장안문을 돌아오는 연등행렬로 장관을 이룬다.

 

불교에서는 육법공양이라는 것이 있다. 육법공양(六法供養)이란, ()과일쌀의 여섯 가지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리는 의식으로, 그 공덕을 시방 삼세 일체중생에게 회향하여, 나와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탈하기를 간절히 발원하는 의식이다. 그 중 두 번째로 올리는 등()반야등(般若燈)’이라고 부른다.

 

연등행렬을 보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로 나왔다. 그 틈에서 사진촬영을 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 하루 종일 취재를 하다 보니 밤 9시가 다되었다. 이렇게 돌아치는 날이 되면 몸은 파김치가 된다. 그래도 하루해를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루의 바쁜 일정을 마감하는 연등행렬. 그 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나도 하나의 연등이 된다.

 

지노귀굿에서 보이는 슬픔을 승화시키는 저승사자놀이

 

지노귀굿이란 서울·경기지역 전역에서 강신무에 의하여 전승되는 사령굿 형태의 무속의례를 말한다. 지노귀굿은 사람이 죽어 매장한 뒤 곧바로 하는 진 지노귀와 탈상 무렵 또는 몇 년 후에 날을 받아서 행하는 마른 지노귀(묵은 지노귀)로 나눌 수 있다. 경기지역의 마른 지노귀굿의 절차를 보면 일반적인 재수굿에 망자의 천도 내용이 첨가된다.

 

안굿이라고 하는 재수굿을 마치고 나면 망자를 위한 바깥굿이 시작되는데, 그 순서를 보면 뜬대왕·중디청배·아린말명·사제삼성·말미·도령돌기·뒷영실·다리가르기·지노귀뒷전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망자를 위한 지노귀굿은 죽은 망자를 관장하는 저승 십대왕을 모시고 조상(말명)을 모셔 들인 다음, 망인을 저승으로 데려갈 사재를 청한다.

 

흔히 사제삼성이라고 하는 이 거리를 보면 저승사자가 망자를 저승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사람이 죽어 천도를 시키는 경건한 무속의례에서 사제(저승사자)는 해학적인 행동과 입담으로 제가집(망자의 기족)이나 굿을 진행하는 다른 무당들과 입씨름을 벌이게 되는데 이 사제삼성은 망자를 위하는 슬픈 의식을 벗어나 해학적인 재담으로 절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굿이 갖고 있는 우수성이자 우리민족 전통의 무속의례에서 보이는 승화된 예술이다.

 

 

가족들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지노귀굿

 

어느 민족이나 망자에 대한 예의는 슬프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그것은 세상을 하직한 망자를 기리기 위한 의식이기 때문에 자연 경건하고 엄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지노귀굿에서 보이는 사제삼성(저승사자놀이)은 슬픔으로 가득 찬 망자의 가족들까지도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422일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이 전안(팔달구 지동 소재)에서 세상을 하직한 지 1년이 채 안된 경주 이씨 망자의 지노귀굿이 열렸다. 일 년 상을 맞이하기 전에 가족들이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지노귀굿을 연 것이다. 오전 10시경부터(상차림은 그 전날부터) 시작한 지노귀굿은 오후 9시가 가끼워져서 끝났다.

 

사제삼성이 시작하자 임씨 무녀가 집밖 저승사자상이 차려진 앞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제가집 사람들이 문을 막아선다. 저승사자는 머리에 베로 끈을 만들어 두르고 손에 들고 있는 긴 천으로 된 베로 올가미를 만들어 제가집 사람들에게 올가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이때부터 저승사자와 제가집 사람들의 해학적인 대담과 놀이가 진행된다.

 

 

사제삼성을 노는 무격의 기능 뛰어나야

 

저승사자로 분한 무격은 망자를 저승까지 인도하려면 저승길을 가다가 목이 마르면 물도 마셔야하고 배가 고프면 밥도 먹어야 한다면서 노잣돈을 요구한다. 노잣돈을 주어도 저승길이 멀어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계속 돈을 요구한다, 돈이 없다고 하자 이번에는 집안에 차려진 굿상과 조상상을 보고 사자상이 냄새가 나서 못 먹겠다며 상을 바꾸자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이번에는 망자를 상징하는 북어를 거꾸로 등에 업고 저승까지 가겠다고 우긴다. “세상에 그런 법은 없다고 제가집에서 말하자 내가 저승사자 노릇하려고 독선생을 초대해 종아리를 맞아가며 법도를 배웠디면서 엉덩이를 집으로 향하고 문상을 한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던 저승사자와 제가집의 해학적인 사제삼성 중 사자놀이가 끝났다.

 

이번에는 사자놀이 뒤에는 삼성을 해야 한다면서 사자상에 놓인 음식에 모아 담는다. 비빔밥에 맛있으니 누가 그 비빔밥을 사먹으라는 것이다. 제가집에서 아무도 그 비빔밥을 사먹지 않는다고 하니 별별 핑계를 다 대면서 비빔밥이 맛있다면서 사먹으라고 한다. 40여분동안 진행된 사제삼성 굿거리가 끝났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은 종교를 떠나 어느 나라나 경건하다. 가족들은 이승을 떠난 망자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지노귀굿에서는 사제삼성에서 보이는 무격의 해학 넘치는 저승사자 놀음으로 인해 모두가 슬픔을 잊게 만든다. 슬픔도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지노귀굿. 우리 굿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일제의 잔재인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우리 전통 무의식을 미신으로 치부했다.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 굿을 우상숭배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어느 민족에게나 자신들만의 풍속이 있다. 지노귀굿에서 보이는 사자놀이는 우리 굿이 보이는 우수한 예술적, 문학적 가치를 갖고 있다.

 

지노귀굿을 하루 종일 지켜보면서 이런 우리 굿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통분을 금치 못하겠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지 못한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뛰어난 예술성을 갖고 있는 우리 굿이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창작센터 이층 갤러리 앞으로 다양한 전시연다

 

20165, 23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팔달구 창룡문로 34(구 서울목욕탕)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라는 이름으로 개관식을 갖게 된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733.6면적 위에 지하에는 동아리 등 각종 강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1층에는 북카페 및 공구도서관, 체험 및 강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자리잡고 있으며, 2층은 갤러리와 강의실로 사용한다. 3층은 작가 창작방과 주민소통방 등이 있으나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11일 오후 찾아간 창룡마을 창작센터. 그동안 이층은 주로 수원시나 지동행정복지센터의 행사 등에 이용되었다. 갤러리는 드문드문 전시를 열고 있어 창룡마을 창작센터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전시를 갖지 못했고, 일부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갤러리를 활성화시켜 더 많은 전시를 가져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기도했다.

 

그런 갤러리에 전시를 한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다. 자주 전시가 없기 때문에 이곳 창작센터 갤러리는 작가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전시가 계속돼지 않아 이곳에 갤러리가 있다는 것을 외부에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중 작가의 개인전 열고 있어

 

김중 작가는 현재 한국미술협회 서양화 1분과 이사를 맡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서울, 수원, 안중 등에서 1992년부터 2019년까지 2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동안 제주신화 아트페어, 안산아트페어, 경기현대미술의 흐름전, ·증 국제 교류전, 청주국제아트페어 등에 작품을 출품했다.

 

국내외를 망라하여 250여회 정도 단체전 및 국내미술대전 운영 심사위원을 지내기도 한 김중 작가는 그 아름다운 동행전, 오늘의 수원전, 대한민국중심 작가전, 경기의 사계전, 경기미술협회전, AP갤러리 개관전, 현대한·중미술초대전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해왔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움이다.

 

 

김중 작가의 개인전은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창룡마을 창작센터 갤러리를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고 있다. 전시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들은 원색의 꽃 그림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런 작가의 색채감에서 보이는 강렬함이 마치 작가가 고난 속에서 새 생명을 얻은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김중 작가는 한 때 뇌경색을 앓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자유분방하고 어떤 틀에 갇혀있지 않다는 평을 듣는 것도 아픔을 딛고 일어선 장본인이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작가의 작품을 몇 번이고 돌아보면 작가의 내면이 보인다고 한다. 김중 작가의 작품들은 꽃이며 풍경 등 제 각각의 독창성을 띠우고 있기 때문에 한 곳에서 여러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만난 듯하다.

 

 

앞으로 많은 전시 유치해 전시공간 활성화 시킨다

 

창작센터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을 돌아보고 있는데 시인이자 미술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우경주 씨가 갤러리로 들어선다. 우경주 씨는 지동행정복지센터에서 창작센터 관리를 맡아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새로 임명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시를 쓰고 미술인문학을 강의하다보니 누구보다 적격이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이 좋은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앞으로는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부탁해 그림전시와 시화전 등 다양한 전시를 하려고 합니다. 이 공간에서 음악회도 열 수 있고요. 이런 좋은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네이버 블로그도 만들었어요. 앞으로 창작센터 홍보를 하려고요

 

우경주 씨는 앞으로 창작센터 공간 전체를 이용해 체험활동과 강의 등도 열어 창작센터를 홍보하겠다고 한다. 김중 개인전을 보기 위해 찾아간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 그곳에서 모처럼 기분좋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창작센터 갤러리에 다양한 전시가 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44일까지 예술공간 봄 제1전시실서 전시 가져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76-1(지번 북수동 231-3)에 소재한 예술공간 봄은 북수동 대안공간 눈의 안쪽에 소재한다. 대안공간 눈이 운영상 어려움으로 인해 문을 닫은 후, 예술공간 봄은 새롭게 전시실과 카페 등을 마련했다. 3월의 끝 날인 331일 오후, 예술공간 봄을 찾았다.

 

마침 예술공간 봄 제1전시실에서는 김유주 작가의 균형잡기전이 열리고 있다. 예술공간 봄은 공간을 새롭게 꾸미면서 작가들의 전시를 1주일 정도로 잡고 있다. 김유주 작가의 균형잡기역시 328일부터 44일까지 일주일 전도 전시를 갖는다. 예전에 비해 전시공간이 줄어들다보니 전시기간을 일주일로 잡은 듯하다.

 

김유주 작가는 2019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 졸업한 후, 2019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과 재학 중이다. 그동안 2018 Ewha Art Fair (이화아트센터, 서울), 2018 ‘낯설지 않은 도시풍경의 기억(나눔갤러리, 서울), 2018 건국대, 국민대, 서울과기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홍익대 공동주최 6개 예술대학 공동주최 연합전시 기질전 (갤러리 라메르, 서울), 2018 아시아프 (DDP, 서울), 2018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특별전 이 작품을 주목한다’(BOXQUARE, 서울), 2019 3RD COSO YOUNG ARTIST EXHIBITION (갤러리 코소, 서울) 단체전 등에서 활동했다.

 

 

도로위의 많은 차들, 인간들의 사회와 비슷해

 

<도로 위에서 오고 가는 차들은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넓은 길 위에서 여러 대의 차들은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면서도 하나의 선을 놓고 반대편의 차들은 옆의 차들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매섭게 달려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차들은 냉정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자신들의 불빛으로 도로를 밝히는 모습은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켰을 때의 느낌과 같이 따뜻하다. 짧은 시간 이긴 해도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차들은 하나의 길 위에서 함께 달리고 있지만, 그들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모두 다르다.

 

그들은 그들 주변의 차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때때로 아주 가까워지기도 아주 멀어지기도 하며 계속해서 서로의 속도에 맞추어 앞을 향해 달려간다. 다른 목적지를 가지고 있지만 때로는 한 곳을 향해 같이 달려가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해 보이고, 규칙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도로 위의 차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작가 김유주는 전시에 즈음하여 작가노트에서 도로 위를 달리는 많은 차들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적고 있다. 작가는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차들이 상대방의 차선을 달리는 차들과 무관해 보이지만, 불빛을 밝히는 모습은 어둠에서 촛불을 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따듯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사람들을 생각하다

 

예술공간 봄의 제1전시실을 들어가면 벽면에 큼직한 작품들이 걸려있다. 작품 속에는 도로를 달리는 많은 차들이 있다. 모두 라이트를 켜고 있는 차들의 질주는 묘한 기분을 끌어낸다. 김유주 작가는 이 많은 차량들을 그리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길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지 못하고 부딪치며 걷는 사람들과는 달리, 차들은 서로를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달리고 있다면서 그런 모습이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다.

 

아마 김유주 작가가 전시제목으로 잡은 균형잡기라는 것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일정하게 앞으로 진행하는 차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차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육교 위에서 내려다본 작가는 그런 모습에서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았고, 그런 삶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작가노트를 보지 않았다면 수없이 많은 차량들이 라이트를 밝히고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작품속에 그려진 수많은 차들의 질주. 그리고 그것을 바라본 작가의 시각. 작가는 그런 차들의 질주를 내려다보면서 속이 뻥 뚫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일상이 답답한 사람이 있다면 예술공간 제1전시실을 찾아가 김유주 작가의 작품을 심도있게 관찰하기 바란다. 속이 뻥 뚫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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