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우르즈(NOORUS)’ 란 키르키즈스탄의 새해를 알리는 명절이다. 노우르즈는 우리나라의 설과 같은 의미 이며 키르키즈스탄의 전통 명절이다.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에게 목축은 주요산업이며, 생계로 대지에 풀이 돋아나는 이시기(321)가 바로 새로운 행사의 시작으로 인식되었다.

 

한국에는 키르키즈스탄인이 약 3,500명이 들어와 살고 있다. 323일 일요일. 화성시 향남면 도이리에 소재한 도원체육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과 키르키즈스탄 공동체인 미림딕이 공동주관으로, 키르키즈스탄 명절 노우르즈를 기념하기 위해 전통문화 행사와 스포츠 경기를 함으로써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자 하는 뜻 깊은 행사이다.

 

 

문화로 하나가 되는 시간

 

12시 경에 국악협회 화성지부 실버두레팀이 키르키즈스탄 노우르즈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고, 행사가 무탈하고 끝까지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해 길놀이를 시작으로 키르키즈스탄 아지즈 그씨도바예프 영사는

오늘 행사는 인해 한국에 있는 키르키즈스탄인들이 서로 화합하고 한국인과도 문화적으로 소통함으로써 우리사회가 보다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키르키즈스탄 영사의 인사말에 이어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의 김용국 원장은

키르키즈스탄의 새해를 맞이하는 노우르즈에 함께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의 산업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계신 키르키즈스탄의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오늘 이 행사를 계기로 키르키즈스탄과 한국의 우정과 협력이 더욱 굳건해지기를 기원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축구장과 농구장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키르키즈스탄인들이 먼저 경기를 펼쳤다. 열심히 축구경기에 임하고 있던 한 사람은 한국에 온지가 3년째라고 하면서

오늘 이렇게 환경이 좋은 체육공원에서 우리들이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한국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명절이 되어도 만날 수가 없어 늘 아쉬웠다. 전체는 아니라고 해도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말하기도.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 마련해야

 

휴일을 맞아 체육공원 주변에 거주하는 많은 주민들도 아이들과 함께 체육공원을 찾아 즐기고 있었다. 처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한국은 이제 다문화 시대가 될 듯하다. 오늘 이렇게 키르키즈시탄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하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다. 더구나 영사까지 참석을 한 오늘의 행사가 앞으로 한국과 키리키즈스탄의 문화교류로 이어져,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도.

 

 

키르키즈스탄은 신이 내린 마지막 청정지역이라고 한다. 신비의 나라라는 키르키즈스탄은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같이 하는 나라로 인구는 약600만 명이다. 이 날 노우르즈 행사는 키르키즈스탄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으며, 전통음식으로 행사를 축하하기도.

 

마침 날씨마저도 따듯한 봄 날씨여서 경기를 하는 사람들도 즐거운 표정이다. 농구장에서 열심히 농구 구경을 하고 있던 무사노바라고 이름을 밝힌 한 사람은

오늘 이렇게 우리의 명절인 노우르즈 날이 맞이해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의 관계자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매년 명절이 되면 고향이 생각이 아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다가 보니 이제는 한국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기도

 

수원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의 양편에는 적대라는 구조물이 있다. 이 적대는 장안문을 지키기 위한 시설로 적대에는 홍이포를 설치하였다. ‘홍이포(紅夷砲)’는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유래된 대포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네덜란드를 홍이(紅夷)라고 불렀기 때문에 홍이포라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홍이포는 남만대포(男蠻大砲)’라고도 부른다. 조선 영조 때 2문이 주조되었으며, 홍이포는 길이 215cm, 중량 1.8t, 구경 12cm, 최대사정거리2 ~ 5km 유효사정거리는 700m 인 전장포이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양호 사건 때 사용되었다

 

 

강화부의 화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홍이포

 

홍이포가 처음 기록에 보이는 것은 1664년이다. 당시 강도어사 민유중이 병자호란 이후, 강화부의 미곡과 화기에 대한 보유 상황을 조사하는데, 그 목록에 남만대포라는 화기가 등장한다. 당시 강화부의 화기류는 현종개수실록현종56월 계축조에 의하면, 진천뢰 140, 대완구·대포·중포가 65, 소완구 30, 호준포 37, 각 보에는 대포 179, 진천뢰 63, 남만대포 12, 불랑기 244좌 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남만대포 12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남만대포인 홍이포는 12좌로 다른 화기보다 수가 적기는 하였지만, 남만대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의 기술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에서 전래한 서양포에 대해 일반적으로 불랑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불랑기는 임진왜란 시기에 해당되는 1593년 정월 이후, 명에 의한 평양성 공격을 계기로 본격적인 도입이 모색되었다. 그 당시는 서양 기술이 도입된 대포의 호칭에 대해서 특별한 구분을 두지 않았던 게 일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만대포와 불랑기를 구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불랑기와 홍이포는 다른 종류의 대포임을 알 수 있다.

 

화성의 홍이포는 영조 때 우리가 만들었다

 

홍이포는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홍이는 붉은 오랑캐라는 말로 머리털이 붉은 네덜란드인을 뜻한다. 16세기 네덜란드 선교사들에 중국 명에 전해진 서양대포를 말한다고 했고, 17세기 초 정두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받아 조선으로 전해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영조실록영조79월 신사조에 기록된 훈련도감의 보고 기록에는

본국(훈련도감)에서 새로 마련한 동포(銅砲)50이고, 홍이포가 둘인데, 그것을 싣는 수레는 52폭입니다. 동포의 탄환거리는 2천여보이며, 홍이포의 탄환거리는 10여리나 되니, 이는 실로 위급한 시기에 사용할 만한 것입니다. 홍이포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만든 것으로 예람하시도록 올리니 강동한 자들의 노고를 기록해 주소서.라는 내용이 보이고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홍이포는 박연이나 하멜이 갖고 온 것이지만, 조선 영조 이후에는 홍이포를 직접 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록으로 유추해 볼 때 화성에 진설된 홍이포는 순수한 우리기슬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있다. 홍이포는 포탄이 여러 조각으로 폭발하는 산발식이 아니라 둥그런 철환 덩어리들이 목표물을 부수는 형식의 대포이다. 하기에 최대사정거리는 2~5km에 이르는 홍이포가 유호사정거리 700m에서 그 철환들이 갖는 위력은 놀랄 만 할 것으로 보인다.

 

장안문과 팔달문 양편에 적대를 만들고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적대에 놓인 홍이포.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한 홍이포가 아닌 영조 때 우리기술로 만든 홍이포. 사정거리가 700m에 이르는 이 홍이포의 위력이야말로 화성을 지켜내는 화기 중 가장 강력한 무기였을 것이다.

 

동남각루 아래 축대 위까지 담배꽁초 수북해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는 세 곳의 전통시장이 있다. 그리고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부터 남수문까지의 성곽이 바로 지동과 맞물려 있다. 지동 사람들은 화성의 동쪽마을 지동이라고 소개를 한다.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기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3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산재한 많은 성곽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지동에 세 곳의 전통시장은 지동시장과 미나리광 시장, 그리고 못골종합시장이 수원천을 끼고 형성되어 있다. 아마도 이 세 곳의 시장은 정조대왕이 내탕금을 들여 팔달문 안과 밖에 장시를 형성할 때, 함께 성밖 시장으로 조성이 된 듯하다. 그런 세월로 따진다면 벌써 200년을 훌쩍 넘긴 유서 깊은 장이다.

 

 

지동시장 순대 타운은 유명해

 

세 곳의 시장은 넓은 장시의 경우라면 하나의 시장으로 보아야한다. 다만 상인회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세 곳의 장으로 구분이 지어진다. 이 세 곳의 시장은 나름 특징이 있다. 그리고 활발한 상설장으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중 지동시장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순대타운이다.

 

순대타운은 그야말로 상가 건물 1층이 온통 순대집들이다. 이제는 지동 순대타운은 전국적인 먹거리 명소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순대타운에 대한 글을 포스팅하면서,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관광객들도 수원을 찾으면 화성과 행궁, 그리고 순대타운은 반드시 들려간다고 할 정도이다.

 

 

명소만큼 자아의식 필요해

 

순대타운이 명소가 된 것은 방송 등 많은 언론들과, SNS를 통한 인터넷 홍보로 인해서이다. 그런데 이 순대타운은 바로 위편에 화성의 동남각루가 있고, 화성 성밖 탐방로도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화성을 한 바퀴 돌아 순대타운으로 들어오거나, 팔달문을 거쳐서 화성을 돌아보기 위해 이곳을 지나게 된다.

 

그런데 참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다. 수원시민들만이 아니라 관광객들도 수없이 이곳을 찾고, 이 순대타운 뒷길을 지나다닌다. 그런데 화성의 문화재 보호구역인 축대위에도 축대 밑에도, 널려 있는 것이 빈 담배갑과 담배꽁초 등이다. 화성은 수원의 자존심이요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널린 꽁초들, 거개가 순대타운 이용객들이 버린 것

 

이곳 화성의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있는 축대와 그 인근에 널려있는 담배갑이나 종이컵, 담배꽁초들은 모두 순대타운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버린 것이다. 실내에서 흡연을 할 수 없으니 이곳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그냥 아무데나 버리고 간다. 어떤 때는 채 불도 끄지 않은 채 던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

 

세계문화유산이요 사적인 화성, 거기다가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있는 탐방로까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날마다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들을 보면서 낯이 뜨거워진다. 돈만 벌면 제일이라는 생각인지. 지난번에도 이곳의 담배꽁초에 대해서 기사를 쓴 일이 있지만, 도대체 이 순대타운은 수원시민이 아닌 것인지 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다못해 질그릇이라도 갖다 놓고 그 안에 모래를 담아 놓으면, 이렇게 볼썽사납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이참에 해당부서에서는 이곳을 아예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어 금연구역으로 정하든지, 아니면 순대타운에 행정지시를 해서라도 이런 꼴불견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봄이 되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 텐데, 세계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수원시로서는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수원문화재단 2일까지 코엑스에서 홍보

 

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라수흥)27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4 내나라여행박람회에 수원시 홍보 부스를 운영한다. 국내 유일의 국내여행 전문박람회인 내나라여행박람회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내나라 한바퀴라는 슬로건 아래 열리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다.

 

수원문화재단은 박람회 기간 동안 수원시의 관광자원을 비롯해, 오는 3월 개관하는 공연전문기관 수원SK아트리움 개관기념페스티벌(3.7~4.6), 수원화성국제연극제(5.1~5.6)614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수원화성국제음악제, 108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제51회 수원화성문화제 등을 중점 홍보하기로 했다.

 

 

홍살문을 모티브로 부스 꾸며

 

27일 내나라여행박람회장의 수원 부스는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들어, 수원과 화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 마련한 부스는 수원화성행궁의 홍살문을 주 모티브로 디자인해, 관람객들에게 전통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꾸며졌다. 또한 수원 부스를 찾는 관람객을 위해 3D퍼즐로 팔달문, 거중기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행사와, 퀴즈경품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많은 관람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수원시와 재단은 오는 2016년 수원화성 220주년을 기념해,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올해 첫 박람회를 시작으로 국내·외 관광박람회 참가는 물론, 세일즈콜 등 홍보마케팅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재단의 관계자는 관광박람회는 사람들과 대면하면서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번 행사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수원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눈이 시린 화성의 야경이야기. 그 두 번째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부터이다. 성 안에서 밖으로 본 창룡문은 참으로 아름답다. 조명으로 인해 은은한 빛을 발하는 성돌이 마치 살아있는 따스함을 느끼게 만든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장용외영의 무사들이 펼치는 마상무예를 수원문화재단 소속의 무예24기 시범단이 보여주었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그저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 달리면서 보여준 활쏘기, 창검술, 그리고 쌍칼을 휘두르면서 지쳐나가면서 순식간에 베어버린 짚단들. 허공을 가르며 날리는 짚단들이 장용외영의 무사들이 얼마나 정예화 된 군 조직이었는가는 알게 해준다. 그런 무사들이 지키고 있던 창룡문을 바라보면서 늦은 밤에 홀로 사색에 잠긴다.

 

창룡문을 나서 남수문 방향으로 걸어간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동일포루이다. 화성에는 포를 쏘는 포루와 적을 감시하고 지휘를 맡아하는 포루가 있다. 포를 쏘는 포루는 외장을 벽돌로 쎃아올렸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가 있다. 동일포루는 중간의 지휘소 역할을 하면서 병사들이 쉴 수도 있는 공간이다.

 

저만큼 동일치가 보인다. 치란 꿩을 뜻한다. 꿩은 숲으로 잘 숨어든다. 치는 성벽에서 밖으로 돌출이 되어있다. 이 치성은 성벽으로 기어로르려는 적들을 향해 뒤체서 공격을 할 수가 있는 시설이다. 치와 포루 등이 적당한 간격으로 설치가 되어있는 화성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동포루, 포루란 포를 쏘는 곳이다. 강력한 화기인 포는 개인이 소지할 수 있는 블랑기포부터 다양하였다. 포루는 안으로 들어가면 3층으로 되어있다. 맨 위에는 포장이 버티고 있는 1층과 1층은 병사들이 들어가 있다. 포루는 주변의 중요한 구조물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강력한 화력을 갖고 적을 공격하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동이치. 동포루와 봉돈 사이에는 동이치가 자리한다. 화성의 시설을 보면 참 과학적이란 생각이 든다. 화성의 동남쪽은 너른 평지와 깊은 현재의 창룡문로, 그리고 그 조금 위에는 흡사 외성과 같은 용마룻길이 나 있다. 이곳에 조형물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성벽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지만, 중요한 시설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이치를 지나면 성벽으로 돌출된 봉돈이 있다. 마치 어느 서양의 고성같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는 본돈. 봉돈은 본화를 피워 신허를 하는 곳이다. 평상이에는 봉화 하나를 올리지만, 적과 접전이 벌어지면 다섯개의 화구가 일제히 연기를 올린다. 봉화는 산 정상부근에 있지만, 화성의 봉돈은 평지에 있는 거소 남다르다. 

 

동삼치. 중요 시설물과 치가 하나씩 건너있는 곳이 바로 이곳의 지형이 딴 곳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은 어니었을까? 창룡문으로 부터 남수문까지를 걷다가 보면 유난히 구조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치와 포루, 봉돈 등을 보호하기 위해 중간마다 치를 놓았다는 점도 특이하다.

 

동삼치를 지나면 성벽 안으로 들어간 동남각루의 처마가 보인다. 대개의 구조물들이 치성위에 놓았는데, 동남각루는 치성을 벗어나 안으로 들어가 있다. 이 동남각루는 남수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이층 루로 지어진 크지 않은 전각은 아름답다. 그리고 아래에는 반칸짜리 온돌방이 있다. 장용외영의 군사들을 사랑하는 정조의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남수문은 두 번이나 유실이 되었던 곳이다. 다시 복원을 한 남수문은 구간수문으로 밤에 조명이 아름답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이 북수문인 화홍문에서 화성으로 유입이 되어, 남수문에서 다시 밖으로 흐른다. 수문 위에는 벽돌로 여장을 쌓았다.

 

지금은 일부 유실이 된 남공심돈과 남암문도 이 남수문과 팔달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것이다. 성안에 물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기에, 그만큼 남수문의 용도도 중요하다. 늦은 시간이지만 남수문을 들라거리며 수원천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화성의 야경이야기 두 번째를 남수문에서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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