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참 지겹게도 쏟아 붓는다. 잠시 길을 걸었을 뿐인데, 속옷까지 다 젖어버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어릴 적 생각이 나곤 한다. 비가 내리면 좁은 뒷골목을 다니면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일부러 맞고 다녔다. 아마 그런 어릴 때의 기억이 있어, 이상하게 뒷골목에 정이 더 가는 것만 같다.

 

사실 뒷골목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높지 않은 담이 만들어주는 손바닥만 한 그늘 아래서 마을 어르신들이 훈수를 막아가며 장기를 두는 모습도 볼 수 있고, 할머니들이 어린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곁에서 듣다가 보면, 어느새 손녀는 잠이 들어버린다.

 

 

 

그림들의 이야기가 있는 지동 뒷골목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화성을 바라보며 마을이 형성이 되어있다.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을 지나 게이트볼장을 끼고 걷다가보면, 골목 담장에 그림들이 보인다. ‘지동 벽화길’이란다. 이곳은 추억의 골목길 축제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골목길 축제'란 그야말로 골목길에서 열리는 축제를 말한다.

 

2011년 ‘지동 마을 르네상스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해 8월부터 ‘수원화성과 지동 골목길 반가운 동행’이라는 주제로, 시범골목 약 1km의 구간에 골목의 특색을 살린 벽화 그리기와 조형물들을 설치하였다. 이 지동 뒷골목의 벽화그리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 이 그림들이 다 완성이 되고나면, 수원의 새로운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으려는지.

 

 

 

돌계단을 내려 서 천천히 벽을 기웃거리며 걷는다. 벽에는 수많은 군상들을 만날 수가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조형을 하고 화장을 한 벽들이, 그저 옛날부터 그렇게 서 있었던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다. 한 벽에는 거울을 여기저기 붙인 곳도 있다. 지나는 행인들이 자기 키에 맞추어 들여다보길 원하는 것인가 보다.

 

“할머니 거기 문 없는데, 어쩌시려고”

 

여기저기 작은 의자와 아름답게 그린 그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누군가 담벼락에 커다랗게 초가 집 한 채를 그려 놓았다. 아마도 그런 시골마을의 초가집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천천히 골목을 지나본다. 어릴 때 살던 서울의 집도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벽을 참 다람쥐처럼 타고 오르기도 하고, 성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다 발목을 접질리기도 했다. 그런 기억들이 있어 가끔 이 골목을 걷는다.

 

 

지난 해 골목축제 때 모습이다

 

어느 집인가는 벽에 커다랗게 화성을 그려져 있다. 200자 원고지 한 장에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골목을 걷는데 웬 할머니 한분이 계단을 올라 벽 앞에 서 계시다. 그런데 벽에 문이 보이질 않는다.

 

“할머니 거긴 문이 없는데 어쩌시려고요”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신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라 귀가 어두우신가? 다시 한 번 고함을 지르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시 반응이 없으시다. 이런 나를 지나는 사람이 보았다면, 정신이상자로 착각을 하지는 않을까? 피식 웃는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는 길이다. 사람들은 어째 이런 재미있는 뒷골목 길을, 그렇게 골목에 샛바람 지나듯 휑하니 가버리는 것일까?

 

 

 

오랜만에 지나가본 길에는 그림이 더 늘었다. 어느 집 담에는 예쁜 의자도 함께 마련을 해주었다. 이런 작은 뒷골목에 늘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야하는데, 더운 날씨 탓인가 기척이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골목을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하며 걸어 온 골목길을 뒤돌아본다. 벽 앞에 선 할머니는 아직도 꼼짝 않고 그곳에 서 계시다.

2012, 5, 4 ~ 5, 8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

 

아주 오래전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오래전에 연천 전곡리에는 사람들이 살았다. 새로운 문명이 몇 번을 거듭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잊혀져 갔고, 살과 뼈는 전곡리의 황토 흙에서 모두 녹아 없어지고 우리들 생각에서 영원히 잊혀 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은 녹지 않는 많은 것들을 남겨 놓았다. 아무도 관심 없던 한낱 작은 돌들이 그들에게는 생존의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우리는 잊었던 듯하다. 이제 우리가 닷; 그들을 기억해내고, 그들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곡리안의 숨소리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는 우리가 학창시절 국사책에서 한번쯤 본적 있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전곡리안의 숨소리”라는 테마(Theme)를 가지고 석기문화와 선사문화를 교육, 놀이, 체험 등을 통해 배우고 즐기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형 축제이다.

 

가족이 함께 구석기문화를 이론과 실습을 통해 배워보는 『선사체험국제교류전』 연천의 농경문화를 보고 체험할 수 있는『농경생활문화체험』등 체험 중심의 가족참여형 교육축제이다.

 

제20회 축제는 주제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구석기관련 콘텐츠를 접근성인 높은 중앙잔디밭 광장으로 배치할 계획이며, 해외 13개국 및 국내 7개기관이 참여하는 국제선사체험 교류전, 구석기바비큐 체험, 구석기퍼포먼스를 3대 대표프로그램으로 선정하여 질 높은 프로그램과 각종 경연대회 및 다양한 볼거리를 준비하여 관람객 여러분을 맞이할 예정이며,

 

아울러 20회 축제를 기념하여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여 풍성하고 다양한 구석기 관련 체험을 한층 발전시켜 더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가득 메울 예정이다.

 

 

 

각종 공연과 다양한 행사가 어우러져

 

또한 주 무대에서는 구석기를 주제로 한 공연, 지역문화공연과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공연 등이 개최되고,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특집공개방송』과 『경희대특별공연』 등 다양한 특집공연이 준비되어 있어 유명 연예인도 만나볼 수 있으며, 밤하늘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불꽃놀이는 온 가족에게 추억과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로 20회째를 맞이하고 매년 90만 명 이상 방문하는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는 직접 보고․느끼고․배울 수 있는 체험과 교육의 장이 펼쳐진다는 사실이 더욱 아이들과 어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을 예상되며, 연천관광 및 문화재투어 등 지역의 다양한 관광지와 문화재를 직접보고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으로 온 가족이 연천의 다양한 문화를 폭넓게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여행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제20회 연천 전곡리 구석기축제는 역사 이전의 인류사를 직접 체험하며 배울 수 있고, 가족이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주최/주관 : 연천군/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추진위원회

문 의 : 031)839-2562, 2568 http://www.goosukgi.org

염태영 수원시장 21일 준공식 앞두고 언론 브리핑

 

18일(수) 수원천 구천동 천변구간에서는 색다른 보고회가 열렸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수원천 복개구간의 원형 복원에 대해 언론보고회를 가진 것이다. 이 자리에서 염태영 수원시장은 “도심 하천은 자연형 생태하천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시민 의식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료없이 30여 분간 수원천의 복원에 대해서 브리핑을 마친 염태영 시장은 “시민단체 활동 시절 주장하던 수원천 복원이 완성됐다고, 시장이 된 지금 시민들에게 보고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90년대 초까지 시민의 절대적 요구는 교통과 주차를 위해 하천을 복개하자는 것이었다.”며 “그 후 시민운동으로 도심 하천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며 2단계 복개공사를 중지시키고 18년이 지나 복개 구간을 복원하기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수원천의 복원은 청계천 복원과는 차원이 달라

 

“수원천 복원은 한 사람이 추진해 만든 서울 청계천과 10년 앞선 것으로 의미가 다르다”고 지적한 염 시장은 “청계천이 대리석으로 장식된 인공 어항이라면 수원천은 화홍문과 남수문 등 문화재를 간직한 자연형 생태하천”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염 시장은 이 자리에서 “수원천 복원효과는 지동시장, 못골시장, 영동시장, 팔달문 시장 등 전통시장과 구도심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시는 수원천 복원효과를 돈으로 환산할 경우, 환경개선과 사회문화적 편익 측면에서 연간 918억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축제로 승화시킨 수원천 복원

 

수원시는 이후 2005년 지동교∼매교 길이 780m, 너비 30m 복개 구간 구조물 철거를 결정하고 2009년 복원공사에 착공, 2년 7개월만인 21일 준공하기에 이르렀다. 시는 복원공사를 완공을 기념해 21, 22일 이틀 동안 복원을 기념하는 수원천 축제를 연다.

 

축제에서는 하천길을 따라 수원천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전과 그림전이 준비되고 한지공예 등 체험행사와 주변 지동시장, 못골시장 등 전통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다. 또 매교에서 하천 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수원천 세류동 구간 2㎞에서 천변을 튤립 16만 송이로 장식한 권선구의 튤립축제도 만날 수 있다.

 

 

 

 

보고회를 마친 염태영 시장은 기자들과 함께 수원천변을 거닐면서,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물길을 밟아보는 등 복원된 수원천을 마음껏 느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역사와 문화 환경이 공존하는 생태순환하천으로 조성

 

수원시는 수원천의 복원으로 인해 현재 2010년 현재 유료관객 90만명의 화성 관광객 수가 250만명에 달한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인 화성과 행궁, 공방거리, 전통시장 등과 연계하여 친환경적 여가공간으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

 

 

 

 

또한 팔달분 시장 등 수원천을 끼고 있는 전통시장들의 활성화와 구간구간 문화예술의 표현의 장으로 활용해, 수원을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의 메카로 자리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번 수원천의 복원으로 인해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미나리광 시장 등 인근 전통시장 등 팔달문(남문)의 상권들은 매출액이 20~30% 정도 증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원시에서는 복원이 된 수원천을 역사와 문화, 환경이 공존하는 동식물의 생태계 순환하천으로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으로 수원천이 생태순환하천으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어도의 재구성 등 산재한 문제들을 보강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참 굿판 한번 후련하다. 한바탕 뛰고 났더니 가슴에 케케묵어 뭉친 덩어리가 시원하게 뚫려버렸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신이 나게 뛰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참 그리고 보면 이런 굿판을 잊은 지가 참으로 오래되었다. 방송을 하면서부터 찾아들어간 굿판. 전국을 다니면서 정말 오랫동안 굿판에서 생활을 했다. 웬만한 굿판은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내노라하는 굿판은 빠트리질 않았으니 말이다.

 

흔히 우스갯말로 ‘굿’은 ‘good' 이라고 한다. 좋다는 뜻이다. 그 굿이 좋지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 오랜 시간을 존속이 되어 왔을리가 없지 않을까? 혹자는 우리 굿을 종교적으로 박해를 하기도 한다. ’미신‘이나 ’혹세무민‘이라는 것이다.

 

 

일제의 잔재를 이용하는 인간들

 

종교란 각자의 심성대로 가는 것이다.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지 그것은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아니라고 해서 폄하하거나 박해를 할 필요는 없다. 알고 보면 우리 굿은 참 많은 시대를 박해를 받았다.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그들이 바로 하늘을 위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위치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들의 위치가 이 땅 밖에서 유입된 종교로 인해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했다. 고려 때와 조선조 때는 도성 밖으로 축출되기를 여러 번 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바로 우리네의 굿이다. 일제 때는 ‘미신’이라는 용어를 써서, 우리 굿을 박해했다. 굿은 일개인의 치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굿도 있고 나라굿도 있었다.

 

 

 

일제는 1920년대에 문화말살 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우리 마을의 제당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새마을 운동’을 한다고, 많은 마을의 제장들이 훼손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끈끈하게 굿이 자리하고 있다. 굿은 곧 ‘좋은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속풀이 굿, 이것이 정말 굿이다.

 

2012년 3월 28일(수).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번지에서는 ‘고성주의 봄맞이 진적굿’이 열렸다. 진적이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을 위하는 굿이다. 대개는 1년에 한 번이나 3년에 한 번을 하지만, 고성주는 일 년에 봄, 가을 두 차례씩을 한다. 봄에는 ‘꽃맞이 굿’으로 가을에는 ‘단풍맞이 굿’으로 행한다.

 

 

고성주의 맞이굿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벌써 이 맞이굿은 오래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송이 되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해온 맞이굿은, 28일 아침 일찍부터 집안에 웃음소리와 음악으로 넘쳐났다. 피리, 대금, 해금의 악기소리와 장고, 징, 바라 등의 타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이 맞이굿의 하이라이트는 텃대감을 놀 때이다. 아마 이런 굿은 전국 어딜 가도 볼 수가 없다. 마당에는 돼지족발과 떡시루, 그리고 막걸리를 한 동이 갖다 놓았다. 그 앞에는 종이를 태워 물에 풀어 놓는다. 검뎅이다. 이 집 텃대감 놀이에서는 모두가 서로 얼굴에 검뎅칠을 한다. 그리고 서로 쳐다보고는 웃어댄다.

 

 

 

수양부리들도 다 대감이 되는 굿판

 

이집의 텃대감을 놀릴 때는 희한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모두가 다 남쾌자 하나씩을 걸치고 나온다. 모두가 다 대감쾌자를 하나씩 입고 있다. 이 집의 맞이굿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굿을 주관하는 무녀의 인도에 따라 집을 한 바퀴 돌아서 지하실로 내려간다. 지하실은 평소에 고성주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연습실이다.

 

이 지하 연습실로 들어간 일행들은 온통 난리를 친다. 소리 지르고 춤추고, 징과 바라, 잘고 장단에 맞추어 너 나 할 것 없이 온통 뛰어논다. 과거 우리네 맞이굿인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에서 ‘답지저앙’을 하고 ‘수족상응’을 했다는 것이 바로 이런 형태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뛰고 났는데 어찌 속풀이가 안 되었을까? 전안으로 들어온 일행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다. 모두가 한 마디씩 한다. 한 마디로 잘 놀았다는 것이다.

 

“올 일 년도 이렇게 시원하게 속풀이를 했으니 잘 될 것 같네요. 그저 굿판에서 이런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굿판에 갈까요?” 

얼마 전 화성시로부터 보도자료 하나를 받았다. 내용은 2012년 3월 4일(일) 오전 10시부터 화성시 궁평항 특설무대에서 ‘2012 화성시 궁평항 풍어제’를 한다는 소식이다. 옛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궁평항에 기점을 둔 많은 배들이 올 한해 풍어를 기원하는 지역 축제라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아침 일찍 궁평항으로 달려갔다.

썰렁한 축제장, 날씨마저 방해를 놀아

며칠 동안 봄날 같은 포근한 날이 계속되었다. 뉴스에서는 남녘에는 벌써 꽃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고, 연신 봄이 다 온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3월 4일 궁평항은 바람도 불고, 날씨마저 차다. 행사장에는 축제장답지 않게 사람들도 많지가 않다. 이 날 궁평항 풍어제는 오전 10시에 ‘신청울림’으로 시작을 해, 오후 5시 50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짜여 있다.


그런데 순서를 보니 이상하다.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에서 풍어제(굿)를 한다고 하는데, 굿의 제차를 보니 경기도굿이 아닌 황해도 굿이다. 세경들이, 초감흥, 초부정, 영정거리, 땟배나가기, 타살굿 등 이런 거리 제차는 모두 황해도 굿에서 나오는 굿거리 명칭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특설무대에서는 황해도 만신들이 굿을 진행하고 있었다. 경기도 땅, 그것도 화성시의 궁평항에서 문화의 전승을 위해 마련한 풍어제에서, 얼토당토않은 황해도 굿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은 재인청의 무부들과 신내림을 받은 무녀들에 의해, 경기도 굿의 중심지에 서 있는 곳이다.


화성은 특별한 곳이다.

딴 곳이라고 한다면, 그저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화성이라는 곳은 경기도 내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화성은 예부터 수원을 중심으로 한 재인청이 있던 곳이다. 재인청이란 굿을 하는 무부, 소리를 하는 창부, 재주를 부리는 재인, 그리고 옛 무기(舞妓)들이 교방청이 문을 닫고 난후, 그 무기들까지도 등록을 한 후에 기예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예인집단이 있던 곳이다.

재인청이란 조선조 말기, 세습 무녀와, 화랑, 재인, 광대 등 직업적인 민간 예능인들의 예능 및 사회 활동을 행정적으로 관장했던 조직체이다. 재인청은 광대청, 혹은 장악청이라고도 불렀으며, 그에 속한 인원이 많았을 때는 3만 여명이 넘었다고 하는 대규모 예인집단이었다. 그렇다고 이 재인청이 관 주도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이 재인청은 각 지역마다 재인청을 두었는데, 그 재인청의 우두머리를 대방이라고 하였다.


이 재인청들을 모두 관장하는 곳이 당시 화성재인청이었으며, 화성재인청의 대방을 ‘도대방’이라고 하였다. 3대를 재인청의 도대방을 지낸 이용우 일가가 살았던 곳이 바로 현 화성시요, 그 외에 수많은 무부들이 화성을 근거지로 살아왔다. 이런 화성시에서 전통문화 보존 운운하면서, 정작 굿은 황해도 굿을 하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가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다.

‘갑신완문(1824)’에 팔도재인 편에 보면

「팔도 재인들은 병자년(인조 14년, 1636) 이후로 칙명을 가져오는 사신의 행차를 위해 좌우 산대를 거행한다. 재인 중에는 도산주라 불리는 소임을 가진 자가 있는데 각도와 읍에서 재인들이 도산주를 취하여 올려 보낸다. 이들은 각각에게 맞는 마땅한 준비로, 행사를 받들게 한다. 갑진년(정조 9년, 1784) 이후에는 좌우 산대가 설행되지 않은 까닭에 옛 법을 개선하여 준수하도록 할 계획으로 팔도 도령의 지위에 있는 자들로 (산대) 설행을 위한 대방 회의 후, 각도의 소임일 뿐이나 한 명씩 차별을 두어 정하기로 하였다.」

고 적고 있다. 지역에 전하는 재인청 이야기에 의하면 화성의 재인청에 속한 인물들이 정조의 능행차시 많은 연희를 담당하였다고 한다.(마지막 화랭이 이용우 증언) 이렇듯 화성시는 수원과 더불어 경기도 굿의 전승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러한 화성시 궁평항에서 전통문화 운운하면서 황해도 굿으로 풍어굿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경기도에서는 경기도 굿을 해야 마땅하다.

사실 황해도 굿이 경기도에서만 굿 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황해도 서해안 풍어굿’을 ‘서해안 풍어굿’으로 지정을 하고 난 후, 충청도와 전라도까지 서해안 지역이 황해도 굿으로 진행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각 지역에 따라 굿의 제차가 다르고, 지역적인 특색을 가진 굿이 전승이 되어 온다.

황해도는 황해도 굿, 경기도는 경기도당굿과 강신무굿인 경기안택굿, 충청도와 전라북도는 독경자에 의한 앉은 굿, 전라남도 지역은 씻김굿, 남해지역은 남해안 별신굿, 동해안 지역은 동해안 별신굿, 그 지역마다 모두 지역 나름의 특징적인 굿이 전승이 되고 있으며, 이 지역의 특징적인 굿들은 각기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한 지역의 전통문화유산을 전승,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나름의 전통적인 것을 찾아 그것을 전승시켜야 마땅하다. 요즈음 지역 축제들이 기획사라는 곳을 선정하여 행사를 맡기고 있는 가운데, 정작 지역의 문화유산은 홀대를 받고 있다.

적어도 전통문화를 계승,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면, 전문적인 지식을 자문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지역과는 전혀 무관한 황당한 굿거리 제차를 보면서, 또 하나의 문화가 변질이 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인다. 그것도 재인들의 중심지였던 화성시라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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