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음악다방’, 이 다방에선 무슨 일이?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이곳은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수가 있다. 매일 달라지고 있는 벽화 길도 재미지만. 그것보다 여기저기 딴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선은 골목에 놓인 나무로 만든 화단이 있는가 하면, 담벼락에 붙은 평상이 골목 길에 놓여있기도 하다.
그런 지동을 한 바퀴 돌다가 보면, 지동 292-17번지에, 핑퐁음악다방 1호점이란 간판을 붙인 집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핑퐁’은 ‘탁구’를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탁구를 치고,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다방이라는 곳이다. 옛 기억에 다방이라고 하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담이, 테이블 사이를 날렵하게 돌아다니고는 했던 기억이 먼저이다.
낮에는 탁구를 즐길 수 있는 다방
핑퐁음악다방은 지난 3월 16일에 문을 열었다. 대표인 송주희(여, 32세)가 마을만들기와 사회적기업의 일환으로 문을 연 것이다. 이곳은 저녁에는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시니어바리스타 양성교육을 수료한 어르신들이 직접 내려주시는 핸드드립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처음에 지동과 만나게 된 것은 지동에 있는 화성의 성벽 밑으로 난 굴이 있어요. 그곳을 빠져 나왔는데 정말 옛 기억을 해낼 듯한 동네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빈 집도 많고요. 이란 곳이라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마침 도배를 하는 집을 보고 계약을 해버렸죠. 아마 그게 인연이 된 것 같아요.”
11월 15일 오후 5시에 찾아간 핑퐁음악다방에는 마침 서울 강동구에서 내려 왔다는 사람들이 송주희대표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들도 사회적기업의 협동 등을 배우러 왔다고 한다. 또한 강의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시니어바리스타 교육을 받기 위해 오셨다고 한다.
주변의 도움으로 낸 핑퐁음악다방
“이곳을 들어올 때는 제가 가진 돈 500만원과, 주변에서 도움을 주신 돈 500만원을 합해 문을 열었어요. 이곳은 지동 주민들이 언제나 찾아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어르신들이 지나가다 들여다보시면 모시고 들어와 차를 대접하고는 합니다. 돈이 없다고 하시면 나중에 달라고 하고요. 그렇게 시작을 한 것이 요즈음엔 어르신들이 여러분을 모시고 오기도 하고요”
다방 안은 협소하다. 한 편에 주방을 마련하고 그곳엔 커피를 내리기 위한 도구가 있고, 그 뒤편 작은 책장 안에는 탁구 라켓과 LP판, 그리고 그 옆에는 접이식 탁구대가 자리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기분 좋게 커피향이 배어나온다. 그리고 벽에는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름이 나무명판에 새겨져 걸려있다.
“저희도 다방이잖아요. 가끔은 벽화 길을 걷던 분들이 들어와 차를 마시고는 하죠. 저희는 커피 한 잔에 3,000원을 받는데,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에게는 50% 할인을 해서 1,500원을 받아요.”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이고 싶어
“한 번은 지동에 노인정 회장님들이 함께 저희 다방엘 오셨어요. 그분들이 봉투를 내어놓는 거예요. 이러시면 안된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고마워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면 이젠 지동 주민들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연 것 같아 행복하죠.”
지동에 사는 주민들은 부지런하다고 한다. 물론 가진 것이 많지 않다보니,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송주희 대표는 그런 지동주민들에게 문화혜택을 드리고 싶다고 한다. 척박한 삶에 향기로운 커피의 향과 같은 삶을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한 사람의 노력은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노력이라면, 주변의 사람들이 동참을 하게 된다. 핑퐁음악다방의 송주희 대표는 그것을 믿는다고 한다.
“지나시는 길이 있으면 들리세요. 맛있는 커피 대접할게요. 동네 안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요. 그 행복을 나누어 드릴게요.”
40년 세월 남의 머리만 만지고 살았냐고?
지동의 순 우리말 이름은 ‘못골’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큰 연못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동새마을 금고에서 못골어린이 놀이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좌측으로 이발소 하나가 보인다. ‘조원이발관’이라는 이 이발관은 이순재씨(남, 65세)가 운영을 하고 있는 이발관이다.
탤런트 이순재와 이름이 같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농을 해대고는 한다. 한국동란 때 부모님과 함께 월남을 하여, 못골에 정착을 했다. 그리고 이발 기술을 배워 이발관을 시작한지가 벌써 40년이 지났다. 숱한 세월을 못골 사람들과 함께 애환을 달래면서 살아온 이순재 사장이다.
“그 땐 제일교회가 판자집이었지”
이순재 사장이 운영하는 이발관은 마을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꼭 이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소일을 하기 위해서 들려가고는 한다. 찾아오신 어르신들이 머리가 단정치 않으면 그냥 머리 손질을 하기도 한다.
“처음 이발관을 열었을 때는 마을에 어르신들이 한 150여 명 정도였는데, 40년 세월동안 다 세상을 떠나시고 이젠 한 열 분이나 남았나 봐요. 그 땐 이발소에서 위편으로 제일교회 있는 곳까지 집이 없었어요. 모두 밭이고 지금 앞으로 난 길 건너편은 논이었으니까요. 그 때는 제일교회도 판자였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지금처럼 큰 대형교회가 되었지만.”
사람이 좋아 그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이 이발관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지만 안을 들어가면 40년 전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40년 세월의 손때가 묻어있다.
40년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조원이발관
“예전에는 손님들도 참 많았어요. 많을 때는 혼자서 하루에 20명을 이발을 한 적도 있었고요. 그 때는 정말 젊어서 그런지 정신없이 일을 하고는 했는데. 이런 적도 있었어요. 제가 낚시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낮에는 이발을 하고 밤에는 낚시를 다니고는 했죠. 그러다가 보니 낮에 이발을 하러 손님이 오셨는데, 그만 졸고 있었나 봐요. 어르신이 피곤하면 잠시 들어가 눈을 붙이고 나오라고 하시데요.”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부친 것이 두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발을 하러 오신 어르신은 그 자리에 앉아 계시더라는 것. 그만큼 못골의 옛 어르신들은 정이 넘쳤다고 이야기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동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지동에는 어르신들 중에 남자가 별로 없어요. 모두 다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마나님들만 남아 계시죠.”
40년 세월을 많은 사람들과 접하다가 보니, 마을의 집집마다 그 속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조원이발관은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속내를 풀어내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발을 하러 오거나, 그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을 찾았거나 아무래도 좋았다는 것.
“어르신들이 오시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시기 때문에, 마을 사정을 잘 알고는 했죠. 어느 날부터인가 어르신들이 한 분씩 보이지 않는 거예요. 세상을 떠나신 것이죠.”
한 자리에서 40년 세월을 남의 머리를 만지며 살았다. 그리고 어르신들과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아직 못골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발소 안에는 나무로 열을 내는 난로가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 40년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 있는 셈이다.
“저희 집에는 아직도 220V 전기를 쓰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선풍기고 무엇이고 다. 40년 동안 함께 이 이발관을 지켜 온 것들이죠. 그래서 쉽게 바꿀 수도 없고요”
그랬나보다. 곁에서 대담을 듣고 있던 마을분이 한 마디 거든다. 그 말에서 40년 세월을 못골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며 그 애환을 함께 한 것이 아닐까?
“참 오래되었죠. 저 의자도 아마 처음 문을 열 때 그대로인 것 같아요. 타일을 붙인 저 세면대도 그 때 그대로이고”
'꽃집할머니', 참 멋저부러라 잉~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귀찮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집안으로 복잡하게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사람을 성가시게 만드는 일도 그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남들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즐겨라 하는 분이 계시다. 팔달구 지동 295 - 7번지에 사시는 권영복(남, 69세)과 김연자(여, 66세) 두 내외분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5년 동안 마을만들기 사업에 롤 모델이 되고 있는 곳이다. 온통 골목마다 벽화로 가득한 이곳에서, 두 분은 벌써 40년 세월을 지동에서만 살았다. 이제는 지동이 고향이나 진배없다. 두 분은 지동 벽화골목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시다. 그만큼 지동 2년 차 벽화길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재미, 문을 열면 느낄 수 있어
아침 일찍 두 분이 사시는 곳을 찾았다. 골목길에는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인 담벼락 평상이 설치되었고, 무슨 작업을 하는지 쇠를 잘라내는 등 분주하다. 좁은 골목길이 왁자하니 생기가 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동 벽화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물감 등이 가득 쌓여있다. 이렇게 물건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불편하면 할 수가 없죠.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요. 조금 시끄럽고 왁자한 것이 사는 것 같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많은 분들이 저희 집안으로 드나드는 것이 더 좋습니다.”
불편하시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영복 어르신은 오히려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어 더 좋다고 하신다.
“사람이 흙을 밟고 살아야죠. 그렇게 살면서 이웃과 함께 소통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서로 정을 나누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아파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사는 것이죠. 꽁꽁 닫아걸고 안에만 있으면, 그게 무슨 사람 사는 재미입니까?”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더운 날에는 얼린 물을 주고, 날이 쌀쌀해지면 커피를 타다가 주기도 한다. 수돗물을 마음대로 쓰도록 하는 것도 고마운데, 물감이며 앞치마, 붓 등, 모든 것이 대문 안 마당에 놓여있다. 그것을 일일이 정리를 하시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하신다.
지동 생활 40년,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
“처음에는 여울아파트 맞은편에 살았어요. 그런데 길이 나는 바람에 집이 헐려 1995년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죠. 이 골목은 딴 곳과는 달라요. 한 마디로 정이 넘치는 골목이죠. 날이 좋을 때는 골목에 모여 삽겹살도 구워먹고, 빈대떡도 부쳐서 서로 나누고는 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재미죠.”
골목에서 ‘꽃집할머니’로 통하는 김연자 할머니(하긴 요즈음은 66세에 할머니라고 하면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는 이곳에 새록새록 정이 붙는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벽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 이곳에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너무 조용한 곳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림을 그리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즐겁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집을 자기들 집처럼 드나들면서 왁자지껄하면 사람 사는 맛이 나기도 하고요”
천성이 착하신 분들 같다. 그렇기에 그렇게 몇 달이나 계속되는 벽화길의 모든 것이, 이 집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두 분이 사시는 집이, 지동 제2차 벽화길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산실 같은 곳이란 생각이다.
외손자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내외분
그림을 그려왔는데, 7세 꼬마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는 것. 직접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역시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급기야 형주가 그려 온 그림을 벽화에 인용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두 내외분과 외손자인 형주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 아마도 두 분이 벽화를 좋아하고, 벽화 길 조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벽화길 조성을 마칠 때까지 두 분의 노고가 클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그림그리기를 묵묵히 도와주고 계시는 두 분. 이 분들이야말로 마을만들기 사업의 롤 모델이 아니겠는가?
이런 분들이 마을에 계시지 않았다면, 일일이 그 많은 물감 통이며 각종 도구들을 옮겨와야 하니 말이다. 이 골목의 벽화가 끝나는 날, 두 분을 위한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조촐한 잔치라도 벌어야 할 것만 같다.
수원 지동 벽화길 통장님 거동 좀 보소
참 바쁘게도 사는 분이다. 언제나 수원시 팔달구 지동 벽화골목을 조성 중인 길에 들어서면, 그림을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커피를 내오는 분이 있다.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많게는 세 번씩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든다. 그럴 때마다 물을 끓여 따듯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돈으로 따진다면야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성이 부족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늘 그렇게 말없이 준비를 해놓고, 또 벽에 달라붙어 열심히 칠을 해댄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10통장을 맡아보는 남궁미선(여, 45세) 통장이다. 그런데 이 통장님 이렇게 혹사를 하다가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동 벽화길에 서 있는 남궁미선 10통장
봉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는 분인가?
11월 9일, 오전 10시 30분에 화성 동장대(연무대) 앞에는, 수원중부 어머니폴리스 단원 50여명이 모였다. 기념촬영을 간단히 한 후 주의사항을 듣고, 화성 안길을 따라 길을 걷기 시작한다. 손에는 비닐봉투와 집게를 들었다. 길을 가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환경봉사를 한다고.
‘어머니폴리스단’은 수원 중부경찰서 관내 각 학교마다 폴리스단이 있고, 그 폴리스단이 연합해 ‘어머니폴리스연합단’이 되었다. 그 인원이 자그마치 1,200명이나 된다. 어머니폴리스단원이 하는 일은 많다. 학교 순찰에, 등, 하교 길 교통안내, 청소년 상담, 관내 순시, 그리고 일일찻집 운영과 거리 캠페인 등 몸을 둘로 쪼개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수원 중부어머니폴리스 연합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남궁미선 통장이 봉사를 하고 있다(위 좌측) 단원들이 들고가는 비닐봉투에 무게감이 느껴진다(아래)
한 달이면 거의 보름 정도를 봉사를 한다고 하는 어머니폴리스연합단의 환경봉사를 하는 현장을 취재하는데, 낯이 익은 분이 보인다. ‘어! 10통 통장님이시네’. 인사를 하고 알아보니, 지동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있단다. 남궁미선 통장은 지동초등학교 어머니폴리스단의 단장이면서, 연합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는 것.
그래도 봉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니 통장님 그렇게 여기저기 봉사를 하시다가 보면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아이가 셋에다가 가정 일 해야죠. 거기다가 통장을 맡았으니 그 일도 게을리 할 수 없죠. 지동 관내 통장들 모임에 나가 봉사 해야죠. 그리고 아이가 다니는 지동초등학교에 가서 순찰 돌아야죠. 연합단 일도 일주일에 몇 번씩 나가 보아야죠”
“그렇게 하시다가 큰일 납니다.”
“아직은 버틸 만 해요. 그래도 요즈음은 우리 지동의 침침하던 골목이 깨끗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이제는 골목 안 어르신들도 모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 주시고요.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도 날마다 늘어가고 있고요”
참 못 말리는 통장님이시다. 하기야 봉사를 한다는데 막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골목길 어르신들도 걱정을 하신다. ‘우리 통장님 저러다가 병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원’이라고 혀를 차신다. 말려서 될 일은 아니다. 마을 일을 보는 사람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느냐며 더 열심을 내야 한단다.
“그래도요 요즈음은 힘이 넘쳐요. 우리 10통 골목 보세요. 얼마나 환해졌어요. 어르신들도 저렇게 나와서 칠을 하시고 함께 걱정들을 해주시는데, 젊은 제가 조금 더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죠. 그리고 저희 10통은 정이 넘치는 곳이잖아요. 어르신들이 모두 오래도록 이곳에서 사신 분들이라 표정만 보아도 그 속을 알 수 있어요”
오늘도 환경봉사를 마치고나면, 지동으로 돌아가 다시 벽에 칠을 해야 한단다. 그렇게 봉사를 하는 것이 즐거워 오히려 건강에도 좋다고. 아마도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은 지동 10통 남궁미선 통장. 지동 벽화가 인터넷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말이면 카메라를 둘러멘 관광객들이 지동으로 찾아든다.
“이곳 골목에서 커피장사를 하면 잘 팔릴까요? 커피 팔아서 번 돈으로 마을을 위해 사용 하려고요. 아직도 우리 마을엔 할 일이 많거든요”
말을 들어보니 아직은 견딜 만한 듯하다. 이 골목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 그분들을 늘 걱정을 하고 산다는 남궁미선 통장.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고함을 친다.
“기자양반, 우리 통장님 기사 좀 잘 써주세요. 정말이지 우리 통장님 같으신 분 없어요.
'되살림 발전소', 이게 도대체 뭔가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마련한 벽화골목 중, 지난해에 조성한 길이 있다. 이곳은 체계적인 기획에 의한 벽화길 조성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몇 개 팀이 나누어 그림을 그렸다. 물론 모두 전문가들이 그린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팀에서도 그렸고, 고등학생도 그렸다. 그래서인가 올해 계획적으로 조성하는 골목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올 초만 해도 이 길은 실패를 한 골목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조금은 부자연스런 골목이 달라지고 있다. 골목에는 담벼락에 그린 그림과 어울리는 나무벤치가 놓이고, 여기저기 목재로 만든 화단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그런가하면 집집마다 개성이 있는 문패가 사람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이 길의 압권은 역시 담벼락 평상
골목은 동문에서 성벽과 나란히 형성된 지동 게이트볼 장을 지나, 조형물이 서 있는 골목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첫째 집 대문 양편에는 마치 절간의 주련과 같이 대문 양편 벽을 이용해 글을 썼고, 양철지붕과 어울리는 시골의 풍경도 그려 넣었다. 이 골목을 벗어나면 지동시장에서 창룡문으로 향하는 차도가 나온다.
이 차도에는 아직도 몇 집이 굳게 셔터가 내려져 있는 집들이 보인다. 지동이 재개발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인들이 매수를 한 집들이 대부분이다. 재개발이 문화재보호지역으로 인해 무산이 되자, 그대로 방치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 길이 달라지고 있다. 핑퐁다방이 생기고, 담벼락 평상이 아름답게 자리를 잡고 있다.
되살림 발전소? 무슨 발전을 시키나.
골목은 구불거리고 이어지는데, 그 중간쯤에 한창 리모댈링 공사를 하는 집이 있다. 몇 년 째 비어놓아 흉물로 변해가던 집을, 주인의 허락을 받아 새롭게 꾸미고 있는 것이다. 지동자치센터 기노현 총괄팀장은 이 집이 사연이 많다고 한다.
“이 집을 주인에서 허락을 받아 3년간 저희가 사용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집 수리비가 더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이 집은 ‘되살림 발전소’로, 지동 골목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 되살림 발전소는, 말 그대로 지역의 행복을 되살릴 수 있는 발전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은 물론, 작가들의 작업 공간으로도 사용을 한다. 그런가하면 이곳에서 지동을 소개할 수 있는 해설사를 양성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을 하게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아직은 공사 중이긴 하지만, 이 되살림 발전소는 지동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나아가 이곳에서 지동의 모든 마을만들기의 주체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곳을 중심으로 뻗쳐나가는 골목벽화는 5개년 계획이 마무리가 되면, 총 연장이 3km가 넘는다. 전국 최장의 벽화길이다.
되살림 발전소의 기대
되살림 발전소는 담을 헐어버렸다. 이유는 지동 주민들의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곳을 들려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집 앞으로는 공간이 있어, 이곳을 공연장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이곳은 지동의 발전을 위해 몇 개의 모임이 함께 사용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 안에서 지동의 발전을 위한 모든 토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되살림 발전소는 소통의 공간이자, 열린 대화창구입니다. 꼭 지동주민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들려갈 수 있는 곳이죠. 이곳에서 지동의 모든 마을살리기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토의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장으로 마련할 것입니다”
기노현 팀장은 되살림 발전소의 열린 운영은, 지동주민들이 주체가 된다고 설명한다. 행정편의적 사고가 아닌,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지동. 그곳에 또 하나의 명소가 생겨난다. 이 되살림 발전소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닫힌 공간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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