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이 갑자기 시끄럽다. 박수소리가 들리고, 노랫소리도 들린다. 지나는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박수를 쳐준다. 골목 안을 기웃거려 본다. 어르신들이 길가 의자에 앉아 박수를 치고 계시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보니 가면을 쓴 남자가 작은 마차를 끌고 있다. 그 위에 ‘황금마차’라고 적혀 있다.

 

도대체 황금마차가 무엇이지? 궁금하다. 내용을 알아보아야 하는데 다들 바쁘다. 노래하기에 바쁘고, 음식 나르기에 바쁘고, 박수치기에 바쁘다. 그리고 보니 한가한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 이럴 때는 그저 그 안에 나도 섞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어본다.

 

 

어르신들을 위한 찾아가는 황금마차

 

황금마차는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예술서비스를 하는 마차이다. 9월 15일 오후 6시, 수원시 팔달구 지동 292-3 앞에는, 어르신들이 한두 분씩 모여든다. 그리고 가면을 쓴 남자가 몰고 들어오는 황금마차가 입장을 하였다. 이어서 3인조 노래동아리인 ‘주말 앤 브루스’가 신나게 노래를 불러댄다.

 

황금마차는 문화바우처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천원진, 장성진, 장영환 등의 작가가 참여하였고, 송주희와 임주현이 기획을 하였다. 수원시 팔달구에서 상대적으로 어르신들이 많은 지동과 행궁동 일대를 돌며, 모두 12회의 공연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황금마차에서 하는 일은 재미있다. 우선은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영화 상영을 한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곡한 노래로 공연을 한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삶과 마을의 이야기가, 그대로 노래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만도 재미있다. 그런데 맛있는 국수를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께 대접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것 봐, 지동으로 이사 와”

 

황금마차 프로젝트는 마차가 이동한 길, 맛있는 음식,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황금마차 회갑연의궤’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9월 15일에 그 첫 잔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 황금마차의 운영은 9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매월 4회씩 총 12회가 준비되어 있다.

 

 

차가 다니는 골목길이다. 그 한편에는 황금차가 서 있고, 노래동아리들이 자리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구경을 나온 어르신들이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나무의자에 앉아 구경을 하신다. 차들이 지나간다. 그런데 비키라고 누구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그저 서로 비켜가면서 조용히 차를 몰고 갈 뿐이다.

 

“할머니, 재미있으세요?”

“그럼 재미있지. 우리 지동은 이런 행사가 많아”

“또 무슨 행사에 가보셨어요?”

“골목에서 하는 행사가 많아. 옥상에서도 하고”

“좋으시겠어요?”

“그럼 좋다마다. 지동으로 이사 와, 좋아 우리 마을”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으로 지동이 살맛나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은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마을 분들 모두가 지동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송주희(여, 32세)는

 

“지동은 딴 곳보다 어르신들께서 많이 시십니다.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한 고민을 하다가 이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죠. 황금마차는 직접 찾아가는 마차입니다. 어르신들이 부르면 바로 달려가야죠. 이젠 그동안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신 분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드릴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한다.

 

 

지동마을 골목길. 언제나 정이 넘쳐나는 곳이다. 화성과 함께 어우러진 지동에는 화성의 성돌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넘쳐흐른다. 그래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황금마차에서 즐거움을 만끽한 어르신들은,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되신다고 한다.

‘살인의 추억’이란 불명예인 영화제목으로 유명한 수원시 팔달구 지동. 오원춘 살인사건으로 인해 지동은 사람들이 회피하는 마을이 되었다. 하지만 그 지동이 알고 보면, 딴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날마다 변하고 있는 지동. 그 지동이 이제 새로운 마을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지동’이란 명칭은 정조가 화성을 축성할 때, 이 마을에 커다란 연못을 조성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르신들은 아직도 지동이란 명칭보다, ‘못골’이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더 정감이 간다고 한다. 이 이름 안에는 지동이 훈훈한 정이 살아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일려주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문을 열어 준 '지동제일교회' 13층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수원과 화성의 야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열린교회’가 주민들에게 준 선물

 

이 지동은 수원의 화성 밖에서 유일하게 성곽을 끼고 길게 늘어선 마을이다. 지동사람들은 날마다 이 화성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지동사람들은 화성이 단순한 성곽이 아닌, 사람의 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건물들은 낡고 우중충하다. 거기다가 살인사건 이후 사람들이 입주를 회피하다 보니, 마을 안에는 빈 점포들까지 생겨났다.

 

이런 지동의 변화에 가장 먼저 적극적인 호응을 한 것은, 지동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교회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지동제일교회’는 지동의 가장 높은 길인 ‘용마루길’의 입구에 서 있다. 용마루길이란 지동시장을 벗어나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으로 가는 옛 길이다. 이 길은 남수문을 벗어나 위로 오르다가 보면, 지동제일교회에서 시작해 창룡문까지, 길게 외성과 같은 형태로 조성이 된 길이다.

 

 

화성에서 바라본 제일교회. 그 중앙에 솟은 높은 곳이 종루이다. 이곳을 주민들에게 개방해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하였다.(위) 9월 15일 밤 9시에 찾아간 제일교회(아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이 교회의 종탑은 어디서 보아도 제일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높이 솟아있기 때문이다. 지표에서 종탑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47m나 된다. 사람들은 그런 지동제일교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교회가 가장 먼저 지동의 변화에 문을 열어 젖혔다.

 

사용하지 않고 있던 교회 종루를 개방한 것이다. 그것도 그냥 개방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갤러리와 전망대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돌려주었다. 감히 우리가 알고 있던 교회들에게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노을 길 전망대’, 그 마음이 하늘에 가깝다.

 

전망대의 이름은 ‘노을 빛 전망대’라고 했다. 그리고 8층부터 10층까지는 갤러리로 변했다. 층마다 배색을 맞추어 칠을 하고, 그림도 걸고 사진도 걸었다. 그리고 13층까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층마다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경관이 달라진다. 7층까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천천히 꼭대기를 오르면서 즐기는 재미. 맨 위층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아찔하다.

 

밤 9시에 지동주민센터 기노헌 총괄팀장의 안내를 받으며, 해발 99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화성. 한 눈에 화성이 들어온다. “저기는 동문, 저곳은 서장대, 저곳은 행궁". 종루 꼭대기에서 약간은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돌아본 수원시와 화성의 야경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하늘이 가깝다. 잠시 주춤한다. 순간적으로 등을 쓸어본다. ‘혹 날개라도 하나 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8층에 마련한 위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 입구.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안내를 해준 기노헌 총괄팀장이다.(위) 그리고 9층에 마련된 갤러리(아래)


수원제일교회는 종탑의 7층부터 이 13층까지의 공간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화성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가 이곳에 와서 화성 인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은 임시로 개관을 했지만, 내년 4월이면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완전 개방을 한단다. 거기다가 전망대와 갤러리를 운영하는 인적자원의 지원까지 약속을 했다. 유지 및 보수관리도 교회에서 전담을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이다. 주민들은 물론 ‘노을 빛 전망대’를 올라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열린교회’에 감사를 한다. 더구나 닫혀있는 문을 연 제일교회는 예배를 보는 신성한 공간까지, 음악회를 할 수 있도록 운영을 하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지역을 위해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이런 마을이 바로 지동이다.

 

 

끝없는 변화로의 추구, 지동은 날마다 깨어난다.

 

날마다 변해가고 있는 지동. 이 마을은 그저 골목만 들어서도 재미있다. 골목길마다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다가 보면, 그 안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린꼬마들의 함성도 들린다. 꽃들의 속삭임도 있고, 나무인줄로만 알고 기어오르다, 이마에 혹을 붙인 벌레의 불평도 들을 수가 있다.

 

이런 지동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내고자 한다. 지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요즈음 전보다 더 똘똘 뭉쳤다. 그 안에 훈훈한 정이 있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내 가족이 된다. 그리고 무엇이나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 수원 화성의 성벽을 바라보고 사는 지동사람들은, 모두가 한 가족이었다. 그 안에 수원제일교회도 있었다.

‘착한가게’, 말 그대로이다. 착한가게는 가격이 딴 곳에 비해 저렴하다. 요즈음처럼 하늘 높은 줄만 알고 치솟는 물가로 인해, 서민들의 생활은 날로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만 원짜리 한 장 들고나가도 장바구니가 묵직했는데, 요즈음은 어디 가서 밥 한 그릇 제대로 먹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렇기에 누구와 약속이라도 할라치면 먼저 주머니 사정부터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요즈음 서민들의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이럴 때 주변에 실비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즐거운 일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람 살기 좋은 곳, 수원

 

수원은 참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다. 우선은 이 수원이라는 곳이 생전 물 걱정 안해도 되는 곳이다. 일찍이 정조임금에 수원이 좋아 이곳에 터를 잡을 생각을 한 것도, 그리고 여기저기 커다란 저수지를 만든 것도 그만큼의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석거, 축만제 등 대단위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 이미 2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 뿐이 아니다. 수원은 광교산 줄기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도심 한 복판에는 높지 않아 아이들도 원족을 할 만한 팔달산이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수원천 또한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광교산 계곡 가는 곳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에도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가 있는 곳이 바로 수원이다.

 

 

2인분에 10,000원인 곱창볶음. 거기다가 술국까지 더해서 먹을 수 있다.

 

어디 그 뿐일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어있는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중 가장 아름다운 대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조형물이다. 물론, 성이라는 것은 전쟁을 대비한 축조물이다. 그러나 화성은 그냥 축조물이 아니다. 철저하게 주변의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자연을 더 윤택하게 만든 성이다. 그래서 수원은 어딜 가도 즐길 수가 있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착한업소가 즐비한 수원

 

이런 수원은 많은 전통시장이 있다. 특히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전통시장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요즈음에는 토요일마다 거리공연까지 즐길 수가 있다. 이런 수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걱정까지 해결을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먹는 문제이다. 가족이 어디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도대체 먹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워낙 고물가시대에 살다가보니, 4인 가족이 나들이를 해도, 쉽게 몇 만원이라는 쌈짓돈이 빠져 나가기가 일쑤이다. 하지만 수원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바로 착한가게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착한가게에 가면 자장면 한 그릇에 2,500원, 순대국밥 한 그릇에 4,000원, 국산 삼겹살 1인분 9,000원 등 가격이 정말로 저럼하다. 거기다가 칼국수 2,500원, 콩나물 비빔밥 3,500원 콩나물 해장국도 3,000원이다. 이런 집들이 수원시에는 가는 곳마다 ‘착한가격업소’라는 시에서 지정하는 표시판을 달고 있다.

 

이는 수원시가 고물가에도 원가절감 등 경영효율화 노력을 통해, 저렴한 가격과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착한가격업소를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저녁이 만나 한잔 하자는 것이다. 그 한잔이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갑을 열어보니 난감하다. 이럴 때 생각나는 집이 바로 착한가격업소이다.

 

인심 넘치는 35년 전통의 ‘안성순대국’

 

35년 전통을 자랑하는 순대국밥 집은 옛날가격 그대로 푸짐한 곱창볶음 2인분에 10,000원을 받는다. 아침에 해장을 하러 이 집에 들렀을 때, 순대국밥 한 그릇에 4,000원이라는데, 그 안에 머리고기가 국물 반, 고기 반이었다. 안성순대집은 그만큼 주인아주머니의 손이 크다. 날이 더워 밖에서 한잔을 하자고 하고, 곱창볶음을 시켰다. 2인분을 시켜도 세 사람이 먹을 만큼을 준다.

 

 

 

35년 전통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집의 주인은 지동에서만 40년 이상을 살아오신 분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일일이 기억을 하고는 하신다. 큰 그릇에 들깨까지 듬뿍 넣어주는 곱창볶음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거기다가 술국까지 한 그릇 더해주신다. 자리를 끝낸 후 가격을 물으니 술값까지 19,000원이라고 한다. 세 사람이 배불리 먹고, 기분좋게 취한 가격치고는 정말 착한가격이다.

 

이런 착한가격업소가 수원 여기저기에 간판을 달고 있다.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즐길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나들이에 좋은 가을, 이 안성순대집을 찾아가 푸짐한 상 한 번 받아보길 바란다. 앞으로는 화성이 있어 더욱 운치가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수원 착한가게 업소 블로그 / http://suwongokr.blog.me)

 

주소 : 수원시 팔달구 지동 창룡문로 10

전화 : (031) 253-5886

아침부터 참 지겹게도 쏟아 붓는다. 잠시 길을 걸었을 뿐인데, 속옷까지 다 젖어버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어릴 적 생각이 나곤 한다. 비가 내리면 좁은 뒷골목을 다니면서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일부러 맞고 다녔다. 아마 그런 어릴 때의 기억이 있어, 이상하게 뒷골목에 정이 더 가는 것만 같다.

 

사실 뒷골목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높지 않은 담이 만들어주는 손바닥만 한 그늘 아래서 마을 어르신들이 훈수를 막아가며 장기를 두는 모습도 볼 수 있고, 할머니들이 어린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곁에서 듣다가 보면, 어느새 손녀는 잠이 들어버린다.

 

 

 

그림들의 이야기가 있는 지동 뒷골목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화성을 바라보며 마을이 형성이 되어있다.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을 지나 게이트볼장을 끼고 걷다가보면, 골목 담장에 그림들이 보인다. ‘지동 벽화길’이란다. 이곳은 추억의 골목길 축제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골목길 축제'란 그야말로 골목길에서 열리는 축제를 말한다.

 

2011년 ‘지동 마을 르네상스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해 8월부터 ‘수원화성과 지동 골목길 반가운 동행’이라는 주제로, 시범골목 약 1km의 구간에 골목의 특색을 살린 벽화 그리기와 조형물들을 설치하였다. 이 지동 뒷골목의 벽화그리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 이 그림들이 다 완성이 되고나면, 수원의 새로운 명소가 될 수 있지 않으려는지.

 

 

 

돌계단을 내려 서 천천히 벽을 기웃거리며 걷는다. 벽에는 수많은 군상들을 만날 수가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조형을 하고 화장을 한 벽들이, 그저 옛날부터 그렇게 서 있었던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다. 한 벽에는 거울을 여기저기 붙인 곳도 있다. 지나는 행인들이 자기 키에 맞추어 들여다보길 원하는 것인가 보다.

 

“할머니 거기 문 없는데, 어쩌시려고”

 

여기저기 작은 의자와 아름답게 그린 그림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누군가 담벼락에 커다랗게 초가 집 한 채를 그려 놓았다. 아마도 그런 시골마을의 초가집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천천히 골목을 지나본다. 어릴 때 살던 서울의 집도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벽을 참 다람쥐처럼 타고 오르기도 하고, 성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다 발목을 접질리기도 했다. 그런 기억들이 있어 가끔 이 골목을 걷는다.

 

 

지난 해 골목축제 때 모습이다

 

어느 집인가는 벽에 커다랗게 화성을 그려져 있다. 200자 원고지 한 장에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골목을 걷는데 웬 할머니 한분이 계단을 올라 벽 앞에 서 계시다. 그런데 벽에 문이 보이질 않는다.

 

“할머니 거긴 문이 없는데 어쩌시려고요”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신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라 귀가 어두우신가? 다시 한 번 고함을 지르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시 반응이 없으시다. 이런 나를 지나는 사람이 보았다면, 정신이상자로 착각을 하지는 않을까? 피식 웃는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는 길이다. 사람들은 어째 이런 재미있는 뒷골목 길을, 그렇게 골목에 샛바람 지나듯 휑하니 가버리는 것일까?

 

 

 

오랜만에 지나가본 길에는 그림이 더 늘었다. 어느 집 담에는 예쁜 의자도 함께 마련을 해주었다. 이런 작은 뒷골목에 늘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야하는데, 더운 날씨 탓인가 기척이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골목을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하며 걸어 온 골목길을 뒤돌아본다. 벽 앞에 선 할머니는 아직도 꼼짝 않고 그곳에 서 계시다.

고려암 고성주 백미 100만원 상당 희사

 

6월 12일(화) 오후 2시 팔달구 지동 271-124 고려암에서는 고성주와 박찬복지동장, 그리고 신도회장 최병석 등이 참가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백미 전달식을 가졌다. 이 행사는 매년 2~3차례 지역의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쌀 등으로 도움을 주는, 고성주(남, 56세)의 이웃돕기 일환으로 열렸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에 신도들이 부처님께 바친 공양미를 재포장해서 불우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준비를 했습니다. 매년 두 세 차례씩 한 번에 5가마 정도의 백미를 제공합니다. 저희는 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라 수양자들이 정성을 들인 쌀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그 복을 골고루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죠.”

 

 다섯가마 분량의 백미전달식. 좌로부터 최병석 신도회장, 박찬복 지동장, 고성주


사비를 들여 경노잔치도 열어

 

고성주는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무당이다. 스스로는 자신을 ‘만신’이라고 표현을 한다. 늘 수양부리들을 위해 정성을 드려 그런가, 이 집 신도들치고 잘못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자신들이 떠나서 잘못되고 나면, 한 10년 지나 또 찾아옵니다. 하지만 신의 세계에서 영적인 부모자식을 맺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그렇게 잘못 되어서 찾아올 때, 그것이 가장 슬픈 일입니다”

 

자식들이 잘되게 하는 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어야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늘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천성으로 알고 있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준비한 음식 하나라도 먹여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늘 끊임없이 찾아드는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한다. “어차피 자식들이 갖다 준 물질입니다. 더 많이 베풀어야 그 덕을 자식들이 보는 것이죠.”

 

그래서 30여년 이라는 시간은 사비를 들여 집에서 경노잔치를 해왔다. 한 번에 2~300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감당해낸다. 그런 날은 온통 집안에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음식만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도 들려주고 춤도 춘다. 그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제자들이라고 한다.

 

쌀을 모두 재포장하였다. 재포장된 쌀임을 알리는 표시를 한다. 재포장을 하는데만도 10만원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처음으로 맡은 지동, 새로운 마을을 만들 터

 

지동은 1912년 당시에는 수원군 남부면 지동이었다가,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하면서 태장면 지리라고 하였다. 1949년에는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면서 수원시 지동으로 되었다. 1972년 수원시의 동을 통폐합할 때 지동과 우만동을 합하여 행정동명을 지만동이라 하였다.

 

1988년 수원시의 구제 실시로 장안구에 편성되고, 1990년 1월 1일, 시 조례 제1607호로 지만동을 지동과 우만동으로 분동하였다. 1993년 수원시 팔달구의 설치로 인해, 팔달구 지동으로 되었다. 지동은 수원에서도 낙후된 마을 중 한 곳이다. 더구나 이곳은 화성과 접해있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개발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우리 지동은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유어로는 '못골'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쓰이고 있으며, 약 7,500세대에 인구 20,000명 정도입니다. 저는 그동안 30년 정도의 공직생활을 보건소 쪽에서 해왔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지동 동장의 소임을 맡아, 어제는 저녁 8시까지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지동을 둘러보았습니다.”

 

직접 쌀을 수령하러 온 팔달구 지동 박찬복(여, 57세) 동장은 앞으로 지동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겠다고 한다.

 

“비록 우리 지동이 낙후되고 노인층이 많다고는 하지만, 정말 깊은 정들이 있는 분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남을 위해 도울 일을 찾는 분들이 저희 지동에는 상당히 많죠. 오늘도 두 곳에서 경노잔치를 했는데 부녀회원들이 직접 반찬을 만들어 어르신들께 대접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이 먹는 음식처럼 준비를 해 온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동은 지동시장을 비롯하여 못골시장, 미나리광시장 등 재래시장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장을 가깝게 두고 있어 어느 곳보다도 상권을 접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것만 해도 지동의 자랑꺼리가 된다는 것.

 

 

“일전에 지동 살인사건으로 인해 주민들이 많이 마음 아파하고들 있습니다. 지동은 방값이 싸기 때문에 저소득층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세를 들어와 살고 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방이 나가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는 집들이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언론에서 하도 심하게 다루어놓으니, 지동 전체가 다 그런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동처럼 정이 깊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없는 듯합니다.”

 

골목길의 벽마다 그림을 그려 놓은 지동. 사람냄새 나는 ‘골목길 축제’는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동의 골목길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합니다. 지동처럼 골목이 많은 곳도 흔치 않습니다. 이제는 주민들 스스로가 참여를 해서 보수를 하기도 합니다. 올해도 유순희 작가와 삼성전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그림 그리는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삼성전자에서는 3,000만원 정도 지원도 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지동, 정이 묻어나는 지동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박찬복 동장은 “올 연말에도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추석 때 또 한 번 도와드릴게요.”라고 대답을 하는 고성주. 그래서 지동은 살기 좋은 마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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