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지금 쓰레기와의 한 판 전쟁과 사랑을 겪고 있다. 길가마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거나 마구 섞어 버린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아, 여기저기 쓰레기더미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일부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런 시의 방침을 비난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할 홍역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무분별한 쓰레기의 무단투기를 방치하란 말인가? 그리고 언제까지 그런 몰지각한 양심으로 인해, 시민들의 혈세를 탕진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렇게 쓰레기와의 한 판 승부를 하고 있는 요즈음, 쓰레기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로 영동시장 2층에 있는 아트포라 회원들의 쓰레기 재활용 소식이다.

 

 

아파트, 주택가에서 들고 온 쓰레기들

 

아트포라 공간 한편 바닥에 비닐천을 깔고, 그 위에 물감 칠을 한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여행용 가방도 있고, 버려진 흔들의자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부수어진 새장들과 마네킹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이다. 그런데 이 쓰레기를 주어다가 칠을 하고, 여러 가지 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무엇이 그립습니까?’

이 쓰레기들의 제목이다. 쓰레기더미에서 주어 온 물건들이 새롭게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다. 가방은 옛 여행이 그리운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네킹은 칠이 되어 머리위에 나비를 부쳤다. 어릴 적 동심을 그리워하는 것이란다.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 마네킹은 바로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된 것이다.

 

흔들의자 위에는 곰 인형 한 마리가 놓여있고, 흔들의자 다리 밑에는 스키가 붙어있다. 스키를 타러 다닐 때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아기침대는 다시 조형이 되었다. 어린 아기 때, 혹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렇게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새 생명을 얻었다.

 

 

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은 철칙

 

이 작품들은 아트포라의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이라고 한다. 혹은 시장 안과 지동교 인근에 조형물로도 설치가 된다고 한다. 행궁 앞에서 벌어지는 수원화성국제연극제 한 편에 쉼터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아트포라 회원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기가 막힌 발상이다. 쓰레기가 예술작품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이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모으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이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점점 아름답게 변해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길거리에 버리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쓰레기와의 전쟁은 결국은 바보 같이 버려진 양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젊음의 손길에서 생명을 얻어

 

이렇게 주어 온 쓰레기들을 빈 공간과 쉼터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데 열심인 젊음들이 있다. 비로 수원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다. 수원에 주소지를 둔 학생들이거나, 수원에 소재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이다.

 

현재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은 수원의 네 곳에 나뉘어 봉사를 하고 있다. 지동교 위에서 열리는 일요체험장과 영동시장과 아트포라, 수원역전시장, 그리고 생태교통수원2013’의 현장이다. 영동시장에는 모두 15명의 영리더스아카데미 회원들이 봉사를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시장과 예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시장문화를 창출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저희들은 그동안 아트포라와 영동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시장에 오셔서 길을 묻거나 점포를 물어보시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들이 토의를 거쳐 시장점포 지도와, 길 입구 표지 등을 제작할 것을 시장 측에 건의도 했습니다.”

 

 

영동시장 아카데미의 김주연(중앙대) 단장의 설명이다. 이날 쓰레기재활용 예술작품을 만들기에는 이금희(아주대), 신혜미(경기대), 인덕근(아주대), 김성빈(한신대), 임수영(동방여대) 등이 작업에 참여를 했다. 젊음의 손길에 의해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새롭게 변화를 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들 작업에 참여를 한 젊음들은 이야기를 한다.

봉사를 하다가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매사에 당당해졌다

절친한 사람들과의 만남만 있었는데, 폭 넓은 사교력이 생겼다

낯가림이 심했는데 매사에 자신감을 얻었다

기획 등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잊고 있었던 미술적 재능감을 되찾았다

 

봉사도 하고 자신이 사회에 나아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응용력이 생겼다는 젊음들. 이들의 손길에서 변화한 볼품없던 쓰레기들의 새생명 얻기.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행궁 광장과 시장통에서 만나볼 생명들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즈음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재미없다고 한다. 요즈음처럼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상한 소식이나 접할 때는 그저 세상재미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상춘(賞春)’이라 했던가? 여기저기 꽃 소식이 한창이다. 이럴 때는 그저 마음 한 자락 비워놓고, 어디론가 꽃구경이라도 훨훨 떠나고 싶다. 그러나 사정 상 그럴 수 없으니 가까운 곳에 가서 하루를 즐기는 수밖에.

 

요즈음 같을 때 딱 찾아가서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화성 팔달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시장에 있는 곳이다. 영동시장과 지동시장 사이에 있는 지동교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로 들썩이다. 한 곳에서 딱지치기도 하고, 한 곳에선 떡메도 친다. 사람들은 단돈 1,000원을 내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는가 하면, 노래자랑에 어깨를 들썩인다.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는 지동교

 

수원천에 아름답게 꽃이 피었다. 수원쳔 변 매향교에서 지동교까지 천변을 장식하고 있는 능수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 능수벚꽃 길을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 수원시민들도 있지만, 외지에서 수원을 관람하러 왔다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토요일(413) 오후, 지동교 위에는 한 편에는 지동시장에서 마련한 무대가 한창 흥을 더한다. 팔달문 앞의 9개 시장 상인회에서 한주에 한곳씩 맡아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건너편에서는 아트포라에서 나와 각종 예술체험을 하고 있다. 엽전도 만들고, 커피도 직접 내려서 마셔본다. 한과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 뜨끈한 순대도 판다,

 

 

이래저래 지동교가 들썩인다. 서울 광진구에서 아이들과 함께 왔다는 성아무개(, 36)씨는 “12일을 보고 날이 풀려 화성 구경을 왔다가 들렸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 있어 좋다.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에서 이런 행사가 펼쳐진다고 하니, 아이들과 자주 와야겠다.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어 한다.”고 말한다.

 

원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찾아왔다는 김아무개(, 44)씨는 화성을 돌아보고 재래시장을 들렸는데,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 만두도 사먹고 시장 구경도 했는데, 적은 돈을 갖고도 가족들과 함께 배불리 먹었다. 팔도 파워소셜러들의 글이 허구가 아님을 알았다. 다음주에는 부모님들도 모시고 와 순대타운을 들려볼 작정이다라고 한다.

 

 

생활 속에 축제로 자리를 잡아가는 지동교

 

일요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동교로 몰려온다. 아이들이 펼쳐 놓은 보부상체험의 물건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일요일마다 지동시장 상인회에서 주관하는 장날 풍경이 재미있다. 마침 능수벚꽃 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거닐며 즐거워한다. 화성을 향해 연신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즐거워하기는 마찬가지.

 

지동시장상인회 최극렬 회장은 “12일과 파워소셜러 팸투어가 끝나고 난 뒤 손님들이 눈에 띠게 늘었다. 먹거리를 찾아 재래시장을 찾는 관광객이 지난해에 비해 엄청 늘어난 손님들로 인해 재래시장이 북새통이다라고 즐거워하기도.

 

 

차량통제가 필요하다.

 

지난 13() 지동교에서는 일부 차량을 통제했다. 지동교로 오가던 차량을 지동교를 거치지 않고 직접 빠져나가게 유도했던 것. 운전자들도 별 이유 없이 인도를 하는 대로 따라주었다. 차가 없는 지동교는 말 그대로 잔치판이 되었다. 사람들은 편안하게 이곳저곳에 자리를 하고 앉아 즐기기도. 하지만 굳이 다리를 건너는 차들도 눈에 띤다. 사전에 토요일과 일요일 지동교의 차량을 통제를 한다는 안내 현수막이라도 한 장 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주말과 휴일이 되면 들썩이는 지동교. 외제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나 시민들이 모여 행복해 질 수 있는 곳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영동시장 예술공간인 아트포라의 한 관계자는 토요일마다 각기 다른 예술체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구저 많이 와서 즐겨주세요라고 한다.

絹五百 紙千年(견오백 지천년)’, 비단은 오백년을 가지만, 한지는 천년을 간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한지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이다. 한지의 우수성은 조선 시대에 한지로 만든 지갑(紙甲)’이라고 하는 갑옷이 있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지갑은 임진왜란 등 전쟁에서도 병사들이 착용하고 나갔다고 한다.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에도 지갑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런 우리 전통한지를 갖고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통칭 한지공예라 한다. 한지공예는 오색 색지공예또는 지함이라고 하며, 현재 박물관에 조선중기 이후의 유물들이 현존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까지 가장 성행했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공예의 하나이다.

 

 

15년 동안 오직 한지에만 매달린 정성

 

이혜순(, 54. 인계동거주)씨는 한지공예가이다. 200115()한지공예문화교육원에서 한지공예지도사범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도사범이란 남들을 가르치는 사범을 양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지도자를 말한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업을 하는 공방에는 땀이 맺힌 많은 작품들이 가지런히 전시가 되어있다.

 

한지공예는 두꺼운 종이나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한지를 여러 번 바르고 오색 색지를 발라서 완성 하게 됩니다. 또 그 위에 갖가지 전통문양을 오려 붙여 모양을 내고, 전체적으로 풀칠을 한 다음 마감 처리를 하여 여러 생활 용품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공정은 상당히 까다롭기도 하지만, 많은 노력을 요하고 있다고 한다. 이혜순 작가가 한지에 매료되어 공예를 시작한 것은 올해로 15년째라고 한다. 그동안 강산이 한 번 반이 바뀌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수원에 정착한 후, 우연히 만나게 된 한지공예가 지금은 삶의 전체가 되어버린 듯하다.

 

사실 결혼을 하고나서 한지공예를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올 줄은 저도 몰랐죠. 저는 90이 가까우신 시부모님들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런 공예품을 만드는 작가활동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동안은 작품을 만들기보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에 더욱 많은 사간을 할애했죠.”

 

 

한지의 매력에 빠져버린 이혜순 작가

 

한지공예는 한지를 재료로 제작되기 때문에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과 함께, 오랫동안 지녀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정감을 줍니다. 한지를 주재료로 하여 제작되는 한지공예는 다른 공예품에 비하여 작품 자체가 매우 가볍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여러 가지 문양의 활용과 더불어 현대 감각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로의 재구성을 통해, 전통 문화의 창조와 계승,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지에 대한 자랑은 끝이 없다. 그만큼 이혜순 작가에게 한지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창작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작품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한지공예는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몰입을 하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한다.

 

그렇게 고통을 받으면서도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몰입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죠. 아마 지금의 내가 바로 그런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이혜순 작가는, 서예를 하다가 한지를 접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종이는 약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여러 겹으로 배접하면 화살도 뚫기 어려운 질기고 견고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반해 시작을 한 것이다.

 

작품을 돈으로만 계산하는 사람들 아쉬워

 

한지공예는 작품 제작을 위한 재료의 구입이 용이하며, 기법 또한 어렵지 않아서 누구든지 조금만 배우면 손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실내장식을 위한 조형미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으로서의 실용성을 함께 갖추고 있어 누구나 배울 수가 있죠.”

 

한지를 만질 때마다 그 질감이나 신축성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혜순 작가. 마침 공방에 외국인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작품들을 돌아보다가 전등갓에 마음이 끌리는지 얼마인가를 물어본다. 우리 돈으로 12만원이라고 대답하자, 그냥 가버린다, 아마도 그들에게 비싼 가격이었던 것 같다.

 

 

저분들은 외국인들이라 우리 것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여기저기 싼 것들도 많거든요. 저들에게는 작품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슬픈 것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죠. 한지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한지의 우수성을 깨달아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부아가 치민다. 1m 50cm 정도의 삼단 농을 하나 만드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한 달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가격을 이야기를 하면 한 마디로 비싸다라고 말을 한다는 것. 작품을 갖고 가격을 논하는 것도 아쉬운데, 정작 사람들은 작품으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보고 가격을 논한다는 것이다.

 

한지공예는 주로 여성들이 많이 한다. 섬세함을 요구하는 것도 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한지공예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르죠. 우선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요. 시간과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있죠. 그리고 한지공예는 작품을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요하고 있어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강인해야죠.”

 

 

아름다움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한지공예는 그런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해, 작가의 땀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 한지공예가 이혜순 작가는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제9회 대한민국 한지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그리고 각종 기예능 경진대회의 심사를 맡아보았다. 아직 개인전을 갖지 못했다는 이혜순 작가의 개인전이 열릴 날을 기대하는 것도, 누구보다 한지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동 아트포라 큐레이터 홍재주씨는 재주꾼

 

큐레이터(curator)란 창고지기를 말한다. 18세기 말에 탄생한 유럽의 공공미술관 큐레이터란, 각 지역에서 진귀한 유물이나 작품들을 창고와 모아 그것을 관리하고 보관하는 창고관리자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공공의 목적을 갖고 운영하는 박물관 등에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학예연구사라고 하고, 개인의 미술전시관(갤러리) 등에서 전시기획 등을 맡아하는 사람들을 일러 큐레이터라고 한다.

 

 

큐레이터들이 하는 일은 상당히 다양하다. 소장품 정리에서부터 목록작성, 전시계약서작성은 물론, 작가미팅과 섭외. 작품받기, 카탈로그 가제본 및 편집, 홍보수단으로 뿌리는 전단지의 작성, 고객 상대 카탈로그 발송, 보도자료 배포와 전시작품 디스플레이, 현수막 등 제작, 오프닝과 전시, 판매와 평가보고서 작성 등, 1인이 소화하기에는 많은 물량이다.

 

이름때문에 재주가 많은가?

 

아마도 이름에서 이미 그녀가 얼마나 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홍재주(, 54) 작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좀 더 나은 큐레이터가 되고자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이 길을 들어섰으면 남들보다 열심을 내야죠. 그래서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에 입학을 했어요. 뒤늦은 나이에 하는 공부이긴 하지만 재미있어요.”

 

 

현재 그녀는 탄탄아트 미술교재출판사 연구원이면서, 창작연구소 B-UM (비움)의 연구원이다. 또한 문화예술 복합 공간인 영동 아트포라(Art Fora)(수원 영동시장 2층에 소재한 문화복합 공간)의 큐레이터 일을 맡고 있다. 항상 바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늘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많은 생각을 한단다.

 

3년 전부터 기획에 몰두 해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재미도 있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많은 일을 했죠. 2011년부터 큐레이터 일을 맡아하고 있어요. 그동안 2011년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 골목길GMD-행궁동을 걷다코디네이터를 비롯해, 2011년 수원화성문화제 특별기획전 그림책 행궁나들이총괄기획도 하고요

 

 

홍재주씨는 지난해에는 <비영리 전시공간, 창작스튜디오 컨텐츠 부스전시 ‘AR FESTIVAL’ 참가와, 49회 수원화성문화제 특별기획전인 목판화-그 영원한 새김의 미학총괄기획, ‘수원화성&수원 스토리텔링 공모전순회전을 기획했다. 그리고 금년 들어 영동 아트포라 큐레이터 일을 맡아본다고 한다.

 

큐레이터는 또 하나의 창작을 하는 작가

 

작가는 작품을 만들죠. 그런데 큐레이터는 그 작품을 갖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접근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작가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큐레이터는 또 하나의 공간을 이용한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작가라고 보아야죠.”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큐레이터를 하는데도 남다른 감을 갖고 있을 것 같은 홍재주씨. 아마도 자신이 그린 그림도 중요하지만,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전시를 하고, 그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주는가를 고민하는 직업인 큐레이터도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보니,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이다.

 

저는 사랑방 같은 작은 갤러리가 하나 있었으면 해요. 거기서 전시도 하고, 작은 음악회 같은 음악회도 열 수 있는 공간요. 물론 그런 것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해요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또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갖고 공간 배치를 하는 큐레이터이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필요한 듯하다.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오래된 지기처럼 느껴지는 큐레이터 홍재주씨.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친근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 올 한 해 그녀의 활동이 기다려진다.

영동시장의 대표이사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41일 영동시장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 된 이정관 상인회장. 49일 영동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정관 회장은, 영동시장에서 어머니 때부터 60년을 금화한복을 운영하면서 영동시장을 지켜 온 영동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개장된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문밖시장, 성외시장 등으로도 불려

 

우리 영동시장은 정조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팔달문 앞의 시장 영역으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 팔달문시장 인근의 장들이 모두 한 장터였다고 보아야죠. 영동시장은 1919년 재래시장 등록 후, 문밖시장(팔달문 밖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성외시장(성 밖에 개장이 되어있어 붙여진 이름) 등으로 불리며 4일과 9일에 장이 서던 곳입니다. 정식으로 장을 개설한 후 100년 가까이 된 유서 깊은 장이기도 하죠.”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300개 정도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형장이다.

 

 

영동시장에서 금화한복을 운영하던 어머니

 

이정관 회장이 장에 발을 내딛은 것은 어머니 때부터이다. 강원도 금화가 고향인 어머니가 피난을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영동시장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로부터 현재 아내가 운영하는 금화한복은, 60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영동시장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께서 하시던 금화한복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서 집사람이 맡게 됐죠. 저도 그때부터 영동시장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154일 영동시장의 전무이사로 취임을 해 13년 동안 그 소임을 맡아 했죠.”

 

신풍초등학교, 삼일중학교, 유신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정관 회장은, 수원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생활을 한 수원사람이다. 그리고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을 제대하고 난 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재래시장 상인조직 활성화 방안을 위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인사조직 전문가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상징적인 전통시장

 

우리 영동시장은 1층에 자리하고 있는 170여 개의 점포 중에서, 40여 개 정도가 한복을 취급하는 점포들입니다. 우리 시장은 예전부터 한복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기도 하죠. 지금은 한복이 급격한 수요의 감소가 오고, 점차 사람들이 편리한 옷을 선호하게 되면서 한복의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동시장에서는 한복을 재조명하고자 무단한 노력을 하고 있죠.”

 

영동시장은 대중에게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2001년부터 ()영동시장의 주관으로 한복맵시대회를 열고 있기도 하다. ‘한복맵시대회는 영동시장 내에 입점을 한 한복집들이 정성들여 제작을 한 한복을, 모델로 지원을 한 시민들과 함께 선보이는 축제이다. 이 한복맵시대회는 매년 화성문화제 기간 중에, 팔달문 지역 시장 거리축제로 선보인다.

 

영동시장은 상징적인 전통시장입니다. 시장이 대형화되고 다변화가 되면서 많은 전통시장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통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특화된 시장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정관 회장은 수원의 전통시장들이 어려움이 닥칠 시기에 중요한 소임을 맡았다. 수원역전 뒤편에 대기업의 종합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수원의 모든 시장들이 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장은 오히려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함께 동반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반경 2km 정도의 상권들은 많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영동시장도 예외는 아니죠. 하기에 영동시장은 그들과 달리 특화된 시장으로 변화를 해야 합니다

 

 

문화와 즐거움이 공존하는 시장으로 만들 터

 

이정관 회장은 영동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13년 동안 영동시장의 전무이사를 맡아보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것을, 이제 하나하나 개선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우리 시장은 예술 공간인 아트포라가 들어와 있어, 문화예술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장으로 새롭게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가 3층에 800평 규모의 공간이 있는데, 2층에 있는 홀을 3층으로 옮기고, 2층에 더 많은 예술 공간이 자리할 수 있도록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전통시장과 문화예술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장의 형태를 창출해 보아야죠.”

 

사람들을 시장이라는 공간으로 끌어들여야 시장이 살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정관 회장. 영동시장이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전통시장의 새로운 모델로 탈바꿈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그것이 새롭게 전통시장의 수장으로 중요한 소임을 맡은 이정관 회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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