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director)’란 제작 책임자, 연출가, 감독, 지휘자 등을 말한다. 한 마디로 디렉터란 어느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의견을 상호 조율하여 효과적인 성공을 도출해내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수원시 팔달구 영동시장 아트포라 디렉터를 맡고 있는 서길호(수원시 팔달구 교동 90-7)씨를 7월 2일 공방에서 만나보았다.

 

“올해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디렉터라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아트포라는 예술작가들의 모임공간입니다. 이곳은 작가들과 상인들의 상호 협력을 도출해 내야하는 자리이다 보니, 상당히 어려우 점이 많이 있습니다. 작가는 작가들의 의견을, 상인들은 그들의 의견을 각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잘 조화시켜 상호 교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제가 맡은 일이죠.”

 

 

중학교 때부터 그린 그림

 

서길호씨는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회화학과를 졸업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부터라고. 오산출신이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원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수원에 와서 김석환 선생님께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학교 미술선생님이신 김두환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죠. ‘무엇을 하고 살 것이냐? 세상과 교류하고 공유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비로 그림이다’리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들이 저에게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묻는다면,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듯, 그림을 그리는 저희들 역시 그림속에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후회를 해 본적은 단 한 번 밖에 없다고 한다. 대학을 다니면서 3학년 때인가 보내요. 왜 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하는 점에 깊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외에는 아직 한 번도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후회를 한 적이 없죠.“

 

그만큼 자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곧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아트포라의 디렉터라는 소임을 맡은 것도, 아트포라 작가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라는 것.

 

 

앞으로는 수원의 문화예술을 위해 힘쓰고 싶어

 

수원미술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기도 한 서길호씨는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북경프로젝트 ‘장안문에서 천안문까지’은 북경과 한국의 현대미술관에서 가졌다. 2010년과 2012년에는 수원미술관에서 ‘한중일 국제교류전’을 갖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의왕에서 가진 ‘국제프랭카드 아트-Ulpat 2012’, 2012 오산예술가전 초대작가전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전시를 가졌다.

 

“올해에는 포항에서 수원, 포항 교류전을 가졌고요. 경기문화의 전당에서 경기청년작가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올 8월에는 수원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준비 중애 있습니다. 9월과 10월에는 오산에서 단체전을 열 계획입니다”

 

현재는 영동시장 아트포라 디렉터로 활동을 하면서,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 서양화분과위원장과 경기수채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대담 중에도 요즈음 젊은 미술학도들의 사고에 대해 걱정을 하기도 하는 서길호씨.

 

“요즈음 미술대학을 보세요. 서양화로 스스로가 화가가 되겠다는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의지가 없다고 할까요? 대학이라는 곳이 취업을 할 수 있는 과목을 선호하다보니 디자인 쪽으로만 몰려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죠.”

 

 

후배들이 이렇게 작가로서의 자긍심을 갖기보다는 취업에 목적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마음 아파한다. 바쁜 시간을 내어 대담을 하면서 긴 시간 붙들고 있을 수가 없어,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선 제 책임이 아트포라 디렉터를 맡고 있으니, 우리 작가분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온전히 작업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죠. 더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수원의 문화예술, 특히 시장문화에 대한 많은 것에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려고 합니다.”

 

비를 머금은 하늘이 잔뜩 흐렸다. 그러나 한 사람의 변화가 주변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아트포라에 더 많은 작가들이 입주를 해, 서길호 디렉터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꼭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6월 22일(토) 오후 4시부터 지동교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지전부터 아트포라 작가들이 시작한 체험장이 열렸고, 4시부터는 남수문을 배경으로 한 간이무대 앞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모여들기 시작했다. 팔달문 앞에 자리를 한 시장들이 매주 돌아가면서 여는 ‘전통시장 토요무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번 22일의 공연은 못골시장 차례였다. 전반기 토요무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이니 만큼 눈여겨보았다. 팔달문 앞의 시장들은 각각 독특한 양상의 무대를 보여주고는 했다. 이날 못골시장에서 마련한 무대에는 못골밴드와 해피 자원봉사 밴드, 화홍고등학교 밴드팀의 신나는 공연이 이어졌다.

 

 

못골시장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단골 출연이 되어버린 소리벗팀의 팸플룻 공연과, 차세대 기대주인 트로트 가수 나영웅의 열창, 수원시 공무원으로 구성된 S-Castle의 공연 등으로 초여름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무대였다.

 

7월 한 달 동안 휴식

 

6월부터 기온이 갑자기 상승을 해 연신 30도를 넘나드는 고온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전통시장의 공연은 계속되었다. 고온으로 인한 불상사가 우려되어 오후 2시부터 시작하던 공연은 4시로 옮겼지만, 한 낮의 열기는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의 등줄기에도 땀이 흐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출연자들은 무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이미 정신만큼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였다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시간을 넘기는 무대의 열기와 따가운 햇볕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박수를 보내준, 관람객들 역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 팔달문 앞 상가들이 마련한 전통시장 토요무대는 7월 한 달 동안 잠정적으로 중단이 된다. 고온으로 인해 자칫 출연자나 관람객들이 화를 입을 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에 와서 많은 구경을 했어요. 시장마다 경쟁을 하 듯 좋은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바람에 참 쏠쏠한 재미를 느꼈는데, 한 달간이나 쉰다니 아쉽네요.”

 

토요무대를 구경하던 한 관람객의 말처럼, 7월 한 달간은 쉬게 된다. 8월이 되면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래도 관람객들은 아쉽기만 하다고.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동교

 

남수문이 복원되고 난 뒤 지동교는 수원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팔달문 앞의 9개 시장이 돌아가면서 여는 전통시장 문화공연도 한 몫을 했지만, 영동시장 아트포라에 입주한 작가들의 노력도 빼 놓을 수가 없다. 토요일의 전통시장 공연에 이어, 일요일이 되면 지동시장에서 마련한 장금이 체험과 보부상 체험이 재미를 더해주었다.

 

“지동시장 체험 행사는 6월 29일까지 하고 쉬게 됩니다. 다음 주에는 덥기는 해도 다양한 체험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비가와도 체험을 지속할 것이고요”

 

최극렬 지동시장 상인회장은 다음 주까지 지동교에서 열리는 체험행사는 계속된다고 한다. 그동안 이렇게 지동교에서 벌어지는 많은 행사로 인해, 이제는 지동교가 수원을 대표하는 작은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수원에 들리면 이곳으로 찾아옵니다. 공연이 있으면 공연을 보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도 하고요. 공연이나 체험이 없다고 해도, 세 곳의 전통시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으니까요”

 

화성 서신에서 올라왔다는 정아무개(남, 46세)는 한 달 동안이나 문화행사를 보지 못해 아쉽기는 해도, 더운 여름에 잘못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한다. 재미와 감동을 준 지동교의 문화행사와 체험.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수원시 팔달구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 자리한 전통시장인 ‘영동시장’. 수원 화성의 팔달문 앞에는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면서 장시를 연 곳으로, 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동시장은 여러 장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장으로, 200여 년 전부터 개장된 장터였던 곳이기도 하다.

 

영동시장은 2~30리 밖에서도 이용하는 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정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5일장으로 열리던 시장은, 1949년 수원이 시로 승격이 되면서 영동시장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영동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상가와 상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300개 정도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형장이다.

 

 

영동시장 이층 문화공간 아트포라

 

영동시장은 그동안 시장을 살리고, 주변 대형매점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영동시장 이층에 빈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을 한 것이다. 이곳은 ‘문화예술 종합공간 아트포라’라고 명칭을 붙여, 10여 개의 공방이, 이층으로 올라가면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아트포라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오직 예술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임대료나 전기세, 수도세 등도 모두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트포라의 작가들의 공방 맞은편인 좌측에는, 커피숍과 미장원 등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전시공간과 뒤편에 대강당이 자리한다. 워낙 넓은 공간을 이용하다가 보니 전시 공간 앞이 휑하니 비어있어서, 조금은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6월 6일 현충일. 오후에 영동시장 아트포라를 찾았다. 그런데 2층에 비어있던 공간이 무엇인가 가득 채워져 있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 다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30%의 공간에 전시를 해 놓은 것들이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쉴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몇 분이 한 공방에 모여 있다. 평소 안면이 있어 더위도 피할 겸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에 전시가 되어있네요. 그동안 휑한 것이 보기가 좋지 않았는데, 저렇게 전시를 해놓으니 보기가 좋습니다.”

“그래요. 그 전시물들이 모두 손님들이 쉴 수 있는 의자랍니다. 그저 아무나 이곳에 오셔서 대화도 나누고, 편히 쉬어갈 수가 있는 곳이죠.”

“그러고 보니 2013화성국제연극제가 열리던 행궁 광장에서 본 것들도 있네요.”

“예, 원래는 이곳 아트포라에 손님들이 찾아오시면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서 마련한 것인데, 국제연극제에 먼저 선을 보인 것이죠. 그곳에서는 보지 못한 것들도 꽤 있고요. 앞으로 이 빈 공간을 다 채우려고요”

 

 

학생들과 함께 작품제작에 직접 참여를 한 김춘홍 작가의 대답이다. 그러고 보니 행궁 광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스피커 두 개를 연결해 차이가 나게 만든 의자며, 여행용 가방에 여러 가지 무늬를 넣어 만든 의자. 그리고 그저 여기저기 놓인 것들이 다 앉을 수 있도록 재창조가 된 것이다.

 

“어디 아까워서 사람들이 앉을 수나 있겠어요?”

“앞에다가 앉을 수 있는 의자라고 적어 놓아야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분들이 이곳을 좋아할 것 같아요”

 

작가들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다양한 형태의 의자. 한 곳에 앉아본다. 작품 위에 앉았다는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런 아름다운 의자라면 어느 누가 마다할까? 아트포라가 입주를 한 뒤, 달라지고 있는 영동시장이다. 더 많은 작가들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겠다는 영동시장 상인회 이정관 회장의 말마따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변화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2013수원화성연극제에 달라진 것들이 있다. 우선은 지난해까지 여기저기 분산시켜 극을 진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일이 찾아다닐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화성 행궁 앞에서 주로 공연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넓은 행궁 앞쪽에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겼다.

 

영동시장 아트포라의 自然+프로젝트부터, 아트디렉터 김연희와 총괄코디네이터 홍재주가 마련한 3some 페스티벌인 쉼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었다. 폐자재를 이용한 쉼터와 갖가지 조형은 이번 연극제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었다.

 

 

세 개의 섬(3some) 프로젝트

 

아트디렉터인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 주임교수인 김연희의 주관으로 마련한, 세 개의 섬 프로젝트는 작가 맹홍균, 배동호, 성하균, 유익성, 이재용, 이호연, 정혜경 등이 참여를 했다.

 

폐타이어는 벽에 걸려 아름다운 미술품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가운데를 막아 의자로도 활용이 되었다. 그런가하면 여기저기 많은 것들이,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이 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모두 폐자재를 이용한 것들이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쉬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이, 이번 수원화성국제연극제의 변화이기도 하다.

 

 

연극제라고 해서 꼭 볼거리만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아와 편히 쉬면서 대화도 하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마련하였다. 쓰레기로 버려진 여행가방도 앉을 곳으로 변화를 하고, 버려진 아이들의 침대 또한 훌륭한 미술품으로 바뀌었다. 쓰레기였던 새장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특별한 화분이 되었다.

 

버려진 쓰레기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네요. 폐자재를 활용해 만든 이러한 것들이 많이 보여 좋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폐자재를 활용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천에서 화성 관람을 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수원에 들렸다가 연극제를 한다는 소리에 찾아왔다고 하는 최아무개(, 35), 이렇게 재활용 된 폐품으로 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가기도.

 

 

멋진 무대들, 그러나 아쉬움도 남아

 

3일간이나 화성 행궁 앞에서 주무대에 오른 연극과 거리공연, 마당극 등을 보았다는 한 시민은

 

이번 연극제는 한 곳에서 많은 종류의 다양한 볼거리를 보았다는 점이, 바람직한 운영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해를 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개막무대에 오른 서 발레단의 에디트피아트의 사랑의 찬가가 왜 개막무대에 서게 된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네요. 국제연극제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라고 한다.

 

개막무대로 올린 사랑의 찬가를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이다. ‘신선해서 좋았다는 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프로와 아마추어들의 무대에서 보여 지는 극명한 차이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몇 사람을 디우기 위한 무대 같았다거나, ‘MD를 이용한 음악이 스크러치가 심하게 들리는 등 음향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개막무대에 올린만한 작품이라면 연극제의 특성에 맞는 작품을 올려야만 했다고 의견을 내 놓기도.

 

 

막판을 치닫고 있는 ‘2013 수원화성국제연극제’. 많은 이야기를 남긴 연극제를 돌아보면서, 좀 더 성숙해진 시민들의 참여가 아쉽기도 하다. 연극제 기간 중 젊은이들보다는 연세가 드신 분들과 아이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여, 더 많은 사람들이 참관을 하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처음 문화센터 등을 찾아다니면서 서예로도 사람들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애를 먹고는 했죠.”

 

올해로 서예를 시작한지 30년이 되었다. 예전에는 미술대학에 서예과가 없었다. 단지 취미생활로 시작한 것이, 서예가 좋다가 보니 어쩌다가 서예가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단다.

 

예전에 정보통신부에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서예와 접하게 되었어요. 글씨를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해, 틈이 나는 대로 서예에 몰두했죠. 취미생활을 하던 서예가, 저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이죠.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좋아, 1994년에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해

 

처음에는 한문과 한글을 구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저 묵향을 맡으며 글을 쓰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체계적인 공부가 하고 싶어,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에 서예전공으로 미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에 공무원 생활을 접고 서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연금을 포기하고 퇴직금으로 서실을 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난관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직 서예에만 몰두를 했다.

 

한문과 문인화도 그렸지만, 글을 쓰다가 보니 한글에 대한 애착이 생겼습니다. 그 매력에 빠져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글의 서체에 많은 연구를 하게 된 것이죠. 지금 세계는 우리 한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한글의 세계화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원 윤경숙(, 54) 선생은 서예가 점차 침체되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직장까지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실을 열어 한글 서체를 연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접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생활서예에 심취하다

 

저는 생활서예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다가서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죠. 요즈음은 글씨를 갖고 캘리그래피라고 하여서 아름다운 글을 씁니다. 캘리그래피는 전통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아름다운 글씨를 말하는 것이죠. 이제는 글씨가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의 기능을 뛰어넘어, 감성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감성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캘리그래피가 되는 것이고요

 

원래 캘리그래피(Calligraphy)'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칼리그라피아(Kalligraphia)'에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캘리그래피를 멋짓글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마음이 메말라 거칠어지고요. 이런 사람들을 서에로 치유를 할 수 있습니다. 왜 음악이나 미술은 치유가 되는데, 서예는 안된다고 할까요? 저는 석사논문을 <서예치료에 관한 연구>로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가르칠 때 그분들이 서예를 하다가보니, 마음이 치료가 되는 듯하다고 합니다. 저도 서예를 하면서 치유가 되는 것을 느꼈고요.”

 

내면에 담고 있는 감성을 표현하는 것

 

그동안 국전초대작가가 되었지만, 그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만만한 세월이 아니었다. 현재 수원미협 서예분과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서원 윤경숙 선생은, 대한민국미술대전, 경기도미술대전, 전국휘호대회, 대한민국서예한마당, 공무원미술대전, 추사선생추모휘호대회 초대작가, 한국미협, 강물회, 묵향회, 서예치료학회 등에서 활동을 했다.

 

 

한글서학회는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단체입니다. 우리의 우수한 한글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어 홍보를 하는 것이죠. 저는 단지 한지에 글씨만을 갖고 작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버티컬이나 스탠드, 스카프, 방석 등 다양하게 한글을 사용하죠. 저희 공방 명칭이 먹즐방입니다. 먹을 즐기는 방이라는 뜻이죠.”

 

수원시 팔달구 영동시장 2층 아트포라에서 만날 수 있는 서원 윤경숙 선생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고 있다. 영동시장 2층 전시실에서는 현재 윤경숙 선생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글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고 싶은 사람은, 그곳에 들려 우리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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