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아침 일찍 ‘스님짜장’ 준비를 하여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구서 전철역 옆에 마련한, ‘어르신 무료급식소’로 찾아가는 길이다. 7월 복중에 한 달에 10번 이상을 이렇게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가다가 갑자기 차 안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에어컨까지 고장이 난 것이다.

창문을 열어보아도 찜통이다. 그래도 어찌 할 것인가? 세 시산 이상을 달려 도착했다. 지난 번에 한 번 다녀왔기 때문에, 분위기는 대충 알고 있는 곳이다. 오늘도 역시 배식시간이 아직 멀었는데도,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다. 밖으로는 전과 다름없이 긴 줄이 이어져 있고.



부산 혜일암의 어르신 사랑

부산 혜일암. 그리 크지 않은 절집이다. 주지 우신스님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지하철 근무자들과 적십자 자원종사자 등,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중에는 어린 학생들도 보인다. 혜일암 신도님들은 부모님께 공양을 지어 올리듯,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에서 600~800명의 어르신들께 점심 대접을 하고 있다.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을 듯하다. 아마도 한 번 급식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작은 암자에서는 벅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낯 한번 붉히지 않고, 매주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께 정성들여 지은 점심 공양을 하고 있다.


점심을 드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분들과 준비를 하기에 여념이 없는 혜일암 봉사자들

“할머니, 이곳에 자주 오세요?”
“거의 매주 와요. 저 스님이 화요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해주니까”
“오늘은 멀리 남원에서 짜장면을 해준다고 해서 일부러 나왔어요. 지난번에도 한번 먹었는데 맛이 있어서” 
 

어르신들은 그저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에 대해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힘들지만 어르신들이 혹여 끼니라도 굶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혜일암 봉사자들. 세상에 보살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누구는 무료급식을 반대한다고 생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스님짜장 배식이 시작되었다. 자원봉사자 가운데는 나이어린 학생들도 있다.

급식소의 노악사님들 정말 멋지십니다.

한창 배식이 시작되고 어르신들이 짜장면을 맛있게 드신다. 그런데 그 전부터 음악이 그치지를 않는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시는 어른도 연세가 70은 넘어 보이신다. 그리고 악기 연주를 하시는 분은 이미 80이 넘으셨다고 한다.


짜장을 드시는 어르신들과 연주를 하시는 노 악사님

“저 어르신들 매번 나오시나요?”
“자주 나오세요. 혜일암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날은 꼭 나오시는 것 같아요”
“연세가 꽤 되신 듯 한대요.”
“악기 연주하시는 분은 80이 넘으셨대요. 그래도 정정하세요. 이렇게 당신과 비슷한 또래의 분들에게 음악으로 조금 더 즐겁게 해주시기 위해서 연주를 하신데요”

아름답다. 늙어 주름진 손이 빠르게 선에서 선으로 이동을 하면서 아름다운 음률을 만들어 낸다. 누가 이 분들의 멋진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인가?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아름답다.

“어르신 건강하게 오래사세요. 그리고 좋은 음악으로 마음이 아픈 분들을 많이 위로해 주세요.”

괜히 에어컨이 나오질 않는다고 투덜거린 내가 낯이 뜨겁다.

7월 18일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를 하고 난 후 트럭에 대형 솥을 싣고 전주에 있눈 전주초등학교로 항했다. 전날 미리 눌러놓은 밀가루며 면을 삶아 낼 대형 솥 등을 차에 싣고 떠난 것은, 학교 급식소가 수리를 하기 때문이다. 도착하자 마자 준비를 하는데 이런 전기가 들어오질 않는다. 겨우 안으로 옮겨 면을 뽑기 시작한다. 땀을 흘리며 면을 뽑고보니 이번에는 영 가마솥에 물이 끓을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나. 기다리고 있는 전주 중앙동장님과 전주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나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 겨우 면을 끓여 1학년 부터 배식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찾는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신경이 많이 쓰인다.

 


면을 뽑고 배식 준비를 마친 봉사단과 중앙동 직원들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1학년 어린이들 부터 '스님짜장'을 맛보러 온다. 어린 꼬마들이 식판을 손에 들고 다가와 짜장을 받아들고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아마도 그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식판에 짜장을 받아 이층 식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나란히 줄을 지어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맛있어요?"
"예, 그런데 왜 고기가 없어요?"
"스님이 만든 짜장이라 고기를 넣지 않았어요"
"왜 스님은 고기를 먹지 않아요?"
"....."


어린이들 다운 질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까.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스님들은 원래 고기를 먹지 않아요. 그래서 콩고기를 넣었어요"
"우리들은 스님이 아니라서 고기 먹어도 되는데요"
"아 그렇구나 그걸 몰랐네"



녀석들이 진땀을 빼게 만든다. 한 녀석이 질문을 하면 여러 녀석들이 동시에 질문을 퍼 붓는다. 이럴 때는 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 밑으로 내려와보니 고학년 학생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3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처음으로 만들어 준 '스님짜장'.

아마도 애를 탄만큼 더 값진 봉사는 아니었을까? 배식을 다 마치고 난 후, 한 그릇 푸짐하게 비벼 먹으면서 생각을 하고 혼자 키들거린다.

'정말, 고기를 넣으면 더 맛있을 것도 같다'

'스님짜장‘ 버스에 팥 새싹이 돋았다

무슨 소리일까? 버스에 새싹이 돋다니.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스님짜장 버스에 새싹이 잎을 달았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을까 싶네요. 저희들은 그저 이 새싹을 ‘버스 우담바라’라고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담바라와는 다릅니다. 씨가 떨어져 쇠로 제작된 버스 틈바구니에서 발아가 된 것이니까요. 어제 청도에 있는 운문사호 짜장 봉사를 가는 길입니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께서 카메라를 갖고 오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인가해서 가보았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싹이 자라 벌써 10cm는 족히 되게 자랐습니다.

 


아마 과일을 먹을 때 떨어진 씨가 장마가 지니, 습기가 차서 싹을 냈는가 봅니다. 참 자연의 이치는 인간이 알 수가 없네요. 버스 승강대 계단에 떨어져 자라고 있는 것은 팥이 떨어져 들어간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 참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문경 봉암사. 일 년에 단 하루 ‘부처님오신 날’을 제외하고는 산문이 굳게 닫혀 열리지 않는 곳.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유일한 절이기도 하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인 879년 지증도헌 국사가 창건하였다. 당시 심층거사가 대사의 명성을 듣고 희양산 일대를 희사하여 수행도량으로 만들 것을 간청하였다.

지증대사는 처음에 거절하다가 이곳의 지세를 둘러보고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이 날개를 쳐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흐르니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며 경탄하며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이곳이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 라고 절을 지었다.


절의 창건을 마친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개산하여 선풍을 크게 떨치니, 이것이 신라 후기에 새로운 사상흐름을 창출한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러번 소실과 중건을 반복 한 봉암사는 1982년 6월 조계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고, 희양산 봉암사 지역을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절집 안 땅을 밟기도 송구스럽다

아침 일찍 출발을 하여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 봉암사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30분경. 들어가는 입구부터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안거 중인 스님들께 ‘스님짜장’보시를 하러 왔으니 어찌하랴. 닫힌 산문이 열렸다. 버스로 구불거리는 길을 들어간다.

경내로 들어가니 절 입구에는 통행금지 푯말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100여명이 넘는 스님들이 안거 중인데도 소리하나 없이 조용하다. 마당을 둘러본다. 조그만 풀 한 포기 없이 말끔하다. 세속에 묻힌 때를 갖고 이곳 땅을 밟기조차 송구스럽다.



버스에서 짐을 내려 공양간으로 옮겨 놓고 절 경내를 돌아본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진 널찍한 돌들. 그저 앉으면 자리가 된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맑다 못해 푸르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기 위한 물소리가 암반 위를 흐르면서 경쾌한 소리를 낸다. 길가에 놓인 이끼가 가득한 돌. 그대로 자연이다.

돌아다니기조차 죄스럽다. 정말 조심스럽게 절 경내를 돌아본다. 어디 하나 군더더기가 없다. 깨끗하기가 이를 데 없다. 아마도 선원에 계신 스님들의 수행으로 인해서 인가보다. 봉암사 안에는 몇 점의 문화재가 있다.




봉암사 삼층석탑, 지증대사 적조탑, 지증대사 적조탑비와 극락전이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도 죄스럽다. 오늘따라 셔텨 소리가 유난히 크게만 들린다. 금색전 쪽으로 지나다가 보니 입구 한편에 기와조각, 돌들이 모여져 있다. 돌 하나도 허투루 놓아두지 않는 곳이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나오다가 피식 웃고 만다. 이 빈틈없는 봉암사 경내에서 돌절구 하나가 마당에 쓰러져 있다. 그 모습이 정감이 간다. 아마도 마음에 한 점 여유를 느끼고 싶으셨을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비가 오면 물이 고여 썩으니, 일부러 쓰러트려 놓았다는 것이다. 수행자와 속인의 느낌의 차이인지. 봉사도 정해진 시간 안에 산문을 나가야 된다는 봉암사. 3시간의 짧은 머무름 속에서 그래도 볼 것은 다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깊숙한 곳은 발도 들여 보지 못했는데.



이끼가 가득 낀 바위가 길가에 놓여있다. 바위 하나도 자연이 되기싶은 곳이다. 전각 입구에 놓여있는 돌들. 돌맹이 하나도 돌아다니지 않는 경내이다. 돌절구 하나가 쓰러져 있다. 봉암사에서 본 마음의 한자락 여유이다.  




봉암사의 전각들. 많은 전각들이 있지만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맨 아래 극락전은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있는 봉암사 삼층석탑과 보물 지증대사 적조탑과 탑비를 모셔놓은 전각(문화재에 대한 글을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하나) 

6월 29일, 순천시 가곡길 82-5에 새롭게 문을 여는 '송광 실버하우스'에 모이신 분들에게 ‘스님짜장’ 봉사를 하고 난 다음날인 6월 30일,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광주로 향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리고 내린다. 더위가 조금은 가셔지는 듯하지만, 불 옆에서 짜장을 볶고 면을 삶아야 하는 '스님짜장 봉사단'은 호강에 겨운 소리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 1603-1에 소재한 송광종합사회복지관(관장 도제스님). 그 건물 지하에는 '자비의 식당'이 있다. 12시에 맞추어 스님짜장을 배식하기로 약속을 했기에 서둘러야만 한다. 복지관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께 식사 배달사업을 하고 있다. 복지관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주변 어르신들께 식사배달을 마치고 속속 모여든다.


송광종합사회복지관과 '자비의 식당' 현판


이런 난감한 일이 있다니.

배식 시간이 되기도 전에 식당 안은 미리 자리를 잡으신 어르신들로 만원이다. 괜히 봉사단원들이 마음이 바빠진다. 반죽을 하고 눌러놓은 밀가루를 면을 뽑는 기계에 넣고 돌린다. 처음에는 잘 빠져 나오던 면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아무리 기계를 다시 돌리지만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짜장스님인 운천스님과 봉사단원들의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당황한 것이다. 어르신들은 와서 기다리시는데, 면이 뽑히지를 않는다. 이번에는 송광복지관 관장이신 도제스님까지 합세를 하셨다. 손수 눌러진 면을 칼로 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300분이 넘는 어르신들께 스님짜장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께 식사를 날라다 주고 돌아오는 자원봉사자 학생과 스님짜장을 제공한다고 적은 안내판 


네 그릇을 드시다니, 너무하세요 정말

어르신들은 많이 드시지를 않으신다. 그래서 일부러 양을 적게 담았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짜장면을 쟁반에 받쳐 나를 때마다 손을 내밀어 한 그릇씩 들고 가버리신다. 뒤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 앞에서 다 집어가면 우리는 언제 먹으라는 것이야”

금방 식당 안이 술렁거린다. 갑자기 식단 안에 냉냉한 기운이 감돈다. 복지관 선생님들이나,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들이나 다 난감한 표정들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드시겠다고 벼르고 계시는 분들인데.



면을 뽑고 있는 짜장스님인 운천스님. 면을 썰고 있는 것을 보시고 계시는 송광복지관장이신 도제스님(가운데) 짜장을 나르기 위해 줄을 선 봉사자들 


“안돼요. 아직 못 드신 분들도 계시는데”

결국은 밀고 당기기가 시작이 되었다. 300분에게 드실 것을 준비했지만, 여기저기 복지관 안에 자리를 잡으신 분들을 보니 더 되는 것만 같다. 거기다가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짜장을 들고 지나갈 때마다 슬쩍 집어가시는 할머니 한 분.

“아따 할머니 너무하셔 잉~ 우째 세 그릇이나 드신데“
”내가 언제 세 그릇을 먹었다고 그래.“
”내가 주욱 지켜보았는데 멀 그러셔“
“맞다. 세 그릇 째”



곁에서 드시던 어르신도 거드신다. 그래도 막무가내시다. 결국은 세 그릇을 다 드시고도 아직 양이 차지 않으셨는지. 그렇게 광주 송광복지관의 ‘스님짜장’ 봉사는 막을 내렸다. 뒤늦게 뒤처리를 하고 밥에 짜장을 넣어 먹는 봉사자들의 얼굴에 환힌 미소가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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