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토요일. 매주 신륵사 둔치에서 열리는 여강선원의 수경스님이 주관하는 '수륙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위원장 도종환) 회원 40여명과, 민예총 본부와 경기지회회원들 30여명이 3일의 수륙제에 참가했다. 지금은 수륙제라고 부르지 않고 '생명평화를 위한 여강 한마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여강 한마당에 참석하기 전 작가회의 회원들과 민예총 회원들은, 버스와 차 등을 이용해 이호대교 위에서 파헤쳐진 남한강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했다. 강천보 현장에 도착한 일행은 주변을 돌아보고 부라우 나루로 이동해, 이항진 여주환경련 집행위원장의 설명으로 남한강의 생태계와 4대강 사업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재앙으로 돌아올 것인가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했다.

 

  
▲ 강천보 현장 이호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강천보 공사현장, 속살 드러낸 남한강이 흉물스럽다.
ⓒ 하주성
이호대교

 

침묵의 시간, 강은 흐르고

 

참가한 사람들은 바위에 올라앉아 흐르는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바위 위에는 '시인이여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라'는 펼침막을 펼쳐놓았다. 그저 묵묵히 내려다보는 강물이지만, 그 강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아픔을 느꼈을까? 조금 위 예전 육모정이 서 있던 곳에 자리를 잡은 일행은, 구중서 이사장의 남한강 현장을 둘러본 소감을 듣는 시간에 이어,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인 홍일선 시인의 시낭송과 글쓰기 퍼포먼스가 열렸다.

 

  
▲ 강가에 선 사람들 부라우 나루에 도착한 일행이 이항진 여주환경련 집행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 하주성
부라우나루

  
▲ 침묵의 시간 '시인이여, 사라지기 전에 기억하라'는 펼침막을 펴고 강을 바라보면 침묵을 하는 시인들
ⓒ 하주성
시인

 

'첫 시를 쓰던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리'라는 제목의 시에서 홍일선 시인은

 

가문날

강마을 어진땅 지켜주시던

단양쑥부쟁이 일가

무참히 밀어내는 짐승의 시간

강 찾아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목이 메이는

검은댕기해오라기 형제들

국토 곳곳이 용산참사역이어서

고향을 빼앗긴 어머니강의 피붙이들

고라니들 청둥오리 백로들 무래무지 누치들

애달픈 별리의 노래

강기슭 갈대숲에서 들려왔으리(하략)

 

속마음 드러낸 시인들

 

  
▲ 시낭송 홍일선 시인의 시낭송과 함께 펼쳐진 퍼포먼스
ⓒ 하주성
시낭송

  
▲ 글쓰기를 하는 회원들 펼침막에 자신이 느낀 글을 적는 회원들
ⓒ 하주성
펼침막

 

퍼포먼스가 끝나고 나서 참가한 사람들은 펼침막에 강에 글을 남겼다. 저마다 마음속에 한 마디씩의 절규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핏빛으로 물든 강물을 보라 우리의 암울한 미래다.(김희정)

강은 제모습으로 흐르고 싶어한다. 내가 내 얼굴로 살아가듯(최옥자)

강이 사라지면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남루해질까?(김남일)    

강은 제 깊은 속을 투명하게 드러낼수록 멀리 흐른다(김경주)

 

부라우나루를 떠난 일행은 오후 3시부터 남한강 은모래금모래 공사장이 마주보이는 둔치에서 열리는 여강 한마당에 참석을 했다. 앞에는 '先亡 4대강 파괴로 희생된 온 생명 제위'라는 위폐를 모셔놓고, 불교의식인 작법에 이어 시낭송과 판화가 이철수의 공사현장을 돌아본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위폐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생명을 위한 여강 한마당
ⓒ 하주성
위폐

  
▲ 여강 한마당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여강 한마당에 참석한 사람들. 건너편에는 아름다운 금모래은모래가 송두리채 파헤쳐지고 있는 현장이다.
ⓒ 하주성
여강 한마당

  
▲ 이철수 판화가 이철수씨가 현장을 돌아본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 하주성
이철수

 

파괴되고 찢긴 남한강 현장을 돌아보고 난 후, 여강 한마당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금 행해지고 있는 이 4대강 정비라는 사업에 우리에게 얼마나 큰 화를 불러 올 것인가에 대해 소름이 끼친다고 한다. 아름다운 남한강이 파헤쳐지는 현장을 바라보고 이루어지는 여강 한마당. 그래서 한 주도 쉴 수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이지만. 




한강(漢江)은 강원도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한반도 중부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한강은 옛 말로는 아리물 또는 아리수, 아리가람이라고도 불렀다. 1300리 514km를 흘러 황해로 흘러드는 한강. 그 발원지 검룡소를 찾아본다.

 

눈이 쌓인 오름길을 걷다

 

  
▲ 선돌비석 검룡소 오름길 입구에 세워진 선돌비
ⓒ 하주성
검룡소
 
아침 일찍 8시에 여주 신륵사 입구 여강선원에서, 서종훈 민예총경기지회장과 김계용 여주민예충 사무국장과 동행하여 태백으로 길을 떠났다.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태백시에 있는 검룡소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11시가 넘어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을 뿐, 3시간을 줄곧 달린 셈이다.

 

입구에 있는 안내소의 직원이 방명록을 펼쳐준다. '담배는 피울 수 없습니다. 지정된 오름 길 이외에는 생태보존을 위해서 딴 곳을 출입하시면 안됩니다. 쓰레기 등 오물을 남겨두시면 안됩니다' 등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안내소 밖까지 따라 나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는 검룡소 관리직원이 고맙기까지 하다.

 

안내소를 지나면 오름길 1.3km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좌측에는 커다란 선돌에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라고 쓰여 있다. 며칠 전 눈이 내려 아직 녹지가 않아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안내원의 말을 뒤로하며 천천히 오름길을 걷기 시작한다.

 

  
▲ 눈이 쌓인 오름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은 검룡소 오름길
ⓒ 하주성

  
▲ 개구리 알 물 속에는 개구리 등의 알이 가득하다. 그만큼 생태계가 살아있다
ⓒ 하주성
개구리

  
▲ 맑은 물 맑은 물이 흐르는 오름길 옆
ⓒ 하주성
검룡소

자연의 물. 그 맑음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오염되지 않은 곳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 검룡소 오름길을 따라 걷노라니, 마음속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잠시 물속을 들여다보니 개구리 알인 듯, 많은 알들이 물속에 보인다. 돌 틈을 흐르는 맑은 물이 경쾌한 소리를 낸다. 세심교를 건너서니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나무들이 양옆으로 서 있다.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발자국이 찍혀 있다. 저 멀리 검룡소로 오르는 나무다리가 보인다. 물이 흐르는 주변은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인해 하얗게 되었는데, 숲 속을 작은 짐승 하나가 소리를 내며 뛰어간다. 생태보존지역인 이곳은 이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가 보다.    

 

  
▲ 눈길 세심교를 건너면 하늘을 찌를 듯 나무들이 솟아있다
ⓒ 하주성
세심교

 

하루 2000톤의 물을 분출하는 검룡소

 

이곳은 한강 발원지로 1억 5천만 년전 백악기에 형성된 석회암동굴 소로써 하루 2000여 톤 가량의 지하수가 용출되고 수온은 사계절 9도C 정도이며, 암반주변 푸른물 이끼는 신비함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 금대봉을 시작으로 정선 영월 충주 양평 김포 등 평야와 산을 가로질러 서울을 비롯한 5개 시도를 지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를 지나 서해로 흘러가는 514.4km의 장강이다. 천년 역사와 함께 흘러 온 한강은 지금도 민족의 산하와 대지를 적시며 5천만 국민의 생명수가 되는 겨레의 수맥이다.(하략)

 

  
▲ 검룡소 검룡소 주변은 말끔히 정리가 되어있다.
ⓒ 하주성
검룡소

 

검룡교를 오르기 전 안내판에 적힌 글을 읽어본다. 맑은 물줄기가 바위틈을 흘러내린다. 얼마나 오랜 세월 그렇게 물을 맞으면서 이 돌들은 이곳에 있었을까? 크지 않은 물줄기가 흘러내리지만, 그 세월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들이 움푹 파여져 매끄럽게 변해 있기 때문이다. 소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주변 정리가 되어있다. 1986년 태백시와 태백문화원이 주변 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목조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검룡소. 그 물의 맑음이 세상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생명의 근원인 물, 그렇게 더럽혀야 할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루 2천 톤이나 되는 물을 용출하는 검룡소의 물이 솟는 곳은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마치 그저 고여 있어 평온한 듯한 느낌이다. 물 흐름이 시작되는 경사진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이곳에서 물이 용출되는 것조차 알 수 없는 정도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일까? 그렇게 나대지 않고 속으로 고요함을 간직한 것이. 이 검룡소의 솟아오르는 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 발원지 1,300리 한강이 시작되는 검룡소.
ⓒ 하주성
검룡소

  
▲ 발자국 눈 위에 찍힌 짐승들의 발자국. 물을 먹으로 왔다.
ⓒ 하주성
발자국

그것은 우리에게 흔들림 없는 세상, 소리 내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라고 일깨우는 것만 같다. 온 나라의 강들이 중장비의 소음으로 시끄러운데, 정작 이 발원지인 검룡소의 솟아나는 물은 소리조차 없다. 그렇게 물은 소리 없이 흐르며 생명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검룡소 주변 바위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그 위에 짐승들이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물을 먹으러 들어간 발자국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이 땅의 생명들이 이 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검룡소 밑으로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서 한 모금 마셔본다. 목을 타고 흘러드는 물이 머리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이 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시며 살았을까? 오늘 이곳에 와서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저 아래 황해로 흘러들어갈 때까지, 이렇게 맑은 물을 먹었었다고 하는데, 이제 찢기고 파헤쳐진 물길로 인해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곳에 서있는 것조차 부끄럽다. 그 아래 물길을 지켜내지 못했음이.



남한강,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산 1-1 금대봉 왼쪽 산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은, 영월읍의 동강과 서강이 합수되는 곳서부터 '남한강'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다.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수되기까지, 216.7km를 흐르는 남한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길을 갖고 있는 강이다.

 

'4대강 정비'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파헤치고 깨치고, 온통 속살을 드러내면서 흙탕물이 군데군데 모여 맑디맑던 남한강을 버려놓고 있다. 아름답던 강 길 곁에 억새와 갈대는 모두 흙더미와 함께 한 곳에 쌓여있고, 강 주변에서 하늘거리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나갔다. 여강선원에서는 이렇게 강을 버려놓고 있으면서 4대강 정비라고 위장을 한 엄청난 환경파괴를, '위장 대운하 공사'라 칭한다.         

 

흥원창서 바위늪구비까지 돌아보다

 

  
▲ 오탁방지막 오탁방지막이 쳐진 그 밑으로는 흙탕물인 듯한 물빛이 보인다.
ⓒ 하주성
흥원창

강원도 부론면 흥원창. 4대강의 절경 가운데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아름다운 곳이다. 지역으로는 충청북도와 강원도, 경기도가 만나는 곳이며, 섬강과 청미천이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곳이다. 세 가닥으로 갈라진 물줄기는 거대한 암벽 밑을 감돈다. 판소리 적벽가라도 한 대목 나올 만한 그러한 절경이다. 이곳 흥원창 일대도 이미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가 시작이 되었다.

 

강을 반으로 가르는 작업을 하는지, 한편은 흙탕물로 벌겋게 변했다. 오탁방지막도 거리를 두어 친 것도 아니고 두 줄을 한꺼번에 붙여놓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저 밑에 또 이중으로 친 오탁방지막이 있는 곳의 물도 붉은 색을 띠고 있다.

 

  
▲ 해돋이 산길 건너편 이 곳 역시 중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 하주성
해돋이 산길

 

닷둔리에서 해돋이 산길을 걷는 길. 그 중간에 수천마리의 철새들이 물을 박차고 날아간다. 그 강 건너편 속에도 중장비가 분주히 돌아다닌다. 어디 한 곳 놓아두는 곳이 없다. 온통 갈가리 찢고 있는 중이다.

 

바위늪구비 일대, 이곳은 물을 가로질러 길을 내놓았다. 강천리에서 도리까지를 물을 막아 길을 내고, 양편으로 덤프트럭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곳은 멸종위기 2종 보호식물인 단양쑥부쟁이의 집단서식지이다.

 

바위늪구비 습지는 하도내습지, 범람형배후습지, 하중도습지, 합류형습지, 사력퇴초본형습지, 사락퇴차단형습지 등 여러 형태의 습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생태적으로 안정된 곳이기 때문에 수많은 조류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주환경연합에서 몇 번의 싸움 끝에 지켜낸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미 모든 지역에 중장비가 들어차 있다.

 

강천보 현장주변

 

  
▲ 이호대교 부근 강천보 건설현장인 이호대교 부근. 중장비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 하주성
이호대교

 

깅천보가 건설 중인 이호대교 인근은 이미 모래와 자갈의 퇴적이, 이호대교 높이만큼 높이 올라 차 있다. 이호대교 위서부터 여주의 가장 아름답다는 금모래은모래까지 바닥이 송두리째 파헤쳐지고 있다. 여기저기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강바닥의 암반 발파도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이호대교에서 신륵사 방향으로 가다가보니 강을 건넌 덤프트럭들이 날라다가 쌓은 모래와 자갈더미에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있다. 수석채취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아픔의 산물, 통한의 산물인 저 모래와 자갈의 퇴적더미에서 돈을 벌겠다고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 과연 강의 소중함이나 알고 있는 것일까?

 

  
▲ 금모래은모래 여강선원 뒤에서 바라다 본 금모래은모래. 남한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밭을 갖고 있었다. 모두 다 파헤쳐지고 있다.
ⓒ 하주성
금모래은모래

 

여강선원에서 은모래금모래 쪽을 바라다본다. 중장비들이 흡사 공룡처럼 짐칸부분을 들고 서 있다. 그것이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문득 발아래 모래톱을 들여다보니, 누군가 두꺼비집을 만들다 가버렸다. 채 완성이 안 된 두꺼비집. 모래밭에서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했는데, 이제 그 아이들은 다 가고 없다.

 

여강선원 뒤편 강물에 쳐진 오탁방지막. 그 밑으로 오리들이 유영을 한다. 오리 한 마리가 오탁방지막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또 한 마리가 위로 오른다. 과연 저 부유물들이 생명을 지키는 오탁방지막일까?

 

  
▲ 두꺼비집 누군가 여강선원 뒤 모래에다 두꺼비집을 만들다가 갔다. 이런 놀이를 하던 모래밭이 다 사라지고 있다.
ⓒ 하주성
여강선원

  
▲ 오탁방지막 오리들이 오탁방지막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 하주성
오탁방지막

 

여주보와 이포보 현장주변

 

여주보 현장을 찾았다. 강바닥에 무수히 박힌 철제빔들. 그리고 산처럼 쌓인 모래와 자갈, 저 멀리까지 온통 장비들이 강을 헤집고 있다. 대신면 보통리쪽으로 향하다가 강둑길로 접어들었다. 바로 밑으로는 이미 강바닥을 다 파내고 평탄작업을 하고 있다. 

 

  
▲ 여주보 철제빔이 무수히 강바닥에 박히고, 저 멀리까지 온통 중장비로 강바닥을 도배를 한 듯하다
ⓒ 하주성
철제빔

 

양편을 평평하게 만들고 중앙은 깊이 파 요철을 낼 것이다. 저렇게 평평하게 만들면 물이 과연 깨끗해질까? 헛웃음만 터져나온다. 강바닥은 자연적으로 구비가 있고, 요철이 있어야 수생생물이 살 수가 있다. 그래야 생명 또한 이곳에서 살 수가 있다. 그리고 바닥에 모래와 자갈 등이 있어야 물을 깨끗하게 거르는 자정기능을 할 수 있다. 저렇게 다 퍼내고 평평하게 만든 바닥이 물을 깨끗이 한다니, 요즈음은 이런 개발을 찬성하는 학자들의 되지도 않는 학설도 씨가 먹히나 보다.

 

이포보 옆 높은 곳으로 올랐다. 이포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편 산 위에는 파사산성이 구불거리고 산을 누비고 있다. 아래서는 연신 굉음을 내며 중장비가 바닥의 돌을 깨어내고 있다. 떨어져 나간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마치 내 살이 뭉텅 잘려나간 느낌이다. 아프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너무 많이 아프다.

 

  
▲ 이포보 이포대교 인근에 세워지는 이포보. 멀리 파사산성이 보인다.
ⓒ 하주성
이포보

  
▲ 채석 중장비가 하루 종일 돌을 깨고 있는 굉음이 시끄럽다. 아름다운 강바닥이 송두리채 찢겨 나가고 있다.
ⓒ 하주성
이포보

 

이렇게 갈가리 찢긴 남한강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만들 수가 있단 말인가? 2010년 3월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돌아본 남한강. 흥원창부터 이포교까지 그 아름답던 남한강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통한의 강이 되었다. 하연 속살을 다 내놓고 있는 남한강은, 그렇게 아픔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다.




이인영은 여주인으로 고종 4년인 1867년 여주 북내면 상교리에서 태어났다. 의병활동을 하다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은 의병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시영(時榮)이라는 가명으로 상주에서 은거하였다. 충청북도 황간으로 옮겨 거주하던 중, 1909년 일본헌병에게 잡혀 경성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상교1길 119 - 16 이인영의 생가 앞에는, 지난해 세운 의병대장 중남 이인영기념비가 서 있다.

  

13도 창의대진소 총대장

 

  
▲ 기념비 생가 앞에 세운 기념비. 지난 해인 1009년 9월 20일이 이인영 총대장이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 하주성
이인영

 

이인영은 대성전재임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유인석, 이강년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강원도 춘천과 양구 사이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유인석의 제천전투에 참여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부친의 병환으로 인해 의병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이 재기하자, 그 해 9월 원주에서 의병원수부를 설치하고, 관동창의대장에 올랐다. 서울에 있는 각국의 공사관에 호소문을 띄우는 등 국권회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1907년 11월 전 병력을 24진으로 하는 13도 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한 이인영은 원수부 13도 의병총대장에 추대되었다. 군사장에 허위, 관동총대장에 민긍호, 호서창의대장에 이강년, 호남창의대장에 문태수, 영남창의대장에 박정빈, 경기황해창의대장에 권중희, 관서창의대장에 방인관, 관북창의대장에 정봉준을 선정한 뒤, 일거에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격파하고 조약을 무효로 만들어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

 

  
▲ 안방 이인영 생가는 모두 7 칸으로 지어진 초가이다.
ⓒ 하주성
이인영 생가

 

그러나 각 도의 의병 중에는 제 날짜에 도착을 하지 못한 자가 많았고, 기밀을 알아차린 일본군이 먼저 공격을 해옴에 따라 다시 여주까지 퇴군을 하였다. 여주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이인영은 대치를 하고 있던 1908년 1월 28일, 문경에 거주하던 부친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인영은 "충은 효이고, 효는 충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후사를 군사장인 허위에게 맡기고 본가로 급히 내려갔다.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에는 재기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일본 헌병에 잡혀 순국을 하고 말았다.

 

역사의 흔적 이인영 생가지 너무 쓸쓸해

 

여주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이인영 총대장의 생가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작은 집이 이 집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인가 여주군에서 집을 보수를 하고, 지난해인 2009년 9월 20일 기념비를 세웠다. 지난 해  9월 20일은 이인영 총대장의 순국 100주기가 되는 해였다. 좁은 마을길을 가다가 내를 건너면 기념비는 집을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데, 이곳이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13도 의병 총대장의 생가라는 안내판 하나가 없다.

 

  
▲ 마루 두 칸 대청 앞은 엉망이다. 보수를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엉망이 되었을까?
ⓒ 하주성
대청

  
▲ 떨어진 담벼락 담벼락의 흙이 다 떨어져 내렸다.
ⓒ 하주성
담벼락

  
▲ 굴뚝 깨진 굴뚝 주변에는 떨어져 내린 흙이 쌓여있다. 흉물이 되어가고 있는 이인영 의병 총대장 생가
ⓒ 하주성
굴뚝

이인영 의병 총대장의 생가는 ㄱ 자 초가로 7칸 집이다. 좌측으로는 부엌과 두 칸 안방의 있고, 한 칸 윗방이 있다. 꺾인 곳에 두 칸 대청을 두고, 한 칸의 건넌방이 있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순한 초가집이다. 이런 집에서 13도 의병을 총괄하는 총대장이 태어난 것이다. 집은 보수를 했다고 하지만, 마루 앞으로는 블록이 깨져있는 등 엉망이다.

 

집 뒤로 돌아가니 말라버린 돌우물이 보인다. 주변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고, 담이 떨어져 내리고 굴뚝은 바른 흙이 다 떨어져 내렸다. 방을 들여다보니 누군가 이곳에서 머물렀던 흔적이 있다. 마루는 신발을 신고 돌아다닌 듯 흙발자국이 잔뜩 찍혀있다. 앞에는 새로 지은 화장실이 있는데, 정작 보수를 했다는 생가는 화장실보다도 못한 느낌이다.

 

  
▲ 우물 말라버린 우물. 하루 빨리 주변 정리를 해 주기를 촉구한다.
ⓒ 하주성
우물

  
▲ 더럽혀진 대청마루 마루 위는 누군가 돌아다닌 듯 엉망이다.
ⓒ 하주성
마루

 

그래도 13도 의병의 총대장이었던 사람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이다. 어떻게 이런 몰골이 되어있는 것인지. 돌아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인물들이 잊힌다고 하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내야 할 것이다. 13도 의병 총대장인 이인영 대장을. 그리고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 이 곳 생가도 하루 빨리 주변 정리를 해서 역사의 교육현장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우리나라 강길 가운데서도 남한강의 주변 강 길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하기에 가장 마음이 아픈 곳 역시 남한강의 주변 길이다. 2010년 3월 28일(일), 민족미술인협회 서울, 경기, 여주의 회원들이 수경스님이 계신 여주 남한강가 여강선원을 찾았다. 매주 토요일 스님이 강을 보존하기 위하여 열고 계시는 수륙제에 함께 동참을 하기 위해서다.

 

수경스님과 1시간여를 간담을 한 민미협 회원들은,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의 안내로, 멸종위기 2급보호식물인 단양쑥부쟁이 집단서식지가 있는 강천마을회관서부터 닷둔리까지 강길을 걸었다. 이른 봄에 걷는 남한강 길. 그 중에서도 닷둔리까지 걷는 '해돋이 산길'은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한 곳이다.    

 

아름다운 해돋이 산길

 

  
▲ 봄꽃 강 길 주변에는 벌써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있다. 며칠 전에도 눈이 내렸는데...
ⓒ 하주성
강 길

 

해돋이 산길은 강천리부터 닷둔리까지다. 닷둔리는 교동에서 풀무골로 넘어오는 고개를 말한다. '둔(屯)'이란 평평한 산기슭을 이르는 말이다. 해돋이 산길은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남향으로 남한강의 흐름과 햇빛을 볼 수 있는 아늑한 길이다. 하기에 이 길은 아직도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항진 위원장이 설명하는 단양쑥부쟁이 서식지 주변은, 한창 덤프트럭들이 줄을 지어 드나들고 있었다. 그나마 쑥부쟁이 서식지는 보존이 되어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곳에서 길을 걷기 시작해, 해돋이 산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논둑과 밭둑을 지나 우측에 남한강을 두고, 좁은 소로를 따라 들어가니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작은 풀들 사이에 꽃들이 피어있다.

 

생태계가 살아있는 여강 길

 

강을 우측으로 두고 걷는 해돋이 산길, 좁은 도로를 따라 가다가 보면 발밑으로 경사가 급한 곳을 만난다.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의 물이 참 '파랗다'라는 생각을 한다. 저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꽃을 보고 있다. 생강나무 꽃이다. 노란 생강나무 꽃이 길을 따라 여기저기 피어있다. 생강나무 꽃은 4월 초에 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날이 따듯해 일찍 꽃을 피운 듯하다. 마른 풀숲에는 원추리가 여기저기 싹을 드러내고 있다.

 

  
▲ 생강나무 꽃 생강나무 꽃이 강길을 걷는 길 가 여기저기 피어있다.
ⓒ 하주성
생강나무 꽃

  
▲ 원추리 원추리도 싹이 돋아 자라고 있다.
ⓒ 하주성
원추리

  
▲ 돌단풍 바위 틈에 난 돌단픙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 하주성
돌단풍

 

생강나무 꽃을 따다가 그늘에 건조를 시켜 차를 달여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한다. 생강나무 차를 몇 년째 마시는 나는, 그 향을 알기 때문에 꽃만 보아도 반갑다. 강 길을 따라 여기저기 피어있는 생강나무 꽃들. 그리고 절벽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돌단풍도 보인다. 며칠 전만해도 여주에는 눈이 쏟아졌는데, 그 눈속에서도 이미 꽃을 피울 준비를 했는가 보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자연의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그 자연을 마음대로 파헤치고 있는 인간들의 오만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앞서가던 일행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 서서 위를 보고 무엇인가를 불러댄다. 쫓아 가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벼랑 중간에 매달려 있다. 이놈,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이 두려운 것인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죽은 듯 매달려 있다. 근처에 파인 돌 틈에 어린 새끼라도 있는 것일까?

 

  
▲ 청설모 벼랑에 매달린 청설모
ⓒ 하주성
청설모

  
▲ 청설모 움직이지 않고 벼랑에 매달려있는 청설모
ⓒ 하주성
청설모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몇 번인가 길을 오르내리면서 걷기를 40여 분. 해돋이 산길이 끝날 무렵 동행을 한 환경연합 회원들이 놀랍다는 듯 쫓아온다.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가창오리를 보았다는 것이다. 아마 건너편 물가에 가득 앉아있던 많은 철새 떼 틈바구니에 있었나 보다. 바람에 뽑힌 것인지, 쓰러진 나무가 옆에 선 나무에 기대면서 아취를 만들고 있다. 그 밑으로 지나가면서 즐거운 것도 자연 스스로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살아있는 생태계. 이런 곳을 마구 파헤치고 있는 사람들. 과연 이 다음에 우리 후손들은 우리들을 얼마나 못난 조상이라고 비웃을 것인가?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빌려온 것이라'고 말로는 그럴 듯하게 떠들고 있는 인간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지 못한 우리들도, 결국엔 똑같은 취급을 받을 것은 자명한 일. 이 아름다운 강 길에서, 헤집어진 강바닥과 같이 마음도 갈래갈래 찢어지고 있다.

 

  
▲ 남한강 해돋이 산길을 걷다가 내려다 본 남한강.
ⓒ 하주성
남한강

  
▲ 나무 아취 자연이 만든 나무 아취. 해돋이 산길은 아름다운 강길이었다
ⓒ 하주성
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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