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의 사라지는 명소 금모래 은모래

 

2월 2일 오후,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여주 신륵사는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흘러오는 강길 중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다. 더욱 이곳은 강이 휘감아 돌면서 한편에 자연스럽게 쌓여 퇴적이 된 모래톱이 아름다워 '금모래 은모래'하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여주 남한강변의 명소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인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찬 날씨에 찾아간 신륵사 강월헌. 이곳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은 절경이다. 강월헌의 주변으로는 기암괴석이 남한강의 물줄기를 맞이하고, 건너편에는 그 유명한 금모래 은모래 밭이다. 그리고 그 뒤로는 천연의 숲이다. 이곳은 남한강 유원지라고 하여, 일 년이면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월헌 가까운 곳까지 오탁방지막이 처져있다. 그 이유는 바로 신륵사 건너편의 금모래 은모래 밭의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서, 그곳에 중장비들이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일이여, 이제 무엇을 보고 살아. 저렇게 다 퍼가면…."

 

여주에서 태어나 여주에서 살아 온 분들이 한마다씩 한다. 어려서부터 늘 가서 뛰어놀던 곳이, 바로 금모래 은모래밭이었다는 것이다. 한참을 놀다가 땀이 나 그 뒤편에 있는 숲에 들어가면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단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한 명소인데, 그곳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다. 

 

새들도 넘지 않는 오탁방지막

 

  
▲ 오탁방지막 금모래 은모래의 모래와 자갈을 채취하기 위해 쳐놓은 오탁방지막
ⓒ 하주성
오탁방지막

  
▲ 유원지 숲 금모래 은모래 모래밭 뒤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다. 이 숲도 절반이나 잘려 나간다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 하주성

 

넓은 모래밭을 파 올려 여기저기 모래더미를 쌓고 있는 현장. 그런데 그 앞으로 처져있는 오탁방지막을 보면서 희한한 모습을 보았다. 오탁방지막 밑으로는 중대백로며, 오리 떼들이 모여 있는데, 오탁방지막 위쪽으로는 단 한마리의 새도 보이지 않는다.

 

"저 새들이 침묵시위를 하는 것 같아요"

"침묵시위라뇨?"

"저기 좀 보세요. 원래 중대백로라는 새들이 저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 바위에 보세요. 저렇게 모여서 움직임이 없는 것이 흡사 침묵시위라도 하는 듯 하잖아요. 새들도 강을 저렇게 파헤치니 화가 난 것 같아요."

 

중대백로가 무리지어 사는 새인 줄만 알고 있던 나이다. 그런데 바위 위에 여기저기 20여 마리의 새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강에는 오리 떼들이 무리지어 날았다가, 다시 내려앉고는 한다.   

 

젊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월헌에 찾아들었다. 그리고 굴착기로 파서 쌓아올린 모래더미를 연신 찍어댄다. 저마다 오탁방지막이며 모래더미를 찍는 사람들.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저 건너편에 호텔도 들어 온데요. 여주가 발전을 하는 것은 좋지만, 저렇게 마구 파헤치면 어쩌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흡사 모래 파먹기 대회를 하는 듯한 현장

 

  
▲ 중대백로 오탁방지막 밑 바위에 무리지어 앉아있는 중대백로들. 마치 강을 파헤치는 것에 대해 침묵시위를 하는 듯하다.
ⓒ 하주성
오탁방지막

  
▲ 오리떼 남한강은 수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러나 올에는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 하주성
오리

강천보의 금모래 은모래 모래밭의 모래와 자갈 채취를 시작으로, 여주보의 산이 되어가고 있는 모래와 자갈 채취현장, 그리고 이포보의 마치 포격에 맞은 듯한 웅덩이가 된 현장. 여주의 현장들은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 흡사 다투어 모래자갈을 파먹기 위한 시합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그 아름다운 모래밭이 망가져가는 현장을 보는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이렇게 자연을 마구 파헤쳐도 되는 것인지. 이미 환경이나 자연보호라는 말은 거리가 멀다. 강월헌 건너편에 줄을 지어 꽂아 놓은 빨강색 깃발들. 저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 숲도 반이나 잘려 나간대요."

"건너편 저 숲 말인가요?"

"예, 이제 여주의 가장 아름다운 강 길이 송두리째 사라지네요."

 

  
▲ 현장을 떠나는 중대백로 모래밭 모래와 자갈채취가 보기 싫은 듯, 바위를 떠나 남한강 위로 나는 중대백로
ⓒ 하주성
중대백로

 

중대백로 한 마리가 파헤쳐지는 모래밭이 보기 싫다는 듯, 남한강 위로 날아간다. 그 뒤로 또 한 마리. 그렇게 바위 위에 침묵으로 앉아있던 새들이 떠났다. 그리고 저 멀리 작업현장만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1월 23일. 토요일이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남한강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 날씨인지라 꽤 쌀쌀하다. 남한강 주변의 길을 걷고 있노라면,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강 길을 걷는 즐거움은,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앞 강길을 걷다보면, 멀리 보이는 산들과 조화를 이루는 남한강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쌓아올린 모래더미가 산이 되어가고

 

그런데 앞을 보니 남한강 세 곳의 보 중 한곳인 여주보가, 바로 왕대리 앞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쪽 옆으로는 모래와 자갈을 파다가 쌓아올린 퇴적물이 점차 산이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저렇게 많은 모래와 자갈을 퍼다 쌓아올리면, 강바닥은 자정능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도 수질이 좋아진다는 말에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여주보를 바라보고 있는데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시는 분이 계시다. 여주보를 만드는 것을 보는데 답답하다고 대답을 했더니, 마음 아프게 그런 것은 무엇 때문에 보느냐고 하신다. 왕터에 사시는 이 어르신은 몇 년째 이 강 길을 갈으셨다고 하신다.

 

"마음이 아프세요?"

"그럼 저렇게 강바닥을 파헤치면 어떻게 해. 물고기가 씨가 마르는데."

"물고기가 씨가 마르다뇨?"

"저렇게 모래자갈을 바닥을 파서 퍼 가면, 그 모래자갈만 파 올리겠어. 치어나 물고기 알은 다 괜찮겠느냐 이거지. 아마 씨도 안 남을 거야. 그리고 이곳은 여울목인데, 여울목을 저렇게 파헤치면 물고기들이 어떻게 살아."    

 

  
▲ 모래더미 강바닥을 파 채취한 모래와 자갈이 산을 이루고 있다
ⓒ 하주성
여주보

 

나는 환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저렇게 강바닥의 모래자갈을 다 파내면, 수질이 나빠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르신의 말씀은 기분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남한강가에는 소문난 매운탕집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집들이 이제 다 문을 닫을 지경이란다.

 

철새도래지에 철새는 없고

 

남한강은 겨울철이 되면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드는 곳이다. 그만큼 철새들이 이곳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가 쉬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왕대리에서 이포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능서면 내양리가 있다. 앞으로는 양화천이 흐르고, 마을 뒤로는 남한강이 흐른다. 그래서 이곳은 겨울이 되면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내양리에는 지금도 민물고기 매운탕을 파는 집들이 있다. 하기야 고기를 잡을 수 없으니, 이제 이 집들도 양식 민물고기를 딴 곳에서 사다가 장사를 해야 할 판이다. 내양리 남한강가에는 철새도래지임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다. 하지만 철새 한 마리 찾아볼 수가 없다. 돌아 나오는 길에 백석리 마을회관 앞에 계신 마을 분들에게 물어보니, 공사를 시작하고 철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고, 보는 것마다 답답함 뿐이다.

 

  
▲ 모래더미 모래더미 위로 쉴새없이 덤프트럭들이 모래 자갈을 파다가 쌓는다
ⓒ 하주성
여주보

  
▲ 모래더미 모래더미 위로 쉴새없이 덤프트럭들이 모래 자갈을 파다가 쌓는다
ⓒ 하주성
여주보 현장

강 속 깊이 박히는 철재구조물들

 

여주보 현장을 바라보는데 한숨만 나온다. 보를 막는다고 철재 구조물을 강바닥에 엄청나게 박아놓았다. 저 구조물로 인한 피해는 또 없을 것인가? 날이 추운데도 굉음을 내면서 공사를 하는 모습들. 아마 약속한 공기 내에 마치겠다고 저 난리들을 피우는 것인지. 저렇게 급하게 하는 공사가 과연 제대로는 될지 모르겠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한다'고 했거늘. 그저 저 철제구조물로 또 강물은 얼마나 오염이 될 것인지.

 

  
▲ 철재구조물 강바닥에 깊이 박히는 철재구조물과 수위표시
ⓒ 하주성
여주보

공사를 하고 있는 강변 모래밭에 박힌 수위표가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밑에 보이는 '관리수위'는 평상시의 물의 높이일 테고, 위에 보이는 '계획 홍수위'는 보의 높이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 계획홍수위가 현재의 둑보다 낮지가 않다. 만일 국지성 호우라도 상류 쪽에 쏟아진다면, 그리고 상류의 댐을 열어젖힌다면, 저 물은 다 어디로 갈까?  

 

공사가 한창인 여주보 인근 모래밭가에 배 몇 척이 보인다. 저 배들은 무엇을 하는 배였을까? 저렇게 쓸쓸하게 보이는 몇 척의 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아름다운 강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의 모습도 이젠 더 이상을 볼 수 없는 것인지.

 

  
▲ 배 남한강가에 모여있는 배들. 무엇에 사용하던 배일까?
ⓒ 하주성
여주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남한강. 그리고 억새와 갈대가 하늘거리던 강 길.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물 위에 솟구치던 물고기들. 이런 모든 것이 꿈속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공룡과 같은 모습으로 굉음을 내며 강바닥을 파헤치는 중장비와, 연신 모래와 자갈을 날라다가 모래산을 쌓고 있는 덤프트럭들의 소리만 요란하다. 그 소리에 묻힌 깊은 한숨 소리가 저들에게는 들릴 리 없으니,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농토를 잃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죽음과 같다고 한다. 농사 밖에는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짧게는 몇 대에서 길게는 15대 이상을 한 자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사람들. 이제 그 농토를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여주군 대신면 양촌리. 이 마을은 모두 25가구 정도의 주민들이 살아간다. 양촌리는 현재 하천부지와 개인들의 소유지로 된 땅을 합해 백만 평 정도의 농지가 있다. 이곳에 1300동 정도의 시설하우스가 들어서 대단위 특작과 화훼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일대가 모두 남한강 정비로 인해 수용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넓은 농지 중 현재 마을이 있는 곳을 위시해 17만 평만이 남고, 나머지는 모두 수용계획이 섰다.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 시작이 되었다.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농민들과, 아무 대책 없이 '상부지시'라는 말만 반복하는 관과의 마찰이다. 자신의 농지를 갖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그나마 적당한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겠지만, 하천부지에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아무런 이주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 소유의 땅 38만 평 중에서도 17만 평을 남기고는 모두 수용이 된다는 양촌리. 그 개인의 땅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80%가 외지인의 땅이기 때문에, 결국 주민들과 현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받아야하는 보상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

 

1월 13일, 날씨만큼이나 냉랭해진 양촌리를 찾았다. 마을회관에는 마침 경을수 양촌리 이장을 비롯한 몇 사람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천혜의 농사조건을 갖춘 양촌리

 

  
▲ 시설하우스 현재 양촌리는 백만평 가까운 땅에 시설하우스 1,300여 동이 들어서 있다.
ⓒ 하주성
양촌리

  
▲ 양촌리 25가구의 원주민들과 외지에서 시설하우수 재배를 위해 들어 온 많은 사람들이 양촌리에서 삶을 이어간다. 연 5,000명이나 되는 일자리를 잃게되었다.
ⓒ 하주성
양촌리

 

양촌리에 이렇게 많은 농작물을 생산하는 시설하우스가 자리를 잡은 것은 이곳의 농토가 비옥하기 때문이다.

 

"양촌리는 섬 같은 곳입니다. 한 마디로 삼각주죠. 양편으로 모두 물이 흐르고 있고, 그 가운데 비옥한 토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변에는 산이 없이 넓게 펼쳐진 들로,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되 농사를 짓는 데는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천부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도지세를 물면서도 정말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곳을 모두 수용한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주민 김민식씨는 현재 화훼단지를 하고 있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상을 받아봤자 딴 곳에 나가 그만한 농토를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힘들게 이 땅을 지켜가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땅을 수용한다고 하면서 그 대책은 전혀 세워주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당장 이곳에서 딴 곳으로 옮겨가면, 어떻게 이만한 농토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돈을 준다고 해도 이 땅보다 좋을 수가 없는데, 거기다가 적절한 보상이 아니라면, 결국 농민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입니다."

 

일자리 창출을 한다면서 많은 일자리를 없애다니

 

  
▲ 공고안내문 2010년 1월 1일부터 하천 일대의 경작음 금지한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 하주성
양촌리

 

양촌리에는 1300개 동의 시설하우스가 있다. 너른 벌판을 빈틈없이 들어찬 시설하우스에는 연신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게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양촌리 시설하우스에서 작업을 하는 분들은 한 동에 4명씩만 친다고 해도, 년 중 5000명 정도의 일자리가 보장이 됩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여기서 임금을 받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도 아무런 대책 없이 이곳을 수용한다고 합니다. 4대강 정비를 하면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연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없애는 겁니다."

 

5대째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유호필씨는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한다. 당장 현재의 많은 주민들이 이주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농지가 모두 수용이 된다면 이곳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책 없이 수용한다는 행정부서를 이해 할 수 없다는 것.

 

"생각해 보세요. 이곳에 살고 있는 가구 중 두 가구만 이주를 해야 하고, 나머지는 보존지역인 17만평 안에 있어 이주를 할 걱정은 덜었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갑니까? 결국은 나가라는 소리가 아닙니까? 농사꾼한테 농토를 빼앗으면서 살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냐 이겁니다"

 

반복되는 슬픔이 서린 양촌리

 

  
▲ 현수막 양촌리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 도로에 붙은 현수막, 양촌리와 보통리 등에 골려있다.
ⓒ 하주성
양촌리

 

"저희 양촌리는 500년 정도를 이어오는 유서 깊은 강변 마을입니다. 15대를 넘어서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양촌리는 대를 이어가면서 농사를 짓고, 앞을 흐르는 남한강에서 물고기를 잡고는 했던 곳이죠. 양촌리는 그동안 많은 슬픔을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자리를 잡고 시설하우스로 살만하니까, 또 이런 일을 당하네요."

 

양촌리 경을수 이장이 양촌리는 왜 매번 이렇게 슬픔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한다. 양촌리는 원래 강가 마을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에 대홍수가 나 집을 현재의 보통리 새마을로 옮겼다가, 1995년에 다시 살던 양촌리 땅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0년도쯤에 현재의 방죽을 쌓았단다. 그런데 다시 또 4대강 정비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가 없으니, 또 떠나라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지금 이 마을에 4대강 정비를 관리하는 건물인가가 들어왔는데, 그 위쪽부터가 모두 저류지로 흡수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양편을 갑문을 막는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정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고요.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매번 우리 양촌리에 일어나는 것인지. 그저 우리는 다른 것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를 이어 온 사람들을 나가라고 하면,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서 살아야합니까? 그리고 농지가 사라지는데 이곳에서 살라고 하면 무엇으로 삽니까?"

 

수질정화를 한다고 하지만 이미 남한강은 1.5급수의 맑은 물이라고 한다. 그것을 2급수로 만든다는 것이 수질정화란다. 저류지를 만들고 양편을 갑문을 낸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양촌리 사람들은 불안하다. 도대체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 것인지, 여기저기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보지만 속 시원한 답변을 들어보지 못했단다.

 

'알아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까?'     

 

  
▲ 양촌리 입구 양촌리는 입구에는 강의 지류가 두르고 뒤로는 남한강이 흐르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농지이다. 이 곳에 저류지를 만들고 갑문을 설치한다고 한다.
ⓒ 하주성
양촌리

 

양촌리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일 줄 모른다. 그럴만한 사람이 마을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군데를 찾아가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지금까지 들은 소리는 '위에서 하는 일이라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래서 상부기관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또 '위에서'라는 말만 되풀이 했단다.

 

"그동안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우리 입장을 이야기 헸지만, 매번 듣고 온 소리는 '위에서 하는 일이라 우리는 모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위가 도대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요. 우리도 국민입니다, 당연히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요. 여기서 살아가던 그대로 살게 놓아두었으면 합니다. 만일 여기서 나가야 한다면, 그만큼 살만한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죠."

 

2010년 1월 1일부터 한강변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공고가 붙었다. 내용은 4대강 살리기 일환으로 홍수예방, 수질개선, 수생태계조성 및 복합문화공간 조성 등을 위해서란다. 그러나 양촌리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다만 조상 대대로 이곳의 땅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오던 사람들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그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당장 생계걱정을 하고 있는데, 일자리 창출이란 말에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곳을 파헤쳐 골재채취로 막대한 돈을 번다고 하는데, 정작 농토를 잃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상을 할지 궁금하네요. 만일 이 사안에 대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다면, 양촌리와 보통리 주민들을 나라에서 다 죽이는 겁니다."


  
▲ 강길을 걷는 <그림책 화가들> 어린이들의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일행이 여강 길 탐사에 나섰다.
ⓒ 하주성
화가

 

12월 14일, 반가운 손님들이 여주로 모여들었다. 어린이들의 책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모임인 '그림책 화가들' 13명이 여강(여주를 흐르는 남한강) 길을 걸어보기 위해 찾아 온 것이다. 일행은 제일 먼저 강천보 현장을 찾았다. 수도권 2500만 명의 식수원이 되는 맑은 강물 뒤로는 평풍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자리를 하고 있는데, 그 앞을 공룡과 같은 중장비들이 모래를 파서 길을 만들고 있다.

 

  
▲ 강천보 현장 중장비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여강의 바위절벽을 뒤로하고 모래를 파 올리고 있다
ⓒ 하주성
강천보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여강 길 55km, 남한강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지는 역사문화 체험길은 모두 55km에 이른다. 그 길 중 강천보 공사를 시작한 <부라우나루터>부터 시작한 체험길. 모두 60리를 걸으며 남한강을 아름다운 모습을 스케치를 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각자 스케치북과 카메라를 들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우만리'였다. 이곳에서 시작해 중부고속도로인 길이 540m의 남한강교를 건넌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남한강. 남한에서는 가장 큰 강인 한강의 본류이다.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에서 발원해 강원도와 충청도를 지나, 여주 삼합리에서 섬강과 청미천이 합류한다. 삼합리는 경기, 충청, 강원도가 만나는 곳이다.

 

  
▲ 여강길 안내판 남한강을 따라가는 역사문화 체험길을 알리는 안내판
ⓒ 하주성
남한강

  
▲ 시멘트 기둥 남한강교의 교각.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는 기술로 축조된 교각. 모래채취로 인해 밑이 다 들어나 있다
ⓒ 하주성
남한강교

 

한 때는 이포나루와 조포나루를 비롯해 총 17개의 나루가 있었던 여주. 그만큼 활달한 뱃길을 이용한 운송수단의 요지이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 강가로 내려간다. 본격적인 여강 강 길을 걷기 위해서다. 12월의 찬바람이 불어 갈대와 억새들이 춤을 춘다.

 

그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는 곳에, 괴물 같은 콘크리트 기둥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세계최고의 건설기술을 자랑한다는 한국. 가장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원통형 구조물의 밑동이 드러나 있다. 70~80년대 골재채취로 인해, 바닥이 허공에 뜬 상태라고 한다. 위험해진 다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남한강을 병들게 한다.

 

생명이 있는 자갈길, 모래밭 길을 걸어

 

남한강은 생명이 살아있는 강이다. 장마로 인해 수없이 많은 쓰레기들이 상류에서 떠내려 와도, 비가 그치면 빠르게 빠져나간다. 여울이 많고 유속이 빨라, 그만큼 수질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강길 안내를 한 김용희(여주 환경연합)의 안내를 받으며,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면서 역사 길을 따라간다.

 

자갈길로 이어지는 강길. 이렇게 자갈길이 생긴 것도 무작정 파간 모래채취 때문이란다. 그 모래 길가에 작은 꽃이 피어있다. 멸종위기 2급식물인 단양쑥부쟁이가 철 늦은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런 자연의 길을 걸어가는 일행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다. 이런 아름다운 강 길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갈갈이 끝나는 곳에서 이어지는 모래밭길. 지금까지 걷던 딱딱함에서 벗어나 발을 간질이는 모래 길의 느낌이 새롭다. 한참이나 걷던 일행 중에 누군가 소리친다. 무슨 일인가 해서 쫒아갔더니 동물의 발자국이 모래밭에 선명하게 찍혀있다.

 

고라니의 발자국이다. 모래길을 따라 가다가 숲으로 들어갔다. 이래서 여강길은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가 보다. 자갈길과 모래길, 그리고 흙길이 이어지는 여강길. 주변의 절벽들이 아름답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여강길은, 그저 걷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 자갈길 억새와 갈대가 날리는 사이로 난 자갈길
ⓒ 하주성
여강 길

  
▲ 철새 한 무리의 철새가 날아온다. 저마다 스케치를 하느라 바쁘다
ⓒ 하주성
스케치

물수제비도 떠보고

 

어릴 적 강이나 넓은 개천에 나가 둥그런 돌을 찾아 수면 위로 던지는 놀이를 했다. '물수제비 뜨기'라고 하는 이 놀이는 수면을 치며 날아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팔이 뻐근하도록 즐겼던 놀이다. 넓은 자갈밭이 나타나자 너, 나할 것 없이 돌을 하나씩 주워 물을 향해 던지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소리 내어 웃는 웃음소리가, 여강의 아름다운 바위에 부딪쳐 되돌아온다. 걷기 시작한 지 3시간, 아름다운 여강의 여울에 오후의 햇살이 비친다. 저만치 모여 있는 오리떼들이 시끄럽다. 아마 물고기라도 한 마리 잡은 것인지.

 

  
▲ 물수제비 뜨기 너 나 할 것없이 강가로 달려가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 하주성
강가

 

우리나라는 동해가 높고 서해가 낮아 물의 유속이 빠르다. 그래서 여울이 많고 그만큼 소가 발달되어 있다. 이런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이기에 오염이 되지 않았다. 평평한 곳을 흐르는 독일의 강들이 상대적으로 오염이 심한 것은, 유속이 느리고 여울과 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여울과 소가 충분한 산소공급을 하게 되고, 많은 생물이 살 수 있게 만든다. 이런 강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보를 막는다는 이야기에는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 아름다운 여강 길 갈대들이 바람에 날린다. 햇빛에 비친 갈대가 한 폭의 그림만 같다
ⓒ 하주성
갈대

  
▲ 고라니 발자국 모래밭에 선명하게 찍힌 고라니의 발자국
ⓒ 하주성
생명

 

아름다운 습지 <바위늪구비>에서 눈물을 흘리다

 

아름다운 습지 '바위늪구비'. 강원도를 흐르는 섬강과 안성에서 시작해 흘러 온 청미천, 그리고 충주에서 흘러 온 남한강이 합수되는 곳에 바위늪구비 습지가 있다. 바위늪구비는 남한강의 중하류지역으로 본류와 주변의 지류를 따라 공급된 토사들이 퇴적된 곳이다.

 

바위늪구비 습지는 하도내습지, 범람형배후습지, 하중도습지, 합류형습지, 사력퇴초본형습지, 사락퇴차단형습지의 여러 형태의 습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생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수많은 조류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3시간을 걸어 도착한 바위늪구비 모래밭에 물 수위를 나타내는 표시가 서 있다. 밑에는 <관리수위>라는 표지판이, 위에는 <계획홍수위>라는 글씨가 쓰인 표시판이 부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저 관리수위는 보를 막고 난 후 늘 저만큼의 물이 차 있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저 위에 계획홍수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저것이 혹 보의 높이는 아닐까?

 

올 여름 갑자기 세워졌다는 이 표시가 두려워지는 것도, 저것이 혹 이 아름다운 여강의 물 높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만일 저 높이라면 이 아름다운 강주변의 바위들도, 그리고 이런 중요한 생태계가 살아있는 바위늪구비도, 모두 물에 잠기게 된다. 순간 눈물이 흐른다.

 

  
▲ 수위 표시 수위를 나타내는 표지판. 이 곳을 보는 순간 눈물이 흐른다. 저 높이로 강물이 차오르면 이길은 어찌 되려는지.
ⓒ 하주성
여강

아름다운 여강 길 60리. 역사와 자연이 살아있는 이 길을, 우리 아이들은 시멘트로 발라진 길을 걷게 되지는 않을까? 바위늪구비 한편에 자라고 있는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소리칠 줄 모르는 아름다운 저 많은 생명들이 이제 닥칠 엄청난 변화를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

 

"여강은 많은 나루와 팔대장림 등 아름다운 경치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오늘 세 시간동안 걸어 본 여강은 생태계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단양쑥부쟁이와 고라니 등의 흔적도 보았고, 아름다운 철새들의 비상도 보았습니다. 이제 보의 설치로 인해 이 모든 것이 물에 잠기게 된다고 행각하니, 가슴이 아프네요. 제발 무분별한 삽질은 그만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강 길을 걸어 온 김병하(41, 남)의 말이다. 바위늪구비를 지나 마을로 올라선 일행은 차를 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저녁노을이 물드는 여강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여강 길 60리를 걸어 온 화가들. 아무런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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