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직접 시를 쓴 ‘시인의 골목길’
지동에 오면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린다
지동에 오면
춘옥이 할아범 생신날 설장구 소리가 들린다
성 밑 집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동에 오면
두고 온 내가
나를 어서와 하며
맞아들인다
2013년 10월 26일 고은
지동어린이집 길 건너편 벽에 쓰인 고은 시인의 ‘지동에 오면’이라는 시이다. 2013년 10월 26일 수원시인협회 회원들이 지동을 찾아들었다. 손에 저마다 붓 한 자루씩을 들고 벽에 붙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시를 벽에 적는 것이다. 팔달구 지동 벽화골목에 당시 새롭게 마련한 시인의 골목은 곧 명물이 되었다. 지동 벽화골목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사진을 한 장씩 찍느라 난리다.
딴 곳처럼 시인들의 유명한 시를 작가들이 적는 것이 아니다. 시인들이 직접 시를 쓰기 위해 모인 것이다. 10월 말의 날씨는 춥지가 않다고 해도 골목길은 바람이 분다. 유난히 바람이 부는 날 모인 시인들은 저마다 벽에 시를 적는다. ‘시인의 골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시인 30여명이 모여 자신의 친필글씨로 자신의 시를 써내려간다. 지동 벽화골목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 시인의 벽화길 때문이다.
지동길목
홀로 핀 봉숭아 꽃 너무 붉다
풍선처럼 팽팽해진 탱글한 씨앗자루
꼬투리 투툭, 터지며
날아든 파편
내 가슴 한켠에 박혀
새록새록 이듬해 핀다.
시인의 벽화골목이 적힌 시이다. 이날 시인의 벽화길 조성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지동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윤수천 선생, 수많은 시인 제자들을 배출한 원로시인인 유선 선생, 경기시인협회 임병호 이사장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 자리를 했었다. 그렇게 1차 시인의 골목이 만들어졌다.
눈 오는 날 벽에 시를 입히는 시인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내려 작업하기도 어려운 날 지동에 또 다시 10여명의 시인들이 찾아들었다. 가는 눈이 점차 함박눈으로 변해 내리지만 벽에 자신의 글을 쓰는 시인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흡사 자신들이 마치 눈인 듯 벽에 시를 입힌다. 그날 지동 벽화골목에는 눈발이 점차 거세지면서 바람까지 분다. 1차 시인의 벽을 조성할 때 미처 찾아오지 못했던 시인들이다.
시인 윤민희는 ‘지천명’이라는 시를 적었다.
절반은 내가 가고
절반은 네가 와서
손잡고 갔으면 좋겠어
절반은 앞에서
절반은 뒤에서
나란히 갔으면 좋겠어
자정이 바라보는 정오
춘분 추분이 바라보는 해와 달
좌우 날개로 나는 새들처럼
중용을 잃지 않는
지천명이었으면 좋겠어
그날은 날이 유난히 추웠다. 그 추운 날을 녹이는 것이 바로 시인의 벽이요 지동 벽화 시골목이다. 한참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시를 쓰고 있는데 골목의 한 집 대문이 열린다. 지동 창룡문로 60-3의 주소를 가진 집이다. 직접 커피를 끓여 시인들에게 대접을 한다. 집 주인과 따님이 내어주는 커피 한 잔에 차갑던 몸이 녹는다.
눈이 오는 날 지동을 찾아 시를 적는 시인들에게 따듯한 차 한 잔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 마음 하나가 찬 눈이 쌓인 감나무 가지에 달린 ‘까치밥’과 같이 여유롭다. 그래서 지동은 살가운 동네라고들 한다. 인정이 넘치는 지동 벽화골목. 그곳에 마련된 시인의 벽화 골목.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이 되었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포토죤이 되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블록 담장위에 쌓인 눈에, 처마에 달린 마가목 씨앗 열매가 더 붉기만 하다. 시인 정명희는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다고 ‘풀씨와 자동차’라는 시를 적었다.
죽어서도 상사화가 되고 싶은 마음
멀지 않은 그길
내달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른 끔 하나 떨어트렸다
차마 내 뿜을 수 없는 열기
더 뜨거운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가 되었다
나뭇잎이 될게
꽃잎은 아주 많이
그래서 씨앗으로 바퀴를 만드는거야
어느 무공해의 도시
오랜 통증이 사라진다.
2차 시벽화길 조성에도 많은 시인 참여
지동 시인들이 직접 시를 쓴 벽화골목이 벤치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제2차 시인의 벽화가 조성되었다. 1차 시골목에 이어 시인들이 벽마다 달라붙어 시를 쓰기 시작한다. 12여명의 시인들이 자작시를 벽에 쓰고 있는 것이다. 지동의 시인의 벽화골목은 그렇게 완성이 되었다.
2016년 11월 18일. 그날도 날이 쌀쌀했다. 수원문인협회 시인들이 찾아와 벽화골목이 직접 시를 썼다. 이날 참여한 시인은 윤수천 시인의 ‘전기밥솥’, 김우영 시인의 ‘출토, 창성사지’, 정수자 시인의 ‘새벽비’, 임병호 시인의 ‘동백꽃을 위한 꿈’, 박효석 시인의 ‘오래된 사과’, 유선 시인의 ‘홍시’, 박병두 시인의 ‘해남 가는 길’, 은결 시인의 ‘가마솥 밥 - 쌀의 목숨’, 박경숙 시인의 ‘아슬아슬한 잠’, 윤형돈 시인의 ‘우리 동네’, 임애월 시인의 ‘겨울나무’, 진순분 시인의 ‘폭죽’ 등 모두 12작품이 새롭게 벽화골목을 장식했다.
요즈음 수원 곳곳에 많은 벽화길들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벽화길이 안타까운 것은 테마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저 한 번 쳐다보고 갈 정도의 벽화는 되지만 머릿속에 각인이 되질 않는다. 그렇기에 많은 벽화가 곳곳에 있어도 사람들이 두 번을 찾아오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이 없기 때문이다.
지동의 시골목은 주제가 시인들의 시이다. 그것도 직접 시인들이 붓을 들고 벽에 자신의 시를 썼다는데 있다. 지동의 시인의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시인들의 속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는 날 지동 시인의 골목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긴다.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 현판식 가져
지동 자택서 30여명 모여 명인인증 축하
날이 갑자기 쌀쌀해지고 바람까지 부는 날 야외에서 갖는 행사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수원시나 구청 등 행정기관이 주관하는 행사가 아닌 경우 인원을 동원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더욱 개인이 주관하는 행사일 경우에는 더욱 사람들의 참여를 도출해 낸다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박수를 보낸 행사가 열렸다.
팔달구 지동 271~124에 거주하는 고성주(남, 64세)씨는 내림을 받은 강신무이다. 이미 내림을 받은 지 40년이 훌쩍 지났다. 수원 근동은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큰 무당(巫堂)’이다. 남자를 박수무당이라고 하지만 고성주씨는 스스로를 만신(萬神)이라고 표현한다.
대개 사회에서 무당이라고 하면 욕심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라는 관념으로 보이고 있다. 사회에서 보통사람들과 일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못하고 있는 점도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게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고성주씨가 남다른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신내린 사람들하고는 다르다는 점이다.
일 년 내내 남들과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저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무엇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한다. 작은체구에서 우러나는 나눔의 마음을 보면 우리가 흔히 봉사를 한다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몇 배나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봉사를 한다. 그렇기에 집에는 늘 사람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뛰어난 예능 보이는 경기안택굿
경기안택굿은 경기도 지방에서 전해진 강신무계열의 굿이다. 말 그대로 집안을 편안하게 만드는 안택(安宅)을 위한 것으로 경기도에서는 각 가정마다 한해가 시작하는 음력 정월이나 음력 10월 상달에 안택굿을 했다. 정월에 하는 안택굿은 가내의 안과태평과 기족들의 무병장수를 위한 굿으로, 10월 상달의 안택굿은 일 년의 평안함 등을 감사하는 굿으로 펼친다.
경기안택굿이 뛰어난 예술성이 있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서도 잘 알려졌다. 하지만 여타 굿이 모두 무형문화제로 지정을 받은 것에 비해 경기안택굿이 아직도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지정을 반대하는 일부 학자들은 경기안택굿이 ‘한양굿’과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한 마디로 경기안택굿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한양굿’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양은 도성을 지칭한다. 도성 안에 거주하던 무격(巫覡)들은 수시로 성 밖으로 축출을 당했다. 그런 그들이 한양성내에서 굿을 했고 그들에게서 전해지는 굿이 한양굿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한양 성내에서 굿을 할 수가 있었을까? 알다시피 조선은 숭유(崇儒)국가이기 때문에 한양 성내에는 무당들이 살기도 어려웠다. 그들은 대개 한강을 건너 노량진 밖으로 쫓겨났기 때문에 ‘노들만신’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경기도에 거주하던 강신무들은 조선조 말기의 세습무인 화랭이들로부터 많은 고초를 당한다. 심지어는 강신무들이 굿을 하지 못하게 막아 지하실에서 음악소리를 내지 못하고 빨래판 등을 긁어 장단을 맞추며 굿을 했다는 말도 전한다. 그렇게 전해진 것이 다양한 춤과 소리, 사설(=巫歌) 등을 보존하고 있는 경기안택굿이다.
경기안택굿의 무가는 경기도판소리인 경제(京制)를 기본으로 경기민요의 창법을 함께 생성하고 있는 특이한 창법을 구사한다. 화랭이들의 판소리무가와 흡사한 듯 하지만 흥겨움에서는 화랭이들의 소리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고성주씨는 그런 경기도 강신무계열의 안택굿을 집안에서 4대(100년 이상)를 전승시켜 온 무계(巫係) 집안이다.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안택굿을 오롯이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안택굿으로 명인(名人) 인증 받아
12일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팔달구 지동 고성주씨 집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모인 사람들 중에는 지동행정복지센터 박란자 동장을 비롯해 주민자치위원회 이용성 위원장, 지동통장협의회 유지현 회장 등이다. 또한 명인지정을 한 (사)한국토속문화진릉협회 중앙회 오호범 회장을 비롯해 중앙회 간부들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지난해 12월 1일자로 경기안택굿으로 명인 인증을 받고 이날 사람들이 축하하는 가운데 현판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지역에 전해지는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고성주 명인은 현판식을 마친 후 “이제 선대의 굿꾼들에게 배운 경기안택굿이 제자리를 찾은 것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그만큼 경기안택굿을 지켜가는 데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토속문화진릉협회 오호범 중앙회장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을 제1호 명인으로 지정하게 되어 기쁘다”면서 “이제 후대들에게 기량 면으로나 예술적인 면으로 어느 지역의 굿에 뒤쳐지지 않은 경기안택굿이 제대로 전승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얼어붙은 비탈길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팔달구 지동 밤늦게까지 염화칼슘 작업 계속해
팔달구 지동은 원도심이다. 이곳은 수원화성 창룡문부터 남수문까지 길게 이어진 용마루길이 있다. 길게 뻗은 이 용마루길 좌우로는 비탈이 진 길들이 거미줄처럼 늘어서 있다. 9일 하루 동안 이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졌다. 녹지 않은 구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사가 심한 비탈길은 겨울이 되면 주민들이 이용을 할 때 빈번한 사고로 이어진다.
눈이 온 후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이곳 이면도로들은 속수무책이다. 차가 다니는 도로야 바로 염화갈슘 등을 뿌려 제설작업이 이루어지고, 차량이 빈번하게 운행되는 구간에는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이면도로의 상황은 다르다. 눈이 녹지 않아 그대로 얼어붙어 빙판이 되기 때문이다.
지동은 특히 노인인구가 많은 곳이다. 수원시의 노인인구가 평균 9% 대인데 비해 지동은 그 두 배인 18%가 넘는다. 하기에 눈이라도 오면 이곳은 아예 문밖출입을 하지 않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면도로가 미끄럽기 때문이다. 해가 드는 쪽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그늘이 진 곳은 그대로 빙판이기 때문이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카메라 렌즈까지 망가져
눈이 온 후에 취재는 항상 조심을 한다. 그냥 미끄러져 넘어진다면 엉덩방아만 찧지만 취재 후에는 늘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오후 취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길이 미끄러워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그대로 빙판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엉덩방아를 찧어도 카메라를 챙겨야 했지만 갑자기 닥친 일이라 미처 방비를 하지 못했다.
10여m를 미끄러진 후에 겨우 일어나 우선 카메라부터 챙겨본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 카메라를 보니 작동을 하지 않는다. 충격을 받은 듯하다. 벌써 몇 번째 병원신세를 지는 것일까? 대문으로 오르는 곳이 응달이다 보니 이곳에 빙판이 져 있어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집으로 들어와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니 여기저기 이상이 있는 듯하다. 얼음판에 미끄러지면 다칠 확률이 높다고 하더니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집에 들어와 있는데 비탈길을 오르는 차들이 미끄러지면서 굉음을 낸다. 차들도 오르기 어려울 정도로 빙판이 져 있다. 지동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어 염화칼슘이라도 뿌려야겠다고 민원을 넣는다.
지동장 이하 공무원들 퇴근도 못하고 작업
기사를 쓰고 있는데 밖이 시끄럽다. 차들이 경사로를 오르지 못해 굉음을 내다가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기 보다는 미끄러진다고 보아야한다. 밖을 나가보니 지동행정복지센터 박란자 동장과 직원들이 비탈진 길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있다. 몇 대의 차들이 경사로를 오르지 못해 다시 미끄러져 내려간다.
몇 사람이 염화칼슘을 뿌리다가 비탈이 너무 미끄러워 안되겠는지 방위협의회 회원들까지 동원이 되었다. 염화칼슘을 골고루 뿌린 후 녹아서 물이 흐르는 것을 본 후에야 안심을 한다. 시간은 밤 7시 30분이 넘었다. 퇴근도 하지 못하고 민원을 해결하느라 고생을 하는 공무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일부터 다시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이렇게 얼어 있을 때 또 눈이라도 온다면 그 때는 정말 낭패를 볼 것만 같다.
지동의 경우 큰 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면도로 빙판은 행정복지센터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이곳은 노인들도 많이 거주하지만 워낙 경사로가 많은 곳이라 수원시나 팔달구 등에서 도움을 주지 않으면 빙판길 어른들의 낙상사고는 그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퇴근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나와 작업을 하고 있는 박란자 지동장과 직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지동의 경우 수원시나 팔달구애서 이면도로에 좀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사로가 워낙 많은 지동의 경우 행정복지세터 직원들만 갖고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지동, 동 복지허브화 추진 성과보고회 개최
동 복지허브화 1.5년 돌아보고, 내다보기
팔달구 지동 행정복지센터는 지난 12월 22일 오후, 동 복지허브화 추진 1.5년에 따른 성과보고회 「동 복지허브화 1.5년 돌아보고 내다보기」를 개최했다.
2016년 8월 29일 수원시 조직개편에 따라 지동에 맞춤형복지팀이 신설되면서 기존 동 주민센터에서 행정복지센터로 명칭이 변경됨과 동시에 동 주민복지협의체를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로 확대 개편하는 등 2016년에는 조직정비에 중심을 두었다.
이러한 조직정비를 바탕으로 2017년에는 위기사항이 발생한 복지사각지대 84가구를 발굴하여 긴급복지사업으로 연계 하였고, 동 인적안전망을 활용한 민간자원 발굴에도 적극 노력한 결과 ㈜플라잉수원, 한국마사회 수원지사, 시립지동어린이집 등에서 24,000천원의 지정기탁금이 주민에게 연계되었고, 주거환경개선사업, 밑반찬 연계, 삼성전자 LED등 교체 및 현관방충망 설치 등 1억 5천만원에 상당하는 민간 자원연계를 지역민에게 실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지동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전체인구 대비 노인인구 비율이 수원시 평균을 두배 상회하는 19%에 해당되는 점에 따라 어르신이 안전한 마을을 구축하기 위하여 두유배달 34가구, 노인돌보미 파견 90가구, 밑반찬 배달 7개 단체 157가구를 연계하는 등 사건 사고에 대비하여 어르신들이 안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원도심에 위치한 지역적 특색으로 인해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아 연탄을 사용한 가구가 많은 점을 고려하여 사단법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 한국전력, 한국전기공사협회 대한적십자사 경기지부 등과 연계하여 61가구에 2만장의 연탄을 연계하여 주민모두가 지난해 보다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공공자원 및 민간자원의 효과적인 연계를 바탕으로 많은 우수 종결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중에 지난 9월 13일 저장강박증에 놓여있는 노인부부가구 해결 사례가 우수사례로 소개됐다.
이번 「동 복지허브화 1.5년 돌아보고 내다보기」를 주관한 박란자 지동장은 이번 성과보고회는 그간의 추진성과와 우수사례를 주민모두 다함께 공감하자는 취지에서 추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지역주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는 동 행정복지센터가 되도록 동 복지허브화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제일교회 노을빛 갤러리 ‘Find It'전
신희숙, 노재현, 윤지민 3대 초대전 열어
3대가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한다. 팔달구 지동 수원제일교회 종각에 마련한 ‘노을빛 갤러리’는 종교시설이 사람들에게 문화적 만족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문화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제일교회 8층 ~ 10층 종각으로 오르는 곳에 마련한 노을빛 갤러리는 개관이래 유명화가들의 전시를 열어 수원의 문화의 한 축을 감당하고 있다.
이런 노을빛 갤러리가 2017년 12월 1일부터 2018년 1월 30일까지 초대전을 갖는다고 한다. 세 명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이 ‘Find It' 전이 남다른 것은 세 명의 작가가 3대라고 한다. 신희숙, 노재현, 윤지민 세 명의 작가가 3대를 이어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전시회를 갖는다는 말에 9일 점심을 마친 후 수원제일교회를 찾았다.
주말인데 제일교회에 행사가 있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1층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주문해 마신 후 노을빛 갤러리로 오른다. 7층 입구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 종각으로 오르는 원형계단 외부에 그린 축성도가 먼저 반긴다. 수원제일교회가 종각을 지동주민들에게 내어주기로 한 후 1년여에 걸쳐 손 그림으로 그린 축성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어 있다.
3대에 건친 작가들의 작품
“이번에 노을빛 갤러리에 전시를 하고 있는 세 사람의 작가가 모두 한 집안 사람들예요. 3대가 한 자리에서 전시를 갖는 것이죠”
이번 전시를 주관한 유순혜 작가의 설명이다. 신희숙 작가는 현재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에서 작품할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 압구정 현대미술관, 롯데백화점 본점 화랑, 인사동 등에서 14회의 개인초대전을 열었다.
초대전도 나혜석 여성미술 초대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장 초대전, 현대미술작가 초대전, 여성미술작가 초대전, 벨기에 작가 초대전 등 한국과 외국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가졌다. 신희숙 작가는 시집으로 ‘사랑의 덫을 놓고 잠 못 드는 그대여’, 봄보다 먼저 온 여자‘, 시화집 ’그대 오는 날‘ 등을 출간하기도 했다.
신희숙 작가는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세계미술교류협회 회원, 운사회 회원, 유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 노재현은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으며 운사회와 세계미술교류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 인사동과 북한강 갤러리 등에서 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0층으로 오르면 8층과 9층에 전시 된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0층은 작가 윤지민의 작품으로 그림 전체가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원색의 물감을 이용해 그린 작품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신희숙 작가나 노재현 작가의 작품과는 전혀 다르다.
세 사람의 작품 비교해보는 재미 쏠쏠해
10층에는 윤지민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윤지민 작가 역시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으며 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세 사람의 작가가 다른 화풍을 보여주기 때문에 층을 오르며 전시작품을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품 관람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연신 노을빛 갤러리를 찾아온다.
“이곳 노을빛 갤러리 전시를 마치면 창룡마을 창작센터 갤러리에서 이어서 전시회를 가질 것”이라는 유순혜 작가의 설명이다. 3대가 한 자리에서 전시회를 갖는 특별함 때문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8년 1월 30일까지 이어지는 3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러 노을빛 갤러리를 찾아 작품 감상도 하고, 더 날이 추워지기 전에 제일교회 옥상에 마련된 노을빛 전망대에 올라 수원 정경을 바라보며 2017년 한 해를 마무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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