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을 나와 안동 쪽으로 가는 큰길을 벗어나, 마을 안으로 난 작은 길로 접어들면 우측에 우뚝 선 전탑이 보인다. 보물 제57호 안동 조탑리 오층 전탑이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소재한 이 전탑은 통일신라 때의 작품이다.

 

조탑리 전탑은 안동 동부동의 전탑과 같은 양식으로 축조가 되었다. 탑은 흙으로 쌓은 기단 위에, 화강석으로 몸돌을 만들었다. 탑의 높이는 8,65m이고, 기단의 너비는 7m이다. 남면에는 감실을 내었고, 감실 양 편에는 인왕상을 조각하였다. 인왕상은 아직도 힘이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조각 기법이 뛰어나다. 천년 세월을 이 인왕상이 전탑을 지킨 것인지도 모른다.

 

돌과 벽돌로 쌓은 희귀한 전탑

 

1층 지붕돌부터는 한 변이 27cm에 두께가 5,5cm가 되는 벽돌을 사용하여, 어긋나게 쌓아올렸다. 몸돌은 1층의 높이에 비해,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든다.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으나, 보존 상태는 깨끗하다. 다만 조선시대에 수리를 거치고, 1917년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는 동안, 원형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한다.

 

 

전탑들은 일반 석탑에 비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다. 국보 제16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안동 신세동 칠층 전탑을 보더라도, 그 탑을 세우기 위한 공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밭 가운데 쓸쓸하게 서 있는 이 전탑을 보면서 우리의 문화재들이 참 수난을 많이 당했음을 느낀다.

 

이곳을 찾았을 때 누군가 주변에 똑 같은 크기의 고무 통에 연꽃을 수도 없이 심어놓았다. 커다란 불심이라도 작용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쓸쓸히 서 있는 보물인 탑이 너무 한적해 보였기 때문인가.

 

 

 

뛰어난 전돌 쌓기로 조성한 탑

 

이 조탑리 전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화강암 석재와 벽돌을 혼용해서 만든 특이한 탑이다. 1층의 몸돌은 화강암을 이용했으며, 위로는 전돌을 사용한 탑이다. 우리나라 전탑에는 거의 모두 화강암을 혼용하고 있으나, 이 전탑에서는 그러한 의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나 있다.

 

기단은 흙을 다져 마련하고 그 위로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화강석으로 6~7단을 쌓아 1층 몸돌을 이루게 하였다. 남면에는 감실을 파서 그 좌우에 인왕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1층 지붕부터는 벽돌로 쌓았는데 세울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문양이 있는 벽돌이 남아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에는 2층과 4층 몸돌 남쪽 면에 형식적인 감실이 표현되어 있고, 지붕돌에는 안동에 있는 다른 전탑과는 달리 기와가 없다. 한 마디로 조탑리 5층 전탑은 일반적인 전탑의 형태와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조성을 해 눈길을 끈다.

 

아무리 열변을 토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문화재를 사랑하고 보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우리 문화재 역시 남다른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온전히 보존할 수가 없다. 안동 조탑리 오층 전탑 주변에 놓인 고무 통 속에 연꽃이 만개를 할 때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문화재를 아끼는 마음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당연히 괴산군이라는 생각이다. 괴산군의 문화재 중 몇 기의 탑들은 원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것을, 주민들이 찾아내 복원을 시킨 것이다. 그 중 한 기가 괴산군 청안면 효근리에 소재한, 보물 제1299호로 지정이 된 보안사 삼층석탑이다.

 

보안사 3층 석탑은 옛 보안사 경내의 북쪽 담장 곁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57년 주민들이 찾아내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이 보안사 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으로 조성되어 있다. 아마도 이 탑에는 마을과 관계된 이야기라도 전하는 모양이다. 주민들의 힘으로 복원을 했다는 것이 참 고맙기만 하다.

 

 

자연석인 암반을 지대석으로 이용하였다. 바위의 윗면을 네모나게 홈을 판 후 그 위에 탑을 조성하였다

 

자연석으로 지대석을 삼은 보안사 석탑

 

보안사 삼층석탑은 여느 탑과는 다른 면이 있다. 지대석을 가공한 돌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자연석의 중심부에 네모나게 홈을 내어 그 위에 단층 기단을 세웠다. 기단은 4면에서 면석을 합하여 단층 기단부를 형성하고, 그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석을 이용한 지대석은 4각형이지만 한 쪽 면은 각이 없다. 지대석은 위만 지면으로 솟아오른 형태이고, 나머지는 모두 땅에 묻혀있어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는 동쪽면의 상단부가 깨어져 있으며, 기단부 면석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많은 금이 가 있다.

 

보물인 보안사 삼층석탑은 여기저기 많이 파손이 되었다

 

인근에 있는 보안사 경내를 벗어나 도로변으로 나오다가, 좌측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 옆에 삼층석탑이 서 있는데, 현재는 집의 울타리 안에 자리하고 있다.

 

탑신부에 조성한 작은 감실

 

전체높이 325cm 정도의 이 삼층석탑은 기단 면석에는 양우주를 모각하고, 별도의 조형이 없는 사각형의 갑석을 올려놓았다. 그 위에 삼층의 탑을 조성하였는데, 이 탑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그저 밋밋한 사각형의 돌을 올려놓았으며, 다만 일층 몸돌에 감실이 있을 뿐이다.

 

 

 

보안사 삼층 석탑 일층의 탑 몸돌 남쪽면 중앙에는 12☓9cm 정도의 방형 감실이 조성되어 있다. 1층의 몸돌에 비해 2, 3층의 몸돌은 급격히 작아졌으며, 옥개석은 둔하게 조성되어 있다. 낙수면은 급하게 떨어지며 일층 옥개받침은 3단, 2,·3층의 옥개받침은 2단이다.

 

탑을 조성한 양식 등으로 보면 이 석탑은 고려 후기의 석탑으로 추정되며, 탑신부에 감실이 조형된 형태는 특히 충북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상륜부는 노반석 만이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각 면이 많이 닳아진 모습이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한 보물 석탑

 

마을의 주민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보아 복원을 하였다는 보안사 삼층석탑. 석탑을 보호하는 보호철책 안에는 술병이 놓여있고, 감실이 있는 일층 몸돌 앞에는 정화수 그릇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나 보다. 비록 둔탁한 형태로 보존이 되어 있고 많이 훼손이 되었지만, 보물로 지정 될 만큼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어 보인다.

 

아니 그보다는 주민들의 정성이 깃들어 주변에 흩어진 것을 모아 복원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짝이라도 있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다. 마을사람들의 뜻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보안사 삼층석탑은 우리에게 한 마디 거드름을 피우는 것만 같다.

 

“나, 이래도 보물이야”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마을의 논 가운데 서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 초기의 석탑이다. 이 석탑은 시멘트로 조성한 대 위에 단층기단이 있고, 그 위에 삼층의 탑신이 있다. 기단의 면석에는 양우주와 중앙에 탱주를 모각하였고, 각층의 탑신에도 양우주를 조성하였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비교적 급한 편이며, 층급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이 찾아 낸 석탑

 

삼방리 삼층석탑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을 주민 한 분이 곁에 와서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유심히 보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삼방리 석탑은 탑이 서 있는 주변 논바닥에 묻혀있던 것을, 주민들이 찾아내 유실된 부분을 채워 세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상태였나요?"

"탑 근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돌들을 모아보니 석탑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새로 만들어 채워서 세운 것입니다"

"탑을 세운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1991년에 세웠어요. 그때 탑 꼭대기에 있는 것들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발견되었어요. 그래서 조각을 모아 새로 만들어 올려놓고. 조각이 난 것은 탑의 기단부 안에 넣어두었죠. 지금도 저 안에 있어요."

 

 

도둑맞은 상륜부의 수연

 

마을에서 4대째 살아온다는 주민 이광희(남, 55세)씨가 설명을 해준다. 주민들의 힘으로 세워진 삼방리 삼층석탑은,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중에 논에서 쇠로 만든 것을 발견해서 위에다 올려놓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마을주민들이 힘들여 조성해 놓은 것을 갖고 가다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철주가 솟아있는 상륜부는 새로 만든 노반과 복발, 앙화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있어야 할 수연이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한적한 마을이다 보니, 누군가 탑의 맨 위에 올려져있던 수연을 집어갔나 보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마을에 찾아와서, 탑 주위를 돌아다니니 불안하여 쫒아 나온 듯하다.

 

탑의 조각기법이 뛰어나

 

삼방리 삼층석탑의 일층 몸돌은 사면에 불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연꽃을 새긴 앙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한 불상은, 사면 모두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있다. 사면의 불상은 동쪽은 약사여래, 서쪽은 아미타여래, 남쪽은 대일여래를 조성하고, 북쪽에는 석가여래불을 조각하였다. 사면에 조각을 한 불상을 보아도 이 탑이 고려초기의 뛰어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탑은 여기저기 훼손되었지만,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3층의 몸돌과 상륜부를 새로 조성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행히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광희씨의 설명으로는 탑을 세우고 난 뒤 석물이 또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삼층석탑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놓여있는 석재를 보니 기단부인 듯하다.

 

전국을 다니면서 많은 석탑이나 문화재 등이, 이렇게 도난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대체 이런 문화재의 부분을 훔쳐가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일까?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삼방리 석탑의 허전한 상륜부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우리의 옛 탑 중에서 벽돌로 쌓은 탑을 ‘전탑’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모전탑이란 돌을 벽돌처럼 깎아서 쌓은 탑을 말한다. 대표적인 모전석탑은 분황사지 9층 석탑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음성군 읍성읍 읍내리 설성공원 경내에 있는, 향토자료전시관 앞에는 오층 모전석탑이 서 있다. 균형 있는 형태로 서 있는 모전석탑,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부서진 채로 발견된 모전석탑

 

음성 오층 모전석탑은 본래 음성향교 앞 옛 절터에 무너진 상태로 있었던 것을, 1956년 수봉초등학교 이철세 교장이 학교 안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그 후 1995년 향토 민속자료전시관 앞으로 이전하여 현재의 모습대로 조성한 것이다.

 

이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가 있는데, 현재 2층과 5층의 탑신석이 사라졌다. 그리고 상륜부는 모두 사라져 조금은 정형화되지 않은 상태로 서 있다. 탑의 지대석은 4각 2매로 되어 있으나 한편이 훼손되어 있다. 기단은 단층으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일석의 돌에 각 면에 양우주가 돌출이 되어있다. 갑석에는 부윤이 정연하며, 상면에 각형으로 1단의 탑신 받침이 있다.

 

1층 탑신 사면에는 감실을 음각해

 

1층 답신에는 각 면의 중앙에 장방형의 감실을 음각 하였다. 1층 탑신에는 직경 9cm, 깊이 10cm 의 사리공이 있다. 탑의 옥개석은 낙수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어, 전탑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다. 이러한 모전석탑을 조성하면서도, 벽돌로 쌓은 전탑모양의 형태로 꾸몄다는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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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 몸돌 위에 올린 옥개석은 2매의 돌로 조성했으며, 옥개받침이 3단으로 되어 있다. 2층 이상의 옥개석은 모두 한 장의 돌로 조성을 했으며, 2층과 3층의 옥개받침은 3단이다. 2층과 3층 낙수면의 층도 3단으로 되어있다. 4층 옥개석은 옥개받침과 낙수면 층은 2단이며, 5층 옥개석은 옥개받침만 2단이다. 이렇게 위로 올라 갈수록 폭이 좁아지면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5층 옥개석의 중심에 찰구공이 있으며 그 위에 상륜부는 멸실되어 있다.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모전석탑은, 우리나라의 석탑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사라진 석재가 안타까워

 

우리나라에 모전석탑은 그리 흔하지가 않다. 더욱 전탑의 형태를 석탑으로 모방한 이 음성 5층 모전석탑의 경우에는, 그 형태도 안정감이 있게 조성이 되었다. 각 층의 옥개석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있어, 처음 조성을 했을 때는 그 어떤 탑보다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 석탑이 언제 훼파가 되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이 모전석탑이 존재하던 절이 사라졌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다만 이 모전석탑이 음성향교 앞 절터에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일대에 고려시대까지 꽤 웅장한 사찰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아 모전석탑의 일부 부재가 사라진 것도, 그렇게 무너져 내려져 있었을 당시 사람들에 의해 훼손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석조물에 사용했던 부재들이, 어느 시기에 문화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채취가 되고 심지어는 집안의 주추나 축대, 디딤돌 등으로도 사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보 제205호인 중원고구려비의 경우에도 그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이 마을입구에서 발견 당시 이 비를 빨래터의 빨래판으로 사용을 하여, 사면에 새겨진 비면이 마모가 심해졌다고 한다. 이 음성 모전석탑도 이와 같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석물의 일부가 훼손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다는 것은, 어느 특정인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깊이 느끼기를 바란다

최근에는 한 지역에 답사를 들어가면, 몇 날이고 돌아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경비절약도 되고, 빠른 시간에 더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 정읍을 거의 15일 정도 답사를 했다. 답사의 목적은 고부에서 시작한 갑오농민혁명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한 지역을 들어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목적한 답사자료 외에 쏠쏠한 재미를 보게 된다. 정읍에서 만난 그 쏠쏠한 재미가 바로 고려 때의 석탑들이다.

 

갑오농민혁명의 이것저것을 찾으러 고부와 정읍시 일원을 돌아다니면서, 정말로 그런 재미를 쏠쏠하게 보았다. 많은 향교나 서원이야 어차피 농민봉기의 원인 중에 하나였으니 답사목록에 당연히 들어 있었지만, 그보다도 많은 석탑과 석불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기대 이상의 문화재를 만날 때, 즐거움이 더 해

 

답사란 항상 기대 이상의 것을 만날 때 피곤함도 잊게 된다. 정읍의 답사가 바로 그렇다. 천년 세월 묵묵히 험한 풍상을 이기며 버티어 온 자태. 고려 석탑의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었다.

 

보물 제309호인 망제동 천곡사지 칠층석탑. 백제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높이가 7.5m인 이 석탑은 꼭대기의 장식 부분이 없어졌다. 처음에 천곡사지 칠증석탑을 보았을 때, 그저 놀라움이 더욱 컸던 것 같다. 일반 석탑보다 상당히 높은 석탑. 7층 석탑치고는 상당히 높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탑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물들어가는 석탑 주변은 한창 색을 갈아입고 있었다.

 

보물 제309호인 망제동 천곡사지 칠층석탑.

 

돌로 만든 탑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한 마디로 그따위 돌이 무엇이 아름답냐는 눈초리다. 그러나 그저 단순한 돌이겠는가? 그 돌에는 장인의 땀과 정성, 그리고 손길이 배어 있다. 그렇기에 그 돌은 생명을 지닌다.

 

그러한 생명이 발길을 붙들고 있다. 고부면 용흥리에 소재한 전북유형문화재 제96호인 해정사지 석탑이다. 원래는 5층 석탑으로 보이나 현재는 3층만 남아 있다. 이중 기단 위에 3층만이 남아 있는데, 많이 훼손이 되긴 했으나 가만히 살펴보면 고려석탑의 고고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하루에 만난 세 개의 탑,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어

 

고부면 장문리 석우제 저수지 길을 끼고 도는 야산에 석탑 1기가 보인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13호인 장문리 5층 석탑 주변에는 묘지 몇 기가 있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 사이에 저수지를 보고 서 있다. 꼭대기 장식 부분이 없어진 것 이외에는 거의 완벽한 모습의 탑이다. 지붕돌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돌을 깎아 저렇게 날아갈 듯 날렵한 모습으로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수도 없이 감탄을 한다. 

 

위는 전북유형문화재 제96호인 해정사지 석탑, 아래 좌측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13호인 장문리 5층 석탑, 우측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남북리 5층 석탑 

 

저 날아갈 듯한 비선(飛線), 저렇게 손으로 일일이 돌을 다듬을 수 있었다면, 그 정성 또한 어떠했을까?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장문리를 떠나 해가 뉘엿한 길을 달려 남북리로 찾아들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남북리 5층 석탑.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이 되어 있는 이 석탑은, 신라 탑의 양식을 따라 목조 건축 양식을 본뜬 것이 특이하다.

 

4기의 전혀 다른 모습, 그리고 나름대로 표출하는 아름다움. 그런 석탑들을 보면서, 이 석탑을 쌓은 장인들의 예술혼을 느낀다. 답사를 다니면서 만나는 많은 문화재들. 그 안에는 생명이 있다. 그리고 장인들의 마음이 함께 한다. 수 천 년 버티는 힘이 바로 그런 생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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