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무는 12월 22일은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冬至)’이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쑤어 집의 여기저기에다가 뿌린다. 한 마디로 모든 잡귀들이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잡귀들은 붉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런 풍습이 전해진다. 아마 팥죽을 한 그릇 먹는 것도, 알고 보면 내 몸 자체를 잡귀에게서 보호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아우한테 가니 동짓날 팥죽 쑬 것을 미리 준비를 한다고 장을 보러 나간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집에 찾아오니, 적잖이 팥죽을 끓여대야 할 것이다. TV를 보고 앉아 있다가 갑자기 ‘꾼’이란 단어 생각이 난다. 어째 갑자기 ‘꾼’이란 말이 생각이 날까. 아마도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정치인들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국어사전에서 ‘꾼’이란 말을 찾아보았다.


‘꾼’은 나름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

<꾼>이란 [명사]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이라. 그래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을 ’누리꾼‘이라고 하는 것인지. 그런데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란 뜻이란다. 누리꾼이란 결국 ’누리‘와 ’꾼‘의 복합어인 듯. 그 뜻이 인터넷 안에서 못 갈 곳이 없으니 ’온누리‘를 다닌다는 것인지, 아니면 즐긴다는 것을 ’누린다‘로 바꾼 것인지는 모르겠다. 워낙 어휘력도 부족한 내가, 국문에도 문외한이니 말이다.

기실 과거부터 많은 ‘꾼’이란 밀을 사용했다. ‘꾼’이란 자신이 즐기면서도 남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공유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고 늘 생각을 한다.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그 즐거움을 남들과 공유를 하고, 나름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꾼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많은 꾼들은 나름대로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을 하면서, 남에게 이런저런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 농사꾼 /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꾼들은 농사를 지어 나만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다. 예전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농사소리에 보면 ‘이 농사를 얼른 지어 나라님께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영봉제 마친 후에 처자권속 배불리세’라는 사설이 있다. 즉 농사꾼이란 단순히 나만 잘 먹는 것이 아니고, 나와 이웃, 그리고 나라까지 걱정을 했다.

○ 장사꾼 / 장사를 한다는 것은 이문을 남기기 위해 한다. 하지만 그 이문을 그냥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이문을 남겨 생활에 보탬을 주지만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날라다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 풍물꾼 / 풍장을 치는 사람을 이야기한다. 전문적인 기예를 펼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도 자신의 기예를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즐김이라는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자신이 노력을 하여 갖게 된 예인으로서의 능력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줌으로써 함께 공유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춤꾼, 소리꾼 등 다양한 예능의 전문가 집단이 있다고 하겠다.

○ 상여꾼 / 출상을 할 때 상여를 메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전에는 영구차로 씽~ 하고 장지로 가는 것이 아니고, 꽃상여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상여를 메고 상엿소리에 발을 맞추어 장지로 향하고는 했다. 이 안에 발을 못 맞추는 짝발이라도 있으면 곤란을 당한다. 이렇게 마음을 합하여 상여를 메는 사람들을 상여꾼이라 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선소리를 하는 사람을 ‘향두꾼’이라 한다. 이 향두꾼은 한 마디로 상여꾼을 인솔하는 지도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꾼이란 참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정말 알 수 없는 한 가지가 자꾸만 날 괴롭힌다. 꾼이란 다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꾼도 있기 때문이다. 사기꾼도 있고 훼방꾼도 노름꾼도 있기 때문이다.

꾼에도 종류가 있어

‘사기꾼’을 찾아보니 [명사] ‘사기를 일삼는 사람. 사기사(詐欺師). 사기한(詐欺漢)’이라고 되어 있다. 물론 사기란 남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사람이란 뜻이다. ‘훼방꾼’이란 남의 일에 훼방을 놓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 좋은 꾼이 아님은 자명한 일이다. ‘노름꾼’이야 노름에 미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니 오죽하리오.

그러고 보면 ‘누리꾼’ 중에도 같은 이름을 갖고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 남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즐거움을 주며, 양식이 될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은 <좋은 누리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남을 비방하고 폄하하면서, ‘카더라’ 식의 글을 적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쁜 누리꾼>에 속할 것이다. 좋고 나쁜 것은 스스로가 판단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같은 이름을 가진 ‘꾼’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정치꾼’이다. 정치꾼이란 그야말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흔히 ‘정치인’ 혹은 ‘정치가’라고 표현을 하지만, 이들이 좀 더 전문적인 집단으로 승화를 하기 위해서는 ‘인(人)’보다는 ‘꾼’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꾼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고 표현을 한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농사꾼을 찾으면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꾼’이 필요해

이 ‘정치꾼’은 사전에 ‘정치가를 낮추어 이르는 말, 정치에 관계되는 일에 빠지지 아니하고 꼭 참여하는 사람’.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정치꾼이란 ‘정치를 해서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국민들의 권익보호와 복지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런 전문가’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무리 보아도 이 정치꾼들이 국민을 위해 노력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 잘 먹고 아전인수 격인 주장만 하면서 국민들을 내동댕이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만히 보면 무엇인가 심상치가 않은데, 그런 내용을 속속들이 모르니 더욱 답답한 일이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여야가 모두 새판 짜기를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등을 돌린 지가 오래이다. 이젠 지금까지의 그런 구태한 모습들을 보여서는 국민들의 눈길을 받기가 쉽지가 않다. 이제는 정말로 국민들을 위한 그런 전문적인 ‘꾼’이 필요할 때이다. ‘싸움꾼’이나 ‘난동꾼’이 아닌, 국민을 위하는 그런 듬직한 즐거움을 주는 ‘꾼’ 말이다. 동지 팥죽 생각을 하다가말고, 별 생각을 다 한다. 아마도 동지팥죽을 들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인지.

「안녕하세요, Daum view입니다. 2011 view 블로거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1년 한 해 view로 송고하신 양질의 콘텐츠, 타 블로거와의 소통 능력, 네티즌 투표, 내부 심사 등을 거친 결과이며, 수상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다음 뷰에서 이메일로 블로거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받기 전에, 이미 많은 이웃 블러거님들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생각 같아서는 정말 기뻐해야 하고, 소리라도 질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저 덤덤하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 참에 절친 블로거 한 분이 전화를 했다. ‘생각대로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때서야 정말 수상을 하긴 하는가보다 라고 실감이 난다.


위는 문화재 답사를 시작한지 20년이 지난 후, 방안을 가득 메운 문화재 답사 자료인 3,000여 장의 CD입니다. 아래는 그 동안 썼던 20권이 넘는 책 중 일부입니다(좌측)  


나에게 문화재는 ‘살아있다는 존재감’

길고 긴 사간이었다. 물론 상을 받자고 한 것은 아니다. 다음 뷰의 전신인 <다음 뉴스>에 처음으로 송고를 한 것이, 2005년 10월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플래닛을 하다가 다음 뉴스가 시작되면서 블로그를 시작을 했다. 그리고 티스토리로 자리를 옮겨 앉아 2007년 까지, 거의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글을 썼다.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숱하게 상처도 받았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도 없었다. 한 때 중단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바로 ‘존재감’ 때문이었다.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엄청난 자료. 그것을 혼자 품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쉬고 있는 동안에도 자료는 늘어만 가고, 난 항상 문화재를 찾아다니느라 길 위에 서 있었다.




문화재 답사는 고통을 수반한다. 저렇게 가파른 절벽을 수도 없이 올라야 하고(맨 위) 그 위에 오르면 설악산 천불동이 눈 아래 보인다.(두 번째) 그런가하면 비가 오는 날도 답사는 쉴 수가 없다(세 번째)
그리고 눈이 발목을 덮어도 답사는 늘 계속된다. 하기에 문화재 답사는 늘 고통을 수반한다.


20년이 넘는 시간의 답사. 그리고 수없이 걸었던 길.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문화재들.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방에 놓여있다. 문화재 CD 3천 여 장. 자료를 위시한 책들이 2.000 여권. 그 책들을 두 곳에 나뉘어져 보관을 하고 있다. 난 이 집을 <자료실>이라고 늘 부른다. 생활공간이자, 모든 답사와 문화재에 대한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늘 답사를 하러 길을 나서는 나로서는, 가족들이 함께 하는 집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항상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쓰고, 또 다시 길을 나선다. 2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길 위에 서 있었다. 그 20년 동안 숱한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했다. 그리고 또 힘이 들 즈음에 블로거 대상 중 ‘문화연예 부분 우수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 상은 나에게는 채찍질이란 생각이다. 나태해 져 가고 있는 나에게 ‘다음 뷰에서 주는 매’란 생각이다.


위에 사진은 현재 자료가 있는 방안 풍경이다. 아래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2,000 여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또 하나의 서재이다. 우측 위는 확대한 서책의 일부 모습이며, 우측 아래는 그동안 출간을 했던 문화에 대한 책들이다. 그리고 좌측 아래는 문화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렸던 자료들이다. 지난 20여년, 오직 우리 전통문화와 문화재를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기에, 집 한 칸도 없지만 후회는 없다.


달라질 것이 없는 일상

수상을 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내 힘이 자라는데 까지는 답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쓸 것이다. 하나의 문화재라도 더 알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답사를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일상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그런 일상이다. 길을 나서고, 문화재를 답사하고, 글을 쓰고, 소개를 하는 것도 그와 다를 것이 없다.

많은 이웃님들이 이야기를 한다.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다”라고. 그러나 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문화와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그날이, 진정한 보상이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상은 그날까지 쉬지 말고 계속하기 위한 '주마가편(走馬加鞭)'이 될 것이다. 내일도 난 또 길 위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블로거 여러분. 정말로 고맙습니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죄송하기도 합니다. 더 열심을 내지 못했음이.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이 부족한 인사를 선정해 주신 다음 측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연말이 다가온다. 여기저기서 전화로 혹은 이메일로 인사들을 한다. 일 년 동안 잠잠하던 사람들도 연말이 되면 조금은 궁금해지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연말과 새해가 되면,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기원하기도 한다. 누구는 건강을, 누구는 금연을, 또 누구는 대박의 꿈도 꾼다. 하지만 세상사 그리 만만치는 않은 듯.

연말과 새해, 요즈음 시쳇말로 ‘가는 해 붙잡지 않고, 오는 해 막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세월이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진시황제도 가는 세월을 막아보려고 동남동녀 오백 인을 배에 태워 불사약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황천길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경북 영주에 있는 금성대군 위리안치지 모습

(恨)이 배어있는 ‘위리안치지’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해야만 할까? 다음 뷰에 송고를 한 글 중에 ‘위리안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 형벌 중에 가장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이 ‘위리안치’라는 형벌이었다고 생각한다. 경북 영주 소수서원은 조금 지나면 금성대군 신단이 있고, 그곳을 조금 지나 좌측 마을 길 안으로 들어서면 금성대군이 위리안치를 당했던 곳이 있다.

‘위리안치’란 허허로운 벌판의 땅굴 속에 사람을 가두어 두는 형벌을 말한다. 세종의 여섯 째 아들인 금성대군이 이곳 집 한 채 주변에 없는 벌판에서 형인 수양의 욕심으로 인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위리안치를 당한 곳이다. 단종의 숙부이기도 한 금성대군은 1452년 어린 조카인 단종이 복위하자, 형 수양과 함께 단종을 도울 것을 약속하지만 형의 왕좌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위리안치를 당한 것이다.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처형이 된 순흥으로 유배 당하는 모습

1456년에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를 하자, 이에 연루되어 다시 경상도 순흥으로 옮겨졌다. 금성대군은 이곳에 와서 부사 이보흠과 함께 거사를 일으켜 수양을 몰아내려고 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을 당한다.

가장 극악한 형벌 중 하나인 위리안치

다시 설명하지만 조선시대 형벌 중에 유배형에 해당하는 것은, <부처>와 <안치>가 있다. 부처란 유배형을 당한 죄인이 부인과 함께 유배지에 머물며 생활을 하는 형벌이다. 안치란 부처형을 받은 죄인이 왕족이나 고관일 경우, 유형을 받은 장소에서 주거와 행동을 제한시키는 형벌제도이다.

안치에도 종류가 있다. 고향 등으로 행동을 제한시키는 <본향안치>. 육지와 떨어진 절해고도에 안치를 시키는 <절도안치>. 그리고 가장 중형에 속하는 <위리안치>이다. 위리안치는 형벌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형벌이라고 한다. 큰 죄를 범한 죄인을 허허벌판에 돌우물 같은 웅덩이를 파고, 그 안에 죄인을 가두는 형벌이다.

위리안치를 당하면 허허벌판 돌 웅덩이 안에 갇혀 처형이 되기를 기다린다.

위리안치지는 처형을 당할 때까지 죄인을 가두어 두는 곳이다. 그러나 그 ‘옥(獄)’이라는 곳이 일반적인 옥과는 다르다. 주변에 인적이 없는 벌판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어 둔다. 안은 발을 뻗을 수조차 없는 곳이다. 누울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웅덩이.

거기다가 인근에는 물이 흐르기 때문에 바닥은 축축하다. 비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웅덩이 안으로 물이 차 들어온다.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곳이다. 아마도 처형을 당하기도 전에 미리 기암을 하지나 않으려는지 모르겠다. 웅덩이 밖으로 나간다 해도 도망을 갈 수가 없다. 위리안치지 주변이 모두 가시가 돋은 탱자나무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위리안치지 주변은 가시가 많은 탱자로 울타리를 쳐놓아 나갈 수가 없다.

마음의 '위리안치’에서 벗어나자

이러한 위리안치는 꽁꽁 갇혀있는 곳이다. 누구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다. 이런 위리안치지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닫아걸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위리안지치에 갇힌 사람들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집과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만일 내 마음 어딘가에 꽁꽁 닫힌 곳이 있다면, 과감히 마음의 벽을 허물고 벗어나야만 한다.

가는 해와 오는 새해. 우리 마음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둔 위리안치는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 소통과 화합을 말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위리안치지에서 툴툴 털고 나오는 자유를 만끽하자. 스스로의 마음을 위리안치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행복일 수 없으니 말이다.

‘스카우트’라는 말을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우수한 운동선수 또는 연예인, 특수 기술자와 같은 인재를 물색하고 발탁하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직장을 가져보았다. 그 직장 하나하나는 그래도 꽤 보람찬 일을 할 수 있었던 곳이라,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싶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점 마음이 조금해지는 것은, 지금은 내가 어느 곳에 얽매어 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우선은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한 시간 정도만 걸어도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하다. 아직 찾아갈 곳이 많은 나로서는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난 아직 ‘60이 갓 넘은 소년’이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바로 ‘문화재답사’이다. 난 항상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답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에 나에게 주어진 숙명이라고 늘 생각을 한다. 물론 문화재라는 것이 내 전공분야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문화재가 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문화재답사에 목을 매는 것은,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 때문이다. 문화재를 찾아다니고 그것을 사진을 찍어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이제 나에게는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다. 소중함이야 더 할 나위없지만, 점점 시간이 간다는 것이 마치 숨통을 조여 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

그러다가 수원에 있는 신문사에서 전화를 받았다. 며칠간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쩌면 이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취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반가운 일이고, 그 다음에는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글이란 써서 힘을 받아야만 한다. 그 힘이 생긴 것이다.

이제 60을 넘긴지도 몇 년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그런 나이에 새삼스럽게 직장을 갖는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60은 소년, 70은 청춘’이라는 시대가 아닌가. 결국 난 아직도 소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소년의 마지막 열정을 이곳에서 지내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수원인터넷뉴스> 내가 새로 시작한 언론사의 명칭이다. 아직은 창간이 된지 1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하고 눈여겨보는 인터넷신문이다. 곧 지면으로도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수원인터넷뉴스’가 나에게 주는 의미

꼭 ‘이것이다’라고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우선은 취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기사로 적었을 때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구 110만의 수원시 안에서만 국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뉴스란 특성상,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면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기사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60이 넘은 소년이 다시 찾아 둥지를 트는 이곳. 난 이곳을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끝에 몸을 의지한 곳으로 삼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을 이곳에서 다 할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들뜨고 힘이 넘치지 않는가?

말 그대로입니다. '이건 먼 또라이야' 하시는 분들. 저 또라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0.01%의 재벌님들꼐 3억을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이 오늘 생긴 것이 아니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면 이 글이 내일(지금은 토요일 11시 53분입니다)  겁나게 조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먼 정신병자가 감히 대한민국 재벌들을 향해 3억을 달라고 하느냐고.

그런데 말입니다. 0.01%의 재벌님들은 3억이 큰 돈입니까? 물론 큰 돈입니다. 하지만 사과상자 안을 가득채우면 한 10억쯤 들어갈까요. 그 반에 반만 채워달라는 것입니다. 왜 3억이 필요하냐고 묻는 분들께, 지금부터 3억에 대한 내력을 말씀 드리렵니다.

횡갯다리입니다. 표준말로는 홍교가 됩니다. 그러나 전 홍교보다는 횡갯다리가 좋습니다.


3억 산출근거는 이렇습니다

한 20년 넘게 문화재 답사를 하다보니, 그동안 쓸 돈이 이 정도였습니다. 1박 2일에 들어가는 답사비가 300,000원 정도입니다. 숙식비, 차비 등등 해서요. 한 달에 네 번 정도 답사를 나가면 1백 2십만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로 1박 2일과 2박 3일 정도를 돌아치면, 한 달에 약 2백만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1년이면 2천 4백, 20년이면 4억 8천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답사를 한 자료는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의 한 30% 정도입니다.

이러다가보니 마음이 무지 바빠집니다. 이제 나이를 보니 앞으로 제가 답사를 할 수 있는 햇수가 약 5년 정도 잡습니다. 앞으로 매일 답사를 한다고 해도, 1,825일 정도입니다. 그동안 약 7,300일 정도에 30%이면 1,823일 정도면 매일 답사를 해보았자 25%정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합해도 55% 정도의 답사를 할 수 있습니다.


위는 미륵당입니다. 아래는 모악산 대원사에 있는 용각부도입니다. 

그 3억이 무엇을 주지?

 3억이 왜 필요할까요? 1박 2일에 300,000만원, 그러면 하루에 약 200,000만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매일 답사를 나간다고 하면 3억 5천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5년 동안 아플 수도 있고, 지쳐서 쉴 수도 있는 날을 제하면 3억이면 적당하단 생각입니다.

그런데 만일 정말로 누가 3억을 준다고 하면, 3억 대신 무엇을 주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제 답은 하나입니다. 줄 것 없습니다. 그런데 왜 달라고 하느냐고요. 문화재는 가치를 따질 수가 없습니다. 그 가치조차 가늠할 수 없는 문화재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말이 필요 없지 않습니까?

1,000년 세월 풍상을 겪은 이 다리. 과학과 예술을 합한 멋진 농다리입니다. 

그냥 3억 주시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30억의 가치가 있는 자료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대한민국 0.01%의 재벌님들에게 당당하게 3억을 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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