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일 수원에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은 지동 제일교회 노을빛 전망대와 갤러리. 노을빛 전망대 및 갤러리는 지동교회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지난해에 개방하였다. 그동안 보수 공사와 안전 시설물 공사 등을 거치면서, 1년이 넘게 공사를 해 온 것이다. 전체 높이 47m에 이르는 종탑의 8~10층은 갤러리로 사용할 수 있어, 수원시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이번에 갤러리 개관기념으로 유순혜 작가의 손그림 전시에 이어, 두 번째 전시가 열린다. 조각가 김수현 충북대 명예교수와, 한국화가 충북대 미술과 홍병학 명예교수의 초대전이다. 두 작가 모두 한국 미술계의 거목으로, 보기 힘든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두 선생님 모두 많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유치하려고 무단히 노력을 하지만, 그런 전시에 잘 응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이번에 저희 노을빛 갤러리에서 이분들을 유치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이렇게 귀한 전시를 하는 것은 우리 수원의 문화적 사고를 높이고, 작가들에게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배움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작가는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노을빛 갤러리 유순혜 관장의 말이다. 창룡마을창작촌이 주최를 하고 노을빛 전망대 및 갤러리가 주관을 하는 이번 초대전은, 1130일까지 전시가 된다. 노을빛 갤러리 8층에는 조각가 김수현의 작품이 전시되고, 9층에는 한국화가 홍병학의 그림이 전시된다. 개막식은 611시에 제일교회 8층에서 열린다.

 

 

가족중심의 강한 혈연 표현

 

조각가 김수현 충북대 명예교수의 작품은 혈연중심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정서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조각은 추상형식보다 구상형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구상조각의 조형성을 모색하고 있다. 나는 보편적인 우리민족의 감성과 정서 가운데 한의 사상과 가족 중심의 혈연에 대한 애정을 내용으로, 피리부는 여인상, 모자상, 자매상, 사랑, 사색 등의 즐겨 다루어왔다고 한다.

 

김수현 충북대 명예교수는 춘천 MBC 현대조각대전 운영위원장, () 한국미술협회 고문, () 한국 조각가 협회 상임고문, 토속조각회 고문, 한국구상조각회 고문, 모양과 모양전 회장을 맡아보았다. 2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1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문교부장관상 수상, 4회 목우회 공모전 최고상 수상 등을 받은 바 있다.

 

 

또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작가 초대전, 목우회 공모전 최고상 수상작가 초대전, 프랑스 국립미술협회 2001 saldon 초대전(파리 르부르 박물관 특별 전시실), 한불 교류전(파리 라데방스 미술관), 한국미술 50인 파리 유네스코 초대전, 호주 시드니 서울현대미술 초대전 등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단청산수화의 강한 색채감 돋보여

 

9층에서 전시를 하는 한국화가 홍병학 충북대 미술과 명예교수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강한 색채를 엿볼 수 있다.

나는 겸재의 조형정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내 그림의 밑바탕으로 삼아 왔다. 대체로 나의 그림은 현장에서 스케치하여 일단 눈에 익힌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전개하거나 여러 장면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변경, 압축하여 내 마음속의 풍경으로 용해시킨 다음 나의 손끝에서 재창조하여 관객에게 제공된다.’고 한다.

 

 

석채의 강한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풍경을 그리는 홍병학 충북대 명예교수는, 개인전 18회를 비롯하여, 한국의 이시대의 지평전(2005), 한불문화교류 유사성과 이질성전(2000년 프랑스 라데팡스 그랑아쉬 미술전시장), 동양화 새천년전 출품(2001~2003 공평아트센터), 춘추회전 출품(1984~2013), 한국미술 120인 마음전(2006), 오늘로 걸어 나온 겸재전(2008. 아람미술관) 등의 전시를 했다.

 

국내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두 미술계의 거장의 작품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지동 제일교회 노을빛 갤러리를 찾아 즐겨보기를 권유한다.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0년 가까이 되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계속 글공부를 했죠. 그러다가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고 싶어 국문과를 지망했는데, 글쓰기보다는 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데요. 이제는 정말로 문예창작이 하고 싶어요.”

 

그래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다. 올해 56세의 박경옥씨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초등학생에게는,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 학생들에게도 논술을 가르친다고. 2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정리를 해야겠단다. 자신이 공부를 더 하고 싶기 때문에.

 

 

한국시학 신인상도 수상

 

박경옥씨는 계간지 문파문학으로 등단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수필로 등단을 했지만, 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시를 쓰고 있다는 것. 주변에서는 시로 등단을 하라고 권유를 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더 많은 시를 쓰고 난 다음에 시집을 내고 등단을 하겠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시를 더 많이 쓰고 있어요. 3년 전인 20101120일에는 한국경기시인협회 주관인 한국시학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시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요즈음은 시를 쓰는 재미를 느끼고 있죠.”

 

박경옥씨를 처음 만난 것은 수원시 팔달구 지동 벽화 길에 시인의 벽을 조성하는 날이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벽에 자신의 시 오래된 골목을 적고 있는 그녀는, 흡사 벽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 대담 요청을 했다. 그리고 28일 오후 영통의 가을이 깊이 내리 앉은 한적한 공원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어릴 적 친구는 없지만 마음속의 모습은 그대로

 

푸성귀 같은 아이들 웃음소리

앞집 마루까지 들리던 낡은 골목길

어스름 달 저물도록

자치기 깡통차기 흙냄새 펄럭이다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에

아이들 하나씩 달려가 버리고 나면

골목길도 꾸벅꾸벅 졸음에 겨워

어느새 하늘엔 별 총총히 피어났다

 

골목 한쪽 평상을 펴고 앉아

지나던 사람 불러 팥 칼국수

한 사발씩 퍼주던 손때 묻은 인정이

담벼락 밑 채송화처럼 피어나던 길

오래전 버리고 떠난 허름한 그곳에 서면

아버지 자전거소리 휘파람처럼 들리고

구부러진 길 끝 만화방에 걸려있던

아라비안나이트가 초저녁달처럼 뜬다.

 

오래된 골목이라는 시이다. 동서문학 수상작이기도 하다는 이 시가, 벽화 골목의 분위기와 꽤 맞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어려서 살던 곳은 군산이었어요. 나이가 들어 그곳을 찾았는데 어려서 뛰어놀던 골목이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었죠. 하지만 내 마음속에 골목은 옛 모습 그대로였어요. 골목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때 지은 시예요. 아마도 시를 쓰는 사람들은 모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그 나무가 그냥 나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그 나무와 대화를 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마음대로 치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동화도 쓰고 싶어, 끝 없는 글 욕심

 

박경옥씨의 글 욕심은 끝이 없다. 앞으로는 동화도 쓰고 싶다고 한다. 시를 쓰면서 느끼는 마음의 설렘. 그리고 시를 완성하고 난 후에 밀려오는 성취감도 있지만 자신을 스스로 알아준다는 것이다. 한동안은 슬럼프에 빠져보기도 했다는 박경옥씨. 결혼을 하면서 수원으로 올라온 지 22년째라고 한다.

 

생활 때문이죠. 아무래도 여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다 보면, 생활에 어려움이 많이 따르니까요. 그래서 잠시 동안 글을 쓰지 못했어요. 앞으로는 아마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접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동화가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는 박경옥씨. 나이에 걸맞지 않게 글 욕심이 많은 그녀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그러한 욕심 때문인가 보다.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 이 글을 쓴 세월이. 그리고 오늘 20년 만에 우연히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글 두편을 찾았다.

 

살풀이

 

덩실덩실 풀어간다

이승에서 맺힌 고를

한 겹 한 겹 풀어간다

 

누구라 맺힌 마음

저리도 슬피 울어

찢어진 가슴 한 귀퉁이

바람에 휘날릴까

 

그저

목 놓아 울어본들

가시는 길이 북망이고

잠든 곳이 산천이라

 

풀어헤친 봉두남발

다소곳 갈기 모아

흰 천 손에 들고

플어내니 겁살(劫煞)이라

 

 

()랄 것도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끼적였을 뿐이다. 내가 시인도 아닌데 무슨 시를 쓸 것인가? 우리 춤인 살풀이 사진을 찍어대다가, 옆에 놓인 종이에 적은 글이다. 그리고 당시 플래닛이라는 나만의 공간을 올려놓았었다. 아침에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살풀이라는 글을 찾았다. 1994년인가 적은 글이니 꼭 20년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도 인터넷에 이 글이 남아있다.

 

물론 내 블로그는 아니다. 아마도 누군가 이글을 퍼다 자신의 블로그에 남겨 두었는데, 그 글이 내 눈에 띠였을 뿐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내친 김에 또 무엇이 있을까 하여 찾아보았다. 또 하나의 살풀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 보인다. 참 글 같지도 않은 글을 만났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살풀이 2

 

먼 산 한번 쳐다보고

물동이에 올랐다.

무거운 다리는 천근이고

하늘은 그다지도 높았는지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그 끝이 없다.

천겁 세월 찌들어 온 인생

그 안에 먼 살()이 그리도 많았는지

날마다 살을 풀어낸다 야단이다.

어미 아비 세상을 뜨던 날

살 풀어 저승원문 편히 가라고

그렇게 물동이 타고 훨훨 날았다.

 

 

26일 지동 시인의 벽을 취재하고 난 후, 기사를 쓰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발견을 한 두 편의 글. 참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찾아놓고 괜히 부끄러워진다. ? 이런 글을 적었을까? 살풀이는 우리 춤 살풀이를 보고 썼고, 살풀이2는 굿판에서 무당이 물동이에 올라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생전 시라는 것은 써보지도 않았고, 시를 쓰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두 편의 글이 아직도 인터넷에서 검색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참 아무 것도 모르는 인사가 끼적인 글도, 글이라고 나돌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 지동이라는 마을 같은 곳은 없을 듯하다. 이 마을은 정이 많고, 이웃과 늘 함께 하는 마을이다. 아마 사람간의 정이라는 것이 가장 많은 마을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수원 화성을 끼고 있는 지동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가끔 골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곳이 바로 지동이기 때문이다. 지동은 벽이 없는 마을이다.

 

26일 오후 지동 벽화골목에 시인의 벽이 마련되었다. 수원시인협회(회장 김우영)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고은 시인을 비롯해, 지동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윤수천 선생, 수많은 시인 제자들을 배출한 원로시인인 유선 선생 등 많은 시인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시인의 벽은 지동어린이집 건너편 벽에 마련이 되었다.

 

 

주민들 막걸리 등 준비

 

시인들이 찾아와 벽에 시를 직접 쓰는 일도 큰일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시인들이 마을을 방문한다고 하자, 지동 새마을지도자회에서 직접 막걸리 등을 준비해 시인들이 목을 축이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또 마을에 사는 상인들은 순대 등 먹거리를 준비해 찾아오기도 했다.

 

이런 동네가 다 있네요. 참 정이 넘치는 곳입니다. 이렇게 정이 많은 마을에 와서 벽에 글을 쓰고, 또 자원봉사자들은 기다렸다가 일일이 코팅제를 바르고. 참 보기와는 전혀 다른 동네네요. 지동은 열려있는 마을이라고 하더니, 정말입니다.”

열려있는 마을. 지동은 담이 있어도 언제나 이웃과 소통을 하면서 살아간다. 벽화 길을 조성하면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를 쓰러 온 한 시인은 연신 지동 칭찬에 여념이 없다.

 

 

30명을 초대한 고성주 회장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시를 쓰는 작업이, 330분쯤 마무리가 되었다. 30여명의 시인들이 찾아간 곳은 지동 271-124호인 경기안택굿보존회. 마당에는 삼겹살과 상추 등이 준비되어있다. 불판과 술도 마련하였다. 몇 사람이 연신 술과 고기 등을 날라낸다. 적은 인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많은 사람들을 대접한 것이다.

 

경기안택굿 보존회 고성주(, 60)회장은 이 집에서 40여 년을 살아왔다. 어려서부터 자란 곳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매년 자비를 들여 경로잔치를 연다. 그리고 초복 날이 되면 삼계탕을 끓여 어르신들을 대접한다.

 

 

올 초복에도 삼계탕 180그릇을 어르신들께 대접을 했다. 초복 날이 되면 지동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이 집으로 모인다. 마당이고 방이고 빈틈이 없다. 거기다가 음료수며 과일까지 대접을 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제대로 공경할 줄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지금 같은 세상에 누가 이렇게 자비를 들여 많은 인원을 대접할 수 있을까?

 

정말 이분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아 먹을 것을 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이런 분들이 지동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지동은 정말 행복한 마을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던 한 시인의 말이다. 열려있는 마을 지동. 그리고 이웃과 함께 소통을 하며 살아가는 지동사람들. 지동이 사람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것은, 이렇게 이웃을 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살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 등 시인 30여 명 글 남겨

 

지동에 오면

어머니와

작은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린다

 

지동에 오면

춘옥이 할아범 생신날 설장구 소리가 들린다

성 밑 집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동에 오면

두고 온 내가

나를 어서와 하며

맞아들인다

20131026일 고은

 

 

지동 벽화골목에 26일 오후 3시 시인 30여 명이 모여들었다. 고은시인을 비롯해 지동에 거주하는 아동문학가 윤수천 선생, 유선 시인, 경기시인협회 임병호 회장, 수원시인협회 김우영 회장 등이다. 수원시인협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지동 벽화 길에 시인의 벽을 조성하기 위해 모인 시인들이다.

 

명사들이 자주 찾는 지동 벽화길

 

그동안 지동 벽화 길에는 많은 명사들이 흔적을 남겼다. 테마골목으로 조성이 되어가고 있는 지동 벽화 길은, 올해로 3년 째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5년 계획으로 조성을 하는 벽화골목의 총 길이는 무려 3km에 달한다. 그 중 올해까지 1.5km 정도가 완성이 될 계획이다. 벽화 길 중 가장 사람들의 눈에 띠는 도로변에 위치한 벽에, 시인의 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합죽선 깊은 뜻을

눈감아 짚어보면

가슴속 타는 정화(情火)

끄라고 보냈건만

물로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고 어이끄랴.

 

가장 먼저 벽에 글을 쓴 유선시인의 부채라는 시이다. 열심히 골목 안에서 벽에 글을 쓰고 있던 시인 한 사람은

이렇게 유명하신 선생님들과 같은 벽에 글을 쓸 수 있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아마 이 벽화 길 중 시인의 벽으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올 것으로 기대가 된다.”고 말한다.

 

 

 

그림까지 그려 벽화 명소 만든다.

 

지동 벽화길 조성 총괄작가인 유순혜씨는

시인 여러분들이 이렇게 지동을 찾아와 주셔서 감사를 드린다. 더구나 고은 선생님 같은 분들이 우리 마을에 찾아와, 이렇게 직접 글을 써 주시니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시인들께서 쓰신 글에는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보도록 조성을 하겠다.”고 한다.

 

 

고은 시인이 직접 벽화 길에 시를 적는다고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지동의 주민 한 사람은

정말 영광입니다. 고은 시인 같으신 분이 우리 마을에 와서 벽에 직접 지동에 오면이라는 자작시를 적어주시다니. 이제 지동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벽화 길이 있는 마을로 소문이 날 것 같습니다.”라며 즐거워한다.

 

오늘 벽에 쓴 시들은 31일까지 화가들이 글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동 벽화길 중 시인의 벽을 찾아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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