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도 칭찬하는 ‘경기도의 굿’, 정작 지역에선 냉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우리는 흔히 사람이 죽으면 ‘저승을 간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 저승이란 곳이 어디일까? 상여소리의 사설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라는 대목이다. 저승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대목이다. 우리 소리가 갖는 극단적인 여유요, 어찌 보면 표현의 잔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죽으면 천도 의식이라고 하는 ‘지노귀(진오기)굿’을 한다. 전문적인 무격(巫覡-무는 여자무당, 격은 남자무당을 말한다)에게 굿을 일임하여,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자 함이다. 사람이 죽어서 49제 안에 하는 굿을 ‘진진오기’라 하고, 49일이 지난 다음에 굿을 하면 ‘묵은 진오기’라고 한다.
일본에서까지 찾아 온 경기도 굿판
8월 23일(금).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에 소재한 고려암. 고려암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대문 앞에는 ‘경기 안택굿 보존회’라는 현판이 걸린 것으로 보아, 전문적인 무격이 전안(신령을 모셔 놓은 신당)을 모셔놓은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집은 4대 째 경기도 전통 안택굿을 이어오고 있는, 남무 고성주의 집이다.
고성주(남, 58세)는 18세에 내림을 받은 강신무이다. 어려서부터 춤과 소리를 배운 탓에, 내로라하는 굿 잘하는 무격으로 소문이 나 있다. 이날 진오기굿을 의뢰한 사람들은 남양주시에 사는 여흥 민씨의 자손들이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천도굿을 뒤늦게 하는 ‘묵은 진오기 굿’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날 굿판에는 굿을 하는 무격과 악사, 그리고 집안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 외에, 멀리 일본에서 이 굿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동경에서 찾아 온 Efubun-no-ichi-inc 의 디렉터인 Ayumu Yasuhara(安原 步)이다. 사전 답사를 나왔다고 하면서 굿을 하는 것을 유심히 보면서 질문을 하고, 일일이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한 상차림
고성주의 전안은 상당히 넓다. 아마 우리나라의 무격들의 전안 중에서는, 가장 넓고 깨끗하다고 악사들이 말을 한다. 악사들은 굿판을 전문적으로 다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많은 무격의 집을 방문하기 때문에 많은 무격들의 전안을 보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부터 전을 부치고 과일을 씻어서 쌓고, 각종 떡을 진설한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다 마친 것이 오전 9시 30분경.
이날 굿판에는 주무 고성주를 비롯해, 여무(女巫)인 서정숙(67세), 임영복(59세), 홍형순(40세)과 악사 김상건(남, 61세) 등이 굿을 진행했다. 굿은 고성주의 앉은부정으로 시작해 임영복의 산거리, 서정숙의 불사거리, 고성주의 대안주와 이어서 서정숙과 임영복의 조상, 군웅 등을 마친 후 진오기굿인 바리공주의 차례로 진행이 되었다.
굿판은 열린 축제이며, 지켜가야 할 문화유산
우리는 흔히 굿판을 일러 ‘열린 축제’라고 표현을 한다. 굿판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다 함께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안택굿을 여는 집이 있으면,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참여를 한다. 진오기굿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생전에 고인과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해서, 고인의 극락왕생을 함께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 우리의 축제인 굿이 언제부터인가, 깊은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종교적인 심한 박해와 주변의 반대로 인해서, 전문적인 굿을 하는 ‘굿당’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다행히 고성주는 자신의 단골들의 굿은 언제나 자신의 전안에서 행한다. 그만큼 자신의 단골들에게 당당히 행한다. 이날 굿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에 시작한 굿은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준비를 한 시간부터 따지면 11시간 정도가 소요가 된 셈이다. 굿의 끝판에 ‘천기를 벗긴다.’고 하여, 제가 집 부부를 앉혀놓고 그 위에 오색천을 덮고 악귀를 쫒는 의식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때쯤이면 모두가 지쳐간다. 더구나 날이 무더워 평소보다 더 많은 고생들을 했다.
‘미신(迷信)’ ‘혹세무민(惑世誣民) 이라는 일제와 유교적 배타와 함께, ’우상숭배(偶像崇拜)‘라는 이종교의 배척 등으로 제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열린 축제인 굿. 그나마 근근이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경기도의 전통적인 굿 한 마당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외국에서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경기도의 굿이, 정작 지역에서는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는 겨우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경기도의 전통굿이 제대로 전승, 보전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돈 10,000원으로 하루가 행복한 동네
수원시 팔달구 지동이라는 마을은 참 재미있는 곳입니다. 이 마을은 그동안 여러 가지 아픔을 주민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 뿌리는 내리고 사는 사람들은, 이 마을보다 정이 넘치는 곳은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2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그런 따듯한 이웃들을 보아오기도 했습니다.
지동은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도 한 옆으로는 수원천을 끼고 있으며, 수원천의 옆에는 3곳의 전통시장이 있습니다. 지동시장, 미나리광시장, 못골시장이 바로 지동에 소재한 시장입니다. 이 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나란히 형성이 되어있습니다. 말로는 세 곳의 시장이지만, 사실 넓은 시장 같으면 한 곳도 채 안되는 그런 곳입니다.
하지만 이 세 곳의 시장은 나름 특징이 잇습니다. 수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시장들이 얼마나 후한 인심을 갖고 있는지를.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즐겨찾기도 합니다.
단돈 만원이면 배불리 살 수 있는 곳
사실 이 시장들이 유명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유명한 집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3일(화), 한 가지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이곳에서 과연 단 돈 만원을 갖고 하루를 배불리 먹을 수가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요즈음 음식 가격이 10,000원을 갖고 하루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지동마을의 세 곳 시장에서는 만원으로 하루를 배불리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이곳의 인심도 후하지만, 나름 유명세를 타면서도 값이 착한 집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동시장은 알다시피 순대타운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건물 1층 거의가 순대집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동시장 입구 도로변에 있는 장날만두집은 왕만두가 6개들이 한 팩에 3,000원입니다. 고기만두, 김치만두, 찐빵 등 알아서 취향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모두 6개에 3,000원입니다. 이 6개면 양이 많은 사람들도 배가 부르다고 할 정도입니다.
미나리광 시장 추억의 도넛도 한 몫 해
지동시장과 못골시장 사이에 형성된 미나리광시장. 아마도 예전에 이곳에 미나리광이었는가 봅니다. 이 시장 안에는 ‘추억의 도너츠’집이 있습니다. 40년 전통의 이 도넛집은 날마다 줄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것이죠. 이 집의 도넛은 만드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우선은 호떡처럼 한편을 기름판에 굽고 난 뒤, 그 안에 팥 속을 집어넣고 다시 기름에 튀겨냅니다. 이렇게 만든 도넛이 1,000원에 세 개입니다. 3,000원이면 9개인데 한 사람이 다 먹기는 버겁다고 합니다. 꽈배기와 손가락도넛 등은 4개에 1,000원입니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이미 도넛은 다 팔려버렸다고 합니다. 남은 것들을 사왔는데, 3,000원에 정말 푸짐합니다. 결국 한 끼에 다 먹지는 못했죠.
못골시장 칼국수로 한 끼를
못골시장 안에 들어가면 ‘통큰 칼국수’집이 있습니다. 이 집 역시 부지런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통큰 칼국수 집의 칼국수는 3,500원입니다. 그 자리에서 직접 반죽을 해서 손칼국수를 만들어 줍니다. 올 초에 가격인상을 한 것이 3,500원입니다. 그 전에는 3,000원을 받았는데, 500원을 인상한 것이죠.
결국 세 곳의 시장을 돌면서 만원으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것도 각각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집들에서요. 지동시장 왕만두 3,000원, 미나리광시장 여러 가지 도넛이 도합 3,000원, 그리고 못골시장의 통큰 칼국수가 3,500원. 만원에서 500원이 남았습니다.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요? 오직 이곳 지동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맛 또한 줄을 설 정도로 일품입니다. 이 정도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단돈 만원을 갖고 하루가 즐거웠습니다.
제일교회 종탑 전망대, 수원의 명물 될 수 있을까?
노을빛 갤러리에 조성중인 ‘화성축성도’ 완성단계
벌써 1년이란 기간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수원제일교회에 마련한 수원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이 전망대는 제일교회의 종탑을 제일교회에서 지동주민들에게 내어 준 곳이다. 제일교회의 종탑은 7층부터 시작된다. 그 중 8층부터 10층까지 3개 층은 ‘노을빛 갤러리’로, 그리고 11층부터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13층 문 밖에 ‘노을빛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이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수원 팔달산의 일몰과 수원의 야경은 가히 압권이다. 몇 번을 올라가 보았지만 계절별로, 시간대별로 느낌이 다르다. 우선은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수원의 야경은 아름답다. 노을빛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야경, 그리고 설경 등, 어느 것 하나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갤러리 8층에 조성중인 ‘화성 축성도’
이 노을빛 전망대 8층서부터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로 오른다. 그 8층 사면의 벽은 갤러리로, 그리고 계단의 입구인 중심부에 있는 둥근 벽에 ‘화성 축성도’가 그려지고 있다. 이 그림은 벌써 1년 가까운 작업을 하고 있는, 지동 벽화 길의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유순혜 작가에 의해서 그려지고 있다.
유순혜 작가는 지동의 음습하던 골목길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다. 골목길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까지 열어놓았다.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끄떡하면 골목에 자리를 편다. 그림이 있는 벽화골목에서 삼겹살을 굽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까맣게 잊고 있었던 우리네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 낸 것이다.
공동체, 우리에게는 공동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외래의 문물에 찌든 삶을 시작하면서 공동체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나만이 존재했다. 그런 아집과 편견이 가득한 사람들을 다시 한자리로 불러 모은 것이다.
그런 공동체의 창출의 정점은 바로 제일교회 종탑에 자리 잡은 노을빛 갤러리와 전망대라는 생각이다. 종탑 8층 갤러리에 그려지고 있는 거대한 ‘화성 축성도’는 밑그림 작업을 마무리하고 색을 입히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을 보면 유순혜 작가의 역량을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축성도에 그려진 그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다르다는 것이다.
생태교통 기간 중 명품 전망대로 관광객 유치한다.
“8월 25일 경이면 이 화성 축성도가 마무리가 됩니다. 그리고 9월 4일 오후 5시에 개막식을 할 예정입니다. 테이프 커팅은 초대를 해서 여러 분이 함께 생태교통의 한 행사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생태교통을 관람하시러 오시는 많은 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화성이 어떻게 축성이 되었는가를 한 눈에 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순혜 작가는 자신이 그동안 그린 그림도 생태교통 기간 중에 노을빛 갤러리에서 전시를 갖는다고 한다. 제일교회 사무장인 박종각 장로는 화성축성도를 개막하는 날은 작은 음악회도 열어, 생태교통을 관람하러 오는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희 주민과 교회 분들 20여명을 선발 해 지동 벽화 길과 화성(창룡문부터 남수문까지)의 안내와 노을빛 전망대와 갤러리, 그리고 우리 지동에 소재한 3개 전통시장(지동시장, 못골시장, 미나리광시장)을 돌아보는 팸투어 안내를 할 수 있는 도우미를 교육시켜 투입을 할 것입니다. 생태교통과 벽화길, 노을빛 전망대, 전통시장을 묶는다면 훌륭한 관광상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이런 준비를 하는 것은 ‘생태교통 수원2013’이라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거대 프로젝트를 극대화 시키고자 하는 것이죠.”
지동 기노헌 총괄팀장은 그 모든 것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관광객들에게 선보일 ‘화성축성도’. 그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화성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9월 4일, 생태교통 수원2013에 ‘화성 축성도’라는 또 하나의 명물이 생겨나는 날을 기대한다.
화려한 의상으로 몸을 감싸고 춤을 추는 여인들
“벨리댄스로 우울증도 고치고, 활력도 되찾았죠.”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소재한 지동 주민센터 2층에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가 되면, 신바람 나는 음악에 맞추어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동 주민센터 문화강좌 중에 목요일 11시부터 벨리댄스 초급반이 먼저 지도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을 하고 나면, 12시 부터는 벨리댄스 동아리인 ‘아이리스’가 흥겨운 춤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초급반 벨리댄스의 지도를 맡은 김민주 지도강사가 앞에서 이끄는 대로, 10여 명의 수강생들이 열심히 춤을 따라 춘다. ‘벨리댄스(BellyDance)’는 흔히 배꼽춤이라고 부르는데 그 역사가 상당히 깊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 제 18왕조의 무덤 속에, 현재의 벨리댄스와 똑같은 형태로 춤을 추는 무용수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신의 다산성을 의미하는 춤으로 해석
벨리댄스는 통상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에서 종교적으로 행해지던 제의의 춤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벨리댄스는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게 붙여졌다. 프랑스에서는 ‘danse du ventre’ 또는 ‘위(stomach)의 춤’이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에서는 터키의 전통 리듬이기도 한 ‘cifte tell’i로 불렀다. 중동에서는 ‘동양의 춤(dense orientale)’으로, 터키에서는 ‘Rakkase’로, 이집트에서는‘Raks Sharki’로 불렀다.
벨리댄스는 여신이 가지고 있는 다산성의 근원인, 복부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특별한 춤이다. 벨리댄스의 기원은 명확하게 고대의 다산의식에서 시작됐으며, 전통적으로 어머니 땅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맨발로 춤을 춘다. 또한 여성의 신체에 맞춰 안무되었는데 복부 근육과 힙과 가슴의 움직임 등을 강조한다. 이 춤은 매끄러우면서 흐르는 듯 하고 복잡하면서 허리를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우울증이 말끔히 나았어요!”
오전 11시 벨리댄스 초급반이 연습을 마친 후, 수강생인 이금애(여, 48세)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허리 통증이 유난히 심해 벨리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저는 허리에 통증이 와서 그것을 고쳐보려고 벨리댄스를 시작했어요. 벨리댄스는 온 몸을 다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많은 운동을 필요로 하죠. 그러나 자세만 정확하게 잡으면 아픈 곳이 없어져요. 그래서 계속하고 있어요.”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사라지고, 모든 일에 활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12시부터 초급반의 연습에 이어 벨리댄스를 추기 시작하는 동아리 모임인 ‘아이리스’는, 이미 수원에서는 잘 알려진 벨리댄스 동아리이다. 일 년이면 거의 10회가 넘는 봉사를 하기도 하는 아이리스는, 현재 9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1998년에 아이리스라는 벨리댄스 동아리를 조직해 수원에서는 가장 먼저 벨리댄스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고.
수원에서 가장 먼저 무대에 춤을 올린 ‘아이리스’
“그 이전부터 문화강좌로 벨리댄스를 추어왔어요. 그러다가 1998년에 정식으로 아이리스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죠. 그렇게 아이리스가 동아리로 조직이 된 후, 거의 한 달에 한 번 씩은 요양원 등을 돌면서 봉사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현재 벨리댄스 동아리 아이리스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미옥(여, 40세)씨의 말이다. 김미옥씨도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춤을 추는 것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시작을 했다고.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춤을 춘 것은 아니란다. 아이들의 반대가 심했기에.
“처음 춤을 춘다고 했을 때는 아이들이 먼저 반대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후원자가 되었죠.”
화려한 의상부터가 아이리스가 남다른 것을 알려줘
“취미생활로 시작한 지가 이제 4년이 지났어요. 벨리댄스는 여성들에게는 정말 최고로 좋은 운동인 듯해요. 벨리댄스를 추면 몸의 전체적인 균형이 알맞게 변하거든요. 거기다가 신나게 춤을 추면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또 건강도 지켜갈 수 있고요.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함께 갖게 되죠.”
화려한 의상으로 몸을 감싼 채 열심히 춤을 추던 양수지(여, 39세)씨의 이야기이다. 굳이 그렇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춤을 추는데 몰입해 있는 모습에서, 얼마나 벨리댄스를 좋아하는가를 알 수가 있다. 한 때는 많은 노출을 꺼려 춤을 춘다는 것이 힘들었다는 한 회원은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생활이 지루하거나 활력이 생기지 않으면, 벨리댄스를 추러 오라고 하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삼계탕 한 그릇에 노인 공경하는 마음이 철철
지동 고성주씨 초복마다 삼계탕으로 어른 공경
지동이란 마을은 참 흥미롭다. 그렇게 잘 사는 동네도 아니건만, 인정 하나는 샘 솟듯 하는 마을이다. 매년 초복 날이 되면(올해는 7월 13일), 지동에 사는 노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호인 ‘경기전통굿연구원’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고성주씨(남, 57)의 집으로 모여든다. 이곳에서 매년 초복 때 잔치를 열기 때문이다.
이른 시각인 새벽 5시부터 집안을 정리한 후, 곧바로 삼계탕에 들어갈 육수를 끓인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닭 100마리를 삶아낸다. 오늘은 지동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 100분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11시가 조금 지나자 어르신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주변 주민들 중에는 이럴 대마다 찾아와 봉사를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매년 경로잔치 등도 열어
고성주씨는 신(神)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춤과 소리를 문화재급 선생님들한테 학습을 받았지만, 그 길을 걷지 못하고 17세에 신이 내렸다. 그 뒤 매년 남을 위하는 잔치 등 공연도 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친 춤 제자들과 함께, 경로당 등을 순회하면서 노인위문공연을 하고 있기도.
그것뿐이 아니다. 매년 한 차례 집에서 경로잔치를 연다. 이렇게 잔치를 열 때는 춤도 추고, 소리도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제자들과 동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이 집에는 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는다. 자신이 신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고성주씨. 이제는 나눔이라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른 시간부터 바쁘게 움직인 덕분에 마을의 어르신들은 맛있는 삼계탕 하 그릇씩을 드실 수가 있게 되었다.
“고선생은 참 본 받을 만한 사람이죠. 매년 이렇게 동네잔치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은데, 언제나 어르신들을 살갑게 대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야 한 그릇 와서 잘 먹고 간다고 하지만, 이렇게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 더위에 말이죠.”
지동에 사시는 한 어르신이 하는 말씀이다. 늘 이곳에 와서 복다림을 하고 가신다는 이 어르신은, 그래서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고 호탕하게 웃으신다.
따듯한 마음이 넘치는 곳, 지동.
“아버님 술 한 잔 드실래요?”
“아니, 그냥 이 삼계탕 한 그릇 먹으면 배가 너무 부를 것 같아요.”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누구에게나 정감이 가는 말투이다. 그렇게 바깥, 거실, 지하연습실 등에 마련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진 삼계탕 한 그릇씩을 드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시는 어르신들이다.
“지금 우리는 어른 공경을 제대로 할 줄 몰라요. 그분들이 젊으실 때 그 수많은 고생을 하시지 않으셨다고 하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히 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은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하고, 저희들은 그런 우리 부모님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드릴 것을 찾아보아야죠. 어른 공경이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요.”
여기저기 음식을 나르랴, 어르신들께 필요한 것을 갖다 주랴 옷이 땀으로 다 젖었다. 그래도 맛있게 드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단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매년 이렇게 나이를 먹은 저희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시는 고성주 선생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드셨다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시는 어르신들. 매년 이렇게 이어가고 있는 따듯한 마음이 있는 곳, 지동마을. 이렇게 따듯한 마음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지동이라는 곳은 참 살만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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