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저곳에 저수지를 만들면 족히 1만 명은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 그러면 저곳에 저수지를 만들라

 

1795년 능행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안문에 오른 정조대왕과 화성유수 조심태가 나눈 대화 중 일부이다. 만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저수지를 조성하기를 상소한 조심태. 그리고 그 때 조성한 저수지가 바로 만석거이다. 정조는 이 외에도 화성 주변에 만석거와 축만제, 만년제 등을 조성해 치수를 통한 과학적인 농경을 실시한다.

 

현재의 수원을 농업도시 수원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수원이 어떻게 농업도시가 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한 것이다. 하지만 수원이야말로 과거 정조시대부터 지금까지 농업개혁의 도시이자 농업연구의 도시이다.

 

정조는 정조 17년인 1793년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면서 오랜 시간 구상해 왔던 개혁을 시도하였다. 도시의 규모와 위상을 한양의 도성과 버금가도록 만들고 최고의 축성기술을 이용하여 공격과 수비에 용이한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이 외에도 한양 육의전 외에 화성에도 시전을 설치하여 상업발전을 도모하였으며, 농업기반시설을 조성하여 농업 진흥을 이루도록 독려하였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이상도시를 모범적으로 만든 뒤 이 모델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곳 수원화성은 정조가 만들고 싶었던 조선의 축소판이며 1794년은 그 첫발을 디딘 기념비적인 해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특별기획전을 준비하였다. 농업도시 수원의 전통을 재조명하고 수원시와 농림축산식품부가 함께 준비 중인 농어업역사문화전시체험관 건립에 내실을 기하고자, ‘수원화성 착공 220주년 기념으로 <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 특별기획전시를 마련하였다.

 

 

정조대왕이 꿈꾼 나라는 강한 국가였다.

 

조선조 제22대 국왕으로 등극한 정조는 정조 2년인 17786, 당시 사회가 마치 병든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병든 사회를 타개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개혁과제를 대내외에 천명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경장대고(更張大誥)’이다. 백성이 풍요롭게 살고, 인재를 키워 나라를 살찌우며, 군사제도를 강화하여 국방력을 키우고, 재물의 씀씀이를 다져 재정이 튼튼한 나라. 정조가 꿈꾼 나라는 이 네 가지에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은 농업이 국가의 주요 산업이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물론이고 국가의 재정수입도 그 해 농사의 풍흉에 달려 있었다. 정조는 어느 임금보다 농업 생산성을 안정시키고 증대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갔다.

 

매년 정월에 권농교(勸農敎)와 권농윤음(勸農綸音)을 반포하여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농사지을 것을 권하고, 지방관들에게는 이에 대한 행정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당대의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종합하기 위해 전국의 선비들이 정리하여 올린 응지농서(應旨農書)’를 바탕으로 농서대전農書大全편찬을 추진하였다.

 

 

만석거부터 조성하기 시작

 

정조는 1794년 화성성역을 일시 중지하고 대신 둔전을 만들고 화성유수 조심태가 간한 만석거(萬石渠)’라는 수리시설을 축조하도록 명령하였다. 만석거 축조로 인해 화성 장안문 밖의 드넓으면서도 척박했던 대유평은 수전지대로 변했으며 극심한 가뭄도 무사히 극복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화성에서 1798만년제(萬年堤)’, 1799년에는 축만제(祝萬堤)’가 연이어 축조되었으며, 수리시설 축조와 더불어 개간된 둔전에서 얻은 소출은 화성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사용되었다. 정조대 서둔동 일대에 조성된 농업기반시설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권업모범장과 농림학교가 들어섰으며, 해방 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농촌진흥청이 설립됨으로써 수원은 농업연구와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30일 오후 3시게 개막식을 갖고 201521일까지 특별기획전으로 전시가 되는 수원화성 착공 220주년 기념’ <정조시대 농업개혁의 산실, 수원화성>전에는 수원화성의 수리시설과 둔전에 관한 자료는 물론 3D 영상물을 제작하여 척박했던 땅을 개간하여 둔전을 만들고, 수리시설을 통해 풍작을 이루는 모습을 이야기하듯이 풀어냈다.

 

특히 영상제작을 위하여 일제강점기 지적도 등을 검토하여 수원의 옛 지형과 물길을 고증하였다. 수리관개와 관련된 농기구와 함께 연출하여 보다 입체적인 상영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번 전시회에는 <홍재전서><응지농서>, 5.6m에 달하는 윤음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농학자로, 1836년 화성유수로 부임하여 농업개혁가로서 변모를 실현한 사유구의 관련유물 등이 전시된다.

 

황금 똥 그림 잔치’, 처음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의아해 할 듯하다. 세상에 수많은 잔치 중에 황금 똥이라니. 하지만 해우재를 한 번이라도 다녀 간 사람이라면, 이 그림 잔치를 이해할 것이다. 해우재는 세계에서 유일한 화장실 문화전시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우재를 다녀 간 인원이 30만 명을 넘었다.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458번길 9에 소재한 해우재는, 전 수원시 고 심재덕 시장의 사가였다. 고 심재덕 전 시장은 이천시 마장면 도드람산 외가 뒷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유별나게 화장실에 관해 애착을 가졌다. 1996년 수원시장 재직 시와 2002년 한, 일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 운동의 선구자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화장실 문화를 바꾸는데 전념하였다.

 

 

심재덕 전 수원시장은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을 기념하기 위해, 30여 년간이나 살던 집을 부수고 그 곳에 변기모양의 집을 지었다. 이 집이 바로 근심을 푼다는 해우재이다. 심재덕 전 시장의 사후에 유족들은 그의 뜻을 받들어 20097월 수원시에 해우재를 기증하였고, 수원시는 그 뜻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수원시 화장실문화 전시관 해우재로 재탄생시켰으며, 20101030일자로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2012년에 시작한 황금 똥 그림 잔치

 

해우재는 개관 1주년을 맞이해 해우재 음악회를 연 후, 2012년과 2013년 개관을 기념하는 그림대회인 황금 똥 그림 잔치를 개최했다. 이 잔치는 시민들의 참여도와 해우재의 홍보효과를 증진했으며, 이번에 제3회 그림 잔치를 열어 아이들이 이라는 주제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18일 오전 11시 해우재 앞마당에서 열린 개회식은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기념사업회가 주최, 주관을 하고 수원시와 수원시의회, 세계화장실협회, 한국화장실협회, 수원문화재단 등이 후원을 한다. 이 그림 잔치의 주제는 황금 똥 그림과 해우재, 그리고 화장실이다. 유치부와 초등부로 구분을 하며 해우재 잔디마당과 야외공원에서 그림을 그려 3시까지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이번 제3회 황금 똥 그림 잔치에는 200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가 신청을 했어요. 잔치 중에는 각종 음악회와 페이스페인팅, 커리캐쳐 그리기, 보물찾기 등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고요.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상품도 마련했어요.”

 

해우재 홍보담당이 설명을 해준다. 개회식에서 미스터 토일렛 심재덕 기념사업회 선정선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화장실 문화운동을 세계최초로 시작한 수원, 그리고 그 출발을 한 헤우재에서 이렇게 뜻 깊은 행사를 갖게 되어 기쁘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가정과 여러분들이 늘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11월 초에 해우재에서 시상식 가질 터

 

18일 열린 3회 황금 똥 그림 잔치는 대상은 유치부와 초등부 각 1명으로 수원시장상이 마련되어 있으며, 최우수상은 유치부 1명과 초등부 2명으로 수원시의회 의장상이다. 이 외에도 우수상과 특별상, 특선과 입선 등 많은 어린이들이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시상은 11월 초에 해우재에서 실시한다. 아이와 함께 정자동에서 왔다는 한 주부는 연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를 카메라에 담으며 이야기를 한다.

 

오늘 이렇게 해우재에 와서 보니,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마치 소풍을 온 것만 같다. 오늘은 날도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적합하다. 오후에 보물찾기가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좋은 보물을 찾았으면 좋겠다.

 

 

경매!’, 경매란 어떤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여럿일 때, 값을 제일 높게 부른 사람에게 팔거나, 또는 그러한 행위를 말한다. 경매는 대개 소장가치가 높은 골동품이나 미술품 등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꼭 소장가치가 높아야 경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것들도 경매를 통해 사고팔기도 한다.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318-3에 소재한 수원 세향 옥션’. 경기도보건환경 연구원 옆에 자리하고 있다. 가 건물로 지어진 이 매장을 15일 오후에 찾아보았다. 오후 2시부터 이곳에서 골동품 경매가 이루어진다고 해서이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이루어지는 경매에는, 전국에서 모인 수집가들과 판매상들이 모여든다. 그 인원이 많을 때는 100명이 넘어선다고 한다.

 

 

많은 제품이 진열되어 있는 세향 옥션 매장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골동품 경매장 세향 옥션. 시간이 되어가자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는 차들이 도착한다. 저마다 오늘 경매에 붙일 물건들을 매장 안으로 나르기 바쁘다. 미리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도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있다. 참 꼼꼼하게도 물건들을 살핀다. 우리처럼 대충 훑어보는 것이 아니다.

 

지난 달 920일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 이 골동품 경매장은 수원에 두 곳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물건 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건너 온 것들도 보인다. 골동품, 고 미술품, 근대 화가들의 작품, 기타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나와 있다. 그것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희 매장에서는 골동품만이 아니라 근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물건들을 사고팝니다. 직접 경매인들이 물건을 들고 와 경매에 붙이기도 하지만, 저희들의 소장품 또한 판매를 하죠. 경매는 수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 번을 합니다. 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에는 상설매장 운영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공경락 수원 세향 옥션 대표의 말이다. 이곳의 운영은 경매사인 박복만과 공동운영을 하고 있단다. 보통 경매는 전문경매인이 하기도 하지만, 물건을 가져 온 판매자들이 직접 경매를 할 수도 있다고.

 

 

자연스런 판매 분위기 조성해

 

세향 옥션의 경매방법은 수요일과 토요일이 차이가 난다. 수요일에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반품 없는 경매를 하며. 판매자가 직접 자신의 소장물품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토요일에는 사전에 경매물품을 등록하는 방법으로 진행이 되며, 물품의 예상금액과 물품의 설명을 출품자가 직접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출품의 점수는 20점을 원칙으로 한다.

 

기본적인 안이야 저희들이 정해놓았지만 꼭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가급적이면 자연스런 분위기로 경매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경매보다는 즐기면서 재미있게 하자는 것이죠.”

 

수요일과 토요일에 이루어지는 경매는 1부는 오후 2시부터 시작이 되고, 2부는 오후 6시부터 시작을 한단다. 또한 이곳 경매장에서는 고가의 물품이 나오거나. 판매자가 물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경우 감정까지 해주어, 판매자가 손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

 

 

저희들은 이곳에서 경매를 하지만, 꼭 저희가 그런 이익창출을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매일에 전국에서 이곳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주변 식당 등을 이용해 지역 경제에 보탬을 줄 수 있고, 또한 경매가 없는 날에는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무상 임대해 많은 분들이 와서 구경도 하고 모임도 할 수 있도록 마련할 계획입니다.”

 

공경락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경매시간이 되었다면서, 우선은 밖에 진열한 덩치가 큰 물건부터 먼저 경매에 들어가겠다고 발표를 한다.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갖고 나오면 매장에서 필요한 것은 적당한 값으로 매입을 하겠다고 하는 공경락 대표. 앞으로 이 골동품 경매장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지역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9일은 한글날로 법정공휴일이다. ‘51회 수원화성문화제2일차인 9, 수원 행궁동과 장안문로 일대에는 역대 화성문화제 축제 기간 중 최대인파가 모여들었다. 공휴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화성문화제가 이제는 전국적으로 가장 명성을 얻고 있는 문화관광형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모습이다.

 

아침부터 주 행사장인 화성 행궁 일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1시 경에는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정조대왕 능행차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이에서 능행차와 시민 퍼레이드를 보기 위함이다.

 

지난해 구경을 하려고 나왔는데 좋은 자리를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어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일찌감치 나와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먹을 것도 싸왔으니 오늘은 제대로 구경을 한 번 해보아야죠.”

 

 

매탄동에서 능행차 구경을 하러 나왔다는 조아무개(, 54)씨는 행궁동 입구 커피숍 앞에 자리를 하고 앉았다. 이곳이 가장 구경하기가 좋은 몫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행궁 광장과 음식문화 축제장 등도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이다.

 

역대 화성문화제 최고의 인파

 

‘2014 수원음식문화축제장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길게 줄이 늘어선 곳이 여기저기 보인다. 중식과 일식을 판매하는 곳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음식을 먹는 부스 안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 수원갈비를 파는 곳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기는 마찬가지.

 

저는 팔달문 앞에서 시민퍼레이드 구경을 했는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거든요. 어제(8)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화성문화제 역대에 최고 인듯해요.”

 

 

수원의 먹거리 길인 통닭거리도 예외는 아니다. 몰려 든 사람들로 인해 길을 비켜가기도 힘들 정도.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통닭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자리 없어요.‘라는 말만 돌아온다. 몇 집을 찾아가도 마찬가지이다.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받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화성문화제는 전국 최고의 문화관광 축제

 

수원화성문화제를 찾아 온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들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천에서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김아무개(, 39)는 다니기가 버거울 정도라고 하면서

정말이지 화성문화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인 줄은 몰랐어요. 물론 51회라는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정조대왕의 능행차 때문인 듯합니다. 오늘 정말 좋은 축제를 구경하고 갈 수 있어서 기쁩니다.”라고 한다.

 

수원시 공보관실 SNS팀에서 주관한 파워블로거 팸투어에 참가를 한 블로거 한 사람은

전국의 축제에 초청을 받아 다니지만, 수원이 그 중 최고입니다. 수원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사 내용도 가장 내실있는 듯하고, 여기저기 볼 것이 너무 많아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아마 먹거리도 수원만큼 다양한 곳은 없을 것 같습니다. 화성문화재는 정말 최고의 축제입니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고 있는 51회 수원화성문화제능행차와 시민퍼레이드가 끝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온통 거리가 인파로 뒤덮였다. 축제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먹고, 즐기는 곳이다. 그런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축제가 바로 화성문화제이다. 앞으로 남은 12일까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기대가 된다.

 

냉장고에 집어넣는 그릇이야 당연히 사서 사용을 하지만, 그 외에 밥그릇이나 국그릇은 제가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또 제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즐거움도 있고요.”

 

9월이 끝나가는 날, 인계동에서 만난 김인순(, 41세 연무동) 작가. 물레질을 하고 있다가 묻는 질문에 가족들이 사용하는 밥그릇이나 국그릇은 직접 만들어서 사용을 한단다. 올해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8년 째. 중간에 잠시 쉬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앉아서 물레질을 하고 무거운 것들을 들고 다니다가 허리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정말 우연이라고 한다. 진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닐 때 옮겨온 곳이 경기도 화성.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수원으로 왔다고 한다. 벌써 20년을 수원에서 생활을 한 것이다.

 

제가 좀 예뻤거든요. 그래서 일찍 결혼을 했죠. 몇 사람이 어울려서 매탄동에서 홈패션 가게를 차렸는데 망했어요. 장사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마음만 먹고 시작한 것이라서. 그리고 좀 쉬다가 도자기를 시작했어요.”

 

도자기라는 소리에 불쑥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농담을 할 정도로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처음에 일을 놓고 쉬고 있을 때, 지인 한 사람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 광교에 있는 흙지기라는 공방이었단다.

 

그 때 저희들을 가르치신 분은 지방으로 떠나셨고, 몇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저는 주로 생활자기를 만들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요. 그동안 2007년에는 그룹전도 열었고요. 현재 전국예술인연합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4년에는 국토해양환경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해 특선과 입선을 했다. 또한 제10회 대한민국 평화예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해 역시 특선을 했다고. 세류중학교에서 장애인들에게 도자기를 가르친 것을 비롯해, 어린이집과 장애인들에게 주로 도자기 수업을 했다고 한다.

 

 

물레질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

 

김인순씨는 자신은 작가라고 하기보다는 단순히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작가들이라면 당연히 작품전시회도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룹전 밖에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라고 볼 수는 없다고. 물레질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김인순씨.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10여 명의 장애인들에게 기초부터 도자기 강의를 하고 있단다.

 

매주 수요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무료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일반인들은 재료비 정도를 받지만 장애인들은 그냥 가르치죠. 이분들이 나중에 작품을 만들어서 판매를 할 때까지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 드리려고요. 저희들은 장애인들이 자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그동안 자신이 배운 도자기가 실생활에 사용하는 생활자기 위주였기 때문에, 장애인들에게 생활자기를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생활자기를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장애인들이 집중력이 좋아서 열심히들 해요. 이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죠.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정말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분들을 가르치고 싶지만 아직은 여건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세상을 착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김인순씨.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해서 개인전을 열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