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연, 이주영, 이해균, 정세학, 차진환 작가 작품 만날 수 있어

 

남문로데오거리에 소재한 길가 갤러리인 남문로데오갤러리는 한 때 젊음의 거리였던 로데오거리에 소재하고 있다. 남문로데오거리는 애경백화점 등 수원역에 대규모 매장이 입점하면서 젊은이들이 떠나 거리가 텅 비어버렸다. 남문로데오상인회는 떠나버린 젊은이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그렇게 자구책을 강구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가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이었다.

 

남문로데오상인회는 거리를 되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쓰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바로 거리미술관의 조성이었다. 거리에 있는 유료주차장 외벽을 거대한 거리 갤러리를 조성해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것이다. 처음 로데오상인회의 노력으로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듯했으나, 아직도 로데오거리는 예전의 호황을 불러오지 못했다.

 

그런 로데오거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남문로데오거리 상인회는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고, 그 결과 많은 갤러리들과 청소년문화공연장, 남문아트홀 등 전용공연장 및 소극장을 유치했다. 하지만 아직도 남문로데오거리는 한 때 극장이 6곳이나 있었을 때와는 달리, 젊은이들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데오거리갤러리서 민미협 작가들 전시

 

28일 오후, 남문로데오거리를 찾아갔다. 거리갤러리인 남문로데오갤러리에 수원 민미협의 산루리작가회 회원들이 전시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930일까지로 민미협 산루리 작가회 회원인 이오연, 이주영, 이해균, 정세학, 차진환 등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 전세학 작가와 이주영 작가의 작품은 몇 번이고 만났던 작품들이다. 정세학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인가? 로데오거리에 소재한 해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때였다. 작가 정세학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로 만 58세다.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공미술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1998년에는 와우 프로젝트 - 달리는 도시철도로 문화예술관(지하철 7호선 설치) 작업에 참여했다.

 

작가는 2006년에는 Art in City 대전 홈리스 프로젝트 예술 감독을 맡았으며, 실학축전 2006년 미술감독, 서울 Hi Festival - 남대문 성곽 잇기 설치, 동해시 매화1 벽화 미술감독 등을 맡아 추진했다. 그런 정세학 작가의 작품을 수원 전시관에서 몇 번이고 만나면서 작품에 꽤 정이 들었었나 보다.

 

 

제주도의 바다냄새를 그려내는 작가 이주영

 

작가 이주영은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은 지가 오래되었다. 민미협 수원지부장을 맡기도 한 이주영 작가는 한 때 수원에서의 작품활동을 접고, 제주도로 내려가 그곳에서 제주도의 풍물을 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후 다시 수원으로 돌아 온 이주영 작가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자신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부터 1990년 초까지 격동의 세월에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민초들이 한이 깃들어 있다. 그의 작품소재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우리가 늘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풍경인 것도 이주영 작가의 작품을 담아내는 특징이다.

 

전시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이주영 작가의 작품은 그대로 민초들의 삶이다. 언제인가 이주영 작가의 전시를 찾아갔다가 낯익은 그림들을 만난 적이 있다. 바로 비탈과 골목이 유난히 많은 지동의 골목을 그려 전시를 연 것이다. 그런가하면 제주에서 만난 풍광과 야생화들을 그려 전시를 가진 적도 있다.

 

이주영 작가는 늘 민초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림을 그려오면서 자신이 가장 행복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그린 작품들의 가격이 엄청날 것이라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순수한 작가들의 색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남문로데오갤러리 전시관이다.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으니 시간을 내어 로데오거리를 찾아가보길 권한다.

 

예술공간 봄 제1전시실에서 829일까지 전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권리이자 평생의 숙명같은 것이다. 각자가 감당할 만한 움직임 범위를 가지게 되는데, 자신에게 부과된 환경에 적합한 형태를 창조하는 것은 생명의 몫이다. 모든 것이 귀찮고 멈춰서고 싶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나아가야 한다.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인데, 정지는 잠깐의 휴식과 안식처일 뿐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고리를 돌리는 작은 수고로움과 용기로 시작해서 그 후에 불어오는 흐름에 몸을 맡겨본다

 

오경진 작가가 작가노트에 쓴 말이다. 오경진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첫 번째는 2019년 서울 갤러리 도스에서 가진 활기의 상이었고, 이번에 두 번째로 수원 예술공간 봄 제1전시실에서 갖는 불어오는 자리이다.

 

작가는 2013년부터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2013art-ache(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를 시작으로 2014년 경인미술관(서울)에서 열린 아트정글전, 2014년 북서울 꿈의 숲 드림갤러리(서울)에서 연 침투, 미묘한 작용, 2015년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서울)에서 연 청춘본색 전, 2016년 걀러리 H(서울)에서 연 설렘, 2017년 서울 아이디어 팩토리에서 전시를 가진 뜰 전, 그리고 2018년 서울 겸재 정선미술관에서 가진 사이(似異) 전 등에서 활동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20일 오후 찾아간 예술공간 봄. 오경진 작가는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순간들은 끝없이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가능하다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본능적이거나 자발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어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기에 생명은 조용한 듯 보여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움직이는 힘은 그 안에 용솟음치는 생동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뜨거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에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몰라도 우리는 계속 날개를 파닥거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행위 자체가 바로 생명이 있고 살아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행궁동 예술공간 봄 제1전시실에 전시된 오경진 작가의 작품은 모두 11점이다. 3곳의 작은 공간과 중앙 전시홀에 걸린 작품들은 밤 무지개, 무지개 자국, 재회, 새벽녘, 오늘도 줄넘기, 줄 위에 바람대로, 금요일 산책, 갈대피리, 장미전선, 연기 아니고 수증기 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

 

 

오경진의 작품은 만물의 변화를 동()하는 기운

 

오경진의 모든 그림은 힘의 근원이 바탕이 된다. 그 힘의 주체는 인간인 작가가 가진 내면에서부터 생명, 자연, 그리고 우주로 점차 광범위해진다. 이렇듯 만물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일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들이 공통으로 발산하고 있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싹이 움트는 모습, 자연에 빗대어진 생명력, 그리고 초능력과 같은 정신적인 힘을 담은 시리즈를 구성한다. 각 시리즈는 커다란 에너지. 즉 기운이라는 개념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며, 에너지가 어떤 형태를 가졌는지, 어떻게 약동하고 얼마만큼의 움직임과 파장을 보여주는지 작가의 상상을 거쳐 나타난다.’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문빈은 오경진 작가의 작품은 만물의 동하는 기운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전시실에 걸린 오경진 작가의 작품에는 구름과 같은 표현이나 연기와 같은 것들이 퍼져나가는 형태로 파장을 표현하고 있다. 오경진 작가는 자신의 작품속에서 끊임없이 생명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행궁동 예술공간 봄 제1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오경진 작가의 불어오는 자리. 829일까지 전시될 작가의 작품을 찾아가 만물의 변화를 움직이는 기운을 받아보기를 권유한다.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 출토되었다는 삼존불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248번지에는 비구니의 요람이라는 봉녕사가 소재한다. 봉녕사는 비구니 승가대가 있는 절이다. 봉녕사의 용화각에는 고려중기의 석불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석조삼존불상은 대웅보전 뒤편 언덕에서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되어있는 석조삼존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있다. 불상과 연화대좌는 각각 하나의 석재로 조성하였는데,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삼존불 모두 뚜렷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 마모가 된 것으로 보인다.

 

16일 오후, 봉녕사를 찾아갔다. 전날 찾아가려했지만 15일은 우란분절이라 봉녕사를 찾아오는 신도들 때문에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 용화각에는 접근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아 뒷날인 16일을 택한 것이다. 봉녕사 경내로 들어서니 사진촬영금지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사진촬영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현수막을 걸어 알리고 있는 것일까?

 

 

종무소를 찾아가 사진촬영 허가받아

 

먼저 봉녕사의 업무를 관장하는 종무소를 찾아갔다. 종무소 근무자에게 삼존불 촬영을 하기위해 왔다고 설명한 후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남자 한분이 들어와 무슨 일로 삼존불 촬영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문화재소개를 하기 위해 촬영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난 후,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용화각으로 향했다.

 

용화각(龍華閣)의 명칭을 용화전이라고 해야 하는데 용화각에 붙인 명칭을 바꾸겠다고 했더니, 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후에는 바꿀 수 없다고 해서 용화전으로 고치지 못했어요.”

관리를 하는 분의 설명을 듣고 용화각 전경을 한 장 촬영하고 난 후 용화각 안으로 들어서 삼존불을 촬영했다.

 

카메라가 아닌 휴대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가보다. “카메라는 플래시를 써야하기 때문에 삼존불에 피해가 갈수도 있어 휴대폰으로 촬영을 한다고 설명을 드렸더니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기자는 처음 보았다.”며 웃는다.

 

 

삼존불의 중앙에 좌정하고 있는 본존불은 석조여래좌상으로 얼굴모습은 원만한 편이다. 그저 편안한 느낌을 받게 하는 본존불의 머리 부분은 파손되어 있고 눈, , 입 부분은 심하게 마모되어 희미하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우견편단으로, 법의의 주름도 상당히 도식화 되어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놓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는데 부자연스럽게 조각하였다. 석불의 밑을 받치고 있는 좌대인 연화대는 일석으로 2단으로 되어있으며, 가운데가 잘록하고 아래 위가 넓게 조성하였다. 연화대 위편은 커다란 앙련을 조각하였는데 사이가 너무 벌어지게 잎을 조성하였다.

 

본존불의 좌우에 서 있는 협시불의 얼굴 형태는 원만한 편이나 각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다. 협시보살의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으로 조성을 하였는데 마모가 워낙 심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협시불은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있으며, 원추형의 대좌에는 연화문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고려 중기 한 사람의 석공에 의해 조성한 듯한 삼존불,

 

용화각에 모셔진 석조삼존불은 모두 평평한 느낌을 준다. 조각 기법이나 각 부분의 형식과 표현 수법이 도식화 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불 모두 전체적으로 표현기법 등이 동일해 한 사람의 장인에 의해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봉녕사 삭조삼존불. 모두 정확한 형태를 알아보기는 어렵다. 땅에 묻혀있던 삼존불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자들에게는 이 삼존불이 예사삼존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 역시 생활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봉녕사를 찾아가 석조삼존불 앞에 머리를 조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제는 백중이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용화각을 찾아와 아마 사진촬영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관리자의 설명이 없다고 해도 15일이 백중일임을 알고 다음날 찾아간 것이다. 음력 715일을 우리는 흔히 백중일(百中日)’ 또는 백종일(百種日), 이라고 부른다. 백중 때가 되면 채소와 과일 등을 수확할 수 있는 시기로, 100가지 과실이 나온다고 하여 백종(百種)이라고도 했다. 이날을 망혼일, 중원일(中元日) 혹은 불가에서는 우란분절이라고 부른다. 우란분절에 불가에서는 하안거를 해제하고 망자들을 위한 제를 올린다.

 

 

우란분절의 내력은 이러하다. 예전 목련존자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지옥에 있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부처님은 백가지 과일과 꽃을 차려놓고 스님들을 청해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주라고 일렀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대덕스님들을 모셔 우란분회를 열어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란분절에는 모든 절에서 재를 올린다. 세상을 먼저 떠난 영가를 천도하는 의식이다. 다음날 찾아갔지만 마음속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고개를 숙인다. 봉녕사 삼존석불을 돌아본 후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먼저 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냉정한 도심 속에서 경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 진정 가치있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 사랑의 단비 red rein이 흡족히 내려서 욕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진리의 메타포 빛으로 인해 환하게 밝아졌으면 한다

 

팔달구 화서문로 76-1에 소재한 예술공간 봄 제1 전시실에서 815일까지 전시하고 있는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전시모임 ‘2019 전시그룹 PIZA 7회 행복의 깊이 전에 작품을 출품한 박미정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에서 작가노트로 소개한 글이다.

 

박미정 작가는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을 졸업했으며 제37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부문 특선, 12회 전국춘향미술대전 특선, 2회 나혜석 여성미술대전 입선, 19회 나혜석미술대전 입선 등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한국모던아트작가회전을 서울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었으며 2인전을 서울 아트스페이스 퀼리아에서 열기도 했다.

 

 

14명의 작가들 작품을 만나다

 

12, 며칠 째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연일 전해진다. 이런 날 취재를 하기 위해 길을 걷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예술공간 봄을 찾아갔다. 전시는 계속되고 있지만 워낙 무더운 날이라 그런지 전시공간을 찾아오는 관객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그래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와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고 관계자가 말한다.

 

1전시실에 마련한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전시는 모두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현재 태광중학교 미술교사인 김진화 작가, 김영은 작가, 강민수 작가, 문애경 작가, 박미정 작가, 현 귀인중학교 미술교사인 박상준 작가, 방성희 작가, 신아름 작가, 현 중등학교 미술교사인 심현지 작가, 양정아 작가, 유민혜 작가, 이하진 작가, 임채은 작가, 현 여수여자중학교 미술교사인 진정선 작가 등 14명이다.

 

예술공간 봄의 제1전시실은 입구를 들어서면 가운데 홀이 있고 작은 방 세 칸이 마련되어 있다. 가운데 홀과 작은 방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찬찬히 돌아본다고 해도 관람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예술공간 봄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할 때는 몇 개의 전시실에 작품을 나누어 전시하기도 한다.

 

 

작가마다 독특한 화풍으로 작품 구상

 

14명 작가의 작품을 돌아보고 있는데 그 중에 눈에 띠는 작품이 있다. 양편으로 대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가운데 널찍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한 사람은 바위 위에 누워있고 또 한 사람은 부채를 든 손을 뒷짐을 지고 있다. 현 귀인중학교 미술교사인 박상준 작가의 대밭의 두 사람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눈에 들어온 것은 대나무 밭이라는 점과, 바위 위에 삿갓을 눌러쓰고 누워있는 모습, 그리고 부채를 든 채로 뒷짐을 지고 있는 편한 정경 때문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던 나로서는 이런 정경이 눈에 익은 모습이고, 특히 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전공했던 나로서는 대나무의 그 정취가 아직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미술전시를 하는 곳을 자주 찾아가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보다는 이렇게 눈에 익은 모습이 늘 반가운 것은 아직 미술에 대한 식견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들의 작품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한 작품이라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났다는 것 하나만으로 무더위가 가시는 듯하다. 15일까지 전시되는 예술공간 봄의 2019 전시그룹 PIZA 7행복의 깊이 전’. 시간을 내어 한 번 들려보길 권한다.

 

안성남사당패의 조직을 보면 맨 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뜬쇠·가열·삐리·저승패·등짐꾼 등으로 4050명이 한패를 이룬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대내외적인 책임을 지며 꼭두쇠의 능력에 따라 식구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곰뱅이쇠는 패거리의 기획을 맡아본다. 곰뱅이란 남사당패의 은어로 허가란 뜻이다. 어느 마을에 들어갔을 때 놀이마당을 열어도 좋다는 승낙을 받는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말한다. 하기에 놀이마당을 여는 것을 곰뱅이 튼다라고 표현한다. 곰뱅이쇠가 둘일 경우 하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글()곰뱅이쇠다.

 

다음으로는 뜬쇠가 있다. 뜬쇠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파트장이나 수석의 역할이다. 뜬쇠는 14명 내외로 구성이 되며 상공운님(상쇠징수님(수징고장수님(수장고북수님(수북호적수·벅구님(소고상동무님·회덕님(선소리꾼버나쇠·얼른쇠(요술쟁이살판쇠(땅재주꾼어름산이(줄꾼덧뵈기쇠·덜미쇠 등 각 부분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뜬쇠의 밑에는 몇 사람의 기능을 익힌 가열이 있으며, 밑으로 초임자인 삐리를 둔다. 저승패는 나이가 먹어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꼭두쇠는 패거리에 의해 선출되며 기능을 발휘할 수 없거나 잘못이 있어 신임을 잃으면 바꾸게 된다. 협의를 통한 다수결의 방식을 통해 선출되며 일정한 임기는 없다.

 

 

37도 폭염이라는 날에 안성남사당전수소를 찾아가다

 

10, 올해 들어 수도권 최고기온이라는 폭염경보가 내린 날이다. 37도라는 살인적 더위라는 무더운 날에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34-3에 소재한 남사당전수관을 찾아갔다. 남들은 시원한 곳을 찾아 피서를 한다고 난리를 피우는 날에 공연장을 찾아가다니.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남사당전수관은 돔 형식의 공연장을 마련하여 실내에서 관람객들이 시원하게 남사당의 온갖 기예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염경보가 내린 날 무슨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겠느냐고 하지만 공연시간이 임박하자 객석에는 400여 명의 관람객이 자리에 앉았고, 이들은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온통 남사당패들의 공연에 빠져 함께 박수치고 호응하며 연신 추임새를 넣어가며 즐기는 모습이다. 입장료(성인 10,000)를 지불하고 들어온 공연이지만 누구하나 공연입장료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성남사당 풍물은 현재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이다. 안성남사당의 맥은 조선조 말의 바우덕이로부터 시작하여 김복만-원육덕-이원보-김기복으로 이어지면서 해체와 결성을 반복하면서 끈질기게 맥을 이어왔다. 1997930일 안성남사당풍물놀이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면서, 안성남사당은 남사당의 기예를 전승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남사당 저수관을 건립하고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관객들을 상대로 곰뱅이를 튼다.

 

 

수원전통공연 무예24시 실내공연장 반드시 필요하다

 

안성남사당놀이는 그동안 공연을 거듭하면서 점차 관람객을 위한 공연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단순히 기예를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 아니고, 기예는 기예대로 보여주면서 재미를 더한 것이다. 마당극 형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남사당 꼭두쇠였던 바우덕이의 이야기를 비롯해 남사당이 경복궁 중건시에 옥관자를 상으로 받아 풍물패의 으뜸이 된 내용들은 재미있게 엮어나간다.

 

기예와 해학이 넘치는 남사당놀이. 시원한 실내에서 연신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관람할 수 있는 남사당놀이에 찾아온 사람들은 이미 남사당패의 일원이 되어 그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남사당놀이를 관람할 때마다 늘 부러운 것이 바로 남사당전수관인 실내공연장이다. 비가오거나 날이 무더워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 수원 무예24기 시범공연도 이런 공연장이 필요하다고 늘 역설하고 있지만 무예24기 시범공연은 이런 실내공연장이 없어 안타깝다.

 

무예24기 시범공연을 볼 수 있는 실내공연장이 마련된다면 비가오거나 날이 무더워도 사람들은 편히 앉아서 관람할 수 있다. 요즈음같이 폭염경보가 내려도 시원한 실내에서 마음껏 정조의 혼이 깃든 무예24기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연장이 먼저 생겼어야 하는 곳이 바로 수원이다.

 

 

1987년 안성시청(당시 안성군청)에서 남사당풍물놀이에 대한 책을 의뢰받고 안성에서 6개월 정도를 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읍내에서 서운면 청룡사까지 수도없이 발걸음을 한 적이 있다. 안성 청룡사는 충북 진천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고찰로 당시는 교통편이 상당히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안성남사당풍물놀아 도보>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이 책은 공식적으로 나에게는 가장 먼저 세상에 내놓은 저서로 60P 분량의 소책자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꽤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 인연으로 안성남사당에 대한 기억은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매년 한두 차례는 안성남사당전수관을 찾아가 남사당놀이의 공연에 푹 빠져드는 것도 그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안성남사당전수관 실내공연장에서 남사당놀이를 관람하면서, 우리 수원 행궁인근에도 언제나 편하게 무예24기 시범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전용극장이 하루빨리 개관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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